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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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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문명의 기준 지면기사
사람 존중은 '죽음까지' 존중해야'세월호 7년' 아직 진실 안 밝혀져살아있는 아이들 구조도 못했는데희생된 아이들 온전히 추모 못하면우리의 문명 어디로 가고있는걸까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질문을 던진 학생이 기대했던 숫돌이나 무기 따위의 도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드의 설명에 따르면 동물의 세계에서 다리를 다쳤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다리를 다치게 되면 포식자의 공격을 따돌릴 수 없을뿐더러 사냥을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무리를 따라 이동할 수 없어서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리뼈가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그 사람이 회복될 때까지 보살펴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마거릿 미드는 이처럼 다친 사람을 보살펴주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곧 문명을 알리는 최초의 신호라고 이해한 것이다.미드의 말처럼 다친 동료를 보살펴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분명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같은 질문을 고대 동아시아의 맹자에게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마도 그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데서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답할 것이다. 일찍이 맹자는 어린아이가 물에 빠지려고 하면 냉큼 달려가 붙잡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했던 만큼 살아 있는 존재를 보살피는 일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일은 경험과 학습의 결과라고 이해하였다. 그는 상고시대에 사자의 시신을 구덩이에 버린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곳을 다시 살펴보았더니 여우와 살쾡이가 시신을 뜯어먹고 파리와 등에가 빨아먹는 참혹한 광경을 목도하고는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흙을 덮어 시신을 가리게 되었으며 이것이 효자와 인인(仁人)으로 하여금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마땅한 도리를 만들게 하였다고 이야기한다. 맹자는 사자의 시신을 가리는 일이 차마 하지 못하는 불인지심(不忍之心)에서 비롯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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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푸른바다거북의 오디세이 지면기사
석달간 3800㎞ 귀향길 성공한 거북언젠간 제주 모래톱 찾아 산란 기대온 바다에서 멸종 않고 살아갔으면인간은 우주에서 그리워하기 보다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것 궁리해야푸른바다거북은 해양 생물 중에서 가장 신비하고 아름다운 동물의 하나로 꼽힌다.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푸른바다거북은 큰 것은 등딱지의 길이가 150㎝, 몸무게가 200㎏에 이를 정도로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종이며, 자연상태에서 수명이 80년을 넘을 정도로 장수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등딱지가 아름다운 초록빛이라 푸른바다거북으로 불리는 이들은 본래 대서양, 인도양, 지중해, 태평양 등 전 세계의 바다에 고루 분포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동해안 일대에서도 자주 발견될 정도로 흔했다.우리나라 인근에 사는 푸른바다거북은 일본 오키나와 해안에서 알을 낳고 일부는 한반도 남쪽 해안이나 동해안 쪽으로 올라와 서식하는데, 국립수산과학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겨우 26마리가 발견되었을 뿐이며 최근에는 지난 2019년에 죽은 개체가 포항에서 발견된 이래 더 이상 살아있는 개체가 확인된 적이 없다. 이들은 한때 개체수가 수백만 마리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개체수가 급감하여 대부분 국가에서 보호조치가 내려져 있는 상태다.푸른바다거북의 개체수가 급감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광범위한 해양오염이라고 한다. 실제로 폐그물에 걸려 익사하거나 비닐을 해파리로 착각해 흡입했다가 숨이 막혀 죽은 바다거북이 여러 차례 발견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서식처를 보호하고 해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바다거북은 적어도 1억5천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바다 곳곳을 누비며 살아왔다고 하니 6천500만년 전에 공룡이 멸종했던 백악기 말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았고, 기껏해야 몇 백만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인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지구 생물의 주인공 역할을 해왔다고 하겠다. 그런 바다거북이 지금 인간의 무책임함 때문에 생존이 위협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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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외투 지면기사
추위 호소 노숙인에게 벗어준행인이야말로 진정한 가치 입증그에게 말하고 싶다당신의 옷 덕분에 따뜻해진 건노숙인만이 아니었다고…조간신문을 받아들었다. 1면의 왼쪽에는 한 재벌 총수가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널찍하게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오른쪽에 실린 사진은 대번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문의 1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운데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외투를 입혀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풍경을 접하기라도 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아래의 설명을 읽어보았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서울역 광장이었다. 추위에 떨던 어느 노숙인이 광장을 지나던 사람에게 너무 추워서 그러니 따뜻한 커피 한 잔만 사달라고 부탁했단다. 그러니까 사진의 두 사람은 노숙인1과 행인1인 셈이다. 여기까지의 장면은 흔히 있는 일이다. 나도 서울역 광장을 지나다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진이 포착한 장면은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풍경이었다. 노숙인의 청을 들은 그 행인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입혀주고는 지갑에서 5만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내 건네준 뒤 눈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현장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이들도, 나처럼 신문지면을 통해 사진을 본 사람들도 모두 현실감이 없기까지 한 그 장면에 뭔지 모를 상념들이 머릿속을 오갔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눈 속으로 사라진 그 행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다가 러시아의 문호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를 떠올렸다. 페테르부르크의 말단 관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왜소한 체구에 머리가 약간 벗겨진 보잘것없는 외모의 소유자로 동료들로부터 늘 무시당하는 처지였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정직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 수선할 수 없게 되자 새 외투를 사기로 마음먹는다. 외투는 무척 비쌌지만 외투 없이는 페테르부르크의 매서운 추위를 견딜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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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백양사 가는 길 지면기사
금방은 '두시간'·다 온건 '한시간'이후 난 내안의 시간을 조정하고공부와 살아가는 법도 함께 배워비빔밥처럼 삶에도 맛이 있다면'천천히' 해야 누린다는 걸 깨달아오래 전 한창 한문을 배우던 시절 나는 1분 1초의 시간을 아끼며 공부에 매진했다. 오죽하면 내가 잠꼬대를 한문으로 한다며 아내로부터 핀잔 아닌 핀잔까지 들었겠는가. 그렇게 한문 공부에 여념이 없었던 어느 겨울, 나는 머리라도 식히고자 장성에 있는 백양사에 간 적이 있다.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정읍에 도착한 뒤 버스터미널에서 백양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나이 지긋한 운전기사에게 백양사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버스기사 왈,"금방 가."예정된 시간보다 20분 늦게 출발한 버스는 읍내를 벗어나더니 포장도로가 아닌 꼬불꼬불한 산길을 터덜터덜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는데 바퀴에 큰 돌이라도 걸리는지 자주 덜컹거리며 차체가 흔들거리곤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는데도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진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시골 노인에게 백양사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할아버지 왈,"다 왔어!"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백양사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도 더 지나서였다. 그때 나는 시골 사람들의 시간관념이란 도무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금방이라 하고 한 시간도 더 남았는데 다 왔다고 하니 실제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 나는 시골 사람들의 엉터리 시간 관념에 속아 시간을 허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백양사 입구에 도착한 나는 죽 늘어서 있는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가 산채비빔밥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때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배가 고팠던 나는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아 답답한 나머지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이윽고 내가 시킨 비빔밥이 나왔다. 음식을 내오던 초로의 아주머니가 연신 물을 들이켜던 내 모습을 보았는지 이렇게 말했다."젊은 양반, 천천히 드시게."나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비로소 주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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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청년이라는 광원(光源) 지면기사
이웃집에 '위로' 응원 문구 붙이고농촌에서 문화예술 즐기고 싶다는하고싶은게 많은 1999년생 이야기그는 실패 두려움 없이 빛을 내며 생각대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두 학기 째 학생 없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외로움마저 느끼던 차에 한국문화의집협회에서 '생활 인문 릴레이 포럼'에 참석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이야기 나눌 주제가 무엇인지 살펴봤더니 '사회적 유대, 너를 쬐어야 한다'는 제목이 보였다. 바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싶어 냉큼 달려갔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이었다. 문화컨설팅 바라의 권순석 대표가 사회를 맡고 마을운동가 임선이 선생, 그리고 1999년생 해금연주가 곽도연 청년이 초대 손님으로 참여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임선이 선생은 빛고을 광주에서 오랫동안 마을 만들기 운동을 실천해온 분이다.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지난 2005년 광주 북구문화의집에서는 '문흥동 살림살이전'을 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 구석구석을 뒤져서 발견해 낸 모든 것들을 전시했는데 그 중에는 오랜 세월 작성해온 가계부도 있었다. 거기에는 월급이 얼마에 육성회비는 얼마, 버스요금과 전기요금, 두부와 콩나물 가격이 얼마였는지 모두 기록돼 있었는데, 1980년 5월에는 유독 버스비 지출 항목이 없었다고 한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버스를 무료로 운행했다는 사실을 증언한 셈이다. 그곳이 폭동의 현장이라고 보도한 당시 언론보다 평범한 시민의 가계부가 더 정확하게 광주의 진실을 기록한 것이다.대구에서 올라온 곽도연씨는 '동거, 남(=타인)'이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인문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지난 7월부터 집에 돌아오면 힘내라는 응원 문구를 적은 쪽지를 이웃집 문에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문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말한 "내 기분은 내가 정해. 나는 오늘 행복으로 할래", 곰돌이 푸가 말한 "매일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같은 명언들이었다. 때론 그날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노랫말을 적기도 하고 그날 자신의 집에서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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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덕분에 지면기사
대중교통은 혼잡하고 밀폐된 공간코로나19가 전파되기 좋은 환경뜻밖에도 감염사례가 나오지 않아방역당국 아무리 예방 애쓰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노력없이는 불가능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꽤나 북적인다. 외신으로 보거나 전해 들은 다른 나라의 텅 빈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있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드물게 책을 펼쳐 든 이들도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말이 없다.예전이라면 이런 풍경이 괴기스럽게 보였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마스크를 써 표정은 보이지 않고 눈만 보이지만 사람들의 눈빛에서 무언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이 읽힌다. 아마 나 또한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고 보니 아직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나는 이게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 수단은 대개가 혼잡하고 밀폐되기 쉬운 공간인지라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감염 위험이 큰 곳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 수단에서 뜻밖에도 감염 전파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그 까닭을 의료진이나 방역 당국의 노력에서 찾는 것은 합리적이다. 아울러 환경관리 노동자들의 노고 또한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면 그 또한 누군가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을 일일이 닦아내며 소독을 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결국 혼잡한 대중교통 공간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 것은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노력에 더해 환경 노동자들의 노고가 빛을 발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나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이다. 방역 당국이나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아무리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애쓰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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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호우부지시절(豪雨不知時節) 지면기사
때를 모르고 오는 비는 반갑지않다이 비가 그치면 얼마나 피해가 클까고대 동아시아 시대는 재난이 일상국가 부축적도 이들 백성 삶 보듬기지금도 매한가지 공동체 힘 모을때미안하게도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반갑지 않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했는데 이번 비는 그렇지 않아서 잠 못 이루는 이들의 근심이 깊어가기만 한다. 이 비가 그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가지가 꺾이고 얼마나 많은 논밭이 물에 잠기고 또 얼마나 많은 귀한 생명이 떠내려갈 것인가.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재난은 일상이었다. 때마다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삶을 위협하고 급기야 메뚜기 떼가 날아와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먹어치운다. 유학의 경전 '예기'의 기록에 따르면 작은 재난은 3년에 한 번, 큰 재난은 10년에 한 번꼴로 찾아온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나라가 9년 치의 곡식을 비축하지 못하면 부족하다 했고 6년 치의 곡식이 없으면 위급하다 했고 3년 치의 곡식조차 없다면 그런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재난이 닥쳤을 때 백성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재난이 닥치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유학의 이상 정치를 가리키는 말인 왕도(王道)는 바로 이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보살피는 통치원리였다. 맹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제나라 왕이 왕도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홀로 사는 사람(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에서 가장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먼저 보살피는 것이 왕도입니다."맹자가 말한 '환과고독(鰥寡孤獨)' 중에서 '환(鰥)'은 본디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인데, 홀아비는 근심 때문에 밤에도 눈을 감고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것이 마치 물고기와 같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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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 지면기사
美흑인살해 촉발 BLM운동 확산속이들에 맞선 All lives matter시위얼핏 들으면 포괄된 가치의 말이나'발화된 상황' 안맞을땐 조롱의 뜻말은 자격있는 사람이 외칠때 진리지난 5월말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시민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해당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숨지기 직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을 했고 이후 여러 차례 '엄마'를 불렀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찾았던 것이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그 말을 듣고도 "말을 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건데?"라고 조롱하며 무릎의 힘을 풀지 않았고 결국 조지 플로이드의 숨은 끊어지고 말았다.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부르는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은 어머니 앞에서 자식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이 야만적인 살인사건은 한 시민이 소셜 미디어에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관이 백인이었고 살해 당한 시민이 흑인이었기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한국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여 BLM(Black lives matter) 해시태그운동에 동참했다.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는 구호를 외치며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맞섰다.얼핏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보다 오히려 더 나은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의 생명' 안에는 '흑인의 생명'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란 그 말이 발화된 상황과 떼어놓을 수 없다. 어떤 말이 진리에 가깝기 위해서는 그 말이 나오게 된 상황이 그 말과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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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잊지 말아야 할 것 지면기사
코로나로 美 일간지 부고 2배 이상인류 진화사상 죽음의 경고도 의미바이러스와 온몸 투쟁 역사에 동참고대 로마 개선행렬 '메멘토 모리'승자와 모든 산자들에 대한 경계로미국의 어느 일간지에 16개면에 달하는 부고(訃告)가 실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가 많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 한다.기사에 실린 해당 신문의 부고면 사진이 또렷하지 않아 내용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부고면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이라면 저명한 인사들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라면 신문 기사에 이름이 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부고면에는 부고 당사자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삶이 적혔을 법한 짧은 글들이 빼곡히 배열되어 있었는데 지면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신문의 부고면은 일종의 묘비명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묘비명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건 동서양을 통틀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의 '사생활의 역사'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19세기에 접어들어서야 자기 자신만을 위한 독창적인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개별화된 묘비명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이 점은 이름을 각별히 중시하는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해야 세울 수 있는 5천자가 넘은 신도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글자를 새기는 묘갈명이나 묘지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양반 신분 계층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작품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일러야 패관 문학이 유행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이었으며 묘지명을 새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생각해보면 인류는 진화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병원체와 싸우며 삶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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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비누 두 장과 118만원 지면기사
코로나19 발생하자 대구서 '사투' 다큐멘터리 방송 후원품 개봉장면시가보다 배송비큰 비누등장에 떨려암보험 해지해 기부한 지체장애인우리는 '무언가' 넘어서고 있는 것한 달 전 대구 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감염이 대규모로 발생하자 온 나라의 의료진과 소방대원, 자원봉사자들이 대구 경북지역으로 달려가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방송했다.방송 중에 코로나19 환자를 천안으로 이송하는 소방대원들이 출발 전에 기저귀를 챙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취재기자가 환자용이냐고 묻자 그중 한 대원이 해맑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저희들이 사용하는 겁니다. 감염의 우려가 있어 중간에 주유소를 들러도 보호복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는 겁니다."이어서 간호사들이 잠시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콧등에는 다들 밴드를 붙이고 입가에는 마스크 자국이 완연했는데 이마에는 저마다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그들의 주름은 근심의 흔적이 아니라 방호복을 착용한 흔적이다.방송에 따르면 방호복을 입고 움직이면 전신이 금세 땀으로 흠뻑 젖고 고글까지 착용하면 습기가 차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24시간을 3교대로 근무하며 환자를 보살피다보니 코피를 쏟거나 탈진해 쓰러지는 간호사들이 하루에 한 명 꼴로 나온다고 한다.밤샘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한 자원봉사자에게 기자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애초 기약 없이 왔습니다."갓 스물이 된 그 청년은 앞으로 소방대원이 되어 인명을 구조하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했다.대구에 답지한 후원물품을 개봉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따라가다가 작은 종이봉투를 비추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달랑 비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봉투를 연 사람의 손이 잠시 떨렸고 화면을 보고 있던 내 마음도 따라서 떨렸다.아마 저 비누 두 장의 시가(市價)는 배송 비용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