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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h+] 시침과 분침

    [with+] 시침과 분침 지면기사

    내가 최초로 배운 지식은 '시계 보는 법'이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방 두 칸을 연결하는 마루가 있고, 마루 끝에는 간유리가 끼워진 유리문이 있는 집. 나는 나무마루에 앉아 반사되는 햇빛을 받으며 엄마로부터 시계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방마다 보름달 만한 시계가 걸려 있고 마루에는 추까지 달린 괘종시계가 있었지만 그 사물의 기능에 대해서 전에는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계 보는 법을 배우던 오후에 그 사물에는 새로운 생명력, 모종의 신성한 임무라고 할 것이 부여되었다. 엄마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12시와 3시, 6시, 9시를 나타내는 표시를 하고 길고 짧은 막대기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여섯시고, 이건 아홉시고…" 이해가 가지 않았음에도 시침과 분침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각도는 신비로운 도형이나 기호처럼 매혹적이었다. 나중에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으면서, 집시 멜키아데스가 들고 온 나침반에 열광하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에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진하고 열광적인 태도는 내가 시계 보는 법을 배우던 모습과 유사했다. 시간이 훌쩍 흘러, 초등학교 2학년인 내 딸은 이제야 시계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 엄마와 달리 나는 딸에게 시계 보는 법을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다. 시계가 알려주는 메시지란 대체로 독촉이 아닌가?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는 게 더 편한 아홉 살 인생은 내버려 두자고. 이렇게 중얼거리다 문득 깨닫고 보니, 우리 집 벽시계들은 전부 숫자가 없고 눈금뿐이다. 엄마가 그려가며 알려준 '시계보는법'시간흘러 자명종 못읽는 딸 가르치며특정 시기의 '무지' 신비롭게 느껴져자라는 모습보며 생기는 '기억의 눈금'다가올 '앎' 기다리는 마음 경이롭다 당연히 딸은 숫자가 박히지 않는 시계는 읽지 못한다. 그래서 숫자판이 있는 자명종을 들고 온다. 이때부터 '지금이 몇 시인지'라는 퍼즐풀이가 시작된다. 딸의 추리 과정은 이럴 것이다. 1)엄마가 묻는다. "이숲아, 지금이 몇 시

  • [with+] 추모와 애도에도 '공간'이 필요하다

    [with+] 추모와 애도에도 '공간'이 필요하다 지면기사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더니 요 며칠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시 구절이 떠오르는 파란 하늘의 연속이다. 꼭 푸르른 날이 아니어도 그리운 사람이 생각날 때가 있다. 떠나간 사람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면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차 한 잔을 마셔보기도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만약 납골당이나 묘지 외에 다른 곳에서도 함께 그 사람을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꼭 누군가를 추모하거나 애도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납골당·묘지외 추억 잠길 곳 있으면英 '메모리얼 파크' 평범한 동네 공원세상 떠난 아이들 기리지만 친근해 몇 년 전, 영국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장소가 있다.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손쉽게 만질 수 있을 만한 키 낮은 가로등에 색색의 풍선이 매달려 있었다. 영국에 공원이 워낙 많긴 하지만 이런 가로등이 있는 공원은 흔치 않다. 공원을 걷다보면 한쪽에 작은 수로가 조성되어 있다. 맑은 물속에 누군가의 이름을 새긴 돌들이 가득하다. 모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다. 수로 주변에는 오늘 아침에 꽂아두고 간 것처럼 싱싱한 꽃다발들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고 '내 정원에 온 걸 환영해요(Welcome to my garden)'라고 적힌 돌 옆에 활짝 웃는 아기의 사진이 함께 자리한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적은 편지도 꽃다발 옆에 꽂혀 있다.이 공원은 영국 미들랜드 지역 버밍엄에 위치한 '메모리얼 파크'로, 일찍 세상을 떠난 발달 장애 아이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발달 장애로 가족을 잃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편하게 공원에 올 수 있지만, 공원 곳곳은 먼저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엄숙하거나 경직되어 있지 않고 관리와 통제를 받는 공간이 아닌, 평범한 동네 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구석구석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있고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공간

  • [with+] 전함의 노예 백대붕 시인

    [with+] 전함의 노예 백대붕 시인 지면기사

    백대붕의 출생년도는 불분명하지만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이나 '학산초담(鶴山樵談)'의 기록에 의하면 허봉이나 심희수 등과 더불어 터놓고 사귀었다고 되어 있다. 그 기록을 참조한다면 아마도 1550년 전후에 태어났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군함의 노를 젓는 전함사의 노예라고 밝히고 있다. '술에 취해 수유꽃 꽂고/혼자 즐기다가,/산에 가득 밝은 달빛 물드니/빈 술병 베고서 누웠다네./길 가던 사람들아, 무엇하는 놈인가/묻지를 마소./티끌세상에서 세어진 머리 전함사의 종놈이라오.'라고 노래한 것을 보면 전함사의 노예인 것이 분명하다. 때는 음력 9월9일, 상서로운 날인 중양절(重陽節)이었을 것이다.자신의 시에서 천민 신분 밝혀같은 처지 시인들과 모임 주도 이날에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차거나 산수유 가지를 머리에 꽂고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백대붕은 붉은 산수유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어 머리에 꽂고 국화주를 마셨을 것이다. 어느덧 술을 다 마시고 빈 병만 남았을 것이다. 그 병을 베고 누우니 어느새 아흐레 둥글게 차오르는 달이 떠올라 온 산에 달빛이 가득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분노와 절망의 고함이었을 것이다. '지체 높은 놈들아,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전함사의 종놈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시의 제목은 '동유주(東遺珠)', '대동시선(大東詩選)', '소대풍요(昭代風謠)' 등에는 '9일(九日)'로, '기아(箕雅)'에는 '취음(醉吟)'으로 되어 있다. '9일(九日)'이라는 제목은 중양절의 날짜를 드러낸 것이고, '취음(醉吟)'은 국화주를 마시는 중양절의 풍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취음(醉吟)'이라는 시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대붕은 같은 천민인 유희경과 서로 시를 주고받았는데 책 한 질이 될 만큼 많았다. 백대붕과 유희경은 같은 처지의 위항 시인들을 모아 '풍월향도'라는 모임을 이끌어나갔다. 17세기 중엽은 사대부들의 폐쇄적인 시단에 하층계급 출신의 위항 시인들이 대거

  • [with+]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랜마호텔

    [with+]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랜마호텔 지면기사

    연남동 작은 카페에는 선생님 두 분이 먼저 와 있었다. 시인 한 분, 소설가 한 분.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왔고 나는 포크보다 생맥주잔을 먼저 들었다. 더워도 너무 더운 날이었다. 땀을 식힌 다음에야 나는 가방에서 책 두 권을 꺼냈다. 두 분께 드릴 선물이었다. "요즘 출판사들은 진짜 책 너무 예쁘게 만드는 것 같아. 정말 공들였네." 책을 쓰다듬으며 소설가 선생님이 한 말에 시인 선생님이 투정처럼 말했다. "몰라. 미안해. 난 안 보여. 눈이 너무 나빠졌어." 이젠 책보다 노안 이야기가 더 재밌다. 다초점 안경은 어디가 잘하는지 묻고, 큰 글씨 책은 자존심 상해 못 사겠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생전 안 보던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도 이제는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본다. 종이 넘기는 재미 없이 무슨 책을 읽느냐 생각했던 나인데도 글씨를 마음껏 키워볼 수 있는 전자책이 요즘은 종이책보다 편하다. 그래서 전자책을 처음 읽던 시기, 나는 걸핏하면 손가락에 침을 묻혀 태블릿을 넘기곤 했다. 소설가 선생님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비닐봉지엔 오이와 고추, 감자가 들어있었다. "강릉에서 보내온 거야. 가져가서 먹어." 나는 고맙다고 냉큼 받았다. 만날 때마다 선생님은 뭐든 한아름씩 안겨준다. "선생님! 우리 10년쯤 더 나이 들면 매일매일 친구들 불러다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그렇게 설렁설렁 같이 늙어요. 소설이랑 시 얘기나 하면서 그렇게요." 내 말에 선생님이 대답했다. "어? 나 벌써 그렇게 사는데? 만두 백개씩 빚고 김장 80킬로씩 해. 친구들 먹이는 재미로 살거든. 서령도 우리 집 놀러와!"친구·선후배들 하루 멀다하고 초대제라늄·금잔화 핀 마당서 소맥 말고3층짜리 건물 사 식당에선 낭독회… 나는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잘 웃고 잘 노는 수다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친구들과 선배들, 글 쓰는 후배들을 하루가 멀다고 집에 초대해 제라늄과 금잔화 잔뜩 핀 마당에 상 펴고 앉아 소맥을 마는, 웃기고 이상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집에 손님들이 하도 많이

  • [with+] 건축가 정약용과 김동훈

    [with+] 건축가 정약용과 김동훈 지면기사

    정약용과 김동훈은 시대를 달리하는 건축가다.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고, 김동훈(1955~)은 현재 대학교수 출신으로, 이 둘은 200여년이라는 역사와 시대를 넘나드는 인물이다. 수원에서 획기적인 건축물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실행한 건축가로서 정약용과 김동훈은 공통점이 있다. 정약용의 수원화성 축성과 김동훈의 수원시 연화장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의 성곽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방어기지로서 백성들의 안보와 치안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근대적 건축물이다. 반면 혐오시설에서 향수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은 수원시 연화장은 무연, 무취시설로서 망인과 유가족을 위한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전위시설의 현대적 건축물이다.이러한 건축물의 배후에는 정치·문화적으로 발현하고 주관한 현자를 찾을 수 있는데 수원화성의 정조대왕과 수원시 연화장의 고 심재덕 시장이다.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이장하면서 왕권 강화와 함께 안전하고도 새로운 정치적 무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신도시의 축성을 설계하고 감리할 수 있는 정약용이 발탁되었고, 정약용은 10년 예상되는 공사를 2년 반 만에 완공하고 공사비용도 4만냥을 절약하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수원화성은 문화적 기능과 예술적 가치까지 추가되어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 미래의 인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수원서 건축물 설계 실행한 공통점정약용은 수원화성·김동훈은 연화장백성·나라… 지역 중요시했던 철학 장사문화인 매장과 다르게 화장에 관한 인식은 2001년 수원시 연화장 개장 전후로 바뀐다. 수원시 연화장이 있기 전에 화장은 무연고자 또는 가난하고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망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이 같은 화장 풍토를 첨단시설을 통해 장사문화의 패러다임을 있게 한 인물이 심재덕 시장이고, 김동훈은 연화장의 선진적 설계를 한 장본인이다. 다만 이것은 정치적 발탁이 아니라 공모전을 통해 민주적 채택 방식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38.5% 화장률에 지나지 않던

  • [with+] 무탈함의 행복

    [with+] 무탈함의 행복 지면기사

    인간의 행복과 재산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돈 걱정이 없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재산 축적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 행운이 있으면 액운이 따르게 마련일까. 복권 당첨자가 이전보다 불행해진 사례가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소개된다. 돈이 화를 부른 경우다. '로또 복권 1등 당첨되어도 불행해지지 않는 법'이란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있을 정도이니, 거액이 생기면 오히려 불행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 같다.유산이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는데 동네 사람 중에 부모의 유산이 생기는 바람에 등지게 된 형제들이 있다고 한다. 삼형제가 의좋게 지내다가 7천만원쯤 되는 유산분배문제로 멀어졌단다. 장남은 장남이라서 본인 몫이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머지 두 형제는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단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 형제는 유산을 나누지 못한 채 명절에도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여러가지 조건 두루 갖추기 힘드니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어려운 모양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야 하므로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필요하리라. 돈 걱정이 없어야 하고, 형제간이나 친구 간에 인간관계가 원만해야 하고, 몸이 건강해야 하고, 직업 만족도가 낮지 않아야 하고, 결혼을 한다면 믿음이 가는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속을 썩이는 자식이 없어야 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낼 취미가 있어야 하는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기 힘드니 행복하게 사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반면 우리가 불행해지기는 얼마나 쉬운가. 최근 내가 집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일이 있다. 어느 날 몇 분 간격으로 쿵 하고 큰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서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추측해 보건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라 이웃집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 같았다. 아마도 창문을 열어 놓고 모두 외출하여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바람 때문에 방문이 닫혔다 열리고 다시 닫히기를 계속 되풀이되는 듯했다. 우리집이 12층 아파트인데 문제는 어느

  • [with+] 여름의 맛

    [with+] 여름의 맛 지면기사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딸은 물속에 들어가 있고, 나는 글 속에 들어가 있으나 둘 다 절반 정도 몸을 밖으로 내놓고 머리만 익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깊이가 일 미터 남짓한 간이 수영장에서 사방으로 물을 튕기며 즐겁게 첨벙거리는 딸을 보고 있으려니 내 글쓰기도 저렇게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 역시 10매 가량의 글을 붙들고 있으면서 온 사방에 단어란 단어는 죄다 흩뿌려놓은 채 허우적거리다가, 멍하니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연주 동영상을 재생하는 것이다. 17세 소년의 무서운 몰두를 보면서 오래가지 않는 반성의 채찍질을 한번 휘두르며, 억지로 종이 속에 뛰어든다. 아아, 수박이나 먹고 싶다….시고모님이 펴낸 요리 산문집 도착시어머니·둘째 고모의 엄청난 손맛 문득 한 권의 책이 도착한다. 시고모님이 내신 요리 산문집이다. 시를 쓰는 둘째 고모는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오고 목소리는 성악가같은 분으로 결혼 전에 시부모님보다도 먼저 만나 뵙던 분이다.속초가 고향인 남편을 만나면서 서울토박이인 내게는 바닷길이 열린 셈이 됐는데, 그 길에 가장 먼저 떠내려온 것은 다름 아닌 음식이었다. 우선 홍게가 있다. 시아버지가 현역 선장님이던 시절, 나는 이 비싸고 귀한 홍게를 물릴 때까지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백골뱅이와 소라는 덤이다. 그 외에 도치 알탕이며 도루묵조림, 총알 오징어와 가자미 식혜를 비롯해 난생 처음 먹어보는 물고기들, 온갖 나물과 해초무침, 이 모든 것을 제압하는 여왕같은 김치를 맛볼 수 있었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싱싱하고 다채로운 식재료를 엄청난 손맛으로 요리하는 시어머니와 둘째 고모의 음식솜씨 때문에 제사 때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고 가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 된다. 남편에게 반한 것도 사실은 남편이 해준 요리 탓이 크다. 그런데 책을 넘기니 그 요리의 근원이라고 할까, 맛있는 음식이 뚝딱 만들어지는 손들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길이 보이고, 그 끝에 돌아가신 시할머니의 모습이 나온다.'작가가 나온 집은 망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자기 집안사를 낱낱이 글에 써먹

  • [with+] 새로운 공간의 시대

    [with+] 새로운 공간의 시대 지면기사

    최근 '프롭테크(proptech, 부동산 자산과 기술이 합쳐진 단어로 첨단 정보기술과 부동산 서비스가 결합한 것)' 컴퍼니가 부쩍 늘었다. 직접 돌아다니는 '발품' 대신 휴대전화를 이용한 '손품'이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공간을 중개하는 플랫폼들도 다양해졌다. 이 지면에서 소개한 바 있는, 취향이 담긴 개인 공간으로 낯선 사람들을 초대하는 '남의 집' 서비스도 대규모 투자를 받는 등 몸집을 키우며 영역을 확대 중이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사무실과 상가 등 기존 공간들의 공실률이 올라가고, 임차인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공간 플랫폼뿐만 아니라 관심사나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졌다 흩어지는 '스팟 살롱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도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간을 소유하기보다는 한 시간 동안 쓰더라도 내가 원하는 공간을 찾아 이용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원룸에 거주하고 있어 자신들의 취향과 수요에 맞춰 공간을 사용하기 어려운 MZ세대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터조차 뮤직비디오 촬영장으로 인기가 많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N잡러로서의 활동을 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인 것이다.첨단 정보기술·부동산 서비스 결합최근 '프롭테크' 컴퍼니 부쩍 늘어소유보다 취향 중요한 MZ세대 특성 코리빙(Cooperative+Living, 공용 공간과 문화 시설을 공유하며 여러 입주민이 생활하는 주거 공간) 하우스, 코워킹 스페이스(공유업무공간), 커뮤니티 스페이스처럼 기존의 공간 구분과 다른 공간들도 속속 등장 중이다. 실제 공간 중개 플랫폼들을 살펴보면 공연장, 회의실, 세미나실, 콘퍼런스, 갤러리, 녹음실, 독립오피스, 강의실, 운동시설처럼 대관을 할 법한 공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티룸, 연습실, 촬영스튜디오, 스터디룸, 공유주방, 레슨연습실, 렌털스튜디오, 라이브방송, 보컬연습실, 호리존, 스몰웨딩, 악기연습실, 실외촬영, 비상주서비스, 기숙사·연수원, 글램핑, 팝업스토어… 마치 모든

  • [with+] 관노 어무적(魚無跡)의 시편들

    [with+] 관노 어무적(魚無跡)의 시편들 지면기사

    어무적은 관노였다. 관청에서 부리는 노비였던 그는 가난한 백성들의 탄식을 귀담아듣던 시인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어변문이며 아버지는 사직(司直) 어효량이다. 사직은 무반직으로 정도전의 주도로 군제를 개편하면서 훈련관의 종5품을 이르는 벼슬이다. 관직에 있던 어세겸과 어세공과는 육촌형제다.어머니가 관비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어효랑의 배려로 보인다. 어무적은 어려서부터 시재가 뛰어났다.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절간을 지나면서 시 한 수를 읊었다. '청산도 손님 오자 예절을 차려, 머리에 흰 구름의 갓을 썼도다(靑山敬客至 頭戴白雲冠)'라는 시였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시의 재능은 뛰어났으나 서얼이어서 과거시험과 같은 신분 상승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할아버지 때 김해로 내려갔으나 아버지는 사대부였지만 어머니가 관노비여서 법의 규정에 따라 어무적은 관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관노였던 그가 어떻게 노비의 신세를 면하게 되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서얼이었던 그에게 신분에 맞게 주어진 미관말직이 율려습독관(律呂習讀官)이었다.가난한 백성 탄식 귀담아 듣던 시인상소문에 힘겨운 삶 잘 드러나 각별 어무적은 1501년(연산군 7년), 김해에서 백성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생활고를 낱낱이 밝힌 상소문을 임금에게 올렸으나 무시되고 말았다. 상소문에는 지배계급의 향락 근절과 민생의 보호와 임금의 군주다운 자세의 확립과 선비의 각성, 그리고 언로의 창달을 위한 간절한 뜻을 담았었다. 이를 신유상소(辛酉上疏)라 하여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7년 신유 7월 을해조(乙亥條)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선조 임금은 지방수령들의 폐습과 악행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올라오는 상소문을 빼놓지 않고 읽었다. 특히 어무적의 상소에 백성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 각별하게 다루었다. '어무적의 시에 궁궐에선 백성 걱정해 조서를 늘 내리는데, 주현(州縣)에서 한낱 그저 종이로만 전해 받는다고 노래하고 있으니 옳은 지적이로다. 나라의 폐습이 그러하니 드러나는 대로 죄를

  • [with+] 총각 아저씨

    [with+] 총각 아저씨 지면기사

    여섯 살 때 우리 집 사랑방에는 '총각 아저씨'가 살았다. 부엌이 딸리지 않은 방이라 사람들은 총각 아저씨들이 사는 문간방을 '잠자는 방'이라 불렀다. 그래서 제철소 앞 사택단지 우리 동네에는 전봇대마다, 대문마다 '잠자는 방 있음'이라는 벽보가 자주 붙었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서야 잠자는 방을 떠났고 그러면 다른 총각 아저씨가 그 자리를 채웠다. 여섯 살 봄, 우리 집에 왔던 총각 아저씨는 조금 특별했다. 다정하지도 살갑지도 않았고 제철소에서 돌아오면 내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좁은 문간방에선 유화물감 냄새가 풍겨나왔고 가끔 열리는 문틈으로 보이는 캔버스들. 그래, 나는 그 캔버스들이 참 궁금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다정하지도 살갑지도 않아서 나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월급날이면 웨하스나 알사탕 한 봉씩 사다 주던 다른 총각 아저씨들과 달리 말이 없던 화가 아저씨는 나한테도 별 관심을 준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서령아, 불렀다. 농담 같지만 그 목소리가 나는 기억난다. 서령아.나는 마루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스케치북을 펴 중간에 가로선을 길게 쭉 긋고(그건 벽과 바닥의 경계선이었다) 아이 셋과 어른 둘을 그렸다(그건 우리 가족이었다). "아저씨가 뭐 하나 가르쳐줄까?" "뭘요?" 아저씨는 내 스케치북 한 장을 넘겨 새 종이를 편 뒤 선 세 개를 그었다. 먼저 세로선을 위에서부터 3분의 2 지점까지 긋고, 그 선 마지막에서 가로선 하나를, 그리고 사선을 그었다. 이게 뭐지? "이게 뭘까?" 아저씨는 종이를 들어 올려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잠시 바라보던 내가 아! 탄성을 질렀다. 그건 놀랍게도 '방'이었다. 가로선 하나로 내가 긋던 벽과 바닥이 아니라 벽이 두 개고 바닥이 있는, 어떤 공간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바닥을 들어 입을 막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평평한 종이 안에 공간이 있다니!문간방서 그림 그리던 '특별한 사람'어느 날 스케치북에 가르쳐준 선 3개종이 위에 만들어진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