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춘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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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대한 희망사항 지면기사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누가 당선되느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대선이라는 제도 자체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느냐는 점을 생각해보기로 하자.우선 4년 중임제를 채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민의 지지도가 높지 않은 대통령이 하필 임기말에 추진한다는 점에서 역풍을 맞고 말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거론한 4년 중임제 개헌은 이론상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5년 단임제를 근간으로 하는 '87년 체제'는 이제 청산해야만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5년 단임제는 타협의 산물이었고 그 타협의 주역들은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5년 단임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줄줄이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난 20년의 정치사는 상당부분 이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과도한 의욕에 사로잡히기 쉽다. 5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도 짧고, 다시는 선거를 치르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재평가를 받아서 다시 한 번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크다. 무언가 업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바심은 결국 많은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더 이상의 표가 필요하지 않기에 국민들과 함께 가려 하지 않고 앞서가거나 가르치려 든다. 다행히 잘 나갈 때는 좋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랬듯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지지도가 하락하면 5년 단임제는 최악의 상황을 빚어낸다.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은 식물대통령이 되거나 '역사가 평가한다'는 식의 독선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넘겨주어야할 것은 넘겨줄 준비를 해야 할 임기말이 이전투구의 난장판이 되어버리는 이유다. 5년단임제는 당사자에게는 가혹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흔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잘 할 수 있는 근거인 '경험'을 단임제의 대통령은 혼자 가슴에 한으로 묻고 물러나야만 한다.다음으로 내각제가 아닌 순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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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에 롱테일법칙 지원 지면기사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가 상류층 20%가 국가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80/20'의 법칙을 찾아낸 후 소수 정예의 핵심 시장원리로서 또한 선택과 집중의 경영전략으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기에서 그동안 무시되었던 다수의 힘을 드러내는 '롱테일 (long tail) 법칙'이 새로운 대안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롱테일'은 2004년 이후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 시작한 키워드로 최근 이 개념의 창시자인 미국 인터넷 비즈니스 잡지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이 한국을 방문하며 국내에 더욱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롱테일 법칙'은 다수 소액구매자의 매출이 상위 20%의 매출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명 '역-파레토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판매량을 분석해보니 안 팔리는 책도 모두 합치면 소수의 베스트셀러 매출보다 더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른바 '롱테일 법칙'이 온라인 비즈니스의 새로운 전략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롱테일 경제학은 현재 위기에 처한 과학기술, 특히 기초과학의 지원 패러다임의 전환에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80년대 이후 제한된 국가 자원 속에서 고속 경제성장을 위한 응용개발 연구와 국가 과학기술 로드맵에 따른 과도한 선택과 집중은 연구의 대형화·집단화 추세와 산업 투자비중의 강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전략 아래 오랫동안 '쏠림'이 조장된 결과, 대학에서의 기초과학 분야와 창의적 소규모 개인 연구는 '정글의 법칙' 속에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다.한 예로 올해 과학재단의 핵심기초 연구비의 경우 2천여명의 연구자가 신청했지만 그 중 87.2%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지방의 경우에는 연구비 신청 자체를 포기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부산 D대학 모 중견교수의 경우 1년에 SCI 논문을 6편씩 쓰는 연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는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였다. 두뇌한국(BK21)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도 해외에 수시로 보내면서, 막상 엄청난 투자를 통해 어렵게 배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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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을 위한 기도 지면기사
어떻게 님들을 잊을 수 있습니까/어떻게 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꽃다운 나이에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다/함께 스러진 슬픈 님들이어/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이 조그만 나라 위해/목숨까지 바친 고마운 님들이어/지금은 이 낯선 땅/돌 위에 새겨진 님들의 이름을/바람과 파도가 기도처럼 불러줍니다/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정다운 별로 살아오는 님들/지지 않는 그리움이여…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사랑으로 새깁니다/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감사로 새깁니다….이 추모시의 일부가 부산 유엔기념공원 추모명비에 새겨져 있다기에 얼마 전 일부러 보러 갔었다. 예전에 해외에서 손님들이 오면 유엔묘지를 꼭 참배하고 싶다고 하여 안내해 준 일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가 보니 참으로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고 기뻤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40만895명의 이름이 나라별로 새겨진 추모명비 앞에서 한참 동안 찡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여중시절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거룩한 예식처럼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게 하고 군인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를 정성스럽게 쓰도록 가르쳤던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는 지금도 6월이 되면 전쟁터에서 희생된 군인들, 지금도 곳곳에서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기로 지향을 갖는다. 어린 시절 전쟁을 직접 겪어서인가 지금도 종종 총소리에 놀라고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방공호에 숨어있거나 피란길에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한다. 전시가 아닌 요즘은 상황이 매우 달라지긴 했지만 하늘에서 바다에서 육지에서 나라를 지키며 수고하는 군인들에게 우리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새롭게 가져야 할 것이다. 이 6월만이라도 각별하게! 얼마전 강원도 춘천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 지난 2월에 입대한 조카를 면회하러 갔는데 군부대에서 듣는 뻐꾹새 소리, 무더기로 피어 있는 패랭이꽃들이 유난히 애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머지않아 100일 휴가를 나온다는 조카는 몸이 10㎏이나 빠진 걸로 보아 그간의 훈련이 꽤 고되었던 모양이지만 안팎으로 훨씬 성숙하고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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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야당의 대통령 후보선정과 오늘 지면기사
1967년 2월7일은 한국정치사에서 많지 않은 아름다운 날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 날은 당시 백낙준, 유진오, 윤보선, 그리고 이범석 등 야당의 거목 4인이 회담을 통해 신한당과 민중당을 신설합당의 방식으로 통합하여 신민당을 창당할 것을 합의하고, 통합신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윤보선을 선출한 날이다.당시 야당의 거목들, 특히 백낙준 박사의 삶을 민족적 차원에서 평가하는 경우 상당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자 회담 종결 후 백낙준 박사가 발표한 성명서를 읽어보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명력이 여전한 구절들이 있다."…(전략)… 이제 국민제위의 절대적 지원과 신한·민중 양당 수뇌부와 당원 제위의 협력과 재야유지(在野有志)의 독려가 집중하는 가운데 내가 야당통합운동을 추진하는 4인 회의에 참여하여 미성을 이바지할 수 있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제 통합이 완성됨에 있어 국민제위와 같이 이 기적적 성과를 경하한다…(중략)… 내 비록 적은 존재이나 평생을 지켜온 초당적 정신으로 국가민족에 보답하려는 정성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음을 국민 여러분에게 고(告)하는 바이다."성명서에 내포되어 있는 통합, 영광, 기적적 성과, 보답하려는 정성 등은 세월의 변화와 무관하게 정치인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이자 정신이다. 집권을 바라는 정치인에게 현실은 일종의 전쟁일 수밖에 없으니 다툼은 필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정치는 더욱 통합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 치열하게 다투고 난 뒤에 상흔을 치유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흘러가야 국가와 국민에게 울림이 있고 감동을 주는 정치가 가능해진다.사회 구성원들이 바라는 다양한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정치라는 고전적 정의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가치들은 다양하기에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재원으로 서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에 대립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 삶을 대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잣대나 방식이 상이하면 다툼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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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를 보는 마음 지면기사
해묵은 1970년대식 우스개를 소개하자. 한 장학사가 일선학교에 들렀다. 어느 교실에 들어가보니 마침 교탁 위에 둥근 지구의를 올려놓고 지리수업을 하고 있었다. 장학사는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를 가리키며 맨 앞줄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왜 비뚤어져 있지?"학생이 대답했다."제가 안그랬습니다."어이없어진 장학사가 이번엔 교사에게 질문했다."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원래 사올 때부터 그랬습니다."장학사는 교장선생을 모셔오도록 했다. 전말을 듣고 난 교장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럽게 말했다."원래 국산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우리 사회의 획일성·관료주의·자기비하 등을 뭉뚱그려 비꼰 농담으로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던 내용이다. 그래도 이 농담 속의 교실은 상황이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지구의를 갖다놓고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우리들은 대부분 평면지도를 놓고 세계지리를 배웠다. 아시아가 가운데 있는 지도가 우리에게는 상식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쓰는 세계지도는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의 지도에는 유럽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이해가 간다. 왜 서양인들이 우리나라가 있는 지역을 두고 극동이니 동북아니 하고 부르는지를.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로 건너갔으며 어떤 경로로 잔인한 노예매매가 이루어졌는가를. 하지만 가장 큰 깨달음은 당연히 만국공통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지도가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우리 식 지도를, 서양인들은 서양식 지도를 가지고 있다니! 지금은 한 발 더 나아가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세계지도를 고안해낸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어떤 도법으로도 평면 위에 둥근 지구의 형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도의 근본은 지구의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평면지도가 아닌 둥근 지구의를 놓고 세계를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평면지도에는 중심부와 변방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니치 자오선을 따르면서도 한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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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플랑크와 드레스덴의 교훈 지면기사
지난 주 독일의 드레스덴에 소재한 세계적 기관인 막스플랑크 복잡계물리 연구소의 피터 풀데 소장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의 방문 목적은 포항에 소재한 국제연구기관인 아·태이론물리센터의 신임 소장으로 부임하여 동서 간 국제공조를 통해 아·태 권역의 물리학과 기초과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그는 첫 인터뷰에서 "잠재적 역량을 가진 아·태의 젊은 과학자들을 키우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아·태이론물리센터의 국제공동연구 그룹의 새로운 구축을 위한 막스플랑크 재단의 직접 투자라는 큼직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막스플랑크재단(Max Planck Gesellshaft)은 '미래를 위한 연구'를 목표로 탁월한 연구와 과학 진흥을 위한 비영리 기구이다. 막스플랑크재단은 2006년 타임지에 의해 과학분야 1위로 평가되고 창립 이후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기초연구 네트워크이다. 이 재단은 1948년 창립된 이후 '대학의 서포터'를 자처하며 소장과 대학교수의 겸직, 대학의 특성화 지원, 젊은 학자 육성 등 연구소가 소재한 지역의 대학과 모범적인 윈윈 협력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의 창시자'이자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힌다. 그는 음악적 재능도 매우 뛰어났지만 물리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첫 지도교수였던 필립 폰 졸리 교수는 "이 분야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제 몇 개 구멍만 메우면 된다"고 조언하며 그를 말렸다고 한다. 막스 플랑크는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 없이, 단지 이 분야의 기초를 이해하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이론물리를 하다 보니 기대를 훨씬 넘게 되었다. 사실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한꺼번에 보여주지는 않으며, 아직도 풀지 못한 자연의 신비가 쌓여 있는 것이다.노벨상에 견줄 수 있는 막스 플랑크의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막스플랑크재단을 만든 것이다. 막스플랑크재단과 연구소 시스템은 독일의 과학기술뿐 아니라 경제 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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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바치는 기도 지면기사
우리집이라는 말에선/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은/음악처럼 즐겁다멀리 밖에 나와/우리집을 바라보면/잠시 낯설다가/오래 그리운 마음가족들과 함께 한 웃음과 눈물/서로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이던부끄러운 순간까지 그리워/눈물 글썽이는 마음/그래서 집은/고향이 되나 보다헤어지고 싶다가도/헤어지고 나면/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주고 받은 상처를/서로 다시 위로하며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따뜻한 눈길로/하나 되는 사람들이런 사람들이/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기는/우리집 우리집우리집이라는 말에선/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고마움 가득한/송진 향기가 난다-이해인의 동시 '우리집' 전문5월의 햇살 아래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들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나무 아래서 초록물이 든 가슴으로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며 오늘은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섬세하게 표현하며 살 줄 알게 하소서. 서로 고마운 것은 고맙다 하고 잘 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기쁨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서로의 결점과 허물을 감싸 안는 따뜻함과 너그러움으로 끝까지 기다리며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기다림의 눈물이고 기도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힘든 상황과 시련 중에도 서로를 내치지 않고 함께 목숨 바쳐 서로의 짐을 기꺼이 지고 나누는 '고통속의 축복'에 이르게 하소서.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아픔 속으로 들어가는 연민이고 용서이고 화해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시선을 넓히고 마음을 넓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는 인류애를 실천하는데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함께 길을 가는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자비의 나눔이고 봉사이고 헌신인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우리가 밥을 먹을 때 일을 할 때 공부할 때 기도할 때 여행을 할 때 문득 문득 그리움 속에 떠올려 볼 가족이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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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조승희와 교훈들 지면기사
겨울이 있기에 만물이 약동하는 봄은 모든 것이 호사스러운 계절이다. '아침의 노래' 혹은 '봄의 노래'라고 자주 인용되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를 읽으면 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극시에서 베니스의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는 일년 중 단 하루뿐인 휴가 날 아침에 봄을 노래한다. 피파가 부르는 '계절은 봄이고/ 하루 중 아침/ 아침은 일곱 시/ 진주 같은 이슬 언덕 따라 맺히고/ 종달새는 창공을 난다/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를 듣고 난 후, 마을의 못된 사람들은 회개하고 삶의 참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학 캠퍼스가 가장 예쁘고 활기찬 계절도 봄이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니 새기운이 넘치고, 다양한 꽃들과 신록이 펼쳐내는 파스텔 톤의 캠퍼스는 향긋하기만 하고 때로는 신묘한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봄이 펼쳐내는 자연의 향연에 걸맞게 전 세계 대학들의 공통정신인 자유와 진리 역시 한껏 기지개를 켜기 마련이다. 이처럼 예쁘고 좋은 계절에 자유의 상징이자 진리탐구의 전당인 대학 캠퍼스에서 잔인한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개인에게 내재된 악마성의 발현 때문에 고귀한 생명들이 죽음의 질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덧없이 스러졌다. 아마 역사는 2007년 4월을 또 다시 잔인한 달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잔인함을 생래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해맑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벌레를 서슴없이 밟아죽이고 잠자리 날개를 비트는 것만 보아도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잔인함을 묘사한 예술 작품 역시 적지 않다. 단테의 신곡과 이를 표현한 로댕의 지옥의 문은 대표적인 예이다. 전함이 좌초된 후 물과 식량을 위해 동료들을 살해하고 그 인육을 먹으며 생존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제리코의 메뒤즈 호의 뗏목을 보면 인간의 잔인성은 그 끝이 없다는 생각조차 든다.인간은 절망과 좌절을 할 때 잔인하고 난폭해진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 새겨져 있다는 '이 문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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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지면기사
1960년대 어느 지방에서의 일이다. 다섯명으로 구성된 한 위원회가 있었다. 교육에 관련해서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위원회였다. 그 위원회의 위원장은 당연히 욕심낼 만한 자리였다. 위원 다섯명 중 두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갑과 을이라고 하자. 남은 세명 가운데 둘은 갑의 제자였다. 그 두 사람은 스승인 갑에게 이렇게 말했다."우리 둘이 선생님을 찍고 선생님이 선생님을 찍으면 3대 2로 우리가 이깁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거꾸로였다. 3대 2로 오히려 을이 이겨서 위원장이 되어버렸다. 어이없어하는 제자들에게 갑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내가 어떻게 나를 찍나…."정말 옛날 이야기다. 그것이 그 시대의 정서였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 나선 어린이도 차마 제 이름을 써내지 못하던 무렵이었다.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모든 공직도 마찬가지였다. 속마음이야 어디에 있든 겉으로는 사양하고 자신의 능력부족을 드러내며 마지 못한듯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다른 적임자도 많지만 사람들이 원한다면 한 번 해보겠다' 이런 것이 그 시대의 출마의 변이요 취임사의 수사학이었다.지금 와서 그 시대의 그런 정서를 위선이요 이중성이라고 비판하기는 쉽다. 그로 인해 빚어진 부작용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위선과 이중성은 그 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모두 최소한의 도덕성, 최소한의 겸양과 절제와 분수를 지키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자신의 능력을 시장에 내다 팔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만 침잠하는 많은 은사들이 있었다. 정치나 시류와는 무관하게 한 길을 걸어가는 학자, 예술가, 사회운동가들이 그 어떤 권력자보다도 존경을 받곤 했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반장선거에서 라이벌의 이름을 써내는 아이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모든 공직자들은 보는 이가 낯뜨거운 청문회 석상에서도 자신이 적임자임을 끝까지 주장한다. 각종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자신만이 해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대로 나서야만 하는 시대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야 하는 세태다.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한가를 따진다면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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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위한 기초과학 투자를 지면기사
현재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은 지난 세기 혁명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이다. 무선전신, 비행기, 플라스틱, 자동차, TV와 페니실린의 발명은 세계적 대중잡지 라이프가 선정한 '역사를 뒤흔든 100대 사건'에 들었다.현재 우리는 전자혁명의 산물인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 MP3 등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TV는 80년 전, 컴퓨터는 60년 전, 반도체는 40년 전, PC는 30년 전, MP3와 웹은 15년 전, 한 세기가 안 되는 발명의 역사를 통해 문명의 이기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우리 생활 속에서 첨단기기들은 이제 당연한 듯 빠르게 수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놀라운 과학기술 혁명을 가능하게 한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막상 소홀하기만 하다. 기초과학은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로,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창의적 과학기술의 원천으로, 기초과학 없이 선진 과학강국이 될 수 없고,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확대 추세다.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적 연구 지원이 주로 응용개발 및 목적 지향적 중대형 규모의 연구로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 그 결과 개인의 창의성이 힘을 발휘하는 소규모 기초 연구가 소외되고 수학·물리· 화학 등 순수 기초과학 분야의 다수 연구자들이 점차 고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중 대학에서의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개인·소규모 기초연구 예산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대학의 경우 연구 인력의 70% 이상이 집중해 있고, 기초 연구예산의 투자대비 연구효율이 월등하게 높다. 현재 대학에 소속된 기초과학 연구인력 중 고작 4.4%만이 개인 연구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신진연구자와 지방에 소재한 연구자의 경우 진입 장벽과 높은 경쟁률 그리고 지원의 불연속성 때문에 연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기초연구비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