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춘추칼럼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춘추칼럼] 당신이 웃을 때 누군가는 운다 지면기사
숲길 바닥 여기저기에는 여문 도토리알들이 나뒹군다. 활엽수의 잎들은 단풍이 들고, 숲길에는 낙엽이 쌓인다. 단풍은 꽃인 듯 화사하다. 동네 도서관 뒤편 단풍으로 물든 숲길을 걷는 게 오후 일과 중 하나다. 나는 숲길을 걸으며, '구르몽, 너는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은가?'라는 중학교 시절 배운 한 시인의 시구를 떠올린다. 숲길의 청량한 공기와 빛을 사랑한다. 나는 숲길에서 인생이 노래와 같이 흘러간다고 느낀다. 숲에는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간혹 야박한 사람들이 다람쥐나 청설모의 양식인 도토리를 싹 쓸어간다. 그건 숲의 생명체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이고 약탈이다. 숲에는 고양이 쉼터와 급식 접시와 물그릇이 놓여 있다. 누군가가 고양이를 살뜰하게 돌보며 물과 먹이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와 스탠드 등을 밝히고 어제 읽던 독일 시인 아이헨돌프의 시집을 읽는다. 내가 시집을 읽을 때 고양이들은 애기가 칭얼대듯 공연히 운다. 나는 시집을 내려놓고 심심하다고 우는 고양이를 데리고 사냥놀이를 한다. 막대에 매단 깃털을 휘두르면 마치 사냥감이라도 되는 듯 고양이는 그걸 쫓아 달린다. 깃털이 공중에서 펄럭이면 고양이는 그걸 포획하려고 솟구친다. 고양이가 도약할 때마다 나는 감탄을 한다. 고양이가 숨을 헐떡일 때쯤 사냥놀이를 그만둔다. 간식 몇 알을 얻어먹은 고양이는 더 이상 울지 않고 두 앞발을 가슴으로 접어 넣은 뒤 조용히 쉰다. 태어나서 죽는건 부정 못하는 불멸의 진리지금도 누군가 숨결 꺼트리고 우리곁 떠나 지난 여름 장마때 물막이용으로 쌓은 모래자루에서 모래가 반 넘어 흘러나왔다. 모래가 가득하던 모래자루에서 모래가 반쯤 빠져나간 탓에 홀쭉해졌다. 그새 아이들은 자라고 노인들의 무릎 관절은 조금 더 닳는다. 해질녘 소란스럽던 새떼가 사라지면 빈 들에는 어둠이 내린다. 종일 모이를 찾아 돌아다니던 닭들은 닭장 횃대에 올라앉아 잘 준비를 마쳤다. 어느덧 이웃 교회 첨탑의 십자가 네온 조명에 불이 켜지고, 적막하고 검푸르고 하늘에는 청과일 같은 달이 둥실 떠오른다.
-
[춘추칼럼] 10월의 남자 지면기사
10여년 전 겨울, 친구들과 여행가자고 꺼냈던 이야기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서, 우리는 갑자기 하얼빈행 비행기를 탔다. 대륙의 작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영하 25도의 찡한 추위보다 먼저 닥쳐온 것은 도시를 온통 뒤덮은 매캐한 석탄 냄새였다. 오리털 의복으로 중무장한 탓에 정작 피부에 닿는 추위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그 석탄 냄새가 북방의 추위를 더 상징적으로 느끼게 했다.하얼빈 기차역은 현대적으로 새로 지어졌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던 구 역사는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오래된 플랫폼을 볼 수 있었는데,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서 있던 자리가 5m 내외, 겨우 승용차 한 대 정도랄까, 거리라기보다 간격이라고 해야 할 만큼 너무나 가까웠던 것에 가장 놀랐다.안중근은 세 발의 총알로 이토를 쓰러뜨린 후 "코레아 후라"를 외치고 체포되었다. 심문조사에서 그는 자신이 포수로 살아왔으므로 상박을 겨누면 흉곽을 뚫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어린 시절부터 산과 들을 누비며 짐승을 잡아왔던 청년 안중근, 사냥 기술자로서의 노련함이 보이는 그 진술이 나는 매우 인상깊었다. 스스로 배우지 못한 포수라고 칭한 것과는 달리, 이토 히로부미를 쏜 이유를 말하라는 심문관의 요구에 1. 조선의 왕후를 살해한 것, 2. 한국에 불평등한 을사 5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것으로 시작해 무려 15번까지의 이유를 막힘없이 서술한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 이상으로 이 심문에 대한 답변을 중요하게 여겼고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쏜 안중근개인 아닌 대한의군 자격 '전쟁의 일부' 강조 안중근이 시종일관 강조했던 것 하나는 그가 개인이 아닌 대한의군 중대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쏘았다는 점이었다. 하얼빈역에서 일어난 일이 테러리스트의 저격이나 심지어 애국지사의 의거조차 아니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일부인 것을 그는 분명히 하고자 했다.그것은 전쟁이 맞았다. 총 한 자루를 품에 넣고 하얼빈으로 가기 전, 대한의군 참모중장
-
[춘추칼럼] 보수의 재구성, 여당이 시작이다 지면기사
야당 지지자와 중도층의 분노참여, 여당 지지층의 낮은 참여가 강서구청장 보선을 결정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많다. ARS 조사에서는 대통령 책임론이 절반을 넘는다. 근본원인은 국민의힘에 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인재공급과 국정비전 제시, 주도의 정치적 선도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무기력한 여당'을 만든 사람은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어진 방침을 잘 따르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여당체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의 주체는 정당이고 대통령실을 쳐다보지 말고 국민을 쳐다봐달라는 주문은 오히려 대통령의 뜻"이라며 "국정운영에 있어 때로는 '대통령이 이렇게 가시면 안 된다'는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최근 언급은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한다. 스스로 아무 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여당'유권자 70% '대통령 국정 기조전환' 요구 '총선 전초전'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패배하고 총선을 6개월 앞둔 지금 시점에 윤 대통령은 두 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된다. 그것은 '대통령의 총선목표는 무엇인가'이다. '과반 안정 의석' 아니면 '윤석열 친위대 확보'? 대통령의 선택이 후자라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의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불가피하다. 총선 승리의 야권은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3연승을 향해 정치공세를 강화할 것인데, 만약 대통령도 지금처럼 한다면 그 끝은 '대통령 탄핵'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내년 총선에서 과반 안정의석의 확보는 '2022년 대선승리의 중도보수연합 복원'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유권자 10명 중 7명 가까이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전환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이제 부터 '정치 승부사 윤석열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일 때라는 것이다.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와 국민의힘 지지율 그리고 김태우 득표율이 유사한 수준이다.
-
[춘추칼럼] 손자병법 전쟁론 지면기사
중동지역의 전쟁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을 박격포로 공격한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 이에 전쟁 경보를 선포하고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 여기에 하마스를 옹호하며 공격 작전에 끼어든 시아파 헤즈볼라,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뒤에서 도와주는 이란,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항모전단 전진 배치와 합동 군사작전을 예고한 미국, 이스라엘과 수교보다 이슬람 세력과 연계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겠다는 사우디의 복잡한 계산, 전쟁에는 많은 국가의 정치와 이익이 연결되어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속(War is a continuation of politics)'이라고 프로이센의 전쟁 이론가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정의한다.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 전쟁은 감정이나 이유 없는 무력 충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정치적 이익과 계산이 깔려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여 전쟁을 벌이는 일도 푸틴과 러시아 권력의 정치적 계산과 이익이 숨겨져 있다. 정치의 핵심은 권력의 획득과 유지다. 전쟁을 통해 누군가는 권력을 강화하고, 누군가는 권력을 유지한다. 뇌물 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전쟁을 통해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을 것이며, 하마스 지도자이자 팔레스타인 총리인 이스마일 하니야는 그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미국은 다음 대선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전쟁을 통해 피해를 보고 힘든 사람들은 민간인과 노약자들이다. 전쟁은 전쟁의 주체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를 본다. 그래서 전쟁의 위협이나 전쟁의 공포를 떠드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치적 이익과 계산 깔려있는 '중동 전쟁'애꿎은 사람만 피해… 빨리 끝내는게 중요 동양의 병법서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을 국가의 존망(存亡)과 국민
-
[춘추칼럼] 그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리 지면기사
올 추석에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시골집 뜰안 대추나무 가지의 열매들은 단맛이 밴 채로 여물고, 뒤뜰의 석류나무는 과피(果皮)가 벌어진 채로 석류가 알알이 들어찬 제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멧비둘기 구구대는 앞산의 산밤나무에 매달린 푸른 밤송이들은 절로 벌어져 알밤을 투두둑 털어낼 테다. 아버지가 짓고 가족과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은 사라지고 없다. 고향마을의 느티나무는 무성한 가지를 드리운 채 늠름하고, 너른 들과 땅을 휘감아 돌아가는 강과 바람은 그대로이건만 고향의 새 주인들은 낯설다!고향에서의 기억은 왜 달콤하고 아련한가? 그것은 과거를 화사하게 윤색하는 뇌의 환각작용 탓일까? 정지용의 시는 내가 오래 전에 낙원에서 추방된 자임을 일깨우며 서글픔에 빠뜨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정지용, '고향').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가 우는 고향에의 기억은 달콤하고 아련하다. 그것은 지금의 고향이 아니고, 흘러간 옛날은 오늘의 괴로운 현실의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열살 무렵 탈향… 지금은 내마음의 지리학떠난지 오래돼 떠돌며 불신·비관에 삶 내줘후회 없지만 기억의 화사함 사라지지 않아가슴에 한줌의 노스탤지어 품고 늙어간다 고향을 떠난 자는 다시는 그 아늑하고 그리운 고향을 찾지 못한다. 고향을 그리는 나침반은 언제나 어린 시절의 목가적 생활을 가리킨다. 내 마음에 자꾸 향수병이 도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노스탤지어의 바탕은 지금 여기에 없는 것, 즉 옛날을 향한 동경과 그리움, 되찾을 수 없는 시간 회복에 대한 열망이다.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는 "향수병은 불가능한 것에 직면했을 때 갖는 절망이다"라고 한다. 노스탤지어는 고향 없음이 아니라 특정 장소로 돌아갈 수 없음,
-
[춘추칼럼] 하와이교회 지면기사
어린시절 살았던 옛 마을, 내가 태어난 옛집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변화가 빠른 21세기 대한민국, 부동산 광풍이 여러 차례 휩쓴 서울 도심에서 흔히 있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 옛마을을 산책하며 그리운 얼굴들과 빛바랜 기억들을 소환하면 알 수 없이 내 안에서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이고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기대어 한 세상을 살아볼만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 숨이 꽤나 가빠질 무렵 인왕산의 숲 끝자락과 길이 맞닿는 부분에 이르면 내가 태어난 옛집이 나타난다. 인가가 사라진 숲자락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하얀 교회가 있다. 옥인동 서울교회다. 서울교회라는 정식 호칭이 있다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뒤늦게 알았다. 아카시아 생울타리로 둘러싸였던 인왕산 숲속의 그 하얀 교회는 우리에게 언제나 하와이교회였다. 어릴 때부터 하와이 교민들이 건립 자금을 보내주어 하와이교회라고 불린다는 교회 탄생 설화를 들으며 자랐다. 교포 자금으로 건립 인왕산 자락 하얀교회내 고향마을에서도 역사-이념투쟁 '씁쓸'이금이 작가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하와이 이민자들, 남편이 될 남자의 사진만 보고 결혼해 이국의 척박한 삶을 개척해 나갔던 '사진 신부'들의 삶을 그린다. 장정들이 하루 열 시간 주 6일 꼬박 일해 버는 한달 월급이 17달러였다. "젠장, 조선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뭐 있다고. 나라도 나 있고 가족 있은 다음이야. 박용만이고 이승만이고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동포 앞에서 좋은 본은 고사하고 헐뜯고 싸워대는 꼬락서니 하고는. 그 종자가 그 종자지." 소설 속 청년의 냉소는 당시 이민자 사회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대변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돈을 모아 독립운동을 위한 성금을 냈고,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은 임시정부 재정의 절반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가장 든든한 후원이 되었다.하와이를 근거지로 외교 중심의 독립을 추구했던 이승만과 무장투쟁을 추구했던 박용만 사이에 어느 쪽 노선이 옳았는지 역사-이념 투쟁을
-
[춘추칼럼] 대통령은 불안하다! 지면기사
불교의 핵심 메시지는 '공(空)'이라고 한다. 공은 '존재와 현상은 서로 의존해서 발생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에 따라 출현한다. 연기법에 따르면 어떤 존재와 현상도 혼자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존재와 현상은 공하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존재와 현상은 인연에 따라 만나고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져 불변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의 공은 복잡계 이론의 메타 안정성과 유사해 보인다. '메타'는 준(準) 또는 임시적이라는데 '메타 안정성'은 존재와 현상 등의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와 임계현상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노력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동적(動的) 메카니즘이다. 메타 안정성은 세상을 '거시적 복잡성과 미시적 불확실성'으로 이해한다. 이때 세상은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요동치는 연쇄적 다이내믹스'다.최근 대통령의 메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다. 6월 자유총연맹, 8월 광복절 그리고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 연설 등이다.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된 뒤 이념형 인간으로 바뀌며 제왕적 대통령으로 최적화되어 (스스로를 군주의 반열에 놓고) 거침이 없고 용감무쌍하다'며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결론은 '폭주를 보수가 책임져야 한다'다. 나아가 '21세기 디지털 선진국이 졸지에 1970년대 개도국 시절로 회귀'하며 '실용보수의 종식이자 이념보수의 부활선언'이라고도 한다. 집권당의 연찬회는 '부장님의 술자리'라는 소리를 들으며 '윤아(尹我)일체 수준까지' 갔으니 차라리 '용산의 힘'으로 당명을 바꾸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대통령의 인식 많은 사람과 달라 보여과거 직업적 경험과 現 집권당의 불신 대통령의 인식은 확고하다. 대통령 메시지도 분명하다. 첫째, 방향성으로서 이념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고 한다.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철학이 이념이어서 철학과 방향성 없는 실용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 방향은 정체성 확립이다. 대한민국의
-
[춘추칼럼] 혼돈(混沌)의 미학 지면기사
시원하게 뚫린 잘 구획된 대로나 신도시보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마을과 오래된 거리가 더 끌린다. 편리함으로 따지면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진 도시가 좋지만, 안정감이나 친근함으로 따지면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무질서한 골목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오래된 마을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북촌 한옥마을에 더욱 붐비고, 전주 한옥마을을 더욱 선호한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빌딩을 보러 관광을 가는 경우는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없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을 끼고 있는 오래된 집들, 북경의 작은 골목, 일본의 시골 온천마을 장터, 도무지 질서하고는 거리가 먼 혼돈의 장소에 왜 사람들은 몰리고 감동할까? 우리는 질서는 아름답고 무질서는 추악한 것이라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질서를 따르고 신봉하는 사람이었고, 질서를 벗어난 사람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모두가 인정하는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취직하여 정년퇴직할 때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다니다가 자식들 좋은 배필 만나 결혼시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었다. 자녀 결혼식과 자신의 장례식에 화환을 놓을 곳이 없어 꼬리표만 떼어내 벽에 줄지어 걸어놓으면 정말 인생 잘 산 사람이라고 사람들 입에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상식적 인생에서 벗어나고,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고,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는 인생을 사는 사람에 대하여는 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혼돈(混沌)이란 단어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불확실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자주 바꾸고, 전공이 무엇인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왜 좋은 직업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을 혼돈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질서 넘어 차원 높은 새로운 세계 재해석'무질서, 더 큰 생명력' 장자의 역설 철학 혼돈(混沌),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패턴이 없고, 마구 뒤섞여 예측이 안 되는 무질서의 상태를 혼돈이라 한다. 질서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되어야 할 상태며, 미숙한 단계
-
[춘추칼럼] 책상 위 돌은 왜 흐느끼는가 지면기사
강가에서 주워온 돌 하나가 책상 위에서 가만히 흐느끼고 있다. 그대는 듣는가, 책상 위에서 돌이 혼자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나는 새를 쏘았던가? 저 돌은 내가 쏘아 떨어뜨린 새인가? 지난여름 초목을 태울 듯하던 불꽃 더위가 잦아들고 소슬한 바람이 분다. 복숭아를 좋아하던 용접공은 연애에 빠지고, 줄장미가 붉은 꽃을 피웠던 여름은 지나갔다. 나이 어린 이모가 시골집 뒤꼍에서 석류나무에서 몰래 딴 석류를 먹는 계절이 온다. 한때 번성하던 것은 시들고 바스라지며 우리에겐 관조의 시간이 배달되는 것이다. 가을 저녁엔 후박나무 잎사귀가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슬그머니 놓치고 제풀에 내려앉는다. 저렇듯 땅으로 하강하는 조용한 시간이여, 나는 유랑의 무리와 그 속에 고립된 나를 가만히 돌아보련다.행운과 실패, 비탈과 암초가 따르는 인생봄엔 농약치고 가을엔 과실주 담그려던 꿈봄엔 산등성이 비탈밭에 심은 사과나무 700그루에 퇴비를 주고 농약을 치고, 늦가을엔 마가목 열매를 따서 설탕을 쏟아부어 과실주를 담그려고 했다. 동지 때면 호롱불 아래서 권정생의 동화책이나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은 꿈들은 산산이 깨졌다.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농협 빚만 늘었다고 울분을 토해내던 영농후계자들이 서울에서 넥타이를 매고 다단계 회사에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름내 식빵을 한 조각씩 떼어 입에 넣으며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붙들고 있었지만 학업은 고만고만했다. 술에 취하면 '사랑과 평화'의 노래를 불러제끼고, 나중에 사법고시를 패스해 변호사를 하겠다던 이종사촌은 모의고사를 망치더니 거제도에 내려가 용접공이 되거나 원양어선을 탈 거라고 떠들어 댔다. 나 역시 대학입시를 엎고 정음사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전권이나 독파하기로 결심하고 풋풋한 눈썹을 밀고 토방에 들어갔다. 가을이 오니, 온갖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내가 열아홉일 때 대수학과 절대음감은 언감생심이었으니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상업고교를 졸업하고 시중 은행에 들어가 창구 직원으로 일하다가 감리교회의 신자 아가씨와 눈이 맞아 조촐한 살림
-
[춘추칼럼] 거리의 선생님들 지면기사
딸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부모 공개수업일에 찾아간 나는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냈다. 도심공동화의 충격을 제일 먼저 맞이한 오래된 마을, 한 학년에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기억나는 건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동작들이다. 선생님이 "무지개~"라고 나직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즉시 책상을 반원형으로 새로 늘어놓고 앉았다. "여섯명~"하면 다시 착착 움직여 여섯 명씩 그룹을 지어 마주 앉고, "전체~"하면 스무 명이 칠판을 바라보는 평범한 대형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의 손끝이나 몸짓, 입모양까지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아주 작은 힌트만으로도 기다렸다는 듯 번개같이 지시를 수행하는 아이들은 첨단 동작인식 AI를 탑재한 고성능 기기 같아 보였다. 선생님의 손짓만으로 요술같이 움직이던 아이들 속에는 발달지체아동도 있었는데, 그 아이의 얼굴에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환한 미소와 열정이 일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그만 아이들을 황홀하게 지켜보며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툭하면 폐교 위기가 닥쳐오는 작고 오래된 학교에서, 평범한 수업참관일에 보았던 풍경이었다. 그 요술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은 퇴직을 몇년 앞둔, 덩치가 자그마한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분은 교감이나 교장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고 평교사로 정년퇴임 하셨는데, 그분을 담임선생님으로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누렸던 작은 축복이었다. 초교 저학년 딸 수업 참관 황홀·뿌듯한 추억작가 돼 방방곡곡 학교 강연 축복같은 시간 물론, 내가 학생으로 지냈을 때나 학부모가 되어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나, 학교에서 늘 좋은 일만 겪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12년의 학창시절을 요약해보자면 축복 같은 선생님을 한두 분, 그냥 평범한 선생님을 열 명쯤 만났고, 악몽 같은 선생님을 한두 번쯤 겪었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정규분포 곡선이었는데, 일상의 대화에서는 악몽 같은 선생님 이야기가 화제에 훨씬 더 많이 올랐다. 행복과 감사는 고통과 분노에 비하면 훨씬 잔잔한 감정이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