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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은 변하고 있다 지면기사

    1999년 이래 3기째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사에 장기 재임 중인 이시하라 신타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인'이란 작품을 써 일본 국내에선 문필가로도 이름이 났다지만, 우리에겐 그의 이른바 '제3국인' 발언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몇년 전 그는 다음과 같은 망언으로 국내외 분란을 일으켰었다. "많은 제3국인과 외국인의 흉악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날 경우 이들의 소요가 우려된다"고. 그의 말대로라면 자기네 일본 국민만 올바르고 착하며 외국인은 모두 잠재적 흉악범죄자가 된다. 특히 심각한 건 그가 지칭한 제3국인이란 표현이었다. 제3국인이란 2차대전 전후 일본 거주 한국인과 대만인을 경멸조로 속칭해온 말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우리 국민이 크게 격분했음은 물론이다. 그 옛날(1923년 9월 초) 간토(關東) 대지진 때의 광기어린 한국인(당시 조선인) 대학살이 연상돼 새삼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다."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걸핏하면 범죄나 저지르는 작자들, 빨리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 요즘들어 부쩍 외국인, 특히 그들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행위가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한다. 곳곳에서 인종주의적 모멸감과 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우리나라에 웬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인물들이 득시글대게 됐나싶다. 이러다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일삼는 유럽의 '스킨헤드'가 우리 사회에도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특히 근래들어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한층 커지는 건 보이스피싱 같은 외국인 범죄가 증가한데다, 경제위기 속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인식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긴 한다.사실 몇년사이 외국인들의 보이스피싱 금융사기와 같은 지능형 범죄가 크게 늘긴 했다. 2004년 1천660건이던 게 지난해엔 4천536건으로 2.7배나 증가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 외국인 범죄를 빌미로 마치 모든 외국인이 범죄자인양 취급한다면, 이시하라 신타로와 과연 무엇이

  • 용유도의 빈 건물을 보셨나요 지면기사

    용유·무의도. 세계적인 관광지를 꿈꾸는 땅이다. 국제공항과 붙어 있고, 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문 바다와 산을 끼고 있다. 그 때문인지 개발계획들이 수도 없이 제안되고 있다.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페이퍼 컴퍼니 수준의 캠핀스키가 내세운 80조원 투자계획이 아닌가 싶다. 광고중에 '세계제일'이나 '세계최초'가 빠진 적이 없는지라 어지간한 홍보에도 놀라지 않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공항배후도시에, 경제자유구역을 주제로 거액을 투입한다는 발표는 투기바람을 부채질하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다. 때마침 을왕리에 들어선 국내 대기업의 콘도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그러나 세계적 차원의 부동산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지금. 용유도의 큰 길을 지나 옛길로 들어서면 참담한 후유증을 예고하는 흔적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말할 것도 없고, 간판만 내건 음식점들도 수두룩하다. 계획대로라면 철거되고 수용되어야 할 땅에 건물들이 새롭게 들어선 것일까.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첫 번째 대상은 투기꾼이다. 거기에다 하늘도시나 검단 등에서 일차 보상을 받은 주민들이 다시 보상을 받기 위해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철거될 건물신축을 결과적으로 구청 등이 강제했다는 비판도 있다. 구청이 토지거래허가 조건인 건물신축을 강제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법대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고 하자 허물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사실 보상목적의 행위를 막아야할 책임은 행정부에 있다. 그런데도 토지투기를 막겠다고 도입한 허가조건만을 생각하는 경직된 행정 때문에 대지는 늘어나고, 그 위에 빈 건물들만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수도도 없다. 도로는 옛날 그대로다. 철거되었던 해변가 송림에서 대낮에 불법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하지만 제재하는 공무원은 없다. 그러나 셈이 빠르다는 투기꾼들도 부동산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캠핀스키를 투기꾼으로 낙인찍는 현지의 분위기 뒤에는 인천시의 계획을 믿고, 건물신축에 과잉 투자한 돈을 건질 수 없다는 절박감도 있다. 보상이 임박했다는 소식은 이제 낭설이 되어 가

  • 하나된 힘 지면기사

    북미관계와 한미 FTA. 미대통령 당선인인 오바마와 민주당을 상대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한국 경제호의 침몰위기를 졸업하는 일은 국제공조와 신뢰가 해법이지만, '북미관계와 한미 FTA'의 당사자는 한국으로, 딜레마에 빠지면 그 피해의 대상은 국민이 된다.그래서 국민과 야당의 협조, 즉 통일된 의견이 절대적이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해법을 달리하는 집단이 많을수록 잃어버린 날들이 더 늘어나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다른 시선이 화(禍)가 돼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국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변화 향방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오바마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켜내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양보해서는 안된다"고 했다가 "악의 축 지도자와도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6자회담속에서 북미양자간 회담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최종입장은 정리하지 않은 듯 하지만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직접 대화와 포괄적 협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 취임후 미국측 정책이 정리되면 '6자회담협의 틀에서의 핵문제 해결'과 '선 변화'를 북한정책의 기조로 하고 있는 우리와 충돌여지가 충분하다.한미 FTA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오바마는 불공정협정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 중심에는 우리의 수출주력 품목인 자동차가 자리해 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간 자동차 교역의 불균형을 들어 한미 FTA를 비판해 왔다. 보호주의 장벽 강화를 예측 할 수 있다.더욱이 미의회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보호무역 성향이 강하다. 세계화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이지만 미국 자동차산업이 지난 3분기 25억4천만달러 손실을 보는 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의 미국의 결정은 자국의 이익일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선 당연한 절차일 것이다.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미국발 불리한 여건을 우리 쪽으로 돌린다는 것은 힘에 부칠 수 있다. 문제는 현 상황을 유지하며 내일을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흩어진 여론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붉

  • 은행에 매를 들어야 지면기사

    한때 미국의 생명보험은 피보험자가 보험가입 후 12개월 또는 24개월 이내에 자살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했었다. 그런데 보험가입자들의 자살률이 가입 직후 13개월과 25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최고치를 기록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보험가입자들이 제도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보험회사에 손해를 끼쳤던 것이다. 이후 법 또는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사익(私益)을 추구하거나 혹은 자기책임을 소홀히 하는 행동을 포괄하는 행위일체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 부르기 시작했다.이 생경한 용어가 우리 사회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였다. 직접적 원인은 대외결제용 외환의 턱없는 부족에서 비롯됐으나 대마불사의 신화에 도취한 재벌들의 무분별한 차입경영이 단초를 제공했으며 배후에는 은행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은행들은 해외에서 단기의 저리자금을 융통, 높은 금리로 재벌기업들에 몰아주는 수법으로 초과이윤을 누렸던 것이다.미스매칭에 대한 우려가 점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심지어 만기 3일짜리 초단기 외채까지 마구잡이로 끌어들였다. 은행들은 외국투자자들의 '셀 코리아'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경상수지 적자누적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IMF 관리체제로 전환과 함께 비롯된 살인적인 고환율과 고금리, 주가 대폭락은 수만 개의 중소기업과 30대 재벌 3분의 1이 파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벌들에 뒷돈을 대다 덜미가 잡힌 서울은행·제일은행·외환은행·조흥은행 등 간판급 시중은행들은 줄줄이 헐값에 매각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상장기업 대부분이 외국자본의 수중에 떨어졌다. 가까스로 사경(死境)을 넘긴 재벌들은 윤리경영을, 은행들은 도덕적 해이의 근절을 국민들에 약속했다.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무분별한 차입경영과 외환부족으로 혼쭐났던 기억 탓에 상장기업들의 부채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지고 외환보유고가 2천400억 달러에 이르는 등 지표상으로는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리 편치 못하

  • 새는 동이 땜질이라도 지면기사

    물이 새는 동이는 먼저 새는 구멍을 찾아내 땜질을 해본다. 그래도 여의치 않을 땐 아예 깨트려버리고 새 것을 장만한다. 하지만 아무리 줄줄 새도 손 쓸 엄두도 안낸 채, 그저 내버려두다시피 하는 게 있다. 심지어 새는 것을 남이 알새라 쉬쉬하며 감추기도 한다. 날이 갈수록 엄청나게 새나가고 있는 국민의 피같은 세금이 꼭 그 타령이다.'물먹는 하마'라고 했던가. 물 대신 한도 끝도 없이 '세금만 먹어대는 하마'라면, 가장 먼저 수많은 공기업들을 떠올리게 된다. 거의 예외없이 적자를 내와 엄청난 정부지원금을 펑펑 받아 쓰면서도 항상 잔칫집마냥 흥청대는 곳, 그래서 '신의 직장'이니 '황금 밥통'이니 비아냥을 받는 곳들이다. 부채가 자그마치 40조원에 달하는데도 최근 3년간 임직원 복지후생비로 710억원이나 지출한 대한주택공사, 절실히 필요한 중소기업 수출지원비 등은 마구 깎아내리면서도 4년간 임직원 성과급으로 무려 400억원이나 써댄 코트라가 있다. 그런가 하면 3년간 1조원대의 누적 적자금을 기록한 코레일은 4년간 6천25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이밖에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이 찰만큼 숱한 공기업들이 적자행진을 하면서도 흥청대온 게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좀처럼 개선이 안되고 있다. 기껏해야 솜방망이 처벌에 감독 또한 제대로 못 이뤄지고 있다. 그 사이 천문학적 액수의 지원금만 쏟아부어왔고, 그게 모두 국민 혈세로 충당돼 왔다.지방자치단체들 또한 '세금먹는 하마'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저런 사업을 벌인다면서 걸핏하면 이중 삼중으로 용역계약을 남발, 예산을 낭비한다. 게다가 경쟁적으로 수천억원씩 들여가며 호화청사 짓기에 바쁘다. 심지어 어느 한 시에선 겨우 700여명의 공무원들이 근무할 청사를, 공무원 1만여명이 넘는 서울시청보다도 940억원이나 더 많은 3천200여억원을 들여 새로 짓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2000년 이후 신축했거나 현재 짓고있는 지자체 청사는 모두 40군데로, 사업비가 무려 2조6천여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40곳의 재정자립도가 평균 31.7%에 불과

  • 한국기술유출방지법을 배우는 일본 지면기사

    한국의 법률을 배우자. 제3세계가 아니라 선진국 일본이 내세운 구호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의 한 법률을 연구하고 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 법률은 2년 전에 일본보다 앞서 제정되었다. 그동안 다른 법률들은 그 내용과 형식에 차이가 있을 뿐 일본의 법률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이 사실이다. 외형적으로는 대륙법계라는 이름으로 일본 법률을 참고하는 현실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경제·산업·문화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거나 일정 주기를 두고 뒤쫓다보니 일본의 법률을 참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런데도 법률과 제도에 관한 한 앞서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이 우리 법률에 대해 주의 깊게 연구하고 있다. IMF 이후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도산하고, 실직한 연구자나 임직원들이 중국 등에 취업하면서 기술유출이 발생하였다. 일부 외국기업에서는 핵심 기술자를 빼돌리기도 했다. 자동차 등에서는 M&A를 통해 영업비밀과 핵심기술을 통째로 훔쳐가기도 했다. 주요 퇴직자나 실직한 연구자들을 경쟁국가에서 모셔가기도 한다. 한국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버림받고, 해고된 이들이 이를 갈며 한국과 맞선 경쟁국가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법률을 만들기 전에는 이를 막을 근거도 없었고, 그 중요성도 깨닫지 못했다. 한국의 산업기술을 보호할 것이 과연 있는가 하는 시각에서부터 부정경쟁방지나 영업비밀 차원에서 보호하면 된다는 낙관적 시각도 있었다. 자칫 기술에 대한 규제가 기업성장이나 외국자본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시각도 기술유출방지법 제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국가핵심기술이나 산업기술의 유출은 해당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삼성전자와 외국기업의 기술 격차나 포스코에 대한 적대적 M&A가 문제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기술보호 중요성도 강조되었다.그러나 한국이 국가핵심기술과 산업분야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게 되면서 산업기술과 임직원 등에 대한 스카우트 손길은 끊임이 없다. 중국 등과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이기

  • 한글 투자, 선택아닌 필수여야 지면기사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ㄱ'자 모양의 낫을 보면서도 'ㄱ'자를 모르는 형국이니, 무식도 이런 무식이 없다. 너무 비약한 비유겠지만 요즘 우리말의 기본틀이 파괴되는 추세를 보면 몇세대가 흐른 뒤 한글의 표기체계와 언어가 사용하는 그룹별 세대별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고 무식을 탓할 수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음이다. 의사소통도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많은 이들이 극단이라며 크게 나무랄 것은 짐작할 수 있으나, 지금부터 예방하는 등 대책을 준비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한 포털의 조사에서도 심각한 정도가 보인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우리말 사용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40.9%가 '인터넷상의 언어 및 맞춤법 파괴'를 지적했다. 다음이 '은어와 비속어 남발' '소홀해지는 우리말 교육' '맞춤법이 틀려도 용인해 주는 분위기'순이다. '일상생활에서 맞춤법을 고려하는 편인가'에는 '아니다'를 선택한 학생이 32.2%에 달했으며, 이유로는 '그러는 편이 편해서' '이모티콘, 줄임말 등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다. 한글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알면서도 바르게 사용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한글파괴를 걱정하기보다는 사용하기 편하면 된다는 식의 단순논리로, 바로잡지 않으면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힘들다.'한글은 탄생 기록을 갖고 있는 유일한 문자' '제자원리가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 '문자의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음소 문자' '모음은 언제나 일정한 소리를 갖고 있는 문자' 등의 요소로 인해 한글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세계의 모든 문자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이를 뒷받침한 사건으로 큰 자랑거리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앞에서 예시한 뛰어난 활용성으로 인해 가능한 파생 문자의 부작용 또한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선조들이 물려준 유산 중 으뜸을 물으면 한국인 대부분은 한글을 뽑는데 주저하

  • 자통법 시행 서두르지 말자 지면기사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명심보감에 나오는 어구로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뜻이다. 즉, 물속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야 어종도 풍부하고 개중에는 잉어나 가물치 같은 큰 고기들도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래는 성정(性情)이 곧고 시시비비를 잘 가리는 사람 주변엔 친구들이 꼬이지 않음을 경계한 말이나 사회가 적당히 부패하고 혼탁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오늘날 세계경제가 이만큼 이나마 발전하게 된 것이 양의 탈을 쓴 자본주의 덕분이라고 평가하는 데 이론(異論)을 제기할 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특유의 역동성과 유연성에 기인하고 있는 바, 그 기저에는 자유방임과 경쟁원리가 버티고 있다. 미국정부는 1980년대부터 새로운 경제실험을 했다. 과감한 규제완화와 감세로 대표되는 공급측 경제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고 그 중심에는 금융산업이 자리매김했다. 투자은행들이 첨병역할을 했는데 이로 인해 미국은 또 한 차례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것이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월가의 빅브라더들이 각국의 금융소비자들을 경쟁적으로 금융자본주의 정글로 끌어들인 탓이었다. 투자은행은 현대판 미다스의 손이었다.외환위기 이래 국내경제는 중병에 시달렸다. 수출은 꾸준히 신장되었으나 점차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해갈 뿐만 아니라 내수는 게걸음질을 지속함으로써 성장동력 약화 내지는 사회양극화만 확대재생산되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경제성장 모델을 일본형에서 미국형으로 전환, 동북아 금융허브를 슬로건으로 상업은행의 대형화 유도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했던 것이다. 이 법은 증권업, 선물업, 자산운용업 등의 칸막이 제거를 통해 한국판 빅 브라더를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별도의 은행거래 없이도 금융투자회사에서 직접 송금, 카드대금 결제, 공과금 납부 등을 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주식, 펀드,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일괄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상품의 판매도 허용하고 있어 앞으로는 각양각색의 금융상품들이 대거 선보일 전망이다

  • 국정감사 이제는… 지면기사

    1972년 이른바 10월유신은 국회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버렸다. 우선 직접 국민의 손으로 뽑아야 할 국회의원 3분의 1을 국민 대신 대통령이 마음대로 골라서 지명했다. 거수기 허수아비 의원들을 양산해낸 것이다. 게다가 입법권 예산심의권과 함께 국회의 고유한 3대 권한 중 하나인 국정감사권마저 박탈당했다. 민주국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중심축이어야 할 국회는 그렇게 무너져내렸다.거의 모든 것을 잃고 허수아비로 전락, 심한 말로 세비나 축내던(?) 국회가 제대로 된 기능과 권한, 특히 국정감사권을 되찾기까지엔 장장 1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한국정치의 암흑기라는 유신시대가 종말을 고하고도, 곧 이어 등장한 신군부의 독재정치를 한 차례 더 겪어야 했던 것이다.하지만 그마저도 국회의 노력으로 회복했다기보다는, 오로지 국민의 힘과 투쟁에 의해서였다. 1987년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났던 6월 민주항쟁 승리의 열매였던 것이다. 어렵사리 되살린 국정감사(이하 국감)는 그러나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만을 보여주진 못해왔다. 주요 정책의 방향과 성과에 대한 분석 평가를 통해 공론의 장에서 개선 논의가 이뤄지게 하는 등의 순기능보다는, 여야의 정치 선전장 내지는 폭로전에 육탄전까지 벌이는 저질 정치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일부 부처 감사에선 서로 상대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도덕성과 비리의혹 등을 앞세워 드잡이로 지새우곤 했다. 그러다 급기야 피켓이 날고 격렬한 몸싸움까지 벌였던 일을 국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긴 세월 항쟁 끝에 기껏 국민들이 힘들게 되찾아준 고유 권한을 국회는 그렇게 스스로 저버려왔던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노력과 힘이 아닌 남의 힘(국민의 힘)으로 되찾다 보니, 그 진정한 가치를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며칠 있으면 또 국감이 시작된다. 18대 국회 첫 국감이자 10년 만의 정권교체 후 처음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이번 역시 소모적 신경전 폭로성 한탕주의 등 구태가 재연될 조짐이 벌써부터 보이는 것 같아 우려 또한 크다.우선 증인채택

  • 자식과 로스쿨 지면기사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강남의 로스쿨 학원에 들어섰다. 궁금했다.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목적으로 입학하려고 하는가. 정말 우리대학에 올 생각은 있는가. 지난 3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로스쿨 설립과 준비가 끝났다. 이제 신입생을 선발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로스쿨 입시가 법대나 관련 수험생들의 과제가 된 것이다. 언제 시험이 실시되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미 시험 대상자도 9천600명으로 정해져 있다. 우선 수험생의 주소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무리하게 주소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명색이 로스쿨이다. 그리고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시작부터 정당치 않은 방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러던 중에 생각해 낸 것이 로스쿨 학원 방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아들의 입시 때문에 학원에 간 적도 없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물론 학교 운영위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식과 무관한 학교였다. 아들이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졸업하던 날. 처음으로 학교를 방문했다. 존경하던 학교 이사장님을 만났다. 자네 아들이 다니는지 몰랐다면서. 섭섭해 했다. 그러나 어쩌랴. 되돌아보았다. 내가 하는 교육방식이 옳은가. 눈 질끈 감고 수시 추천이라도 부탁할 것을 그랬나. 마음이 흔들렸다. 아내 또한 왜 이런저런 소문을 못 듣겠는가. 추천장 하나 못 받아 오는 부모에 대해. 갈등이 심했다. 그러나 상장을 만들어 대학에 갔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자체가 큰 행복이라고.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말한다. '학교는 없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시골의 동창들과 대학을 간 사람이 열명도 안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제발 배부른 소리 좀 그만해라. 열심히 좀 살아라. 거침없이 대꾸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 그만하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교는 학교다. 믿어야 한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과는 우려한 대로 끝났다. 주위의 눈길이 편치 않았다. 고상한 척 하더니. 맞는 말이다. 1년 후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