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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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무인기에 휘청대는 남한사회 지면기사
무인기 침범으로 떠들썩한 지난달 27일 장성급 군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무인기 탐지와 요격은 홀인원보다 어렵다"며 현실을 설명했다. 첫째 탐지를 실패한 이유다. 무인기 동체는 2m에 불과해 레이더 탐지가 쉽지 않다. 레이더 원리는 전자파를 발사해 반사되는 전파를 이용해 물체를 식별한다. 무인기는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크기인데다 종종 새 떼를 비행물체로 오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군은 지난달 27·28일 정체불명 항적이 레이더에 포착됐다며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알고 보니 새떼와 풍선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무인기 파장 이후 과민하게 대응한 결과다.둘째 요격을 못한(어려운) 이유다. 탐지가 안 되니 애초부터 타격은 어렵다. 또 탐지했다 해도 도심 상공에서 요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민간인 피해가 빤한 상황에서 무인기를 잡자고 무턱대고 쏴댄다는 건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어렵다. 사건 발생 직후라서, 또는 군 입장에서 옹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적지 않게 공감됐다. 물론 이런 해명이 모든 의문을 일소시키지는 않는다. 나아가 책임이 덜해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안보는 국민의 생명, 재산과 직결된 만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탐지 안돼 애초부터 요격 쉽지않아정부 책임 있지만 野 정치적 목적화 북에서 출발한 무인기 5대가 해를 넘겨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무인기는 현 정권과 전 정권 사이 첨예한 책임 공방을 불렀다. 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대립을 격화시켰다. 나아가 군 기강 해이와 문책론까지 대두했다. 급기야 정부는 9·19 군사합의 파기를 만지작거리며 남북관계는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1차적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지만 야당 또한 정치적 목적에서 사안을 키우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값싼 무인기 몇 대로 남한사회를 한껏 흔들어 놨다. 가성비 뛰어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셈이다.무인기 침범 이후 군 당국이 보여준 대응은 불신을 키웠다. 5일 군은 "무인기 1대가 비행금지구역(P-73) 끝을 스치듯 지나간 항적을 뒤늦게 찾아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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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이태원, 다시 피어나길 지면기사
올해 들어 유난히 눈이 잦다. 설경은 일색인데 흥을 내기 어렵다. 10월29일 참사로 하여 감내하기 힘겨운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태원(梨泰院)은 먼 길을 오가던 이들이 머물렀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배꽃 잎이 눈송이처럼 날리던 마을이었기에 처연(悽然)함을 더한다.예로부터 한강의 물길이 닿아 이태원은 교통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러한 지리적 요건으로 용산 일대는 미군의 주둔지가 되었고, 많은 외국인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여러 나라의 대사관이 자리하면서 다양한 문화가 융합하는 장소가 되었다.핼러윈 축제가 이태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도 이러한 지리적, 문화적 환경이 충족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들이 이태원을 중심으로 교류되고 융합되면서 재창조되었을 것이다.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지구촌 축제', '이태원 그랜드 세일'이 개최되는 공간이 되었던 것도 이태원의 인문지리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왜 이태원에 갔는지를 묻지 말라!" 다양한 문화 교류·융합 재창조된 곳역사적으론 세종 애민정신 드러나'10·29참사' 어찌 특정지역 일인가 역사적으로 보니 이태원은 애민(愛民)의 상징적 장소였다. 세종 8년(1426), 백언(白彦)이 수원부로 어버이를 뵈러 가는 길에 윤봉(尹鳳)은 이태원(利泰院)에서 백언을 위로하였고, 세종께서는 참찬 최윤덕(崔閏德)·병조 판서 이발(李潑)·좌대언 조종생(趙從生) 등을 명하여 한강(漢江)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백언이 부모를 뵈러 가는 것이 어떤 연고인지는 나타나지 않으나 이태원은 세종의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세종 19년(1437), 이태원 등 기민(飢民)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치된 진제장(賑濟場)이 관리 소홀로 잘 운영되지 못하자 책임을 한성부에 맡긴다. 그리고 "만일 구휼에 태만하여 굶어 죽게 하는 일이 있으면,… 예에 의하여 결단(決斷)하고, 속죄(贖罪)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도 나라는 백성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여야 하기에 한치의 소홀함도 허락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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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사람답기 위한 시간 지면기사
마주했던 시간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수 없다.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이지만, 다가올 시간은 이미 마무리 안에 결정되어 있다. 마무리는 새로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그리고 이 새로운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까? 이 질문은 곧장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나의 가정과 삶의 터전,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의 질문이 그것이다. 내 존재에 대한 물음은 삶의 터전과 실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모든 사회생활과 경제 활동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 두 질문은 사실 하나의 물음이다. 실존적으로 또한 공동체적으로 나는 어떻게 살았으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질문은 곧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이 질문은 또한 나와 우리가 마주할 내일을 결정하는 물음이 된다. 그래서 한 시간을 마무리하는 이때, 다가올 시간을 결정하기 위해 이렇게 물어야 한다. 마무리는 새로운 시간 의미를 부여자기 존재 유지 못한다면 '슬픈 삶'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삶을 위한 외적인 조건이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다움의 품위를 지킬 수 없다. 품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니 그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간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헛된 몸부림은 오히려 품위를 잃게 만든다. 그러니 무엇이 사람다움인지, 어떻게 해야 사람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답기 위한 앎을 포기하면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그 앎은 물질적 지식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앎이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맞이하는 시간 앞에서 사람답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모든 삶은 힘에의 의지를 지닌다. 모든 존재는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의지를 지닌다. 그 힘은 남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힘이다. 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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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일본의 정치와 통일교회 지면기사
일본의 연말 정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회)의 문제가 현안이다. 일본 아베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테츠야(山上徹也)는 범행동기를 헌금 문제라고 했다. 20년 전 어머니가 많은 돈을 통일교회에 헌금하였고, 가족이 비참한 운명을 걷게 됐다는 주장이다. 실태조사에 나선 일본변호사협회는 11월29일 피해상담을 분석해 발표했다. 발표대상이 된 309건이 옛 통일교회의 재산적 피해와 관련된 것이었다. 발표된 피해 관련 내용을 보면 5천만엔 미만이 97건, 1억엔 미만 14건, 1억엔 이상 17건 등이었다.현재 일본의 정치권은 통일교회의 책임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옛 통일 교회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률인 '피해 방지 및 구제 법률'이 12월10일 자민당과 입헌민주당 등 여야 합의로 제정되었다. 법률은 마인드컨트롤이나 사기 판매 방법( 感商法)에 의한 기부 등 악의적 기부를 규제하고 있다. 피해 구제를 위해 기부를 취소할 수 있는 범위도 확대하고 있다. 만약 기부한 본인이 취소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 자녀 등에게 일정한 범위에서 취소권을 인정하고 있다. 개인에게 빚을 내거나 집 등을 팔아 헌금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금지행위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1970년대 부터 국제승공연합 옹호유사 가치관 첨병役 자민당과 인연세력확대·선거활동 돕는 관계 형성 한편 문부과학성은 통일교회에 대해 '종교법인법'에 근거한 일종의 조사권을 행사했다. 기시다 총리는 '옴진리교'에 해산명령을 인정한 도쿄고등법원의 '조직성, 악의성, 계속성' 등의 요건에 대한 검토를 밝혔다. 특히 법률에서 해산명령의 요건으로 거론되고 있는 '법령을 위반하여 현저히 공공의 복지를 해친다고 명백히 인정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교회 교단이 2009년 준법을 선언한 이후 어떻게 지켜왔는지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답변과 조사를 통해 해산명령 요건에 해당하면 법원에 해산 청구도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통일교회 신자가 통일교회와 관계를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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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실내 마스크 착용, 시민 선택에 맡겨라 지면기사
실내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할까, 아니면 벗어야 할까. 대전에서 시작된 의무 착용 해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상당수 시민들은 의무 착용에 대해 회의적이다. 세계적 완화 추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렇고 또 실효성을 따져도 계속해서 써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율 의지를 억압하는 획일적 착용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OECD국가 가운데 실내 마스크 착용은 우리와 일본 정도다. 미국과 프랑스, 덴마크, 슬로베니아, 튀르키예(터키), 헝가리, 네덜란드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아예 없다. 나머지 독일과 호주, 이탈리아 등은 의료시설이나 대중교통, 사회복지시설에서만 마스크를 쓸 뿐 실내에선 마스크 없이 생활한다. 심지어 '마스크 나라'로 불리는 일본조차 2m 이상 떨어져 대화가 없는 상황이라면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 최근 다녀온 카자흐스탄 역시 실내 마스크를 벗어 던진 지 오래다.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알마티 항공기 기내는 물론이고 체류 기간 동안 한 곳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강요받지 않았다. 대부분 나라들이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간 반면 우리나라만 유독 실내 마스크를 고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그들이라고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서일까. 보건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단계를 지나 엔데믹(Endemic), 즉 세계적 전염병에서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제는 획일적 방역보다 개인적 위생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대부분 나라 '전염병→풍토병' 인식해외, 일상 돌아가… 우리만 '고집''강제화' 의지 억압 전체주의 발상 이장우 대전시장은 "1월 중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풀겠다"고 했는데 전문가 의견과 실효성을 근거로 한다. 이 시장은 "식당·카페에 들어갈 때만 쓰고, 먹고 마시는 내내 마스크를 벗는다. 앞뒤가 맞지 않다"며 형식적인 방역정책을 꼬집었다. 동의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대전시는 오는 15일까지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 지침을 풀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행정명령을 발동해 해제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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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문법의 붕괴, 공동체의 혼란 지면기사
언어는 다양한 특성을 갖는다. 대전제는 언어의 기호는 소리와 의미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정한 규칙을 갖고 있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는 것이다. 그 규칙은 언어공동체의 일원이라면 구속력을 갖고 있어 한 개인이 마음대로 변경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도 결국 역사적 변화에 따른다.이를 전제로 언어는 역사성으로 고유성을, 사회성으로 정체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말과 글은 고유성은 옅어지고 정체성은 혼란의 시기에 놓여있다. 시대의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자 하는 언어의 속성을 인정하더라도 계층에 따른 언어체계는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특히 이를 부추긴 계층이 정치인들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의도는 한국어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진앙지요 정치인들은 언어체계를 혼란에 빠트리고 문법을 붕괴시킨 장본인이라 하겠다. 정치인들의 언어체계 '여의도 문법''우기면 그럴듯한 말' 세상 어지럽혀젊은 세대 음운·어휘 기존체계 이탈 우리 언어를 시대에 따라 고대국어, 중세어, 현대어로 구분할 수는 있다. 시대에 따른 변화로 구분한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제주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지역적 구분인 방언에 더하여 계층의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 직업으로는 정치인의 언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언어가 존재한다.물론, 이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언어의 역사성에 충실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적 의미의 붕괴를 촉발시켜 같은 언어공동체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여의도의 문법 때문이다. '여의도 문법'이란 '맞는다는 말도, 틀렸다는 말도 아닌 말', '처음은 대단한 듯하지만, 결론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말', '우기면 그럴 듯도 한 말'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니 언어의 체계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정치인들이다.일반적으로 언어체계는 음운, 어휘, 문법으로 구성되는데 여의도의 문법을 통해 음운과 어휘는 같아도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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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괴담 공화국 지면기사
온 나라에 있을 법하지 않은 기이한 일들이 흘러넘친다. 가히 괴담 공화국이라 불러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박사논문을 거의 통째로 표절해도 학위를 준 대학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외부 전문가들이 표절이라고 검증해도 이를 감독해야할 정부 부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의 침묵은 조금도 괴이하지 않게 되었다. 100억원이나 되는 금액의 통장을 위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배가 너무 고파서 라면 하나만 훔쳐도 감옥에 가는 나라에서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 가격을 수 억 대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사해야 할 검찰은 시간만 보내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하다. 사모펀드 사건 하나에 수많은 검찰인력을 동원해 수사하던 일이 어제 같은 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표절 논란'… 한동훈 딸 논문 저작권 문제로 삭제당해'(한국일보 2022년10월16일자)라는 기사가 나도 법무장관은 "입시에 사용된 사실이 전혀 없고 계획도 없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한 지방 대학의 표창장이 위조되었는지를 밝히려 수 십 명의 검찰 인력이 날밤을 새우고, 명확히 확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4년 감옥에 가두던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참으로 괴이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보이는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사진을 유일하게 식별하지 못한 검찰이니 괴이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중 잣대와 정략적 기소가 기본인 집단에게 그런 일 따위가 괴담일리 없다. 사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장삼이사인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언론조차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편파적으로 보도하는 일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이 정도는 평범한 일일 테다. 정치적 능력 무관 특정정당만 지지권력·이익에 따라 논조 바꾸는 언론 158명이 참사를 당했지만 책임져야할 최고층 가운데 누구도 혐의조차 받지 않는다. 그 대신 현장에서 직접 노력한 사람만 비난받고 심지어 구속된다. 그 사이 경찰 지휘권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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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이태원 참사와 국가배상 책임 지면기사
단장지애(斷腸之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그러나 젊은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을 그 어디에 비유하랴. 서둘러 장례의 예를 갖춘 지금. 남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은 온전히 유가족들의 몫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0여 일.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시간은 흘러가고, 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면서,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면서, 누구 하나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책임을 지는 자세에서 시작한다. 대통령에 대한 사과 요구는 국가원수로서 통치책임을 묻는 것이다.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장관의 파면이나 해임 요구에는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이 혼재되어 있다. 기관장과 지휘관에게는 공무원으로서의 법적 책임이 있다. 이태원 참사의 수사 끝이 어디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목되는 정무직과 선출직은 버티고, 현장의 경찰관은 죽음으로 항변하고 있다.대한변협, 민변, 참여연대,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등이 희생자의 유가족을 돕기 위해 나섰다. 법조계나 언론도 국가배상책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와 제5조 그리고 경찰관직무집행법이 논거다. 대법원은 다른 사건에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정부나 일부 공직자들은 국민의 생명에 대한 무한책임 의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20여일 흘렀는데 책임진 사람 없어의무 있지만 정부·공직자 애써 외면英 '힐스버러 참사' 경찰과실로 평결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영국의 힐스버러 참사(Hillsborough disaster)를 생각한다. 1989년 4월 힐스버러 축구장에서 97명이 압사하고, 76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술에 취한 리버풀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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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생각하는 정원'에서 생각하는 한중수교 30년 지면기사
"중국이 잘되어야 모두에게 이익이다." 스탠퍼드대학 선임연구원 스콧 로젤은 '보이지 않는 중국'에서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중국 경계론과는 결이 다른 목소리다. 그는 중국이 부상하면서 따르는 위협보다 중국이 곤경에 처할 때 나타날 위험이 훨씬 크다며 중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한다. 대안으로 스콧 로젤은 미래세대인 중국 농촌 영유아와 어린이에 대한 교육 투자와 보건 향상, 영양 개선을 주장했다.스콧 로젤은 40년 동안 중국 농촌을 연구했기에 중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래서 편향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중국과 밀접하다. 중국이 잔기침만 해도 우리 경제는 몸살하기 마련이다. 사드 경제 보복 당시 한국경제는 휘청댔다. 또 코로나19 이후 3년 가까운 봉쇄조치로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싫든 좋든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우리에겐 여러모로 이익이다. '혐일(嫌日)'을 극복해야 하듯 '혐중(嫌中)' 또한 넘어서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불편해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꾸준히 연결고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中지도자 잇단 방문 '한중 거점지'지난 30년 돌아보고 30년을 내다봐 제주 '생각하는 정원'에서 열린 '한중수교 30주년, 생각하는 정원 30주년'은 민간외교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생각하는 정원'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1992년 개원했다. 이후 15주년을 시작으로 5년 단위로 친교행사를 개최해 왔다. 이번 30주년 행사에는 왕루신(王魯新) 중국 주제주 총영사를 비롯해 문화예술인과 기업인, 관료 등 250여 명이 모여 우의를 다졌다. '농부 외교관'이라는 애칭을 입증하듯 성범영(83) 원장과 가까운 양국 인사들이 중국과 서울에서 제주를 찾은 것이다. 성 원장은 중국 지도층과 인맥이 두텁다. 1995년 11월17일 장쩌민 국가주석 방문이 계기가 됐다. '생각하는 정원'에 감동한 장쩌민은 중국에 돌아간 뒤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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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인구정책, 어떻게 해야하는가? 지면기사
현 정부 들어 '재외동포청', '이민청'의 설립이 화제다. 결국 재외동포청의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정부조직 개편안에 포함되었으나 이민청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다.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전까지는 해외로 나가는 이민이 활발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하여 남미와 유럽, 아시아 각국으로의 이민이 이어졌다. 그 결과 현재 740만여명의 동포들이 어느 나라에선가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는 이주노동자로 출발하여 이주민이 된 경우도 있고, 유학과 취업으로 하여 재외동포가 되었다. 재외동포 가운데는 그들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이주민이 된 경우도 있다. 그들이 바로 해외입양인들이다.한편 1990년대 들어 재한외국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요인의 하나가 농촌 총각의 국제결혼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국 조선족과의 맞선을 통하여 국제결혼이 활성화되었고, 2000년대 들어 베트남 여성들을 필두로 여러 나라의 결혼이민자들과 고용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를 비롯하여 유학생의 수도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2019년 12월 255만여명의 재한 외국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740만 이주민·255만 재한 외국인'재외동포청'·'이민청' 기구 필요인구문제 별개로 설립 논의돼야 그러니 재외동포청도, 이민청도 한국사회에 필요한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인구유입정책이 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나 재외동포 중심의 인구 유입정책이 아니길 바란다. 왜냐하면, 1990년대 중국 동포 자격으로 조선족 여성들이 결혼 이주를 하였으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언어는 통하였으나 의미까지 통하기는 어려웠다. 문자는 같았지만 오랜 문화로 축적된 의미는 다름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살아온 체제가 달랐고, 가치관이 달랐고, 정부 행정의 체계가 다름으로 갈등이 유발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재외동포의 재유입을 논하는 이들은 혈통이 같고, 언어가 통하며, 문화가 같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오판이다. 혈통은 같을지라도 언어소통의 한계도, 문화적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