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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논단]환경을 고려한 재생에너지 정책

    [월요논단]환경을 고려한 재생에너지 정책 지면기사

    고수익 올리려는 '태양광발전사업'자연·생활 등 환경영향평가 없이무분별 시설 설치 많은 문제 발생미래위해 친환경에너지 필요하지만서두르지 말고 철저하게 조사해야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정부에서는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 기존 정부와 기업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서 일반 주민 참여형 에너지 정책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개인이 소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해 직접 에너지를 생산해서 사용하고 남는 전력을 다시 판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아주 작게는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자체의 보조금을 통해 저렴하게 설치가 가능하면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내면서 화석 에너지나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을 줄여갈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최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마을 한가운데 4천950㎡ 가까이의 고구마밭에 태양광발전 시설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들리면서 온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마을 사람들 불만은 다각도로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농사일을 해오던 우리들의 삶의 자리가 태양광 패널로 가득 채워져 자연 경관을 해치는 게 싫다', '땅이 좋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와 집 짓고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 앞에 태양광 발전 사업이라니 날벼락 맞은 것 같다', '검증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전자파나 유해물질로 마을이 오염되면 어떻게 하냐' 등등. 이것은 우리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 태양광발전 사업으로 고수익을 창출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여러 마을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정부에서 권장하고 있고, 친환경 재생에너지라 불리는 태양광 발전 사업이 마을에 분란을 만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 우선은, 정책 시행을 위한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시행규칙이 제대로 마련되어

  • [월요논단]콘텐츠에 봄이 오나 봄

    [월요논단]콘텐츠에 봄이 오나 봄 지면기사

    올해 유통·플랫폼 많은 변화 예상中企 기술·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청년 창업 '클러스터 생태계' 조성'자유로운 창작' 다양한 기회 제공'일자리 창출과 풍요로운 삶' 기대춘분(春分)이 지났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봄을 맞이하면서 새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의 선조들은 처음, 새것, 새로운 일 앞에 모두 '新'(새로울 신)을 붙였다. 영어의 'new'라는 단어도 전에는 없던 것이 최근에 생겼거나 만들어졌거나 도입된 것을 지칭한다. 경기도에서는 민선 7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했다. 새로움의 사전적 정의가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는 것'임을 비추어볼 때 슬로건에 새로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실현되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경기도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차별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억울함이 없는 세상. 소외된 이들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기회가 토양이 되어 성공으로 이어지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출발인 것이다. 예전보다 사회가 가진 자본의 양과 기회는 늘어났는데도 모두가 결핍을 느끼는 세상에 대한 대안이 되기 위함이다. 새로움에 공정이란 가치가 더해져 부조리함이 물러나고 약자도 보호받는다면 모두의 삶이 풍요롭게 향상될 것이다. 그렇다면 콘텐츠에게 있어 새로움은 무엇일까. 올 한해 콘텐츠 산업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과 플랫폼에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AI 기술 주목과 함께 오디오북 콘텐츠가 증가하고 공간 기반의 출판 콘텐츠 서비스가 확대될 것이다. 웹툰의 큐레이션 서비스가 가속화되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대중음악과 만나며, '보는 게임'(게임 플레이 스트리밍)이 고려된 게임제작 환경의 변화가 예상된다.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을 겨냥한 작품 기획이 활성화되고, 1인 마켓의 성장과 함께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활성화, 5G 네트워크 시대가 여는 AR/VR 캐릭터 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장르와 플랫폼을 넘어 기술과 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융

  • [월요논단]좀비의 활보·가짜뉴스의 범람과 우리 사회의 비극성

    [월요논단]좀비의 활보·가짜뉴스의 범람과 우리 사회의 비극성 지면기사

    비극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인과관계·역사모순 형상화 탁월반면 국내 이념형 마타도어 횡행5·18관련 전두환·김진태 등 뻔뻔나경원 강성발언 개연성 확인안돼고대 그리스의 최고 비극 작품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전범으로 꼽고 있다. 플롯·장소·시간의 통일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 근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에서도 특히 플롯에 주목하였다. 인물들의 행동이 상호 인과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으므로 개연성과 필연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았으니 발견이 나타났고, 애초 기대했던 바와 상반되는 결과가 펼쳐졌으니 급전 또한 끌어안았다는 점도 고평 되었다. 공포와 애련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발견과 급전인바, '오이디푸스 왕'은 이를 구현하였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반면 헤겔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최고의 작품으로 내세운다. 역사 전환기에 나타나는 모순을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으로 집약하여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혈연에 입각하여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매장하고자 한다. 이는 부족사회의 윤리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폴리네이케스는 매장 금지의 죄를 짓고 죽었다. 따라서 크레온 왕은 매장을 불허하는데, 이때 크레온은 국가법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한편 사적 층위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과 약혼한 여성이 안티고네였던 것. 결국 크레온에 맞섰던 안티고네, 사랑 잃은 하이몬, 아들 하이몬을 상실한 에우리디케는 차례대로 죽음에 이른다. 그러니 헤겔은 충돌하는 역사 이행기의 두 이념이 등장인물의 전형으로 얼마나 성취되는가의 관점에서 비극을 이해하였던 셈이다.문득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국내 정치 상황이 도무지 현실로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1987년 6월항쟁이라든가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정착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고 여겼더랬

  • [월요논단]위선을 넘어 성찰로

    [월요논단]위선을 넘어 성찰로 지면기사

    반성않는 일상 우리사회 퍼져 있어5·18 망언·한유총 사태·사법농단불의 용납하면 되풀이 하게 만들어아프지만 '치욕·모순' 성찰하는 일우리를 충만함·행복으로 이끌어18세기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세계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유럽이 세계 문명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과학기술 혁명의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는 그야말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그 이전의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모두는 17세기 이래 유럽이 이룩한 근대의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이 근대 혁명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함으로써 유럽 밖에서는 유일하게 그 문화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유럽의 죄악조차 답습했다. 이 모든 역사의 격동을 겪어낸 것이 우리의 지난 100년이었다. 그 야만과 폭력의 시간을 버티고 견디면서 그럼에도 인륜과 자주를 갈망했으며 나름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이룩한 시간이 또한 지난 100년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지난 시간은 역사에서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변화와 전환을 경험한 때였다. 그 역사와 그 삶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지금의 삶과 내일의 시간을 위해서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과 전망에 있다. 뼈저린 후회와 자괴감이 들지언정 잘못된 역사를 성찰하는 작업, 직면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길을 위해 차디찬 지성과 열망으로 전망하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빠져들지 모른다.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반성하지 않은 일상이 우리를 옥죄는 현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5·18 광주에서의 학살을 부정하는 망언은 결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반인륜적이며 야만적인 부정을 정략적인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다시금 이런 패륜과 폭력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우리 삶이 왜 지옥 같을까. 이런 야만과 불의를 용납했기에,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벌써

  • [월요논단]다 잘 될 거야

    [월요논단]다 잘 될 거야 지면기사

    고르디우스 매듭 떠오른 북미회담트럼프·김정은, 정해진 시간 쫓겨역사적 경험 반복·불쾌한 사실 전개한반도 평화는 '생존과 삶'의 문제 '노딜'이었지만 비핵화 피할 수 없어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신화 등에 의하면 수레를 묶은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해결한 자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여기까지는 학설도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해결법을 두고는 의견이 다르다. 정설은 알다시피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는 것. 하지만 매듭을 고정하고 있던 못을 뽑아 끈의 실마리를 찾아 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예언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은 예언대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버린 탓에 그의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되었다는 것이다.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회담을 보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단칼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쪽과 복잡한 매듭의 일부라도 풀어내려는 쪽의 대결. 지금까지는 드러난 대로 미국은 일괄타결을, 북한은 단계적 해결방안을 선택하였다.이처럼 엇갈린 방안을 서로 선택한 것은 두 정상이 처해있는 위치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 탄핵위기와 내년 대통령 재선이라는 정치적 난제와 목표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강력한 제재로 주민들의 삶에 다가오는 악영향과 경제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정해진 시간 때문에 쫓긴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북미 간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회담의 결과는 '노딜'이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비핵화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 당장은 정치적 선택에 좌우될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돌이켜보면 이번에도 역사적 경험이 반복되고, 불쾌한 사실들이 전개되었다. 일본은 북미 간 회담의

  • [월요논단]민주주의 역사 부정도 범죄일 수 있다 - 여야 3당의  '5·18 특별법 개정안' 추진에 부쳐

    [월요논단]민주주의 역사 부정도 범죄일 수 있다 - 여야 3당의 '5·18 특별법 개정안' 추진에 부쳐 지면기사

    5·18 혐오표현 법적규제 첫 단추종편·유튜브서 왜곡 발언 쏟아져선동·전파 제한 차원 큰 의미예술·학문·역사진행 보도 등은위법성 인정안해 표현의 자유 고려23일 서울 청계광장에 전국에서 5천명이 모여 '5·18 망언 3인 퇴출'을 외쳤다. 16일 광주 금남로 집회 이후 두 번째였던 이날 집회에서는 5·18 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 등이 촉구됐다.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3당 소속 의원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하는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의 첫 단추가 시작된 것이다. 혐오표현은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하여 차별·혐오하거나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혐오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크든 작든 해악을 끼친다. 그중 구체적인 행위를 촉발할 수 있는 증오선동을 사회적 해악이 가장 큰 혐오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적 기준에서도 증오선동은 금지대상이다.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고려해서 직접적인 선동이나 반복적이고 노골적인 선동을 담고 있는 혐오표현만 처벌 가능하다고 본다. 일부 인터넷커뮤니티, 종합편성채널 등을 무대로 5·18 민주화운동 등을 왜곡·날조하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2013년부터 혐오표현 규제와 형사처벌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제의 만행과 헌정파괴범죄와 같은 반인류 범죄를 부인하고 민주화 운동을 왜곡·날조하거나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여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처벌하자는 법안들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이 법안들은 반인류 범죄의 부정을 처벌하는 역사 부정죄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금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서는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과 연결되고 관련된 사실이 이미 법률적이고 사회적으로 확정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4년 독일 정부가

  • [월요논단]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월요논단]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지면기사

    설 연휴 골목 곳곳에 쌓인 쓰레기세계 '쓰레기 대란' 망가지는 지구폐기물 관리·재활용으로 해결안돼'덜' 만들어내는 정책·실천 필요'4R운동' 힘 합쳐 작은 행동 시작을설 연휴 기간 동안 도심의 골목 곳곳, 건물 사이사이마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휴 막바지에는 쓰레기가 산을 이루며 길 바깥으로 넘쳐났다.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나 또한 그 쓰레기 더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만 해도 명절 선물에서 나온 상자, 스티로폼 등의 포장 쓰레기와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나온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베란다 한쪽에 수북했다. 쓰레기들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지금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많은 걱정이 생긴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다가 강화도로 옮겨 온 지 여섯 해를 맞이하고 있는데,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서울에서보다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분리수거 하는 날 정해진 곳에 분리 배출을 성실하게 하고 나면 마치 환경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쓰레기의 이후 행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시골 살이를 하면서 해당 면사무소에서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라고 지정한 곳에 가보면 분리가 되지 않은 쓰레기부터 큼직한 가구들까지 온갖 폐기물들이 마구잡이로 버려져있다. 심지어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려져 있다. 차마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 하루 종일 차에 싣고 다닌 적도 있다. 쓰레기 배출 하는 곳 이외에도 야산 입구나 인적이 뜸한 곳곳에 누가 버렸는지 모를 온갖 쓰레기 더미들이 몇 달이고 계속 쌓여만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재활용업체에서 필리핀으로 수출한 재활용 쓰레기가 다시 평택항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쓰레기들을 수출할 때에 플라스틱의 원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신고되어 필리핀으로 향했지만 실제로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와 기저귀, 배터리, 전구 등이 가득 섞인 불법 폐기물이었다. 우리나라에 다시 가

  • [월요논단]영화 속 김원봉, 이극로가 반가운 까닭

    [월요논단]영화 속 김원봉, 이극로가 반가운 까닭 지면기사

    조선의용대 대장 출신이었던 '金'친일경찰 노덕술에 치욕 결국 월북베를린대학서 언어학 공부한 '李'국문의식 세워나가는데 기반 제공치열했던 '그들의 이름' 간직해야올해는 3·1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 되는 해다. 영화·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항일투사의 면면에서 나는 그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이런 분들은 우리가 마땅히 끌어안아야 하지 않나, 싶었던 사례가 대중들에게 속속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세부 전공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한 내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조금이나마 식견을 가지게 된 것은 연구대상이 되는 시인·작가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나갔던 덕분이다. 예컨대 저항시인 이육사의 경우를 보자. 조선혁명군정치간부학교 제1기 졸업생인 그는 '연인기'(戀印記)에서 귀국 직전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몇 사람이 모여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같이" 하였는데, 그 중 S에게는 "무엇이나 기념품을 주고 와야 할 처지였다." 그래서 그는 "꼭 목숨 이외에 사랑하는 물품"이랄 수 있는 비취인장에 "贈S·一九三三·九·一○·陸史"라고 새겨 선물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여기서 S는 윤세주다. 훗날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부대장으로 활약하던 중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일제 측 조서에 따르면, 교장 김원봉과의 의견 차이로 인해 졸업 후 귀국했다고 되어 있으나, 육사가 취조 받으며 내놓은 답변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일제는 왜 경북 안동에서 체포한 육사를 굳이 중국 북경으로까지 끌고 가서 고문해야만 했을까. 김원봉·윤세주와 절연하기는커녕 물밑에서 연계하여 치열하게 활동한다고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북경감옥에서 육사는 유고시로 '광야'(曠野), '꽃'을 남겼다. 이 두 편의 시는 육사의 죽음 위에서 읽어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1933년 9월 10일 S 등과 가졌던 저녁 모임은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이었다. 1942년 윤세주는 전사하고 말았으니,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던 "내가 바라는 손님"은 결코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육사마저 19

  • [월요논단]새로운 100년의 문화혁명

    [월요논단]새로운 100년의 문화혁명 지면기사

    지난 100년간 엄청난 역사 썼지만불안·갈등은 왜 여전히 존재할까일상의 야만·폭력·불의·부패 고통우리 스스로 걷어내지 못한다면'찬란한 문화적 삶' 전환 불가능100년 전 3월 1일 독립요구의 외침이 전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이 외침은 강압적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조선의 독립을 요구한 데서 출발했지만, 그 뒤에는 보편적인 인간다움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적 통치와 야만에 맞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찾는 강력한 원의가 이 외침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였다. 이후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삶은 어떻게 변했는가? 외적인 폭력과 탄압은 물론, 정신적인 파괴와 전향까지도 강압하던 무단 통치를 거부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민주와 인간성에 대한 요구는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2년 전 또다시 이런 강압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를 요구했던 외침은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 역사에서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현란함을 벗어나 보면 우리 삶의 실제적 상황에 본질적 차이가 없음을 안타깝게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로움에 비해 삶과 문화가 피폐하고 허무하다면, 왜 그런 것일까. 여전히 내면의 불안과 갈등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헐벗음으로 허덕인다면 우리는 그 100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대한민국은 지난 100년 사이 역사를 새롭게 썼으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전한 불안과 갈등은 왜일까. 왜 삶과 사회에는 여전히 허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일까. 지난 시간 대한민국이 이룩했다는 성공은 어떤 것인가. 삶과 문화에서도 성공한 것일까. 아니라면, 그 반쪽의 성공을 넘어서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지금 이 시간은 우리가 이 질문을 마주하고, 그에 대해 대답하고 실천적 대응을 말해야 할 그 순간이다. 이것은 단순히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기에 제기하는 물음이 아니라, 촛불을 통해 새로움을 요구했음에도 여전한 이 삶의 황폐함을 벗

  • [월요논단]심해어류 증후군과 견리사의

    [월요논단]심해어류 증후군과 견리사의 지면기사

    잇단 폭로·불안정한 경제현실 원인文정부 정책실패서 찾으려는 심리통일·남북문제외 국민들 기대 부족획기적 대안 제시로 미래 선도하는 새로운 장관·자치단체장 내세워야'사케가시라(Trachipterus ishikawae)'. 지진어류 혹은 산갈치로 불리는 심해어의 일종이다. 최근 동해연안에서 200m 심해에서 산다는 산갈치가 발견되자 지진의 징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에서는 지진 직전 해저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변화의 결과라거나 해수온도의 변화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하지만 오리하라(織原義明) 교수팀은 2017년 말 일본지진학회에서 지진과 산갈치는 상관성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1928년부터 2011년까지 심해어와 지진 발생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363건의 사례 중 지진이 발생한 경우는 13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인간이 산갈치 등장을 지진의 징후로 예측하거나 방재에 유용한 정보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어류가 지진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쓸모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해에 대한 조사의 한계로 지진의 전조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해명과 달리 인간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산갈치의 등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해저에 대한 궁금증이나 심리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심해의 어디에선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수사관과 기재부 신재민 사무관의 폭로 그리고 손혜원 국회의원을 둘러싼 논쟁들이 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일파만파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나 권력기관, 그 어디에선가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뜻이다. 경제의 불안정한 현실과 그 논거를 문재인 정부나 정책 실패에서 찾으려는 심리적 요소들도 확산에 가세하고 있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촛불정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로와 험난한 경제를 둘러싼 상상력의 증폭이 문재인 정부가 당면할 전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왜 폭로되는 사안들이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확대되고 있는지. 우려하는 국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