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참성단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 인디오 대통령 지면기사

     페루의 새 대통령에 사상 처음으로 인디오(영어발음으로는 인디언)의 후예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당선됐다. 국민의 87%가 인디오계 이기 때문에 원주민출신이 대통령이 됐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이러한 일은 혁명이나 다름없는 엄청난 변혁이다. 페루는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장군에 의해 정복돼 잉카제국이 붕괴됨으로써 식민통치를 받는다. 300여년의 식민통치 기간중 원주민인 인디오들은 금·은광에서 노예로 일하는 등 백인들에게 부(富)를 제공하는 도구로만 이용됐을뿐 감히 독립투쟁은 엄두조차 못냈다. 그러나 1821년 아르헨티나에서 온 백인 산마르틴장군이 리마에 들어와 스페인주둔군을 격파하고 페루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는 스페인 본국에서 아르헨티나에 파견한 한 장군의 아들이었다. 이당시 스페인은 본국에서 중남미의 식민지에 파견한 귀족이나 장군에게 막강한 권력과 토지분배 등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백인의 자녀라 해도 식민지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자녀들은 이러한 특혜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끄리요라고 분류되는 이러한 백인자녀들이 본국정부에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들의 독립은 이러한 불만세력인 끄리요들이 원주민인 인디오와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이들도 인디오로 분류됨)들을 선동해서 투쟁한 결과 얻은 것이다. 페루의 독립영웅인 산마르틴도 이중 한명이었고 1년후 그를 이어 독립을 완성한 시몬 볼리바르도 베네수엘라에서 온 끄리요였다. 따라서 이들 끄리요들의 후손들은 20세기 들어서도 대부분 중남미국가들의 집권세력을 이루어 왔다. 일본계인 후지모리도 지난 90년부터 10년동안 집권했으나 원주민인 인디오는 예외였다. 현재 페루의 인구는 2천300만명이 조금 넘는다. 이중 50%가 순수 인디오이고, 37%는 메스티소, 12%는 백인, 1%가 일본과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인디오의 혈통, 벽돌공의 아들, 스탠퍼드대학 경제학박사, 한때 세계은행 임원으로 일했던 톨레도가 어떻게 기득권세력인 백인들의 저항을 극복하면서 국가경제를 일으킬는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덫" 지면기사

    기원전 359년 중국 전국(戰國)시대 때, 진(秦)나라 효공(孝公)은 상앙이란 인물을 등용하여 국정 전반에 걸친 개혁과 쇄신을 단행했다. 상앙은 두차례에 걸친 개혁을 통해 엄격한 법의 기강을 세워나갔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만든 법을 어찌나 까다롭고 엄격하게 적용했던지, 심지어는 왕의 서자마저 법을 어겼다 하여 코를 베는 형에 처하였다. 당연히 그를 두려워하고 시기하는 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중 효공이 죽고 정권이 바뀌게 되자 그를 시기하던 무리들이 참소하여 나라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고만다. 이리 저리 쫓기던 상앙이 어느날 한 객사를 찾아들었다. 그러자 주인이 나와 이렇게 말했다. “상군(상앙을 높여 부르는 말)의 법률에는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재우면 그 손님과 함께 벌을 받도록 돼 있습니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도 쉬지 못한채 계속 쫓기다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다. 기원전 338년의 일이다.언뜻 이같은 경우를 두고 ‘자기가 친 덫에 자신이 걸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론 ‘넘치는 건 차라리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다로운 법으로 인해 그 법을 만든 상앙 자신도 도피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요즘 쌍둥이 딸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걸 보면 그 옛날 상앙의 경우와 너무도 흡사하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97년 텍사스 주지사 시절 ‘술을 소지하거나 사려하는 21세 미만자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규정한 알코올음료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신의 두 딸이 올들어 두번씩이나 술을 사 마시려다 이 법에 걸려든 것이다. 부시의 심정이 어떨는지 짐작이 간다.하기야 이런 식으로 치자면 최근 미국이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국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대중국·러시아·북한관계 등이 껄끄러워진 것 또한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난히 힘의 외교를 표방한 부시 행정부의 보수 강경노선이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잔뜩 자극한 결과로 볼 수도 있을테니까.

  • 낭만파 클럽 지면기사

     낭만이 있다 없다, 낭만적이다 아니다, 낭만을 안다 모른다 등 흔히 쓰는 말이 '낭만'이다. '낭만'이라는 이름의 다방이나 카페, 술집 등도 많고 최근에는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히트를 하면서 '낭만'이라는 말은 더욱 많이 쓰였다. 문예 사조에도 '낭만'이 빠져서는 안된다. 동적인 리듬 속에 인간 감정을 표출하려는 19세기 제리코, 들라크르와 등 화가들의 미술이 '만주의 미술'이고 베를리오즈, 바그너, 쇼팽, 슈베르트 등의 19세기 음악이 낭만주의 음악이다. '낭만주의'란 18세기 말∼19세기 초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을 중심으로 유럽을 휩쓴 근대 문예 사조 및 그 운동이었다. 그렇다면 '낭만'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은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인 상태' '현실적이 아닌 공상적인 모양'이 '낭만'이라고 풀이하지만 우리말은 아니다. '낭만'이란 옛 프랑스 말 'Roman'에서 온 것으로 어원은 라틴어 로마니스(Romanice)다. 원래 속어로 쓴 설화라는 뜻이다. '기이하고 가공적이며 감성적이고 경이적'이라는 뜻의 그 외래어 '로망'을 우리가 '낭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역시 19세기 그 무렵의 일본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낭만'이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이신(明治維新)을 전후해 서양 문예 등 학문을 대거 수입하면서 불어 'Roman'을 번역해 '浪漫'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그 '浪漫'이란 한자는 '물결 랑' '흩어질 만'자로 '로망'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Roman'을 '浪漫'으로 표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浪漫'이라는 글자의 일본식 발음이 바로 '로망(ろうまん)'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浪漫'을 '낭만'이라 읽지 않고 '로망'으로 읽는 것이다. 그런 '浪漫'을 우리가 '낭만'으로 읽는대서야 되겠는가. 외래어 그대로 '로망'을 쓰는 게 마땅하다. 문화 예술계와 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낭만파 클럽'이 결성돼 낭만문화운동을 펼친다기에 붙여 두고 싶은 당부다.

  • 묘수 지면기사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하나의 이변이었다. 우리나라 의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이 원내의석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지역구 224개중 여당인 민정당이 겨우 87석을 차지한데 비해 평민당 54석, 민주당 46석, 공화당 27석, 한겨레민주당 1석, 무소속 9석의 분포를 보였다. 전국구 의석을 합쳐도 민정당 125석, 평민당 70석, 민주당 59석, 공화당 35석 등으로 이른바 여소야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당연히 정치주도권은 야당에게 돌아갔다. 평민 민주 공화 등 야3당은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계속해서 노태우정권을 압박해 들어갔다. 줄곧 수세에 몰려야 하는 노정권의 속내가 편할 리 없었다. 여기에 제2야당인 민주당이나 제3야당인 공화당 역시 조금쯤은 개운치 못한점이 있었을법 하다. 그래서 였을까, 1990년 1월 22일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전격 합당을 선언, 새로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한 것이다. 한국정치의 일대 지각변동이었다.얼마 전 제임스 제퍼즈 상원의원의 공화당 탈당으로 미국의 정치구도에도 전반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상원의 판도가 딕 체니 부통령의 캐스팅 보트로 여당인 공화당이 주도하던 50대 50에서, 무소속이 된 제퍼즈의원의 가세로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게 될 50대 49대 1로 바뀐 것이다. 그야말로 미국판 여소야대가 돼버렸다. 따라서 입법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도력이 한층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리란 전망이다. 이런 판에 한때 부시 대통령의 경쟁 상대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마저 공화당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고나 해야할까, 부시 대통령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그런데 참 궁금한 게 있다. 미국이 전통적인 양당제 체제 이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 옛날 한국처럼 여러 당이 난립해 있다면 정국이 어떻게 되어갈까. 그들 역시 3당합당이라는 묘수(?)를 쓸까.

  • 고승호와 풍도 지면기사

    수천억원대의 은괴를 실은채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청나라의 고승호로 추정되는 선박에서 최근 길이 120㎝의 소총 3정, 동전, 도자기등 유물 10여점을 발굴했다고 한다. 발굴팀은 해저에서 침몰한 선체를 발견했고 관계기관에서도 이의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어 진짜 고승호인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만일 고승호임이 확인된다면 은괴등 유물의 보물적인 가치를 떠나 새삼 청일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1876년(고종13년) 일본은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 조선에 진출한다. 이로써 조선반도는 청나라의 식민지적 지배와 함께 청일 양국의 세력 대결장으로 변한다. 그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는 동안 왕조의 압제까지 심해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진다. 이러한때 농민들과 동학교도들이 이에 항거해서 나선 것이 동학혁명이다.조선왕조는 동학혁명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고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출병, 청의 철수를 요구한다. 청이 이러한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자 일본은 1894년 7월 25일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 군함에 포격을 개시함으로써 청일 전쟁의 막이 오른다. 약 9개월에 걸친 육해전 결과 일본은 대승을 거두고 조선 반도는 완전히 일본의 영향력 하에 들어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승호는 개전초기 주한 청나라 군대에 군수물자를 싣고 가던중 일본군의 포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고승호와 인근의 섬 풍도 및 그 해역은 비운의 역사현장이자 유물인 것이다.풍도(豊島)는 가을에 단풍이 절경이어서 단풍섬이라 불리기도 했고 그래서 조선시대 영조~순조때는 풍도(楓島)라 칭했다. 지금은 많은 낚시인들과 수석(壽石)인들이 찾고 있으나 아직 빼어난 자연경관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경기도는 마침 이러한 풍도에 대해 지난 98년부터 2007년까지 10개년 종합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가지 조언한다면 이러한 종합개발사업에 풍도와 그 주변해역이 역사를 되돌아 볼수 있는 교육현장이 되도록 배려해야 할 줄로 안다.

  • 왕실의 결혼 지면기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누구던가. 국왕을 수장으로 하는 교회인 영국의 국교회(國敎會)를 확립하고 절대주의 왕권을 강화, 확립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무찔러 근세 초기 영국의 한 시대를 구축한 여걸이 아닌가. 그런 그녀가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왕비를 여섯이나 바꾸고 왕비의 시녀 앤 볼린(Anne Boleyn)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측근들을 무참히 살해한 아버지 헨리 8세에 대한 억하심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바로 그 시녀 출신 왕비인 앤 볼린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콤플렉스가 이유였을까. 절대 명령권을 휘두르는 제왕이 천박한 가문의 시녀 출신을 후궁으로 삼았다가 왕비로 승격시켰던 예는 동과 서 가릴 것 없이 근세사까지도 흔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8세만 해도 그냥 심프슨 부인을 이혼시킨 뒤 마음대로 왕비 자리에 앉혔어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왕관까지 버리는 그야말로 '세기적인 사랑'으로 그녀를 택했던 것이다. 한데 문제는 왕실 어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왕세자와 공주의 결혼 상대자 선택이다. 1995년 7월 1일 모나코 왕궁에서 결혼식을 올린 스테파니 공주는 결혼 상대자가 그녀의 경호원인 다니엘 드크루였고 스페인의 크리스티나 공주가 97년 10월 4일 결혼식을 올린 상대자는 3년 연하의 핸드볼 선수 우르당가린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결혼 허락이 순조로울 리 없었다. 게다가 그 핸드볼 선수는 분리독립운동이 치열한 바스크 지방 출신이었다. 더욱 심한 경우는 네살 짜리 아이까지 둔 이혼모와 지난해부터 동거중인 노르웨이의 하콘 왕세자(27)가 오는 8월 결혼한다는 것이고 속옷 모델 출신과 교제 중인 스페인의 필리페 왕자(33)다. 신부감을 반대하는 부모인 국왕 부처 등 12명을 사살하고 자신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네팔 왕세자의 비극이 너무나 끔찍하다. 차라리 에드워드 8세처럼 왕실을 버리고 히말라야 산 속으로라도 들어갈 일이지.

  • 금연구역 지면기사

     세계 최초의 영국 런던 지하철(길이 5.5㎞)이 개통된 것은 1863년 1월이었다. 당시의 지하철 건설방법은 땅을 파내고 그위에 뚜껑을 덮는 방식이었다. 증기기관차였기 때문에 연기가 잘 빠져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 객차안에는 'No Smoking(금연)'이란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금연구역 지정 이었던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도 동양에서는 장수연(長壽煙)이라해서 흡연을 권장했고 미국의 의학자 아들러에 의해 담배가 폐암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유해론이 처음 제기 된 것이 1912년 이었으니까 흡연피해를 줄이기 위한 경고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기관차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담배연기라도 좀 줄여보자는 생각이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흡연의 건강 유해론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폐암 후두암 심장병 버거씨병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고 이 지구에서 흡연으로 인해 8초마다 1명씩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최근 국내 한 연구기관이 조사한바에 따르면 지난 25년간의 담배소비량증가와 폐암사망자 증가율이 거의 정비례 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오크스너박사가 지난 1941년 발표한 연구내용과 일치한다. 이 연구결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25년간 폐암환자수는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고 지금 당장 담배소비가 줄어든다 해도 폐암환자수가 감소하는 것은 25년후 부터다. 이에따라 정부는 금연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내년중 금연구역을 PC방과 만화방, 초중고교 및 의료시설에 까지 확대하고 건물주가 원하는 빌딩에 대해서도 금연건물로 지정하는 한편 일정규모 이상의 일반 음식점에 대해서도 흡연, 금연구역을 구분토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이 수년전 이제도를 도입하면서 일반음식점은 물론 술집에서도 흡연자가 발견될 경우 업주에게 흡연자 1인당 각주법에 따라 1천~3천달러의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고 있어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반음식점과 유흥음식점 구분이 애매모호한 우리나라에서 음식점내 흡연, 금연구역 구분과 금연건물 지정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 쇄국 지면기사

    1854년 일본은 미국 군함의 위세에 눌려 강제 개항을 당했지만, 그후로는 오히려 이를 자발적 적극적인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은 이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양 제국과 차례로 통상조약을 맺었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라는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밟아 일약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렇게 기세를 키워온 일본은 그 힘을 바탕으로 이웃 조선을 손아귀에 넣었으며 중국 등 아시아를 노략질 했는가 하면, 끝내는 미국에 까지 싸움을 걸기에 이르렀었다.비슷한 시기 조선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근채 오로지 청나라에만 모든 일을 의지하려 했다. 1832년 영국상선 암허스트호가 정식으로 문호개방과 교역을 요구한 이래, 1846년 프랑스의 통상요구, 1864년 이후 러시아의 통상요구 등이 잇따랐지만, 당시 조선의 대외정책은 수교와 통상을 거부함으로써 일체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었다. 특히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수도까지 함락되는 것을 보고는 서양세력과는 아예 접촉을 하지 않는 것만이 상책이라 여겼던 것이다. 뒤늦게 개방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엔 이미 ‘죽은 말 때리는 신세’가 돼 있었고, 결국은 아무런 힘도 키우지 못한채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어쩌다 시기를 놓쳐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것이다.배아복제를 엄격히 제한하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시안이 나오자 생명공학계의 반발이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다. 학회 전문가 등이 대책위원회를 추진하는가 하면, 며칠 전엔 국회와 관련 정부부처 등에 건의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줄기세포 연구 등이 원천봉쇄 됨으로써 장기가 부족해 생명을 잃어야 하는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며 한탄한다. 특히 이렇게 생명공학 연구를 막는 사이 선진국들은 다투어 핵심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인만큼, 장차 이분야에서 또 다시 그들의 기술에 예속되는 결과를 빚게되지 않을까 걱정들이 크다. 생명윤리와 생명공학의 경계를 딱잡아 정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혹여라도 또 하나의 쇄국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노파심일까.

  • 31일자 참성단 지면기사

    미국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잘못 붙인 제목인 것 같다. '포세이돈"은 그리스 신화의 해신(海神)이고 신은 결코 모험-위험(險)을 무릅쓰지(冒)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화유람선 이름인 '포세이돈"은 어울릴지 몰라도 '포세이돈 어드벤처(모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영화와 비슷한 침몰 과정을 그린 '타이태닉"도 그리스 신화의 신 '타이탄(Titan)"에서 온 말로 '타이탄 신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타이탄 신의 소유"라는 뜻의 호화유람선 '타이태닉"도 신의 이름을 함부로 참칭한 데다가 안전수칙을 무시한 채 강행한 항해가 화근이 돼 그런 엄청난 참사를 빚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서서히 가라앉는 호화 유람선의 침몰 과정이란 숱한 '죽음의 예고편"과 '본편"이 뒤죽박죽된 끔찍하고도 생생한 최악의 '신 연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거의 모두가 한 시간  또는 두 시간뒤에 죽기는 죽되 그렇게 유예받은 사망 예고편이 두서없이 마구 본편과 오버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신 연출의 비행기 사고엔 거의 그런 예고가 없다. 1994년 5월 3일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너무도 잔인한 신의 작품 그것이었다. 단 몇초 뒤에 나고야공항에 추락하는 죽음도 예감치 못한 채 밝게 웃는 다카스(高須)씨의 그 사진은 추락사고 현장에 흩어진 바로 그의 유품인 카메라 필름을 기적적으로 인화한 것이었다.비행기 사고엔 왜 단 몇초의 죽음의 예고도 없는 것인가. 서울 올림픽대교 꼭대기에 무게 10.8t의 횃불형 조형물을 설치하다가 추락한 전천후용 대형 운송 헬기인 '47 치누크"의 사고도 신은 전혀 예고하지 않았다. 다만 방심과 무모와 모험만은 경계하라는 암시를 주었을 것이다. '치누크(chinook)"가 무슨 뜻인가. 북미 토인, 로키산맥 동쪽서 부는 바람, 연어 등의 뜻도 있지만 신화사전에 나오는 여자 수호신, 일본 창세신화의 창조신,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치누크라는

  • 칼럼 참성단 새필자辛世默주필 지면기사

    경인일보를 대표하는 칼럼 「참성단」이 새롭게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오늘의 의미와 내일의 희망이 생동하는 글 「참성단」의 새 필자는 辛世默 본사 주필입니다.辛주필은 지난 65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에 투신, 연합통신 기자와 수원지사장을 거쳐 97년4월부터 본사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지난 96년 중편 「바람부는 둥지」로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이기도 합니다.편집국장 재직시 「辛世默의 안경 너머」라는 고정 칼럼을 통해 날카로운 통찰력과 재기 넘치는 문장, 따뜻한 인간적 시선을 보여주었던 辛주필이 35년 언론계 경륜과 원숙한 문장력으로 매일매일 풀어나갈 「참성단」에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과 격려를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