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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논단]위선을 넘어 성찰로

    [월요논단]위선을 넘어 성찰로 지면기사

    반성않는 일상 우리사회 퍼져 있어5·18 망언·한유총 사태·사법농단불의 용납하면 되풀이 하게 만들어아프지만 '치욕·모순' 성찰하는 일우리를 충만함·행복으로 이끌어18세기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세계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유럽이 세계 문명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과학기술 혁명의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는 그야말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그 이전의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모두는 17세기 이래 유럽이 이룩한 근대의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이 근대 혁명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함으로써 유럽 밖에서는 유일하게 그 문화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유럽의 죄악조차 답습했다. 이 모든 역사의 격동을 겪어낸 것이 우리의 지난 100년이었다. 그 야만과 폭력의 시간을 버티고 견디면서 그럼에도 인륜과 자주를 갈망했으며 나름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이룩한 시간이 또한 지난 100년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지난 시간은 역사에서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변화와 전환을 경험한 때였다. 그 역사와 그 삶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지금의 삶과 내일의 시간을 위해서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과 전망에 있다. 뼈저린 후회와 자괴감이 들지언정 잘못된 역사를 성찰하는 작업, 직면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길을 위해 차디찬 지성과 열망으로 전망하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빠져들지 모른다.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반성하지 않은 일상이 우리를 옥죄는 현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5·18 광주에서의 학살을 부정하는 망언은 결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반인륜적이며 야만적인 부정을 정략적인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다시금 이런 패륜과 폭력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우리 삶이 왜 지옥 같을까. 이런 야만과 불의를 용납했기에,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벌써

  • [월요논단]다 잘 될 거야

    [월요논단]다 잘 될 거야 지면기사

    고르디우스 매듭 떠오른 북미회담트럼프·김정은, 정해진 시간 쫓겨역사적 경험 반복·불쾌한 사실 전개한반도 평화는 '생존과 삶'의 문제 '노딜'이었지만 비핵화 피할 수 없어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신화 등에 의하면 수레를 묶은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해결한 자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여기까지는 학설도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해결법을 두고는 의견이 다르다. 정설은 알다시피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는 것. 하지만 매듭을 고정하고 있던 못을 뽑아 끈의 실마리를 찾아 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예언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은 예언대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버린 탓에 그의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되었다는 것이다.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회담을 보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단칼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쪽과 복잡한 매듭의 일부라도 풀어내려는 쪽의 대결. 지금까지는 드러난 대로 미국은 일괄타결을, 북한은 단계적 해결방안을 선택하였다.이처럼 엇갈린 방안을 서로 선택한 것은 두 정상이 처해있는 위치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 탄핵위기와 내년 대통령 재선이라는 정치적 난제와 목표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강력한 제재로 주민들의 삶에 다가오는 악영향과 경제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정해진 시간 때문에 쫓긴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북미 간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회담의 결과는 '노딜'이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비핵화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 당장은 정치적 선택에 좌우될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돌이켜보면 이번에도 역사적 경험이 반복되고, 불쾌한 사실들이 전개되었다. 일본은 북미 간 회담의

  • [월요논단]민주주의 역사 부정도 범죄일 수 있다 - 여야 3당의  '5·18 특별법 개정안' 추진에 부쳐

    [월요논단]민주주의 역사 부정도 범죄일 수 있다 - 여야 3당의 '5·18 특별법 개정안' 추진에 부쳐 지면기사

    5·18 혐오표현 법적규제 첫 단추종편·유튜브서 왜곡 발언 쏟아져선동·전파 제한 차원 큰 의미예술·학문·역사진행 보도 등은위법성 인정안해 표현의 자유 고려23일 서울 청계광장에 전국에서 5천명이 모여 '5·18 망언 3인 퇴출'을 외쳤다. 16일 광주 금남로 집회 이후 두 번째였던 이날 집회에서는 5·18 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 등이 촉구됐다.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3당 소속 의원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하는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의 첫 단추가 시작된 것이다. 혐오표현은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하여 차별·혐오하거나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혐오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크든 작든 해악을 끼친다. 그중 구체적인 행위를 촉발할 수 있는 증오선동을 사회적 해악이 가장 큰 혐오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적 기준에서도 증오선동은 금지대상이다.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고려해서 직접적인 선동이나 반복적이고 노골적인 선동을 담고 있는 혐오표현만 처벌 가능하다고 본다. 일부 인터넷커뮤니티, 종합편성채널 등을 무대로 5·18 민주화운동 등을 왜곡·날조하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2013년부터 혐오표현 규제와 형사처벌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제의 만행과 헌정파괴범죄와 같은 반인류 범죄를 부인하고 민주화 운동을 왜곡·날조하거나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여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처벌하자는 법안들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이 법안들은 반인류 범죄의 부정을 처벌하는 역사 부정죄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금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서는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과 연결되고 관련된 사실이 이미 법률적이고 사회적으로 확정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4년 독일 정부가

  • [월요논단]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월요논단]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지면기사

    설 연휴 골목 곳곳에 쌓인 쓰레기세계 '쓰레기 대란' 망가지는 지구폐기물 관리·재활용으로 해결안돼'덜' 만들어내는 정책·실천 필요'4R운동' 힘 합쳐 작은 행동 시작을설 연휴 기간 동안 도심의 골목 곳곳, 건물 사이사이마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휴 막바지에는 쓰레기가 산을 이루며 길 바깥으로 넘쳐났다.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나 또한 그 쓰레기 더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만 해도 명절 선물에서 나온 상자, 스티로폼 등의 포장 쓰레기와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나온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베란다 한쪽에 수북했다. 쓰레기들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지금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많은 걱정이 생긴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다가 강화도로 옮겨 온 지 여섯 해를 맞이하고 있는데,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서울에서보다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분리수거 하는 날 정해진 곳에 분리 배출을 성실하게 하고 나면 마치 환경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쓰레기의 이후 행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시골 살이를 하면서 해당 면사무소에서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라고 지정한 곳에 가보면 분리가 되지 않은 쓰레기부터 큼직한 가구들까지 온갖 폐기물들이 마구잡이로 버려져있다. 심지어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려져 있다. 차마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 하루 종일 차에 싣고 다닌 적도 있다. 쓰레기 배출 하는 곳 이외에도 야산 입구나 인적이 뜸한 곳곳에 누가 버렸는지 모를 온갖 쓰레기 더미들이 몇 달이고 계속 쌓여만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재활용업체에서 필리핀으로 수출한 재활용 쓰레기가 다시 평택항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쓰레기들을 수출할 때에 플라스틱의 원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신고되어 필리핀으로 향했지만 실제로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와 기저귀, 배터리, 전구 등이 가득 섞인 불법 폐기물이었다. 우리나라에 다시 가

  • [월요논단]영화 속 김원봉, 이극로가 반가운 까닭

    [월요논단]영화 속 김원봉, 이극로가 반가운 까닭 지면기사

    조선의용대 대장 출신이었던 '金'친일경찰 노덕술에 치욕 결국 월북베를린대학서 언어학 공부한 '李'국문의식 세워나가는데 기반 제공치열했던 '그들의 이름' 간직해야올해는 3·1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 되는 해다. 영화·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항일투사의 면면에서 나는 그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이런 분들은 우리가 마땅히 끌어안아야 하지 않나, 싶었던 사례가 대중들에게 속속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세부 전공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한 내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조금이나마 식견을 가지게 된 것은 연구대상이 되는 시인·작가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나갔던 덕분이다. 예컨대 저항시인 이육사의 경우를 보자. 조선혁명군정치간부학교 제1기 졸업생인 그는 '연인기'(戀印記)에서 귀국 직전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몇 사람이 모여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같이" 하였는데, 그 중 S에게는 "무엇이나 기념품을 주고 와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그는 "꼭 목숨 이외에 사랑하는 물품"이랄 수 있는 비취인장에 "贈S·一九三三·九·一○·陸史"라고 새겨 선물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여기서 S는 윤세주다. 훗날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부대장으로 활약하던 중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일제 측 조서에 따르면, 교장 김원봉과의 의견 차이로 인해 졸업 후 귀국했다고 되어 있으나, 육사가 취조 받으며 내놓은 답변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일제는 왜 경북 안동에서 체포한 육사를 굳이 중국 북경으로까지 끌고 가서 고문해야만 했을까. 김원봉·윤세주와 절연하기는커녕 물밑에서 연계하여 치열하게 활동한다고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북경감옥에서 육사는 유고시로 '광야'(曠野), '꽃'을 남겼다. 이 두 편의 시는 육사의 죽음 위에서 읽어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1933년 9월 10일 S 등과 가졌던 저녁 모임은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이었다. 1942년 윤세주는 전사하고 말았으니,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던 "내가 바라는 손님"은 결코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육사마저 19

  • [월요논단]새로운 100년의 문화혁명

    [월요논단]새로운 100년의 문화혁명 지면기사

    지난 100년간 엄청난 역사 썼지만불안·갈등은 왜 여전히 존재할까일상의 야만·폭력·불의·부패 고통우리 스스로 걷어내지 못한다면'찬란한 문화적 삶' 전환 불가능100년 전 3월 1일 독립요구의 외침이 전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이 외침은 강압적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조선의 독립을 요구한 데서 출발했지만, 그 뒤에는 보편적인 인간다움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적 통치와 야만에 맞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찾는 강력한 원의가 이 외침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였다. 이후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삶은 어떻게 변했는가? 외적인 폭력과 탄압은 물론, 정신적인 파괴와 전향까지도 강압하던 무단 통치를 거부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민주와 인간성에 대한 요구는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2년 전 또다시 이런 강압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를 요구했던 외침은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 역사에서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현란함을 벗어나 보면 우리 삶의 실제적 상황에 본질적 차이가 없음을 안타깝게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에 비해 삶과 문화가 피폐하고 허무하다면, 왜 그런 것일까. 여전히 내면의 불안과 갈등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헐벗음으로 허덕인다면 우리는 그 100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대한민국은 지난 100년 사이 역사를 새롭게 썼으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전한 불안과 갈등은 왜일까. 왜 삶과 사회에는 여전히 허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일까. 지난 시간 대한민국이 이룩했다는 성공은 어떤 것인가. 삶과 문화에서도 성공한 것일까. 아니라면, 그 반쪽의 성공을 넘어서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지금 이 시간은 우리가 이 질문을 마주하고, 그에 대해 대답하고 실천적 대응을 말해야 할 그 순간이다. 이것은 단순히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기에 제기하는 물음이 아니라, 촛불을 통해 새로움을 요구했음에도 여전한 이 삶의 황폐함을 벗

  • [월요논단]심해어류 증후군과 견리사의

    [월요논단]심해어류 증후군과 견리사의 지면기사

    잇단 폭로·불안정한 경제현실 원인文정부 정책실패서 찾으려는 심리통일·남북문제외 국민들 기대 부족획기적 대안 제시로 미래 선도하는 새로운 장관·자치단체장 내세워야'사케가시라(Trachipterus ishikawae)'. 지진어류 혹은 산갈치로 불리는 심해어의 일종이다. 최근 동해연안에서 200m 심해에서 산다는 산갈치가 발견되자 지진의 징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에서는 지진 직전 해저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변화의 결과라거나 해수온도의 변화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하지만 오리하라(織原義明) 교수팀은 2017년 말 일본지진학회에서 지진과 산갈치는 상관성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1928년부터 2011년까지 심해어와 지진 발생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363건의 사례 중 지진이 발생한 경우는 13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인간이 산갈치 등장을 지진의 징후로 예측하거나 방재에 유용한 정보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어류가 지진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쓸모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해에 대한 조사의 한계로 지진의 전조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해명과 달리 인간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산갈치의 등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해저에 대한 궁금증이나 심리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심해의 어디에선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수사관과 기재부 신재민 사무관의 폭로 그리고 손혜원 국회의원을 둘러싼 논쟁들이 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일파만파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나 권력기관, 그 어디에선가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뜻이다. 경제의 불안정한 현실과 그 논거를 문재인 정부나 정책 실패에서 찾으려는 심리적 요소들도 확산에 가세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촛불정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로와 험난한 경제를 둘러싼 상상력의 증폭이 문재인 정부가 당면할 전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왜 폭로되는 사안들이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확대되고 있는지. 우려하는 국민들이

  • [월요논단]'유시민의 알릴레오'의 등장과 언론의 위상

    [월요논단]'유시민의 알릴레오'의 등장과 언론의 위상 지면기사

    중요 이슈 정리·가짜뉴스 팩트체크언론, 제대로 역할 못한다는점 강조권력감시·공정성등 고려 기능 중요디지털·유튜브 전략 걱정할때 아닌어떻게 신뢰 얻을지에 더 고민해야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자, 미디어권력이 이동했다고 주장한 인터넷언론인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여론형성력은 보수정권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통제되기 시작했고 미디어권력은 다시 보수화된 지상파방송과 신문에 돌아갔다. 지난 대선국면에서는 기존 언론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고 팟캐스트 등 새로운 미디어와 SNS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최근에는 유튜브가 향후 정치권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는 다소 이른 전망이 등장했다. 보수 정치 유튜브 방송의 활성화가 이런 전망에 근거처럼 제시됐다.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정치 유튜브 방송이 출현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월 5일부터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유튜브, 팟캐스트(팟빵 등), 카카오TV, 네이버TV을 통해 방송하기 시작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우리 시대 중요한 이슈를 정리하고 가짜뉴스도 팩트체크하는 방송을 표방한다. 구체적으로 '언론보도가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문재인정부 정책과 행정의 뿌리와 배경, 핵심을 찾아가기 위한 네비게이트' 역할을 자임한다.이 방송은 보수정치 유튜브와 다른 '정치 사회 경제 영역에서 사실의 증거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시민의 지혜로워지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송'을 표방한다. 유 이사장의 정책 현안과 사회 이슈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이 방송의 영향력은 막강하다.'유시민의 알릴레오' 1회는 유튜브의 경우, 13일 오후 1시를 기준으로 조회 수가 257만에 이르고 콘텐츠를 올린 지 하루가 된 2회는 64만회에 이른다. 유 이사장의 대선 출마여부를 팩트 체크한 '고칠레오 1회'는 120만회의 조회를 기록했다. 이 방송영상 채널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은 구독자가 61만명이 됐다. 진보성향 팟캐스트가 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팟방에서도 일간 종합순위가 2위였다. '유시민

  • [월요논단]행복한 삶이란…

    [월요논단]행복한 삶이란… 지면기사

    삶 편리해지는데 마음 공허한 이유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쳤기 때문변화 속에서 균형잡힌 삶 살려면'나는 누구인가?'가 무엇보다 중요정직·엄격하게 내 자신 마주해야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맞이하고 며칠이 지났다. 새해를 맞이하며 사람들은 서울 종로에 있는 보신각에 종소리를 들으러 모인다. 또 어떤 이들은 동해에서 해돋이를 보며 한해를 시작한다. 몇 년 전 양양 낙산사에 머물면서 의상대에서 해돋이를 보고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의상대 옆에는 '의상대 해돋이'라는 제목의 조종현 선사의 시조비가 있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해돋이를 보고 이 시조를 낭송하면서 정말 가슴에 불덩이가 솟구치는 듯했다.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시작'이라는 말에는 희망, 용기, 용서의 기운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번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른 해와 달랐던 점은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우리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물도 받았지만 이상하게 크리스마스 느낌이 없어요.", "해가 바뀌었다는 것도 별로 실감이 안나요."라고 말한다. 세상은 계속 발전하고 더 좋아지는 것 같고, 우리의 삶은 편리하고 풍요로워지는 것 같은데 마음이 더 공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상은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특히 과학기술은 우리가 예측하기도 어려울 만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들이 우리의 실생활에 이렇게 빨리, 이렇게 깊숙이 들어오게 될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쳐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잃어가

  • [월요논단]대통령 지지도의 하락과 구두선에 머무르는 사회적 가치 실현

    [월요논단]대통령 지지도의 하락과 구두선에 머무르는 사회적 가치 실현 지면기사

    추락 거듭하다가 43.8% 내려앉아최저임금·강사법등 정책 악재로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명목 매달려 무책임한 시행 아닌지의지 있다면 철저한 구조 만들어야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을 거듭하여 결국 43.8%로 내려앉았다. 반면 부정 평가는 51.6%였다. 12월 3주차의 민심인데, 앞으로도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성싶다.기실 일개 책상물림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도 일련의 어설픈 정책들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최저임금 정책을 보자.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4가구 당 1가구로 매우 높은 편이다. 미국의 4배, 일본의 2.5배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취약 계층이거나, 취약 계층을 겨우 면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합리적인 정책일까. 동의하기가 어렵다.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로 인해 혀를 차는 것이다. '자영업자 vs 아르바이트생(직원)'의 대립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건물주가 쓸어가는 임대료를 제한하고, 그렇게 절감된 비용의 일부가 아르바이트생(직원)의 임금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할 수는 없었을까.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 채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명목에만 매달려 무책임하게 정책을 실행해 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강사법 시행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사의 신분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비용이 따른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대학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십여 년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부분의 대학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대학들은 당연하다는 듯 개설과목의 기준 요건을 강화하고, 대폭적인 시간강사(과목) 숫자 줄이기에 나선다. 강사법이 강사를 잡아먹는 형국이 펼쳐지는 것이다.아마 여력이 뒷받침되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된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이 시행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점차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면모를 강화시켜 나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