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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善과 惡의 기준은 삶

    善과 惡의 기준은 삶 지면기사

    [경인일보=]부장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업무를 한지도 벌써 1년이 넘어섰다. 그 동안 우리 사무실의 직원들과 주위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선 감사한 마음뿐이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지만 어떤 분야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도 열심히 변호사 업무를 하고 있다.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변호사로 있는 것이 검사로 있을 때보다 좋은 점이 무엇이냐'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진담반 농담반으로 우선 와이프가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과 부모님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보내드릴 수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답하곤 하였다. 그리고 또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면 검사로 있을 때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하곤 하였다. 반대로 변호사가 되어 나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항상 근심거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과 가끔은 자존심을 버려야할 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곤 하였다.하지만 20년 이상 검사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1년 넘게 변호사를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확실한 가치관에 따라서 어떤 사건에 대하여 결정을 해야 하는 검사와 판사가 한쪽에 있고, 완전히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건당사자들이 한쪽에 있어, 변호사는 그 중간에 서서 양쪽의 생각을 듣게 되는데, 이럴 때마다 어느 것이 선(善)인지 고민스러운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하였다. 판사와 검사의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얼마 전에 법정 스님이 열반하셨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필자도 진한 감동과 많은 깨달음을 느꼈다. 특히 지금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말은 '제가 다하지 못한 설법은 봄에 새로이 피어나는 새싹들의 침묵 속에서 듣기 바란다'는 말이었다. 듣는 순간부터 강한 충격을 받았던 이 말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과 연결되면서 그 동안의 고민을 이렇게 생각해보게 되었다.새싹들의 침묵에서 듣게 될 설법은

  • 죽음을 꽃답다 말하지 말라

    죽음을 꽃답다 말하지 말라 지면기사

    [경인일보=]맹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의 제물이 되기를 자처하고 회생하여 황후가 되며 맹인 잔치를 열어 세상의 맹인들이 개안한다는 '심청전'은 뛰어난 고전이다. 더구나 한 맹인의 딸에서 모든 맹인의 딸, 모든 맹인의 수호신으로 거듭나는 심청이는 진정한 인간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말 멋진 장면은 황후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만을 별도로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맹인을 위한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게다가 심봉사가 눈을 뜨는 서슬에 모든 맹인이 눈을 뜬다는 대단원은 함께 행복하기를 원했던 전 시대 민중의 희망이 투영된 정말 최고의 장면이다. 어둠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기를 바라는 것이 맹인만의 소망은 아니다.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어린 심청이가 눈 먼 아버지를 두고 죽으러 가는 것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이는 일종의 신화적 상상으로서 식물이 겨울을 맞아 죽어야만 새봄을 맞아 부활하여 새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정지되었던 것처럼 보였던 생명이 재생하여 순환하는 자연계의 이치로부터, 또 그렇게 부활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기원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읽어보면 심청이는 출천대효(出天大孝)이기는커녕 불효막심 불초자식이다. 하물며 제 손으로 목숨을 버림이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동의하듯 최고의 효도는 자식이 행복한 것이다. 가까이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자식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모든 부모의 소원이라고 해도 좋겠다.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살아온다는 것은 진실로 간절한 소망이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요컨대 팔려가는 심청이는 현실이요, 황후가 되어 맹인잔치를 여는 심청이는 상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해피엔딩에 의지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던가. 희생이란 결국 대체될 수 없는 애통절통한 손실이다. 생명을 살린다고 다른 생명을 잃는 일은 근본적으로 형용모순인 것이다. 일제의 가미카제 특공대나 자살테러를 조장하는 극단적 종교에서처럼 희생을 미화하는 문화는 수상쩍다. 희생은 애도되어야 할 일이고 재발되어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기억되는 것이다. 즉 바뀌고

  • 외래어 범람속에서도 포기할수 없는 우리말글

    외래어 범람속에서도 포기할수 없는 우리말글 지면기사

    [경인일보=]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했다. 교육방송의 '다큐프라임'이란 프로그램이었다. 이야기 3부작으로 지난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방송되었다. 1부 이야기의 힘, 2부 이야기의 작동 원리, 3부 스토리텔링의 시대였다. 글쓴이는 우리말글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곳 수요광장에서도 우리말글 운동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말글이 중요하다는 얘기, 우리말글을 중시해야 한다는 얘기, 우리말글을 애용하자는 얘기를 꾸준히 해왔다. 우리말글 애용과 관련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하나로서 외래어를 남용하지 말자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글쓴이는 '다큐프라임'에 출연했다. 프로그램 제목부터가 외래어이다. '프로그램'이라는 말도 외래어이다. 1부와 2부는 우리말 제목으로 방송되었지만 3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였다. 나 자신이 이런 외래어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몹시 불편하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랜만에 교육방송에 출연한다고 하니 "교육방송이요? 이비에스 아닙니까?"하고 되묻는다. 하긴 그렇다. 일반적으로 교육방송이라고 하지 않고 이비에스라고 한다. 하지만 이 방송사의 이름은 '한국교육방송공사'이다. 이비에스는 이 이름을 영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국교육방송공사 혹은 교육방송보다 이비에스를 더 많이 쓴다. 한국교육방송공사라는 긴 이름보다는 이비에스가 간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방송과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다. 주객이 전도됐다. 이야기 3부작에서 글쓴이가 맡은 역할은 '프리젠터'였다. 프리젠터는 영어 'presenter'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진행자'이기도 하고 어떤 주제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는 '발표자'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프리젠테이션이란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프리젠터까지 우리말처럼 쓰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프리젠터는 프리젠터이기 이전에 해설자이고 발표자이다.글쓴이가 맡은 역할은 전체 내용을 해설하는 것이었고, 때때로 상황에 간섭하면서 직접 현장에 투입되어 극을 이끌거나 극의 진행을 돕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방송 대본에는 너무나도 익

  • 日 '모노즈쿠리'의 쇠락과 한국中企 현주소

    日 '모노즈쿠리'의 쇠락과 한국中企 현주소 지면기사

    [경인일보=]2009년 12월 호주기업의 CEO를 경기도 소재 중소기업에서 만나 한국 중소기업의 위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호주기업은 자동차 냉방시스템 관련 특허를 가지고 세계 최초로 자동차 에어컨을 상용화한 기업이며 미국의 포드자동차 등과 거래하고 있다. 중국에 최근 대단위 생산제조시설을 갖추어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자동차와 관련 없는 비즈니스이며 자동차 관련 제품의 경쟁력이 심화되고 수익률도 떨어져 신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10여년간 개발한 제품과 관련된 출장이라고 외국기업의 CEO는 방문 목적을 밝혔다. 호주는 그린 산업 및 친환경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관련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많아, 이 기업도 새로운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사업화하고 있으며 핵심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한국 기업을 방문한 것이었다.이 기업이 찾는 핵심부품은 고정밀기술로서 개발 단계부터 일본 관련기업의 기술을 믿고 진행하던 중 일본 기업으로부터 핵심부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므로 이 기업의 개발 성공을 위협하는 사태까지 몰고간 부품이었다. 일본 기업은 최근 15년간 불경기로 신규 시설투자를 못하였으며, 특수한 설계를 요하는 의뢰받은 핵심부품을 위한 시설투자 또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더욱 이 기업을 놀라게 한 것은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을 소개한 것이다. 호주 기업의 CEO는 반신반의하면서 한국의 기업을 방문하고 일본기업이 소개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일본 중소기업 밀집지역의 상징이던 도쿄에서 30분 거리의 오다 공업지구에서는 1980년대 일본 경기가 최상일 때 중소기업이 9천890개이던 것이 2008년에 4천351개로 줄어들었으며 80%이상이 3인 이하인 소기업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한때 모노즈쿠리(일본 제조기술의 상징)라고 자부하던 일본 중소기업이 위축되어가는 현장이다. 일본의 중소기업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변화하고 있는지를 한국 중소기업들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다 공업지구는 도쿄 근처에

  • 선한 의도 ≠선한 결과

    선한 의도 ≠선한 결과 지면기사

    [경인일보=]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처음 읽게 된 것은 교보문고 부근에서 약속이 있어 갔다가 남는 시간에 책들을 둘러보던 중 '율리우스 시이저'라는 부제를 보면서부터였다. 그 뒤로 매년 한권씩 나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마지막까지 읽었다.저자가 그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였던 것은 로마제국이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및 멸망하였던 이유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런 이유들은 결국 개인, 가족, 사회 공동체 모두에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든 위기와 고비가 전혀 없이 그 존재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상정하기 어려운 것이며,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서 그 존재가 계속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쇠퇴하게 되는데 로마제국은 위기 대처 시스템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판단으로 느껴졌다.그래서 결혼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법연수원 제자들에게도 결혼을 통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데 그 공동체에 당연히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말하곤 하였다.특히 부부싸움을 할때 서로 이것만은 꼭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에 대하여 서로 미리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고, 경험적으로는 아무리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상대방 가족은 절대 끌어들이지 말라고 하기도 하였다.대제국을 이룬 로마가 멸망하게 된 요인에 대하여 여러 설명이 있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 첫 단초가 결국 게르만 방벽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였다.게르만 방벽이 제 역할을 할 때에는 팍스 로마나가 이루어졌는데, 그 방벽이 무너지면서 결국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통하여 로마가 멸망하였다는 것이다.그런데 오랜 시절 동안 로마를 완벽하게 방어해주던 게르만 방벽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시오노 나나미의 설명은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로마제국은 로마시민권자, 속주민, 노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

  •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면 고칠 수도 없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면 고칠 수도 없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이 있다.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태양왕 루이14세의 말이다. 고등학교 윤리시간, 선생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셨다. 이 말을 요즘에 맞춰 고치면 무엇이라 할 수 있느냐고. 우리 머릿속에서는 초급 산수가 시작되었다. '짐'은 '왕'을 말하는 거니까 요즘으로 고치면 '대통령'인가? 뭔가 계산이 꼬여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누군가의 입에서 결국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선생님께 꾸중을 들으면서 남은 수업 내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배워야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말은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은 현대식으로 고치면 '국민이 곧 국가다'.이 날의 부끄러움은 오래 남았다. 나는 왜 그때 어리석게도 '대통령'이라는 낱말을 입안에 굴리고 있었던가. 왜 옛날의 왕을 대통령이 대신한다고 생각했던가? 내 자신과 화해하게 된 것은 그 어리석은 생각이 내가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주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였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제왕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의 지배를 받았다. 공포가 일상이었다. 두려움 속에서 창발적인 생각이 나올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눈에 띄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으면서 중간이나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저항은 물론이요, 모든 반대, 모든 이견까지도 무조건 나쁜 것이었다. 이리저리 재보고 따져보는 논리적 사고조차 환영받지 못하였다. 따지기 좋아하는 아이는 건방지고 주제넘는 아이였고 부모는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모르는' 아이를 당사자와 집안의 안녕을 위해서 더 심하게 통제해야만 했다. 그렇게 자란 우리가 '왕' 대신 '대통령'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오답의 책임은 일개 청소년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니다', '싫다'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빼앗고 건강한 비평과 비판과 토론을 부정한 독재정권에 있었던 것이다.한국민주주의의 성장은 단순히 독재정권의 청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은 공포를 조장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

  • 초등학교 한자교육 부활을 반대한다

    초등학교 한자교육 부활을 반대한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통해 초등학교 한자교육 부활을 예고했는데,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많으므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한자를 써야 뜻을 가를 수 있다. 한자문화권 삼국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자를 배워야 한다.우리말 속에 한자어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한자를 쓰지 않아도 독자들이 이 글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고대 한반도에는 말은 있었지만 표기할 글자가 없었기에 한자를 빌려다 썼다. 토박이말이 한자어로 표기되었으며 한자화 된 말들은 입말로 재생산되었다. 그 결과 토박이말은 한데로 내쳐지고 한자어가 많아졌다.이런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세종은 우리 글자를 만들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지식의 독점을 막고 문자 독립의 이정표를 세웠다. 한자 문화에 매몰된 사대부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한글은 시나브로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우수성을 입증했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자로서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담당하며 한자에게 내주었던 자리를 서서히 회복했다. 수준 높은 가사문학의 대표작인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속미인곡,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이 한글로 쓰였으며, 추사 김정희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도 한글로 쓰였다.한글 창제로부터 4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19세기에 이르러 한글의 중요성은 확고부동해졌다. 1894년 고종은 칙령을 통해 한글을 국문으로 선포하였고,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순한글로 발간되었다. 당시 선각자들은 어려운 한자를 버리고 쉬운 한글로 지식을 습득할 것을 역설했다.한자는 정말 어려운 글자다. 중국 사람들은 평생 세 가지를 못한다는 얘기를 곧잘 하는데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것, 중국 음식을 모두 먹어보는 것, 한자를 모두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강희자전에 실린 글자만 해도 4만9천자가 넘는다. 중국의 문호 노신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할 것이라며 개탄했다. 결국 중국은 문자개혁을 통해 현재는 간체자를 쓰고 있다.1948년 '

  • "경기도, 세종시 수정안을 배워라"

    "경기도, 세종시 수정안을 배워라" 지면기사

    [경인일보=]2010년은 정치권이나 신문·방송권 모두 세종시에 대한 논란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시의 원안 고수냐, 수정안이냐가 여·야간 갈등, 지역간 갈등을 일으키는 진원지로 급부상하였다. 양쪽의 견해차가 너무 커서 소통과 대화로의 해결구도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경기도 처지에서 보면 세종시, 즉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문제점을 이미 예측하고 국가발전 차원에서 부당함을 주장했으므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짐작은 하였지만, 도에서 너무 섣부르게 세종시의 정부 대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세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한다.경기도는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에 자족형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아이디어와 정책을 담았는지 유심히 살피고 지역개발에 참고할 사항이 없는지 면밀하게 분석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그러면 세종시 수정안에 담긴 내용을 2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가장 핵심은 자족기능 강화를 위한 조치로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경제도시로의 변화다. 행정중심의 종합청사를 이전, 2030년까지 인구 50만의 자족기능이 가능한가 하는 현실적 문제는 세종시를 추진하던 지난 정부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으나,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묻어놓았던 용암이 시기가 되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교육과학경제도시의 정체는 무엇일까? 교육은 대학 유치가 중심이 된다. 현재 KAIST, 고대는 확정이 되었고, 서울대나 기타 외국대학의 유치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특목고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가지 교육개혁에 따른 자사고 등의 방안이 수립될 수 있으므로 '교육'이라는 명칭은 분명히 세종시 수정안의 근간인 자족기능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과학은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중심으로 한 첨단과학시설 배치이다. 인구 유입효과는 교육보다 덜하지만 상징적 의미로서 상당히 중요하다. 지금까지 연구시설의 집적지는 대덕연구단지였지만, 세종시를 중심으로 기초과학메카로 새롭게 부상한다는 점에서 과학계에서는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국내 연구개발 중심지의 이동

  • 올바른 집행이 법을 세운다

    올바른 집행이 법을 세운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중국의 전국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국력의 근저에는 법가(法家)사상이 있었다. 진시황제 시절에 승상으로 있던 이사(李斯)와 더불어 순자(筍子)에게 배워 법가사상을 대성한 한비(韓非)가 유작으로 남긴 '한비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물이 불을 제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물과 불 사이에 가마솥이 있으면 불이 물을 증발시켜버린다. 법이 무도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법과 무도한 사람 사이에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가마솥과 같은 역할을 하면 법은 증발되어 버릴 것이다'.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법이 세워지기도 하고 증발되기도 한다는 것을 2천년도 훨씬 넘은 시절에 한비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서 적지 않게 감탄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가마솥과 같이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의도적으로 가마솥이 되는 경우이고, 둘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마솥이 되는 경우이다.경찰관이 도박 현장을 적발하고도 판돈을 챙기면서 도박의 규모를 줄여주거나 불법오락실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전자의 예라고 한다면, 마작을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라서 마작 도박을 한 사람들의 변명에 휘둘려 제대로 조사하지도 판단하지도 못하는 것이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검사로 재직하던 때에 마작 도박으로 구속된 피의자를 수사하던 후배 여검사가 자신은 마작을 할 줄 몰라 피의자의 변명이 맞는지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을 보고 검사를 제대로 하려면 참 여러 가지를 다 해보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으면서 수료여행을 갔을 때에는 일부러 여자 사법연수생들을 앉혀 놓고 마작이나 카드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검사나 판사가 자신만의 함정에 빠져 독선적인 결정이나 판단을 하는 경우 또한 법을 있는 그대로 실현되지 못하게 한다는 면에서 후자의 예이다.법이라는 것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법을 법대로 집행하

  • 옹고집이 두명이 된 이유

    옹고집이 두명이 된 이유 지면기사

    [경인일보=]옛날 옹달 우물과 옹연못이 있는 옹진골 옹당촌에 한 사람이 살았으니 성은 옹가요, 이름은 고집이었다. 재주도 있고 용모도 멀끔하였으며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넉넉하였으나 성미가 괴팍하여 인간이 서로 화락한 것을 보지 못하고 풍년 드는 것을 싫어했으며 심술 또한 맹랑하여 매사를 고집으로 버티었다. 때는 흉년이라 마을의 친구, 친척들은 모두 곤핍하였다. 이럴 때 지각이 있는 자 같으면 곳간을 열어 더불어 복을 누리련만 이 불측한 옹가놈, 옹고집은 오히려 의당 차례진 밥을 먹으려는 이의 수저를 빼앗고 자리를 낚아채니 그 무례함이 측량할 길이 없었다. 이를 들은 한 도인이 허수아비에 숨을 불어넣어 옹고집과 똑같은 모습을 지어 옹가네 집에 보내었다. 둘이 된 옹가는 진위를 다툰다.우리 고전 '옹고집전'은 비상하게 철학적이다. 이 작품에서 진짜 옹가와 가짜 옹가가 하나는 악인이고 하나는 이를 벌하기 위한 가짜라는 사실을 잠깐 괄호치고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만약 우리와 똑같은 누군가가 있어서 진위를 판별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사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보면 전제의 진위에 좌우된다. 참인 전제에서 참인 결론이 나오고 거짓인 전제에서 거짓인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도저한 자기분열의 상황에서 거울처럼 마주 서 있는 두 명의 옹가는 스스로는 진위를 판별해낼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판단 근거이다. 두 옹가에게 첫 번째로 제시된 판단근거는 옷에 뚫린 구멍이다. 의식주(衣食住)라, 사람에게 필수적인 요소라면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인데 그중에서도 옷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람을 판별하는 데 첫 번째로 사용하는 판단기준이다. 그러나 옷에 난 불구멍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로 닥친 근거는 신체적 증거이다. 사람이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가. 눈이 큰가? 코가 오똑한가? 옹가 정수리에는 금이 있고 그 한 가운데에 흰털이 있단다. 그러나 머리카락 또한 얼마든지 나고 자라고 빠질 수 있는 것이니 무엇으로 옹가를 판별하는가? 두 옹가를 발가벗겨 놓고 비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