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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우의 ‘아웃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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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손흥민이라는 문화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손흥민이라는 문화 지면기사

    지난 8일 영국 스포츠 채널 TNT Sports는 SNS에 8초짜리 손흥민 영상을 올렸다. 순식간에 조회수 1천300만회를 넘으며 화제를 모았다. 8초에 담긴 영상은 그저 장내 인터뷰가 끝나고 진행자 3명과 악수 뒤 돌아가는 손흥민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각국의 축구팬들이 찬사를 보낸 것은 손흥민이 탁자에 마이크를 놓을 때 두 손으로 정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진행을 보던 레전드 선수 리오 퍼디난드는 "정말 멋진 남자"라며 감탄하고는 매혹적인 예의를 자기도 똑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퍼디난드는 김민재와 같은 중앙 수비수 출신으로 탄탄한 피지컬에 강렬한 카리스마가 인상적인, 전통의 이상적 남성상에 부합하는 캐릭터다. 다른 진행자 린지 힙그레이브 역시 손흥민은 축구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중 한 명이며 경기장 안팎에서 품격 있는 행동으로 빛나는 롤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인터뷰 전체를 보면 동서양의 격식과 문화를 훌륭히 조화시키는 손흥민을 볼 수 있다. 손흥민이 마이크를 공손하게 다룬 것은 한국적인 예의와 그만의 세심함이 결부된 행동이다. 동시에 그는 스탠딩 인터뷰에서 다른 진행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대화하고 악수도 한 손으로 한다. 진행자 두 명은 축구계 대선배들이고 다른 한 명은 13살이 많은 40대의 여성 아나운서이므로 한국이었다면 여러 모로 큰 무례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손흥민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코스모폴리탄으로서 각기 다른 문화의 조화에 능숙하기에 호감도가 매우 높은 스타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뷰후 마이크 조심스레 놓아8초짜리 영상 세계 팬들 찬사다정·세심함 몸에 배어 있어 피치 위의 여성 아나운서가 40대라는 게 한국으로선 문화충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못지 않게 특기할 점이 있다. 기존의 남성성과 다르게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한 현대적 남성상의 모범으로 손흥민을 꼽는 축구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은 세계가치관조사의 성평등 의식조사에서 한국과는 정반대로 매우 높은 성평등 의식을 보여준다. 소수의 남성인권 옹호자들이 사회의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모두가 더 위험해지는 시대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모두가 더 위험해지는 시대 지면기사

    폭탄이 어디에 떨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될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정말 재밌는 곳이다. 지난 7월 충청 오송에서는 폭우에 대비한 안전 시스템을 챙기지 않은 권력자들 덕분에 막고도 남을 대량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가을 서울 중심가에서는 인파 안전사고를 허투루 여긴 권력자들 덕분에 기록적인 참사가 벌어졌다.이런 사고가 국지적으로 투하된 대량살상 무기에 의한 것이라면 날마다 수류탄이 터지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6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또 최근에는 젊은 남성에 의한 길거리 살인·강간 사건이 잇따르며 일상 깊숙이 폭탄의 파편이 튀고 있고, 안정된 일자리로 여겨지던 초중고 교사들의 자살 및 갑질 피해 사건들은 갈수록 안전지대가 사라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당장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은 아니지만 잼버리 사태나 일본의 오염수 방류도 우리 사회 전반에 폭격이 가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적 오명으로 남을 잼버리 사태는 그럭저럭 선진적이라 믿었던 행정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었고,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정부 여당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행으로 점철돼있다. 다양한 형태의 폭탄과 총알들이 끊임없이 쏟아질 것이지만 국가나 사회, 공동체를 통해서는 딱히 기대할 게 없는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한층 더 다짐하는 중이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조사를 보면 최근 온라인에서는 '무정부 상태'와 '각자도생'의 언급량이 폭증했다. 애당초 각자도생에 치우친 삶을 살고 있지만 그걸로도 부족한 위기라고 느끼는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위기와 대처방식 양갈래 안정되고 안전한 삶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원하는 것은 모두 같으니 관건은 방법인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최악의 길과 최선에 가까운 차선의 길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우선 최악은 각자도생끼리 힘을 합쳐 '각자도생 연대'를 결성하는 것이다. 각자도생끼리 뭉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역설로 숱한 문제를 야기한다. 영화 속에선 대지진으로 모든 게 초토화된 상황에서 그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평등 없는 성평등'의 비극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평등 없는 성평등'의 비극 지면기사

    경제성장을 쉽게 풀이하면 준수한 일자리가 늘어나 더 많은 소득으로 더 풍족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국가들은 편차는 있으나 최대한 많은 여성이 출산이란 장애물을 넘어 준수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만듦으로써 현재의 풍요를 이룩했다. 이는 곧 여성 또한 가정의 주수입원이 된 덕분에 남성이 부양 책임을 떠안지 않으면서도 가족을 형성하고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산에 따른 차별이나 불이익을 최소화시킨 성평등한 노동시장과 그에 기반한 경제성장은 여성에게도 이로웠지만 특히 평범한 수입의 남성들에게 가장 큰 이득을 선사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평등이 없는' 성평등은 이런 이점을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 먼저 '평등이 있는' 성평등이란 무엇일까? 노동시장의 측면에서 저임금의 수준이 높고 고임금의 수준은 낮아 전체 노동자의 격차가 작은 가운데, 전반적인 노동시간이 짧고 성별 취업 여부도 비슷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성평등은 육아 및 가사노동의 성평등과 짝을 이룬다. 이와는 반대로 '평등이 없는 성평등'은 한국이 잘 보여준다. 전체 노동자의 격차 및 가정의 성불평등이 큰 상황에서 소득이나 지위가 높은 남성의 영역에 여성이 파편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화제가 된 현대차 '킹산직' 공채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6명의 여성이 채용된 것이라든지,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여성의 비중이 소폭 높아진다든지, 정당의 공천 할당제나 기업의 임원 할당제를 통해 여성 고위직 비중이 소폭 높아진다든지 하는 일들이다. 지금 한국은 '승자의 저주' 겪어학사 이상 고등교육 이수자고용 기회 OECD중 가장 적어 한국에서 유리천장이나 젠더의 벽이 깨지는 것은 그 자체로 환영할 일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등 없는 성평등'의 조각들이다. 한국 사회가 전력투구해야 할 일은 '신의 직장'이나 '킹산직'처럼 국제적으로도 특수한 고임금 일자리에 여성의 지분을 늘리는 게 아니라 아예 이런 일자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저출산 해결을 위해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이들에게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저출산 해결을 위해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이들에게 지면기사

    한 건설회사에서 6개월의 수습을 마친 목수 A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곧 어린 자녀가 심각한 병에 걸리는 바람에 임시 부모휴가를 사용해야 했다. 6개월 뒤 휴가 연장에 대해 회사에 연락한 A씨는 며칠 후 해고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차별 시정을 담당하는 정부기관 차별 옴부즈맨(Diskriminering Ombudsmannen, 이하 DO)에 진정을 넣었다. 이는 실제로 최근 스웨덴에서 있었던 사례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DO는 회사 측에 2천400만원(20만크로나)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사용자가 불복할 시 DO는 진정인을 대리하여 1심으로 종결되는 노동법원에 소를 제기하는데 이 건의 경우 회사에서 보상금을 지급하며 마무리됐다. 스웨덴에선 이보다 훨씬 희한한 일도 벌어진다. 한 컨설팅 회사는 새 고객을 맡아 줄 컨설턴트를 찾던 중 구직자 B씨에게 연락했다. B씨는 자신이 임신 중이며 차후 6~8개월가량 출산휴가를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 회사는 당연히(!) 채용을 거절했는데 B씨가 좀 모난 돌이었는지 차별 옴부즈맨을 찾았다. DO는 '상식'에 맞게 임신부 B씨가 별나다고 판정한 게 아니라, 회사가 성차별을 했으니 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임신 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객에게 소개도 하지 않고 배제하는 것은 남성이나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받지 않았을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 건은 현재 진행 중인데 다른 사례를 보면 결국 회사에서 승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사 사례를 살펴보자. 尹, 법으로 보장 출산·육아휴가쓰기 어려운 현실 지적하며 비상한 각오 밝혔지만 '의문' 한 금융회사에 구직을 문의한 C씨는 채용 담당자에게 임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예정된 면접을 취소한다고 C씨에게 통지했다. DO는 성차별에 따른 배상금으로 1천200만원을 주문했고 회사에서 이를 따르며 사건은 종결됐다. 한 비영리 단체는 D씨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가 D씨의 임신을 알게 된 뒤 이를 철회했다. DO는 노동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고, 법원의 판결에 앞서 단체는 성차별을 인정하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대학을 안 나와도 만족스러운 일을 할 수 있다면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대학을 안 나와도 만족스러운 일을 할 수 있다면 지면기사

    지난 1일은 133주년을 맞은 노동자의 날이었다. 노동절은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파업이 그 유래이다. 당시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궐기했고 이들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열창했다.'Eight hours for work. Eight hours for rest. Eight hours for what we will'.(8시간은 노동을, 8시간은 휴식을, 8시간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137년 전 열악한 현실을 바꾸려는 노동자의 노래가 오늘날 한국 노동자들의 바람과 다르지 않음에 묘한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가 괜찮은 소득을 얻기 위한 문턱이 너무 높다. 대학을 꼭 나와야 하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야 하며, 어지간해선 아이를 갖지 말아야 하고, 아파서도 안 되며, 장시간 노동에도 기꺼이 응해야 한다. 그 결과 한국의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에 한참 못 미치는 삶을 산다. 노동의 질을 반영하는 직무 만족도를 국제 비교하면 한국은 성장 단계가 낮은 동유럽 국가들과 닮아있다. 우선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만족도 불만도 아닌 상태가 가장 많다. 5점 척도의 조사에서 이도 저도 아닌 보통을 답하는 이들이 46.6%에 달한다. '매우 불만족'과 '불만족'을 더한 불만족은 13.8%이다.덴마크·네덜란드·스웨덴 등학력 따른 직무만족도 상식 깨고등교육과 무관한 일자리 의미 한국처럼 중간 답변이 많은 것은 경제성장이 더딘 비 OECD 동유럽 국가의 특성이다. 0~10까지의 11점 척도에서 가운데 점수에 해당하는 5점이 많이 나온다. 이들 나라가 미진한 성장으로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면, 한국은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기에 중간치 응답이 많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학력에 따른 직무 만족도를 보면 우리의 상식을 깨는 양상이 나타난다. 일단 한국과 유럽 전체에서 교육 수준이 올라갈 때 일에 대한 만족감도 상승한다. 한국의 경우 '매우 만족'과 '만족'을 더한 만족에서 초졸 이하, 중졸, 고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윤석열 정부의 미래는 무엇인가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윤석열 정부의 미래는 무엇인가 지면기사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 지난달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인용한 처칠의 말이다.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 '노동의 미래 포럼'. 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혁을 명분으로 발족시킨 조직들의 이름이다. 확실히 윤석열 정권은 '미래'를 언급하기 좋아한다. 다만 현 정권이 이루고픈 미래가 정말 미래인지는 의문이다. 주 60시간에서 69시간까지 초장시간 노동을 확산시키겠다는 노동시간 개편은 그야말로 현재와 과거를 경쟁시켜 미래를 망치는 것이니 말이다.한국이 뒤쫓고 있는 선행국가들은 시간을 재구성함으로써 미래를 만들기 위해 힘써왔다. 이를테면 직장의 유급노동시간과 가정의 무급노동시간을 선진적으로 바꾼 것이다. 유급노동시간을 주 40시간 미만으로 줄이고 가정에서의 시간을 늘리는 변화와 더불어, 부부간 유급·무급 노동시간의 편차를 줄이는 것이 미래에 먼저 도착한 나라들의 현재이다.OECD의 시간 사용 통계를 보면 출퇴근 시간을 더한 유급노동시간에서 한국의 성별 격차는 하루 평균 2시간24분에 이른다. 이보다 큰 차이는 멕시코, 튀르키에, 일본만이 기록한다. 한편 무급노동시간에서 한국의 성별 격차는 2시간46분으로, 조사 대상 30개국 중 6번째로 크다. 이에 반해 출퇴근+유급노동시간의 성별 차이가 적은 10개국의 평균은 59분이고, 무급노동시간의 차이가 적은 10개국의 평균은 1시간16분이다. 5개국으로 좁히면 각각 46분과 64분이다. 한국과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우리 사회가 당장 이런 미래를 이룰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빨리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모든 사회 여가 불평등 해소부터짧은 노동시간 전제 고도화 해야돌아가서는 안될 과거로 회귀가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원하는 미래가 현실이 되면 남성 쪽에 유급노동시간이 한층 몰리게 되고, 일과 가정 사이 시간의 불균형이 퇴행적으로 재구성된다. 또 제조업이나 IT 업종에서 연장근무가 증가하면 식당 등 자영업이나 돌봄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노동시간도 같이 증가하게 되므로 더 많은 가사노동을 책임지고 있는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다음 소희'를 막을 첫 단추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다음 소희'를 막을 첫 단추 지면기사

    좋은 사회는 책임을 잘 분배하는 사회이다. 주어진 역할과 보상에 어울리는 책임을 각 구성원이, 권력자와 국가가 그리고 기업이 나눠 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나쁜 사회다. 책임의 분배가 형편없다. 영화 '다음 소희'는 이를 훌륭한 연출로 담아낸다.한겨울 저수지에서 얼어붙은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이자 대기업 하청 콜센터의 현장실습생인 '소희'다. 단순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형사 유진에게 한 현장실습생이 용기를 내어 말한다. "자살했던 사람이 또 있었어요." 영화에서뿐 아니라 실제로 이 콜센터에서 두 명이 자살했다. 석연찮음을 느낀 유진은 진상 파악에 나선다. 학교, 하청 콜센터, 본사, 교육청을 차례차례 조사한 유진은 비명을 토해낸다."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데가 없어." 한국 사회의 공고한 작동원리가 이 단말마에 담겨 있다. 한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책임의 분배가 엉망진창이고 이는 직업훈련에서도 마찬가지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어지간해선 책임을 지지 않도록 제도가 보장해준다. 대신 현실과 영화에서 익히 보듯 약자나 피해자에게 탓을 돌린다. 책임 분배 잘 되는 것이 좋은 사회한국 '제도의 허점'을 통해 회피약자 탓 돌리는 모습 영화서 담아 기업, 학교, 교육부, 노동부에겐 사업체 현장실습이 잘 이뤄지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영화가 잘 그려냈듯, 책임의 분배가 아닌 책임의 회피가 제도의 허점을 통해 이뤄진다. 교육부는 노동부나 경찰에, 노동부는 교육부나 경찰에, 학교는 교육부나 기업에, 기업은 학교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를 막기 위해 제도적으로 책임을 정하는 것이 대통령이나 장관, 입법부의 몫이지만 이들 역시 응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인권위 보고서를 정리하면 학교전담 노무사는 매뉴얼에 따라 형식적인 점검에 그치기 십상이다. 또 사무직은 안전점검에서 예외이므로 콜센터는 아무리 건강을 해치더라도 안전한 일터로 간주된다. 현장실습 실태 통계조차 부실하게 작성하는 교육부에겐 사업장에 대한 전면적인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K-노동'의 가장 아픈 곳은 어디인가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K-노동'의 가장 아픈 곳은 어디인가 지면기사

    사람의 몸에 한국을 비유한다면 쌩쌩 잘나갔던 시절을 지나 온갖 고질병을 안고 사는 중년의 신체와도 같다. 분명 눈부신 성취들이 축적되었고 세계적으로 보면 아주 잘사는 중년이지만, 동시에 누적된 고질병들은 한국 사회를 위축시키고 끝없는 무기력을 자아낸다. 해결이 기대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노동'이다.'K-노동'의 아픈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일단 취업자가 적다는 점이다. 이는 연령과 성별을 구별해야 정확히 볼 수 있다. 한국 남성의 고용률은 20~29세까지 OECD 최하위권에 머물다가 30~34세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35~64세에는 상위권에 자리한다. 여성의 경우 중하위권에 있던 20~24세의 고용률이 계속 하강하여 25~59세 동안 줄곧 하위권을 맴돌고 특히 35~44세 구간에는 최하위권에 그친다. 여성 고용률은 60~64세에 이르러야 중상위권에 오르는데 65세 이상은 남성과 더불어 OECD 1등이다. 낮은 청년 고용률과 빈약한 노후 복지의 여파인 OECD 최고의 노인 고용률도 심각한 문제지만, 수치로 보면 여성을 활용치 못하는 고질병이 무엇보다 위중하다.35~44세 女 고용률 'OECD 최하위'많은 개선불구 저임금 여전히 많아'K-노동'의 또 다른 취약점도 여성노동의 문제이다. 정말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저임금이 여전히 너무 많다. 고졸 이상 여성 가운데 100만원 미만의 초저임금 일자리 종사자가 87만명에 달하고 100만~200만원의 저임금 일자리 종사자는 185만명에 이른다. 한국의 여성 저임금 비율(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이 OECD 하위권인 이유다.이들 저임금 여성에 더해, 앞서 보았듯 노동시장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물러난 여성들이 매우 많다. 한국의 20~64세 여성은 OECD 여성 고용률 상위 10개국의 평균에 비해 270만명이나 노동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200만원 이하의 저임금 여성 270만명을 더하면 무려 550만명에 달하는데 이는 생애소득이 현저히 적은 여성이 무척이나 많다는 뜻이다. 성장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청년, 미국을 구하다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청년, 미국을 구하다 지면기사

    지난 8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는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완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데다 인플레이션의 고통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상원을 민주당이 가져갔고 하원은 공화당의 신승이다. 1934년 이래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상원 의석을 늘리거나 유지한 것은 총 7차례에 불과하고, 하원 의석을 늘리거나 한 자릿수 내로 잃으며 패한 경우도 총 6차례에 그친다. 민주당은 이 어려운 일을 대패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선거에서 해낸 것이다.지난 6월 미 연방대법원은 낙태를 불법화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세기 동안 확립돼 온 낙태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법관 3명을 강경 보수파로 임명한 것이 화근으로 작용했다. 이번 중간선거의 출구조사는 청년층과 여성이 낙태 불법화에 대한 반발로 공화당 심판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유권자의 32%가 최우선 사안으로 인플레이션(1위)을 꼽았지만 낙태권 이슈(2위)를 최우선으로 본 유권자도 27%나 됐다. 특히 18~29세는 44%가 낙태를 꼽아 트럼프의 유산을 향해 앞장서서 돌을 던졌다. 공화당을 찍었다는 응답이 35%에 그친 반면 민주당에는 63%를 몰아줬다. 여성 유권자는 8%포인트 더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45~64세에서 공화당이 10%포인트나 앞섰음을 고려하면 18~29세와 여성의 반 공화당 표가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美 연방대법원 '낙태불법화' 판결18~29세 44% '최우선 이슈' 꼽아노동시장 성평등 경제성장에 도움 미국의 20대는 물가 급등처럼 심각한 먹고사는 사안보다 여성의 주체적인 임신중지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기성세대와 사뭇 다른 가치관과 인권의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선택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경제문제에 대처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 청년세대의 의도까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의 낙태권 투표는 명백히 경제성장을 겨냥한 것이었다.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및 고위직 진출과 경제성장 및 경영성과의 상관관계는 생각보다 크게 긍정적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

  •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보유세와 통계 장난

    [장제우의 '아웃사이드'] 보유세와 통계 장난 지면기사

    39명의 집값을 더하니 공시가 기준으로 무려 900억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재산 공개 결과다. 시가 기준으로는 1천억원을 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모두 종부세 대상자로 올해 1인당 평균 512만원, 도합 6천140만원을 내야 한다. 현 정권은 지난 7월에 시행령을 통해 종부세를 1차로 줄인 바 있고, 이 덕분에 합산 집값이 1천억원도 넘는 39명 관료들의 올해 종부세는 평균 1천100만원에서 600만원가량 줄게 됐다.정권과 상황에 따라 세금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논의도 잘만 되면 사회에 이롭다. 하지만 한국의 세금 논박은 정파를 떠나 부실할 때가 적지 않다. 현 집권세력은 이전 정권의 부동산 보유세 인상의 근거가 잘못됐다고 비판해 왔다. 특히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오류일 뿐이라며 공세를 펴왔다. 보유세 실효세율의 국제비교는 그저 보유세를 높이려는 통계 왜곡이라는 것이다. 전 정권의 논리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쪽은 오히려 윤석열 정부이다. 보유세 실효세율 구할때 분모인부동산의 총 가격은 국가별로추계방식 달라 비교 주의 필요 소득세 실효세율이 소득 대비 실제 세금의 비중이라면, 보유세 실효세율은 부동산 가치 대비 실제 세금의 비중이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추계할 수 있는 OECD 국가는 한국 포함 현재 15개국이 있다(OECD 회원국은 38개국이므로 'OECD 평균' 보유세 실효세율은 과장된 말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각국의 최신 자료를 토대로 보면 실효세율이 가장 낮은 네 나라 체코, 오스트리아, 멕시코, 에스토니아의 경우 보유세 총납부액을 알려주는 GDP 대비 보유세의 비중도 가장 적은 그룹에 속해 있다. 이들 국가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06~0.07%이고 GDP 대비 보유세는 0.2%를 기록한다. 참고로 윤석열 정부는 GDP 대비 보유세의 비중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공식 통계이므로 정책의 근거로 삼겠다고 밝힌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