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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민호 칼럼]'자연' 인간과 '국민' 인간

    [방민호 칼럼]'자연' 인간과 '국민' 인간 지면기사

    사람은 자연스러운 소산으로 탄생국가의 재산되고 권리·의무 짊어져청년·장년·노인… 삶의 시간 '훌쩍'어느쪽이 되든 '죽고 사는 일' 없는평화롭고 헛웃음 짓는 세상됐으면드디어 봄이 온 것 같다. 오는 것 같기만 하고 꽃샘추위에 날씨가 한참 흐리고 짓궂더니 이제야 뼈에 스며드는 한기도 가시고 산에 들에 꽃 천지다.진달래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은 저 북한산 진관사 계곡의 진달래꽃 사태다. 진달래꽃은 철쭉과 달리 무더기무더기 피면 제맛 아니건만 이상하게도 진관사 계곡 그늘에 늦게 오는 진달래꽃은 무리져 피어도 헐하지가 않다.언제 피었지 싶게 봉천고개 오르는 언덕에 샛노란 개나리가 황사 공기 속에서도 새 생명다운 빛을 낸다. 나무에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달리는 개나리의 초록빛 없이 노란 꽃들을 보면 그렇게 흔하디흔하건만 천해 보이지 않음은 왜일까 생각하게 된다.봄이라도 계절이 이제 막 바뀌어 천지의 기운이 달라 보이는 요맘때쯤 되면 사람은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구나, 겨울이 아무리 좋아도 역시 봄이 좋아 사람들은 이렇듯 새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려니 한다.봄이 이렇게 온 천지에 다가와 사람들로 하여금 봄빛을 즐기라고, 생명이 새로 맞는 새 계절을 누리라고 할 때, 서울대입구역 사거리를 지나다 보니, 아하, 선거철이구나 싶게 하는 각 당의 운동원들 모습이 보인다.어째서 이렇게 관심이 가지 않는 건지, 아침에도 무슨 무슨 후보들 지지율이며 동정 얘기가 인터넷 다음(daum) 뉴스 기사들 맨 윗단을 장식하고 있었건만,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결말까지 알려주는 유튜브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클릭하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단일화다, 뭐다 해서 꼭 시선이 안 갔던 것만은 아닌데 막상 다 결정되고 보니 이제 뭔가 새로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정신을 가다듬고 이번 선거만은 선거다, 어느 당이다, 누가 맞다 하는 얘기에 정신 다 쏟지 말고 이 아름다운 봄이 왔다 가는 하루하루의 동정에 눈과 귀를 잘 기울여 보겠다고 생각한다.사람은 세상에 날 때 이 세상에 가득한 옷이며 신발이며 어느 하나 가진 것 없이

  • [방민호 칼럼]'강한 자'가 되어라

    [방민호 칼럼]'강한 자'가 되어라 지면기사

    거짓 권력에 나약하게 굴복 안돼한 인간으로 존립해야 하기 때문각인된 트라우마 치유 어렵지만자기 스스로 자신 버리지 않는 한아무도 영원히 고립시킬 수 없다'학원 폭력'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요즈음이다. 이 말은 듣기만 해도 나의 폐부를 찌른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몽둥발이로 살아야 했던 어려운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대학원 가서 힘센 선배 하나가 군대 휴가를 나왔다. 후배들은 이 선배가 반갑다고 신사리까지 나가서 실컷들 술을 마셨다. 1차가 끝나고 2차로 가려고 이동 중에 지금은 없어진 신림극장 앞에서 사달이 났다. 요즘 후배들 '네 가지'가 없다고 일렬횡대 '헤쳐 모여'를 시킨 것이다. 다들 극장 앞에 일렬로 죽 늘어섰을 때 그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뺨을 한 대씩 후려갈기며 내 쪽으로 왔다. 나는 네 번째쯤 서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맞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려고 대학원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일렬횡대는 무너져버렸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시련 아닌 시련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자를 맵게 다스리는 야만적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이런 일은 대학 입학 직후에도 있었다. 같은 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에 왔다고 선배들이 뜨겁게 환영을 해준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 달이나 지났을까, 한국 사회, 특히 학교나 군대 어디에나 있는 이 관행이 고개를 들었다. 선배들이 부른다고, 밤에 기숙사 뒤편 공터에 모이라 해서 가자 바로 앞에서 말한 것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이미 각목이 몇 자루 준비되어 있었고, 일단 엎드려 뻗치라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뜨겁게 친해지려면 이런 통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나는 맞지 않겠다고 일어섰다. 그로부터 동창회는 가깝지 못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자신이 체제를 운영하고 그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를 향해 완력을 휘두르고 아무렇게나 욕설을 내뱉고 술잔을 끼얹거나 뺨을 때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 이렇게 해서도 굽히지 않는

  • [방민호 칼럼]늘 오는 새해가 아니라

    [방민호 칼럼]늘 오는 새해가 아니라 지면기사

    새로움이 새롭지 않아 보일땐 실망올바름이 그렇지 않을땐 고개 돌려모든 변화속 변치않는 진실 있듯이예측 못한 변화 이해하고 타협해야이번 새해만큼은 특별한 해 됐으면새해다. 그러나 매번 오는 새해일 것이니 정녕 새해가 될 만한 생각 없다면 별반 새로울 것 없는 말만의 새해리라.다석 유영모라는 현대 철학자가 있어 신묘한 사상을 펼쳐 놓고 가셨으니 그것을 가리켜 '다석일지'라 하고, 이 '말씀'을 경전 삼아 주석을 붙인 이가 있으시니 그분은 김흥호라는 분이며 그 책이 '다석일지 공부' 일곱 권이다.예부터 예수가 바울 없이 오늘에 온전히 전해질 수 없었을 테요, 공자가 자공 없이 가르침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을 테니, 오늘에도 그와 같은 전도가 있다면 바로 유영모와 김흥호 같은 관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세상의 좋은 가르침은 항상 두 가지 부면을 포괄하는 법이다. 하나는 자기 공부요, 다른 하나는 세상 공부일 테니, 이 두 가지는 완성을 추구하는 사상에서는 서로 불가분리 떨어질 수 없어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부단히, 서로를 지향함을 볼 수 있다.1955년 4월26일부터 이듬해 같은 날까지를 죽음 공부를 하기로 죽음을 살기로 작정한 유영모는 하루하루의 '일생'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의 시문으로 남겨 놓았다. 물론 일지는 그후로도 계속되지만 필자 생각에, 그렇다면 그 '일지'는 미리 정해 놓은 죽음의 날을 향해갈수록 치열하고 뜨거운 것들로 가득하리라 했다.이 다석의 귀한 말씀이 후세대에 전해지지 못할 것을 염려한 김흥호 선생이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 '일지'의 풀이 작업을 1만2천매 원고로 뜨거운 한여름에 마쳐 놓았다 한다. 과연 세상이란 신비로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여기 이런 말이 있다. 1956년 2월7일 다석의 기록에 대한 풀이다."좋은 나라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 문화가 풍성하여야 한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 밥과 말씀이 다 있어야 좋은 나라다. 사람의 입이 많으면 먹이는 일이 가장 큰일이다. 밥을 먹여 놓으면 매번 거짓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더운밥 먹고 식은

  • [방민호 칼럼]미국 대통령 선거를 다시 생각한다

    [방민호 칼럼]미국 대통령 선거를 다시 생각한다 지면기사

    이념 무관 상류층-중하층 '양극화'트럼프가 얻었다는 7300만표 의미총선치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겹쳐부동산값 급등·전세난·코로나 타격'중하층 불만 고조' 간과해선 안돼미국에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민적 투표가 치러진 날은 지난 11월 3일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근 20일이나 지났는데, 과연 차기 대통령은 정해졌다고 할 수 있는가? 공중파나 주요 언론을 보면 확실히 조 바이든이 차기 대통령 당선자인 것 같은데, 유튜브의 '불만' 많은 채널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확실히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늦어도 하루나 이틀쯤 되면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 정해지고 승자와 패자 사이에 어떤 정리 신호들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신에 트럼프 현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며 우편투표다, 도미니언이 어떻다 하고 줄리아니, 파웰 같은 거물급 변호사들을 동원하여 연일 '비정상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어느 쪽이 맞고 뭐가 맞는 건지 모를 지경이라고나 해야 할까? 분명 조 바이든의 승리겠지 하면서도 또 어떤 언론인 말을 들으면 트럼프가 지금 이렇게까지 하는 것도 어느 시점까지는 아주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라고도 한다. 미국 헌법상 부여된 문제제기 절차요 기간이라는 것이고, 왕년에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때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면서 말이다.승부가 어느 쪽으로 낙착이 되든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얻었다는 7천300만표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사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주요 언론은 물론이요, 이번에는 폭스 티비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이런 정도의 득표가 가능했단 말일까? 더구나 이 득표수는 그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때 얻었던 표보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트럼프라면 그가 도전할 때나 처음 당선될 때 공화당에서조차 빈정거리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많은 득표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언론에 비친 트럼프는 그 과장스러운 표정하며 몸짓

  • [방민호 칼럼]북한에서 열린 심야의 열병식

    [방민호 칼럼]북한에서 열린 심야의 열병식 지면기사

    김정은의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인민들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표현북한, 수해·코로나·경제난 '삼중고'뭔가 절실히 원한다는걸 짐작케 해측은지심 솟는것은 어찌할 수 없어며칠 전 북한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열병식이 열렸다. 자정부터 시작된 이 심야의 열병식은 북한의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10월10일은 북한 최대의 명절 가운데 하나다.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다.필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 굉장한 열병식을 보고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은 확실히 과거의 틀에 박힌 군중행사와는 다른 면이 있었고 북한 문제에 관하여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북한의 중앙방송은 한밤의 평양 전경을 카메라를 천천히 옮겨 가며 충분히 보여주었다. 카메라에 비친 평양의 고층 건물들과 널찍한 거리는 우리가 보아오던 평양과는 많이도 달랐다. 비록 건물 층층이 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답게 빈틈없이 구획된 엄숙하고도 장엄한 도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행사를 기다리는 병사들과 인민들의 엄숙한 모습을 몽타주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열병식 행사를 일층 장엄하고도 엄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 방식은 마치 일본의 NHK가 일본 전국 각 절의 신정(新正) 타종을 카메라를 옮겨가며 비추어 주는 것과도 같았다. NHK가 그런 방식으로 일본이 하나의 불국토임을 보여주고자 하듯이 이 열병식은 북한 인민들이 하나임을 보여주고자 했다.한껏 연출된 숭고미를 배경으로 드디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반임을 상징하는 인민복을 입고 다니던 그의 회색 싱글 정장 차림은 그가 스위스 유학파 출신임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 그의 좌우에 늘어선 다른 고위인사들도 군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북한의 분위기를 사뭇 달라 보이게 했다.충격적인 것은 그의 연설 내용이다. 무엇보다 그는 연설 중에 한국인들을 향해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듯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낸다"라고도 했고, "북과 남이 다

  • [방민호 칼럼]자유와 안전의 바꿔치기 - '예외 조치'의 일상화 시대

    [방민호 칼럼]자유와 안전의 바꿔치기 - '예외 조치'의 일상화 시대 지면기사

    장례식장 오래 머무를 수도 없고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재난문자 개인 사생활 보장 희생시켜 '안전' 20년간 한국사회 개방 내달렸지만 폐쇄된 시대… 시민의식 작동해야'코로나19'의 재확산은 우리들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다른 어떤 힘도 해내지 못한 일을 '코로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다 해내고 있다.오늘은 오전이 다 되도록 '안전 안내 문자'라는 것이 하나밖에 오지 않았다. 내용인 즉슨, 9월6일까지 코로나 대응을 위한 수도권 강화 조치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음식점이나 제과점은 21시 이후에는 포장, 배달만 허용된다고 한다.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포장, 배달만 허용되며, 학원과 실내체육시설은 집합이 금지된다고도 한다.어제는 모두 다섯 개의 문자를 받았는데, 오늘 받은 것과 같은 내용 문자 둘에 은평구, 고양시, 동작구 등에서 보내온 확진자 발생 안내 문자들이었다. 어제 고양시에 간 일이 없는데 은평구 가까운 곳이라서 온 것 같기도 하고, 동작구는 확실히 중앙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선배 작가의 모친상을 치르는 장례식장은 출입구부터 체온을 체크하고 방문객 정보란을 작성하고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했다. 벌써 몇 달째 서너 번은 꼭 같은 절차를 밟아 문상을 했고, 조문 이후에는 결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어제는 앞으로 오래 보지 못할 선배를 만나 바깥을 나가 음식점을 찾았지만 대부분 철시 분위기에 그나마 연 곳도 여덟 시 반까지만 영업한다고 했다.그저께는 문자가 세 개가 왔고, 더 며칠 전에는 여섯 개, 그 전날은 여덟 개까지도 받은 기록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니까 재난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상황인데, 하루 확진자가 삼백명을 넘어서고 태풍 '바비'에 '마이삭'이 온다면서 문자 세례는 더욱 빈번해졌다.그전 같으면 미세먼지 안내문자 같은 것을 받으면서도 뭔가 푸코적인 감시의 시선이 나 자신을 따라붙는 것 같은 불안감을 예민하게 의식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이런 문자는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개인의 사생활의 보장을 희생시켜 안전이

  • [방민호 칼럼]새로운 좀비 영화 '반도'의 충격

    [방민호 칼럼]새로운 좀비 영화 '반도'의 충격 지면기사

    개봉 5일만에 180만 관객 흥행돌풍코로나19 대유행 맞물려 가히 리얼현대 두개의 역설 인문학적인 문제산 시체 '좀비' 죽은듯 사는 '무젤만'원한 이념 여전 누가 과연 좀비인가흥행돌풍이라고 한다. 개봉 닷새만에 벌써 18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2016년 유일한 천만 돌파 영화 '부산행'에 이어 이번 좀비 영화도 심상찮은 조짐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떻기에 이런 바람이 불었을까?이 영화는 한반도에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퍼져 난리가 나면서 시작된다. 뭔지 모르지만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좀비가 되는 것이다. 그럼 좀비란 무엇이냐? 하면 간단히 말해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한다. 서인도 제도의 민속 신앙, 부두교 신앙에서 유래한 이 살아있는 시체는 '반도'나 '부산행'에 따르면 영국에 건너간 저 루마니아 괴물 드라큘라처럼 사람 목을 물어뜯기도 하고, 그러면 물린 자도 괴물이 되어 버린다.좀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나머지 한반도는 좀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좀비가 사람들을 물어뜯어 모두들 몹쓸 병에 걸려 정상인들이 다 사라질 정도로 좀비 세상이 되어버린 한반도를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좀비들로 폐허가 된 마지막 피난선을 타고 홍콩으로 건너간 지 4년만에 고립된 한반도로 되돌아가게 된 강동원 분 '정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개체수'가 엄청난 좀비들뿐이다.그런데, 미래공포영화라 할까 액션 스릴러라 할까 모를 이 '반도'는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전한 미래형은 아닌 것 같다. '북한'에서는 한반도 '남한'이 좀비 세상이 되어 버리자 아예 문을 닫아걸어 버리는데, 사실 진짜 좀비들이 더 만연, 창궐하는 곳은 저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이 영화의 한 가지 난센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쪽에 지금 좀비가 창궐하는 것은 사실은 사실이니 크게 나무랄 수는 없다. 아무튼 좀비들, 이 살아있는 시체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르게 한반도를 뒤덮어 서울이며 인천이며 피할 곳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모티프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세계적 현상

  • [방민호 칼럼]이제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방민호 칼럼]이제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지면기사

    '亞 유일 G7' 한국 내려다보던 日코로나19 관련 은폐·축소 드러나美·中·유럽도 내재적 능력 시험대우리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뒤집혀한결 성숙한 문명사 인식적용 필요코로나19의 세계적인 유행,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면서 함께 나타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각각의 문명권과 국가, 사회들의 '내재적' 능력이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미국은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만 십만 명이 넘는 가운데 마흔여섯 살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목이 졸려 죽은 사태로 인해 전국적인 시위, 폭동에 휘말려 버렸다. 미국이 의료보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터다. 그리고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라 보이는 백만장자 대통령에 이번에 나타난 문제들까지 연일 화상에 오르내리고 보면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유럽은 어떤가 하면 이 나라들 역시 만만찮은 약점을 노출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등 유럽 '공동체'를 이루는 주요 국가들이 보여준 코로나19 대응 양식은 스웨덴의 집단 면역 전략의 허실까지 합쳐져 '선진' 제국들에 대한 인식을 자못 뒤바꾸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 희생되었건만, 적절한 방역보다 개인의 자유 운운하는 '한가로운' 주장으로 문명국의 위상을 지탱해 보려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돌출하곤 한다.한국인들이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옆 나라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한국을 35년씩이나 강점했고 패전 이후에도 한국전쟁을 지렛대 삼아 재기에 성공,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유일한 G7 멤버라는 자부심 속에서 한국 사회를 한 단계 아래로 내려다보아 왔다. 한국인들도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악행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더 발전된 사회라는, 그들이 믿는 '신화'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 이후 오래 지속되어온 이 인식의 구조를 이번의 코로나19 사태는 단번에 해체시키고

  • [방민호 칼럼]AC(anno covid-19) 원년

    [방민호 칼럼]AC(anno covid-19) 원년 지면기사

    與 총선대승에도 민심이면은 복잡세월호서 시작 '삶의 혁명'과정 이해정부, 경제·정치적 '무능력' 딛고코로나19로부터 국민 생명 지켜내생존이 척도라는 새 세계체제 서막국회의원 선거가 여당 쪽의 압승으로 정리된 모양새다. 물론 이 큰 승리는 표면이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민심의 흐름, 이면의 움직임은 간단치만은 않을 테다. 그러나 복잡한 민심의 사정이 일단 여당의 대승으로 낙착된 데는 만만찮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고 굴려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힘을 코로나19의 '혁명적인' 의미에서 찾으려 한다.세월호 참사로부터 코로나19까지. 나는 이것을 '삶의 혁명'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배에 갇힌 아이들의 꽃다운 생명이 국가의 음모, 또는 무능력으로 인해 사태 지듯 스러졌을 때 우리들은 도대체 국가란, 정부란 무엇이냐,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지난 정부의 일대 몰락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생명을 저버리는 국가란 어떤 정치적, 경제적 명분을 내세워도 용납될 수 없음을, 세월호 참사로부터 '촛불혁명'까지의 일들은 크게 말해 주었다.정부가 바뀌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듯한 사건들이 줄을 이은 적도 있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정부, 여당에 그렇게 좋지 못하리라고들 했다. 무엇이 이 상황을 바꾸어 놓았던가? 바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였다. 마치 1980년에 광주가 모든 '정치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듯이 이번에는 대구가 '뜻하지 않게' '삶의 혁명'의 실험 무대로 소환되었다. 대규모 감염, 확진자 급증, 신천지 교회, 의료 체계 붕괴 위기 속에서 정부, 여당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비판 여론에 떠밀려 가버릴 듯했다.한 달 '코로나 정국'이 전개되는 사이에 모든 것이 급전되어 버렸다. 중국인들 입국을 금지하지 않아 이 야단이 났다고 야당들이 비난을 가하는 사이에 질병본부와 지자체장들, 그리고 정부는 용케도 확진자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막아냈다. 뒤이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독일…. 급기야 일본으로까지

  • [방민호 칼럼]귀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방민호 칼럼]귀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지면기사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셨던 선생님세상살이·가는 곳 조차 '까다로운'언제나 올곧은 마지막 '선비' 모습이권·속임수… 허깨비 같은 세상속진실된 삶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봐지난 일요일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말기암으로 투병하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영면에 드셨다는 것이다. 바로 금요일까지만 해도 아주 평온한 모습이셨다. 통증이 얼마나 있으시냐고 여쭈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몹시 위중한 중에도 아직 여명이 남아 계시리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그러나, 들으니, 그 다음날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와 댁으로 가시려던 계획도 실행치 못한 채 그만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했다.코로나19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고, 간호사가 쫓아와 자꾸 독촉하는 바람에 단 2분여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허망하고 안타까울 수가 없다.선생님의 말기암 투병기간은 그래도 짧지만은 않으셨던 것 같다. 2018년 8월 말에 당신께 그런 악독한 병종이 자리를 잡은 사실을 뒤늦게 아셨다. 항암투병에서 호스피스 병동에 드시기까지 1년6개월여를 굳세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셨다.낮에 대전에서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급한 일들을 되는 대로 해치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였다. 차를 바로 앞 주차장에 세우지 못하고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려 하니 체온 재고 출입기록관리하는 사람이 마스크를 가져왔느냐고 묻는다. 몹시 허둥대는 바람에 차 안에 마스크를 버려두고 뛰듯이 서둘렀던 것이다.이날 따라 바람은 왜 이렇게 맵찬지, 서울 상경 길부터 이십 년래 처음 겪어보는 강풍이었다. 두 번 걸음으로 마스크를 가져오는데 거센 바람이 허술한 옷 속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겨우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고 기록을 남기고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빈소로 향했다.흰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절을 드리는데도 슬픔이고 뭐고 느낄 겨를이 없다가 낮에 소식 전해 주신 분을 뵙자 그때야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코로나19든 뭐든 선후배들 오신 분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