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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화물칸에 탈 순 없잖소 지면기사
전국 12개 노숙인 시설에서 동시에 진행하게 될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와중에 지인으로부터 겸손하게 처신하라는 말을 연거푸 들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두 번째 듣고 나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나에게 하는 조언이면서 동시에 겸손이 사라진 세태에 대한 한탄이었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선 당최 겸양의 미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센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생을 내려놓는 교사가 속출하는가 하면, 교육부의 모 사무관은 담임 교사에게 내 아이만 특별하게 대하라 주문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교사 직위를 박탈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는 오랜 일이지만 그렇기로 이건 도시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사회 사라진 겸양의 미덕학부모에 시달리다 생 마감한 교사남탓 공방에만 열 올리는 정치권 겸손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기로는 정치권이 뒤질 리 없다. 재판의 선고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의 고교 시절 글까지 파헤쳐 판사의 성향이 어떻네, 정치 판사네 하는 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분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사가 5선 국회의원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다니 그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겸손, 요즘 사람들은 이런 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지만,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부모와 선생님, 상사나 선배에게서 귀에 못이 박일 만큼 들어왔던 말이다.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내세우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게 바로 슬기롭게 사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남을 높이어 귀하게 대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겸손이다. 매사 남 탓을 하기보다 궂은일 생기면 우선 '내 탓이오'하고 외치는 것이 또한 겸손이다.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날씨에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 달랠 길 없건만 연일 터져 나오는 세상 소식이라니 어처구니없는 것들 투성이다. 정치권에선 매사 남 탓 공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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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변화는 직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지면기사
"사람 잘 안 바뀐다"는 말을 하곤 한다. 심지어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는 말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종류의 말이나 표현들은 개인에게 있어 변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변화에 대해 개인의 저항이나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도 있다. 또한 변화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주변에서의 지원이나 지지가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변화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까지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함의 종류는 다양하다. 업무적으로는 일하는 방식이나 문제해결방식 등이 될 수도 있고 관계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 등도 해당된다. 개인적으로는 습관을 비롯해서 생각하는 방식이나 선호하는 것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개인으로 보면 이와 같은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불편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스스로 이에 대한 필요성을 찾지 못하거나 수용성 등이 없다면 굳이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개인 성장은 주변에 긍정적 영향스스로 객관적인 진단 변화 출발점3개월 실행땐 성취감 몸소 느껴져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꼽는다면 먼저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단조로움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 즉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물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에게 있어 더 다양한 경험과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애써 차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새로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일년 내내 같은 장소에 머물고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일을 하게 되면 새로움을 느끼거나 이를 마주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물론 새로움이 언제나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새로움이 없다면 개인의 성찰이나 성장도 제한된다. 한편 현재 상태의 개선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것도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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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광주향교, 왜 하남에 있을까? 지면기사
광주는 '남한산성도'에 한강에서 남한산성 너머 곤지암까지 너른 고을이었다. 한강 위 한양도성 안과 밖은 한양 즉 한성부다. 도성 밖 삼각산에서 중랑천까지 모두 양주(楊州)였다. 양주는 도성 밖 흥인지문 지나 회암사까지 끝없이 펼쳐진 도시다. 광주는 한양도성 성저십리 한강 밖 압구정에서 선·정릉과 봉은사 지나 송파나루·삼전도와 광나루까지 모두 다 광주였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지나 한강 변 팔당대교까지 광주다. 광주(廣州)는 한자처럼 한강 아래 넓고 커다란 도시다. 한강 위 북한산성이 있듯, 한강 아래 남한산성이 있다.남한산성은 한양도성에서 한강 건너 남동쪽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남한산성은 외적으로부터 왕을 지키려고 만든 임금 전용 행궁이다. 한양도성 밖 왕의 행궁지가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그리고 강화도성과 수원화성에 있었다.인조는 병자호란 당시 광희문에서 왕십리 지나 살곶이다리 옆 전관원에 머문 후 한강을 건넜다. 또다시 광나루에서 송파나루 지나 남한산성으로 가는 곳은 모두 광주 땅이었다.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햇살이 좋은 곳, 아무도 없는 공간, 돌아올 수 없는 남한산성에서 47일을 버텼다. 한양도성을 버리고, 종묘·사직을 모신 후 행궁지 남한산성에서 지냈다. 아쉽지만 한겨울 추위 속 백성들은 전쟁터에 있었다. 이곳이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이다. 인조는 버티고 버텼다. '실천 불가능한 정의' 주전론을 펼치는 김상헌과 '실천 가능한 치욕' 주화론을 주장하는 최명길 사이에서 극도로 고민하며 머리를 싸맨다. 과연 방법이 있었을까? 살길은 무엇이고, 죽을 길은 무엇인가. 추운 겨울 남한산성에서 햇빛이 없는 서쪽 문을 향해 걸어 나선다. 곤룡포를 벗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삼전도 굴욕의 시작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 한강 넘어 도망남한산성까지 가는 길 모두 광주땅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양손을 땅에 댄 후 이마가 닿을 듯 세 번 절하고, 머리를 땅에 아홉 번 조아리며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갖추었다.슬프지만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장소가 삼전도다. 롯데월드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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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가정교육의 중요성 지면기사
우리 사회는 요즘 사건과 이슈 등을 여러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최근 주요 사건과 이슈로는 노인 대상 묻지마 폭행, 신림역 흉기난동,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들 수 있다. 그간 묻지마 범죄와 흉기관련 사건들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과 노인을 대상으로 했다면 최근에는 20·30대 신체 건장한 남성들까지 타깃이 되고 있고, 그 방법들이 더욱 지능화되고 잔혹해지고 있다.앞의 두 사건은 윤리와 가치관이 문제이고 오송 지하차도 사건은 재난 안전에 있어 부실 대응과 안전불감증이 문제가 되고 있다.공동체 사회에서 발생되는 문제점을 원인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결국 근본적으로 가정에서의 기본교육과 환경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가정에서 이뤄져야 할 다양한 공동체, 윤리, 가치관 등 중요한 '가정교육' 역시 양육자들(부모 및 가족구성원)의 이해 부족과 시간적 제약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양육자들이 청소년기를 겪을 때와 확연히 달라진 사회적, 교육적 상황으로 인하여 양육자 스스로 많은 고민과 학습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양육자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15~59세 부부 절반이상 맞벌이구조적인 시대변화 '커다란 부담'자녀 접촉 적어져 생각의 개인화 이 같은 양육자들의 상황은 정부 통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2022년 하반기 지역별고용조사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취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10월) 기준 맞벌이 가구는 574만6천 가구로 전년 대비 2만 가구 증가했다.가구주 연령별로 맞벌이 가구 비중 증가율은 15~29세(7.3%p)가 가장 높았으며 30대(0.8%p), 40대(0.4%p), 50대(0.0%p)가 그 뒤를 이었다. 맞벌이 가구 비중은 50대(50대 전체 중 55.2%), 40대(55.2%)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컸고, 30대(54.2%), 15~29세(50.1%)로 나타났다. 15~59세 부부 절반 이상이 맞벌이를 하는 것이다.이같은 구조적인 시대변화는 양육자에게 커다란 부담을 떠안기게 되었고 자녀와 접촉하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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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사의재에서 상념에 젖다 지면기사
강의차 강진에 내려올 때마다 주막 '사의재'에 들어 아욱국과 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몇 잔 기울인다. 딴엔 풍류지만, 더러 상념에 젖기도 했다. 강진 유배 초기 다산이 맞닥뜨린 암울하고도 척박한 현실이 사의재라는 당호와 맑디맑은 아욱국 국물에서 고스란히 묻어났기 때문이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모한 '우리가치 인문동행'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인문공동체 책고집 이름으로 전국의 노숙인 시설에서 동시에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원대한 프로젝트다. 2005년 국내 최초로 노숙인 인문학 강좌(성프란시스대학)가 출범한 이래 전국에서 동시에 강좌를 개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숙인 인문학의 출범은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다. 이후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뒤를 이었다. 거기까지였다. 미디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단 인문학은 나날이 보폭을 넓혔지만, 정작 그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내 사그라들고 말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사회적 관심권에서 더욱 멀어진 노숙인들은 거리에서, 쪽방에서, 야산에서 비참한 삶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다. 수도권을 넘어 지역의 노숙인 수가 늘고, 20대와 30대 젊은 노숙인의 수가 증가했고, 여성 노숙인은 여전히 거리에서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노숙인 인문학' 초기 기획 안일대학서 강좌 중단시키는 등 낭패 노숙인 인문학의 전국화를 시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숙인 인문학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는 대신 진행 과정에서의 유대와 공감을 지향한다. 실의에 빠진 노숙인에게 다가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리하여 모두가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야 할 이유를 공유하고, 사람다운 삶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을 함께 나눈다.강좌를 기획하면서 전국의 노숙인 시설 사람들과 다층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동안 여러 지역에서 강좌가 진행돼왔다. 무리 없이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충분한 연구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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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당신의 커뮤니케이션은 안녕하십니까?" 지면기사
상대방과 말이 잘 안 통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주체는 주로 말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상대방이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고맥락 커뮤니케이션과 저맥락 커뮤니케이션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일환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을 함에 있어 이처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간격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상대방에게 "가급적 빨리 부탁한다"고 말한 상황을 떠올려보자. '가급적 빨리'라는 기준은 전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기준이다. 만일 말하는 사람이 '가급적 빨리'라는 기준을 '오늘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듣는 사람은 '내일까지'라고 생각했다면 둘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와 함께 자신의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을 넘어 그 기준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을 함에 있어 문제다. 개인별로 커뮤니케이션의 스타일은 다르다. 이는 그동안 자신이 속해 왔던 문화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대화 방식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즉 사람마다 익숙하고 편안하며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존재한다. 그러니 자신의 기준은 그야말로 자신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준을 일반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은 불통(不通)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또 하나의 걸림돌은 말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또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말하는 사람의 기준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것은 CF나 드라마 속에서는 가능할지언정 현실에서는 조금 다르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차이 발생말하는 사람 본인기준 접근 때문 그렇다면 커뮤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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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남양주 사릉(思陵), 여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지면기사
단종, 도성과 먼 영월서 생 마감조선 왕릉 중 가장 초라한 '장릉'부인 정순왕후는 남양주 사릉에566년 죽어서도 만나지 못한 인연추모제도 따로… 이젠 합장하길 한여름 이른 새벽 햇살이 따갑다. 해 뜨는 동쪽을 보며 삼삼오오 걷는다. 떠오르는 태양에 벌써 땀이 주루룩 흐른다. 양산을 손에 들고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길 위에 서 있다. 도성 안 흥인지문을 나서는 순간 청계천 위 창신동이다. 바위가 있고 숲이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채석장이었다. 깎이고 깎인 바위산은 이제 집들로 둘러싸여 있다. 언덕 위에 절도 보인다. 정업원이 있는 동망봉 기슭이다. 566년 전 어린 왕과 왕비가 마지막 밤을 보낸 후 비 오듯 눈물을 흘렸던 청룡사 우화루(雨花樓)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청계천 다리에서 어린 부부는 무슨 말을 했을까? 권력은 비정하다. 모든 것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운명의 순간이 도성 밖에서 벌어졌다. 영도교는 청계천에 흐르는 물처럼 아무 말이 없다. 둘은 영도교에서 살아 영영이별, 죽어 영영이별하여 만날 수 없었다.조선 왕 중 최초로 궁에서 태어난 왕자, 세종의 적장손이요, 문종의 적장자 이홍위는 모두의 웃음 속에 행복한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할머니 소헌왕후의 죽음과 연이은 세종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 문종의 쇠약한 몸으로 인해 궁 안에 웃음이 사라진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왕자를 난 후 산후병으로 죽는다. 아버지 문종마저 어린 아들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스러지고, 천하에 사고무친 고아가 된 단종은 12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과연 왕이 되고 싶었을까?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아버지 세종의 바람과 다르게 어린 조카를 역사 속 희생양으로 만든다. 어린 왕과 왕비는 그렇게 숨죽이며 궁에서 2년6개월을 살았다. 단종은 조선 왕 중 신분이 가장 많이 바뀐다. 세자에서 왕으로 왕에서 상왕으로 그리고 노산군에서 마지막 서인으로 18년 짧은 삶을 마감한다. 부인도 그렇다. 1살 위 소녀는 왕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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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초저출생 국가의 민낯 지면기사
지난 6월21일 경기도 수원시의 아파트 가정집에서 자녀 2명을 낳자마자 살해하고 시신을 냉장고에 유기한 친모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다음날인 22일에는 울산의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영아 시신이 발견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최근 8년간 출생 미신고 영유아인 소위 '유령 아동'이 2천236명인 것으로 보고되었고 이에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청, 경찰, 지방자치단체와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출생통보제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우선 미신고 영유아 개인으로 보았을 때는 출생신고의 누락이나 허위신고로 인하여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국가의 입장에서도 출생한 영유아의 수 자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으로 각종 지표에서 누락되어 통계정확도가 낮아지고 특히, 영유아기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적절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서야 발견이 되는 경우도 생겨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잇따른 영아 시신 유기, 우연일까국회 '출생통보제' 골자 법안 논의 여기서 우리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은 과연 '아동권리' 측면에서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찾게 해주는 발판으로 UN아동권리협약에서는 비차별의 원칙,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 생명·생존과 발달의 원칙, 아동 참여의 원칙을 바탕으로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보장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영유아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학대나 유기, 방임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외에 유사한 법령이나 제도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다른 제도를 갖고는 있으나 부모의 자발적 신고 외에도 의료기관 등에서 출생통보를 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고 영국의 경우도 이처럼 부모가 신고하는 것과 아동의 출생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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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좋은 글을 쓰려면 지면기사
글로 소통하는 시대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매체가 일상의 중심권으로 들어온 뒤 글쓰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문자와 카톡, 메신저를 비롯한 개인 간의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역시 글쓰기를 소통의 기본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생각만큼 써지지 않을뿐더러 막상 심각하게 고민해서 써놓고 보면 비문이나 어색한 표현이 속출한다. 혼자만의 공간에 쓴다면 모를까 공개된 공간에 올리는 글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만 한다고 해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글쓰기라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엄습하면서 되레 글쓰기로부터 멀어진다.글쓰기 책의 출간이 봇물인 건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글쓰기 책을 읽어봐도 도통 글 실력은 늘지 않는다. 늘 제자리걸음이다. 아쉽고 답답하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쓰기전 왜 쓰고 어떤 글 쓰려는지뚜렷한 목적 두고 충분히 생각 글쓰기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닮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막상 풀려고 하면 벽에 부닥친다. 책 몇 권 읽는다고 갑자기 글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이 쓰면 는다. 계속 쓰다 보면 감각이 생긴다. 감각을 얻기 위해 꾸준히 써야 하고,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또 꾸준히 써야 한다. 근데 매일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 글쓰기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데 대체 무엇을 쓴단 말인가. 첫째,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덮어놓고 글쓰기의 방법을 찾기보다 왜 쓰는지, 어떤 글을 쓰려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글을 쓰기 전에 충분한 사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각하지 않고 쓰면 제대로 된 글이 될 리 없다. 쓰기 위해 억지로 생각하는 건 자기기만이다. 생각을 영글게 하는 건 역시 독서다. 독서를 통해 받아들인 타인의 사상을 자신의 사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한 사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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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자기다운 삶을 산다는 것 지면기사
출근하면 피곤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퇴근 후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피곤함의 원인은 스스로가 역할연기(role playing)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면(mask)을 쓰고 있다는 표현도 해당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면 혹은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거나 주변에서 기대하는 모습에 부응하는 말과 행동들을 하게 되다 보니 피곤해지는 것이다. 일례로 출근할 때의 모습이 A라면 퇴근 후의 모습은 B가 되니 매번 역할이 바뀔 때마다 이에 적합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노력은 고스란히 피로로 누적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본연의 모습, 즉 실제의 자기다운 모습이 C라면 피로는 쉽게 풀리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일종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자신의 고유한 모습, 다시 말해 자기다움을 찾고 그에 맞는 언행을 하는 것이다. 역할연기를 하지 않거나 그 빈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하루빨리 자기다움 찾으면스토리 있는 인생 살 수 있어 그런데 자신의 고유한 모습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에서는 찾기 어렵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란 일종의 프로필이다. 직업이나 경력, 자격증과 같은 것들도 포함된다. 많이 알려진 비유의 대상인 빙산에 대입해 보면 자기다움은 수면 아랫부분에 위치한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외적인 모습은 자기다움이라기보다는 자기다움에 기반한 결과에 해당된다. 거꾸로 접근할 수는 없다. 인과관계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다면 자기다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 혹은 기준 등은 자기다움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나 자신의 강점 그리고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욕구에서도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예전에 비해 비교적 쉽게 접근해 볼 수 있는 각종 진단도구들도 자기다움을 찾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자기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거나 찾고자 하지도 않을 때다. 이렇게 되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