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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성단] 직업

    [참성단] 직업 지면기사

    시대마다 선망하는 직업이 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시절이 하수상했던 만큼 공직자가 되면 출세로 여겼다. 1955년에는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이 개봉됐는데 한국영화 도약의 계기가 됐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배우전문학원 경영자와 극장 간판화가가 돈을 벌었다. 1960년대에는 가발 수출 붐으로 가발기술자가, 1970년대는 중동 건설기술자가 외화벌이에 나섰다. 1980년대는 은행원과 증권회사 직원, 1990년대는 인터넷 혁명으로 웹마스터, 프로그래머가 각광받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안정적인 의사·변호사·교사·공무원·외국계 회사원이 손꼽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연예인, 크리에이터부터 뇌과학자, 로봇 연구원 등 직업 선택의 폭이 더욱 커졌다.잡코리아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입사한 회사에서 1년도 못 채우고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 퇴사 이유를 보니 역시 연봉과 워라밸이다. 특히 Z세대(1995~2003년생)는 직장에서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직급을 높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더 좋은 조건이 있다면,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된다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다. 저연차 공무원들의 '탈공 러시'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5년 미만 공무원의 조기 퇴직자는 2022년 1만3천321명으로 2019년(6천663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낮은 보수와 경직된 조직문화, 과도한 스트레스로 구직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올해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21.8대 1로 32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한 배경이다.자격증 취득 열기가 대단하다. 올해 전문직 자격증 응시율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공인노무사는 1만2천662명이 신청해 2018년(4천744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감정평가사도 6천746명이 지원해 4배 뛰었다. 사무직이 아닌 현장형 자격증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고되고 험한 일은 꺼릴 것만 같은 MZ의 반전이다. 지게차운전기능사, 도배기능사, 장례지도사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분다.직업은 시대의 거울이다. 물가는 미친 듯이 뛰고

  • [참성단] 수상한 국제정세와 한반도

    [참성단] 수상한 국제정세와 한반도 지면기사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숙명이다. 일본이 환태평양 조산대인 '불의 고리' 위에 있듯이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역사의 조산대' 위에 있다. 일본에 지진이 잦았던 만큼, 한반도에선 국제전쟁이 잦았다.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래 현재까지 100여년 근현대사 역시 왕조시대처럼 국제정세에 휩쓸린 역사였다. 식민도 독립도 분단도 동란도 국제정세의 형세를 따랐다.한반도를 떠옮길 수 없으니 지금이라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할 도리가 없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국제정세는 시시각각 대한민국에 크고 작은 쓰나미를 보낸다. 최근 몇년 사이 먹거리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었다.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시기가 일치한다. 밀가루, 대두유, 옥수수값이 치솟아 발생한 물가 쓰나미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4천억원 짜리 자동차공장을 1만루블, 14만원에 팔고 철수해야 했다.중국과 반도체 전쟁 중인 미국은 64억 달러 보조금으로 삼성전자의 400억 달러 투자를 못박았다. 반도체로 중국을 누르려는 미국이 안보동맹인 한국의 반도체를 징발하니, 미·중 패권 전쟁으로 K-반도체가 위기에 빠졌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소탕전쟁이 이란과의 전쟁으로 확장되자 호르무즈 해협의 수입·수출선이 불안해졌다. 유가가 뛰고 인천항에 선적을 미룬 수출 차량들이 쌓이기 시작했다.국제정세의 여파가 경제에 국한된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디면 된다. 하지만 다극적 패권이 이합집산하는 국제정세는 경제위기 이상의 변고를 예보한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뿐 아니라 대만 해협에서 해양패권을 다툰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현실론이 됐다. 러시아는 포탄을 구매하려 북한에 정찰위성 기술을 전수하고 식량을 보급한다. 핵무장국 북한은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호칭하며 공식적인 적대국으로 규정했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반도 주변 4강의 형세는 급변한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국제정세는 아닐테다. 뭔가 큰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다.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도 촉·오동맹의 균열로 무너졌고 위나라 패권

  • [참성단] 보따리상

    [참성단] 보따리상 지면기사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보따리상의 원조' 보부상은 조선시대 왕성하게 활동했다. 봇짐장수는 보상(褓商), 등짐장수는 부상(負商)이라 불렸고 이를 합쳐 보부상이다. 보부상은 전국 5일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물화를 유통한 장시(場市) 문화의 주역이었다. '동국문헌비고(1770)'는 전국 1천62곳의 장시가 개설됐다고 기록한다.보부상의 봇짐과 등짐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촉작대(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부상의 등짐은 토기·질그릇부터 생선·콩·소금까지 움직이는 만물상이다. 반면 보상은 봇짐 안에 가볍지만 값비싼 장신구나 금·은 세공품을 넣고 다녔다.1970년대 '현대판 보부상' 보따리상의 짐 보따리도 천지개벽한 세월만큼 변했다. 일본을 오가던 보따리상은 엄마들의 로망 코끼리표(조지루시) 전기밥솥과 소니 워크맨, 의약품을 들여왔다. 특히 게임 콘솔과 소프트웨어가 인기였다. 1990년대 들어서 국내 전자제품과 공산품의 품질이 일본을 따라잡자 더 이상 무겁게 일본 밥솥을 들여올 필요가 없어졌다.1992년 한중수교 이후 등장한 한중 보따리상은 중국에서 참깨와 마늘, 콩, 고춧가루 등 주로 농산물을 실어 날랐다. 반면 한국에서 나갈 때는 마스크팩 등 화장품과 의류, 가전제품을 중국에 반입했다. 한중 보따리상은 2000년대 중후반 경제 무역의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산 공산품이 중국에 알려지는 빠른 창구가 됐고, 카페리 여객선사에는 승객의 30~50%를 차지할 만큼 단골이었다.하지만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한중 카페리 여객 운송도 보따리상도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그 사이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이 국내시장을 장악했다. 3년 7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막혔던 뱃길이 열렸지만 중국 내 소비심리 위축으로 보따리상 수는 크게 줄었다. 선사에서 승선권 반값 특가를 내놔도 소용이 없다. 최근에는 보따리상 비율이 10% 이하까지 떨어졌다.설상가상 중국세관의 통관 규제도 심해졌다. 1인당 50㎏이었던 면세 한도가 5㎏으로 대폭 줄고 압수까지 당하니 빈손 보따리상은 이제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한중 합작 평택카페리의 중국 지분 쏠림도

  • [참성단] 나폴레옹의 하녀와 총선 공약

    [참성단] 나폴레옹의 하녀와 총선 공약 지면기사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에 나파륜(拿破崙)이라는 한자식 이름으로 등장할 정도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세계적 인물이다. 헤겔은 나폴레옹을 가리켜 '백마를 탄 시민정신'이라 찬양했고, 프랑스 초대 총리였던 탈레랑페리고르는 "여러 세대 동안 살았던 인간 중 가장 놀라운 인물"이라 평했다. 프랑스 변두리 섬에서 태어나 황제에 오르고, 유럽과 세계의 질서를 바꾼 그는 괴테·베토벤·스탕달·플로베르·톨스토이 등 수많은 작가·예술인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거나 작품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에 관한 많은 일화도 전하는데, 그중 네잎클로버의 유래도 유명하다. 전투를 지휘하던 도중 발밑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여 허리를 굽혀 따는 순간 바로 위로 총탄이 지나가 목숨을 건지게 되어 그때부터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됐다.그런데 이런 위대한 인물도 하녀가 보기에는 참으로 평범한 보통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부부싸움하고, 욕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늦잠도 자는 그저 그런 사람인데 어째서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존경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새롭게 출현한 종교의 지도자를 '후퇴와 귀환의 법칙'으로 설명한 바 있다. 아무리 뛰어난 영적 능력을 가졌어도 같은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기에 영적 지도자나 영웅은 일단 고향을 떠났다가 성공을 거두고 유명한 인물이 된 다음, 다시 고향에 돌아와 전도하거나 뜻을 펴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이를 '예언자의 딜레마'라고도 한다.'야대여소'로 끝난 이번 총선에서도 후보자들에 대한 잡음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아 대중들에게 미지라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예전의 정치인이나 셀럽들과 달리 요즘의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은 발언과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공개되는 상황이다. 예전 같은 적당한 거리가 없이 셀럽들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어 유권자나 대중들은 이들을 '나폴레옹의 하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번에 당선된 선량(選良)들은 국민들이 '나폴레옹의 하녀'가 되지 않도록 스스

  • [참성단] 민주주의의 위기

    [참성단] 민주주의의 위기 지면기사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민주당의 앨 고어를 이기고 당선됐다. 하지만 플로리다주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놓고 큰 혼란에 빠진다. 25명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무효표가 쏟아졌는데, 의도적으로 공화당에 유리하게 도안된 투표용지 탓이 분명해 보였다. 플로리다 주법원은 재개표를 결정했고, 결과가 바뀌면 고어가 전체 선거인단 수를 역전해 대통령 당선자가 바뀔 판이었다.결국 연방대법원이 재개표 중단 결정으로 부시의 당선이 확정됐다. 미국내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반발했고, 밖에서는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고어와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수용했다. 공화계 대법관들이 다수인 연방대법원의 판단은 정파적이었지만, 미국식 민주주의의 전통과 규범에 복종한 것이다.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민주주의 역시 무수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규범으로 굴러가는 제도이다. 만일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자 의회 점령을 선동한 트럼프가 앨 고어 처지였다면 미국은 정치적 내전으로 두 쪽이 났을지 모른다. "트럼프의 규범 파괴는 미국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대통령의 행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 탄압 등 예전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던 행동들이 정치인의 전술적 공구함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들은 트럼프를 걸러내지 못하는 미국 민주주의를 걱정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켜주었던 기본 규범"의 회복을 촉구한다. "극단주의자나 선동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때 기성 정치인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화"했던 규범이라는데, 대중의 집단적 각성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22대 총선이 끝났다. 대통령과 여당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 심판에 승복하고, 압승한 제1야당 대표는 민의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민주주의 규범 밖에 있는 인물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근본 없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 탓이다. 트럼프 같은 규범 파괴자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민주주의 제도의 타락이 트럼프

  • [참성단] SK고택(古宅)

    [참성단] SK고택(古宅) 지면기사

    닭표 안감과 봉황새 이불감을 아시나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에서 불타고 흩어진 부품을 모아 고물 직기(織機)를 조립해서 생산한 제품들이다. 1954년 닭표 안감은 루스터(Rooster·수탉)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했는데 빨아도 줄지 않는 고품질 인조견은 단숨에 동대문시장을 평정했다. 이어 1958년 5월 출시한 봉황새 이불감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당시 신부들의 필수 혼수품으로 10년 넘게 베스트셀러였다. 1962년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 인견을 국내 최초로 수출하기도 했다. 기름때 묻혀가며 기계를 수리하는 최종건 창업회장의 열정과 단호한 결단력, 품질 제일주의로 직물업계 최강자가 됐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의 성공 스토리다.1953년 4월 8일 창립한 SK그룹이 71주년을 맞아 SK고택(古宅)을 공개했다.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이 태어나 40년을 보낸 생가를 복원해 오는 15일부터 시민에게 개방한다. 두 회장의 부친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는 1921년 수원 평동에 터를 잡았다. 'ㄱ'자 구조의 수원식 한옥에서 4남4녀 8남매를 키웠다. 고택은 1천111㎡(약 336평) 대지에 한옥기념관(75㎡)과 전시관(94㎡)으로 구성됐다. 제사를 모시던 대청마루와 안방에는 다리미, 재봉틀, 자개상 등 가족들이 실제 사용하던 물건이 놓였다. 손주들의 선물을 보관하던 다락, 손때 묻은 책이 있는 공부방도 되살렸다.한옥 처마에는 학유당(學楡堂) 현판이 붙었다. 최학배 공의 학(學)자와 느릅나무 유(楡)에서 따왔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고향 산시성의 느릅나무 두 그루를 낙양으로 옮겨 심고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는 유래와 같이 '창업자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최태원 회장의 모친 고(故) 박계희 여사의 필체를 재현했다.SK그룹의 기업정신은 수원에서 태동했다. SK일가의 본관이 수원(수성 최씨)이니 수원사랑은 각별하다. 선경도서관, 수원SK아트리움, SK청솔노인복지관 등 곳곳에 나눔과 상생이 스며있다. "기업은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 [참성단] 원로 이길여 총장의 편지

    [참성단] 원로 이길여 총장의 편지 지면기사

    춘추시대의 패권을 다투던 제나라 환공이 고죽족을 정벌하고 돌아오던 중 길을 잃자 관중이 늙은 말을 풀어놓았다. 전군이 뒤를 따르니 이윽고 큰 길을 찾았다.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 고사의 유래다. 군대가 길을 잃으면 말을 풀어놓듯이, 사회와 나라가 길을 잃으면 원로에게 지혜를 구한다.로마의 원로원(senatus)은 건국 초기 왕에게 조언하던 부족 장로들의 모임에서 기원했다. 현대에선 양원제 국가의 상원이 명맥을 잇는다. 존 매케인은 자신의 지지자가 대선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를 "아랍인"이라 비난하자 "그는 훌륭한 시민"이라고 면박을 주었다. 정치적 금도(襟度)의 본보기를 남긴 상원의원 매케인은 고인이 됐지만 미국 정치가 미로에 빠질 때마다 길잡이로 소환될 것이다.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이 지난 8일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를 호소하는 편지를 대학 홈페이지에 게시하자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이 총장은 편지에서 "긴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며 "피난지 부산 전시연합대학에 전국의 의대생들이 모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이 공부하던 남학생들은 학도병으로 나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며 "나는 그들에게 빚이 있고, 그들 몫까지 다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지금 전쟁이 터져도 다르지 않을 테다. 피난지에 전시연합대학을 세워 교수들은 강의하고 학생들은 공부할 테고, 그래야만 한다. 올해 92세인 이 총장은 의업(醫業) 외길에 매진해 온 원로다. 가천대와 가천대의대는 환자를 위해 청진기를 가슴으로 데우던 의사 이길여의 초심이 평생 무르익어 솟아난 '가천(嘉泉)', 아름다운 샘이다. 의대생을 향해 "강의실로 돌아오라"는 원로 의사 이 총장의 호소가 묵직한 이유는 일가를 이룬 인생의 무게 때문이다.이 총장의 호소에도 의대생들은 수업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집단 유급 사태가 목전이다. 의사단체들이 이 총장의 호소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와 전쟁을 해도 의대생들은 강의실로 보내야 어른이고 의사답다. 원로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면 업계의 권위와 대의도

  • [참성단] 전등사 솔로 탈출

    [참성단] 전등사 솔로 탈출 지면기사

    결혼을 기피하는 시대에 연애 리얼리티 콘텐츠는 화제성을 낳으며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의 결혼은 시큰둥해도 타인의 연애에는 몰입한다. 사랑의스튜디오(1994.10~2001.11)부터 짝(2011.3~2014.2), 나는 솔로(2021.7~ )까지 수많은 콘셉트가 쏟아진다. 헤어진 연인들이 모여 새 연애 상대를 찾거나 골프를 치면서 데이트를 즐긴다. 돌싱의 연애를 관찰하고 동성간 매칭을 다루기도 한다. 지상파, 종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유튜브 등에서 '썸' 타는 프로그램들이 간판이다.연애세포를 깨우는 청춘남녀들의 만남이 천년고찰로 무대를 옮겼다. '나는 솔로'가 아닌 '나는 절로'다. 솔로탈출을 간절히 원하는 30대 스무명이 강화 전등사에 모였다. 결혼기피 세태와 세계 최저 출산율에 불교계가 나서 1박2일 단체미팅을 주선했다. 신선하고 유쾌한 시도다. 남녀 10명씩 총 20명 모집에 337명이나 지원했다. 남자 14.7대 1, 여자 19대 1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MZ세대는 어색한 맞선·소개팅보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선호하고 낯선 경험 자체를 힙(hip)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취향저격이다.저출산·고령화 극복 교육을 받은 뒤 소원지에 각오와 설렘을 담아 대웅전 연등에 매달면서 일정이 시작된다. 자신이 정한 가명으로 참여한다. 사전정보 없는 상태에서 만나기 때문에 선입견도 없다. "고즈넉한 곳에서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야기가 잘 통합니다", "전문 레크리에이션 MC가 진행하는 게임도 하고 수학여행 온 기분입니다" 풍경소리 들리는 천년고찰에서 힐링과 만남을 동시에 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법복을 입고 벚꽃 흐드러진 오솔길을 산책하면 속세는 금세 잊게 된다.불교에서는 인연의 무게를 겁(劫)으로 헤아린다. 겁은 천년에 한 번 떨어지는 물방울이 4방 1유순(약 15㎞)의 바위를 뚫는 시간이다. 부부가 된다는 건 8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사찰 안 청춘남녀는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는 것만으로 2천겁의 인연을 맺었다. 전등사의 '나는 절로'에서

  • [참성단] 낙랑클럽과 '낙랑'의 유전(流轉)

    [참성단] 낙랑클럽과 '낙랑'의 유전(流轉) 지면기사

    언어도 운명이 있고 부침을 겪는다. 어떤 언어는 귀한 대접을 받고, 어떤 언어는 유행어가 되거나 사어가 되며, 어떤 언어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최근 선거 유세 과정에서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된 단어가 있다. '낙랑'이란 말이 그렇다.낙랑(樂浪)은 역사학계의 뜨거운 쟁점이다. 전한 무제가 위만 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운 한사군의 하나가 낙랑인데, 이 낙랑이 한반도 안에 있었는가, 한반도 밖에 있었는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동경제대 교수 세키노 다다시·경성제대 교수 이마니시 류·와세다대 교수 쓰다 소키치 등의 식민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대동강 주변에 있었고, 따라서 한반도는 식민의 역사이며, 정체된 나라였다는 식민사학 이론을 널리 유포했다.그런가 하면 낙랑은 1930년대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문화예술의 산실이기도 했다. 끽다점(喫茶店) '낙랑파라'가 그것이다. '낙랑파라'는 이상·박태원·구본웅 등 예술인들의 아지트였고, 서양화가 길진섭의 전시회가 열리는 등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위치는 현 서울시청 맞은편 플라자 호텔 인근이었다. '낙랑파라'의 주인은 이순석 서울대 미대 교수였다. 이순석 교수는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의 막내동생으로 본래 이름은 이평래다. '낙랑파라'는 '낙랑'이란 단어에 응접실을 의미하는 영어 팔루어(parlour)의 일본식 축약 표현인 '파라'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다.낙랑이 다시 전면에 부상한 것은 해방 직후였다. '낙랑클럽'이 그렇다. '낙랑클럽'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김활란 총장과 시인 모윤숙이 만든 고급 사교클럽이었다. '우리는 점령군이다, 우리의 명령을 따르라'는 요지의 '맥아더 포고문'에서 보듯 미군은 은인이면서도 두려운 존재였고, 당연히 미군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낙랑클럽'은 미군정청 소속 미군 장교들과 교분을 쌓고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신생 대한민국의 외교 채널이었다.'낙랑'이 22대 총선 과정에서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불거졌다. 이처럼 언어도

  • [참성단] 일식(日蝕) 소동

    [참성단] 일식(日蝕) 소동 지면기사

    "임금이 소복을 입고 인정전의 월대위에 나아가 일식을 구(救)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4년 1월 1일의 기록이다. 세종은 새해 첫날부터 구식례(救蝕禮)를 치렀다. 태양이 달에 먹히거나 좀먹힌 현상이 일식(日食/日蝕)이다. 왕을 상징하는 해를 신하를 의미하는 달이 가리니 흉조다. 서둘러 해를 구하는 의식이 구식례인데, 정확한 시간에 의식을 치러야 한다. 일식 시간이 예상보다 일각(15분) 늦자 세종은 천문관리 이천복에게 곤장을 쳤다.현대의 천문학자들이 곤장 맞을 일은 없다. 일식, 월식은 물론 혜성의 출현을 분 단위까지 확정할 수 있는 과학 덕분이다. 우주탐사선 보이저1호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 사진을 전송하고 태양계와 작별한 때가 34년 전인 1990년의 일이다.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대신 구름씨앗을 뿌려 인공강우를 만드는 시대이니, 주기적인 천문현상도 초대형 우주쇼로 수년 전부터 흥행거리가 된다.미국이 난리가 났다. 8일 낮 12시18분(현지시각)부터 2시간40분 동안 발생하는 개기일식을 보려고 수백만명이 나이아가라 폭포 등 일식 명당을 찾아 나섰다. 미 대륙에선 7년 만의 개기일식인데, 넓은 국토 탓에 뉴욕은 99년, 오하이오주는 218년만의 일식이란다. 메이저리그 낮 경기가 밤으로 변경되고, 교도소 재소자들은 "일식을 보게 해달라"고 주정부에 소송을 냈다니 이런 소동이 없다.지구 반대편 미국의 개기일식이니 당연히 우리는 볼 수 없지만, 우리 땅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하기는 쉽지 않다. 1948년 개기일식 같은 금환일식이 가장 최근의 일식 관측이다. 2035, 2041, 2063, 2095년에 개기일식과 금환일식이 번갈아 오는데 남한에선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고 북한에서나 잠시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가 작아 지구-달-태양의 일직선에 걸리기가 그만큼 힘든 탓이다.일식 관측이 힘들 정도로 작은 나라에서 일식 같은 현상이 범람한다. 환자를 뒷전에 두고 정부와 의사가 싸우고, 총선판에선 택도 없는 후보들이 뻔뻔하게 국민의 선택을 요구한다. 이권이 명분을 잡아먹고 권력이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