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춘추칼럼]회복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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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회복기의 삶 지면기사

    오늘은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자 첫날…죽을병 이기고 나면 조그만 일에도 감동아이 같은 마음 갖고 기대 수준 낮춰보길코로나 사태로 '일상'이 소중하지 않던가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따분하고 지루하다. 그날이 그날 같고 신나는 일, 즐거운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 번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에머슨이라는 미국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헛되게 불평하면서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 바로 이것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오늘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날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치 있는 날은 오늘뿐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날인가!그래서 나는 오늘은 나의 생애에 남은 날 총량 가운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고 첫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그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과 첫날에 있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첫 사람이고 또 새사람이다.이런 생각 하나만 바꿔도 세상은 갑자기 눈을 뜨는 세상이 되고 찬란한 세상이 된다. 부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루한 세상, 누더기같이 낡은 세상이라고 꾸중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세상만 그런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이쯤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해보고 싶다. 보들레르는 시를 이야기하면서 시인은 회복기에 이른 환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복기란 마치 어린 시절로의 회귀와도 같다. (…)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그는 언제나 도취해 있다. 우리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아이가 형태와 색채를 흡수하는 기쁨과 가장 닮아있다."우리도 주변에서 가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암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그에게 세상은 오직 새롭고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 무엇 하나 새롭지 않고 감사하지 않

  • [춘추칼럼]'문화도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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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문화도시'의 길 지면기사

    '5년 예산 확보' 지자체 사업 선정 경쟁 과열준비하는 과정 초점·상향식 공모 고민 필요지역사회 네트워크 무시 나쁜 사례 걸러내야축제 증가·대형공연장 들어선다고 되진 않아'문화도시' 사업 공모 마감이 7월24일로 다가왔다. 현재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도시 사업을 준비하면서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2018년 처음 시작된 '문화도시 사업'은 2022년까지 30개 문화도시 선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첫 해에는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되고 1년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법정문화도시'로 최종 선정되면 5년에 걸쳐 최대 200억원(국비와 지방비 매칭 각 50%)이 투입된다. 올해에는 작년 말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된 7개 지자체(부천·원주·천안·청주·포항·영도(부산)·서귀포)가 사업을 시작했으며, 10개 지자체가 예비문화도시로 추가 선정되었다.그렇다면 전국의 지자체와 지역문화재단이 이처럼 문화도시 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왜일까? 일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면 5년이라는 기간동안 사업 예산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중장기 계획을 가질 수 있다. 열악한 지방 재정을 고려할 때 문화관련 예산은 항상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 사업은 충분한 매력을 갖는다. 다음으로 기초생활권 차원에서 문화영역은 시민들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정치인으로서 자치단체장 입장에서 괜찮은 손익계산이 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재단 설립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 개 내외의 지역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있고, 그 중 기초문화재단은 설립과정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히거나 설립 이후에도 재단의 방향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점에서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사회에서 재단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셈이다.결론적으로 전국의 모든 지역이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것은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궁극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

  • [춘추칼럼]'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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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 적이다 지면기사

    文대통령 국정 지지도 총선 압승이후 하락한마디에 추경 통과·檢 총장 압박 '기현상'보수 몰락… 언론, 이념 소재만 치중한 현실성난 민심 잡으려면 정책 능력 끌어올려야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국갤럽의 7월 1주(6월30일~7월2일)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 한다'는 긍정 평가는 50%였다. 5월 1주(71%)와 비교해 두 달 만에 지지율이 무려 21% 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총선의 총 유권자수가 4천400만명인데, 숫자로만 보면 무려 1천100만명 이상이 이탈한 셈이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한 대북 관계 악화, 6·17 부동산 대책 실패,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의 격돌 등의 악재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그러나 근원적인 요인은 총선 압승 이후 드러난 정부 여당의 '견제 받지 않는 권력'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행정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통령의 하명에 역대 최대 규모의 35조 추경 예산이 국회에서 5일 심사만에 처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무부 장관과 여당이 정권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총장을 압박해 사퇴시키려고 하는 것도 실상 절제되지 않는 권력이 몰고 온 기현상이다. 이렇다보니 "모든 권력이 국민이 아닌 문재인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주주의'(文主主義)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다. 통상 견제 받지 않는 권력에 도취된 정부는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자신들의 무능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의 탓만 한다. 가령, 부동산 대책 실패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토부 장관은 "지금까지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그뿐만 아니라 국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온 규범과 관행이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제16대 국회(2004년)부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게 주었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했다. 제13대(1988년) 국회부터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나눠 가지던 협치의 전통마저 깨지고 여당이 17개

  • [춘추칼럼]볼턴 회고록, 문제 제기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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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볼턴 회고록, 문제 제기에 답하다 지면기사

    외교 기본원칙 훼손하고 왜곡된 내용들진위여부 떠나 文정부 창의적 전략 눈길편견 가진 참모의 협상 진행 뼈아프지만우리의 중재노력 다시 빛 발하기를 기대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발간 여파가 크다. 야당에서는 볼턴 회고록과 관련된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안보분야의 미 대통령 최측근 참모가 현존하는 가장 어려운 협상 중의 하나인 북핵협상과 관련된 숨은 얘기들을 공개했으니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다만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공개되었지만 회고록 자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우리측 카운터파트라 할 수 있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외교의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상당부분의 내용이 왜곡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첫째 우리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대평가하고 싱가포르 정상회담 등을 무리하게 성사시켰다는 지적이다. 볼턴 회고록에서는 모든 외교적 춤판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북핵폐기 보다는 통일어젠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종전선언도 문 대통령의 제안에서 나온 것이며 북미정상회담을 처음 제안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라 한국 측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왜 이것이 정치적인 쟁점이 되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제안을 했든지 북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의 큰 원칙에서 합의할 수 있었다. 전쟁 위협 등 강 대 강으로 치닫던 북미 관계가 우리 측의 중재노력으로 싱가포르 합의를 이룬 것이다.현재 비핵화 협상이 답보국면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가 판문점 선언부터 북한에 비핵화 결단을 요구하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까지 연결시킨 것은 평가받아 마땅한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내정치에 이용했다는 의혹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본다.둘째, 6·30 남북미 정상 회동시 미국과 북한이 우리 대통령을 배제시키고 패싱을 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내용의 진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갑작스럽게 성사된 만남이라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양자간 만남으로 제한하려는 북미간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6·30 남북미 정상회동이 끝난 후 기자

  • [춘추칼럼]코로나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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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코로나 이후 지면기사

    비대면이 사는 길이라니 어쩔수 없는 일절대적 단절의 시대 온라인마저 막혔다면…인간의 고독감·소외감·우울감 더 했을 것어제의 삶 못 돌아가지만 마음은 평안해야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졌다. 몇십 년은 뒤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적막하다. 길거리 자동차들이 많이 줄었다. 당연히 행인들도 줄었다. 어쩐지 그것이 딴 세상에 온 듯 낯설고 서툴다. 공주와 서울을 오가는 자동차의 횟수가 줄었다. 배차 간격이 떠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의 표지판을 보았더니 인천공항행 버스 시간표 위에 까만 표시가 모두 붙어있다. 공항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또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얘기다.가치관이 바뀌었다. 이전에 가치 있는 것들이 가치가 없어지고 예전에 가치 없던 것들이 다시금 가치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대단위로 무슨 일인가를 하는 일부터 불가능하다. 무조건 사람 많은 데는 피하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제는 혼자서 하는 일들이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비대면, 비접촉,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는 길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혼자서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사는 연습을 해야만 하겠다. 코로나 사태를 건너오면서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절실히 학습해야만 했다. 인생이 외롭고 쓸쓸한데 더욱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게 되었다.이렇게 오프라인의 삶이 위축된 데 비하여 여전히 작동한 것은 온라인의 삶이다. 절대적인 단절과 고독과 속박의 시대에 온라인마저 막혔다면 어쨌을까? 사람들은 걱정하고 또, 안도한다. 그런대로 답답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의 역할이 컸다. 어쩌면 앞으로는 이 온라인의 영향의 더욱 증대되겠지 싶다.내가 주로 만나거나 소통하는 사람들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한 분과 이야기하다가 조용히 놀란 일이 있다. 그분은 출판사 대표인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자기네 출판사에서는 매일같이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코로나 이전 때부터 책의 매출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무슨 일로? 문제는 책의 종류다. 그분 출판사에서 나

  • [춘추칼럼]포스트 코로나와 지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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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포스트 코로나와 지역화 지면기사

    동네 문화예술인 익명 후원 프로젝트 호응돕는 행위 넘어 같은 시대 연대감 경험기회삶 뒤흔든 코로나19 근본적 성찰·대안 요구고민 출발점 '지역'서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동네에서 지역문화생태계 차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는 일명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직접 신청하거나 추천받은 이들에게 10만원을 입금하고, 필요 금액은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별도로 개설된 계좌로 자유로운 입금을 통해 마련했다. 후원자와 후원금을 받는 이를 모두 익명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예술가를 비롯해 약 6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지원받았다.프로젝트명에 사용한 '크리킨디'는 남미 케추아 부족의 이야기로 숲에 불이 나서 다른 동물들이 도망치고 있을 때 작은 부리에 한 모금의 물을 담아 와서 산불을 끄려고 한 '벌새' 이름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야"라고 답한 벌새 크리킨디의 생각을 담은 것이다.'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의 출발은 '오아시스 딜리버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오아시스 딜리버리'는 김선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통장 잔고에 있는 여윳돈을 주변 독립영화인들에게 흘려보내면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동참하면서 확산되었다. 또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곁에서 지켜본 지역 청년들이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라는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폭넓은 공감을 일으켰고, '전통예술인긴급연대'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통한 프로젝트를 통해 4천만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일종의 연대감과 공통의 감각을 경험하게 해준다. 공통 감각의 연결은 결국 '움직이는 소수'의 역할이다. 실제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11만원

  • [춘추칼럼]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른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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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른 세 가지 지면기사

    뿌리는 같지만 정치 열매는 전혀 달라친문·운동권 세력 중심으로 '이념 과잉' 선과악 이분법 대결구도는 협치 불가능실용·당정 분리 盧의 정신으로 돌아가야지난 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이했다. 현 집권 세력은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이 정신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것은 '사람 사는 세상',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펼치는 언행을 보면 '껍데기 노무현 정신'이 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족 비리와 '감찰 무마' 의혹 등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최강욱 의원에게는 축하 전화를 걸어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역할"을 당부했다. 평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각별했던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정의기억연대 운영에 참여하면서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자 정부는 4시간 만에 "법을 만들겠다"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보수가 몰락하고 총선 압승으로 여권이 권력에 도취되어 상식 밖의 '친문 사는 세상', '특권과 차별이 있는 세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씁쓸하다.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회법에도 없는 '4+1 연대'를 통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누더기 선거법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관철시켰다. 그 후에 각종 꼼수와 편법으로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고 총선 후에 통합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전례없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소 가장 싫어했던 '원칙 없는 승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여 세력은 종종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2기'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 [춘추칼럼]변화하는 북한의 대외선전 수단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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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변화하는 북한의 대외선전 수단과 내용 지면기사

    유튜브에 평양 어린이·주민 영상 올라와일부 주장 SNS 등 콘텐츠 차단 쉽지않아정보 해석력 높은 국민 자정노력에 맡기고'안보 직결' 北 관련 가짜뉴스는 규제 필요얼마 전 유튜브에 평양에 사는 어린이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 다른 계정에는 젊은 북한 여성이 영어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영상을 담았다. 북한의 신종 대외 선전물이라고 판단된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각종 SNS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공존한다. 이중 유튜브는 수천수만 가지의 정보를 담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SNS 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북한의 선전매체도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일부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새로운 선전 콘텐츠를 차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에 대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북한의 각종 출판물은 특수 자료로 별도 취급해왔다. 물론 우리 언론은 조선중앙통신과 계약을 맺어 관련 기사를 실시간 공유하고 있으며 학술적인 목적 등으로 북한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기존 방식으로 유튜브와 같은 SNS에 올라온 북한관련 콘텐츠를 제한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유튜브를 열면 나오는 수많은 유튜브 영상 속에서 호기심에서 혹은 흥미로울 것 같아서 보는 클릭 행위에 이적성 여부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SNS의 특성상 누가 올렸는지도 알 수도 없고 콘텐츠물 삭제를 게시자에게 요청할 수도 없다. 그리고 '좋아요'와 '구독'을 기반으로 공유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같이 영상을 퍼 나르는 행위도 규제하기 어렵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두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국민들의 자정노력이다. 우리 국민들은 인터넷 강국을 기반으로 하면서 정보에 대한 해석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분단 반세기를 지나오면서 북한 정보에 대한 판단 역량도 자연적으로 습득해왔다. 주변에 북한 선전물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모든 유튜브나 SNS 콘텐츠는 공유자와 구독자들의 댓글과

  • [춘추칼럼]하얀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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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하얀 제비꽃 지면기사

    주인 세례명 딴 '루치아의 뜰'은 공주 찻집모처럼 테레사 수녀님 방문 소식에 찾았다 우리문학관도 이미 다녀왔다며 담아온 사진관장이 모친생각 심은 꽃 수녀님도 아셨나모처럼 데레사 수녀님이 공주에 왔다는 전갈에 서둘러 외부 일정을 마치고 루치아의 뜰로 갔다. 루치아의 뜰은 공주의 옛 거리에 있는 찻집으로 오래된 한옥 하나를 고쳐서 만든 찻집이다. 공주의 바닥 사람들에게보다는 외부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잘 알려진 찻집이다. 왜 루치아의 집인가 하면 찻집 주인의 세례명이 루치아이기 때문이다. 짐작하시겠지만 루치아는 천주교 신자. 그래서 찻집 이름도 '루치아의 뜰'인데 이 집에는 그런 연고로 바깥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자주 찾아오신다.내가 찻집에 들어섰을 때 수녀님 세 분과 운전을 맡은 남자 한 분이 루치아 내외와 함께 있었다. 데레사 수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안의 수녀님이다. 마치 동화나라에서 등불 하나를 들고 이 세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이 세상의 등불로 바꿔 들고 동화나라로 돌아가는 아이와 같다.그렇구나. 데레사 수녀님에게는 우리 공주가 동화나라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세상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기에 그렇게 수녀님은 수녀원에서 짬만 생기면 공주를 찾는 것이고 또 루치아의 뜰과 우리 풀꽃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이겠구나. 들어보니 수녀님 일행은 이미 풀꽃문학관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마침 월요일이라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문학관 안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집 둘레와 꽃밭만 보았노라 한다. 그런데 일행 가운데 나이가 좀 드신 수녀님이 문학관의 꽃밭에서 제비꽃 사진을 여러 장 찍었노란다. 알고 보니 그 수녀님이 데레사 수녀님이 머물고 있는 수녀원의 원장 수녀님. "수녀님, 왜 제비꽃 사진을 찍으셨어요? 다른 꽃들도 많은데." "네, 보통 제비꽃은 보랏빛인데 문학관의 제비꽃은 하얀 색깔이더라구요. 그래서 찍었어요."그러하다. 우리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있다. 있더라도 아주 많이 있다. 본래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없었는데 문학관 관장의 일을 보는 조동수 선생이 다른 데서 캐다

  • [춘추칼럼]한 사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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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한 사람의 힘 지면기사

    코로나19는 지금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유예 활동·격리 시간 불안, 종식이후 삶은?대란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에 주목 이제는 '공존·연대·희망·감동의 감염' 기대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2020)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생각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되돌아가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서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고 말한다.정확한 지적이다. 이 '전염의 시대'에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쓸모없는 생각을 한다. 그저 매일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보면서 불안과 안도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불안을 야기하는 바이러스 확산 주범을 찾아 분노하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빠져 있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인지,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묻는다. 하지만 묻는 이들도 알고 있다. 여기에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그저 서로에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잠시나마 불안을 떨쳐보려고 애쓸 뿐이다. 수많은 예측은 빗나가고, 막연한 희망은 무너진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가 원하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지연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 하지만 다시 제자리에 서 있다. 이 지연과 반복을 견디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이다.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의 한 복판에서 그나마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이르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