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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대통령 각하! 만족하십니까? 지면기사
결국 대통령이 나선다. 시작은 휴가 중인 대통령의 "냉장과 냉동 탑차를 무제한 공급하라"라는 지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께서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정부 비상대책반이 구성됐다"며 "대통령님의 긴급지시로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모든 행사운영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지시는 이어진다. "식사의 질과 양을 즉시 개선하고, 관광프로그램 추가하라."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폐영식 후에도 출국할 때까지 숙식과 교통 문화체험 등을 지원하라"고 말한다. 김현숙 장관은 '위기대응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시점'으로 해석한다. 정부가 온 역량을 집중한 '반전의 카드' K팝 콘서트가 구원투수로 대한민국의 체면을 지킨다. 대통령의 혜안과 용단이 실패의 입구에 들어선 위기의 국제행사를 살려낸 셈이다. 부처·공공기관 자원봉사자 1천명 모집해'K 잼버리'속살은 국가총동원령시대 복귀 잼버리조직위원회는 마지막 행사를 위해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자원봉사자' 1천여 명을 모집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는 콘서트 지원을 위해 공공기관과 국책금융기관 등에 인력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은 '자원봉사자 모집'이라 쓰고 '동원'으로 읽는다.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자이고 국책금융기관의 최대주주다. "이게 정상적인 정부냐"라는 공무원노조에 장관은 "공무원들이 동원된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디테일 지시'로 시작된 'K 잼버리'의 속살은 '국가총동원령시대로의 복귀'라는 우려와 맞닿는다. 민관자원을 징발하는 '국가주의적 행태'라는 비판도 있다. 사적 영역의 시민사회가 권력과 관료의 동원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기업들은 '생수 148만병, 얼음 5만t, 아이스크림 28만개'를 보냈다. 간이화장실 설치와 지원인력 그리고 조기퇴영 후 숙소제공도 그들의 몫이었다. "잼버리 대회 참여자 모두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한국인의 마음이다. 'K 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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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인생의 태풍을 만났을 때 지면기사
기억해 보면 어느 한해도 태풍 없이 지나간 여름은 없었다. 한해 평균 3개 정도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니, 태풍은 반드시 만나고 겪어내야 할 한반도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인생에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 있다. '맹자'는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태풍의 이름을 '우환(憂患)'이라고 하였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근심(憂)과 고통(患)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태풍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때 옵션으로 넣어 준 것이 우환이다. 부귀한 자는 부귀한 자로서의 우환을 만나야 하며, 빈천한 자는 빈천한 자로서의 우환을 겪어야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은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첫 번째는 고풍(苦風)이다.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는 정신적인 우환이다. 고풍의 우환은 돈과 지위를 모두 가진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우환이다. 고풍의 발생원인은 다양하다. 바라던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하여 올 수도 있고, 관계의 파탄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어느 날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면서 발생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다가오기도 한다. 두 번째는 노풍(勞風)이다.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는 육체적 우환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만나는 우환이다.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였지만 노풍을 만나 한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평소에 건강관리에 소홀하여 오기도 하고, 육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과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고도 하니, 육체적 우환의 발생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 번째는 아풍(餓風)이다.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는 재정적 우환이다. 인생에 가장 자주 만나는 견뎌내기 힘든 우환이다. 사람을 잘못 만나 가진 돈을 모두 날리기도 하고, 잘못된 투자로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일반 사람이 아풍을 만나면 자유를 잃고 속박당하기도 한다. 누구도 피할 수없는 인생의 태풍이 '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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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한여름의 책읽기 지면기사
여름엔 바닷가나 숲속 휴양지에서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같은 책을 읽기에 좋다. 이 목록은 내가 젊은 날에 읽고 여름마다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다. 범벅하게 말하자면 독서란 일탈, 해방, 몽상, 그리고 무위를 통해 누리는 한 조각의 행복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에서 '책들은 고요해진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것이다. 책들은 포말처럼 솟구친다'(파스칼 키냐르, 74쪽)라고 쓴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독자들은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몽상의 바다를 떠도는 걸 좋아한다.한여름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나무 그늘 아래서 책 읽는 일이다. 내 경우는 그렇다. 나는 동물 사체에 맹금류들이 두 날개를 펼친 채 달려들어 맹렬하게 살을 찢고 삼키듯이 책을 읽어왔다. 조류가 제 발톱과 부리로 먹잇감을 물고 뜯으며 삼키는 일과 독서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우리는 맹금류가 동물 사체를 뜯고 삼켜서 영양분을 취하듯이 책에서 정신의 자양분과 타인의 욕망과 살아감의 기쁨을 얻는다. 잘 알다시피 책은 각종 문자로 이루어진다. 문자는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죽간, 종이 위에 제 형태를 드러낸다. 책은 각종 문자의 집합이고, 문자는 의미를 기호화한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자를 도약대 삼아 의미계로 솟구친다. 문맹인은 의미 없음에 방치된 채로 음지의 세계에 떠돈다. 반면 의미의 빛으로 넘치는 책을 손에 쥐고 읽는 자는 어둠에서 나와 빛의 세계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나아가는 셈이다. 독자란 잠들지 않고 깨어서 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독서가들이란 대개 빛을 훔치는 밤의 도둑이거나 항상 깨어 있다는 뜻에서 밤의 야경꾼들이다.독서가들은 항상 깨어 있어 밤의 야경꾼들지식·타인의 욕망·누리지 못한 꿈 훔친다밤은 낮을 훔치고, 새는 곡식의 낱알을 훔친다. 달은 발광체가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훔쳐 은빛 반사광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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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폭우 속에서 지면기사
딸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니까, 어언 15년 전 일이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친구들이 뭉쳐서 모처럼 여름 여행을 떠났다. 숙소에서 꼬마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은 수박을 쪼개리라!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 수 있는 야트막한 계곡이 있는 펜션을 예약하고 우리는 한 계절의 추억을 장만할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폭우 뒤끝이라서 아이들이 첨벙거릴 예정이었던 야트막한 계곡은 지옥 같은 굉음을 내는 폭포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 계곡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 서성였다. 여름 내내 이 날을 기다렸는데! 비싼 돈을 주고 이 곳을 예약했는데! 바위에 앉아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늘이 개어서 햇빛마저 슬쩍슬쩍 오가는데, 우리에게 설마 정말로 TV에서 보듯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태로운 장면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그자마자 슬리퍼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구명조끼를 챙겨입은 서너 명의 꼬마들을 돌려세운 것은 내가 슬리퍼 한짝을 희생시킨 다음이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일어날 뻔했던 비극을 틀어막았으니 우리는 그 날 행운의 돌봄을 받았다. 하지만 철없었던 나는 슬리퍼 한짝을 분실한 것마저도 꽤나 아깝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다는 말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15년 전 폭우로 망쳤던 지옥같은 계곡여행'극한호우'속 예정됐던 4개 강연중 3개 소화 이전까지 익숙했던 '집중호우'나 '호우경보'라는 표현을 넘어선 '극한호우'라는 표현을 처음 듣고 어리둥절했던 그 주에 나는 4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강연 장소였던 서울 동작구로 향하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이해한 1인이 되었다. 폭우 속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정말로 산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지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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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윤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 지면기사
내년 총선은 누가 승리할까?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아니면 제3당? '한 달이 1년'이라는 한국정치에서 7월20일 현재, 총선을 265일 남긴 시점에서 총선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결과를 예상한다면 세 가지다. 국민의힘 승리 또는 민주당 승리 그리고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 없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가진 경우다.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 승리는 한 정당이 국회 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경우다.물론 진행 중인 제3당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다. 이 때 '성공'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을 제외한 제3정당이 1당이 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과반의석을 가졌다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성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정치의 혁명적 상황'이다. 그만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제3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제3당이 캐스팅 보트가 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대다. 이조차도 거대양당의 원심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동시에 제3당이 유권자 요구와 불만의 분출구 역할을 담당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의 총선승리다. 먼저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의 전국선거 3연패의 반전이다. 총선승리의 민주당은 오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승리를 향한 반(反)윤석열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민주당 총선승리가 윤석열 정권의 국민적 심판이다.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로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격화될 것이고 더 이상 대통령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여당은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다음 총선을 위해 독자행보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말이 좋아 독자행보지 대통령과 거리두기 또는 대통령 버리기다. 여권은 각자도생의 시대다.내년 총선 민주 승리땐 '식물정부' 가능성국힘 이길시 선거 3연승 '완벽한 정권교체'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전국선거 3연승으로 '정권교체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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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농단(壟斷)과 천장부(賤丈夫) 지면기사
정보가 권력이다. 정보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정보는 돈이 되고 이익이 된다.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정확한 정보는 투자 성공이 되고, 부동산 시장에서 개발 정보는 곧바로 돈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힘을 이용한다. 깎아 세워 높은 언덕 올라 이득본 자 '멸시'농단도 재주라지만 힘있고 뻔뻔해야 가능문제는 국정·사법 등 권력과 결탁 부당이익공직자들 의심받지 않도록 행실 조심해야'손자병법'에서는 정보를 전쟁의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정의한다.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하고, 물자를 모아 전쟁 준비를 하는데 적의 정보를 모르면 결국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돈과 지위를 아끼지 말라고 강조한다. 용간(用間)은 정보원의 활용이다. 인적정보를 통해 확실한 정보를 얻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고급 정보는 일반 사람의 눈높이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의 시선과 다른 높은 곳에서 보아야 비로소 남들이 못 보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힘쓰는 것이다. 옛날 시장에서 고급 정보를 얻으려는 남자가 있었다.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파는지를 정확히 알면 엄청난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옛날 시장은 현물거래였기 때문에 시장에 물건을 거래하러 나온 사람들이 가지고 온 현물의 공급과 수요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쌀이 넘쳐나면 쌀 가격은 내려갔고 직물이 모자라면 직물 가격이 올라갔다. 이런 정보를 알려면 높은 곳에서 시장 전체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시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언덕(壟·농)에 올라갔다. 그 언덕은 깎아(斷·단) 세운 듯 높은 곳이었다. 농단(壟斷)에 올라가니 시장 어느 곳에서 어떤 물건이 얼마나 거래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이 정보를 이용하여 싼 곳에서 물건을 사다가 비싼 곳에 가서 팔아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천한 남자(賤丈夫·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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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라 지면기사
사람들은 원고료와 인세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나를 가리켜 '전업작가'라고 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책상 앞에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인생의 3분의2를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며 보내고 나니 알겠다. 제 고독과 마주하며 무언가를 쓰는 일은 보람도 없지 않지만 꽤나 건조한 작업이라는 것을! 작가의 일이란 '꿈, 낳기, 창작'이다. 그 일은 '우리를 통해 존재하고자 하는 것들'에게 몸을 주어 존재하게 한다. 현실에서 당장의 쓸모는 없을지라도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사는 동안 가끔 몸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하고 묻곤 했다. 국가재해보험국이란 직장에서 근무하며 퇴근한 뒤에는 자기 방에서 타자기로 소설을 썼던 카프카가 그랬듯이 나는 언젠가 '가구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종일 나무에서 나오는 향내를 맡으며 일하고 싶다는 꿈은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는 솜씨가 좋은 목수였지만 몸을 쓰는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크지 않았다. 현장에서 몸을 쓰며 땀 흘리는 일보다는 '책상에서 펜대를 굴리며' 살기를 갈망하던 아버지는 한 직장에서 진득하니 견디기보다는 여러 번 전직을 하며 옮겨 다녔다. 그렇게 옮겨 다녔건만 아버지는 만족감을 찾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실직으로 빈둥거리며 보낸 세월이 더 길었다.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 하는 자는 무기력하고 비루해 보였다. 내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허황한 일확천금'을 꿈꾸는 아버지의 속내를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가 없었다. 목수였던 아버지의 일확천금 꿈 이해 못해누구나 하는일 괜히 소리치지 않게 애써야 이 세상이 온전하도록 떠받치는 것은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꽃을 피우는 구근식물, 벌과 나비들, 땅에 뿌리를 박고 광합성 작용을 하는 나무들, 그리고 제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자들의 성실함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대장간을 짓고,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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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100세 시대 지면기사
어느 선거일에, 나는 투표소 앞 긴 줄 안에 서 있었다. 하루 종일 줄은 길었고, 코로나의 끝물이라서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남들처럼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아 지루함을 이기며 서 있었는데 문득 투표 진행을 돕는 참관인이 도움을 청했다. "107세 유권자가 오셨습니다. 차례를 양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양보를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표정과 몸짓으로 기꺼움을 최대한 드러내보이며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하러 오신 107세 유권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도착한 어르신을 보고 나는 내가 뻔하고 고루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그분이 들것이나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아주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았고 지팡이조차 짚지 않았다. 다소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앞선 안내가 없었다면 나는 그분이 80대쯤 되셨으려니 짐작했을 것이다. 아니 아무런 짐작조차 하지 않고 그분에게 어떤 관심이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분은 107이라는 깜짝 놀랄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노인 중 하나일 뿐이었다.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1년 6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는 87이라는 숫자가 지금의 107처럼 들렸다. 107세 유권자와 나의 할머니를 겹쳐 떠올리면서 나는 그 사이 사람의 수명과 노년의 활력수명이 함께 길어진 것을 실감했다. 누구나 칭송할만큼 장수하고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머니는 107세 유권자처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운신에 어려움이 없었다."오금이 붙으면 안뒤야."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바지런히 움직였다. 오금이 붙지 않기 위해서 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왔고 쑤시는 어깨를 풀기 위해 관절을 돌렸다. 지금 생각하니 손녀에게 어깨나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셔도 좋았을 텐데,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몸을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았다. "움적거리면 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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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윤석열의 정치적 운(運) 지면기사
아직은 모른다. 유권자들은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시간도 충분하다. 22일 현재 293일 남은 2024년 총선여론의 흐름이다.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더불어민주당 지지'의 여론조사는 모두 28개.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가 25승1무2패로 압도적으로 앞선다. '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힘 지지'는 평균 40.0%, '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는 평균 48.4%다.'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힘 지지'의 여론은 최저 36%였는데 작년 12월 초와 지난 4월 초였다. 최고는 46%로 지난 5월 말이었다. '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은 최저 43%로 지난 5월 초였고 최고는 56.2%로 대통령 당선 1주년 때였다. 28개의 여론조사는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민주당 지지'의 다양한 설문을 시간적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 따라서 장점은 여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단점은 서로 다른 설문의 조사를 동일한 것처럼 간주하는 위험성이다. 총선 민심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 높아'왜 정권 내놨는가' 김은경 혁신위 첫 과제 그래서 동일 또는 유사한 설문을 사용한 일정한 간격의 조사들을 본다. 28개의 여론조사 중 9개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 중 하나는 지난 5월 초부터 2주 간격으로 2회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5월 초순 '지원론 vs 심판론은 44% vs 43%'였다가 같은달 하순 46%로 동률을 이룬다. 가장 최근의 조사로 현재여론의 흐름을 반영한다. 일정 간격의 동일 또는 유사설문의 조사 9개 중 7개는 작년 12월부터 이번 달 초까지 걸쳐있다. 이에 따르면 '국정 지원론'은 '36%, 44%, 42%, 36%, 37%, 39%, 37%'로 이어지고, '정권 심판론'은 '49%, 50%, 44%, 50%, 49%, 51%, 49%'다. 전체적으로 보면 28개 여론조사의 평균(40% vs 48%)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28개의 여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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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명령 거부권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지면기사
인사권자의 부당한 지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가? 부당한 지시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납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작게는 기업과 사회가 부패하고, 크게는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사권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라면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을 살리고, 미래의 더 높은 차원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손자병법'에는 전쟁터에 나간 장군이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 전방의 현장 상황도 모르고 후방에 앉아 측근들의 편협한 의견을 듣고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군주에 대하여 현장의 장군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君命), 따르지 않을 경우가 있다(有所不受)'. 이순신 장군은 무모하게 돌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 나라와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후방 군주의 지나친 간섭과 부당한 지시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기'에는 제(齊)나라 대장군 사마양저(司馬穰저)가 왕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쟁터에 군대가 출정하던 날, 왕이 총애하는 신하 장고(張賈)라는 사람이 군율을 어기고 제멋대로 전횡을 일삼았다. 사마양저는 군율에 따라 참형을 명령하였다. 왕이 이 사실을 알고 사자를 보내 측근인 장고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였으나 양저는 아무리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부당한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장고의 목을 베었다. 그는 군율을 어긴 제나라 왕의 측근 장고의 죄를 물어 처형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장군은 전장에서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임무를 맡아 전쟁터에 나선 장군이 잊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장군은 임명된 날에(將受命之日) 자신의 집안일을 잊어버려야 한다(忘其家). 둘째, 전장에서 군법을 한 번 정하게 되면(臨軍約束) 그때부터 부모도 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