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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승리 지면기사
[경인일보=]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다. 신체 각 부위에 중요치 않은 기관이나 장기가 없듯이 모든 직업은 사회에서 나름의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각 직업에는 통념상 약간의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필자의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로 '아빠, 검사는 벌만 주는 나쁜 직업이고, 변호사는 좋은 직업이야?'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지나가는 말로 대답한 기억이 난다. 이제 공직을 떠나 가끔 과거 처리했던 사건들을 회상해보곤 하는데 만약 딸이(지금은 대학졸업반이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시 그런 질문을 한다면 '아니, 검사도 벌만 주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억울한 일도 많이 풀어준단다'라고 대답하면서 필자의 기억에 떠오르는 이 사건을 도란도란 이야기해주고 싶다.1980년대 초 어느 날 평온하던 서울 강동구 하일동 C씨 마을에 소장이 날아들었다. 원고측은 과거 C씨 마을 일대를 소유하고 있던 서울부자 A씨의 상속인들이었고, 피고측은 1958년 A씨로부터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짓고 살아온 C씨 집성촌 사람들이었다. 원고측은 A씨가 1957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피고측이 1958년에 A씨와 작성했다는 매매계약서는 위조된 것이라고 하면서 마을에서 퇴거하라고 주장하였다. 수십 년간 평온하게 살아온 피고측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원고측은 A씨의 맏사위를 증언대에 세워 1957년에 사망한 것이 사실이라는 증언을 얻어냈다. 피고측은 경찰에 맏사위를 위증으로 고소하였고 사건은 단순한 민사사건에서 형사사건으로 발전하였다.피고측은 A씨가 1959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된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했으나, 실제로 1957년 사망 후 2년이 지나 사망신고를 하였다는 원고측 주장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당시에는 출생신고도 2~3년 뒤늦게 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원고측 주장을 허위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원칙에 따라 무혐의 의견으로 송치된 위증사건은 필자에게 배당되었다. 기록을 검토한 결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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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문제 해법으로서의 '덴마크 모델' 지면기사
[경인일보=]'고용대란'에 허덕이는 우리사회 지금 우리사회는 이른바 '취업대란'에 허덕이고 있다. 전체 실업률은 매년 높아만 가고 있으며, 현 정부에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뾰족한 정책수단도 없어 보인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이제 10%대에 근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일본(7.7%)과 독일(8.6%)보다 훨씬 높다. 심각한 문제다. 유럽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그런데 유럽 국가 일부에서는 저성장 기조하에서도 취업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두고 유럽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적극적노동시장정책(ALMP:Active Labor Market Policy)' 때문으로 본다.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경제성장 그 자체가 고용을 직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고용에 관해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낮은 경제성장률하에서도 취업률을 높이고 있는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고용정책과 '적극적노동시장정책' 간의 적절한 조합이야말로 일자리를 만드는 데 가장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U위원회가 발표한 '유럽의 고용'이라는 보고서는 낮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EU의 취업자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원인을 유럽고용전략에 의거한 고용정책에 의해 실업률이 낮아진 것과 국가가 주관하는 모든 취업대상자에 대한 생애학습, 기능훈련에 대한 투자, 개인 차원의 경력(career) 지도 등과 같은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사람들의 노동시장에의 복귀에 크게 기여한 것에서 찾고 있다.해법으로서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또 이 보고서에 따르면, EU 가맹국 중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 현상으로서 첫째, 실업기간이 짧게 나타나고 있는 점, 둘째, 기업의 구인이 신속하게 메워지고 있는 점, 셋째, 구직자들의 보다 구체적인 목표에 특화되어 있는 훈련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 넷째, 시장 상황에 맞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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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왜 그리 생각의 오지랖이 넓으냐는 아내의 지청구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회현상에 예민한 더듬이를 들이대는 것은 굳이 신문 칼럼을 맡아서가 아니다. 인간과 사회를 공부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훈련받은 결과이기도 하거니와 그래도 명색이 교수라고 일종의 지적 의무감을 느낀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요즈음은 머릿속이 벅찰 정도로 의미심장한 획기적 사건들이 즐비하여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이러다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 하는 예후나 전조를 느낀다는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을 접하니 그런 느낌이 더하다.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이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가장 큰 모순의 하나는 영향력이 작은 일상적 일들은 예측과 대비가 가능한데 정작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사건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아 예측과 대비가 어렵고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나마 부분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인류사를 바꾼 프랑스, 러시아, 중국혁명의 여파부터 시작하여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2011년 일본의 원전사고가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물론 이런 어려움은 대지진이나 쓰나미의 예에서 보듯이 자연과학도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재해보다는 인간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재해의 위험성이 급증한다는 사실이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라는 학자는 이를 위험사회의 도래라는 개념으로 집약하였다. 위험사회의 도래가 진정 걱정되는 소이는 알면서도 당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어떻게 이런 대재앙의 전조를 대략은 인지하면서도 대비하지 못하고 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커다란 연유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에 대한 지나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달나라로 보내고 거대한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체세포 복제로 생명체의 창조주가 될 수 있고 거시경제 이론은 금융위기의 파국을 미리 막을 수 있고…. (그 발상이 매우 유치한 수준이기는 해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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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문화 지면기사
[경인일보=]박목월 시인이 '나그네'에서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고 노래 불렀듯이, 술은 멋과 풍류의 상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술 인심은 참 좋은 편이다. 옛날 선비들은 술을 서로 권하면서 풍류를 즐겼고, 서민들은 농터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힘을 북돋았다. 지금도 우리의 희로애락 일상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며, 술에 관한한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정한 정도를 지나치게 되면 건강에 유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잔을 서로 권하는 것을 주도(酒道)처럼 여기는 우리의 독특한 음주문화와 술이 갖고 있는 중독성으로 인해 술 소비량과 그로 인한 폐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세청이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10년 전에 비해 맥주, 탁주, 와인, 위스키 등의 소비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소주와 청주만 약간 감소했다고 한다. 한때 자가용 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음주운전을 피하고 건강도 생각해서 술을 절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다보니 삶이 더 팍팍해져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많아지고, 또 저가 대리운전 업체가 늘어난 것도 술 소비량을 증가시키는 한 요인으로 본다.술을 마시면 대부분의 경우 평상심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즐거운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괴로운 사람에게는 잠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들로 혼자 또는 여럿이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술자리의 분위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과음을 하게 되거나 타의에 의해 억지로 마시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술을 잘 먹어야 호방해 보이고 인간관계가 좋아지며 비즈니스도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술자리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요즘은 폭탄주와 원샷을 비롯한 희한한 형식의 음주방법도 많아져 더욱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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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금융'의 시대 지면기사
[경인일보=]지역사회의 금융소외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기업 및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을 '공간'과 '대상'으로 하는 단체의 자금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어렵다. 이는 지역성을 갖는 주체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충분한 대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융소외'가 현저한 우리 지역금융시장의 현실을 의미한다. 이렇듯 금융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된 지역 주체들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에 인재, 기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지역의 고용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이 자금 제약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시민금융'의 등장이러한 우리 지역사회의 양상과 맥을 같이 하는 일본에서는 최근 이와 같은 지역 금융소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이 대지진 이전부터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중 '시민금융'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시민금융'이란,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환경, 복지, 교육, 경제, 개발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기업 및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이러한 단체의 관계자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소규모 비영리 은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목적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각자 출자한 돈으로 소규모 대출을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일반 사적 금융기관과는 달리 '시민금융'은 경기 변동과는 무관한 안정적인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불황 국면에서 그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는 사회사업에 대해 무담보 저리 대출을 시행하여 그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불황으로 인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영리회사의 투자의 경기변동성을 상쇄시키고 있다. 해서 지역사회 전체의 거시경제 안정성이 확보되어 실업과 기업도산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시민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기관이 무려 10개나 되며, 주로 사회적 문제와 관련한 실천을 선호하는 지식인들의 주도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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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재앙과 생각들 지면기사
[경인일보=]나는 일본 언어에 대체로 무지하고, 가깝게 견해를 나누는 일본인 친구도 별로 없고, 일본의 사상가로부터 정신적 세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일본은 평생 고작 네댓 차례 방문이 전부인 한국의 대학교수다. 매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일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느낌은 한 일 년 반 동안 타본 꽤 오래된 일본 중고자동차의 성능과 내구성이 참으로 믿을만하다는 평가로부터 유래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도 대체로 지식인 그룹에 속할 수 있다는 넉넉한 기준치가 적용된다면, 나의 일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아마 한국 지식인 그룹의 중위권을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매긴 후한 점수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 나아가 인종적으로 멀면 멀었지 결코 가까울 수 없는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나의 관심과 어느 정도 지식에 비하면 일본에 대한 이런 대체적 무관심과 무지는 참으로 놀랄만하고 동시에 창피한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 무관심과 어느 정도의 무지가 항상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이번 일본의 대참사와 같이 평소에 잘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 일어나기만 하면 한 사회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격변 상황에서는 기존의 지식이 오히려 문제의 정확한 해석과 해결 방안 찾기에 방해가 되는 수가 많다.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성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로 시장 만능주의 외골수 경제학자들을 비판적으로 칭하는데 사용되는 이른바 '훈련받은 무능력'(trained incapacity) 이라든가 혹은 '합리적인 바보'(rational fool)는 지역 전문가도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일본 대재앙 관련 한국 언론의 보도 중 편견의 진수는 '일본 열도 침몰론'이었다. 주로 섣부른 국수주의적 견해를 반영한 이런 방향 설정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다분히 선정적이다. 아주 나쁘게 해석하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근히 실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하고 아주 좋게 해석해도 동정적 편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본 포기하지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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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입학식과 졸업식 지면기사
[경인일보=]새봄을 맞아 새내기들의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캠퍼스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인천재능대학교 신입생들의 입학식에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참석하여 축사를 통해 "이제는 학력이 아닌 실력이 필요하다"며 "여러분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주역"이라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교육부 수장인 장관이 전문대학의 입학식에 참석한 경우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2월과 3월은 매우 바쁜 계절이다. 특히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동안 대학들은 2월에는 졸업식을 하고 3월 개강과 더불어 입학식을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대학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풍경이 세태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지고 있다. 판에 빅힌 의례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이색적인 행사로 진행하며 시기와 장소도 바꾸고 있다. 농구장이나 격납고 또는 대형체육관 등 예상을 깨는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의 축하공연은 물론 총장이 청바지를 입고 젊은이들과 함께 댄스 공연을 하는 등 파격적인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저명인사의 특강, 책 선물 등 차분하면서도 뜻 깊은 입학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대학의 입학식과 졸업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앞다투어 개발하거나 동원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양상은 더욱 더 다양하고 경쟁적으로 전개될 것 같다. 이는 대학이 시대적 흐름에 보조를 같이 하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주변환경이나 현실 등을 생각할 때 한 대학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동안 입학식보다 더 성대하고 화려했던 졸업식은 극심한 취업난 속에 그 열기가 계속 식어가고 있다. 과거처럼 온 가족들이 졸업식에 참석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축하해 주던 모습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아예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거나, 식장에는 가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학위증만 챙겨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문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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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저력 지면기사
[경인일보=]가끔 이른 새벽 지방에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들어서다보면 동이 트기 전인데도 고속도로는 이미 많은 차량들로 붐비고 있다. 또 전국을 다니다 보면 지방도 국도 고속국도 할 것 없이 매끈하게 정비된 도로가 사통팔달로 뻗어있다. 최근 착공한 모습을 본 듯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완성된 건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지난해 동남아의 어느 나라를 간 적이 있다. 도로공사 현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공사장비들만 덩그러니 서있고 일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늘 밑에서 누워있거나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다른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저 도로가 완성될까 (쓸데없이) 속으로 걱정도 해 보았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특히 성공한 기업인들은 이른 새벽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호텔들은 각종 조찬모임들로 이른 새벽부터 북적인다. 이런 근면과 성실의 미덕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문화적 풍요의 원인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전 세계에 인구 5천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인 나라가 7개국(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중국은 인구는 많으나 소득이 부족하고, 캐나다는 소득은 높으나 인구가 모자란다)이 있는데 대한민국이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4천60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였는데 이것 또한 세계 7번째 규모이다. 반도체, 자동차, 건설, 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제품들은 전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기업 활동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이미 세계강국이 된지 오래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종합 7위를 달성하였다.그러나 우리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면, 높은 교육열, 하면 된다는 투지와 끈기 등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제반 사회를 이끌어 왔던 미덕들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세계가 경탄할 만한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서 자라고 있던 문제점들(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첨단 IT 부문과 비 IT 부문, 대기업과 중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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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원동력으로서의 '똘레랑스' 지면기사
[경인일보=]▶'똘레랑스'란? 요즘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기업 및 지역사회 경영 등과 같은 다양한 부문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프랑스어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용어는 '타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 조직이나 공간 내에서 그 구성원 각각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닌텐도와 볼로냐의 공통점그런데 중요한 것은, 최근 이 용어가 민주주의의 개념 일반에 관한 정치학 교과서나 타인의 정치적 의견, 사상, 이념 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설정하는 정치권내에서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동종 타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탁월한 혁신 퍼포먼스를 내보이는 세계적 우수 기업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그곳에서의 생활을 선호하는 세계의 유수 '명품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 교토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세계적 명문 기업 닌텐도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인 콘텐츠 능력의 근원을 '똘레랑스'에서 찾고 있으며, 문화와 예술을 동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이로 인해 경제적 수요를 창출하여 지역사회 전반의 활성화에 크게 성공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역시 그 창조도시의 선순환 메커니즘 근저에 있는 미시적 기초를 바로 '똘레랑스'로 설명하고 있다. 즉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방식이 존중되고 또 이를 극대화해낼 수 있는 기업과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이들이 견지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묵살되지 않고 존중받기에, 그 과정에서 이른바 '혁신적 기초'가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혁신의 원천으로서의 '똘레랑스'개성보다는 표준을 선호하고 또 엉뚱하고 독특한 생각과 아이디어보다는 경영자의 경영판단에 일사불란하게 추종하는 조직을 선호해왔던 소니, 마츠시타, 토시바 등 기존의 잘 알려진 일본기업과는 달리, 닌텐도는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을 기반으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게 하고 또 이를 위해 직원들을 회사의 매뉴얼에 속박시키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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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화 변기 지면기사
[경인일보=]십여년 전 연구년으로 미국 시애틀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세든 아파트의 첫달 물값을 받아보고 눈을 의심하였다. 아름다운 풍광에 도취되었던 정신이 확 깰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그곳의 휘발유 값과 비교해 보았다. 물 세 컵이면 휘발유 한 컵 값이었다. 당시 그곳의 유가가 한국과 비교해 약 3분의1 수준임을 감안하였어도 믿기 힘든 물값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얼추 휘발유 한 컵과 물 아홉 컵의 값이 같은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아마 누구도 물 쓰듯 물을 쓰기 힘들 것이다. 고지서를 받아보고 물론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변기 물탱크에 벽돌을 두 어장 넣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니 바닷가로 직접 흘러 내려가는 정화된 오수가 맑고 깨끗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돗물에 비싼 오염부담금이 포함된 것이다.우리도 수돗물 값을 올리자는 말이 아니다. 근대화의 풍광인 수세식 변기가 얼마나 물을 많이 쓰고 또한 얼마나 많이 환경을 오염시키는가를 깨닫자는 말이다. 남한강 상류 산골 강변에 사시는 큰 이모(부)가 잘 아신다. 더 상류에 위치한 제천에 새마을 운동으로 수세식이 소개되면서 떠먹어도 되던 강물이 얼마나 혼탁해졌는지. 물론 충주댐이 완공된 후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어졌단다. 팔순이 가까운 이모부는 열렬한 박정희 숭배자로서 자랑스럽게 산업화 세대를 살아내신 분이다. 그러나 당시와 오늘을 비교해 어느 삶이 좋은 것인가 판단이 어렵다고 고백하시며 참으로 물 맑은 하얀 백사장에서 천렵하던 날들이 너무도 그립다고 하신다.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권 주변 시골 비슷한 곳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화장실에 관한한 그 어느 호사스런 최고급 변기도 부럽지 않은 자연 화장실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것도 집안에. 집안에서도 부엌 바로 곁의 따스하고 밝은 곳에. 더욱이나 물도 한 방울 쓰지 않고 냄새도 없이 말이다. 물론 아무리 추워도 얼어 터질 걱정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자랑 하나 더하자. 이 화장실은 내 밥상의 윤기 나는 채소까지 책임져 준다. 그래서 이름하여 퇴비화 변기다. 내 얘기에 그게 정말이냐고 적잖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