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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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기부,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면기사
100만원 기부금 조롱당했던 배우30년 무료 두리랜드의 유료 전환심장병 아동 돕던 뽀빠이의 누명사람들, 자신 못보고 한없이 비난그자체로 소중한 행동 박수받아야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무렵,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0만원을 기부한 어느 배우가 곤혹을 치렀지요. 일각에서 기부금액이 적다고 지적하며 문제 삼았고, 그의 선행은 한순간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억대의 금액을 기부한 스타들과 비교하며 중견 연기자로 너무 적게 기부했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지요. 일부 네티즌들은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인 것 같다", "생색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악플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그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고 인스타그램 활동을 중단했지요. 공인으로 산다는 게 어렵다는 걸 실감했을 겁니다.양주에 있는 '두리랜드'는 유명 배우가 만든 어린이 놀이공원입니다. 190억원이 들어갔다는 이 공원은 개장 이래 지난 30년 동안 입장료를 받지 않고 운영해 왔지요. 그런데 올해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재개장하면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190억원이 들어갔고 150억원 가량을 대출받아 더는 무료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무료로 운영하다 요금을 받으니 일부에서 비난이 뒤따랐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봐주는 분이 더 많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지요. 그의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이걸 돈 벌려고 하겠습니까. 돈 벌고 싶으면 안 쓰고 갖고 있는 게 낫겠죠. 하지만 내가 죽더라도 두리랜드가 어린이들에게 오래 기억됐으면 해요. 그건 '자긍심'입니다. 사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내 표정도 좋아졌어요." 저는 그 배우의 말을 믿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오직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놀이공원을 만들었다는 그분의 진정성을 믿고 있지요. 더 나아가 빚더미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 운영을 멈추지 않았던 그 열정이 오히려 부러울 따름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이지요.뽀빠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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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위드 코로나' 시대의 미학적 항체 지면기사
대규모 공연장·행사는 '이젠 옛말'더본질적인 변화의 시점에 서있어속도와 성장 반성 작은공동체 관심생태주의문학 인류사적 과제 부상팬데믹시대 문학적 출구전략 될까'코로나 19'로 빚어진 지구촌 전체의 재난이 인류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통째로 위기를 맞고 있는 그동안의 주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대안적 실천이 요청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제 10만 관중이 운집한 채 치러지는 월드컵 결승전이나 수만명이 동시에 출발선을 떠나는 마라톤 대회는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청중이나 한국 영화의 천만 관객도 어쩌면 2020년 이전의 신화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단기간에 어떤 대안 모형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변화 양상이 스포츠나 공연 예술의 급격한 퇴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참여자 감소 문제는 팬데믹 사태가 불러온 변화 가운데 가장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간의 운명은 생로병사라는 과정적 표현에 압축되어 있다. 태어나 나이 들어 병들고 결국 사라진다는 것, 이것이 불가피한 인간의 보편적 존재론이다. 그 가운데 우리를 한없이 소모시키고 죽음에 접근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확인시키는 물리적 사건은 아마도 '질병'일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몸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여기저기 아픈 곳을 드러낸다.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이러한 질병의 양상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원하는 생리 현상이자 공동체적 소진의 운명을 견뎌가는 은유로 동시에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질병과는 전혀 다른 '감염병'의 낯선 침입은 삶에 대한 여러 비유 체계를 생성해내면서 새로운 문학적 형상과 의미를 부여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문학에서 감염병을 형상화해가는 과정은 커다란 역사적 함의를 띠면서, 그동안 근대문학이 주목했던 '질병의 은유'를 부수고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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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한국판 뉴딜 정책, 국민 중심이 되야한다 지면기사
2025년까지 포스트코로나시대 견인150조원 투입 190만개 일자리 창출그중 비대면 디지털뉴딜 사업 핵심개인 데이터 활용 주권 보장이 과제격차에 적응시켜 함께할 수 있어야수도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검토란 당국의 발표에 전국이 초긴장하고 있다. 사상 최장기간 지속된 장마와 역대급 물난리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틈도 주지 않고 이번에는 코로나 광풍으로 전국이 초긴장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제8호 태풍까지 북상 중이라고 하니 얼마나 큰 피해를 일으킬 것인지, 비보 일색에 감각조차 무뎌질 정도다. 억지춘향이지만 그나마 위안거리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코로나 사태를 겪는 OECD 국가 중 1위란다. 게다가 한국판 뉴딜정책이 앞으로 한국경제 회복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OECD 전망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이미 알려진 것처럼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란 3가지 축을 중심으로 분야별 투자 및 일자리 창출로 코로나로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려는 역점사업이다. 150조원 투자로 190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최종 목표다. 그중에서도 디지털 뉴딜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 역점사업으로 제시한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확산되고 있는 비대면 디지털 사업은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정책에 총 58조원 이상을 투자해 디지털 일자리 90만개 창출이란 큰 목표를 세우고 있다.디지털 뉴딜은 한마디로 단절 데이터 정보를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거래를 공식화하고 개방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으로 그동안 분산돼 있던 데이터 간의 의미 있는 결합이 가능해졌다. 분야별 데이터를 크로스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의 데이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마이데이터 산업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기업 간 데이터 공유가 활발해지는 만큼 개인의 데이터 주권 보장이란 과제 등 풀어야 할 난제도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거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독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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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정책의 배신 지면기사
최저임금·주52시간제·정년 연장 등약자·평등정책은 기득권 강화 역설靑 결심땐 시장원리 외면 바로 시행정치 이해득실만 좇고 논의는 부재도대체 무슨배짱으로 법을 만들까"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짧은 연설은 초선 정치인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전국 지명도의 정치인이 탄생했다.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역전에도 기여했을 것이다. 품격을 잃지 않고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을 합리적으로 비판했다. 의정활동의 모범 사례다.경제학자 윤희숙은 올봄에 '정책의 배신, 21세기북스'를 출간했다. 이후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앞으로 야당의 선봉으로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할 것이다. 본회의 5분 발언은 그의 등장을 알리는 전주곡인 셈이다. 여당은 상당히 괴로울 것이다.'정책의 배신'은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비정규직, 국민연금, 정년 연장, 신산업 등 여섯 분야의 정부 정책을 검토했다. 모두 다 좌파 기득권을 보호하는 반개혁적 정책들이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노조와 386 정치권이 결합하여 기성세대의 이익을 보호하고 청년세대의 희생을 강요한다. 청년들의 희망을 빼앗아 버린다. 대한민국의 불평등은 심화된다.최저임금은 충분한 논의 없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취약한 조건의 저임금 근로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도 커졌다.주 52시간제로 공공부문과 대기업 직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법정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중소기업은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비정규직과 정년 연장은 현 정부 지지 세력들이 가장 큰 수혜자다. 노조원 수가 늘고, 결집력은 단단해졌다. 반면에 아직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않은 청년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졌다. 정규직 보호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창출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정책목표이기 때문이다.국민연금은 제도 개혁을 외면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는 고령화와 맞물려 2057년경에 재원이 고갈된다. 미래의 근로자는 소득의 30%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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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지면기사
살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쌓았다나이를 떠나 배울게 있으면 '형'호칭도청서 근무할때 최기자·모국장 등마음 열어 삶을 넉넉하게 해준 분들그런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경기도청에서 홍보담당으로 일할 때 함께 술자리를 하던 기자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졌습니다.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괜찮지요?" 저보다 아홉 살이 어리지만, 성격이 깔끔한데다 강골로 소문난 출입 기자였기 때문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공무원을 만났지만 계장님처럼 인간적으로 존경스러운 분은 처음입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동생 분은 선배라고 부르지만 계장님은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으로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 기분 좋게 말하며 술잔을 부딪쳤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마음을 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와 늦도록 술자리를 함께했지요. 그 후로도 사는 동네가 같아서 함께하는 술자리가 많았습니다.30년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에서 일할 때 얼굴이 유난히 희고 깔끔하게 잘생긴 기자 한 사람이 찾아왔지요. 그의 어르신은 경기도교육청에서 교육감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지사가 교육위원회 의장을 맡았었지요. 수행 비서였던 저는 매월 한 차례 교육청에서 열리는 교육위원회에 도지사를 모시고 갔습니다. 이때 도지사 비서실과 교육청 비서실이 활발하게 교류했는데, 그 인연이 후대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아들이 경인일보에 입사해 도청 수습기자로 일하게 되자 저를 찾아보라고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인연으로 오랜 세월 형제처럼 함께 지냈으니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와 공직자를 떠나 누구보다 각별하고 소중한 인연이었지요.세월이 흘러 파주 부시장으로 일할 때 '다산 청렴 봉사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금이 1천만원이나 되니 많은 사람이 축하의 덕담을 건네면서 술 한 잔 사라고 했지요. 술을 즐기는 편인지라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어 선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제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로 정하고 당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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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맛의 경험과 몸의 기억 지면기사
미각·후각은 어린시절과 깊은관계쓴맛·감칠맛 구수하고 아릿한 냄새백석의 '국수'에서도 기층문화 자리驛마다 후루룩 가락국수 눈에 선해그 순간 복원… 이래저래 먹고싶다인간의 감각 중에서 미각과 후각은 특별히 어린 시절과 깊은 관계에 놓인다. 그 감칠맛과 쓴맛, 그 구수하고 아릿한 냄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문학작품 속에 미각 충동과 경험이 서린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은 으레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맛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백석의 시 가운데는 맛이나 먹을거리를 핵심 이미지로 삼아 노래한 작품이 제법 많다. 그 가운데 '국수'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백석이 만주 살 때 쓴 이 작품은 1941년 4월 '문장' 폐간호에 실렸다. 백석은 같은 지면에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는 절창을 쏟아놓았고, '국수'를 통해서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간과 공간을 풍요로운 감각으로 재현함으로써 가장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그 힘은 우리가 오랫동안 만들고 먹고 누려온 기층문화야말로 저 천하고 폭력적인 군국주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어져가야 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이 국수가 '냉면'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평안도에서 집집마다 갖춘 국수틀로 빚었던 것인데, 거기에 "겨울밤 쩡 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넣고 "얼얼한 댕추가루(고춧가루)"와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넣어 먹는 서북지역 특유의 국수는, 연전에 남북정상회담 때 화제가 되었던 '평양냉면'의 원조인 셈이다. 나는 이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여름이 되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물냉', '비냉', '회냉'을 다 좋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평양냉면의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이 제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담백한 맛인데, 백석은 그것을 '고담'과 '소박'이라고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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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디지털시대, 강아지와 산책하는 즐거움과 책임 지면기사
코로나로 세상은 온라인 전환 가속대체불가 영역이 있다면 산책 꼽아애완견이 길동무라면 더 없는 축복문제는 동물을 꺼리는 사람과 갈등공존을 위해선 '펫티켓지키기' 필수코로나19는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감염 우려 때문에 선택하게 된 비대면 방식이 세상을 온통 디지털로 이끌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은 디지털 전환 속도를 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경기 침체는 비대면 수요의 급증을 일으키면서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코로나와 언택트는 서로 맞물리면서 세상을 디지털 중심으로 바꿔 놓고 있다. 교육, 진료, 이 외에 많은 분야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뀐다 해도, 온라인이 아무리 정교하게 오프라인을 대체해 나간다 해도 대체 불가능한 영역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중의 하나가 산책 아닐까? 산책은 오프라인, 즉 대자연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풋풋한 풀향기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위대한 선물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오솔길 산책의 즐거움은 온라인 세상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더구나 요즘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 모처럼 갠 날 오후 산책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감을 준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슬 머금은 숲속 오솔길 산책은 너무나 좋다. 게다가 필자의 경우는 산책길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옆에서 길동무를 해주는 귀여운 강아지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축복의 시간인 셈이다.그런데 이처럼 기분 좋은 산책을 방해하는 일이 있다. 바로 치우지 않은 강아지 배설물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 중인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몸 둘바를 모를 지경이다. 옆 사람이 묻지도 않는데 "아니 누가 이렇게 안 치우고 간거야"라며 죄없는 필자의 강아지를 향해 읊조린다. 실은 "우리 개는 범인이 아니에요"라고 변명을 하는 셈이다. 매번 묻지도 않는데 혼자 중얼거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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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코로나 학기(學期)를 보내며 지면기사
원격강의시스템 신속 마련됐지만신입생 방 얻고 등교 못하는 처지교수는 녹화·업로드에 많은 시간등록금 반환요구가 합당한가 의문시험 부정행위 방지·학점 주기 '고민'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달라진다고 한다. 대학은 어떻게 될까. 필자는 봄 학기에 신입생부터 4학년 대상의 상담, 이론, 실습과목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개강이 2주일 연기되면 여름방학을 그만큼 축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강이 계속 지연되면서 수업 일수에 문제가 생겼다. 4월이 되자, 이론과 실습 모두 원격 수업이 불가피해졌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 경험이 없어 난감했으나, 곧바로 과목 특성과 자신들의 강의 스타일에 따라 적합한 강의방식을 개발했다. 화상회의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업을 하거나 강의 영상을 사전 제작했다. 실습 과목은 과제와 피드백으로 진행하기도 했다.학교 당국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격 강의 운영시스템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온라인 수업 매뉴얼을 배포했다. 교수들에게 강의 촬영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버를 증설하여 이용의 편의를 증진했다.문제는 교육 효과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모든 사립대학은 등록금 반환 이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당국은 교수들에게 상담을 독려했다. 전화상담이 불가피했다. 전화를 받지 않기도 하고, 문자를 남겨도 연락이 없는 학생도 있다. 수업시간에 맞춰 전화해 '지금 어딘가?'라고 물으면, 아르바이트 중이라는 경우도 있다. '수업시간인데?'라고 물으면, 영상녹화 수업은 편한 시간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도 온라인 강의의 장점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통학시간이 절약되었다. 어려운 내용은 반복해서 시청할 수 있다고 한다. 학우들과 교수를 만날 수 없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신입생들의 처지는 딱했다. 대학생이 되었으나, 학교에 갈 수 없다. 원룸을 얻고도 등교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씩씩했다. 앞으로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등교하면 교수를 꼭 찾아오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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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내 편 네 편 가르지 말아야 지면기사
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를 두고진영논리로 민심 갈리는 안타까움조국·정의연 사태 때와 다를바 없어법정스님·김수환추기경 행보 반추지금은 다툼이 아닌 국민단합 중요'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물불 안 가린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입니다. 스님은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나누는데, 경전을 연구하고 강론하며 수행하고 포교하는 스님이 이판승이고, 사찰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고 종무를 돌보는 스님이 사판승입니다. 이판승의 꼭짓점은 종정이고, 사판승의 꼭짓점은 총무원장이지요. 가끔 이판과 사판을 두루 거친 스님도 있습니다. 이판이 없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을 수 없고, 사판이 없으면 가람을 존속시킬 수 없지요. 이판과 사판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고 동반자라는 방증입니다.살아보니 세상사는 일이 수학문제처럼 완벽하게 풀리지 않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구승이나 대처승이나 추구하는 진리와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지요. 기독교, 불교, 천주교도 추구하는 길이 다를 뿐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선종과 입적을 하신 종교지도자로 한 시대의 큰 스승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은 걸어온 길이 다르지요. 추기경님이 열 살이 더 많아 나이 차이가 있고, 출신도 영·호남으로 다릅니다. 종교 역시 천주교와 불교로 다르니 당연히 삶의 철학이나 추구하는 가치관과 방향이 다르고, 견해 차이도 있었을 겁니다.그런데 두 분의 인연은 길동무처럼 오랜 세월 교감하며 각별하게 이어졌지요. 특히, 두 분은 개인적인 친교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 벽을 허무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정 큰스님이 길상사 개원 법회를 열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참석해 축사를 해 주었지요. 법정 큰스님은 그해 성탄절 때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했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자 큰스님은 언론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시(詩)를 기고하기도 했지요. 두 분의 깊고 넓은 생각과 넉넉한 행보는 아름다운 우정이자 격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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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 지면기사
스터디셀러 작가 '수필철학' 3인방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탄생 100주년김태길, 간결한 글 독자 공감·소통 안병욱, 민족정신 녹인 삶의 메시지김형석, 관념·대상 인생사로 풀어내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세 분은 모두 주요 대학의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독창적 문장과 사유를 통해 정통 수필가로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1960~80년대에 젊은 날을 통과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분들의 이름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분들은 독자들을 많이 거느렸던 스테디셀러 작가들이기도 하다. 세 분은 1920년생 동갑내기였으니 따라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된다. 이분들이 수행한 수필과 철학의 상호 결합 방식을 두고 '수필철학(essay philosophy)'이라고 부른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약간이나마 냉소적 반응을 품은 듯한 명명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으로 이분들 작품의 정수를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김태길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첫 수필은 1955년 '사상계'에 발표한 '서리 맞은 화단'이었다. 1961년 첫 작품집 '웃는 갈대'를 시작으로 하여 그는 누구보다도 철학과 문학의 접점을 찾으면서 그 장르로 수필을 선택했고, 창작 과정에서 공감과 소통을 가장 중히 여긴 수필가로 인정받고 있다. 단아하고 아담한 문채(文彩)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글을 주로 썼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글을 쓴다는 것'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라는 그의 좌우명을 실천한 사례이다. 그의 글이 독자를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이끄는 것은 이러한 글의 품격과 구체성 때문이다. 중후한 철학적 사색과 매끈한 글쓰기에 매진했던, 스스로의 글쓰기를 즐겁고도 성실한 작업으로 여겼던 수필가가 김태길이었다.안병욱은 평남 용강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생활적 구체성에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