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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합작 드라마 사육신 유감 지면기사

    북한에서 제작된 드라마 '사육신'이 지난 8일부터 방송되고 있다. KBS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이 제작을 시작한 지 2년여 만의 일이다. 사육신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남북한 합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동안 남북한 간에는 다양한 방송교류가 있어 왔다.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등의 제작협조가 있었고, 보도부문에서도 현지 진행 방송 등이 시도되어 왔다. 또한 태조왕건의 오프닝 장면 등을 현지에서 촬영하는 등 드라마부문에서도 부분적인 교류가 있었다. 드라마 사육신은 기존 교류의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과거의 교류가 대부분 일회적이고 이벤트적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발전한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적지 않은 사회·문화교류가 있었으나 그 성과가 축적되지 못했다는 공통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육신의 경우는 그동안 남북이 쌓아올린 신뢰와 교류과정에서 이해하게 된 상대방의 기술적·문화적 특성을 종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KBS는 이번 '사육신' 제작을 위해 북한에 총 210만 달러를 지원하였는데, 이 가운데 70만 달러가 현금이며 140만 달러는 방송 장비다. 또 카메라 기술, 조명, 세트, 의상, 분장, 디지털 오디오 편집 기술 등 각종 방송 기술이 북측에 전수되었고, 이는 향후 북한의 드라마 제작 인프라로 활용될 전망이다. 어쨌든 남한 방송에서 북한 배우들이 나오고 연출가 등 북한 제작자들이 엔딩 크래딧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남북한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나름대로 의미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사육신이 시청자에게 외면 받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7%대였던 시청률이 3주가 지나면서 2%대로 떨어졌는데, 이는 TV방송에서 마지노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애국가 시청률' 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렇게 시청률이 낮은 것은 낯선 배우들, 이해하기 어려운 억양과 말투, 느린 진행 등이 남쪽의 시청자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사회적

  • "서울 올라간다? 이제 그만하자" 지면기사

    '서울 올라가서 부산 내려온다.' '대구서 서울로 올라간다.'지금도 이렇게 말하는 지역 주민들이 적지 않다. 올라가긴 도대체 어디로 올라간단 말인가? 서울이 어디 하늘 꼭대기에 붙어 있고 부산이나 대구 등의 고장이 어디 땅바닥에 내려 박혀있다면 모를까, 그런 말 이제는 쓰면 안된다. 그것도 멀쩡한 지역 주민이 그런 묵고 낡아빠진 말을 입버릇으로 달고 다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모르다가도 또 모를 일이다. 일반적으로 '위아래'란 말은 단순히 방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신분이며 처지의 높낮이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무슨 물건일 때는, 그 가치며 값을 따져서 상품(上品)과 하품(下品)으로 차별 지울 때도 쓸 수 있는 말이다. 심지어 좋고 나쁜 것, 제대로 된 것과 엉터리인 것의 구별도 상하로 나누어서 매길 수 있다.조선왕조는 세계사 전체를 보아도 아주 별난, 아주 강한 중앙집권의 체제를 지키고 있었다. 오죽하면,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고 했겠는가? 거기 담긴 고약한 지역 차별이 '서울 올라간다'를 관용어로 굳어지게 한 것이다. 조선조 이래로 예사로들 '상경하고 하향(下鄕)한다'고들 말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 고향가는 걸 하행(下行)이라니 말도 아니다. 이제부턴 당당하게 '상향(上鄕)한다'고들 말해야 한다.요즘에도 여전히, 이 따위 말을 남들에게서 예사로 듣게될 적마다 필자는 결코 떠올려서는 안될 걸 문득 떠올리곤 한다. 그 흉악한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서울에서 대구나 부산으로 가는 기차 길은 상행선이라 하고 부산서 서울로 가는 철길은 하행선이라고 했다. 저들은 저들의 수도인 일본의 도쿄로 하여금 중앙에 자리하게 하고 또 최상층에 버티고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이제 각 지역사람들은 떳떳하게 서울은 내려간다고 하고 제 고장은 올라간다고 말해야 한다. 아니면 어느 곳이나 위아래로 매길 것 없이, 그냥 광주 가고 서울 가고 한다고 그렇게만 말하게 되기를 바라고 싶다.한데 비슷한 보기는 또 있다. 그건 다름 아니고 '너 언제 서울 들어왔냐?' '당신, 언

  • 언어의 진보(?) 지면기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그 줄거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눈시울을 뜨뜻하게 적시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학교 밖으로 시위를 떠나는 고등학생들의 눈 밑에 교사가 치약을 발라주는 장면이 특히 그러했다.영화의 이 사소한 장면은 그 사소함 때문에 빛난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막아서도 안 되는 역사의 흐름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오늘날 젊은이들한테 '광주'는 먼 옛날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광주'는 여전히 현실이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명칭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신군부에 의해 무참하게 죽어간 민주주의를 지켜온 사람들은 이를 '광주항쟁'이라 부른다.얼마 전 유력 대선주자의 한 사람은 이를 두고 스스럼없이 '광주사태'라고 말해버렸다. 놀라웠다. 이 용어는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폭도'나 '불순분자'로 내몰던 자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이미 폐기처분 되었어야 할 잘못된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은 역사의식이 제5공화국 수준이라는 뜻이다. 과거로의 화려한 회귀일 수도 있다. 언어는 의식을 반영한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사태'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잘못된 '사태'이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하고, 그 이전에 의식을 바꿔야 하고, 또 의식을 바꾸려면 치고 박는 경선 준비보다는 '화려한 휴가'를 몇 번 더 보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무릇 하나의 명칭이란 단순히 사건의 기호에 머무는 게 아니다. 그 사건이 시작할 때부터 마무리될 때까지를 두루 아우르면서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푯대가 되는 것이다.1894년에 이 땅에 일어난 큰 사건이 있다. 이를 부르는 명칭도 역사학계에서는 다양하다. '동학농민혁명'이나 '갑오농민전쟁'이 최근에는 주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그 사건은 '동학란'이었다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슬그머니 '동학운동'으로 바뀌어 있었다.197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에는 '혁명'이 없었다. 아니, '5·16혁명'

  • '직구'만 아는 정치인의 언어수준 지면기사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을 승리로 이끈 다음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영국의 처칠 수상, 그는 유머리스트로서도 이름이 높다. 그가 낸시 에스터라는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과 벌인 설전은 들어볼 만하다.낸시; 당신이 만일 내 남편이라면 당신의 음료수 잔에 독을 넣고 말겠소.처칠; 그래요. 만일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독을 마셔버리겠소.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 언제라도 한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일각이라도 늦게 오기를 빌고 있을 따름이다."이미 정치 유머의 고전이 되다시피 한 또 하나의 이야기도 역시 영국산. 수의사 출신의 한 의원이 연설을 하고 있는 중에 반대당 의원이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당신은 수의사라면서?" 그러자 이 수의사 의원 왈, "그렇소, 당신 어디 아프시오? 진찰해드릴까요?"바야흐로 대선의 계절, 정치판에는 음해와 막말이 횡행한다. 상대정당과의 본선도 아닌 집안끼리의 예선 리그에서 저렇게 치고받고 해서야 패자가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를 도와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심지어 당 대표가 "사생결단의 비방은 말라"고 호소한다. 어떤 일간지의 '李 갈리게, 朴 터지게'라는 기사 제목이 그럴 듯하게 보였다. 1차 방정식밖에 모르는 말솜씨들이다. 직구만 알고 커브나 서브마린의 위력과 묘미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미테랑 대통령과 시라크 총리가 각기 사회당과 보수당을 이끌고 기형적인 동거정부를 꾸려가고 있던 1990년대의 이야기. 미테랑이 이런 자화자찬을 하였다."과거에는 출산율의 저하로 고민했는데,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한 후에는 출산율도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 이 말을 들은 보수파의 시라크 총리가 아주 점잖게 반박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출산율 상승은 사회주의의 성과라기보다는 프랑스 국민 개개인의 노력의 성과라는 것을 대통령께서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개개인의 노력'이란 표현에 주목해야 진미를 알 수 있는 말이다.)도대체 한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가겠다는 인물

  • 아프가니스탄 인질사건의 뿌리 지면기사

    무고한 시민들이 탈레반에 납치 된지도 보름이 넘어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걱정에 휩싸여 있다. 이미 2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질들의 고통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이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절대적 가치의 하나인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들의 필요한 바를 얻으려고 하는 탈레반의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반인륜적 범죄라는 점이다.사실 그동안 납치나 인질 그리고 테러는 우리와 상관없는 말들이었다. 그렇지만,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이라크, 나이지리아 그리고 소말리아 등 여러 지역에서 한국인도 납치의 대상, 테러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적 이유에서 경제적 동기까지 납치와 같은 범죄의 대상이 된 까닭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세계화'의 진전으로 한국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따져보면 납치나 인질 그리고 이를 포함한 테러의 확대가 한국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부시대통령의 장담(?)과는 달리 세상이 점점 안전하지 않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특히 부시정권의 일방적 패권주의가 테러 증대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세계 도처에서 테러관련 사건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당장 우리 국민을 억류하고 있는 탈레반의 경우, 미국의 침공으로 권력을 상실하고 테러집단화되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부시정권 때문에 생겨난 집단은 아니다. 그렇지만 근대 이후의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차원으로 시각을 넓혀 본다면, 탈레반의 존재 원인은 소련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아프가니스탄만이 아니다. 가장 불안정한 나라인 이라크도 그러하고, 해적(혹은 군벌)이 창궐하는 소말리아, 참담한 학살의 현장인

  • "말, 그 함부로 하지 말 것"

    "말, 그 함부로 하지 말 것" 지면기사

    '말 잘 했다!'이건 칭찬인가 하면 나무람이고 또 핀잔이기도 한 묘한 말이다. 핀잔일 때는 '말 같지도 않는 말', '억지 부리는 말' 따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무람일 때, '말 잘 했다!'는 이른바, 아이러니가 되는 셈이다. '말 같지도 않는 말'을 뒤집어서 비꼬는 것이 된다.요즘 우리들이 신문을 읽고 TV를 보면서 무심코 라도 자주자주 '그 말 잘 한다!'라는 아이러니를 내뱉게 되는 것은 웬 까닭일까? 그나마 큰 자리,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발언하는 것을 들을 때, 드물지않게 시민들이 '그 말 잘 한다'라고 말하게 되는건 무엇 때문일까?사회적인 또는 국가적인 신분이 높을수록 그들 말이 땅바닥을 뒹굴고, 진흙구덩이 속에 내리박히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일반 시민으로서도 괴로운 일이다.그러자니 예부터 자주 써온 말이 절로 생각난다. '신언서판(身言書判)!'하지만, 오늘날 그게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니 새삼, 경구(警句)라고 해도 좋고 잠언(箴言)이라고 해도 좋을 '신언서판'을 되새겨 보자.몸가짐과 말과 서예(書藝)와 그리고 판단력, 이 넷이 다름 아닌 '신언서판'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한 인간의 능력과 인품을 매기는 '4대 기준'이 되어 왔다. 특히 '선비'며 벼슬아치에게서는 절대의 기준이었다.한데 오늘날 서(書)가 컴퓨터의 자판찍기에 밀려나면서 덩달아서 '신언판'의 셋도 한꺼번에 퇴락하고 있는 것 같다.언(言)을 말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단순치는 않다. 언은 말의 내용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논리도 '언'이고 따라서 말투, 말버릇도 물론 '언'이다. 더욱이 언행이라면서 언이 행동이며 행위와 짝 지어서 사용된 것은 매우 큰 뜻을 품고 있다. 언행일치라면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말이 곧 행동이요 행위가 바로 말임에 대해서도 시사하고 있다. 말을 떠난 행동이 없듯이 행위를 떠난 말이 없다는 것도 십분 의미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신(身)과 짝지어서 신언(身言)이 되면 몸가짐이며 행실이 곧 언어요 언어가 다름 아닌 처신(處身)임에 대해

  • 글씨 잘쓰는 사람

    글씨 잘쓰는 사람 지면기사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늘어났는데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컴퓨터 탓이다. 학생들이 꽤나 정성들여 제출한 리포트도 사정이 다를 거 없다. 글씨체가 너무 조악해서 봐줄 수가 없다. 우리의 교육과정도 글씨 잘 쓰는 공부는 제쳐둔 듯하다. 이대로 방치하면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이 땅에서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육필이라는 말은 매우 고색창연한 말이 되었다. 글을 '치는' 게 아니라 '쓰는' 작가는 이제 극소수다. 문인들의 육필 전시회에서 본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원고를 잊을 수 없다. 그분의 원고는 원고지 칸을 또박또박 채운 게 아니라, 백지의 여백을 빈틈없이 메운, 무슨 추상화 같은 느낌으로 처음에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백지를 메우고 있는 것은 정말 깨알처럼 촘촘하게 들어박힌 글자들이었다. 글자 하나가 얼마나 작은지, 그러한 '좀팽이' 글쓰기가 경이로워 나는 저절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가서 내가 맨 먼저 배운 '문학'은 선배들의 글씨체를 흉내 내는 일이었다. 지금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선배는 만년필로 아주 예쁘고 멋진 글씨를 썼다. 함부로 흘려 쓰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모범생의 필체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문학청년의 냄새가 나는 글씨였다. 그 필체를 연습한 덕분에 나는 그 선배의 귀여움을 톡톡히 받을 수 있었다. 그 선배의 필체는 참으로 희한하게도 나를 거쳐 몇 해 동안 내 후배들을 감염시켰다. 우리는 글씨를 통해 원고정서법뿐만 아니라 문학청년으로서의 자세를 배웠다.습작 시절에는 글씨 못지않게 어떤 원고지에다 글을 쓰는가 하는 것도 우리들의 매우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흔히 붉은 줄이 쳐진 원고지는 첫 번째 기피 대상이었다. 우리는 뭔가 특별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특정한 기관, 출판사나 신문사 이름이 찍힌 원고지를 손에 들게 되는 날은 대단한 문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원고지와 육필의 시대는 그 빛나던 야성을 잃었다. 가끔 문예작품 심사를 하다가 보면 그런 필체와 그런 원고지를 만날 때가 있다. 인쇄한

  • 로스쿨, 로와 스쿨사이

    로스쿨, 로와 스쿨사이 지면기사

    지난 3일 오후, '여야 로스쿨법 처리 합의'라는 긴급 뉴스가 나오자 성급한 축하전화가 몇 군데서 왔다. 내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이끌고 로스쿨법의 성안, 입법에 힘을 기울여 온 사실을 기억하는 분들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번 회기에는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뒤집기 뉴스가 나왔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만일 이번에 또 미루어지면 여러 대학과 학생, 수험생들의 낭패와 손실이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나의 이런 조바심과는 달리, 밤 11시가 넘고 30분이 지나도 고대하는 뉴스는 뜨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뉴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 회기가 끝나는 자정 3분 전에 로스쿨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긴급 뉴스. 심야인데도 여기저기서 축하전화가 연달아 걸려왔다. 나는 큰 보람을 느꼈다.이로써 사개추위가 2년 동안 역동적으로 추진해온 사법개혁 작업은 대체로 마무리가 된 셈이다. 되돌아보건대, 사법개혁의 여러 과제 중에서 국민이 형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배심재판제의 도입, 수사기관 조서 중심 재판의 폐단을 바로잡는 공판중심주의 확립 등이 유난히 힘들었지만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의 찬반양론이 뜨겁기로는 로스쿨법이 단연 으뜸이었다. 이 법안을 눈 흘겨보는 국회의 늑장부리기 또한 메달감이었다.10여년 논란 끝의 '만성(晩成)'이라고 해서 꼭 '대기(大器)'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국회가 직권상정 처리라는 비상절차를 밟았는데도 별다른 비판, 비난이 없는 것은 입법 내용을 평가하기 전에 우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로스쿨 입학 총 정원의 책정은 그동안 큰 관심사가 되어왔다. 그렇다고 로스쿨 논의가 이 문제에만 묶여 있다시피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법학계나 법조계에서도 입학정원 논의에만 매달리지 말고, 어떤 사람을 뽑아서 무엇을 어떻게 잘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법학적성시험, 교육과정, 강의방식 등에 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 개발을 해서 정부와 학교 그리고 교수들이 서로의 숙제를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이다.로스쿨에서는 지금의 법대(학부) 교육과 무엇이 어떻게

  • 6·25와 6·15 … '기억의 정치'

    6·25와 6·15 … '기억의 정치' 지면기사

    과거에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통일이나 북한과 관련된 책들이 그나마 관심을 끄는 시기가 6월이었다. 초·중·고 학생들이 6·25 관련 숙제를 위해 책을 구입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도 여전히 6월은 북한 및 통일관련 서적의 성수기인데 6·25에 더하여 6·15가 또다른 배경이 되고 있는 것같다. 예전에는 북한관련 책이 조금 더 읽힌다는 사실이 민족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착잡하였지만, 요즘은 그래도 민족의 미래를 지향하는 6·15가 또다른 배경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나아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6·25와 6·15사이에는 1950년과 2000년의 시간적 간극보다 더 큰 거리감이 존재한다. 6·25가 민족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전쟁이었다면, 6·15는 민족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남북한 최고지도자간의 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6·25나 6·15가 무엇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역사적 교훈을 얻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현대사 특히 분단사에 대한 사고방식은 지극히 편협하였다.6·25의 경우는 '상기하자'라는 구호아래 북한의 침략성, 김일성 집단의 무자비함, 사회주의에 대한 증오로 기억되었다. 물론 전쟁발발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김일성과 북한정부는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전쟁은 불과 3년 동안에 죽은 사람만 300만~400만 정도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혹한 전쟁이었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안돼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는 증오를 확대하고, 그래서 새롭고 더 큰 전쟁을 지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6·15의 경우 한쪽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남북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과 북한의 정교한 전

  • 야당 유력 경선후보간의 다툼 지면기사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 간의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유력 경선후보들은 상대에게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약점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쟁점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대통령을 중심으로 청와대까지 끼어들어 선거관리위원회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를 시발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국가정체성 등의 쟁점과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다시 대운하 평가보고서 변조논란 등을 대하는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반면 정치인들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본질적으로 즐기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국민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다. 현재 당사자들은 개인 및 당파의 손익을 계산하면서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쁠 것이다. 셈법은 간단하다. 공격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가능한 한 최대의 위해를 가해 반사이익을 얻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 공격이 허구라는 것을 반증함으로써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야당의 입장은 미리 매를 맞음으로써 내성을 키우고, 잘못된 것은 밝혀서 본선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 관심을 얻어 흥행성공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미리 유력후보들을 낙마시키거나 흠집을 잔뜩 내서 본선을 쉬운 싸움으로 몰고 가고 싶을 것이다.'정치는 출혈 없는 전쟁'이라고 말한 마오쩌둥이나 '전쟁보다 위험한 게 정치'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생각해보면 현재 청와대까지 개입하고 나선 야당의 유력 경선후보 간의 다툼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라의 발전과 내일을 잠시라도 고민해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의 연구(2002)는 대통령이 지녀야 할 구체적 자질로 비전제시·인사관리·위기관리·민주적 정책 및 실행 능력, 도덕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제시 능력이다. 비전제시 능력이 다른 어느 능력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국민통합과 직결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를 관리하고 싶으면 우선 등 따습게 배불리 먹으면서 밤에 편하게 자는 문제는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