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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세이노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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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세이노의 역설 지면기사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은 이미 생명이 죽은 삶이다.",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할 때는 피를 토하는 자세로 하라."'세이노(Say No)'라는 필명으로 순 자산 1천억원대 자산가가 쓴 에세이 '세이노의 가르침'이 인기다. 온갖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를 휩쓸었고, 책에서 나온 글귀들은 SNS를 타고 명언처럼 회자되는 중이다.그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굉장히 자극적이다. 앞선 문장들처럼 그는 본인의 생각과 경험담들을 통해 읽는 사람에게 나태한 삶을 살지 말라고 끊임없이 채찍질한다.MZ세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면서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은 '꼰대'가 되는 시대가 됐다. 꼰대는 가르치려 하지 않아야 하고, 20·30세대는 이러한 조언을 듣는 척이라도 하지 않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 된 셈이다.그런데 특이한 건 이 책을 찾는 다수가 MZ세대란 점이다.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가 올해 상반기 20·30대 독서량과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1위를 차지했다. 욜로, 워라밸 등이 유행하는 시대에 세이노의 가르침이 1위 기록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역설'이다.사무실에서 에어팟을 꽂고 일하는 20대 직장인의 모습, 눈치 보지 않고 휴가 쓰는 신입사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이직하는 사회초년생 등 최근 젊은 세대들은 미디어를 타고 희화의 중심 대상이 됐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무한경쟁과 양극화, N포 세대 등 현재 MZ라 불리는 20·30대는 치열함 속에 불안과 희생에 얼룩진 단어로 표현된 것과 상반된다.작가의 필명인 세이노 역시 현재까지 믿는 것들에 "No"라고 말하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세이노 열풍은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자기주장과 권리를 똑바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나태한 것처럼 포장된 청년 세대의 역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 [노트북] 무너진 건 제방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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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무너진 건 제방만이 아니다 지면기사

    조금 안정되나 했던 식탁 물가가 열흘 남짓 쏟아진 폭우로 폭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비 피해가 집중된 충청·경상권은 물론이고 인천·경기지역도 크고 작은 피해를 본 농가가 적지 않은 탓이다. 상추와 호박 등 이미 두 배 가까이 가격이 오른 품목도 있다. 재난은 언제나 경제적 타격을 동반했지만, 올여름 폭우가 끼친 피해가 우리네 밥상에 얼마나 오래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그럼에도 우리 공동체는 어김없이 자원봉사에 나서고 수해 성금을 건네는 등 위기 극복을 위해 합심했다. 위기도 함께하면 넘어설 수 있다는 신뢰에서 비롯된, 대한민국 사회의 오랜 저력이다.도리어 신뢰에 균열을 내는 건 대통령의 발언이 아닌가 싶다. '위기 극복에 돈 쓰려고 긴축 재정을 한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민주시민의 합의로 마련된 세금을 재난 대응에 쓰는 데 반대할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다. 다만 '카르텔'이라는 단어 하나에 새로운 갈등만 형성됐다.이권·부패 카르텔의 대상으로 지목된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 주어지는 '보조금'과, 각종 재해를 복구하고 예방하기 위해 쓰이는 재난 대응 기금은 근거 법령부터 다르다. 국가 재정만큼 엄정하게 사용처가 구분돼야 하는 분야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첫날부터 강조해온 '재정 건전성'이 실현되려면 더욱 그렇다."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의 정치 보조금을 전부 삭감하고, 농작물 피해 농가와 산 붕괴 마을 100% 보전에 투입하라." 이 문장은 현 정부의 기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 합의를 거쳐 확립된 법과 원칙을 자칫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무너진 제방은 튼튼하게 다시 쌓으면 된다. 그러나 신뢰라는 제방은 다시 세우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안 그래도 여기저기 균열이 간 마당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더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해로 무너진 제방을 다시 세우는 게 우선이지만, 복구해야 할 건 제방만이 아니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 [노트북] 제자리걸음 또는 과거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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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제자리걸음 또는 과거로의 회귀 지면기사

    경기도미술관에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 한창이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컬렉션들은 개인의 소장품에서 국민을 위한 소장품이 됐다.이 같은 유물과 미술품들은 뮤지엄에서 보존·관리하며,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전시와 교육 등에 다양하게 활용한다. 소장품이 곧 그 뮤지엄의 경쟁력이자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문화계 관계자들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젓는 일이 있었다. 경기문화재단 7개 뮤지엄의 소장품 구입 예산이 단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 그 소식을 듣고 다시금 허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소장품 구입 예산은 7개 뮤지엄에서 나눠서 사용하고 있다. 쪼개진 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는 소장품에 한계가 있다 보니 필요할 땐 뮤지엄 간 상의를 통해서 가장 필요한 소장품을 사는 데 이 예산을 몰아주는 일종의 '품앗이'가 이뤄져 왔다. 그렇게 근근이 뮤지엄의 존재 가치를 유지해 온 것이다.이전까지 '0원'이었던 소장품 예산이 다시 편성된 것이 2018년이다. 이후로 2020년까지 10억~11억원의 예산이 주어지다 2021년 반토막 났고, 지난해 15억원으로 늘었다가 올해 다시 '0원'으로 돌아갔다. 들쭉날쭉하던 예산 상황이 6년 전으로 회귀한 셈이다. 새삼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한두 해 나온 지적이 아니란 것에 있다. 불과 몇 년 전뿐 아니라 10여 년 전 기사에서도 뮤지엄 소장품 예산 편성에 대한 지적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콘텐츠를 가지고 반복되는 기획을 할 수밖에 없어 관람객의 외면을 받게 될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소장품 구입도 못하는 뮤지엄은 본연의 기능을 잃은 것과 같다'는 뼈아픈 문장들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뮤지엄들을 인정은 하지만, 더 투자하고 키워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판단한 문화계 인사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구민주 문화체육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부 기자

  • [노트북] 태국 방콕에서 배운 선출직 공무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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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태국 방콕에서 배운 선출직 공무원의 자세 지면기사

    태국 방콕의 상징색인 녹색 넥타이를 맨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물었다. "방콕 시장으로 일하면서 중앙정부와의 갈등이나 이견은 없었나요. 혹시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찻찻 싯티판 방콕시장은 말했다. "도시 차원에서도 여러 일이 일어납니다. 도시에서 하는 일들이 사람들의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도시 차원에서 어떤 모범 사례를 구축하면 오히려 더 큰 정부를 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현지시간 지난 6일 찻찻 시장을 만난 김 지사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며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을 가졌고 협력 강화에 이어 국내 정치로 주제를 옮겼다. 김 지사는 자신처럼 여당 소속 단체장이 아닌 찻찻 시장에게 야당 단체장으로서의 고충을 물었고 찻찻 시장이 이같이 답했다. 양극화가 심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무소속'으로 출마, 지지자들을 모았다고 설명하며 "선출직 정부로서 항상 직원들에게 선거로 희망을 줘서 이겼으니,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또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투명하고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고 부연했다.태국의 정치적 구도가 한국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르지만, '도정 또는 시정을 우선해야 하고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양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선출직 공무원이 가져야 할 자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를 돌아보면 이러한 자세를 가진 단체장이 얼마나 될지 암울한 게 현실이다.선거철만 되면 국회의원·단체장 후보들은 '지역'으로 와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또는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며 표를 호소한다. 내년 총선 역시 안 봐도 비디오다. 국회의원들이 후보 때만 지역에 오고 당선되면 국회에만 있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단체장이라고 다를까. 단체장 가운데 '지역봉사'보다는 더 큰 위치로 오르기 위한 성과 내기가 더 중요한 이들이 태반이다. 투표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힘을 주려면 유권자는 물론 한국 정치도 바뀌어야 함을 태국 출장에서 배웠다. 지금까지의 정치를 돌아

  • [노트북] "세닢 주고 집 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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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세닢 주고 집 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 지면기사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달 중국 톈진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도시 간 교류의 중요성을 이 같은 속담에 비유했다. 집을 정할 때는 집 자체보다도 주위 이웃을 더 신중히 가려서 정해야 함을 나타낸 말이다.한·중 관계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으로 냉각기에 접어든 상항에서도 인천시, 톈진시가 함께 한 자리에서는 '시장법칙' '상호이익' '포용적 성장' '대외 개방'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언급됐다. 도시 외교를 지속하고 범위를 더욱 넓혀나가야 한다는 데 두 도시 간 이견은 없었다.유 시장은 오랜 기간 자매결연 관계를 이어온 톈진시 초청을 받아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유 시장의 중국행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세계경제지도자비공식모임(IGWEL) 등 국제적인 행사에서 인천이라는 도시 영향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그러나 이보다도 국가 주권을 놓고 첨예하게 다투는 국가 외교의 한계를 넘어서 도시 외교가 갖는 운신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가 크다. 국가 외교와 비교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 외교가 한·중 관계 개선에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인천시가 도시 외교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한 만큼, 앞으로는 관계를 구축하는 데서 한층 더 진전된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게 과제로 남았다. 각종 교류 활동은 물론, 우수한 정책을 수출하고 중국 자본을 인천에 끌어들이기 위한 투자 유치에서도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의미다. 유 시장은 민선 6기 재임 당시 중국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서기관급 전담 부서를 설치하는 등 대(對)중국 활동에 관심이 컸다. 지역사회가 한층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인천시 도시 외교가 주요한 역할을 하길 바란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 [노트북] 새빛돌봄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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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새빛돌봄에 바란다 지면기사

    지난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수원 세 모녀'가 빚 독촉에 시달려 복지 사각지대에 들어갔을 때도, 수원의 한 30대 여성이 생활고를 비관해 두 아이를 출산 직후 살해하고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발생한 지금도 기자들은 "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바란다"는 여러 기사를 작성했거나 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사건은 되돌릴 수 없기에 앞으로 같은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철저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불행한 건 이 같은 사건 발생 때마다 정부와 국회가 관련 정책과 법률안을 내놓는 건 물론, 기자들도 재발 방지를 바라는 기사를 쏟아내지만 안타깝게도 매우 유사하거나 때로는 더욱 끔찍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수원 세 모녀' 사건을 겪고 기획기사를 준비했던 당시 수많은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은 하나같이 "마을공동체가 유일한 답"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떠한 정책을 시행해도 결국 어디에, 얼마만큼 힘든 가정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파악하기엔 담당 공무원과 지역사회복지 체계로는 역부족이란 의견이다. 결국 수동적인 일부 담당 공무원과 사회복지사들의 활동보다 우리가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가는 동네 이웃들의 '능동적 돌봄'만이 보이지 않는 작은 복지 사각지대까지 찾아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지난해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겪은 수원시가 7월부터 시행하는 '수원새빛돌봄'은 기존 사회복지 체계를 넘어 일반 시민들까지 자발적 돌봄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한 사업이다. 그간 사실상 '무료봉사'에만 기댄 활동이 이뤄져 복지서비스가 더 큰 범위로 뻗어 나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돌봄서비스 제공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처럼 마을공동체의 능동적 활동을 유발하는 사업인 만큼 참여도가 높아질수록 복지 사각지대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김준석 사회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부 기자

  • [노트북] 당연하지 않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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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당연하지 않은 권리 지면기사

    한 달 전 장애인단체는 인천 1호선 부평역의 한 승강장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올해부터 시내버스를 교체할 경우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인천시는 전체 시내버스 210개 노선 중 92개 노선을 저상버스 도입 '예외 노선'으로 정했다.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50여 명의 장애인은 지하철을 타고 인천시청 앞까지 이동했다. 비장애인이라면 인천시청역 5번 출구에서 인천시청 앞까지 6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역사 안의 1대뿐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승강장을 빠져나오는 일도 쉽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30분이 훌쩍 지난 시간이 돼서야 장애인들이 모두 모일 수 있었다.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한 40대 뇌병변 장애인에게 주로 어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장콜'(장애인 콜택시)이었다. 버스를 탈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집 근처 정류장엔 저상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또 버스 기사가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슬로프를 내리지 못해 버스를 타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버스도, 지하철도 이용하지 않는 그는 장콜을 기다리다 약속 장소에 늦는 일이 자주 있다고 익숙한 듯 말했다.며칠 뒤 동구의 한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한 버스 업체는 해당 정류장이 경사로에 있어 저상버스를 운행할 수 없다며 인천시에 예외 노선 신청을 했다. 하지만 정류장에서 확인해보니 다른 버스 업체의 저상버스가 운행 중이었다. 인천시가 저상버스 도입을 꺼리는 업체들의 요구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수용한 것이다.다행히 인천시는 저상버스 도입 예외 노선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인천에 저상버스가 도입된 노선은 전체 시내버스 210개 노선 중 40개 노선에 불과하고, 저상버스 운행 비율이 50%가 넘는 노선은 26개뿐이다. 장애인들에겐 버스, 지하철, 택시를 선택할 권리마저 당연하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100@kyeongin.com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 [노트북] 지역소멸 위기에 뭉치는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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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지역소멸 위기에 뭉치는 마을 주민들 지면기사

    최근 의정부시 흥선마을 소재 '우리동네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우리가치떡' 카페를 방문했다. 이곳은 올해 기업성과 공공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우수 마을기업'에 선정됐다. 마을기업이 어떻게 매출을 올리면서 동시에 지역사회 공헌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무작정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카페 문을 연 순간 펼쳐진 현장은 예상과 달랐다. 나름 '기업'인데 떡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커다란 기계가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치떡'은 어느 곳에서나 있을 법한 카페이자, 동네 방앗간이었다. 직원들은 연천무농약쌀을 직접 반죽하고 빚으면서 떡을 만들었다. 그 순수하고 투박한 모습을 보니 마을기업이란 단어가 비로소 명징하게 다가왔다.우리동네협동조합은 2013년 뉴타운 해제 이후 쇠락해가는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취지로 설립됐다. 그런 간절함이 통한 걸까. 23명으로 시작한 조합원은 현재 133명으로 늘어났다. 코로나19에도 성장세를 지속해 지난해엔 매출 2억원을 넘겼다. 꾸준히 인근 노인정과 사회복지시설에 먹거리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고, 청년과 여성을 대상으로 일자리 채용도 확대하고 있다. 같은 시기 '모두애(愛)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양평군 '증안리약초마을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주민 10여 명이 모여 농촌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새로운 먹거리 사업을 찾은 게 시작이었다. 양평군에서 수확한 쌀을 가공해 에너지바, 쌀라테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현재는 10억원 이상 매출을 내고 있고, 도심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채용하면서 귀농·귀촌을 장려하고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소멸 위기를 막으려는 주민들의 절실함과 간절함이 성공 요인이었다.출구가 보이지 않는 저출생·고령화로 지역 소멸은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지역 소멸을 막고자 뭉쳐 활동하는 게 마을기업의 소명이라면, 그들의 구체적 현실을 기록하는 게 지역 언론 기자의 책무일 것이다. 비록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지라도 마을기업의 성공을 기원한다. /김동한 경제부 기자 dong@kyeongin.com김동한 경제부

  • [노트북] 문학, 진실 그리고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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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문학, 진실 그리고 저널리즘 지면기사

    장장 4시간. 자는 게 지겨워질 때쯤 버스가 멈췄다. 터미널에서 나와 숙소가 있는 항구에 다다르자 그제야 통영에 왔다는 게 실감 났다. 예술의 도시이자 문인들의 고향, 자부심 가득한 슬로건이 과장은 아닌 듯했다. 비탈진 언덕 아래 뻗은 푸른 바다를 보니 공책에 아무 말이나 절로 끄적이게 된다.1년하고도 1개월 전까지였던 '기자 지망생' 시기. 문학보단 비문학을 읽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300쪽짜리 책 한 권을 꼬박 하루를 털어 들여다봐도, 문학은 도무지 언론사 입사 논술에 써먹을 데가 없었다. 반면 비문학은 '가성비'가 좋았다. 주장과 전제, 근거가 분명하게 담겼다. 그렇게 기자를 준비하는 동안 문학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지난 4월 소설 '통영이에요, 지금'의 저자 구효서는 인터뷰 내내 '동양의 나폴리' 통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어느 도시를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글 곳곳에서도 묻어났다. 사랑과 예술 그리고 그리움이 담긴, 통영은 그런 도시였다. 무작정 그곳으로 향해본 이유였다.통영의 대표 문인, 박경리를 추모하는 기념관은 그저 묘소 앞에 펼쳐진 경치가 멋있다는 까닭에서 여행 코스에 담은 곳이었다. 묘소에 가기 전, 전시실을 둘러보다 벽에 붙은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문학은 삶의 진실을 추구합니다'. 뜨끔했다. 사실과 경계가 모호한 허구의 삶을 창작해 진실을 좇는 문학. 이런 문학을 비효율적이라 치부했던 과거 모습, 진실 추구는 오직 저널리즘만의 몫이라고 오만했던 점에서 괜히 민망했다.눈앞의 사실을 전하는 기자는 한 인간의 삶을 지어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소설가도 아니면서 창작의 고통에 사로잡힌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 글은 기사로 완성하지 못했다. '잘못 전하면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니까', '공부를 더 해야지'를 핑계 삼아 고고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척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등지고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웃음이 났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yeongin.com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 [노트북] 안전하게 배달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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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안전하게 배달할 권리 지면기사

    "지금도 생계를 위해 배달을 나가야 하지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오토바이 헬멧을 쓴 배달 기사의 목소리가 기자회견장을 가득 채웠다. 지난달 인천지역 8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계양구 플랫폼 노동자 지원조례 청원 운동본부'는 인천지역 최초로 계양구에서 플랫폼 노동자 지원 조례를 만들겠다는 큰 포부를 밝혔다. 플랫폼 노동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 등 온라인 플랫폼 중개를 통해 일하는 배달·퀵서비스·대리 기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미 경기도와 서울 금천구, 중랑구 등 19개 광역·기초자치단체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 조례가 있는 자치단체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보호장구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계양구 플랫폼 노동자 지원조례 청원 운동본부'가 조례 제정을 추진하면서 계양구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계양구의회가 지난 19일 '인천시 계양구 플랫폼 노동자 지원 조례안'을 243회 제1차 정례회 2차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조례안은 다음달 7일 공포될 예정이다. 조례가 제정된 덕분에 앞으로 계양구 플랫폼 노동자는 계양구에서 법률 상담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교육·보호장구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계양구를 제외하면 인천시와 9개 군·구는 아직 플랫폼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없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인천지역 최초로 지원책이 만들어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앞으로 시 차원에서도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조례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소비가 익숙해진 지금 플랫폼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수진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wed@kyeongin.com이수진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