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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h+] 친절하다는 착각

    [with+] 친절하다는 착각 지면기사

    인천공항서 수레 끌며 먹고사는 일"비켜주세요" 대부분 사람들 무반응걸린 수레를 살짝 들어주는 여행객감사할것 없다는듯 쿨한 모습 멋져힘들기만하다 친절이 이렇게 달다시 쓰기로 먹고사는 일이 여의치 않아 인천국제공항에서 수레 끄는 일을 하고 있다. 커다란 화물트럭이 한가득 상품을 실어오면 그걸 내려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면세점의 요청에 따라 상품을 수레에 실어 가져다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다. 200㎏ 이상 실은 수레를 끌며 수백 미터로 펼쳐진 대리석 바닥을 하루종일 오가야 한다. 처음엔 발바닥이 칼로 찌르듯 아팠다. 신발의 쿠션이 충분하지 않은가 싶어 신발을 몇 차례 바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발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리석 바닥은 너무 단단하고 수레는 너무 무겁고 공항은 너무 길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 발바닥이 압력에 적응하고 발의 하부를 단단한 근육으로 채운 후에야 통증은 사라졌다.무거운 수레를 끄는 일은 관성의 법칙을 체험하기 좋은 일이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는 멈추기 어렵고 멈춘 수레는 다시 움직이기 힘들다. 수레를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려면 끌고갈 때 보다 몇 배의 힘을 더 내야 한다. 그리고 수레가 다니는 길은 면세점 쇼핑을 위해 수많은 여행객이 오가는 곳이다. 수레가 사람과 부딪히면 큰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사람이 붐비는 구간을 지날 때는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짐을 가득 실은 커다란 수레가 지나가면 모두가 알아서 비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앞을 거의 보지 않는다. 화려한 명품 브랜드 상점의 전시된 상품들을 고개 돌려 바라보며 걷거나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며 다가온다.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것들에 눈을 맞춘 채 무작정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앞쪽으로 가져오기 위해 "잠시만요"라고 부드럽게 말하며 지나갔다. 큰소리로 말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기분이 상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반응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상품들은 빛을 발하지만 대비되는 풍경을 더욱 어둡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마트

  • [with+] 십 년 만에 작업실

    [with+] 십 년 만에 작업실 지면기사

    출산 이후론 사라진 '당연한 공간'예전의 오피스텔 맞은편 새로 계약한권씩 묶일 책들 생각하면 실웃음딸도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쁜손길매주 한번씩 복층서 같이 자야겠다스마트폰 인터넷뱅킹 앱을 켜놓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각각의 통장을 들고나는 액수를 가만히 본다. 한 달에 얼마큼씩 빠지면 티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 화면에 도도독 찍힌 잔액 중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은 얼마큼일까. 물론 그런 액수란 애초 존재하지 않겠지. 잔액이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지 들어내서 좋은 액수란 없는 거니까. 그래도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곰곰 계산했다.하지만 내 계산 따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피스텔 임대인의 마음이다. 뱅킹 앱을 접고 다시 부동산 앱을 켰다. 양재역 뱅뱅사거리 근처 오피스텔 월세는 만만치 않다. 게다가 관리비까지 보태야 하니 말이다. 나는 작업실로 쓸 오피스텔을 구하는 중이었다."네가 왜? 작업실을 왜 따로 구해?" 친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집에 어엿한 서재가 있다. 커다란 책상이 두 개나 있고, 편백나무로 짠 책장이 있고, 편안한 의자도 있다. PC도 새로 세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작업실이 필요할까. 나는 우물쭈물하다 친구에게 대답했다. "그냥, 갖고 싶어서." 그런 거다. 그냥 나는 작업실이 갖고 싶은 거다. 내 대답이 나도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작업실은 구해야겠다. 평소 갖고 싶은 것이 많아 카드빚 쌓는 사람도 아닌데, 내 인생에 작업실 하나쯤 선물하는 게 뭐 어떻다고.끝내 오피스텔 계약을 마치고 이번에는 평면도를 들여다 보았다. 소설을 쓰는 책상은 창가에 두고, 그림 작업을 할 긴 책상은 가운데에 두고…. 그렇게 색연필로 표시를 하고 있으니 열 살 딸아이가 참견을 한다. "이건 뭐야? 이 네모난 건?" 아이가 가리킨 건 복층 도면이다. "그건 이층이야. 거긴 매트리스 두고 가끔씩 피곤하면 누울 거야."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층이 있다고? 여기가 이층집이라고?" 엄마

  • [with+] 기억의 날개

    [with+] 기억의 날개 지면기사

    나를 무아경에 빠지게하는 '나비'기억이 활짝 날개를 젖히는 순간몰두했던 밤 생생하게 되살아나시간을 안 믿지만 부디 탈출하는 멋진 순간 새해엔 더많이 만나길최근에 쓰고 있는 소설에는 꿈과 현실이 반대로 작동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현실이 진창일수록 꿈속이 찬란해지는 주인공은 어느 날 거래를 하게 되고…. 독자들이 나중에 읽으셔야 하니까 이하 내용은 생략, 아무튼 지금 내게 필요한 자료는 독특하고 풍성한 꿈들이다. 그래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강력한 꿈, 사실상 유래가 있는 꿈, 꿈꾼 지가 너무 오래되어 어느 순간부터 소설가의 언어로 오염된 꿈들을 캐고 있다. 그러다 꿈과는 상관없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십여 전에 해외 레지던스 작가로 선정되어 쿠바에 3개월간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이들과 2박 3일간 동행했다.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K, 그녀의 다섯 살짜리 아들 J, 일 때문에 이들 모자와 함께하는 대학을 갓 졸업한 R. 이 세 명과 어느 리조트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듣자니 하루에 2만5천원만 내면 숙박은 물론 식사와 수영장, 무제한의 맥주와 닭튀김이 제공되는 리조트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리조트 앞 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며 물에서 나오지 않았고, 닭튀김도 실컷 먹었다.저녁이 되자 일행은 태양과 수영에 지쳐 일찍 곯아떨어졌다. 선잠에서 깨어난 나는 살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와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았다. 야자수 너머 달이 떠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밴드의 음악이 들려왔다. 라틴 특유의 시끌벅적하고 쿵짝거리는 리듬, 춤추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아득히 메아리쳤다. 내 옆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키 큰 화초가 서 있었는데 달빛을 받아 음영이 칼날처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큰 창처럼 보였다.몸에서 잠과 더위가 빠져나가자 미지근한 욕망이 고였다.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욕망. 다행히 늘 들고 다니는 펜이 끼워진 수첩이 손에 있었다. 쓸 것은 오로지 묘사뿐. 우선 숙소의 일행이 떠올랐다. 나무로 만들어진 방갈로 안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엄마와 아들, 젊은 처녀의 잠은 탐욕스럽고 적나

  • [with+] 만학의 김득신

    [with+] 만학의 김득신 지면기사

    59세 과거 급제 조선 대표 만학도80세 생마감 때까지 책 놓지 않아김홍도·신윤복 함께 3대 풍속화가'파적도'엔 긴장감·역동성 느껴져그는 둔재였으나 노력으로 극복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조선의 대표적인 만학도이다. 그는 회갑이 다 된 59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8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전한다. 백이전은 1억1만3천번을 읽었고 노자전은 2만번을 읽었으며 중용서는 1만8천번을 읽었다. 사기(史記)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밖에 유종원, 주책, 중용서, 목가산기, 백리해강을 수없이 읽었다.백이전을 읽은 것은 글이 드넓고 변화가 많아서였고 중용서를 읽은 것은 이치가 분명하기 때문이었고 유종원을 읽은 것은 문장이 정밀하기 때문이었고 목가산기를 읽은 것은 웅혼해서였고 백리해강을 읽은 것은 말은 간략한데 뜻이 깊어서였다. 그는 자신이 노둔함을 알아 매일 같은 책을 읽으면서 횟수를 일일이 기록했다고 전한다.김득신이 태어날 때 아버지 김치가 꿈에 노자를 만났다고 한다. 아이 이름을 노담 혹은 몽담으로 지었다. 그러나 신통한 태몽을 꾸고 태어난 아이는 머리가 나빴다. 열 살이 되어서야 글공부를 시작했고 공부가 늘지 않았다. 주변에서 저런 둔재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렸지만 아버지는 화 내지 않았다. 아들이 노자의 정령을 타고 났으니 반드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김득신은 10대 후반에 도화서의 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화원으로서의 활약은 순조 대까지 이어졌다. 그는 김홍도,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화가이기도 하다. 김득신의 본관은 개성이고 자는 현보, 호는 긍재(兢齋), 홍월헌(弘月軒)이다. 1754년(영조30)에 출생하였다고 전하지만, 큰아버지 김응환(1742∼1789)과 나이 차이가 12살밖에 나지 않는다. 둘 중에 한 명의 생몰연도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김득신이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 문헌은 1772년(영조 48)에 편찬된 '육상궁시호도감의궤(毓祥宮諡號都

  • [with+] 뻔뻔한 회장 김건우

    [with+] 뻔뻔한 회장 김건우 지면기사

    동화책 속 건우는 '특별한 아이'딸은 "이상한 아이야" 라고 말안해특수학급 다니는 딸 친구 준규를연민했는지 키링선물후 마구 변명난 더 잘크려 다시 한번 책 펼쳤다잠깐 놀고 들어오겠다던 아홉 살 딸아이가 도통 들어오지 않아 집 앞 놀이터로 나가보았다. 미끄럼틀에 대롱대롱 매달려 집에 올 생각이 없다. "조금만 더 놀고!"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별수 없이 벤치에 앉았다. 찬 바람이 부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놀멍'을 하는 시간은 정말 재미가 없다. 그냥 두고 나는 들어갈까, 생각하던 참에 옆에 서 있던 남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따님이 정말 성격이 좋네요. 줄넘기도 진짜 잘하고요." 으응? 고개를 들었는데 "저, 준규 아빠입니다" 하신다. 그러고 보니 준규가 있다. 미끄럼틀 끄트머리에 서서 딸아이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손짓도 하고 있다. 화들짝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준규는 딸아이 반 친구인데, 인기가 아주 많다. 딸의 말을 빌리자면, 반 아이들은 대부분 준규와 짝을 하고 싶어한단다. 아홉 살이면 남자아이들이 한참 개구쟁이 짓을 할 때인데 준규는 그와 달리 조용하고 잘 웃는 아이인 데다 색연필도 잘 빌려주고 지우개도 잘 빌려주기 때문이란다. 딸아이도 준규랑 짝이 되고 싶어하지만 제비뽑기를 하다 보니 그게 늘 실패다. 다만 단점도 있단다. 준규는 오전에는 같은 반에서 공부하지만 오후가 되면 특수학급으로 간다. 그래서 준규와 짝이 되면 오후에는 좀 심심해진단다.놀이터에서 만난 준규 아빠는 무척 예의바른 분이었다. 그리고 다정한 분이었다. 미끄럼틀을 잘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만 맴맴 도는 준규에게만 눈을 두어도 바쁠 판국에 이리저리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우리 딸에게 계속 소리쳤다. "와아, 너 진짜 멋지다! 정말 용감한데? 아저씨는 너처럼 날랜 아이를 처음 봐!"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 준규와 놀아줘서 고마워, 그것이었을지도 몰랐다.아홉 살 내 딸과 반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준규 아빠의 조마조마함을. 열한 살이 되고, 열두 살이 되면 준규는 '나랑' 조금 달

  • [with+] 따끔한 충고에 관한 생각

    [with+] 따끔한 충고에 관한 생각 지면기사

    당사자가 지적 필요하지 않다면친구간 따끔한 말 안하는게 낫다전국 19~59세 꼰대인식 조사결과'굳이 안해도 될 조언·충고' 1위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수 있어그녀는 기차를 탄다. 커다란 짐을 가진 할머니가 손잡이에 매달려 서 있고 빈 좌석이 없다. 할머니 앞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학생이 뭔가를 펴들고 열심히 읽고 있다. 그녀는 금방 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막혀서 울분을 터트린다. "뭐예요? 당신은 젊은 학생이면서 이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이 안 보여요.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 쪽에서 반박했다. "그만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차 안의 모든 손님은 웃음을 터트린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쓴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다.이 여성처럼 누구나 따끔한 충고를 해 주고 싶을 때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가 가벼운 솜을 무거운 짐으로 잘못 알아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한 결과를 낳았듯이, 충고자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충고를 하려고 할 때 우리 대부분은 상대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말하더라도 듣는 이의 성품에 따라 충고를 고맙게 들을 수도, 불쾌하게 들을 수도 있으니 충고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여러분에게 도박에 빠져 있거나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따끔한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가, 따끔한 충고를 삼가야 한다고 보는가? 이에 대해 갑과 을 두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자.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 갑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친구가 가서는 안 될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도박에 빠진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재산을 탕진할지 모릅니다.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를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충고가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으며, 충고가 필요한 이에

  • [with+] 죄와 벌

    [with+] 죄와 벌 지면기사

    내 첫번째 단편집 '개그맨' 포함16세 아이에 책 5천권 해킹 당해그에게 50권쯤 읽게하면 어떨까 어쨌든 돈으로 환산 못하는 독서소중한 재산이므로 손해는 아냐이따금 소설가에도 '이건 참 소설 같은데'라는 상황이 찾아온다. 출판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에서 전자책이 해킹당해 5천권 가량이 유출되었는데, 내 첫 번째 단편집 '개그맨'도 포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범인은 16세 고등학생으로 텔레그램에 해킹된 책의 일부분을 자랑삼아 올려놓은 뒤 36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라며 회사와 협상을 시도했다. 9월에 범인은 잡혔으나 이미 '손을 탄' 책들의 운명이 가늠되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는 알라딘과 50여 개의 출판사 사이에서 보상을 놓고 대립 중이다. 출판사는 초유의 사태에 제대로 된 선례를 남기기 위해 개별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알라딘은 '사회기금'을 조성해 피해 출판사의 전자책을 사서 도서취약계층에 주는 등 사회적 보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출판사들이 신간의 전자책을 알라딘에 넣지 않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 최근까지의 진행 상황이다.이 뉴스는 나에게 복잡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내 머리 속에는 5천권의 책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16세의 해커, 그 아이에게 이 책들은 단지 전자화된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수십억대의 코인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비가시적인 세계로의 전환과 대박의 꿈만이 책들의 유일한 가치다.그런데 5천권의 책 가운데 한 권인 내 첫 책에는 등단작을 비롯해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학 졸업 후 8년이 지나 등단을 했는데, 등단작이 은퇴작이 될까봐 겁에 질려 무수히 밤을 새웠다. 젊음과 시간과 에너지와 숱한 불면의 밤들이 통과한 그 이야기들은 내게 소설 쓰기를 가르쳐줬을뿐더러 지독한 육체노동의 결과물이다. 중년이 된 지금, 갈수록 소설쓰기가 육체노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에게 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가시적인 결과물이다. 그 아이는 전혀 상상

  • [with+] 과거시험의 천재 노긍

    [with+] 과거시험의 천재 노긍 지면기사

    답안지 대필해준 죄로 귀양살이여러번 급제했지만 벼슬길 막혀'부패한 당대' 향한 냉소 있었을듯젊은날 꿈과 좌절·절망 다 접고손주의 재롱보는 노년 원했을 것 노긍(1737~1790)은 과거시험을 보기만 하면 급제를 했다. 그러나 관직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과거시험에 응시하고 훌륭한 답안지를 작성해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더 행복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신중(愼仲)이라했다가 여임(如臨)으로 고쳐 쓴 것을 보면 살얼음을 밟듯 세상을 조심조심 살았던 사람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름 한원(漢源)은 문장의 근원이 흐르는 물처럼 유장하다하여 얻은 이름이기도 하다. 문체가 꽃 구슬을 흩어놓은 언덕과 같다하여 산주파(散珠坡)라고 부르기도 했고 사는 집이 복사꽃 흐드러지게 피는 골짜기에 있다 해서 도협(挑峽)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다.정조가 즉위한 후 정권의 주류가 바뀜에 따라 노긍은 벽파의 미움을 사 과거 시험장에서 답안지를 팔아 선비의 기풍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평안도 위원 땅에서 6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과거시험 답안지를 팔아먹은 죗값으로는 가혹하다면 가혹한 형벌이었다. 노긍의 아버지 노명흠은 야담집 '동패낙송'을 엮은 사람이다. 부자 모두 과거시험에는 당대에 어깨를 겨룰 사람이 없었다.영정조 시대 시파와 벽파가 치열한 정쟁을 벌이던 때에도 시파인 홍봉환 집안의 문객으로 수십 년을 얹혀살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뜨자 이가환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우리나라 수천 리 둘레에서 하루에 태어나는 자가 몇이며 죽는 자가 몇이던가. 태어나도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지지 않고 죽는대도 사람이 수가 줄어들지 않는 그런 자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영조 14년 12월18일 광주부 쌍령촌에 산이 운 것이 세 번이요 시내가운 것이 세 번이었다. 그리고 노긍이 태어났다. 정조 14년 5월3일에 자최로 연복을 입고 예법에 따라 제사를 올리고 그 이튿날 문간에서 손님을 전송하고 정침에 돌아와 갑작스레 눈을 감더니 노긍이 죽었다. 그가 태어나 우리나라는 한 사람을 얻었고 그가 죽자 우리나라가 한 사람을 잃었다고 한다

  • [with+] 나는 아직 괜찮아

    [with+] 나는 아직 괜찮아 지면기사

    우연히 마주친 '구남친' 환한 웃음옛 추억 떠올리며 웃은 이유 골몰문득 낡은 유선 이어폰 보며 확신시간 지날수록 민망함만 앞서다가'MZ 트렌드' 말 듣고 당당함 찾아구남친도 여러 종류다. 어떤 구남친은 우연히 마주쳤을 때 웃으면서 묵은 안부를 나눌 수 있고, 어떤 구남친은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쉬워 맥주 한잔 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구남친은 남편이 되었고, 어떤 구남친은 마주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수도 있겠지.얼마 전 우연히 길에서 구남친과 마주쳤다. 안부를 나눌 사이는 아니고, 차 한잔할 사이는 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못 볼 것 본 사람처럼 홱 야멸치게 돌아설 사이도 아니어서 나는 잠깐 망설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 뭘 이렇게 마주쳐… 못 알아본 척할까, 하는 사이에 그가 먼저 환하게 웃어주었다. 얼결에 따라 웃었다. 인사까지 나누지는 않았다. 길을 건너던 중이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가던 길을 갔다.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환하게 웃어줄 사이였나? 우리의 마지막이 어땠더라? 도대체 몇 년 만에 만난 거지? 돌이켜 보니 우리는 그냥 모르는 척, 못 본 척 정도가 어울렸을 것 같았다. 격하게 연애했던 사이도 아니고, 피 터지게 싸우며 헤어진 것도 아닌, 어쩌다 만나고 어쩌다 헤어진, 조금은 흐리멍덩한 사이. 굳이 이렇게 햇살도 눈부신 오후, 뿌리 염색 시기를 놓쳐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하고, 대충 차려 입은 모양새로 강의를 가다가 만날 것까진 아니었는데. 그냥 젊었던 시절로 기억에 남는 편이 나았을 텐데. 하지만 그쪽이 먼저 웃어줬잖아. 그것도 아주 환하게. 그러니까 나도 웃는 게 맞았어. 그렇게 어색하고 민망한 재회는 아니었던 거야. 그딴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나는 계속 걸었다.그런데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 때문이었을 수도 있어. 내 이어폰. 치렁치렁 줄을 늘어뜨린 내 낡은 유선 이어폰! 촌스러운 것이라면 질색하던 그쪽이 그 이어폰을 본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쟤는 저런 구식 이어폰을 여태 끼고

  • [with+] 상황의 반전

    [with+] 상황의 반전 지면기사

    육아·집안일·과외교사 힘든 시절하루라도 딸들없이 자유 원했지만이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현재 연로한 친정엄마 보살피는중내게도 언젠가는… 겸손을 배운다내가 결혼한 해인 1988년에 시어머니는 55세였다. 그해 시어머니의 생일날이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서 미리 사 놓은 옷을 생일 선물로 드렸다. 할머니가 입을 법한 디자인의 흰 스웨터였다. 시어머니는 그 옷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시누이가 옆에서, 이건 할머니들이 입는 옷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시어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니 옷을 잘못 샀다는 뜻이었다.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어머님이 할머니시잖아요"라고 말해 버렸다. 해선 안 될 말이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어린 외손자가 있어서인지 내 눈엔 영락없이 노인이었다. 아니 20대 며느리였던 나의 눈에는 50대들이 다 늙어 보였으리라. 시어머니는 노인 옷이라며 흰 스웨터를 장롱 깊숙이 넣어 두셨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죄송할 따름이다. 50대라도 마음은 젊다는 것을 몰랐다. 노인 취급을 받는 게 기분 나쁘다는 것도 몰랐다. 난 철부지 새색시였다.그로부터 35년이 흘렀다. 35년 전의 시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은 나는 나를 노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외모가 젊어진 것도 이유이지만, 그것보다 예전의 시어머니처럼 마음이 젊은 것이 더 큰 이유겠다. 난 청바지를 즐겨 입고 운동화를 즐겨 신고 발레를 배우러 다니며 젊게 산다.몇 년째 발레 학원에서 발레를 즐겁게 배우고 있다. 발레를 하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 건강에 이롭고 몸매 관리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발레를 하는 동안 내 나이를 잊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나이가 더 들면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발레를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발레를 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발레 선생이 나에게 스트레칭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며 칭찬해 준 날이 있었다. 집에 와서 20대 작은딸에게 발레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하니 "그건 엄마가 발레 학원을 오래 다니게 하기 위한 립서비스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