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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이 되지 않으려면 지면기사

     지난 88년 11월에 있었던 국회 5공특위 일해(日海)청문회는 우문현답(愚門賢答)에 진문기답(珍門奇答)이 쏟아져 나와 국민들의 큰 관심과 흥미를 끌었다. 이 청문회에서 당시 대통령에게 거액을 헌납한 한 중견기업인에게 모 국회의원이 물었다. “대통령에게 영수증을 써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업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에게 영수증을 써달라고 조를 수도 없고 그럴 기업인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주고 영수증을 써달라고 할 기업인이 있을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영수증의 생활화가 뿌리내리지 못했는데 하물며 10여년전에 더구나 대통령에게 영수증을 요구하다니. 우문우답(愚門愚答)이다. 영수증 문화의 정착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정부는 투명한 과세와 탈세방지를 위해 지난 70년대 후반에 금전등록기 설치 제도를 도입하고 영수증 제도의 정착에 힘써왔다. 민간단체들도 최근까지 영수증 주고 받기운동을 벌여왔다. 영수증을 주지않고 받지않는 것은 탈세를 조장하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 어렵던 영수증 문화의 정착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가 바로 그것. 국세청은 지난해 1월부터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를 도입, 매달 카드 영수증을 추첨하여 당첨된 사람들에게 총 10억원이 넘는 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지난해에 46만3천명에게 모두 176억원의 상금이 돌아갔다. 올들어 6월까지는 52만명에게 95억5천만원의 상금이 지급됐다. 여기다 신용카드 사용금액의 일정 부분을 과세대상 소득에서 빼주는 카드사용액 소득공제 제도까지 가세했다. 이렇게 되자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현금보다 카드를 쓰자는 움직임이 크게 확산돼 카드 사용이 급증했다. 신용카드 이용금액이 99년말 90조7천억원에서 지난해 말에는 219조원으로 폭증했다. 이 바람에 지난해에는 2조원의 세수증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이처럼 카드사용이 크게 늘어나자 자영업자의 매출과 수입이 드러나고 이제까지 숨겨져 온 세금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카드 매출액은 해당 카드회사를 통해 국세청에

  • 내 마음 속의 호랑이 지면기사

     그게 정말 호랑이였을까. 어찌 보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둘로 나뉜다. 커다란 삵인가, 작은 호랑인가. 너무 더워 잠 못 드는 밤, 그 희미했던 화면을 거듭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조금만 더 선명했더라면…. 못내 아쉽다. 대구MBC가 청송 심산유곡에서 무인카메라로 잡은 사진을 지난주 방영한 이래 전국적으로 호랑이 논쟁이 뜨겁다. 한국호랑이야! 제발 살아 있어다오. 그 간절한 소망들이 새삼 느껴진다. (우리 생태계의 희망)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랑이 사랑은 유별나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아마도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로 호랑이가 1위지 싶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우리는 엄연히 곰의 후예인데도 말이다. 오죽했으면 한국호랑이 복제시도를 다 할까. 지난 93년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생포된 한국호랑이 '랑님이'의 체세포를 복제해서라도 한국호랑이의 대를 이어보려는 노력이 지난해부터 진행중이다. 이런 판이니, 청송 호랑이가 진짜로 판명된다면 그 기쁨이 오죽하랴. 야생호랑이가 살아있는 생태계는 희망이 있다.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 포식자(捕食者)의 우두머리가 생존하려면 그만큼 안정된 생태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멧돼지 노루 고라니 따위 짐승은 물론이고 머루 다래에 물고기까지 잡아먹는 호랑이가 건재한 산야라면 우리의 미래는 믿어도 좋다. 그동안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구석구석 찢고 파헤친 국토이건만 아직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생태계 파괴의 속도는 늦추지 않으면서, 호랑이가 살아 있기를 기원하는 것은 '택도 없는 소리'다. 아니, 하늘의 벌을 받아 마땅한 염치없는 수작이다. 무인카메라 앞에 나타났던 저 동물이 정말 우리 호랑이였기를 바란다면, 이젠 어떤 명분이 있더라도 백두대간을 까뭉개는 일 따위는 멈추어야 한다. 호랑이는 한밤에 먹이를 찾아나서는 습성이 있다. 때로 그 거리가 100㎞에 이르고, 평생의 활동반경은 400㎞나 된다고 한다. 한반도를 종횡으로 누비고도 남는다는 계산이다. 청송의 동물이 정녕 호랑이일진대, 저 백두산으로 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것일 수도

  • 이런 사람 안됩니다 지면기사

    자치단체장들의 상당수가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내년 선거를 앞두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각종 행사를 좇느라 여념이 없다. 지역사업 건의도 어느때보다 순순히 약속을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사업”임을 내세워 다음날 참모회의에서 즉각 사업시행을 지시한다. 사업우선 순위를 따지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참모는 일단 찍힌다. 같은 일이 두어번 반복되면 다음인사에서 예외없이 변방이나 한직으로 밀려난다. 금년 지자체의 예산은 이미 선심성으로 편성해놓은 것도 모자라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추경예산을 구상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자체의 현재 모습이다.대다수의 단체장들은 지난 95년에 이어 거푸 당선된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러니까 7~8년동안 지역의 수장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선출직으로서 인사권은 물론 예산권과 감사권을 거머쥐고 있는 막강 파워맨들이다. 아무리 정부가 직무태만이니 부당 행정행위, 인사권남용 등을 막으려해도 현실적으로 별도리가 없다. 대한민국 직책중에서 단체장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이다.이미 지자체에서는 선거대비용 인사가 조직적으로 단행되고 있다. 내사람은 요직에 포진시키고 떨떠름한 사람은 영락없이 변방이다. 공직의 인사관행이나 선례는 아예 무시된지 오래이고 자신의 표밭관리가 인사기준이 되어버렸다. 소신파들도 인사때마다 당하고보니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줄대기에 바쁘고 충성서약을 맺지않을 수 없다. 더구나 단체장 후보군에 오르내리는 사람과 연고있는 공직자들은 아무죄(?)도 없이 승진에서 탈락된다.지역발전과 직결된 사안도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하면 일단 유보되거나 결정을 회피하는 등 복지부동이다. 심하면 표만을 의식한 탓에 정부의 정책도 무조건 반대한다. 국책사업 추진의 장애물이지만 방법이 없다. '내 임기중에는 절대 안된다"는 님트(Nimt not in my term)현상마저 만연한다.반면 차기에 출마하지 않거나 사실상 공천에서 배제된 단체장들은 아예 현장행정을 외면한 채 느긋한 말년을 즐기며 기회만 닿으면 외국출장이다. 당연히 네임덕현상이 도래하고

  • 한국, 2001년 여름 지면기사

     6·25전쟁을 다룬 문학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윤흥길의 '장마' 도입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밭에서 완두를 거둬 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옹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뽀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적시고 있었다.' 장맛비를 '두려움의 결정체'라고 표현한 것은 물론 앞으로 전개될 인간들간의 기구한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고, 실제로 동족상잔의 비극은 지루한 장마처럼 작품의 이곳저곳에서 힘겨운 갈등을 빚어낸다. 2001년 한국의 여름은 매년 그렇듯이 한바탕 장마로부터 시작된다. 100년만의 가뭄으로 온 나라가 황토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로 신음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젠 마치 게릴라처럼 밤에 나타나 집중호우를 뿌려대는 통에 '밤이 무서운' 지경이 돼버렸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2001년 한국의 여름은 묘하게 둘러싼 두려움의 결정체들로 인해 국민들의 머리는 물론 가슴까지 흠뻑 젖은 물걸레처럼 천근 만근 무겁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사회 내공이 출중한 줄타기고수가 줄위에 올라갔을 때 그를 늘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실수'라는 복병이다. 그들은 줄위를 마치 땅위 걷듯 하면서도 '실수'라는 강박관념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완벽한 재주를 선보여 관객들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지만 '내일은 실수 하지 않을까?'하는 번뇌 때문에 환호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뿐이다. 간혹 꿈결에서 발을 헛디뎌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그래서 관객의 야유와 조롱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다는 줄타기고수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는 고도의 집중력이다. 2001년 한국의 여름은 국민들에게 그런 집중력을 요구한다. 2001년 한국의 여름은 모든 것이 확연하게 두세력으로 나누어져 대립한다. '진보대 보수' '개혁 대 반개혁' '적 아니면 동지' 등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물론 이에 뒤질세라 자연현상마저도 지독한 가뭄과 지독한 장마가 대립하는 기괴한 현상마

  • 금일봉(金一封)유감 지면기사

     지난 6월초 유례없는 가뭄으로 온 국민이 하늘을 쳐다보며 비오기를 학수고대할때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 가뭄극복 성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우리사회에는 고통받는 이웃을 돕기위한 모금 캠페인이 자주 있는 편이다. 연말이면 으레 불우이웃돕기 모금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수재민돕기나 이번처럼 양수기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고 최근에는 북한동포 돕기운동도 있었다. 이처럼 국민들이 힘을 합쳐 고난을 극복하고 재난에 절망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은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라 할수 있다. 일부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나 장기적인 대비에는 소홀하고 시급한 문제가 생길때마다 일회성 모금운동이나 단기적 캠페인으로 위기를 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없는건 아니다. 또한 모처럼 모은 성금을 제때 쓰지 못하는 일이 생겨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어쨌든 전국적인 모금캠페인이 벌어지면 언론기관 특히 신문지면은 연일 성금접수 현황 보도로 요란하다. 신문마다 성금모금을 많이 하기위해 성금 기탁자 유치에 경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거액을 낸 사람이나 성금을 기탁한 사회저명인사, 거물 정치인들의 사진이 실리고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성금 액수를 쓴 명단이 심한 경우 신문 1개면 내지 2개면에 걸쳐 실린다. 마치 기탁자와 성금액수의 많고 적음이 신문사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성금유치에 열을 올리는 신문사가 많다. 그런데 이같은 성금 모금현황을 소개하는 신문을 보면 성금액수를 알수 없는 '금일봉'표시가 적지 않다. 금일봉을 기탁한 사람은 3부요인과 정치인들이 많은데 특히 국회의원과 정당간부들이 대부분이다. 국회의원들이 금일봉을 많이 내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중진급 국회의원이 되면 신문사마다 성금기탁을 해달라고 부탁 내지 강권을 받게 되고 언론기관에 약한 국회의원들은 여러 신문사에 성금을 낼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일정한 액수의 돈을 10여개 신문사로 나누어 내다보면 성금액수를 공개하기 창피할 정도로 기탁금액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금일봉'표시를 신문사에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금일봉

  • 자치의 대의 혹은 흙탕물 지면기사

     정치의 계절이 되면 이런 결심을 간혹 만난다.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느니 성을 갈겠다.” 더 심하게 정치를 욕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대의 맹세'로는 약하다고 보는지, '월권'도 서슴지 않는다. “내 자식도 절대 정치 안시킨다.” 한국정치와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항상 노심초사하시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평소 의식이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시민 가운데 이런 의견이 꽤 많다. (범의 굴에 꼭 가야 하나) 물론 이들 '보통'시민은 정치권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권은 각계의 성공한 인사들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을 쏟는다. 상당수 인물이 '범 잡으러 범의 굴로 들어간다'는 자못 '비장한' 출사표를 던지고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그들 가운데 굴에 들어가 범의 꼬리나마 끊었다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참신했던 인물이 이전투구 판에서 흙탕물 뒤집어 쓴 꼴은 적잖이 보았다. 딱한 노릇이다. 지난달 하순 환경운동연합이 내년 지방선거에 전국에서 400명 가량의 후보를 출마 시키겠다고 밝혔을 때, 복잡한 상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것은 아마 이 때문 이었을 것이다. 다른 시민단체에서도 지방선거 후보를 내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소식은 머릿속을 더 엉키게 만들었다. 그들의 의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들의 결정은 내년 지방선거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상대로 이 문제는 시민운동권 내부, 학계, 그리고 정치권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순수하게 원론적으로만 말하자면, 피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선거에 나설 자격이 있다. 또한 '정치가 모든 분야를 궁극적으로 결정한다'고 볼 때, 앞서의 냉소적 정치혐오증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의 인사가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더구나 투표 외엔 시민의 정치참여길이 막힌 탓에, 그동안 선출된 인물들이 기득권구조를 좌지우지 하도록 내버려 두었기에, 오늘날 정치와 자치가 요모양 요꼴이라고 분개하는 시민이라면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정치판에 뛰어든다고 해서 말릴 수 없다. 게다가

  • 골프와 공직기강 지면기사

     '업자들과의 골프나 저녁회식은 더치페이(각자부담)로도 안된다', '이해관계자들의 축·조의금을 받아서도 안된다'. 일본정부 인사원이 공무원용으로 제작한 '국가공무원 윤리교본'의 한 구절이다. 공무원들의 윤리무장을 위해 발간한 이 소책자는 일반판매 보름만에 초판 2만부가 매진되는 이변을 기록중이다. 이 윤리교본은 공무원이 이해관계자와 접촉할때 '해선 안될 것'과 '해도 되는 것'을 삽화와 함께 설명한 해설판이다. 일본정부가 공무원윤리법 제정을 계기로 80여만명의 전공무원에게 배포한 이 책자의 내용이 알려지자 기업체들이 사원교육용으로 구입하면서 매진사태를 빚고 있는 것이다. 윤리교본의 핵심 줄거리는 골프와 여행, 유흥이나 저녁 회식은 설사 더치페이라도 어울리는 것 자체를 절대 금기시 하는 원칙 아래 온갖 경우를 시시콜콜 적시해 놓았다. 그래서 일본공직사회는 윤리법이 시행된(4월) 이후 '적발 1호'가 되지 않으려고 극도로 몸을 사리고 긴장하고 있다. 우리네 사정은 어떤가. 가뭄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사정당국이 골프장 출입공직자에 대한 특별감찰 활동을 벌여 뒷말이 그치지 않고 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수뇌부가 북한상선의 영해 침범 상황에서 골프를 친 사실도 드러나 말썽이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청와대의 경고선에서 적당히 눌러 앉아있을 요량인것 같다. 글쎄, 국민정서는 차치해놓고 수하의 장병들을 어떻게 지휘할지 궁금하다. 물론 기자도 골프를 친다. 사정당국이 대대적인 감찰활동을 벌인 지난 6일 공교롭게도 기자가 찾은 골프장에는 무슨 연유인지 귀하신 분들의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평소 수행비서관을 앞세우거나 경호원까지 대동했던, 그렇게도 요란을 떨던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웬일인지 보이지 않은 평온(?)한 하루였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연유를 알게 됐다. 미리 정보를 입수한 각 부처에서 내부 단속을 단단히 했으니 골프장에 얼굴을 내밀 용감(?)한 공무원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 쓰러지지마, 일어날거야 지면기사

     세상이 어수선하다고들 한다. 꽃피는 춘삼월을 지독한 황사 때문에 날려버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랜 가뭄으로 정신마저 혼미했던게 어제였는데 이제는 마구 쏟아져 내리는 비도 그렇고, 북한 상선 영해 침공과 언론사 세무 조사, 어수선한 정국 등 도대체가 나라 전체가 무언가에 홀려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것 같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것인지 모두들 제 정신이 아니라는 자학과 비탄의 소리도 들린다. 외로운 58년 개띠세대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이면서 반면에 가장 불행하게 살았다는 '58년 개띠' 전후 세대들 사이에서 세상걱정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수런거림을 종합해 보면 그저 답답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하루 세끼 먹는거야 문제가 될게 없지만 애들 교육도 그렇고, 그래서… 어중간한 나이에 가정과 직장에 목이 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들이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 자로의 표범'이라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푸념들이다. 빛나는 불꽃처럼 살고 싶었는데 그것이 '흘러간 꿈'이 돼버려 차라리 '슬픔' 마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낙이라면 지금 이국땅에서 불꽃같은 삶을 사는 박찬호 야구 보는 것이 유일한 재미라고 하는 '58년 개띠' 전후 세대들이 의외로 많다. 그에게서 '외로운 표범'의 모습을 본다. 작년만 해도 그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심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예의바른 착한 동양 청년에 불과했다. 좌타자를 만나면 도망 다니다가 포볼을 남발하는 그런 투수였다. 지난해 무려 18승을 올렸으면서도 '특급투수'가 아닌 그저 '잘 던지는 투수' 로 폄하된것도 그때문이다. 누구나 부러워 하는 강속구는 물론, 예리한 슬라이더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좌타자를 만났을 때 과감하게 그공을 던지지 못한 것은 나약한 심성때문 이었다. 자신이 던진 공을 타자가 맞으면 어떻하냐는 그 소심함 때문에 상대팀 감독들은 아홉명의 타자 중 일곱명을 좌타자로 배치해 그를 혼란에 빠뜨리곤

  • 그래도 희망이 있는 나라 지면기사

     이달 초 몇몇 신문에 보도된 외로운 할머니의 사망기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강원도 동해시에 살던 김선봉할머니(75)는 피붙이 하나없이 생활보호대상자로 외롭게 살아왔다. 할머니는 별세하기 전 동해시를 방문해 500만원이 든 적금통장을 내놓고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 이 돈은 할머니가 풀빵장사와 채소행상으로 어렵게 모은 것이다. 할머니는 평소 “국가의 지원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으니 나도 이웃을 돕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가적 혜택과 사회적 지원을 받아 성공한 인사들도 이처럼 '신세갚음'을 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 우리사회는 나눔에 인색하고 기부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고들 한다. 실제로 기부문화가 정착된 구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이런 소리를 들을만하다. 그러나 우리의 기부문화도 발전할 가능성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올들어 신문에 보도된 거액기부자들의 미담기사를 보면 대부분 이름없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많다. 70대 할머니가 25억원 상당의 땅을 남편과 아들이 나온 대학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지자 자손들이 이를 그대로 따랐다. 30년간 미장원을 운영하며 모은 10억원의 전재산을 불우이웃을 돕는데 써달라고 적십자사에 기증하고 별세한 할머니도 있다. 연말이면 서울 명동입구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100만원짜리 돈뭉치를 넣는 '얼굴없는 천사'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난 85년부터 해마다 거르지 않고 큰돈을 넣고가는 주인공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KBS1TV가 주말에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 우리사회의 훈훈한 인정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프로를 가끔 시청할 때마다 화면에 ARS 전화통화에 따라 성금의 총액 숫자가 쉴새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곤 했다. ARS 전화 한통화로 1천원의 성금이 자동납부되는데 이렇게 모이는 기부금이 1회 방송당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보통 1억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청자들 중에 매회 수만명 이상이 성금 기부전

  • 史劇 전성시대의 함정 지면기사

     사극 전성시대의 함정 날은 바짝 가물었는데 브라운관 속 역사 드라마는 홍수가 졌다. 바야흐로 사극 전성시대다. 금요일만 빼고 매일밤 TV를 켜면 사극이다. 주말엔 KBS1 '태조 왕건', 월·화는 SBS '여인천하'와 MBC '홍국영'이 아예 맞불이고, 수·목요일엔 KBS2 '명성황후'가 시청자를 기다린다. 인기도 그만이다. '홍국영'은 좀 처지지만 '태조 왕건', '여인천하'는 상한가다. 웬만한 신세대 트렌디 드라마는 발 벗고 뛰어도 쫓아오지 못할 정도다. '명성황후'도 타이틀역에 이미연이 등장하면서 시청률이 급상승 하기 시작했다 한다. (시청자의 구미에 맞는다면) 사극 열풍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태조 왕건'이 끝나면 '제국의 아침'이, '홍국영' 후속으로는 '상도'가 기다리고 있다. 사극도 '장사'가 된다는 얘기다. 다시말해 사극의 시청자층이 옛날 얘기 좋아하는 일부에서 남녀노소 사방으로 넓어졌다는 의미다. 이미 '용의 눈물', '허준'이 훌륭하게 입증해준 바 있다. 'TV의 신(神) 시청률'이라면 끔벅죽는 방송사들이 이 점을 놓칠 리 없다. 그들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한 얼마든지 역사 드라마를 공급할 용의가 있다. 사극은 대중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제법 깊이있는 역사인식이나 역사의식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막강한 전파의 힘을 빌려 전해지는 역사의 이미지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어떤 역사교육보다도 효과가 크다. 간혹 극중 내용이 사실(史實)과 다르다는 시비가 벌어지는 것도 사실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특히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지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사극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 드라마'일 뿐이다. 역사에 충실하면 드라마가 딱딱하게 굳는다. 시청자들이 외면한다. 따라서 사실을 어느 정도 변형·가공·창작 하더라도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송작가와 연출자들의 일리있는 항변이다 게다가 이제는 감시의 눈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역사기록과 조금만 다를라 치면 숱한 전문가들이 가차없이 꼬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