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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녀보다 엄마

    선녀보다 엄마 지면기사

    [경인일보=]어릴 때 읽었던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면 나무꾼이 포수에게 쫓기던 사슴을 구해준 보답으로 선녀가 목욕하는 곳을 알게 되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선녀와 결혼하게 된다. 그렇지만 선녀가 아이 3명을 낳기 전에 날개옷을 주지 말라는 사슴의 경고를 어겨 선녀가 하늘로 승천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선녀가 아이 3명을 낳기 전에 날개옷을 주면 하늘로 승천하고, 아이 3명을 낳은 후에는 날개옷을 주더라도 승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법률가의 시각으로 보면 선녀의 옷을 훔치고 선녀가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게 한 나무꾼은 절도죄와 체포·감금죄로 형사처벌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아이들을 업고 안고 하면 3명을 데리고 승천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굳이 3명이라는 아이를 선녀가 승천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이유가 무엇인지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였지만 알맞은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가 '선녀라도 아이 3명을 낳으면 이미 선녀가 아니라 아줌마가 되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제시하여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다.검사로 근무할 때에 조사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종중간의 재산 다툼 사건, 교회 구성원간의 다툼 등을 들기도 하였지만 직장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만 집에서 키우는 가정주부들이 사건관계인인 사건도 그 중 하나로 손꼽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가족의 보호를 위해서는 사실과 다른 주장도 서슴없이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 관계를 토대로 하여 사건을 풀어나가기 어렵다는 점에 있었다.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엄마가 있기 때문에 가족이 지켜지고, 이런 안정 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발전하며 사회 공동체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냉정하게 자신의 자식들과 다른 자식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대한다면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함이 있는 아이들이 어디에서 사랑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한나라 유방이 항우와의 쟁패에서 이기게 된 원인 중에는 한신과 장량의 공이 켰지만 관중에 남아서 묵묵히 군량과 군병

  •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른것이 좋다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른것이 좋다 지면기사

    [경인일보=]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양복이 필요하다고 하면 좋은 양복점을 찾아가 맞춰 입는 것이 으뜸이었다. 양복 안쪽에는 '신신라사'니 '황태자'니 양복점 상호가 멋들어지게 박혀있었다. 옷을 만들자면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 두 번은 양복점을 방문해야 한다. 처음에는 기본 치수를 재고 이에 따라 임시 바느질, 가봉이 되면 다시 가서 입어본다. 가봉된 옷을 입어보고 품이 잘 맞는지, 불편하게 끼는 곳은 없는지 그 시절의 특급 재봉사들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몸에 맞추어 섬세하게 옷을 손보고 자연스럽게 맵시를 내게 해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중/소, 66/77/88 사이즈에 맞춰 기성복을 사입는 것이 더 폼나는 일이 되었다. 버버리나 닥스 같은 다국적자본의 상표가 동네 최고 양복점의 자부심을 대신하게 되었고 우리 곁의 일등 장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보다도 더 황당한 것은 표준형으로 만들어진 옷에 맞지 않는 신체가 뭔가 결핍되고 못난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몸에 맞춰 만들지 않은 옷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바지 길이가 너무 긴 것이 아니라 내 다리가 너무 짧은 것이고 소매가 너무 끼는 것이 아니라 내 팔이 너무 굵은 것으로 간주된다. 옷이 우선이고 기준이어서 사람 몸을 거기에 맞춰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어디 옷뿐인가. 정치를 한다면 일단 정비나 단속부터 시작하는 게 관례가 되다시피 한 세태고 보면 천편일률 일사불란 나란히나란히 줄맞춰 세워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거리거리 나붙어 있는 플래카드는 아무 때나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지 마라, 여긴 단속하는 곳이니 뭐 하지 마라, 여긴 뭐하면 안되는 장소니 사전에 허가를 받아라가 대부분이다. 통치가 정치를 대신하고 단속이나 관리가 정치를 대변한다. 사회가 이러니 사람을 규격화하는 방법도 뻔하고 식상하다. 성적이 몇 등급이냐, 일류대 출신이냐, 토익이 몇 점이냐가 뭘 잘하는지, 성격이 어떤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사람의 개성이나 소질을 대신한 지 오래다. 요컨대 사람을 위한 기준

  • 지명은 역사다

    지명은 역사다 지면기사

    [경인일보=]대전의 본디 이름은 한밭이었다. 한밭의 한은 크다는 뜻이며 밭은 들판을 의미하므로 한밭은 넓은 들판이다. 오랫동안 넓은 들판이었던 한밭은 조선 초기부터 한자 이름 대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밭을 한자로 적다보니 대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대전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다. 전국 제일의 온천수가 넉넉하게 솟아오르는 천혜의 명소, 바로 유성온천이다. 온천이 나오는 곳은 현재 행정구역상 온천 1동과 온천 2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온천은 말 그대로 따뜻한 물이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온천이 발견된 것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측되지만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안으로 가던 중에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기록이 있고, 태종이 전라도 임실로 강무를 위해 행차하던 중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고 하니 조선왕조가 시작될 무렵에는 임금이 쉬어갈 정도로 훌륭한 온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성온천은 지금도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온천으로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이렇듯 온천으로 유명한 유성은 본디 백제시대의 노사지현을 역사적 터전으로 했었다. 백제시대의 노사지는 '느슨하게 펼쳐진 지형에 자리한 성'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유성으로 개명되었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노사지도 운명을 같이 한 것이다. 백제 멸망 후 노사지를 대신한 유성이란 지명도 이제 그 나이가 1천200살을 훌쩍 넘어섰다.한밭이 대전이 된 것은 표기의 문제였다. 노사지가 유성이 된 것은 백제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기인했다. 온천동은 따뜻한 샘물이 나옴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므로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지명이다. 이처럼 지명에는 유래와 사연과 역사가 있다. 조상의 숨결이 담겨있다. 지명이 그 지역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명은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도 반영한다.최근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외래어가 포함된 동(행정동) 이름이 탄생했다. 지난 4월 21일 대전 유성

  • "경기도에 그린 바람이 거세게 몰려온다"

    "경기도에 그린 바람이 거세게 몰려온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전기 발전 및 공급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중앙 정부의 몫으로 인식하여 지자체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최근 들어 CO2감축, 기후변화, 그린성장, 스마트 그리드, 신·재생에너지 등의 용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자주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번 정부들어 녹색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언하면서 그린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그린 세상, 즉 CO2 감축과 관련해서는 유럽과 일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정책을 끌고 왔으며, 녹색산업의 중요한 기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녹색산업과 관련하여 경제성이 아직까지 낮으므로 정부의 지원정책이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즉 정부의 지원정책과 미래를 향한 기업 도전의 산물이 유럽과 일본의 세계적인 그린산업이다.최근 일본의 가전매장을 살펴보면 잘 팔리는 제품에는 어김없이 에코(ECO) 마크 표시가 있었다. 에너지 저감 기능이 있는 전자제품을 구매하면 CO2감축량만큼 돈을 돌려받는 제도가 되어 있어, 가전회사에서 경쟁적으로 에너지 저감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에코라는 용어가 일반 시민들에게 잘 인식되어 있으며, 모든 생활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십여 년 전부터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녹색성장을 추구한 결과이다. 전 국민에게 에코바람을 불어넣기까지 무모하리만큼 정부가 지원정책을 실행하고 막대한 예산을 소진한 결과이기도 하다.유럽에서도 자동차 배기가스의 CO2저감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규제를 법제화하였으며, 유럽 자동차 회사들과 꾸준한 교감을 가지고 법제화에 대한 사항을 조율해 왔다. 이와 같이 그린 선진국에서는 법제화, 산업화, 국민과의 공감대 등의 모든 제반조건이 갖춰져 있다.그린성장의 초입에 있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동안 CO2감축에 미온적이던 미국, 중국도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그린 바람은 큰 태풍으로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될 것이다.선진국의 빠른 행보를 바라만 보고 있던 정부에서도 최근 녹색성장 관련법을 제정하고, 관련 예산을 증액하면서 녹색바람이 불기

  • 善과 惡의 기준은 삶

    善과 惡의 기준은 삶 지면기사

    [경인일보=]부장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업무를 한지도 벌써 1년이 넘어섰다. 그 동안 우리 사무실의 직원들과 주위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선 감사한 마음뿐이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지만 어떤 분야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도 열심히 변호사 업무를 하고 있다.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변호사로 있는 것이 검사로 있을 때보다 좋은 점이 무엇이냐'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진담반 농담반으로 우선 와이프가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과 부모님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보내드릴 수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답하곤 하였다. 그리고 또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면 검사로 있을 때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하곤 하였다. 반대로 변호사가 되어 나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항상 근심거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과 가끔은 자존심을 버려야할 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곤 하였다.하지만 20년 이상 검사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1년 넘게 변호사를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확실한 가치관에 따라서 어떤 사건에 대하여 결정을 해야 하는 검사와 판사가 한쪽에 있고, 완전히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건당사자들이 한쪽에 있어, 변호사는 그 중간에 서서 양쪽의 생각을 듣게 되는데, 이럴 때마다 어느 것이 선(善)인지 고민스러운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하였다. 판사와 검사의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얼마 전에 법정 스님이 열반하셨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필자도 진한 감동과 많은 깨달음을 느꼈다. 특히 지금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말은 '제가 다하지 못한 설법은 봄에 새로이 피어나는 새싹들의 침묵 속에서 듣기 바란다'는 말이었다. 듣는 순간부터 강한 충격을 받았던 이 말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과 연결되면서 그 동안의 고민을 이렇게 생각해보게 되었다.새싹들의 침묵에서 듣게 될 설법은

  • 죽음을 꽃답다 말하지 말라

    죽음을 꽃답다 말하지 말라 지면기사

    [경인일보=]맹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의 제물이 되기를 자처하고 회생하여 황후가 되며 맹인 잔치를 열어 세상의 맹인들이 개안한다는 '심청전'은 뛰어난 고전이다. 더구나 한 맹인의 딸에서 모든 맹인의 딸, 모든 맹인의 수호신으로 거듭나는 심청이는 진정한 인간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말 멋진 장면은 황후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만을 별도로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맹인을 위한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게다가 심봉사가 눈을 뜨는 서슬에 모든 맹인이 눈을 뜬다는 대단원은 함께 행복하기를 원했던 전 시대 민중의 희망이 투영된 정말 최고의 장면이다. 어둠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기를 바라는 것이 맹인만의 소망은 아니다.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어린 심청이가 눈 먼 아버지를 두고 죽으러 가는 것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이는 일종의 신화적 상상으로서 식물이 겨울을 맞아 죽어야만 새봄을 맞아 부활하여 새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정지되었던 것처럼 보였던 생명이 재생하여 순환하는 자연계의 이치로부터, 또 그렇게 부활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기원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읽어보면 심청이는 출천대효(出天大孝)이기는커녕 불효막심 불초자식이다. 하물며 제 손으로 목숨을 버림이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동의하듯 최고의 효도는 자식이 행복한 것이다. 가까이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자식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모든 부모의 소원이라고 해도 좋겠다.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살아온다는 것은 진실로 간절한 소망이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요컨대 팔려가는 심청이는 현실이요, 황후가 되어 맹인잔치를 여는 심청이는 상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해피엔딩에 의지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던가. 희생이란 결국 대체될 수 없는 애통절통한 손실이다. 생명을 살린다고 다른 생명을 잃는 일은 근본적으로 형용모순인 것이다. 일제의 가미카제 특공대나 자살테러를 조장하는 극단적 종교에서처럼 희생을 미화하는 문화는 수상쩍다. 희생은 애도되어야 할 일이고 재발되어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기억되는 것이다. 즉 바뀌고

  • 외래어 범람속에서도 포기할수 없는 우리말글

    외래어 범람속에서도 포기할수 없는 우리말글 지면기사

    [경인일보=]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했다. 교육방송의 '다큐프라임'이란 프로그램이었다. 이야기 3부작으로 지난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방송되었다. 1부 이야기의 힘, 2부 이야기의 작동 원리, 3부 스토리텔링의 시대였다. 글쓴이는 우리말글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곳 수요광장에서도 우리말글 운동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말글이 중요하다는 얘기, 우리말글을 중시해야 한다는 얘기, 우리말글을 애용하자는 얘기를 꾸준히 해왔다. 우리말글 애용과 관련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하나로서 외래어를 남용하지 말자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글쓴이는 '다큐프라임'에 출연했다. 프로그램 제목부터가 외래어이다. '프로그램'이라는 말도 외래어이다. 1부와 2부는 우리말 제목으로 방송되었지만 3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였다. 나 자신이 이런 외래어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몹시 불편하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랜만에 교육방송에 출연한다고 하니 "교육방송이요? 이비에스 아닙니까?"하고 되묻는다. 하긴 그렇다. 일반적으로 교육방송이라고 하지 않고 이비에스라고 한다. 하지만 이 방송사의 이름은 '한국교육방송공사'이다. 이비에스는 이 이름을 영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국교육방송공사 혹은 교육방송보다 이비에스를 더 많이 쓴다. 한국교육방송공사라는 긴 이름보다는 이비에스가 간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방송과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다. 주객이 전도됐다. 이야기 3부작에서 글쓴이가 맡은 역할은 '프리젠터'였다. 프리젠터는 영어 'presenter'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진행자'이기도 하고 어떤 주제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는 '발표자'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프리젠테이션이란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프리젠터까지 우리말처럼 쓰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프리젠터는 프리젠터이기 이전에 해설자이고 발표자이다.글쓴이가 맡은 역할은 전체 내용을 해설하는 것이었고, 때때로 상황에 간섭하면서 직접 현장에 투입되어 극을 이끌거나 극의 진행을 돕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방송 대본에는 너무나도 익

  • 日 '모노즈쿠리'의 쇠락과 한국中企 현주소

    日 '모노즈쿠리'의 쇠락과 한국中企 현주소 지면기사

    [경인일보=]2009년 12월 호주기업의 CEO를 경기도 소재 중소기업에서 만나 한국 중소기업의 위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호주기업은 자동차 냉방시스템 관련 특허를 가지고 세계 최초로 자동차 에어컨을 상용화한 기업이며 미국의 포드자동차 등과 거래하고 있다. 중국에 최근 대단위 생산제조시설을 갖추어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자동차와 관련 없는 비즈니스이며 자동차 관련 제품의 경쟁력이 심화되고 수익률도 떨어져 신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10여년간 개발한 제품과 관련된 출장이라고 외국기업의 CEO는 방문 목적을 밝혔다. 호주는 그린 산업 및 친환경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관련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많아, 이 기업도 새로운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사업화하고 있으며 핵심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한국 기업을 방문한 것이었다.이 기업이 찾는 핵심부품은 고정밀기술로서 개발 단계부터 일본 관련기업의 기술을 믿고 진행하던 중 일본 기업으로부터 핵심부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므로 이 기업의 개발 성공을 위협하는 사태까지 몰고간 부품이었다. 일본 기업은 최근 15년간 불경기로 신규 시설투자를 못하였으며, 특수한 설계를 요하는 의뢰받은 핵심부품을 위한 시설투자 또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더욱 이 기업을 놀라게 한 것은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을 소개한 것이다. 호주 기업의 CEO는 반신반의하면서 한국의 기업을 방문하고 일본기업이 소개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일본 중소기업 밀집지역의 상징이던 도쿄에서 30분 거리의 오다 공업지구에서는 1980년대 일본 경기가 최상일 때 중소기업이 9천890개이던 것이 2008년에 4천351개로 줄어들었으며 80%이상이 3인 이하인 소기업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한때 모노즈쿠리(일본 제조기술의 상징)라고 자부하던 일본 중소기업이 위축되어가는 현장이다. 일본의 중소기업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변화하고 있는지를 한국 중소기업들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다 공업지구는 도쿄 근처에

  • 선한 의도 ≠선한 결과

    선한 의도 ≠선한 결과 지면기사

    [경인일보=]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처음 읽게 된 것은 교보문고 부근에서 약속이 있어 갔다가 남는 시간에 책들을 둘러보던 중 '율리우스 시이저'라는 부제를 보면서부터였다. 그 뒤로 매년 한권씩 나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마지막까지 읽었다.저자가 그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였던 것은 로마제국이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및 멸망하였던 이유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런 이유들은 결국 개인, 가족, 사회 공동체 모두에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든 위기와 고비가 전혀 없이 그 존재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상정하기 어려운 것이며,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서 그 존재가 계속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쇠퇴하게 되는데 로마제국은 위기 대처 시스템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판단으로 느껴졌다.그래서 결혼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법연수원 제자들에게도 결혼을 통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데 그 공동체에 당연히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말하곤 하였다.특히 부부싸움을 할때 서로 이것만은 꼭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에 대하여 서로 미리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고, 경험적으로는 아무리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상대방 가족은 절대 끌어들이지 말라고 하기도 하였다.대제국을 이룬 로마가 멸망하게 된 요인에 대하여 여러 설명이 있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 첫 단초가 결국 게르만 방벽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였다.게르만 방벽이 제 역할을 할 때에는 팍스 로마나가 이루어졌는데, 그 방벽이 무너지면서 결국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통하여 로마가 멸망하였다는 것이다.그런데 오랜 시절 동안 로마를 완벽하게 방어해주던 게르만 방벽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시오노 나나미의 설명은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로마제국은 로마시민권자, 속주민, 노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

  •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면 고칠 수도 없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면 고칠 수도 없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이 있다.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태양왕 루이14세의 말이다. 고등학교 윤리시간, 선생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셨다. 이 말을 요즘에 맞춰 고치면 무엇이라 할 수 있느냐고. 우리 머릿속에서는 초급 산수가 시작되었다. '짐'은 '왕'을 말하는 거니까 요즘으로 고치면 '대통령'인가? 뭔가 계산이 꼬여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누군가의 입에서 결국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선생님께 꾸중을 들으면서 남은 수업 내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배워야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말은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은 현대식으로 고치면 '국민이 곧 국가다'.이 날의 부끄러움은 오래 남았다. 나는 왜 그때 어리석게도 '대통령'이라는 낱말을 입안에 굴리고 있었던가. 왜 옛날의 왕을 대통령이 대신한다고 생각했던가? 내 자신과 화해하게 된 것은 그 어리석은 생각이 내가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주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였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제왕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의 지배를 받았다. 공포가 일상이었다. 두려움 속에서 창발적인 생각이 나올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눈에 띄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으면서 중간이나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저항은 물론이요, 모든 반대, 모든 이견까지도 무조건 나쁜 것이었다. 이리저리 재보고 따져보는 논리적 사고조차 환영받지 못하였다. 따지기 좋아하는 아이는 건방지고 주제넘는 아이였고 부모는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모르는' 아이를 당사자와 집안의 안녕을 위해서 더 심하게 통제해야만 했다. 그렇게 자란 우리가 '왕' 대신 '대통령'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오답의 책임은 일개 청소년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니다', '싫다'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빼앗고 건강한 비평과 비판과 토론을 부정한 독재정권에 있었던 것이다.한국민주주의의 성장은 단순히 독재정권의 청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은 공포를 조장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