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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한강 문학 세 개의 '원천' 지면기사
김유정의 문학과 러 크로포트킨 이상의 '날개'·이효석의 자연주의 '채식주의자' 사상·인물 연상케 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문학 오랜 전통에 맺혀 핀 꽃한국문학의 원천을 한국문학 안에서만 찾는 것 좋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내부’라는 관념에 사로잡힐 필요 없다. 그런데 이런 때,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었을 때, 한번 우리에게 무엇이 있었는지 찾아보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리라.이번주에는 강원도 춘천 김유정 고향 실레 마을을 간다. 주제가 김유정 문학과 크로포트킨. 그는 러시아 짜리즘 시대와 10월 혁명 이후를 살다간 혁명가요, 또한 생물학자이기도 했다. 십년 전 김유정 학회에서 발표를 할 때, 이 크로포트킨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었다. 김유정 친구 작가 안회남은, 김유정이, 인류의 역사는 김유정식 짝사랑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생각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백꽃’과 ‘봄봄’의 작가 김유정은 다윈과 맬서스 대신에, 그리고 마르크스와 크로포트킨의 사상이 중요해질 거라 했다. 김유정은 투쟁보다는 사랑을 중시하는, 그러니까 크로포트킨주의자였다. 그는 경쟁보다 연대가, ‘mutual aid’가, 생명체 진화에 관건이라고 믿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와 ‘육식성’의 대비법은 어딘지 모르게 ‘크로포트킨적’이다. 김유정의 시대처럼 우리 시대는 여전히 ‘생존경쟁’을 과도 숭배하는 다위니즘의 신봉자들이 자신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강의 ‘채식주의’는 다위니즘에 대한 현대판 저항이다.이 ‘채식주의자’ 속 연작의 두번째 단편소설 ‘몽고반점’에 등장하는 채식주의자 영혜의 형부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날개 달린 것들을 삽입시키고는 하는데, 이는 한강이 작가 이상의 소설 ‘날개’를 반드시 의식하고 참조했음을 의미한다. 작중에서 형부는 어린 아이의 순수를 간직한 영혜와 관능적인 관계를 맺는데, 이것은 분명 상징적 행위다. 형부는 광주 5·18의 상처와 후기자본주의의 문제를 그리는 저항적 예술가의 단계를 넘어, 3층 베란다에서 마치 날개를 가진 존재처럼 날아오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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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한국식 뉴스 지면기사
여당 대표 선거·여론조사 결과도청문회 이슈·의료사태·美 대선도사실을, 진실을 말하는것 같지않아여전히 시끄럽고, 믿음직하지 못해진실하다고 강변해도 믿기지 않아세대별로 보고 듣는 매체가 달라지는 시대다. 'OTT(Over The Top)'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물어보니, '넷플릭스' 같은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쿠팡 플레이' 같은 것이다.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찾아보면, 인터넷 영상 전송은 'IPTV'와 같다. 하지만 흔히 보는 셋톱박스를 통하지 않는다. 제한적 판매 대신 다양한 디바이스에 맞춤 제공한다. 데스크톱,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같은 것들 말이다.이 바쁜 흐름을 따라가고는 싶다. 하지만 필자는 이제 겨우 '유튜브' 단계다. '넷플릭스'로 넘어가지 못했다. 뉴스든 뭐든 유튜브에 올라온 것들을 찾아서 보는 수준이다. 그나마 텔레비전 앞에 앉아 방송국 일 방향 송출을 그대로 받아먹은 '수준'은 면했다. 그럼 조금 자유로워진 건가? 하지만 유튜브에도 텔레비전은 깊이 침투했다. 다만, 조각조각 잘라서 제공된다는 차이뿐.유튜브는 온갖 뉴스 공급자들의 난무장이다. 공중파와 라디오 방송국들, 종합편성 채널 뉴스 프로들, 여기에 온갖 정치적 성향의 개인과 집단들이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이 각종 뉴스 생산 방송국들이 구독자가 몇백만, 몇만 수준이다. 한 마디로 '난리굿'이다. 설상가상으로 맞춤형 서비스다. 인공지능이 귀신같이 성향을 파악해서 어느 방향으로만 뉴스들을 추천한다. 선택이 무한정 자유로운 것 같아도 기실 한 방향의 정보들만 축적된다. 조회수, 구독자 많은 뉴스 채널일수록 강경 일변도다. 한 방향으로만 굳세게 밀어댄다. 그래야 인기가 높아진다. 자꾸 보고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한쪽 극단에 치우치게 된다.'유튜브'에서, 한국과 일본을 예전과 다르게 보는 방식이 목하 유행 중이다. 한국은 디지털 첨단세상인데 일본은 여전히 아날로그라고 한다. 한국은 활력이 넘치는데, 일본은 가라앉고 있단다. 일본은 '난카이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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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공동환상 지면기사
좌파·우파 논리 '우리' 라는 환상현대인들은 '정치적 존재'로 압착그 환각적 믿음에 비로소 안도감진리 가까운 빛깔은 오히려 '회색'양 극단 사회 중재의 힘 필요한 법'우리'에 대한 환상이라는 것이 있다. '나'와 '너'를 묶어주는 '우리'라는 관념을 형성하고 나면 이 '우리'에 대한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이 생겨난다. 필자만의 독특한 생각이라기보다 1960년대의 어느 일본 철학자의 생각을 빌린 것이다.인간은 본래 환상, 환각의 존재다. 인간은 늘 진리를 찾아 헤매지만 '가상'에 휩싸여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 가상의 동굴 속의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힐끗'이라도 쏘여본 사람들을 오히려 비웃는다. 환상, 환각의 힘이 너무 센 나머지 오히려 진리를 가상처럼 느끼는 단계에 다다른 까닭이다.'장주지몽(莊周之夢)'이라는 말도 있다. '장주', 곧 장자의 꿈은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지금 '나'의 꿈을 꾸는 것인가를 묻는다. 요즘 우주론 가운데에는 정말로 현실을 사는 우리가 가상 세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이론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달리는 현실이라는 것에 그토록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지 모른다.'우리'에 대한 환상은 실로 강력해서 '나'의 가족은 절대적인 '진리'가 된다. 이름하여 가족주의다. 또 이 가족을 묶는 큰 가족, 위대한 가족으로서 민족, 국가는 '나'들의 희생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게 하는 초월적 존재가 된다. 종교적 믿음으로까지 격상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보다는 단위가 작은데도 그 못지 않게 큰 힘을 발휘하는 환상적인 '우리'의 단위가 있다. 진보파다, 보수파다, 좌파다, 우파다 하는 논리가 그것이다.이 논리는 환상이며 환각이 아닌지 따져 보아야 한다.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인간의 삶은 수없이 많은 차원과 국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혼은 순수한 좌 또는 우가 되고 싶겠지만, 인간이란 수많은 차원과 국면의 통합체요, 때문에 그렇게 순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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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신경림 선생을 보내드리며 지면기사
지난달 별세 소식에 하염없이 눈물서가의 '민요기행' '남한강' 꺼내 봐신경림 문학의 '고갱이' 담겨 있어민족시인 평가만으로 진가 다 몰라귀한 것 높은 곳에 있지 않음 배워벌써 7, 8년 되었나? 더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지 못한다. 때는 가을이 아니었나 싶다. 아들과 함께 만주에를 갔다. 좀처럼 아버지와 여행하지 않으려는 아들을 상대로, 그럼, 들어가기는 같이 장춘으로 들어가고 중도에 헤어져 각기 귀국하자 했다. 어려운 조건으로 겨우 아드님의 승낙을 얻어내서 장춘으로, 연길로, 용정으로, 명동촌까지 이 분을 모셔갔다.명동촌은 우리 시인 윤동주의 고향이다. 동주는 슬프고도 맑고 깨끗하고 높은 시인이었다. 흔히들 동주가 젊어서 세상을 떠난 것이 그의 순수의 요인인 것처럼 느끼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순수를 향한 의지가 그로 하여금 영원히 순수한 시인으로 죽어서도 살게 한 것이라 해야 한다.명동촌의 동주 생가가 문이 닫혀 있어 관리인이랄까 마을 촌장이시랄까 어느 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는데 한 작은 버스가 와 선다. 관광철이 아니었다. 나는 아들과 단 둘이 동주의 고향을 찾은 것이었다. 버스도 그냥 버스려니 했는데 뜻밖에 낯익은 목소리들, 한국 사람들 소리다.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자세히 바라보는데, 선생이시다. 신경림 선생이 몇몇 분들과 함께 명동 마을을 찾으신 것이었다.선생은 웃으며 다가오셔서 저 친구는 누구냐고 물으셨고, 내가, 후후, 아드님께 인사를 시켜드린 후, 나만 들을 수 있으시게, 속 깨나 썩이겠구만, 하고 위로를 해주셨다.그렇게 하고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그 후에 선생께서 수술하시고 회복되셨다고 시간을 내주신 적도 있고, 늘 좋은 분들과 산행하기를 즐기신 선생을 북한산 승가사 언저리에서 우연히 만나뵙기도 했다.지난달 22일 선생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른 안 좋은 일들이 겹쳐서 그랬는지 하염없이 눈물이 솟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다 지난달 25일 열린 추모식에서 선생의 시 '길'을 낭송하며, 나는, "이 가슴 아프고 엄중한 자리에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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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어느 '재야' 역사학자 지면기사
'1.5룸'에 살며 역사책 쓴 대학동기잊혀진 동아시아 역사 파헤치는중남들 세속 맞춰갈때 자기 세상으로문득 진짜란 무엇인지 생각하게돼어떻게 사는게 진짜삶인지 묻는다나의 대학 동기 중 하나는 지금 소백산 줄기 어딘가에 살고 계시다. 동기인데, 웬 존칭이냐 하겠지만, 나이가 물경 열세 살이 많으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언젠가 이분께 이야기를 듣기를, 같은 고향 사람인데, 중세의 역사 인물에 관한 내력을 깊이 탐구한 역사책을 쓴 사람이 있다고 했다. 책 이름을 묻고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도 묻고 보니 관심이 갔다.책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서울에 올라와 한참 있다가 이 두 권짜리 역사서를 샀다.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읽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사 잡지사에 다니는 기자로부터 다시 이분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얘기 끝에 이분 인터뷰를 한 적 있노라 했다. 이야기 끝에 이분이 지금 내 고향이기도 한 도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전화번호를 얻어 놓고 며칠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뵈러 가는 길에 들러보자는 심산이었다.약속한 날이 닥쳐 나는 괜히 만나기로 했나 했다. 쭈뼛쭈뼛 차마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약속한 집을 찾아가기는 갔다.이분은 원룸 빌딩에 혼자 거처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이분의 처소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고독의 냄새를 질리도록 맡았다.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분의 '1.5 룸'의 집기들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 주방 겸 거실의 책장에는 온갖 언어로 된 외국책들이 어지럽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랍어, 티베트어, 러시아어, 몽골어, 만주어, 튀르키에어…. 중국어책, 일본어책은 명함 내밀기도 어려운 판이었다.따져보니, 우리는 불과 두 학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온 학교가 같은 것도 알고 있었다. 강한 영남 사투리가 금세 귀에 시끄럽지 않아졌다. 우리는 역사 이야기를 하다 말고 금방 옛날 학창시절 이야기로 돌아가 버렸다. 하숙집, 자취방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는 마치 한 집 한 방에 기거하는 옛날의 학생들 같았다.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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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다투기만 하기에는 너무 좋은 봄날이다 지면기사
오늘날 정치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정확히 대변하거나 국가 전달보다정치인의 논리·이익추구 경향 강해선출된 의원 싸운만큼 대변 안해줘'아름다운 봄' 모두가 평온해 보자외할아버지는 만년 야당이셨다고 했다. 매일같이 '동아일보'가 배달되었다.내 고향은 예산 하고도 북문리, 교통 편이 마땅찮은 그곳에는 우체부가 하루하루 신문을 배달해 주어야 했다. 우표를 붙인 띠를 두른 신문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기는 이런 신문 배달은 우리 대학 다닐 때까지 있었다. 친구네 학교 학보가 배달해 오기를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다.외할아버지는 부지런한 분이셨는데, 세상에는 늘 불만이 많으셨던 것 같다. 해방 되고 나서 면장도 지내신 적 있으셨다는데,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고, 6·25 전쟁 때는 인민군, 좌익을 피해 외할머니 친정 쪽으로 피신을 하시기도 했단다. 만년 야당이라는 것과 6·25 때 피신을 하셨다는 것이 어느 때까지 잘 연결이 안 되어 내 딴에는 애를 먹기도 했다.외할아버지는 우리 어머니를 포함하여 자녀를 5녀 1남을 두셨다. 외숙모가 예산 분이셨는데, 외숙모의 부친, 그러니까 우리 외할아버지 사돈되시는 어른은 여당이라셨다던가? 두 분이 다 바둑을 좋아하셔서 자주 북문리에 오셨다는데, 정치 이야기 끝에 다툼이 일어 일어나 가시곤 했단다.아버지는 옛날 여당이셨고, 나는 늘 야당이었는데, 내 형제들, 그러니까 두 동생은 또 하나는 여당, 하나는 야당이었다. 아버지가 대장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지 지금 일 년 하고 딱 두 달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홀로 남으신 어머니와 나, 그리고 두 동생의 정치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여기서 굳이 밝히지 않으련다. 아무튼 아버지가 아프시기 시작한 그 언저리부터 지금까지의 그 사이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며칠 꽃샘추위였던 듯, 한 주가 시작되는 오늘은 날이 활짝 갰다. 꽃나무들이 흰 꽃봉오리를 다투어 내밀고 있다. 철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꽃은 다 피었을 때보다 피려 할 때가 더 아름답다 했다.투표 날이 가까워지면서 신문도, 뉴스도, 유튜브도 뜨겁게 달궈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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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이 불투명한 세계 지면기사
인터넷 민주주의, 초기 낙관주의서환상·환영의 '이미지 정치'로 변질보여주고 싶은것 위주 정보 재생산소수 전문가·추종자 좌우되지 않게자동적 기제 벗어나 시민이 점검을오래 전에 중고등학생들 논술시험에 단골 메뉴로 올라오던 주제가 있었다. 인터넷이 민주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겠느냐는 것이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는 시대로 막 접어들 때였다.인터넷이 정보의 집중을 가져오고 민주주의에 장애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보다 인터넷 세계가 가져다주는 정보의 보급력이 세계를 더 민주적인, 곧 더 나은 세계로 만들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은 당시의 낙관주의를 시사한다.시간이 흘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2009)가 NHK 수금원 덴고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을 때 낯설다는 느낌, 그리고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TV 수신료는 지금 한국도 계속 문제지만 어떻게든 생겨날 수 있는 문제라는 정도의 생각이었다.그로부터 삼십 년이 흘렀다. 지금은 지상파 방송에 온갖 종합편성 채널이 생긴 것도 모자라 유튜브로 대표되는 절대 강자가 지배하는 인터넷 세상이다. 그것도 모자라 AI가 바야흐로 세계의 주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둑은 초고수도 네 점을 깔아야 AI를 상대할 수 있고, 삼성에서는 곧바로 전화 통역을 해주는 AI탑재 신형폰으로 휴대폰 세계를 다시 재편하겠다고 공언한다. AI는 정보를 집적하는 것에서 이제 편성, 재구성하고, 또 창조하기까지 한다. 챗GPT는 지금은 그런 수준이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보통사람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인터넷 세계의 민주주의는 그러면 어떻게 되었나? 과연 인터넷 덕분에 디지털 민주주의는 증대되고 있고, 세계는 더 민주적이고, 더 약자들의 편이 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지난 연말부터 새해 벽두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이미지의 정치다. 이 이미지 정치는 보이는 화면에 분장을 하고 나타난다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촬영한 것들을 마음대로 잘라내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서로 멀리 떨어진 것들을 교묘하게 이어붙여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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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우리는 진실을 제때 알지 못한다 지면기사
서울의봄 관람후 떠오른 대학시절'주점 1979' 의미… 12·12 쿠데타 해야당대표 곁에 잦은 죽음 등 의문점매스컴·언론으로 보는 일부의 진실환각의 세상,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서울의 봄'을 보고 나온 시각은 밤 아홉 시 반이 넘었다. 오랜만에 아주 잘 만든 영화를 만난 느낌을 안고 귀를 베어갈 것 같은 한밤의 길에서 옛날 일들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봄이 되자 세상의 시끄러움이 중학교와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들썩이게 했다. 어느 날 오후였나. 언덕 위 교사에서 고등학생들이 '와' 소리를 지르며 교정으로 내려와 시위를 벌였다. 중학생들은 체육 선생님이 주동 학생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을 교실 유리창에 붙어 쳐다보고들 있었다.'서울의 봄'이 시작되기 전에 영화에 나오는 '12·12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전두광' 보안사령관이 국군 지휘권을 잡아채는 일대 사건이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것은 1984년이었다. 1985년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연극 워크숍을 마치고 사회에 나간 선배들과 함께 2박3일 술집 순례를 했다. 종로소방서 뒤 서울 토박이 선배 집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통금이 시작된 자정 넘어 시간에 바깥에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 동정에 주의를 집중했다. 한참을 소란스럽더니 다시 세상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한 선배가 "또 쿠데타가 난 거 아냐?"라고 했다. 한 이불 속에 다리들을 밀어넣은 채 긴장하고 있던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그 무렵, 1983년에서 198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텔레비전 방송들은 학원가 용공 사태며, 노동계 좌익 침투를 주제로 일제히 특집을 내보냈다. 대학에 가면 지하 서클들이 거미줄 치듯이 쳐 있다, 청바지 입은 여자 선배, 잘 해주는 남자 선배를 조심하라고 했다. 싸늘한 밤길은 주점 '1979'로 이어져 있었다. 지하 계단을 통해 내려가자 주점 안에는 캐럴 송이 흐르고 젊은이들, 나이 든 사람들이 이리저리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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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다시 상고사 문제에 관하여 지면기사
서울 부암동에 가면 빙허 현진건의 고택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하나 있다. 그 앞에는 안평대군의 무계정사가 있었다는 무계원도 자리잡고 있어 한 번 둘러보기 좋은 곳이라 할 만하다.현진건 소설이라 하면 보통은 그의 너무나 잘 알려진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되고,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빈처' 같은 단편소설의 교과서적 명작을 상기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그런데 이 현진건의 역사소설 '무영탑'이니 미완에 그친 '흑치상지'는 그의 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살펴보면 그는 일제강점기의 최남선 사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가 주재하던 '돔명'이나 '시대일보'에서 일했고, '동아일보'로 옮긴 후에도 최남선이 이 신문의 중요한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또 본래 최남선과 현진건 집안은 사돈 관계에 있었다.그러나 최남선이 독자적인 조선사학과 불함문화론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조선총독부 주도의 조선역사 기술에 연계되면서 대일협력의 길을 걸었던 것과 달리 현진건은 일장기 말소사건이 웅변해 주듯이 1930년대 후반 이후의 삶을 깨끗하게 지켜낸 사람이었다. 현진건 소설 '흑치상지'에 역사 시선신채호 '평양에 한사군' 논리 부정일본 고고학자의 역사 조작 조롱도 이러한 현진건의 미완에 그친 장편소설 '흑치상지'는 그 작의부터 흥미롭게 느껴진다. 흑치상지라면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후 백제부흥전쟁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던 인물, 그의 성씨부터 내력과 투쟁과정, 이후의 삶은 지극히 흥미롭다. 특히 그의 묘지석이 한반도 어디가 아니고 현재의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것은 그의 삶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준다.이 인물의 삶을 그리고자 하면서 현진건은 그 '예고'에서 맹자의 말을 빌려 불의하면서, 즉 '옳지 못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함은 뜬구름과 같다'고 하며, 그에 다다르는 과정도 힘겹기 짝이 없었지만 끝내는 손에 쥔 권력조차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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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세월이 오래 가면 모든 것이 변한다 지면기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름은 같아도 그 성질은 달라지는 것이 많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신 세력이 집권하자마자 구정치세력과 선을 긋겠다고 열린우리당을 만들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급변했다. 민주와 반민주라는 오래된 구분선은 이 정부가 스스로 진보와 보수로 '전선'을 재편하고자 하면서 허물어져 내렸다.탄핵 국면이 열린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뒤로 하고 큰 덩치를 두 쪽으로 나누어 버린 열린당은 그 후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였다. 대통령이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 선거는 엄청난 표차로 당시 야당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 문제가 계급·계층 문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상수임을 무시한 데다가 스스로 민주·반민주의 구분선을 해체해 버린 결과였다.그 다음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당시 야권은 가까스로 재통합을 이루며 선거 막바지 국면에 다다랐다. 이번에는 TV토론에 등장한 진보당 후보의 막무가내식 '선전'은 국민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범죄혐의 정치인 체포동의안 가결찬성표 색출한다니… 무서운 세상말·행동의 자유가 민주주의 초석 사실은 이 선거 전부터 야당은 당내에 이질적인 분파나 정견을 허용하지 않고 주류파가 독주하는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야당은 전통적인 야권에 '386 세대'로 정치에 입문한 이른바 '운동권', 그리고 새로 등장한 안철수 세력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386', 이제 '586'이 된 운동권 정치인들에 의해 떠받들어진 지도부는 다른 분파들을 일방적으로 고사시키거나 쫓아내는 행태로 일관했다는 해석이 많다.18대 대통령의 시대에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분열된 야당을 상대로 유리한 국면에서도 국민 정서를 거스르며 참패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을 석권하면서 향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