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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talk)!세상] 플러스를 추구하는 삶

    [톡(talk)!세상] 플러스를 추구하는 삶 지면기사

    보너스(bonus)를 받는다는 말을 들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물론 아무 때나 그리고 누구나 받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실적이 좋거나 현저한 성과가 나타났을 때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보너스는 주도권이 자신에게는 없다. 즉 보너스의 주도권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 있다. 보너스의 범위나 수준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보니 보너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보너스를 받게 되는 시점을 전후로 보면 그 효과가 지속적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보너스는 여타의 외재적 보상과 비슷하게 대개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는 일이 많다. 반면 플러스(plus)는 보너스와는 결이 다르다. 플러스는 보너스와 달리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 정해 놓은 것까지 한 후 조금 더 해보는 것이 일종의 플러스다. 일례를 들면 밤 10시까지 공부하기로 했는데 한 시간을 더 하는 것이나 국내 자료를 분석하는 일인데 해외 자료까지 살펴본 후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10㎞를 뛰고 난 후 1㎞ 정도를 더 뛰는 것도 일종의 플러스에 해당된다. 그러다 보니 플러스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선택이고 결정인 셈이다. 그래서 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상황이나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러스는 보너스와 달리 내재적 보상의 성격이 짙으며 지속적인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더 하는 만큼 더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보너스를 추구하는 삶보다는 플러스를 추구하는 삶이 보다 더 매력적이며 능동적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과거보다 현재·미래에 중점가치·의미 있는 미션 주어져 私的뿐 아니라 공공 이익까지 그렇다면 플러스를 추구하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먼저 플러스를 추구하는 삶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무게 중심이 놓여 있는 삶이다. 이는 삶과 일 그리고 관계에 있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목적을 추구하는 삶이기도 하다. 즉 미션(mission)이 있는 삶이다. 미션이 있는 사람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목표가 있고 계

  • [톡(talk)!세상]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비해당(匪懈堂) 어디일까?

    [톡(talk)!세상]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비해당(匪懈堂) 어디일까? 지면기사

    햇살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찬 이슬에 곡식이 여물 듯 농작물을 수확하는 절기다. 밤과 고구마도 제철이다. 감이 빨갛게 익어 간다. 밤과 고구마 그리고 단감을 챙겨 동트기 전 길을 나선다. 인왕산과 백악산을 잇는 창의문으로 향한다. 광화문 월대에서 경복궁 너머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인왕산에 단풍이 들고, 길가에 은행나무는 노랗다. 걸어서 갈까, 차를 탈까? 고민하는 사이 발걸음이 자하고개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10분만에 창의문 앞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윤동주문학관이 손짓한다. 산과 산 사이로 주홍색 지붕들이 마치 유럽과 같다. 목멱산 정상도 코앞에 있다. 인왕산 치마바위 아래 수성동 계곡과 기린교도 보일 듯하다. 창의문으로 가는 좁고 긴 길은 지네와 같다. 단풍나무 숲을 지나면 한양도성 안 가장 오래된 성문이 반긴다. 600여 년 된 성문 아래 바위가 반질반질 닳았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홍예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홍예문 천장 위에 그려진 닭을 닮은 봉황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눈빛이 매섭다. 이 성문을 누가 오갔을까. 자문 밖을 나서니 인왕산이다. 인왕산 정상은 도성 안이요, 인왕산 기차바위는 도성 밖이다. 도성 밖 무계원 사랑채에 걸터앉아 삼각산 보현봉을 본다. 600여 년 전 안평대군이 거닐던 공간이다. 도성 안 비해당에서 꿈꾼 이야기를 안견이 3일 동안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속 풍경이 바로 여기다. 안평대군의 무계정사는 봄에 와야 제격이다. 복사꽃이 한창 필 때 이상향 찾아 도성 밖을 오갔다. 커다란 바위와 폭포가 흐르는 계곡 아래 무계정사에서 글과 그림을 그리며 가야금과 대금 소리에 활을 쏘았다. 그곳에 '武溪洞(무계동)'이라는 각자도 바위에 남겼다. 안평대군 글씨가 그날의 흔적이다. 1450년 도성밖 무계정사에서시문·찬문 쓴 '몽유도원도 발문' 완성안평대군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로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양녕대군이 폐위되자 충녕대군은 세자에서 왕으로 즉위한 후 셋째를 낳았다. 안평대군은 시·서·화 그리고 가야금도 뛰어난 문화예술계 기린아였다.

  • [톡(talk)!세상] 디지털 격차가 불러온 또 다른 양극화

    [톡(talk)!세상] 디지털 격차가 불러온 또 다른 양극화 지면기사

    2023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발표한 '2022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는 장애인, 저소득층, 고령층, 농어민을 대상으로 디지털정보화에 대한 접근, 역량, 활용 수준을 조사했다. 그 결과 다른 계층보다도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종합수준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이전의 2020년 조사에서 정보취약계층의 정보화 수준은 100점 만점에 72.7점으로 나타나 그 격차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격차는 더 큰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됐다.디지털 격차란 디지털 정보를 다루는데 있어 계층 간의 간극을 의미한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디지털 분야에서만의 차이를 기술적으로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일상생활, 금융정보 활용, 복지 혜택, 여가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특히 고령층의 경우 기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접근성에 있어서 다른 연령층과 큰 차이가 없으나, 이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즉, 기기를 소유한다는 것이 곧 활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OECD 조사에서 한국의 인터넷 접근성은 지속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이 99% 이상에 달하는 상황임에도 세대 간 디지털 격차가 한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령층 소유·접근성 큰 차 없으나매우 낮은 수준의 활용도에 주목유아 2명중 1명 24개월전 처음 접해 더 구체적인 예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서는 터치스크린 방식을 활용하는 키오스크의 경우 고령층이 활용하기에는 글씨 크기가 너무 작으며, 터치 반응 속도가 다소 빠르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경우에도 이런 문제점이 유사하게 나타나 다른 기능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전화와 문자 정도만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경우가 주를 이뤘다. 그렇다면 고령층에게 이런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고령층에게 일상생활의 디지털 활용

  • [톡(talk)!세상] 이회영과 홍범도

    [톡(talk)!세상] 이회영과 홍범도 지면기사

    조선조 3대 제단은 종묘와 사직, 문묘다. 문묘(文廟)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 성리학의 주요 인물에 더해 우리나라 신라·고려·조선조의 명현들이 모셔졌다. 고려 때 종사된 3현(설총 최치원 안향)에 조선조에서 15현(정몽주·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을 합쳐 '동국(해동)18현'이라 부른다.동국18현의 면면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그분들의 학문적 입지와 업적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편, 조선조 문묘 종사 15현에게는 또 다른 특이점이 있다. 소위 자손이나 제자들이 잘 나갔다는 점이다(최연식 저 '조선의 지식계보학'에서). 제자들이 집권하면 임금께 스승의 문묘 종사를 주청했고, 관철시켰다.우당 이회영 집안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전 재산을 털어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와 더불어 잘 알려진 건 쟁쟁한 후손들 이야기다. 이회영의 손자 이종찬은 국정원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며 현재는 광복회장으로 봉직 중이다. 이종찬의 사촌 이종걸은 국회의원 5선에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역임한 중진 정치인이다. 특히 이종걸은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 추숭하는데 만전을 기했다. 전재산 털어 무관학교 설립 이회영광복회장 이종찬·5선 이종걸 후손육사 '흉상 이전' 반발… 정부 철회 이회영과 대비되는 인물이 홍범도다. 홍범도는 머슴살이까지 할 만큼 힘겨운 유년기를 보냈다. 청년 홍범도는 명성황후 시해 만행 소식을 들은 뒤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그러나 홍범도에 대해서는 청산리전투나 봉오동전투에서의 활약상 정도가 회자 될 뿐 그의 삶 전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게 없다. 몇 년 전 모 방송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나마 그의 말년과 사후에 대해 어렴풋이 알려졌을 뿐이다. 지난 8월 느닷없이 육사 교정에 세워진 5인(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의 흉상 이전 논란이 불거졌다. 이회영의 후손인 광복회장 이종찬은 즉각 반발해 국방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광복회

  • [톡(talk)!세상] 도서관과 피트니스 센터

    [톡(talk)!세상] 도서관과 피트니스 센터 지면기사

    도서관과 피트니스 센터에 오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는 점과 혼자 한다는 점 그리고 도전의식이 있다는 점 등이다. 그런데 이들을 조금 더 살펴보면 색다른 공통점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굳이 오지 않아도 될 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다 보면 쉬지 않고 오랜 시간동안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히 운동을 하는 이들이 보인다. 대개는 탄탄한 근육을 지닌 사람들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늦은 시간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대개 학업성적이 뛰어난 친구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미 형성된 근육이나 학업성적일지라도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현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피트니스 센터와 도서관을 찾아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장소이고 그곳에서 하는 활동도 다르지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현상 유지(status quo)를 위해 온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은 현재 상태에서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오기도 한다. 이른바 스스로를 업그레이드(upgrade)하기 위해서다. 이는 현재의 상태에 대해 만족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얻고자 함이다. 만약 이들이 경쟁을 한다면 경쟁 상대는 자기 자신이고 이들의 목표는 매번 갱신된다. 물론 자율성과 주도성에 기반한다. 학업·근육, 현상유지·업그레이드지속 해야 하는 색다른 공통점관계·업무적 측면도 다를 바 없어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 유지와 업그레이드는 비단 신체적인 측면이나 학업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관계적인 측면이나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관계적인 측면에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일례를 들면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연락을 해야 한다. 그리고 모임에 초대받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임을 만들고 초대해야 한다.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 [톡(talk)!세상] 정조의 능행길,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아시나요?

    [톡(talk)!세상] 정조의 능행길,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아시나요? 지면기사

    한강대교 지나 노량진 가는 길에 노랫소리가 들린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 '노들강변'은 경기민요 명창들의 애창곡이다. 세마치장단에 맞춘 일제강점기 대중음악인 신민요 가락이다. 요즘 트로트가 전국을 강타하듯, 100여 년 전 민요풍 음악이 낯설지 않다. 왜일까? 힘든 삶 속에서도 흥겹게 흘러나왔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가장 구성진 노랫소리가 경기민요로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사 모든 한(恨)을 한강에 띄워 보내는 심정인데, 노랫말과 달리 리듬은 경쾌하니 인생을 달관한 것이 분명하다. 노들강변에 노들섬이라. 한강 한가운데 노들섬 지나 노량진 가는 길 위에 노래가 경기민요라니… 도대체 이곳은 어디일까? 노들강변 노래 속 노들은 '백로가 놀던 돌'이고, 노들 나루터가 한강변 노량진이다. 한강철교가 있기 전 노량진은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도성 밖 성저십리 용산에서 한강을 건너면 바로 경기(京畿)였다. 배 타고 노들섬 지나면 서달산 기슭 언덕에 커다란 누정이 있었다. 이곳에 앉으면 한강 따라 목멱산과 응봉 아래 동호와 송파나루에서 떠오르는 해도 볼 수 있었다. 용이 머물고, 말이 머리 치켜들 듯봉황이 날개 펼쳤던 정조 머물던 곳아버지 묘인 '현륭원' 자주 행차노들강변 주정소 애틋해 보이는건그리워하는 마음 담겨있기 때문 햇살이 강물에 출렁거리고, 바람소리 따라 날아가는 왜가리는 한 폭의 그림 같다. 한강 너머 빌딩과 빌딩 숲 사이로 삼각산과 목멱산이 보이고, 강물 따라 롯데타워와 남한산성까지 보이는 최고의 길지다. 이곳에 도성 밖 한강 건너 노량행궁의 중심 건물이 있다. 노량행궁 터가 있는 언덕 내려와 노들섬에 한강을 잇는 커다란 다리도 있었다. 한강철교와 한강대교는 100여 년 전 서울과 경기를 잇는 철로이자 대로였다. 세상이 바뀌는 순간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와 만고풍상 비바람이 강물을 따라 말없이 흐르고 있다. 한강에 다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오갔을까? 한강 따라 옛길을 말없이 걷다가 상도터널 가기 전

  • [톡(talk)!세상] 묻지마 살인, 생명 경시의 시작과 끝 (2)

    [톡(talk)!세상] 묻지마 살인, 생명 경시의 시작과 끝 (2) 지면기사

    묻지마 살인이란 특별한 목적이나 동기 없이 무작위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묻지마 살인은 범행 동기가 없고 가해자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예측할 수 없어 어느 범죄보다도 예방이 어렵다. 실제로 주요한 묻지마 살인사건을 살펴보면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2008년 논현동 방화 살인사건, 2023년 정유정 사건, 가장 최근의 신림역, 서현역 사건에 이른다. 이러한 사건들의 공통점을 분석한 문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묻지마 범죄자들은 사회인구학적 측면에서는 20~40대 남성인 경우가 많고, 불우한 가족사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들은 별다른 직업이 없었으며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개인적 성향으로는 분노조절 능력이 현저히 낮고,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들에 대해서 외적 귀인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일반 사람들은 실직이나 가족 간의 불화 등 다양한 부정적 생활사건이 일어난 경우에 이것을 내적 귀인(사건의 원인을 자신의 노력 정도, 동기 등 내적인 요인으로 간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부정적 사건의 원인을 외적 귀인(사회나 주변 환경 탓으로 간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한두가지의 어려움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배경이 있다. 영유아기부터 학령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각 발달 과업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영유아기에는 양육자와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맺었고, 학령기에는 왕따를 당하거나 성인기에는 연애에 실패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처럼 일련의 생활사건이 누적되어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경우가 다수다. 또한 이러한 생애 사건들을 겪으면서 소위 사이코패스로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있으며 이들은 충동적인 살인에 대한 욕구를 표출할 뿐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공감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아마도 혹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가?',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이들의 개인사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 [톡(talk)!세상] 어디로 갈지 모르겠거든 일단 가라

    [톡(talk)!세상] 어디로 갈지 모르겠거든 일단 가라 지면기사

    나날이 각박해지고 파편화되어 가는 현실이다. 사적 안전망은 작동을 멈춘 지 오래고, 사회적 안전망 또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운 이들, 이웃도 없고 국가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앉아서 기다리는 복지여서는 안된다. 직접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우선 할 일은 가난한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이해하도록 쉬지 않고 설명해야 한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가난할 권리'다.노숙인은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이지만 실은 돈이나 잠자리보다 더 중요한 것,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빚쟁이에게 쫓길까 봐, 사업에 실패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서, 지인이나 가족과의 관계가 깨져서,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다. 구조 밖 이탈한 노숙인 인문학은사람과의 관계 회복시켜 주는 일 사회적 관계망 속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삶의 활로를 만들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관계망이 깨진 사람은 불행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노숙인 인문학은 구조 밖으로 튕겨져나간 그들에게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일이었다. 우선은 그들에게 곁이 되어 주었다. "당신에게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마침내 그들이 사람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일이었다.거리의 인문학이 올해로 스무 살을 맞았다. 노숙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이래 미혼모와 한 부모 여성 가장, 교도소 수형자, 가난한 어르신, 탈학교 청소년, 장애인 등으로 대상이 확대되었다. 그사이 내겐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20년 동안 줄기차게 활동한 덕분이다.20년을 한 방향만 보고 달려 왔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어디로 갈지 모르겠거든 일단 가라'는

  • [톡(talk)!세상] 스케줄을 보면 정체성이 보인다

    [톡(talk)!세상] 스케줄을 보면 정체성이 보인다 지면기사

    '9월 10일, 오후 5시, OO보고서 제출', '9월 14일, 오후 6시, OO 저녁 약속'. 이와 같은 일정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약속이나 개인적으로 기억해야 할 일 등이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다. 일정들을 살펴보니 몇 가지 특징들이 보인다. 먼저 대부분의 일정들은 잊어버리거나 놓치게 되면 자신에게 해(害)가 되거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일인 것이다. 주로 업무적인 일들이나 경제적인 측면과 관련된 일들이 그렇다. 그래서 전날 또는 몇 시간 전에 이를 알려주는 알람을 설정해 놓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지키지 못하면 관계가 훼손되는 일들이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약속을 비롯해서 이메일 회신 등도 포함된다. 물론 한두 번 정도의 일정 조정이나 양해를 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상 반복되거나 지켜지지 않는다면 신뢰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른바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주로 머지않은 시간에 이루어질 일이라는 것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몇 개월 이내의 일정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일정은 주로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측면에서의 일들을 중심으로 선정되고 저장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일정들은 현상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없다. 다만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생긴다.한편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중요한 일들도 저장된 일정들의 특징 중 하나다. 스스로 정한 목표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예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업무적인 측면이나 관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일들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지키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저장된 일정' 이익·관계성 중시대개 단기·미시적 측면서 기록'자신 중심' 조율 중에 아쉬움도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일정들은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뭇 결이 다른 상실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특징들은 공통점이 있다. 주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 주로 자신

  • [톡(talk)!세상] 백탑파(白塔派)가 사랑한 백탑을 거닐다

    [톡(talk)!세상] 백탑파(白塔派)가 사랑한 백탑을 거닐다 지면기사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은 조선을 근대의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대한제국 황궁인 경운궁 대한문에 전봇대를 설치한다. 경운궁 궁담길도 전등으로 바뀌는 찰나다. 돈의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운종가도 전차를 놓았다. 순수한 우리 자본과 미국 기술로 한성전기회사가 만든 동양 최초의 전차다. 철도도 노량진에서 제물포까지 개통한다. 전차·철도·전기·전화·도로 및 병원 등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파고다(Pagoda) 공원도 생겼다. 탑골공원에 팔각정을 만들고, 최초의 서양음악 공연도 하였다.대한제국 군악대는 음악회도 열었다. 대한제국 국가가 백탑 주변에 울려 퍼졌다. 오가는 사람들이 탑골공원 안 '백탑(白塔)'에 모였다. 백탑은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말한다. 백탑은 어디에서나 보이는 심지어 한강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백탑은 누가 만들었을까. 원각사는 도성 안 가장 큰 사찰이었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이 탑골공원을 지키고 있다. 유교의 나라에 큰 사찰이 있었다. 대원각사비도 옆에 있다. 대원각사비를 가까이 보면 두 마리의 용이 날 듯 큰 거북이 미소를 지으며, 꼬리를 살포시 감춘다. 거북이 발가락과 발톱까지 세밀하게 그렸다.600여 년 전 종각 옆에 원각사가 세워졌다. 유교 나라에 불교인 원각사와 대원각사비가 서 있다. 백탑은 600여 년 동안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세조는 고려 남경에 있던 흥복사를 증축하여 새로운 절로 만들었다. 효령대군 제안으로 회암사 석가모니 사리를 가져와 사리탑도 쌓았다. 도성 안 가장 높은 하얀 탑은 백탑이라 불렸다. 백탑을 보면 사자·용·모란·연꽃·부처·보살상·천인상 등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보면 볼수록 기이하다. 왕실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였다.역사·문화 중심 '원각사지십층석탑'원각사 허물며 만남의 장소 탈바꿈연암 박지원, 탑 주변서 모임 결성젊은이들과 토론하며 북학파 시작'가장 작은것, 가장 본질' 핵심 철학백탑이 있는 곳에 해탈문을 세우니 사동 또는 탑골로 불렸다. 연산군 때 원각사를 연방원이라는 기방으로 만들고, 원각사 건물은 없앴다.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