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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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3단계, 그리고 3차 재난지원금 지면기사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다. 신규 확진자가 세자릿수를 기록한 지 한 달 만에 네자릿수에 올랐다. 확산세가 가라앉기는커녕 껑충 뛰자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검토하고 나섰다. 3단계는 방역당국이 염두에 둔 사회적 거리두기의 가장 높은 단계다. 1주일 새 평균 확진자가 800명에서 1천명을 기록할 때, 2.5단계 상황에서 확진자가 2배 이상 갑자기 늘어날 때 적용할 수 있다. 지금 상황이 1주일가량 이어지면 3단계 격상 요건이 성립된다.3단계 조치에 돌입하면 사실상 일상이 멈춘다. 필수인력 외엔 재택근무가 의무화되고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다. 어린이집도 휴원이 권고된다. 음식점 등 저녁 9시까지 문을 열던 곳들도 운영이 제한된다. 경제도 함께 멈출 수밖에 없다. 경제의 가장 아랫부분에 놓인 골목상권은 더욱 피해가 클 터다. '차라리 짧고 굵게 조치를 강화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게 경제와 방역 모두를 잡는 길 아니겠느냐'란 목소리도 있지만 3단계 조치를 적용하고도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변수다. 고통을 더하고도 혹독한 시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아픔을 배로 만든다.정부는 내년 본예산에 3차 재난지원금 재정을 확보했다. 시기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대유행이 지속되고 방역 조치가 강화되면 곧 3차 재난지원금 지급도 가시화될 것이다. 이르면 이번 주 시기와 지원대상 등이 구체화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선별적으로 지급된 2차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정부와 국회는 본예산에 3차 재난지원금 재정을 편성하며 선별 지급에 무게를 뒀다. 보편적으로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은 골목상권에 잠시나마 활력이 됐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지금보다 몇 배는 고통스럽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될 길 앞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모든 국민에, 그리고 더욱 아픔이 클 골목상권에 작은 희망이나마 절실하다. 재고가 필요하다. /강기정 정치부 차장 kanggj@kyeongin.com강기정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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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끝이 좋아야 다 좋다 지면기사
'끝이 좋아야 다 좋다'라는 문장은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다'라는 문장과 대구를 이루어 상투적으로 쓰이곤 하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남편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가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한다는 내용의 희곡이다. 해피엔딩이라고는 하지만 결과로 가는 과정이 비극적이고 암울해 문제극으로 분류된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끝이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의왕 백운밸리 도시개발사업의 백서가 발간됐다. 개발사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이지만 부동산 침체기인 탓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손을 떼고 민간사가 시행하게 된 사연, 도시공사 설립 과정, 사업 진행 과정 등이 하얗고 두툼한 책 한 권에 담겼다. 백서는 개발규제로 의왕시의 도시개발이 늦었지만 기존 도시들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실패들을 거울삼아 앞선 선진 도시개발 정책을 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수도권 내에서 풍부한 생태자원을 기반으로 한 개발제한구역 조정가능지역을 개발하게 된 것이 의왕시에는 큰 행운인지도 모른다고 했다.백서를 보니 백운밸리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실감 난다. 내부의 갈무리로 백서가 나왔다면 앞으로 외부의 평가가 있을 것이다. 지난 가을에는 의왕도시공사 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고 지금도 외부 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처분 요구사항은 아직 다 이행되지 않았다. 아직 의료복합시설용지 등 미매각 토지 매각과 훼손지복구 사업 등도 남아있다. 사업의 주축인 의왕도시공사는 이 사업을 마무리 지을 리더를 새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말에서는 마무리가 가장 어렵다는 뜻도 찾을 수 있다. 작은 시의 큰 도전으로 시작된 백운밸리 도시개발사업이 좋은 끝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차장 zuk@kyeongin.com민정주 지역사회부(의왕)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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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32살 자치분권 씨의 새 옷 지면기사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씹는 행위는 물론 껌을 판매해서도 안 된다. 껌을 씹다가 적발되면 약 80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판매하다가 적발되면 1억원 또는 징역형에 가까운 형벌에 처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영국에서는 '연어를 수상하게 들고 있으면 불법'이라는 황당한 법이 존재한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다소 황당한 법이지만, 세계 각국에는 한국인의 눈에는 물론, 자국민의 관점에서도 이상한 법이 다수 존재한다.싱가포르의 껌금지법은 1987년 지하철 MRT가 개통되고 지하철 도어센서에 누군가 껌을 붙여놔 제대로 문이 작동하지 않자, 1992년 1월 제정됐다.영국의 연어법은 1986년 불법 연어잡이를 막겠다며 만들어진 법이라고 한다.법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제정되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야 한다.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면 진지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법이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일 것이다.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됐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이 32년간 별다른 개정 없이 운영되면서 커진 지역의 위상에 걸맞은 옷이 아니었다고 주장해 왔다. 지역특성에 맞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권한, 그에 따른 예산이 수반돼야 주민들이 행복한 지방자치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 목소리가 무르익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추진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32살 자치분권의 몸집에 맞는 법인가 고민해야 할 점이 남아있는 듯하다.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결국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운용의 묘를 잘 살리는 일만이 지방자치법 개정 작업이 시대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는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법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공감과 관심 속에서 꾸준히 변화하고 살아있는 법이 되기 위해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해본다. /김성주 정치부 차장 ksj@kyeongin.com김성주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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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남을 향한 지적 한마디에도 공부가 필요 지면기사
지난달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실시한 경기도체육회와 경기도장애인체육회를 대상으로 한 행정사무감사에서 한 도의원이 도체육회 측에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빼앗겼다고 하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요? 우승에 왜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따졌다. 물론 1등만을 추구하는 체육계의 병폐를 지적한 것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공감을 얻었을지는 미지수다.경기도는 체육계에서 '체육 웅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인구 1천300만명이 집중돼 있는 만큼 학생 및 엘리트(전문) 체육 인재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인재들 속에서 경쟁을 통해 '경기도 대표'로서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되고 다른 시·도에 비해 많은 입상자가 배출돼 2018년도까지 17년 동안 종합 1위를 유지하다 지난해 서울에 아쉽게 종합우승 타이틀을 넘겼다.해당 의원은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스포츠 폭력과 성폭력이 체육계에서 무시되고 있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겠으나, 뒤이어 "금·은·동 포상금을 동일하게 주는 것은 어떤가"라고 주장을 했는데, 체육인의 자존심을 밟았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체육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정치를 그만뒀어야 할 수준이다.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작은 운동회에서 질 때면 눈물을 보이곤 한다. 승리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체육을 자신의 업으로 선택한 아이들은 추후 대학 또는 실업팀으로 진출해 '경기도 대표'가 될 수도 있고 나아가 '프로선수',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 만약 행감장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거 손흥민, 세계 최고 배구 여제 김연경을 불러 놓고 "우승을 왜 하냐"고 따질 수 있겠는가.선거 등의 과정을 통해 어렵게 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남들이 고개를 알아서 숙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방의원들의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선 상대하는 피감기관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필요하다. 행정사무감사, 업무보고 등을 통해 송곳 질의를 한다고 해서 자신이 인정받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송수은 문화체육부 차장 sueun2@kyeongin.com송수은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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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국민이 원하는 정치 지면기사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조치 파장이 연말 정국을 집어삼켰다. 법을 다루는 검찰과 법무부가 직무정지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벌이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야를 비롯한 진보와 보수 진영 간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추 장관과 윤 총장의 극한 대립은 결국 누군가 하나 치명상을 입어야 끝날 듯한 상황으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경쟁적으로 서로에게 막말을 쏟아내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식의 극한 대립을 보이며 21대 국회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준 높은 정치를 갈망했던 국민들에게 또다시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수년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는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보면 '반드시 버려야 할 싸움을 가려내고 이것을 현명하게 선택할 때 진정 중요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남과 논쟁하고 대립하고 심지어 싸워야 할 때가 틀림없이 있다.이를 두고 저자는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놓인 분노와 불신의 벽을 더욱 높아지게 할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 속에서 티끌만큼 작은 진실이라도 찾아내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지난 11월 3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인은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산과 인종차별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에서 현재의 미국 사회 내 존재하는 분열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문재인 대통령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국민의 단합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서로 비난에만 몰두하는 사이에 위기는 더욱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 '분열의 정치'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정치권은 위기 상황에 처한 국민과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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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이제 보여주세요, 김보라 시장님이 약속한 '혁신' 지면기사
'갈 길은 멀고 마음은 바쁘다'.이 말은 19만 안성시민을 대표해 시정을 이끌고 있는 김보라 시장이 현재 느끼고 있는 심정일 것이라 생각된다.김 시장은 지난 4월 치러진 안성시장 재선거 당시 지역발전을 위해 '혁신'을 기치로 내걸어 인근 지자체에 비해 더딘 지역발전 속도에 답답함과 염증을 느낀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후 김 시장은 취임과 함께 시민들과 약속한 공약 실천을 위해 '광폭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행보에도 김 시장이 당초 계획한 속도만큼 공약들이 진척되지 않아 스스로 답답한 심경일 것이다.김 시장이 내건 7대 대표 공약 중 이미 공약이 완료된 '코로나19 극복 500억원 규모 추경안 시행'을 제외한 나머지 공약들이 사실상 연내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 클러스터 편입추진과 버스 준공영제 도입, 무료 와이파이망 구축, 공도시민청 건립, 도시재생사업 추진, 호수관광 벨트화 추진 등의 공약은 상위 기관들과 협조 또는 타당성 용역 결과가 도출돼야 추진이 가능하기에 추진 속도가 생각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김 시장 취임 6개월이 지난 현재,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김 시장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하자면 재선거이기에 준비 기간 없이 곧바로 임기에 돌입했고, 코로나19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수해 피해 등 내우외환에 시달린 지역 실정을 수습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언제나 난세에 영웅을 원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만큼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한 시장의 몸부림은 숙명이다. 지금까지는 다소 부족했지만 이 기간을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안성'을 만들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고 믿고 싶다. 현명한 19만 시민들이 선택한 인물이기에.이제는 보여줘야 한다. 김 시장이 시민들과 약속한 '혁신'이 무엇인지를. /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muk@kyeongin.com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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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아라뱃길 기능전환 논의, 지금부터가 시작 지면기사
경인아라뱃길 공론화위원회가 표결을 거쳐 물류를 축소하고 레저를 강화하는 아라뱃길 기능재정립 '최적 대안'을 선정했다. 엄밀히 얘기하면 공론화위는 투표결과를 발표했을 뿐, 아라뱃길 기능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정해진 게 아니다. 공론화위가 투표결과를 토대로 정부권고안을 확정하는 절차가 남았고, 정부는 다시 그 권고안을 종합해 아라뱃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특집기획 '아라뱃길 새길찾기 대작전'을 준비하며 만난 취재원들은 공론화위를 마냥 신뢰하진 않았다. 첨예한 사안에 대한 논의 시간이 부족했고, 산출 수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라뱃길을 둘러싼 세부 현안들은 애초 공론화위 연구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또 한 번의 '형식적인 용역'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그러나 공론화위는 갈등요소가 첨예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이상적인 합의 기구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대규모 국책사업의 리스크 방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도 따랐다. 추후 어떤 것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할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은 공론화위의 큰 성과였다.조만간 공론화위가 정부권고안을 확정하고 나면 이 같은 재공론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라뱃길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가고 있지만, 기능 전환을 위해서는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재공론화가 성사될 경우 이번에는 더 많은 정부기관과 도시·관광·문화·레저·해운·물류·디자인·환경·건축 등 더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할 것이다. 아라뱃길 관광레저 활성화의 전초기지인 김포시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인천 서구, 아라뱃길 연계가 지역경제에 직결되는 계양구 등 인접 지자체도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그리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내용을 충분히 인식시킴으로써 진정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음 단계의 아라뱃길 성패는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에 달려있다. 경인아라뱃길의 기능전환 논의는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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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김칫국의 추억 지면기사
나는 김칫국을 잘 먹지 못한다. 김치볶음밥, 김치찌개같이 김치가 들어간 대부분의 음식을 사랑하지만 유독 김칫국만은 손이 가지 않는다.이렇게 된 건 김칫국을 처음 접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그 날은 더운 여름날이었고 점심 급식 에 생소한 국이 눈에 띄었다. 조각난 김치와 콩나물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찌개라고 하기엔 너무 묽고 콩나물국이라기엔 약간 붉었다. 김칫국이었는데, 한 숟갈 뜨자마자 도로 뱉어버렸다. 단단히 상한 듯한 비릿한 맛과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함께 식사하던 친구들 모두 그날 김칫국을 먹지 못했다.생각해보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급식은 맛 없고 부실하기로 유명했다. 한번은 급식에 나온 도토리묵을 먹고 수십 명의 친구 혓바닥이 파래져 양호실이 북새통을 이룬 적도 있다. 어떤 친구는 학교 급식이 부실한 원인을 두고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각 반에 투서를 돌렸다 징계를 받기도 했다. 김칫국 이후 나를 포함해 우리 반 상당수는 도시락으로 급식을 대체했다.최근 성남의 한 놀이학교에서 원아들에게 부실한 급식을 제공해 유치원 급식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엄마에게 보낸 급식 사진은 풍성한 반찬이 가득했는데 실제 급식은 새 모이만큼 적어서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안산 유치원 식중독 사태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유치원 급식 문제를 지적했다.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지치지만, 가장 기자를 지치게 하는 건 교육부, 교육청이 갖는 유치원에 대한 맹신이다. 학교급식법 안에 숨은 '예외조항'을 통해 상당수 유치원이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교육기관' '교육자의 양심'에 따라 각자 상황에 맞춰 법을 따라 줄 것이라며 유치원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15년도 더 된 그 날의 김칫국 탓에 지금도 김칫국은 손도 대지 않는 습관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순 없다. 먹는 일은 '본능'인데, 그것조차 안심할 수 없다면 무슨 낯으로 아이를 볼 것인가./공지영 사회부 차장공지영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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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또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조두순 출소' 지면기사
초등생 납치·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조두순이 다음 달이면 부인이 살고 있는 안산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 다뤄졌을 만큼 극악무도한 사건인데도 처벌은 술을 마셔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12년밖에 받지 않아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다.문제는 재범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보호수용법 제정 또한 조두순의 출소 전까지 마련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등 범죄심리 전문가들도 보호수용법이 재범을 막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하고, 또 과거 2005년 폐지된 사회보호법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인권침해 및 이중처벌 논란은 제척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인권침해와 이중처벌 등의 이유로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번번이 넘지 못했다. 또 뒤늦게 법안이 마련된다고 해도 소급적용이 어려워 조두순을 보호수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그런데 왜 수년 전부터 조두순의 임박한 출소에 대해 언론 등에서 종종 다뤄졌음에도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조두순의 사회 복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일까.이는 출소 사실보다는 조두순이 출소 후 어디에서 사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남일로만 생각하다 막상 우리 동네로 온다고 하니 실감이 날 테니 말이다.하지만 돌이켜보면 조두순은 안산에서 살 확률이 가장 높았다. 부인의 거주지가 안산이니 불 보듯 뻔한 결과다. 만약 조두순이 지난 7월 안산보호관찰소 심리상담사들과의 면담에서 안산에 살겠다고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시와 경찰, 법무부 등이 그나마 뒤늦게라도 마련한 감시 강화 등의 대책이 만들어졌을까라는 의문이 든다.결국 우리는 미흡한 법으로 조두순을 12년밖에 감옥에 보내지 못했는데 또 다시 미흡한 법으로 조두순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사회로 나오더라도 충분히 제약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셈이다.앞서 소 잃은 뒤 외양간을 고쳐서 술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처벌을 감경받는 것을 막았는데, 또 같은 형국에 빠졌다. 하지만 뒤늦게 외양간을 고쳐봐야 이미 소를 훔친 도둑은 우리 모르게 주변에 머물고 있다. /황준성 지역사회부(안산) 차장 yayajoon@kyeongin.com황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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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인천시청 여자핸드볼 실업팀, 그리고 '현수막' 지면기사
5년 전 일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실업팀이 인천에 있다.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선 한국 여자핸드볼의 산실인 인천시청 팀이다.'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듬해인 2015년 6월 SK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인천시청은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피언 결정전 상대로 만난 서울시청을 꺾고 최정상에 올랐다.1974년 국내 최초의 여자핸드볼 실업팀으로 창단한 인천시청은 진주햄, 제일생명 알리안츠, 효명건설, 벽산건설 등을 거쳐 40여년 만인 2014년 1월 재창단했다. 모기업이 경영난 등으로 팀에서 손을 뗄 때마다 인천시체육회가 구원 투수처럼 등장해 해체 위기에 놓인 팀을 돌보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인천시청의 정규리그 우승 직후 기자는 인천시체육회를 함께 출입하던 지역신문 체육부 동료 기자들에게 축하 현수막을 걸자고 제안했다.수차례 팀이 공중 분해될 위기를 헤치고 마침내 이뤄낸 재창단의 기쁨을 자축이라도 하듯 2년 연속 정상에 오른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였다.또한, 이 팀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10억여원의 혈세를 쓰는 인천시가 정작 시민들에게 우승 소식을 알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그 흔한 현수막 하나 걸지 않은 데 대한 항의의 의미도 있었다. 그렇게 기자단의 축하 현수막은 인천시청 정문 쪽 가로수 길에 번듯하게 내걸렸다.핸드볼 리그의 단골 '챔피언'이던 인천시청은 이후 국가대표로 성장한 주축 선수들이 하나둘 다른 팀으로 옮겨가면서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다 올해, 전 플레잉 코치의 갑질 의혹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인천시청은 급기야 존폐 위기에 놓였다가 어렵사리 팀 정상화를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새 플레잉 코치를 뽑았고, 그동안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참하려던 올겨울 핸드볼 리그에도 참가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최근에는 인천시체육회가 선수단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언젠가 다시 이 팀을 위해 축하 현수막을 내걸 그 날을 기대해 본다./임승재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임승재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