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살든지 뒈지든지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살든지 뒈지든지 지면기사

    연극 '조치원해문이' 팬데믹·'햄릿'과 연결된 작품불합리·모순과 결별 새 세계 선언연극 매체도 제작·관객 수용 등또다른 전환 모색해야 할때연극 '조치원해문이'(이철희 작·연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두 사건과 만나는 작품이다. 하나는 작품 외적 상황인 현재의 팬데믹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구조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연결되어 있다.지난 4월은 이른바 랜선 공연이 기존 공연을 대체했다. 대표적으로 국립극단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 네 작품, 남산예술센터 온라인 스트리밍 상영을 통해 다섯 작품이 랜선을 따라 관객을 만났다. 해외의 유명 작품을 유료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랜선 공연은 기존 공연을 영상으로 기록했던 경우도 있었고, 기획 단계부터 영상 제작을 목표로 제작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 편차야 어떠하든 극장에서 직접 관극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연극 '조치원해문이'는 극장 공연(10일~12일, 17일~19일)과 랜선 공연(16일)을 함께 올린 작품이다. 거리두기 객석제 운영으로 60여 명이 관극한 12일의 극장 공연과 달리 16일의 랜선 공연 관객은 이만 명이 넘었다. 관객 수만 단순 비교하자면 랜선 공연이 압도적이다.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관객 수 정보와 채팅 창을 통한 감상의 공유는 랜선 저 너머의 관객을 상상하게 만들 정도였다.'조치원해문이'는 재난이나 역병을 다루는 작품이 아님에도 팬데믹 이전과 이후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과거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전환을 맞이한 이후에도 비록 그 영향력이 축소되기는 하였으나 연극 매체는 그 고유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마찬가지로 팬데믹 이후의 연극 매체는 공연 예술의 제작 방식에서부터 관객 수용 방식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전환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조치원해문이'는 '햄릿'을 소환하고 있는 작품이다. 단지 '조치원해문이'의 갈등 구조가 '햄릿'의 그것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환의 시대를 모색하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에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봄이 온 줄도 모르고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봄이 온 줄도 모르고 지면기사

    탐욕 눈먼채 중요한 가치 못보는 가족 이야기 다룬 '터널구간'지혜롭게 빠져 나오기 위해선마땅히 경계할 행동 중요하지만터널 연장 않도록 하는게 더 중요지난 2월 7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연극 '터널구간'(이상례 작·오유경 연출) 공연이 있었다. 이 작품은 삶의 은유를 길과 계절에서 가져오고 있다. 길은 출생과 죽음의 과정이며 계절은 그 과정에서 순환하는 리듬이다. 연극은 한 가족이 터널구간에 갇혀 "봄이 왔는데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있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물론 터널구간과 봄은 관객이 풀어야 하는 은유이다.여기 한 가족이 있다. 건물주인 아버지의 칠순 잔칫날이다. 비혼인 딸과 아들이 골칫거리인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여자를 준비한다. 잔치 음식이 식기 전에 결혼을 하라고 명령한다. 대체로 이야기가 잔치 장면에서 시작하면 장례 장면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 연극은 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사망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0층 건물이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었던 것이다.터널 비전(tunnel vision)이라는 말이 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인식하지 못해 생긴다고 한다. 연극 '터널구간'은 탐욕에 눈먼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삶을 오로지 돈으로 재단함으로써 정작 더욱 중요한 가치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터널 비전에 갇힌 사람은 어떻게 그 터널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테세우스의 이야기에서 그 열쇠를 찾아볼 수 있다.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기 힘겨운 이유는 그 괴물이 미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미궁에서 테세우스 이전에는 살아나온 사람이 없었다. 그 미궁에서 테세우스가 괴물을 물리치고 밖으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실타래 덕분이었다. 미궁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사람을 나누려는 게 아니래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사람을 나누려는 게 아니래요 지면기사

    '수정의 밤' 공간은 두만강 근처'있는 듯 없는 듯' 그랬던 경계가강력한 분리의 국경선으로 작동삶의 터전 떠나 이동 시작한 사람 등도착한 곳 시간·조건 사로잡힌 이들지난 12월27일부터 1월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연극 '수정의 밤'(김도영 작, 이준우 연출) 공연이 있었다. 이 작품의 시간은 1962년 북한과 중국이 국경조약을 체결한 직후이다. 공간은 두만강 근처에 있는 조선족 마을의 한 골동품 가게이다. 함오일이 운영하는 이 가게는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기 위한 위장용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랬던' 경계가 조약 체결 이후 강력한 분리의 국경선으로 작동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떠남은 있으나 도착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연극이 시작하면 골동품 가게에서 함오일이 아들 함구제를 기다린다. 아내와 며느리도 함께 기다린다. 함구제가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무사히 데려오기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지금처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시간이다. 얼마 전에는 여섯 명이 강을 건넜다.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강을 건너는 사람 수나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함구제는 최성락, 고은마 부부와 함께 돌아온다.함오일의 유일한 관심은 돈이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국경 조약 체결 이후에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뿐이다. "땅을 나누는 거지 사람을 나누려는 게 아니래요"라는 말에도 "땅을 나눠서 갈라놓는 것 자체가 사람을 나누는 거야"라고 답하지만 그 말이 간직한 박탈의 조건과 상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아니 둔감해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아버지의 고향이 함경도이지만 "나는 중국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의 선친이 지금 강을 건너는 사람들처럼 과거에 이곳에 도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생계를 이어가는 데 어떤 보탬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최성락과 고은마는 위장한 부부이다. 강을 건너 골동품 가게까지는 도착했으나 이곳은 종착지가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왜 그렇게 안 하세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왜 그렇게 안 하세요 지면기사

    후안 마요르가 연극 '맨 끝줄 소년'선생 헤르만과 학생 클라우디오보는 입장따라 다양한 의미 생산경우에 따라 시선이나 창작때론 가족·삶에 대해 깨닫게 해후안 마요르가의 연극 '맨 끝줄 소년'(10월 24일~12월 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작품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헤르만과 클라우디오가 이 수수께끼의 주요 인물이다. 두 인물이 관객에게 제출한 수수께끼는 답을 구하기 힘든 수수께끼가 아니라 답을 구했다고 생각할 때 새로운 수수께끼가 시작하는 그런 수수께끼에 가깝다.클라우디오는 맨 끝줄에 앉아 있는 학생이다. "아무도 거기는 못 보는데 거기서는 모두를 보지." 헤르만이 아내 후아나에게 클라우디오가 제출한 글쓰기 과제물을 읽어주며 한 말이다. 헤르만이 무심코 던진 이 말은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력하게 되돌아온다. 물론 그 자리는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세상 모두를 보는 그런 좌표는 없다. 아내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헤르만이 그의 아내를 다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헤르만은 작가로서는 실패한 문학 선생이다. 헤르만이 클라우디오에게 부여하는 글쓰기 과제는 점차 요구로 바뀌어 간다. 마치 클라우디오에게서 자신의 유년을 찾기라도 한 듯하다. 헤르만은 첨삭을 핑계 삼아 창작에 관해 설파한다. 문학 창작을 위한 교본에 나올 법한 지침이 넘쳐난다. 이를테면, "등장인물은 뭔가를 원해, 그런데 원하는 걸 이루자니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거야. 그 등장인물에게 라이벌, 적들이 나타나는 거지. 주인공과 대립하는 적대자들 말이야." "등장인물의 기분을 네가 묘사하려고 하지 마, 등장인물의 행동들을 가지고 우리, 독자들이 파악하게 해." "좋은 결말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가 뭔지 아니? 독자가 이렇게 말해야 해, 이건 예상하지 못했어, 하지만 다른 방식도 안 되겠다. 이게 좋은 결말이야. 필연적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거. 그럴 수밖에 없으면서 반전이 있는 거." 그리고 마침내 제목까지 제안한다. "제목은 독자와 계약을 맺는 거야. 전쟁과 평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이성을 되찾는 날 저들을 죽일 것이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이성을 되찾는 날 저들을 죽일 것이오 지면기사

    게오르크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배경은 1794년 프랑스 혁명과정"이성을 잃고 우리를 죽이지만이성을 되찾는 날 저들을 죽일것"카미유 데물랭 대사는 역설적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게오르크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이수인 각색·연출) 공연이 있었다. 이번 공연은 해설자 역할을 하는 배우가 샹송으로 연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거나 라이브 반주에 맞춘 구음과 군무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연극 '당통의 죽음'은 제목 그대로 당통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배경은 1794년 프랑스. 1794년은 1789년 국민의회 선포와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서부터 1795년 혁명재판소 폐지와 국민공회 해산까지의 시간에 속해 있다. 1792년 공화정 선포, 1793년 루이 16세 처형, 그리고 1794년 4월 당통과 같은 해 7월 로베스피에르의 처형이 그 사이에 있었다. 혁명의 시간은 세계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미 아닌 것과 아직 아닌 것 사이에서 그 경계선이 때로는 모호하고 겹치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혁명의 시간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가 확장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1794년 당통의 죽음도 그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혁명의 시간을 지나며 인류에게 제출된 권리선언은 네 개의 판본을 가지고 있다. 첫째 판본은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다. 국민의회가 채택한 이 선언은 자연법을 계승한 인간의 권리와 혁명 후의 시민권을 포함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거대한 전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선언은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모든 인간은…"으로 시작하는 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그저 형식적 수사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백인, 남성, 부르주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둘째 판본은 1791년의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이다. 올랭프 드 구즈는 1789년의 판본에서 배제된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를테면,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컵이네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컵이네요 지면기사

    청소년이 사물로 바뀌는 '엑소더스'변신하는 이유·진단 없는 '절멸'한때 익숙하고 자명한 사실들낯선 시선으로 돌아보게 해현실세계 드리운 그늘 성찰 유도지난 8월 3일부터 17일까지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엑소더스'(이시원 극작, 연출) 공연이 있었다. '엑소더스'는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변신'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사람이 사물로 바뀌는 '변신'의 주요 모티프를 그대로 살리면서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분량을 늘렸다. 이번 공연이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중장년층의 이야기에서 청소년의 이야기로 재창작한 것이다. 연극이 시작하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황이 제시된다. 청소년이 사물로 바뀐다는 설정이다.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로부터 상자에 담긴 머그컵을 전해 받은 어머니가 말한다. "컵이네요." 며칠이 지나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만 왜 바뀌는지는 알 수 없다. 언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중앙변신대책본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뀐 물건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전부이다.청소년들은 스마트폰, 운동화, 스티커, 자전거, 피아노, 의자 따위의 물건으로 바뀐다. 그런데 바뀐 물건이 파손되면 사람으로 돌아오더라도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돌멩이가 가장 안전해 보인다. 변신이 전국으로 확산된다. 국가재난상황으로 치닫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폭탄으로 바뀌는 사례가 발생한다. 터진다. 그리고 집단으로 변신한다. 청소년들이. 연극 '엑소더스'는 절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설명이 없다. 변신의 이유를 말하지 않고, 진단도 없다. 절멸을 말하지만 그 원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마치 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것처럼, 진정 문제 해결을 바라기는 하냐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것은 실태를 진단하고 원인을 파악할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는 선언이다. 절멸 앞에서 우리 사회에 보내는 최후의 신호가 아니라면 이 연극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당신들은 지구를 위협하는 진짜 문제들보다 나와 시위에 가세하는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 지면기사

    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에등장하는 스카르파와 볼로디아둘 사이 '인정욕망' 둘러싼 갈등연극은 끝났지만 관객들은 궁금왜 중심인물은 스카르파가 아닐까연극이 끝난 이후가 궁금한 작품이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입센의 '인형의 집'이 그러한 작품이다.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난 오이디푸스는 어찌 되었을까. 스스로 인형의 집을 나선 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종류의 궁금함은 작품의 완결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작품의 텍스트를 풍성하게 하는 읽기에 가깝다.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6월 27일~7월 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연극이 끝난 이후가 궁금한 작품 목록에 추가할 만하다. '비평가'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 인물은 극작가인 스카르파, 다른 한 인물은 비평가인 볼로디아. 연극은 비평가인 볼로디아가 자신의 집을 급히 떠나고, 극작가인 스카르파가 신문사에 공연평을 전한 후 끝난다. 스카르파는 작품을 계속 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난 이 장면을 수없이 봤어요. 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볼로디아는 이후의 삶이 궁금하다.후안 마요르가가 2012년에 발표한 '비평가'는 2017년 국내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매년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비평가' 외에 '다윈의 거북이', '맨 끝줄 소년'이 이미 공연될 정도로 그의 희곡은 인기가 많다.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 중의 하나는 관객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방식에 있다. 그는 "관객의 상상은 무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머리 안에 존재한다"라고 말한다.이를테면, '다윈의 거북이'에서 해리엇은 교수에게 "전 다윈의 거북이예요"라고 소개한다.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펼쳐지는 이 장면은 관객에게 연극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초대장을 내미는 순간이다. 지금부터 극적 사건을 함께 하겠냐고 말을 거는 것이다. 이 말 걸기에 관객이 호응해야만 연극은 시작할 수 있다. 그 불가능한 이야기에 함께 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연극은 시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낡은 시대의 끝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낡은 시대의 끝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지면기사

    브레히트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은'이미 아닌… 아직 아닌 힘들' 갈등'체제의 법' 보존·신설놓고 파워게임극작가들이 자주 다루는 이유는현시대 메시지 전할 수 있기 때문지난 4월 5일부터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이 있었다. '갈릴레이의 생애'는 "낡은 시대의 끝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아닌 힘들과 아직 아닌 힘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연극이다.이미 아닌 힘들은 비록 낡은 시대의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그 체제의 법을 보존하려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게 된다. 반면 아직 아닌 힘들은 비록 시대의 합리성을 간직하고 있을지라도 미처 새로운 체제의 법을 제정하려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극작가들이 두 힘들 사이의 갈등을 자주 다루는 까닭은 이러한 갈등이 그 자체로 풍요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시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도 예외가 아니다.브레히트는 서사극을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관객이 연극을 통해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획득함으로써 사회가 변화하길 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서사극의 여러 장치를 활용했다. 제4의 벽(연극의 사실적 재현을 위한 가상의 벽으로, 관객은 이를 통해 무대를 마치 현실의 한 장면처럼 받아들게 된다)을 허물기 위해 무대장치와 노래를 활용하거나 배우와 등장인물을 분리하는 연기양식을 도입했다. 이제 무대는 무대일 뿐이며, 현실을 통찰하기 위한 교실이 된다.브레히트가 갈릴레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신발보다 나라를 더 많이 갈아 신었다고 할 정도로 일생 동안 망명 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갈릴레이의 생애'를 통해 1930년대의 독일과 유럽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다. 문명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야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했다. 이러한 그의 의지는 '갈릴레이의 생애' 덴마크판본(1938~39) 이후에도 미국판본(1945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기억해야만 했다, 이 이름들을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기억해야만 했다, 이 이름들을 지면기사

    제주 4·3사건 다룬 '잃어버린 마을'30년전 사건에 묶인 '동혁의 삶'오태석의 '자전거' 윤정목도 유사현기영 '순이삼촌'·이산하 '한라산'…역사의 과정 아직도 못다한 말 많아마을이 사라졌다. 한 마을이 불타 사라졌다. 1949년 1월 제주 곤을동 마을이 토벌대가 지른 불로 사라졌다. 돌담과 집터만 남기고 이 땅에서 사라졌다. 연극 '잃어버린 마을'(부제: 동혁이네 포차,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2월 22일~4월 7일)은 4·3사건 동안 사라진 마을 중 하나인 곤을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연극 '잃어버린 마을'은 두 축의 시간이 흐른다. 하나는 극 중 현재인 1979년의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극 중 과거인 4·3사건이 일어난 시간이다. 두 축의 시간대가 교차하며 연극은 진행된다. 2019년의 관객은 동혁이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4·3사건을 만나게 된다. 관객을 그 진실로 안내하는 출입문은 동혁과 아들 재구와의 갈등이다. 관객이 그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면 잃어버린 마을을 목도하게 된다.동혁의 삶은 30년 전 사건에 묶여 있다. 그는 마을에서 혼자 살아남았다. 후한 값을 치르겠다는 제안에도 땅을 팔지 않는 까닭은 그가 고향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나중에서야 밝혀지지만 그는 살고 싶어 서북청년단에 협력했다. 그가 불을 지른 것은 아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을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렇게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후 30년 동안 그의 시간은 멈춰있다. 주변에서 "30년 지켰으면 됐다"라거나 "네가 붙들고 있는 게 뭔지 안다"라는 말로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 없는 그 자리에서.연극 '잃어버린 마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피해자가 아닌 인물을 중심인물로 다룬다는 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부정적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목록에 올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동혁과 같은 인물이 연극사에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그 애는 작아도 너무 작아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그 애는 작아도 너무 작아 지면기사

    1987~1991년 서울의 백골단2017년 시리아 알레포의 구조대원두곳의 장소 설정한 연극 '더 헬멧'두 사건으로 관객 울림 못 준다면그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흥미로운 상황을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연극이 있다. 상황은 연극의 이야기를 여는 문이다. 언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인물이 그 문을 여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결정된다. 이 문은 연극의 이야기 안에 있다. 그 문을 여는 방식에 변화를 준 연극이 바로 '더 헬멧'(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1월 8일~2월 27일)이다.'더 헬멧'은 두 개의 장소와 네 개의 방을 설정하여 관객에게 선택하게 한다. 두 개의 장소는 각각 서울과 알레포이다. 서울과 알레포는 다시 빅 룸과 스몰 룸으로 나뉜다. 경우의 수는 넷(더블 캐스팅의 경우까지 더하면 배로 늘어난다.) 이다. 이런 식이다. 관객은 서울의 빅 룸 혹은 스몰 룸 중에서, 알레포의 빅 룸 혹은 스몰 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장소와 방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관극할 연극이 결정된다. 이제 연극 안으로 들어가 보자. 서울. 1987년~1991년 어느 서점의 지하실. 대학생과 백골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레포. 2017년 시리아 알레포의 어느 건물. 테러리스트와 화이트 헬멧 구조대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왜 서울과 알레포일까.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제목이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백골단의 헬멧과 구조대원의 헬멧이 쉽게 겹친다. 폭력으로 인해 사라진 일상의 삶이 가져온 잔혹함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왜 서울과 알레포일까를 여전히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현실에서 시리아가 너무 멀리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 거리의 문제가 핵심이다. 어떤 사건이든 그 사건이 누군가의 문제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사건이 일어난 지점과 그 사건을 전달받는 지점 사이의 거리가 좁혀져야 한다. 이 거리는 단지 물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수신자가 그 사건에 반응하여 자신의 문제로 느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으로 나아가기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거기가 고향같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거기가 고향같네 지면기사

    해방 55년 만에 귀환한 동포들극단적 선택 이유 관객에 물어일제가 남긴 상흔 여전히 진행중우리 모두 그들에게 빚지고 있어등장인물 세 명, 그들의 다른 이름지난 11월 9일부터 12월 9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공유에서 지공연협동조합의 '고향마을' 공연이 있었다. 지공연은 조합원 모두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하는 공연예술인 협동조합이다. 열악한 연극 제작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공연 제작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2017년에 창립한 지공연협동조합이 두 번째 정기공연으로 '고향마을'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연극 '고향마을'은 사할린에서 영주귀국한 세 명의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의 시간은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연극의 공간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아파트다. 그곳에서 세 명의 할머니가 국회의원을 납치하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극은 시작한다. 연극 '고향마을'은 그토록 갈망하던 고국으로 돌아와 이제 막 정착한 할머니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말하고 있다. 연극은 사할린 동포는 누구인지 관객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끝난다.연극 '고향마을'의 제목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임대아파트 단지 이름인 고향마을에서 가져왔다. 2000년 고향마을에는 총 489세대 967명이 입주하게 된다. 입주민은 모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이다. 해방이 된 지 55년 만의 귀환이다. 사할린 동포는 안산 고향마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4천300여 명 정도가 영주귀국하였다. 하지만 영주귀국의 조건이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 이주 또는 사할린 출생자 등으로 제한되어 있어 이들 중에는 사할린에 있는 가족과 다시 이산의 아픔을 겪게 된 경우도 있다. 연극 '고향마을'은 그들 중에서 세 명의 할머니를 호명하여 일제가 남긴 상흔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연극 '고향마을'의 인물인 할머니들의 귀국은 미완의 귀향이다. 세 명의 할머니는 안산에 살면서도 정작 고향 땅을 찾지는 않고 있다. 고국에 돌아왔으나 고향 땅은 낯설기만 하다. 평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질문이 곧 답인데…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질문이 곧 답인데… 지면기사

    연극 '오이디푸스…' 관객 능동적 위치 전환배우가 의문 던지면 함께 공론장 참여 형식사회성숙도 힘 아닌 대화로 갈등 조정 직조지연·중지담론 경계 질문 그치면 진실 닫혀지난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놀땅의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2016년 초연) 공연이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 이후 여러 이미지로 변주되어 온 인물이다. 스스로를 희생하여 역병에서 도시를 구하는 인물, 눈이 멀어 볼 수 없으나 통찰력을 지닌 인물, 왕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 그리고 은폐된 진실을 조사하는 인물 등 시대와 작가에 따라 다양하다. 극단 놀땅의 오이디푸스는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질문하는 자로 조사하는 인물에 가깝다. 올해로 세 번째인 이번 공연은 우리 사회가 왜 오이디푸스를 다시 호명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연극이 시작하면 무대는 광장으로 바뀌고, 관객은 시민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아니다. 도시의 광장에 시민이 모이자 비로소 연극이 시작한다. 광장으로 바뀐 무대에서 관객은 처음에는 관찰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지만 연극이 진행되면서 참여자의 위치로 점차 옮겨가게 되며 종국에는 배심원의 자리에 앉게 된다. 무대의 배경은 세월호 이후 역병이 창궐한 도시이다. 눈이 먼 거지로 등장하는 오이디푸스가 의문을 던지면 관객은 배우와 함께 공론장을 만들게 된다. 우리 사회가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전환하였는지 아니면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사회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지에 대해 관객이 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연극은 끝난다.샤츠슈나이더는 정치가 갖는 역동성의 기원이 갈등에 있다고 주장하며 갈등을 민주주의의 엔진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정치의 과정과 결과는 갈등을 구성하는 네 가지 차원(범위, 가시성, 강도, 방향)에 달려 있다. 그 중에서 갈등의 범위는 누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등에 관여하는가의 문제이다. 관찰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 행위자로 참여하게 되면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긴다. 기존 질서의 힘에 균열을 가해야 하는 약자는 다수가 개입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저기, 안에 있어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저기, 안에 있어요? 지면기사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방문 두드린것은 월세 독촉하거나 욕정의 대상을 찾을 때였다그때의 '저기'는 그를 사람이 아닌 사물로 대하는 그저 소리였을 뿐지난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극단 나베의 '예술이 죽었다' 공연이 있었다. '예술이 죽었다'는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이는 28세. 직업은 소설가. 등단한 적은 없으나 신춘문예 심사평에 언급되었고 소설을 쓰고 있으니 소설가라 해도 되지 않을까. 비록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잡지사가 요구하는 대로 써야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벌이가 신통치 않아 월세는 밀렸고, 냉장고는 비어 있다. 지병이 악화되어 상태가 심각하나 치료는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쓴다. 쓰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는 것처럼.연극은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아니 주검이 발견되지 않은 채 끝난다. 사회에서 밀려나고 밀려나 홀로 고립된 죽음 뒤에 그의 몫으로 남겨진 것은 밀린 고지서 다발이다. 학자금 대출에서부터 신용카드까지 각종 고지서 다발만이 그가 죽음에 이르는 동안 벌인 사투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밀린 고지서의 두께는 그가 고립된 채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의 두께이다. 그 두께가 두꺼워지는 동안 그의 고립은 깊어 갔다. 짐작했겠지만, 이 연극은 연극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마지막 문장을 남긴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이제는 망각하지 않았는지 연극은 묻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예술 활동 수입의 중앙값은 300만원이며 평균값은 1천255만원이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분야는 평균값이 높은 순으로 건축, 방송, 만화, 영화, 음악, 연극, 대중음악, 공예, 국악무용, 사진, 미술, 그리고 문학이다. 문학 분야의 중앙값은 10만원이며 평균값은 214만원이다. 연극분야의 중앙값은 500만원이며 평균값은 1천285만원이다.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우리는 같이 있고 가치 있다"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우리는 같이 있고 가치 있다" 지면기사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 갖는 절망의 무게가 얼마인지그 순간에 사로잡힌 청소년들그 시간 스스로만 버텨야 한다면 대체 사회란 무엇이란 말인가지난 6월 15일부터 7월 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죽고 싶지 않아' 공연이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아'는 2015년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류장현과 8명의 청소년이 '자유를 위한 몸의 낙서'를 주제로 함께 작업한 워크숍에서 출발하여 2016년 국립극단 청소년극으로 초연한 작품이다. 이번 2018년 공연은 청소년 17명이 예술교육 활동, 워크숍, 그리고 오픈 리허설을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팸플릿에 소개한 17명의 생생한 기록은 공연에서 본 배우의 에너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짐작하게 한다.연극 '죽고 싶지 않아'는 좌절의 시간을 건너는 법에 관한 청소년의 보고서이다. 청소년에게 우리 시대의 교실은 무엇일까. 어느 초등학교 교문 위에 "6학년 목숨 걸고 공부하는 기간"이란 문구의 현수막을 거는 사회에서 말이다.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의 기간도 모자라 초등학교에서부터 경쟁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교실은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전달하고 있을까. 승자독식의 경쟁을 부추기며 "견뎌라, 견뎌라, 대학에 가면 천국이 열리리라"라는 말이 유예하는 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고 있을까. 막상 대학에 가면 그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뀌는 사회에서 말이다. "견뎌라, 견뎌라, 취직을 하면 천국이 열리리라."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또 어떤 다른 문장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덮어두자.팸플릿에 소개한 어느 청소년이 전하는 말은 단지 오픈 리허설을 함께한 소감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 놓인 지점을 적확하게 짚고 있다. "바다에 있어야 할 물고기들이 땅에서 펄떡거리는 느낌", "심장이 멈춰서 죽는 게 아니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할 때의 죽음"이라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대상은 청소년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은 "너희에게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담론을 향해 있다. 그 담론이 유예하는 시간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이제 나도 당신의 자리에 있어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이제 나도 당신의 자리에 있어요 지면기사

    '처의 감각'을 보고 우리 사회가극장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라는물음에 다시 답해야 할 때다둔감함 아닌 민감성 촉수를 지닌주인공인 여자의 감각으로극장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 이 물음에 매력적인 답을 제출한 건축가가 있다.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 그는 당시까지 일반적이던 프로시니엄 극장이 아닌 원형 극장으로 음악당을 설계한다. 1963년의 일이다. 독일 시민의 세금으로 짓는다면 그 극장은 마땅히 시민의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 이 감각의 차이가 지금의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당을 만들었다. 카라얀이 지휘를 했던 바로 그곳이다.극장 건축에서 프로시니엄은 무대를 지탱하는 기둥을 뜻한다. 프로시니엄 무대는 프로시니엄을 기준으로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다. 무대를 이상적으로 관극할 수 있는 자리는 객석 중앙에 위치하게 된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이다. 원근법의 원리에 따라 설계된 프로시니엄 극장은 객석의 위치에 따라 무대를 보는 시선에 차이가 발생한다. 반면 원형 극장은 무대와 오케스트라를 중앙에 둔다. 중앙에 위치한 무대를 객석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구조여서 사각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스 샤로운은 음악당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시민 모두에게 골고루 전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한 극장이 개관한다. 남산 중턱에 위치한 드라마센터. 1962년의 일이다. 원형 극장을 응용한 돌출무대로 설계된 드라마센터는 정부로부터 불하받은 땅에 록펠러재단의 기금을 주로 해서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1년여 만에 재정난으로 운영이 중단된 후 학생들의 실습전용무대로 사용하게 된다. 2009년부터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매년 10억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이다.지난 4월 12일 '처의 감각'(고연옥 작·김정 연출)을 남산예술센터에서 관람했다. 굳이 신화적 상상력을 작동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 충분히 치환할 수 있는 무대였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여자는 "이제 나도 당신의 자리에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 자리는 "사랑할 수 없는 것

  •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지면기사

    냉장고·자동차 그리고 집"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내 것이었으면 좋겠네"라던 윌리는'자동차 할부 끝나니 폐차 직전'인삶의 사이클에서 못 벗어났다.올해 독일 하이델베르크 페스티벌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되었다. 오는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무대에 올리게 된 연극 3편에는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이 포함되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되는 작품이다. 성북동비둘기의 이번 공연에서 주인공 윌리 로먼은 런닝타임 내내 트레드밀 위에서 달린다고 한다. 트레드밀 위에서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윌리 로먼은 우리 사회의 보통사람과 닮아 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대공황 이후 20년이 지난 미국 사회의 이야기이고, 성북동비둘기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IMF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이야기이다.윌리가 트레드밀 위에서 달려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의 보통사람이 집을 사기 위해서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를 신한은행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가 잘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 거주자는 전국 평균 7.3년이 걸려야 집을 구입할 수 있다. 현재 거주 중인 전세 보증금에 생활비를 제외한 자금을 모두 모았을 때 이야기다. 서울에서는 20.7년이 걸리고 서울 강남에서는 26.5년이 걸린다. 웰세 거주자는 전국 평균 18.4년이 걸린다. 서울에서는 40.1년이 걸리고 서울 강남에서는 49.3년이 걸린다. 그런데 향후 집을 구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54.1%에 이른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아파트 공화국'에서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한국의 아파트 열풍에 대해 말한 지 10년이 지났으나 그 사이 정책과 제도, 그리고 주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달려야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을 뿐이다.'클라이맥스를 산다'라는 카피가 있었다. '아파트 공화국' 출간보다 조금 앞 선 시기의 한 아파트 광고였다.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