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정의 ‘문득,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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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다시 만난 세계 지면기사
혼란과 혼돈, 경제·사회적 위기에도 책임지거나 제대로 된 사과도 없어 탄핵 광장 가득 메운 보통의 사람들 시민 목소리로 새로운 세계 쓰여져 민주주의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것 이번 겨울 무릎에 바람이 든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한나절 앉아 있으면 온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지만 긴 시간 추위를 이길 재간이 없다. 그때쯤 되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왜 겨울마다 이러는거야’. 박근혜가 탄핵 되던 그 겨울의 기억이 다 잊히기 전에 또다시 이러다니. 심지어 이번에는 ‘계엄선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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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슬픈 기념일 지면기사
남과 북, 적대적 갈등관계 치달으며 어느 때보다 전쟁 가까워짐을 느껴 상황 악화시키고 있는 정부의 언행 언제 무력충돌로 이어질까 심히 걱정 세계인권선언 때와 무엇이 달라졌나 닭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닭을 멀리하게 된 건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나는 강화도에 살고 있었다. 북한과 인접한 동네에 사는 초등학생 어린이에게 6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반공 의식 고취를 위해 표어와 포스터를 만들고 전쟁 관련 각종 숙제와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반공영화였다. 이승복 어린이의 집을 쳐들어온 무장공비 이야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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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어떤 노동에 대하여 지면기사
일상적으로 봐왔던 노동들 사라지고 자동화 시스템·기계가 빈자리 대체코로나 이후 물류·배달 산업 급성장노동자 늘었지만 생명·안전 제자리권리보장 위한 변화 목소리 동참해야얼마 전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로봇이 서빙을 하는 낯선 풍경을 보았다. 주문은 키오스크가 대신하고 서빙은 로봇의 몫이었다. 손님이 오면 주문받고 또 음식을 나르던 익숙한 사람의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었다.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느끼는 한편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는 것에 쓸쓸함이 밀려왔다. 어느 사이엔가 일상적으로 보아왔던 노동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빈 곳은 자동화 시스템과 기계로 채워졌다. 키오스크, 큐알 코드로 주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고속도로의 톨게이트 수납창구는 하이패스로 대부분 대체 되었다. AI, 기술의 발달, 사람의 편리와 편의가 우선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노동, 직업의 마지막을 마주하고 있다. 작가가 사라지는 직업들을 경험하고 쓴 책 '어떤 동사의 멸종'에서는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이라 말했다. 이 중대한 의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노동자는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이미 다른 것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변화하는 시대는 어떤 직업, 노동의 사라짐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어떤 노동은 더 크게 확장되기도 한다. 코로나19를 지나오면서 급성장한 물류, 배달 산업이 그렇다. 감염병 확산을 멈추기 위해서 제시된 해법은 거리두기라는 서로의 단절이었다. 비대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가 필수적이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배달, 배송 노동이었다. 클릭 몇 번으로 집 앞에 도착하는 따끈한 음식, 신선식품부터 공산품 심지어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오는 직구 물품들까지. 배달과 배송이 열어준 신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산업은 점점 더 커지고 확장되는 추세다.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 하나면 끝낼 수 있는 편리함이 성장 동력이 되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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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한강과 사라진 책들의 세계 지면기사
경기도교육청, 다양한 분야유해도서 선정 문제 재조명 '책 폐기' 작가의 생각·고뇌 담긴사상·철학이 사라진 것청소년들 배움의 권리 침해 당해한강 열풍이다. 지난 10일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온 나라는 그녀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이 만들어 낸 세계와 소설에 담긴 정서적 힘에 전 세계가 공명했다는 의미일 것이다.수상 소식이 들려옴과 동시에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0위권은 한강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집필했던 작품 세계와 그를 통해 언급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각종 매체를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강의 작품을 유해 도서로 지목했던 사회적 문제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졌던 경기도 학교 도서관 성평등·성교육 도서 대규모 폐기 사건이 그것이다.지난해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성평등·성교육 관련 책 2천500여 권이 대량으로 폐기되었다. 시작은 '청소년 유해 도서를 분리해달라'는 보수단체의 민원이었다. 민원 접수 이후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공문을 여러 차례 일선 학교로 발송했다. 이후에는 성평등·성교육 도서 처리 현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으로 이어졌다.그러나 문제는 모호한 경기도교육청의 기준이었다. 관리되어야 하는 도서 목록은 명시하지 않은 채,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과 보수단체의 입장이 실린 기사를 참고용으로 첨부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 학교 현장은 보수단체가 임의 선정한 청소년 유해 도서 목록을 경기도교육청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청소년 유해 도서 목록은 성교육·성평등 도서 외에도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다. 교육청에서 지속적으로 내려오는 공문, 처리 현황에 대한 보고 압박에서 자유로운 학교가 있겠는가. 결국 2천500여권의 책이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책 폐기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경기도교육청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한 일이라 책임을 일선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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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당신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곳 지면기사
아리셀, 軍 납품 리튬전지 시료바꿔치기 들통 무리한 생산 사고 정부기관 침묵 책임지는곳 없어유가족 답답·피해자들 인권 멈춰많은 시민 그들의 기댈곳 돼주길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뚫고 거리에 선다. 잠시만 서 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어제는 경찰청으로, 오늘은 노동청으로, 내일은 국방부로. 아리셀 중대 재해 참사 해결을 위해 곳곳을 찾아간다. 관계 당국이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아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 소리치고, 때로는 제발 이 사건 해결할 수 있게 해달라 읍소한다. 23명이 생명을 잃었는데,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책임지는 곳도 없다.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진실을 규명해주세요, 이런 사고 또 일어나지 않게 재발방지대책 마련해주세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거리에서 외친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참사가 발생한 지 62일이 지나고 있다.얼마 전 발표된 경찰의 수사 결과는 참담했다. 아리셀은 군에 납품할 리튬전지의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품질을 조작하고 그것이 탄로나 전지를 다시 생산하게 되었다. 회사는 납품기한을 맞추기 위해 생산량을 과도하게 늘릴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를 급하게 공정에 투입하고 충분한 업무 관련 교육,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다.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나기 2일 전에도 폭발 사고가 발생했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생산라인은 계속 가동되었다. 품질조작, 노동자 존중 없는 무리한 운영은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1:29:300'. 하인리히 법칙은 1건의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 전 29건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일어남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화재 참사가 발생하기 전 현장에서 작은 화재는 흔한 일이었다. 연기가 피어올라도 일을 계속하는 현장 CCTV 영상을 보면 화재가 얼마나 일상적인 일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리셀은 안전대책 없이 무리하게 생산을 강행했다. 이 외에도 참사를 예견한 징후들은 더 많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징후를 알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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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그들의 기억이 비극이 되지 않도록 지면기사
아리셀 화재로 노동자 23명 희생안전교육 제대로 했다면 참사 막아유가족, '이주노동자 관리 중요성'정부·사회에 촉구 중요한 시작점더 이상 불행 없도록 변하길 바라생전 연이 닿아본 적 없는 사람들의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영정 사진을 보며 목놓아 우는, 또 그마저도 하지 못해 마른 울음으로 가슴만 치는 유가족들을 만난다. 영정 사진 속 사람들이 잡아줘야 할 손을 내가 잡고, 안아주고, 같이 운다. 그렇게 아리셀 화재참사 유가족 곁을 지키고 있다. 6월24일 리튬전지를 취급하는 아리셀이란 회사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희생자 중 상당수는 이주노동자였다. 낯선 땅에 이주해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였을까. 희생자 중에 가족, 친척 관계인 사람이 많았다. 부부가, 이종사촌이, 자매가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 부고를 들은 가족들이 중국에서, 라오스에서 입국했다. 낯선 도시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은 찬란했던 생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희생자들이 일했던 아리셀은 빈번하게 화재가 발생했던 위험한 일터였고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대책은 부재했다. 자신들 때문에 대규모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유가족에게 진정 어린 사과 한마디 없다. 23명이 사라졌는데도 사과하지 않는 회사, 문제가 많은 회사를 관리 감독하지 않는 정부. 외국에서 온 유가족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매년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수가 늘고 있다. 이주노동자 취업자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앞으로도 산업재해로 인한 피해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처럼 이주노동자 산업재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예방대책은 부재한 실정이다. 안전교육 강화는 주요한 예방대책 중 하나다. 특히 이주노동자는 언어가 다르기에 위험 상황 대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일터에서 취급하는 물질이나 작업 과정의 위험성,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 등에 대한 안전교육이 정주민보다 더 철저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부 사업장에서는 안전교육을 대충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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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책들이 사라졌다 지면기사
먼 옛날 진시황의 분서갱유홍콩 민주화 인사 책 대출 거부시대의 지성·철학 사상 파괴 같아경기도교육청 성평등·성교육책 폐기 사건 중요하게 보는 이유사무실 이사를 준비 중이다. 10년 동안 한 공간에 머물다 보니 묵은 짐이 많다. 그중 하나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이다. 노동, 인권 관련 책, 어린이책, 소설책, 활동했던 자료집. 어울리지 않지만 사찰음식 책도 있다. 어린이 관련 책은 다산에 오는 어린이가 많은데 읽을거리가 없다고 기증해준 책이고, 사찰음식 책은 비건 동아리 모임의 교과서였다. 쌍용자동차, 416참사, 용산참사 등 사람과 삶의 이야기가 담긴 백서도 한가득이다. 동일한 장소에 자리잡고 있지만 책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과 이곳 다산인권센터까지 흘러온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정리가 쉽지 않다. 책장 앞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분류하지 못한 채 서성인 적이 여러 번이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쓰고 엮은이들의 정성, 책을 만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유들이 내게 말을 건다. '나는 여기 있어야만 해'. 그래서 늘 책장 정리는 실패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책을 아주 쉽게 사라지게 하는 곳이 있었다. 한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는 경기도교육청이 바로 그곳이다.최근 1년간 경기도 내 학교도서관에서 2천500여 권의 성평등·성교육 관련 책이 대량으로 폐기되었다. 사건은 지난해 '청소년 유해 도서를 분리해달라'는 보수단체의 민원에서 시작된다. 민원 접수 이후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공문을 2차례 보냈고 올해 3월에는 '(폐기)처리된 도서 집계 목록을 제출하라'는 공문으로 책 폐기 여부를 확인했다. 지속적으로 공문을 받은 학교들은 결국 책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문제가 되자 경기도교육청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내려온 교육청의 공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청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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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학교에 더 많은 인권을 지면기사
모든 사람들 다양한 방식의 삶함께 살아가기위해 필요한 것은타인에 대한 존중·이해·평등관계인권, 사회·사람 연결 중요한 고리더 배우고 널리 퍼트리는게 필요요즘 희극과 비극을 자주 오간다. 중학생 아이와의 관계가 그 이유다. 최근에는 사소한 의견충돌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다. 옷 입는 것, 자는 것, 먹는 것. 일상 하나하나가 갈등의 시작이다. 조심스레 의견을 전하기도 하고, 서로 소리치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때로는 갈등이 잘 봉합되기도 하지만 불씨를 품은 채 종료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이야기했어야 좋았을까. 어떤 마음을 전달해야 할까'. 번뇌에 빠지곤 한다. 매번 생각은 깊어지고,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아이라는 세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내가 다 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닌지, 알려주고, 가르쳐 줘야 하는 존재로 바라본 건 아닌지. 그러다 동등한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을 깨닫고 후회한다.'동등한 주체로 바라보고 존중한다는 것'은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린이·청소년은 동등한 주체로서 등장하지 못한 채 보호받아야 하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대학에 가면'이라는 말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구분되었다. 머리 스타일도, 복장도, 나이에 걸맞게, 학생처럼 해야 한다는 시선 속에서 어린이 청소년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 인권의 주체로 존중받지 못해왔다. 미성숙하기에 가르쳐주고,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로서 위치 지어졌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면 '버르장머리 없다', '뭐가 될래?'라고 되묻는 사회에서 어린이·청소년 인권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미래의 시민이 아니라 지금의 시민으로 존중받고 함께 살아갈 힘을 키우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다.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학생의 인권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실현되고,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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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대파는 정치적이다 지면기사
익숙한 농산물 오르면 체감 더 커밥상 차리려니 한숨이 먼저 나와농촌문제 해결할 '진짜 정치' 어디'와글와글' 공론장서 목소리 모아8일 각 정당에 불만·답답함 전할것대파 논란이 일파만파다. 밥상 주연을 꿰차지 못한 채 반찬이나 국을 빛내주던 조연 대파가 그간의 설움을 딛고 정치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875원' 윤석열 대통령이 마트를 찾아서 합리적이라고 한 말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지금 '한 단이 얼마인데 경제 상황을 알고 있나'라는 야당의 공격에서 '한 단이 아닌 한뿌리 가격이다'라며 대파 격파를 선보인 여당의 수비. 지난 정권 때 가격이 더 높았다며 방어막을 치는 대통령실까지. 파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상황이 그야말로 파안대소할 노릇이다. 총선을 뒤흔드는 실세로 등장한 대파와 솟구치는 가격에 집으로 모시기 힘든 사과와 애호박 등 농작물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그 중 대표적인 것은 역시 대파다. 최근 몇 년간 높은 가격으로 인해 '파테크를 한다, 반려 대파를 키운다'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밥상에서 만나던 익숙한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물가의 체감온도도 달라진다. 먹고 살아가는 생존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파 논란에서 시민들이 느끼고 있는 분노는, 정부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이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있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대파뿐 아니라 다른 농작물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고 밥상을 차리려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해서 물가를 잡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파의 정치적 관계를 망각한 임시방편일 뿐이다.기후, 토양, 사람의 노동력 등 모든 것이 집약되어 대파가 우리 곁으로 온다. 기후위기 시대, 기온의 변화에 따라 대파의 재배지역이 변화한다. 그 범위가 줄어들고 강수 등 기후에 따라 작황도 달라진다. 잘 자란 대파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고령층 인구가 대부분이라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대파를 수확하는 사람은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농산물을 수확하는 일이 힘들다보니 일손은 부족하고 일당 경쟁도 심해진다. 계절노동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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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새벽 배송 뒤의 사람들 지면기사
쿠팡 열악한 노동조건 알린 이들문제 비판 직원 블랙리스트 올라기업은 '선의 인사평가'라 하지만채용불이익·노동자 통제 등 활용규제하지 않는 정부 무책임 한몫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 늦은 저녁이었다. '내일 아침은 뭐 먹지?' 냉장고를 여니 텅 비어있었다. 마트를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그때 생각 난 것이 새벽 배송이었다. 검색으로 마음에 드는 쇼핑몰을 찾아 손가락 몇 번 까딱이니 장바구니가 가득 채워졌다. 손에 든 것은 없지만,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배송된 물건들이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무겁게 들지 않아도 되는 손쉬움과 편리함에 기대어 종종 새벽 배송을 이용하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해를 거듭할수록 새벽 배송 이용자의 수도, 시장 규모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업체들은 낮은 가격으로 더 빠르게 배송하기 위한 경쟁으로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과로한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 등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이다.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만 봐도 그렇다.최근 PNG 리스트, 일명 쿠팡 블랙리스트라 불리는 문건이 공개됐다. 그 문건에는 1만6천450명의 이름과 개인정보, 그리고 채용배제의 사유가 명시되어 있었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확인하고자 쿠팡에 단기 취업했던 현직 국회의원도, 쿠팡 관련 비판 기사를 쓴 언론인들도 대거 포함되었다. 어떤 노동자는 부당한 노동조건을 문제 제기한 이유로, 또 다른 노동자는 본사에 부당함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유에 대해 알 수 없는 노동자도 있었다. 그렇게 1만6천450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쿠팡 블랙리스트가 되었다.쿠팡은 블랙리스트가 배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인정하지만 직원들 보호를 위해 선의로 인사평가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일부 기업들이 노동자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명목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그 선의를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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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그대들의 동료 시민은 누구인가요 지면기사
22대 총선 앞두고 서민 곁에서희망·미래 약속 감언이설 난무분열·갈등 조장 그들만의 정치차별·고통받는 사람 누구인지아우성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동료 시민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글을 쓰거나,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할 때 즐겨 사용했다. 살아온 과정과 경험이 다르지만, 어깨를 맞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할 때, 권리의 주체이며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지칭할 때, 험난한 사회를 함께 헤쳐 나가는 이들을 호명할 때 동료 시민처럼 딱 들어맞는 말은 없었다. 인권활동을 하며 참으로 익숙하게 사용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자니 씁쓸함이 몰려온다. 바로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 때문이다.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취임 연설에서 동료 시민을 10차례 언급했다. 한동훈의 정치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료 시민이라는 단어의 등장에 언론은 연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금세 뜨겁다 차게 식는 한국 사회에서 동료 시민으로 시작되는 기사가 몇 주째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여운이 참으로 길긴 한가 보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신선한 변화는 없었다. 구태의연한 갈라치기 정치의 반복과 여전히 그대로인 그들만의 리그를 확인했을 뿐이다. 얼마 전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만 봐도 그렇다.지난 9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159명의 생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사라진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 만들어진 결실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는 가족들은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을 규명하는 조사를 하고 책임을 묻고자 했다. 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는지 진실을 밝히는 것은 참사 해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그 과정에 앞장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 역시 시민들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정치인이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었다. 그러나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민의힘은 재난의 정쟁화 운운하며 외면해왔다. 결국 특별법은 여당의 퇴장으로 야당 단독으로 처리되었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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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흔들리지마 인권 지면기사
인권침해 당했을때 찾는 국가인권위몫이 없는 사람들 기댈 최후의 보루공식적인 자리에서 반인권적 발언등일부 위원들, 자격 부합하는지 의심제역할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살펴야인권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담한다. "이거 인권 침해 아니에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구하거나 "인권 침해를 당했어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억울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누군가 곁에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 침해를 경험했을 때 제일 필요한 것은 안전하게 말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바로 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인권위 일부 위원들로 인해 그 역할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해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위원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인권 침해 사건을 구제하고 사회의 인권을 향상 키기 위한 중요한 자리이기에 자격에 무게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충상(2022년 10월), 김용원(2023년 2월) 상임위원이 임명된 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면 과연 그 자격에 부합하는지 의심스럽다. 이충상 위원은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 반인권적인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기인한 막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모욕하고,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그대로 담긴 말들이다. 일명 노란 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 3조 개정에 대한 의견 표명을 논의하는 상임위 자리에서는 "이 법이 통과되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등 인권위의 독립성을 흔드는 발언도 계속되고 있다. 이충상 위원의 말로 인해 인권을 더욱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권리를 부정당하고,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마저 위기에 놓여있다. 김용원 위원은 직무유기로 공수처에 고발되기도 했다. 지난 8월 이후 3개월이 넘도록 소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위원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200여 건의 인권침해 사건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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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정말 바뀌어야 하는 건,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다 지면기사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 학교에서 안내문이 왔다. 신상정보와 가족관계 등을 적는 간단한 안내문이었다. 처음 받아보는 학교 문서에 내가 입학한 것처럼 긴장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름, 가족관계, 주소, 병력 등을 묻는 쉬운 질문이었지만 시험지 답안을 적는 것처럼 고심하며 써 내려갔다. 그러다 한 질문 앞에 멈춰서게 되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아이의 장래 직업은?' 초등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아이에게 장래 직업이라. 나에게 이 질문은 수능 킬러 문항처럼 난해했다. 질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생각했다.'우리 사회의 교육 방향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라는 서술형이 아니구나.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라는 질문처럼 수많은 직업군 중에 하나를 택하는 객관식이었구나'. 한국 교육에 발을 내딛은 것을 실감했다. 학교, 학원.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한 경쟁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2학년에 첫 학원을 보낸 지인에게 '어머님 지금 너무 늦었어요'라고 말했다던 학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럼 언제가 제때일까? 경쟁 교육 속에서 알맞은 때는 없으리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수능 성공, 좋은 대학을 향한 경주에서 불안에 불안을 갱신하며 나아갈 뿐. 아이 초교 입학때 장래직업 질문에우리 교육 서술형 아닌 객관식 실감학교현장 붕괴 학생인권조례탓 아냐 한국 사회의 교육은 대학입시를 중대한 목적으로 설정하고 변모해갔다. 학교의 질서도 구성원들의 관계 설정도. 한국 사회에서 대입의 좌절은 곧 인생 첫 관문의 실패처럼 여겨졌다. 교육은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상상보다는 어떤 대학을 갈 것인지 우선에 두었다.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도 그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현 교육제도에 맞는 사람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학생들에게는 '학생답다'는 기준이 강요되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학생을, 사회를 구성하는 한 시민으로 바로 보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과정은 부재했다. 학교는 자율과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곳이 아닌 경쟁의 공간이 되었고,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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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사회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때 지면기사
아이 학교 보호자 단체 채팅방에 분주하게 글이 오르내렸다. 아이 학교 인근 지하철역에서 무차별적인 범죄가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익숙한 거리에서 일어난 잔혹한 범죄 소식은 나의 일상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시간,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아 나를 비껴갔을 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가 내 생활 반경 안에 성큼 발을 내디뎠다. 묻지마 범죄, 이상 동기 범죄, 무차별 범죄 등, 언론을 통해 사건을 설명하는 기사가 이어졌다. 타인을 해하려는 마음에 '작동'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온라인에 넘쳐났다. 봉인되어왔던 분노의 마음이 타인과 사회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듯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익숙한 공간, 평온한 일상으로 들어온 잔혹한 범죄에서 모두의 안전은 안전하지 못했다.우리는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일상을 둘러싼 통제할 수 없는, 우연히 일어나는 위험과 위기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닥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사고가 일어나도 인명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더 나아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적 구조를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재발방지대책은 현재 닥친 상황만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이상동기 범죄 근본 예방책은고립속 범행 결심하게 만드는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 정부는 최근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일어났던 이상동기범죄 해결책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추진,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 등 강력하고 엄정한 사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저위험 권총보급, 의무경찰제도 부활 등 경찰력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방안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처벌중심, 치안 강화는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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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무책임의 카르텔 지면기사
드라마 D.P가 공개됐다. 군무 이탈 체포조(D.P.)의 이야기를 담은 D.P는, 시즌1부터 군대 내의 부조리를 조명한 작품으로 주목받아 왔다. 군 이탈, 복귀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군대, 국가라는 시스템 속 '개인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즌2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는 맹목적인 인물들과 폐쇄적인 군대의 모습을 더욱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부대 내 가혹행위와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이탈했던 사건은 군대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약한 개인의 문제로, 조직적인 잘못의 은폐를 위해서는 개인의 일탈과 책임으로 사건을 종결시켜 버린다. 드라마 내내 이러한 문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반복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침묵의 강요였다. 군대,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부조리는 끝끝내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무책임을 개인의 문제,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뿐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책임은 사라지고, 시스템이 유지될 테니까. 드라마 D.P가 그리고 있는 현실은 무책임과 부정의가 가득한 우리 사회와 꼭 닮아 있었다. D.P 시즌2 우리 사회 부정의 닮아이태원 참사 책임 이상민 탄핵 기각개인에 책임 묻는 비난 목소리 득세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에서 159명의 삶이 사라졌다. 9개월이 지났지만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없었다. 참사에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 박희영도, 전 용산경찰서장도 보석으로 풀려났다. 최근에는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당했다. 이상민은 재난주무부처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직자였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책임을 묻고 반성과 성찰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이 선행되어야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반성과 성찰, 사과, 책임을 묻는 과정을 건너뛴 채 형식적인 '안전'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히려 그날 이태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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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159㎞ 순례길 지면기사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한낮의 기온이 34도를 기록한 날이었다. 모자, 팔토시 등으로 온몸을 무장했지만 파고드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에 섞여 뜨거운 열기 속을 파고들 듯 거리로 나섰다. 159㎞ 행진이 시작되었다. 지난 6월7일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매일 오전 10시29분 시청 분향소 앞에서 국회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 8.8㎞. 참사로 희생된 159명을 상징하는 159㎞가 될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참사로 사랑하는 딸과 아들, 형제, 자매를 잃은 유가족들이, 그리고 그들의 곁이 외롭지 않도록 시민들이 함께한다. 159명이 사라진 거대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한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이다.집에 있는 것보다 사람들을 만나고 걷는 것이 조금 낫다고, 특별법 제정을 위해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행진에 참가한 한 유가족이 말했다. "딸이 사준 운동화예요. 구멍이 나서 버릴까 하다 신발장에 넣어놨는데. 안 버리길 잘한 것 같아요." 날마다 행진에 참여하는 아버지는 딸이 사준 운동화를 신고 걸음을 재촉했다.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것은 또 다른 순례길처럼 느껴졌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을 묻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담긴 기도. 순례의 행렬이 시청에서 국회로 향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상징유가족 매일 8.8㎞씩 걸어 뒤돌아보면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제대로 책임을 지라' 요구하는 것은 늘 참사 피해자의 몫이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싸움이 그러했고, 일터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난 참사에 제대로 책임을 지는 국가의 모습은 없었다. 진상규명은 부족했고 누구도 합당한 책임을 지지 못한 채 사건이 수습되어왔다. 참사 이후 안전을 위한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진실과 책임규명, 안전대책이 부재한 시간은 또 다른 재난 참사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재난 참사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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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내 아이는 존엄한 한 명의 인간입니다 지면기사
"발달 장애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땐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자녀를 업고 안고, 전국의 재활시설과 병원에 다녔습니다. 장애는 치료하고 극복해야 하는 게 아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시설사회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는 없고, 부모는 힘이 없고, 국가는 무책임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내 아이는 존엄한 한 명의 인간입니다. 내 아이를 비롯한 장애인의 존엄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탈시설을 지지합니다."경기도청 앞에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의 이야기가 울려 퍼졌다.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거쳐왔을 수많은 시간을 헤아릴 수 없어서, 그리고 거리에서 외치는 그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장애인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 국가. 비장애인, 건강한 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장애인도 존엄한 인간이라는 외침은 늘 장애인과 가족들의 몫이었다. 장애인들을 배제하는 세상의 벽은 견고했다. 탈 시설 조례는 장애인들이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존중 받고인간으로서 '권리 필요' 목소리 최근 경기도의회 유호준 의원이 발의한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안' 입법 예고 찬반 논쟁에서도 확인된다. 조례는 시설 입소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탈시설에 관한 경기도지사의 책무,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지원계획 수립, 활동지원 서비스 추가 제공 등 예산 편성과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긴 시간 시설에서 지내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만, 조례가 입법 예고되자마자 댓글이 5천개가 넘게 달리며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시설 밖으로 나왔을 시의 돌봄 공백, 자립 문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조례에는 시설 강제 퇴소 조항이 없다. 그럼에도 조례가 제정되면 장애인을 지역사회에 혼자 고립시키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비장애인, 건강한 몸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 기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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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봄, 꽃을 위한 파업 지면기사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여름 날씨처럼 한낮 기온이 25도가 넘도록 오르더니 다시 찬 바람이 부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비가 온 후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와 황사로 숨을 쉬는 것도 쉽지 않은 날들이다. 반소매를 꺼내입다가 다시 두툼한 옷으로. 옷장 앞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갑작스레 따뜻해진 날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꽃들이었다. 지난해보다 2주 정도 일찍 꽃이 피었는데, 1922년 관측 이래 역대 두 번째 빨랐다고 한다. 지역마다 준비되던 '벚꽃 축제'는 일찍 피고 진 꽃들로 인해 주인공이 사라진 축제로 치러졌다. 갈수록 봄의 시간은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해마다 최고를 갱신하는 기온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날씨 때문이다. 폭염, 폭우, 태풍, 미세먼지, 황사, 한파, 가뭄 등 일기예보 속 위기를 설명하는 말들이 너무 익숙해진 우리는 지금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위기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근 발표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6차 보고서는 2040년 내에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1.5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구 표면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넘어서면 지구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고, 그에 따른 기후 재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기상청이 공개한 '지역별 기후변화 전망'에서도 온실가스를 현재와 비슷하게 배출 할 경우 60년 후에 부산, 제주 등 남부지역의 '겨울이 사라진다'고 예측했다. 기후 위기로 피해 입고 있어'함께 살기위해 해법 필요' 요구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세대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위기가 현재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라면, 대응 역시도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탄소중립 계획은 산업계 감축 목표치를 줄여주고, 전체 감축량의 75%를 다음 정부로 떠넘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 문제를 책임져야 할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차기로 떠넘기는 계획을 살펴보면 과연 이 정부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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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이씨, 김씨, 아저씨, 아닌 건설노동자 지면기사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이 바뀌었다. ○○마을이란 간명하고 정감 있던 이름은 몇 달간의 진통 끝에 건설사와 근처 지하철역 이름을 넣어 10글자가 넘는 길고 긴 이름으로 변했다. 긴 아파트 이름이 요즘 사회적인 추세가 되었다. 포레, 리버사이드, 팰리스, 프라임, 센트럴시티, 더 플래티넘 등등 입지 조건, 자연경관, 공간 특색을 강조하는 명칭으로 아파트 이름이 작명된다. 어떤 브랜드와 이름이냐에 따라 다른 아파트와 차별화되고 경제적 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화려하고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집이 주는 사회적 의미가 변화한 결과다. 아파트가 재테크와 부의 재창출 공간으로 거듭나고, 어디 사느냐에 따라 경제적 수준이 드러난다. 어느 아파트에 거주하느냐가 사회적 신분이 되고, 타인과 나를 경계 짓게 되었다. 시공사 브랜드 가치, 부동산 시세 등 아파트라는 결과물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구조는 아파트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안에 투영되는 노동을 지워버렸다. 온전한 이름없는 존중없는 일터노조 만들고 소중한 호칭 되찾아 변화는 사람답게 살기위한 과정 아파트는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약 2년 동안 노동자의 손길과 정성이 닿아 만들어진다. 땅을 다지고, 시멘트를 붓고, 내부 자재를 채우고, 장식을 하고 모두 사람의 손이 하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한 삶의 공간을 만드는 소중한 노동을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폄하해 왔다. '막노동', '노가다'라고 낮춰 부르고 노동자들의 처우 역시도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데 한참 미치지 못했다. 대형 건설사, 하도급 업체, 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근로계약서 없이 임금이 중간에 떼먹히거나, 임금체불이 관례처럼 이어졌다. 허허벌판 공사현장에서 화장실 한 칸 없이 일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만 30분이 걸려 공사 중인 건물 안에서 용변을 보는 일이 허다했다. 마땅한 휴게 공간이 없어 박스를 깔고 쉬는 일도, 옷 갈아입을 공간이 없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안전 장비를 지급받지 못해 개인이 사서 사용하는 문제도, 위험한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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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의 '문득, 인권'] 어떤 조문 지면기사
결혼식보다 장례식장 갈 일이 많아졌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떠들썩하게 축하하는 경사보다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는 애사가 더 가까워지는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의식,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애사는 꼭 챙겨 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되도록 정성스럽게 옷을 차려입고 길을 나선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흔적을 남긴다. 고인의 사진이 올려진 제단에 국화꽃을 올리고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남겨진 이들, 상주와 인사를 나눈다. 슴슴한 국과 반찬 몇 가지에 밥을 한술 뜨며 고인의 마지막을 듣는다. '살아생전 어떤 분이셨는지,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조문객마다 물었을 질문에 상주는 처음인 것처럼 이야기를 전한다. 이렇게 수 십번, 수 백번 곱씹으며 고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장례라는 의례를 통해 고인을 기억하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추모하고 애도할 권리. 이것은 단지 장례의 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인이 떠나는 과정의 의문이 있다면 진실을 밝혀내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고 책임을 묻고, 기억하는 등 폭넓은 의미이다. 추모와 애도는 상실의 경험을 한 이들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떠나간 동료 시민을 기억하고 아픔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0·29참사 100일 가까이 되도록책임 회피하는 사람들만 가득서울시장·행안부 장관 홀로 조문 우리 사회는 지금, 추모와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며 이태원 거리에 분향소가 설치된 지 50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생명을 잃은 159명의 영정이 가득 메운 분향소에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 짙게 배어있다. 시민들이 낮 밤 없이 분향소를 찾는다.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고 분노하고 또다시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