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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에의 푸념 지면기사
일단 끝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대담해지는 법이다.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소심하다는 이유로 여자에게 절교선언을 당한 남자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헤어지는 그 장소에서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는 꿈같은 이야기는 모두 그런데서 연유된다. 일단 끝이라고 생각하고 떠나는 사람이 무슨 행동이나 말을 못할까.만신창이가 되었던 제일은행의 최고 경영진으로 취임했던 윌프레드 호리에 은행장이 의미심장한 몇 마디를 남긴 채 얼마 전 한국을 떠났다. 잔여임기가 1년6개월이나 되고 무려 421만주의 스톡옵션까지 포기했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니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떠나는 자리에서 “한국에서 일하다보니 이 나라 장래가 걱정스러웠다. 국회의원, 공무원, 언론 등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던졌다.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책임자로서 참고인 자격으로 국정감사장에 불려갔던 그는 국회의원들이 약속이나 한듯 했던 질문을 또 하고 막상 답변을 하면 의원들이 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사업상 바쁜 CEO를 오전 9시부터 저녁7시까지 붙잡아 놓고 농담하듯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을 하는, 그런 국회의원이 있는 이 나라가 걱정스럽다는 말도 했다.그는 또 한심한 공직자들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기업과 관련한 법과 규제들이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무 모호한 부분이 많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라 그런 것들이 모두 규제가 되어 한국 투자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포 확장을 위해 신규 투자를 할 때마다 공무원들의 까다로운 규제로 애를 먹었으며, 막말로 정부 부처가 없어도 잘 돌아갈 일이 그들이 있음으로해서 안되는 일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해서도 아프게 꼬집었다.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호적인 인사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게 기사를 쓰다가도 비우호적이면 감정이 곁들인 가차없는 비판이 따른다는 뜻이다.그의 마지막 기자회견장에 동석했던 다른 외국기업 CEO들도 호리에의 발언에 공감했던지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는 후문이다. 아마 그들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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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면 뭐하나 지면기사
올해도 입시한파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언제부터인가 대입 수능시험일이면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자 '입시한파' 또는 '수능한파'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지난주 수능시험일인 7일도 대부분 지역의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예년 기온보다 몇도씩 낮은 추위가 닥쳤다. 신통하게도 '입시한파'가 재현된 것이다.입시한파말고 대학입시철이면 또하나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입시생을 둔 어머니들의 기도와 불공드리는 모습. 전국의 사찰과 이름난 산의 마애불 앞에는 아들 딸이 시험 잘 보기를 비는 어머니들의 지극 정성을 볼 수 있다. 철야기도는 보통이고 백일기도까지 드리는 어머니들도 적지않다.이러한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대입 시험의 치열한 경쟁과 절박함을 엿볼 수 있다. 수험생 못지않은 학부모들의 정성을 보고 어느 외국인은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부모들은 거의 미치기 직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입시철에 한국의 어머니들이 학교교문에 서서 자식이 시험을 잘 치기를 비는 모습은 미국에서라면 극단적인 일로 간주될 것이다.”이렇게 수능시험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다보니 얼마전 친구인 T교수와 저녁을 하며 나누었던 화제들이 떠오른다. T교수는 우리나라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최고의 명문 국립대에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수재들의 엉뚱한 언동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T교수는 몇달에 한번씩 연구실 대청소를 한다. 지난 가을에도 대청소를 하던 날, 몇몇 학생들이 이를 보고 청소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총채를 든 한 학생이 서가의 먼지를 턴다며 하는 짓이 이상했다. 총채로 터는 것이 아니라 빗질하듯 책위를 총채로 미는 것이었다.어이가 없어진 T교수는 학생에 물었다. “이제까지 총채질하는 것을 못보았나.” 못보았다는 대답이다. 설사 보지못했다 해도 총채를 들면 자연히 털게 마련인데…. T교수는 총채질 시범을 하면서 혀를 찼다.T교수가 또하나 못마땅해 하는 것은 학생들이 인사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연구실에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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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서울? 의정부? 지면기사
지난 봄 서울 예술의 전당이 소송을 하나 제기했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은 이미 자신들이 상표등록을 한 고유명칭이므로 유사기관에서 같은 명칭을 쓸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2년전 청주시가 시립공연장에 '청주 예술의 전당'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서울측의 항의로 '청주문화예술회관'이라고 간판을 바꾼 전례도 있었다. 그러나 의정부시는 '예술의 전당'은 상표가 아니라 '업종개념'이라고 맞섰다.소송은 잠깐 동안 전국 문화예술계의 화제가 됐다. 누구 말이 맞는가. 한국의 대표적 공연·전시공간 '(서초동) 예술의 전당'의 '독점권'을 인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누구의 전유물도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되는 '문화예술'의 다양한 '전당'들을 장려해야 하는가. '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그렇게 '표절시비로 인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의정부시의 작명논리가 절묘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지난 5년간 520억원을 들여 지어졌다. 지방도시로서는 적지않은 문화예술 '투자'다. 하지만 전국 자치단체들이 '문화의 시대가 왔다'며 서둘러 세운 '그저 그렇고 그런' 행정적 성격의 문예공간의 하나라고 치부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았다. '우리도 문화도시'라고 자랑하고 싶어 겉만 번듯한 건축물을 지어놓았을 뿐, '소프트웨어'를 들여다 보면 '글쎄'라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시설이 어디 하나둘인가. 그러나 의정부시는 이름만 잘 짓는 게 아니었다.의정부시는 초대 관장을 발탁하는 과정에서도 앞서 나갔다. 처음부터 공채를 통해 외부전문가 구자흥(具滋興)씨를 영입한 것이다. 이런 '외곽기관'의 장 영입은 으레 지방의 정치적 역학과 행정적 배려에 의해 '임명'되는 관례는 보기좋게 뒤집어졌다. 구씨는 한국베세토(BESETO)위원회 사무총장이자, 1999년 밀레니엄축제 'DMZ2000-호랑이는 살아있다'와 2000년 아셈경축 한중일 3국합동공연 '춘향전'을 기획한 문화전문가다.구관장의 영입 또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4월6일부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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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나라네요" 지면기사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요. 아파트를 짓기위해 공장을 부수다니요. 참으로 이상한 나라네요.”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영국의 한 공무원이 화성시 동탄면 일대를 둘러보면서 한 말이다. 그는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저 플래카드에 적힌 말들이 무슨뜻인지. 주민들이 왜 정부를 마구 욕하는지. 정부는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인지.” 그는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한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기자는 (마음속으로) 그래, 맞다. 네말이 옳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다고 공장을 내쫓고 아파트를 짓는단 말이냐. 이미 수원 안양 부천 등지에서 헐리고 뜯겨나간 수십곳의 공장터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둔갑돼 폭발직전의 과밀현상을 재촉하고 있는데 말이다. 해외로 떠나는 우리기업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 3월이후 7개월째 월 평균 마이너스 13.4%의 속도로 줄고 있다. 상반기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도 마이너스 9.4%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은행과 KDI도 올 경제성장률을 2~2.5%선으로 하향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대폭적인 조세환급이나 설비투자에 대한 감가상각확대 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기업들은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되어 생존을 위한 위기경영에 돌입했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국내외의 경영환경 악화로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심각하건만 정부는 아무런 전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업마다 '경제의 상대성 원리'에 따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있다. 중국이나 말레이시아는 물론 멕시코 인도 유럽 남미 등 전세계로 '살아남기 위한 대탈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글로벌 경제시대의 필연적 현상이라고 치부만 할 것인지. 정부가 내세우던 '외자유치'의 약발도 떨어졌으니 속수무책인가. 중국이나 영국 등 선·후진국 가림없이 외국기업유치에 혈안이다. 아니, 숱한 전략과 전술을 동원하여 자기나라로 끌어들이고 있다. 저렴한 땅값은 기본이요, 세제혜택과 완벽한 기반시설을 갖추고 우리기업들에게 애절한 구애의 손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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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면기사
요즘 새로운 특징 하나. 눈부시게 푸른 가을하늘 아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라곤 전혀 볼 수가 없다. 가을의 풍요로움과는 달리 표정은 몹시 화가 난 사람들 같다. 신호등에서 정차한 버스. 버스안 승객들 역시 무표정이다. 열명이면 열명 모두 정지된 화면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다. 멍하니 거리를 쳐다보거나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고뇌하는 표정. 더러는 허둥대기도 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조폭과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안. 폭소가 여기 저기서 터진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마치 약속이나 한듯 극장문을 빠져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있다. 불과 1분전만해도 포복절도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어두운 공간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그들은 일상의 무표정으로 돌아온다.누가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을까. 비단 얼굴뿐만이 아니다. 열어보지 않아도 그들의 가슴이 말못할 여러가지 이유로 시퍼렇게 멍들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치판은 짜증나게 만들고, 경제는 어렵고, 주식에서 깡통차고, 경마장에서 돈 날리고, 아이들의 성적표를 보면서 울화가 치밀고, 신문을 보고 뉴스를 들어도 기쁨이라곤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그래서 짜증이 나고 화만 치미는 그들의 모습, 그것이 바로 답답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모두가 예스할 때 노 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노할 때 예스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그리 많지 않다. 오죽했으면 광고 카피로 이 구절을 써 먹었을까마는 이 광고를 접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순진한 국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대한민국을 이끌어 간다는 특권층이 최소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예스와 노를 분명히 했어도 국민들이 이토록 우거지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잘못된 길을 가는 줄 알면서도, 나라의 기강이 흔들릴 정도로 그릇된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에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정치, 경제, 심지어 공무원의 세계에서도 이런 소신이 뚜렷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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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잡는 리스트 지면기사
리스트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적은 명부를 말한다. 리스트라면 연쇄반응식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쉰들러 리스트'.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92년말 개봉되자 전세계에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2차대전중 나치독일의 유태인 학살 과정에서 쉰들러가 구해낸 유태인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말한다. 2차대전중 독일 점령하의 폴란드에서 독일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가 어린이까지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을 보고 유태인들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쉰들러는 독일군에게 뇌물을 주고 유태인들을 자신의 군수공장에 위장취업시켜 1천300여명을 구해낸다. 이들에게 쉰들러의 군수공장 취업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는 것은 곧 생명을 보장 받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우리나라에도 수입, 상영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영화였다. 이 영화가 소개된 이후 우리나라에는 리스트라는 말이 빈번히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됐다. 쉰들러 리스트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6·25동란을 겪은 우리에게 각별한 감동을 주는 '존슨 리스트'도 있다(리더스 다이제스트 97년 3월호 소개). 1950년 7월 한국전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된 미군병사 웨인 조니 존슨이 수용소에서 목숨을 걸고 죽은 전무들의 이름을 적은 명단이다. '존슨 리스트'에는 수용소에서 죽어간 496명의 죽은 장병들의 이름과 부대명, 사망일자까지 기록돼 있다. 존슨은 북한 경비병들이 버린 담뱃갑이나 학교건물 벽에서 뜯어낸 벽지에 몽당 연필로 3년여에 걸쳐 이름들을 기록했다. 갖은 우여곡절과 위기를 넘기고 존슨은 이 명단을 숨겨 갖고 포로교환을 통해 귀국했다. '존슨 리스트' 덕분에 실종자로 처리돼온 많은 장병들의 정확한 사망장소와 날짜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군당국이나 유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많은 도움과 고마움을 준 리스트였다. 이처럼 외국에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리스트가 많다. 그런데 우리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리스트는 부정과 비리에 연관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질때마다 리스트가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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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닮은 사회, 사회 닮은 조폭 지면기사
경찰은 '때가 되면' 한번씩 조폭소탕작전을 벌인다.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조폭은 199개파 4천153명이다. 고작? 그러나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뒷골목 조무래기 주먹은 빼고, 이름이 알려진 큰 주먹만 그렇다는 것이다. 산술평균으로만 따지자면 아무리 작은 도시에도 2, 3개의 유명 폭력조직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적은 숫자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조폭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8년 경찰 통계상으로는 조폭이 99개파 2천여명 수준이었다. 단 3년새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왜 이렇게 급증했을까. 통계의 실수가 아니라면, 조폭은 그만큼 수지맞는 '장사'라는 의미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찰이 단단위까지 어깨 숫자를 세고 있는 터에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동안 사회가 매우 어지러웠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조폭이 존재하는 이유) 하여튼 조폭은 어느샌가 우리 곁의 존재가 돼 버렸다. '핸드폰으로 삼행시를 지어보겠습니다요, 형님.…폰단폰단 돌을 던지자' 따위 우스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TV 드라마에서 단골 캐릭터로 설정되기도 한다.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 등 빅 히트를 기록한 몇 편의 영화는 조폭을 우리의 친근한 '이웃' 쯤으로 부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조폭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조폭이 버젓이 '장래희망'이 되는 판이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이 과연 일각의 주장대로 대중매체들의 '조폭예찬' 때문일까. 분명 그것이 진실의 전부는 아닐 터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대중매체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조폭적 심리', '조폭화 경향'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상업적으로 팔아먹고 있다고 보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이용호게이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머니 게임'에 능한 사기꾼이 자신을 비호해 줄 정·관계 실력자들과의 연결고리로 동향출신 조폭을 이용했다. 여운환씨가 로비자금 20억원을 중간에서 꿀꺽했든 안했든 조폭이 '다리'로 나선 사실만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사이비 기업인-조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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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남아 문제라고? 지면기사
유난히 놀기를 좋아하던 기자는 유년을 시골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은 아예 툇마루에 집어던지고 마을앞 개울이나 앞산으로 달려간다. 동무들과 놀다 어둠이 깔릴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와 밥상머리에 앉는다. 허기진 배를 정신없이 채우다보면 영락없이 밥알을 떨구기 일쑤다. 워낙 배고프던 터라 그냥 밥을 먹고 있으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녀석! 상에 흘린 밥알을 버릴 참이야.” 화들짝 놀란 아이는 제대로 씻지도 않은 손으로 얼른 밥알을 주워 먹는다. 행여 아버지의 추상같은 명(?)을 어기면 즉시 밥그릇을 빼앗기고 벌까지 선다. '이까짓 밥한톨이 뭐라고… 아버지는 너무하다'고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자랐다.그러던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그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야단맞고 자랐음을 커서야 알게 된다. 가장이 된 기자도 아들에게 똑같은 주문을 하고 살았다. 기자의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사건기자 시절이니 으레 새벽이슬을 맞으며 귀가한 내게 아내가 “○○일보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이가 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기자를 닮아서인지 공부도 시원찮고 별 특기도 없는 녀석이 무슨 상을? 의아해하며 다음날 전화를 하던 나 자신, 너무도 기막힌 소식을 듣는다. 전국 초등학생글짓기 대회에서 녀석이 대상을 받게 됐는데, 제목이 '쌀 한톨' 이라고…(중략)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정부는 내년부터 쌀 증산정책을 포기하고 추곡가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올 연말이면 적정재고량 600만섬을 훨씬 넘는 1천만섬이나 남아돌 전망이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우루과이라운드 합의에 따른 쌀 의무수입 물량은 계속 늘게되어 있고, 2004년에는 WTO(세계무역기구)쌀 재협상에서 개방 폭은 더 확대될게 분명하다.오늘의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정부가 갑자기 충격요법을 동원한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몇개월전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간척사업을 '식량 자급능력부족과 농지감소'를 내세워 강행키로 하지 않았던가. 그러더니 돌연 생산과잉으로 증산정책을 포기한다니, 자가당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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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후... 지면기사
그날 이후… 자유분방과 낙천적기질 그 자체가 상징이었던 뉴요커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맨해턴의 그 아름다운 불빛도 이제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자유의 여신상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겠지만, '자유'라는 이름은 미국의 끓어오르는 분노앞에서 무색해져 버렸다. 참사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이후… 이슬람교는 마치 악의 상징으로 떠 올랐다. 주체할수 없을 정도의 끓어오르는 분노로 가득찬 미국은 뉴욕참사의 배후에 이슬람 원리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면서 그가 은신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 누구도 그가 배후가 아니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속에서…. 전쟁이후 발생할 후유증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는 세계 각국의 시각이 자국의 이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등 자칫 지구촌이 친미세력과 반미세력으로 양분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간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양상을 띠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의외로 크다. 참사이후 절정에 달했던 테러에 대한 보복에 대해 미국내에서도 그 지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도 보복이후 발생할지 모를 상상하지 못할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분노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미국의 자제만을 촉구하는 것도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전쟁 이후에 벌어질 갈등의 골이다. 미국이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라덴이 은신하는 지역을 단기간에 분풀이 하듯 폭탄을 쏟아붓는거야 그 누구도 말릴수 없겠지만, 자칫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이슬람국가의 반발, 그로인한 보복의 악순환은 어쩌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할 심각한 모습으로 변질될지도 모른다. 미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이라크와 팔레스타인내의 급진세력은 벌써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를 이슬람국가와 서방국가간의 갈등으로 몰고가는 서방언론의 태도는 극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이슬람국가라고 모두 미국을 적대시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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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官의 예측능력 지면기사
앞일을 예측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음은 지난 95년 6월초 국내신문들이 보도한 외신내용이다.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4년 크리스마스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전 재무장관 ▲다국적기업 회장 ▲옥스포드 대학생 ▲런던의 청소부 각4명씩 16명에게 앞으로 10년후 경제를 예측하라는 퀴즈를 냈다. 이코노미스트는 10년이 지난 최근 이들이 써낸 경제예측의 정확도를 분석해 보도했다. 퀴즈내용은 △앞으로 10년동안 OECD 국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10년뒤의 유가 △10년뒤의 파운드·달러 환율 등등 몇가지 였다. OECD 국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85~94년 연평균 2.6%였다)에 대해 기업회장 집단이 모두 2~3%로 대답, 가장 정확했다. 10년동안 연평균 물가상승률 예측은 모두 5%(실제 4.4%)를 넘을 것이라 응답, 빗나갔다. 퀴즈를 낼 당시 배럴당 29달러였던 유가가 10년뒤 배럴당 17달러로 떨어질 것을 비교적 근접하게 예측한 집단은 청소부였다. 84년말 1파운드는 1.20달러였으나 94년말에는 1.60달러였다. 환율 예측도 청소부들이 가장 가깝게 맞췄다. 종합채점결과 청소부와 다국적기업 회장 집단이 1위, 전직 재무장관 집단이 최하위였다. 청소부가 전직 재무장관등 전문가보다 한수 위라는 경제퀴즈결과는 예측의 어려움과 엉뚱함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갈브레이드교수는 이렇게 썼다. “사실 예측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신뢰할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측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결코 그 예측을 공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측의 신뢰성 여부야 어떻든 전문가의 예측이나 투자자문사의 추천을 믿고 주식투자를 해 큰손해를 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무책임한 예측과 추천으로 발생하는 투자손실은 개인적인 문제로 끝날수 있는 일이지만 나랏일을 하는데 예측과 예견이 허술하거나 엉터리인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최근 잇따라 터진 국정혼란 현상 중에는 담당부처 장관들이 예측능력 부족으로 불거진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