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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셜 벤처를 키우자

    소셜 벤처를 키우자 지면기사

    자신이 입다 버린 어릴 적 '블루 스웨터'에서 큰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1년 뉴욕의 재클린 노보그라츠는 자신이 입던 '블루 스웨터'를 아프리카의 한 소년이 입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본 후, 부유층과 빈곤층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사업에 투신한다.이것이 최초 비영리 벤처캐피털인 '어큐먼 펀드(Acumen Fund)'를 창업하는 배경이다. 실로 세상의 변화가 빠르다. 비즈니스의 근본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고, 또 사업 기회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기도 한다. 빈곤문제라든가 혹은 취약계층문제와 같은 사회적 고민을 해결하는 비즈니스가 이제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변화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와 경제 양극화의 심화 등 일련의 문제들을 겪으면서, 자본이 지배하는 시스템을 바꾸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미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소셜 벤처' 등과 같은 새로운 기업 모델들이 언급되는 것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이러한 새로운 기업모델 대안 중, '소셜 벤처'의 위상이 특이하다. 소셜 벤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신생기업을 말한다. 그것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조해서 사회 시스템을 혁신하려 한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모델들과 차별된다.또한 벤처라는 단어를 품고 있으므로, 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인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도 특징이다. '변화 창조자'를 육성하는 세계적인 기관인 아쇼카(Ashoka) 재단의 설립자인 빌 드레이든은 소셜 벤처기업가에 대해 특별한 정의를 내린다.그는 소셜 벤처기업가를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아 주거나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고기 잡는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꾸려고 돌파구를 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여기서 고기 잡는 산업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발상에 주목해야 한다. 소셜 벤처는 기존 기업세계에

  • 터키도 지금 '강남스타일' 지면기사

    지난달 하순께부터 지난 7일까지 보름간 터키 남부지역을 돌았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친근한 나라이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이스탄불에서부터 이즈미르 에페소 파묵칼레 안탈리아 콘야 갑파도기아 국경지대인 안타키아와 가지안텝까지 남부지방은 거의 둘러보았다.터키 민족은 본래 돌궐족으로 고구려시대 군사적 동맹관계를 통해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쳤던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나라를 형제국으로 역사교과서에 기록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지중해성 기후가 겨울이 우기(雨期)라고는 하지만 푸근한 날씨가 계속됐다.서기 500년대 돌궐족(투르크=터키族)이 중앙아시아 몽골을 근거로 돌궐(突厥)제국을 세웠을 때는 지금의 우리의 얼굴 모양과 비슷한 몽골인의 얼굴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唐)나라에 쫓겨 서쪽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이란, 아랍인들과 혼혈하여 서양사람을 더 닮은 지금의 터키 사람들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6·25 당시에도 미국 영국에 이어 1만5천명의 군인을 파병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우리 전쟁 고아들을 터키군이 많이 거두어 먹여살렸다고 한다. 터키 병사들은 부대에 고아들을 데리고 와서 씻기고 먹이기도 했다.2002년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과 4강에서 만났던 나라. 아직은 개발도상국에 있기는 하지만 경제성장률 8~9%대의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건설 붐이 일어 어디서나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절버스로 에페소로 가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르자 한 무리의 터키 초등학생들이 나타났다. 점퍼차림의 나를 보자마자 "강남스타일" "코레아"를 동시에 외쳤다. 나도 모르게 "강남 스타일"을 외치며 말춤을 추기 시작하자 같이 따라 했다. 어떤 어린이는 처음 춰보는 나보다 훨씬 동작이 유연했다.가지안텝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게 생긴 터키 아가씨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왔다. 영어는 못한다며 터키 말로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안다.다음에 오면 자기 집에

  • 힐링 코드를 돌아본다

    힐링 코드를 돌아본다 지면기사

    '힐링' 코드가 어느 겨를에 우리의 일상에 넘쳐나고 있다. 예능프로와 출판에서 시작한 힐링문화에 음식과 외식산업, 건강과 여행산업의 마케팅도 의존하려는 기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직간접적으로 힐링 코드를 내세우거나 활용한 바 있다.힐링(healing)이란 본래 상처난 몸이나 마음을 치유한다는 말이니 의사나 종교인들의 전담 분야이다. 90년대 이후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강조한 웰빙(well-being) 코드가 트렌드였는데 몇 년 사이 힐링이 대세가 되었다. 지금의 힐링 열풍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자기계발 열풍과 결합되면서 강력한 문화코드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상처받은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을 달래고 삶의 의지를 북돋워 주는 일을 해주는 멘토들의 역할은 소중하다. 그런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따뜻해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힐링이 문화코드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삶이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역설적 방증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턱대고 반기기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로 인해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져든 결과로 분석한다.힐링해야 할 상처는 대부분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럽발 경제위기와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성장의 결과는 대기업과 일부 계층이 독식하고 중산층은 저소득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빈부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된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경제 위기는 고스란히 서민 경제의 위기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실업률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가정경제의 기반도 취약해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생겨난 '하우스 푸어'들에게, 늘어만 가는 교육비가 힘겨운 서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당분간 꿈이다.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갈등과 상처가 모습을 드

  • 박근혜의 해피엔딩을 희망한다

    박근혜의 해피엔딩을 희망한다 지면기사

    어머니 육영수를 적의 흉탄에 잃었다. 파리 유학을 접고 귀국해 어머니 대신 고운 한복 차림으로 국빈을 맞이하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떠맡은게 스물세살 무렵. 아버지 박정희도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측근인 김재규의 권총에 숨을 거두었다. 쿠데타로 집권해 한강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거인의 족적을 남긴 아버지의 서거 이후 그녀는 철저하게 대중의 시선 밖에서 은둔했다. 장장18년이다.은둔의 세월을 채운 건 배신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동생들의 크고 작은 말썽이 행여 부모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세월은 또 얼마나 길었는가. 인내하고 침묵하는 일 말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운명일까. 아니면 한 시대의 완성을 위한 역사의 소환이었을까. 박근혜는 얼굴엔 육영수의 미소를 머금고 흉중엔 박정희의 뚝심을 품고 정치에 입문했다. 아버지의 후광과 어머니의 선업이 그녀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그녀의 원칙과 소신은 대쪽 이회창을 압도했고, 그의 낙마 이후에는 야당으로 전락한 보수당의 잔다르크로 떠올랐다.천막선거로 탄핵역풍을 정면돌파했고 진두지휘한 모든 선거에서 승리해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녀가 보수의 희망으로 빛나던 시절 진보정권은 지리멸렬했다. 박근혜는 이명박과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대안없는 차기 대권후보로 우뚝 섰다.박근혜는 정치의 한 복판에서 아버지의 정적들을 만났다. 북한의 김정일과 만난게 2002년. 그는 어머니 육영수 시해의 사주자인 김일성의 아들 아닌가. 사적으로는 원수의 처지이지만 공적으로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악수를 나누어야 하는 남북의 2세 정치지도자들. 박근혜가 바로 그 장소 그 시간에 품었을 인간적 소회는 문학적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2004년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았다. 박정희의 시대적 맞수였던 그에게 아버지 시대의 박해를 사과했다. 다행히 김대중은 그녀에게 "지역갈등 해소의 적임자"라는 덕담으로 화답했다.박근혜가 밟아 온 삶의 궤적에 고인 스토리 정도면 토지에 버금가는 대하소설도 가능하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에 출중한

  • 권력, 그 달콤한 유혹

    권력, 그 달콤한 유혹 지면기사

    요즘 전직 장차관들과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 고위공무원과 일부 정치교수들은 좌불안석이다. 외출할 때는 물론 사우나에 갈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폰을 꼭 들고 다닌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잠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밥 먹을 때도 식탁 위에 두고 먹는다.수신 확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한다. 자칫 배터리가 방전되면 배고픈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외출시 예비 배터리 하나쯤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은 필수다. 이토록 휴대폰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입각 소식이 날아올까 봐서다. 곧 총리가 정해지면 각 부처 장관들도 임명될 것이다.혹시 자신이 낙점되었다는 연락이 왔는데 받지 못하면 거절하는 뜻으로 받아들일까 휴대폰에 목을 매고 기다리는 것이다. 권력의 맛이란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고기도 먹어본 자만이 맛을 안다고, 권력도 누려 본 자만이 그 맛을 알 것이다.어려운 고시에 통과해 서기관이 되고 차관이 되고 장관도 하고 심지어 퇴직 후 국회의원이라는 덤까지 온갖 영화를 누리고도 은퇴할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권력,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쳤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그토록 주구장창 권세를 누렸건만 불러준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게 권력의 속성이다.징비록이 주는 교훈=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은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민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이었다. 왕의 바로 옆에서 전란을 지켜본 최고 관직에 있던 사람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을 위해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던 비굴한 상황마저 정확하게 기록한 책이다.또한 그의 눈에 비친 전란의 비참함, 문관, 무관들의 성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순신에 대한 평가에 상당부분 할애한 것도 놀랍다. 그러나 유성룡은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했다. 고향 하회로 돌아가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징비록' 집필이었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당파간의 정쟁만 벌이지말고 또다시 닥칠지 모를 전란에 대비해야

  • IMF의 두 얼굴

    IMF의 두 얼굴 지면기사

    재작년 5월 스릴러 영화의 거장 커티스 핸슨 감독이 만든 '투빅 투페일(Too big to fail)'이란 제목의 영화가 출시된 적이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국이 아슬아슬하게 수습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다큐멘터리 형식이었는데 리먼브라더스은행 파산 장면이 인상적이었다.영원의 상징처럼 인식되던 세계 4위의 공룡은행이 한순간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이 영화는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의 탐욕과 이를 부채질한 미국정부와의 야합이 빚은 범죄로 규정했다.한국민들에겐 더 깊고 큰 상처가 있다. 1997년 1월 23일 한보그룹 부도로 표면화된 위기가 갈수록 확대되자 다급했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담보로 경제주권을 넘겼다.IMF는 재정지출 축소와 증세, 은행 폐쇄와 금융긴축, 공기업 헐값 매각과 노동시장 유연화 등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30대 재벌의 절반이 좌초하는 등 2만2천여 기업들이 무더기로 부도를 맞았는데 그중 7천여 기업은 흑자도산했다.무려 250만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대마불사신화에 도취된 수많은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빨아들여 몸집을 키운 것이 화근이었다. 작금의 양극화와 평생직장 종식, 경제불안 심화, 캔두(can-do)정신 실종 등은 16년 전 악몽의 유산(遺産)이다.이 무렵 인도네시아는 IMF로부터 100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벨트타이트 프로그램을 강요받은 결과 1998년 한 해 동안에만 경제규모가 13%나 위축되었다. 태국도 수술후유증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당시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조시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IMF의 초긴축처방이 그릇되었다며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막무가내였다. 저금리에 근거한 빚잔치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 과감하게 척결했던 것이다. 국제금융자본의 진입장벽까지 일거에 허물어버렸다. 채무국들에게 소방수 IMF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저승사자였던 것이다.그런데 근래 들어 IMF에 이상기운이 감지된다. 지난해 10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총재가 뜬금없이 1990년대 말의 아시

  • 중소기업 시대 명분은 충분하다

    중소기업 시대 명분은 충분하다 지면기사

    박근혜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 중 중소기업에 가장 많은 애정을 쏟는 대통령이 될 듯 싶다. 줄곧 한국경제를 중소기업 위주로 운영할 것임을 표현하면서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임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그런데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꾸려가려면 그것을 통해 한국경제의 현안이 해결된다는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후부터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에 대해 다양한 쟁점과 도전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무엇보다 제한된 요소와 자원을 어떤 부분에 투입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부각될 것이며, 또한 한국경제의 당면과제인 '일자리'와 '혁신' 문제를 중소기업이 과연 해결하는지에 대한 도전이 등장할 것이다. 이들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명분을 갖고 있어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 가장 중요한 명분은 '중소 제조업'이라는 테마이다. 이는 케케묵은 전통적인 주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한국경제의 현안인 일자리와 혁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세계경제는 이미 중소 제조업 경쟁으로 진입했는데, 가장 적극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미국은 지난 시절 서비스업 중심의 전략을 반성하면서 제조업 르네상스의 깃발을 내세운 지 벌써 2~3년이 되었으며, 독일은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중소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유럽 경제위기를 뚫고 고속성장을 누리고 있다.이들이 중소 제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집중하는 이유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특히 대기업 위주의 경제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하려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가졌던 큰 오해는 제조업은 비선진국 산업이자 사양산업인 것처럼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렇지 않다.혁신과 일자리 측면에서 제조업의 가치는 실제 놀랍다. 첫째, 제조업이 있는 곳에 연구개발(R&D)이 따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제조업이 인근에 있을 때 과학자들이 자신의 발명을 직접 검증할 수 있었고 또 그 발명을 상업화할 수 있었다.생산현장이 멀다면 연구개발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혁신이 줄어든다는 발견이 쌓이고

  • 인천 600년과 계사년

    인천 600년과 계사년 지면기사

    지난 2012년은 유달리 사건도 많고 탈도 많은 임진년이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가 강화로 피난했던 해인 1232년(고려고종 19년)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1592년(선조 25년)도 모두 임진년이었다니, 우리가 지난해 겪은 일들은 오히려 액땜 정도로 위안해야겠다.이제 2013년, 계사년(癸巳年)의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로 지명을 얻은 지 600년인 지방이 여럿 있다. 인천시를 비롯하여 경기도의 고양시와 양주시, 용인시, 충북 제천시, 전남 함평군 등 전국의 지자체가 지명 600돌을 맞이하여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600년 '묵은' 지명은 대부분 조선 태종 13년에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고려시대의 군현체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명명된 것으로 당시 이웃 군현과 통폐합되거나 지위가 격하된 경우도 있으나 이후 600년 동안 같은 땅이름으로 '장기지속(Longue Duree!)'해온 것만도 장엄하지 않은가. 사람으로 따지면 회갑을 10번째 맞이하는 10주갑(周甲)에 해당하며, 30년을 한세대로 치면 무려 20세대가 바뀌어 갔으니 참으로 장구한 역사이다.이 가운데 인천의 변화는 극적이다. 1413년 당시 기초 단위였던 군(群)에서 도호부로, 직할시로, 광역시로 바뀌면서 지금은 한국 제3의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시대의 인천의 위상은 인주 이씨가 고려왕실과 7차례나 중첩된 혼인관계를 맺을 만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인천 지명이었던 경원(慶源)이니 인주(仁州)니 하는 지명은 고려 왕실의 왕비들이 태어난 고향이라는 말이며 '고려 왕실 경사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대체로 도호부격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올해는 제물포 개항 1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883년 개항이 이뤄지면서 수도 한양의 방어 진지였던 제물포는 국제항구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제물포개항은 조선정부의 능동적 의지가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요구를 수용하여 이뤄졌다는 점이다.개항과 동시에 조선은

  • 심판대에 오를 박 당선자의 인재등용 지면기사

    '고소영S라인', '회전문 인사'. 이명박 정권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한 말이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서울시청 출신들을 국가의 주요 보직에 대거 등용한 것을 두고 일컬은 일종의 비아냥이다.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았던 측면도 있겠지만 실제로 앞에 거론된 출신들이 많이 중용됐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되면 선거때 혼신의 힘을 쏟은 측근들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자신이 부리기 좋고, 또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회전문 인사의 경우도 그렇다.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 한 사람에게 돌려가며 자리를 주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자는 이를 인식한 듯 탕평인사와 통합을 원칙으로 내걸고 있다. 그래서 선대본부장을 지낸 '친박'의 좌장격인 김무성 전의원을 비롯한 많은 측근들이 공직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낙향한 것으로 전해졌다.멋진 사람들이다. 비서실장과 대변인들을 기용하면서도 박 당선자는 '친이'계를 중용했다. 이도 일단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임명을 놓고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야당은 물론 보수 언론들마저 윤 대변인의 임명에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처음부터 '옥에 티'라 할까?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윤 대변인의 임명에 대해 야당은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논평했다. 윤관석 의원은 윤창중 수석대변인에 대해 "48% 문 후보 지지자들에 대해 '국가전복세력', '반대한민국세력', '정치적 창녀' 등 온갖 막말을 대선 당시 뿐만 아니라 대선 이후에도 쏟아내고 있는 전형적인 국민분열 획책 인물"이라고 평가했다.보수언론들마저도 자극적인 표현으로 야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연재한 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날 임명 직후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지독한 고민 속에서 (수석대변인 수락을) 결심했다"며 "거절하려 했지만, 박근혜 당선자의 첫 번째 인사여서 거절하는 건 참으로 힘들었다"고 했다.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윤창중 수석대변인은

  • 분노와 저주의 폐허에서 장미는 필 것인가

    분노와 저주의 폐허에서 장미는 필 것인가 지면기사

    오늘은 18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4천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차기 대통령을 지목하는 날이다. 어제 일기예보대로라면 아침 날씨는 꽤 추우리라. 날씨뿐이랴.투표소를 향하는 유권자들의 마음도 추우리라 짐작해 본다. 어제까지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분노와 저주의 언어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분노와 저주를 대리해 투표하는 처지에 몰렸으니 마음이 시린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반의 진영에 포함돼 나머지 절반을 배격하는 선택, 괴롭지 않겠나.이번 대통령 선거는 모처럼 양자대결로 뜨거웠다. 보수진영은 열외없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우산 아래 집결했다. 진보진영은 우여곡절 끝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의 월계관을 진상했다. 그래서였나. 안철수의 단일화 곡예와 이정희의 무개념 원맨쇼 말고는 무미건조했던 선거전이 막판에 달아올랐다.국민들은 신사와 숙녀의 페어플레이를 기대했다. 그럴 만도 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지금과 같은 정치는 안 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쇄신은 피할 수 없는 대선화두로 자리잡았다. 안철수를 중심으로 새정치 희구세력이 정치개혁을 시대정신으로까지 승화시켜 놓은 덕도 컸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안철수가 몇 번의 투정과 몽니 끝에 자진 하차한 뒤 양자대결이 현실화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의 분노와 저주가 곧바로 부활했다. 박빙의 판세가 전개되자 새정치의 희망을 노래하던 그 입으로 저주와 독설을 쏟아내고, 국민통합을 약속하던 선한 미소는 적개심에 불타는 표정으로 돌변했다. 한때 박근혜와 문재인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안철수가 낙마하자 정당이 현실을 장악했고 새정치의 꿈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여야의 공방에 실체적 진실은 유효한가. 아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보자. 민주당측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악성댓글 작성반을 운영했다며 20대 국정원 여직원을 지목했다. 이후 과정은 모두 건너뛰자.여하튼 경찰이 그녀의 컴퓨터를 들고가 조사했고 결과를 발표했다. 댓글작성 흔적이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경찰의 조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의 사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