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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밥의 고마움에 대하여

    집 밥의 고마움에 대하여 지면기사

    [경인일보=]우리 집은 외식하는 횟수로만 치자면 대한민국 하위 10%에 속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다. 웬만하면 집안 식구들이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는 집에서 먹는다. 손님이 방문하면 당연히 집에서 대접한다. 밖에 나가 대접하는 것 보다 정성 담긴 집 밥이 낫다는 판단이다. 10대 종손인 나는 가족 모임도 집에서 하길 좋아한다. '와서 반갑고 가서 더 반갑다'는 옛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 년이면 몇 차례 오랜 세월을 그러고 살았다. 게다가 회의 등 외부 약속이 없는 날이면 도시락이 당근이다. 심지어 각각 다섯 살 터울의 아이 셋을 키우면서 예외 없이 중고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이 저녁을 같이 먹을 행복한 권리가 강요된 상급학교 진학보다 중요하다는 나의 감언이설에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다음 날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단비야 어제 저녁 잘 먹었니?" 사정이 이러하니 결혼 생활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김치고 밑반찬이고 조리된 식품을 사서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된장, 고추장, 간장에 식초까지 직접 담가 먹는다. 내 눈에 집 사람 손은 만지면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꾼다는 미다스(Midas) 왕의 손처럼 만지면 모든 것이 맛난 음식이 되는 반찬 손이다. 아이 셋에 같이 공부까지 한 아내를 착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 혹사시키는 사람이 뭐 잘났다고 용감하게 떠들어 대냐고 타박을 넘어 협박을 받을 수준이다. 그러나 나도 아주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굳이 외식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집 밥이 밥집 밥보다 더 맛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그리고 밥을 해대는 당사자인 아내도 꼭 같은 소리를 한다. "라면을 먹더라도 집에서 먹는 것이 낫지" 라고 말이다.그러나 집 밥이 밥집의 밥을 앞서는 것은 아내의 손맛에 길들여진 입맛의 문제만은 아니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인데 집 밥을 식구들이 둘러 앉아 같이 먹는 것은 그냥 음식을 먹는 게 아니다.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먹는 거다. 밥이 밥이 아니라 가족 해체를 막는 사

  • 흡연 폐해와 금연 운동

    흡연 폐해와 금연 운동 지면기사

    [경인일보=]한때 금연하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그만큼 담배 끊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동시에, 금연자를 독종으로 여겨 은연중에 흡연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을 의지박약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다. 특히 흡연으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러한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흡연문제는 모든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현안이다. 우리나라도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삽입한 지 꽤 오래되었으며, 공공건물을 비롯해 버스정류장 등 많은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그 범위를 계속 확대해 가고 있다. 그 결과, 흡연율이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OECD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10년 12월 조사한 결과 발표에 의하면, 만 19세 이상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39.6%로 1년 전 조사결과 43.1%보다 6.5%p 감소하였으나 그 수치는 여전히 OECD 평균의 약 2배나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9세 이하 청소년 흡연율이 20%를 넘어 중고생 5명 중 1명이 담배를 피우는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살펴보면,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암, 심장마비, 뇌졸중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으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간접흡연에 의해 위해를 가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흡연이 유발하는 질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의료비 부담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커다란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전체 암 사망자의 30%, 폐암 사망자의 85%가 흡연에 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흡연 때문에 세계적으로 매년 500여 만 명이, 우리나라는 매년 5만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한다. 담배에는 청산가스와 비소 등 62종의 발암물질과 4천여종의 화학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담배 한 개비가 생명을 약 10분 단축시키며, 하루에 한 갑씩 피

  • 진실의 승리

    진실의 승리 지면기사

    [경인일보=]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다. 신체 각 부위에 중요치 않은 기관이나 장기가 없듯이 모든 직업은 사회에서 나름의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각 직업에는 통념상 약간의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필자의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로 '아빠, 검사는 벌만 주는 나쁜 직업이고, 변호사는 좋은 직업이야?'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지나가는 말로 대답한 기억이 난다. 이제 공직을 떠나 가끔 과거 처리했던 사건들을 회상해보곤 하는데 만약 딸이(지금은 대학졸업반이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시 그런 질문을 한다면 '아니, 검사도 벌만 주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억울한 일도 많이 풀어준단다'라고 대답하면서 필자의 기억에 떠오르는 이 사건을 도란도란 이야기해주고 싶다.1980년대 초 어느 날 평온하던 서울 강동구 하일동 C씨 마을에 소장이 날아들었다. 원고측은 과거 C씨 마을 일대를 소유하고 있던 서울부자 A씨의 상속인들이었고, 피고측은 1958년 A씨로부터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짓고 살아온 C씨 집성촌 사람들이었다. 원고측은 A씨가 1957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피고측이 1958년에 A씨와 작성했다는 매매계약서는 위조된 것이라고 하면서 마을에서 퇴거하라고 주장하였다. 수십 년간 평온하게 살아온 피고측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원고측은 A씨의 맏사위를 증언대에 세워 1957년에 사망한 것이 사실이라는 증언을 얻어냈다. 피고측은 경찰에 맏사위를 위증으로 고소하였고 사건은 단순한 민사사건에서 형사사건으로 발전하였다.피고측은 A씨가 1959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된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했으나, 실제로 1957년 사망 후 2년이 지나 사망신고를 하였다는 원고측 주장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당시에는 출생신고도 2~3년 뒤늦게 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원고측 주장을 허위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원칙에 따라 무혐의 의견으로 송치된 위증사건은 필자에게 배당되었다. 기록을 검토한 결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용문제 해법으로서의 '덴마크 모델'

    고용문제 해법으로서의 '덴마크 모델' 지면기사

    [경인일보=]'고용대란'에 허덕이는 우리사회 지금 우리사회는 이른바 '취업대란'에 허덕이고 있다. 전체 실업률은 매년 높아만 가고 있으며, 현 정부에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뾰족한 정책수단도 없어 보인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이제 10%대에 근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일본(7.7%)과 독일(8.6%)보다 훨씬 높다. 심각한 문제다. 유럽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그런데 유럽 국가 일부에서는 저성장 기조하에서도 취업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두고 유럽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적극적노동시장정책(ALMP:Active Labor Market Policy)' 때문으로 본다.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경제성장 그 자체가 고용을 직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고용에 관해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낮은 경제성장률하에서도 취업률을 높이고 있는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고용정책과 '적극적노동시장정책' 간의 적절한 조합이야말로 일자리를 만드는 데 가장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U위원회가 발표한 '유럽의 고용'이라는 보고서는 낮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EU의 취업자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원인을 유럽고용전략에 의거한 고용정책에 의해 실업률이 낮아진 것과 국가가 주관하는 모든 취업대상자에 대한 생애학습, 기능훈련에 대한 투자, 개인 차원의 경력(career) 지도 등과 같은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사람들의 노동시장에의 복귀에 크게 기여한 것에서 찾고 있다.해법으로서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또 이 보고서에 따르면, EU 가맹국 중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 현상으로서 첫째, 실업기간이 짧게 나타나고 있는 점, 둘째, 기업의 구인이 신속하게 메워지고 있는 점, 셋째, 구직자들의 보다 구체적인 목표에 특화되어 있는 훈련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 넷째, 시장 상황에 맞는

  •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왜 그리 생각의 오지랖이 넓으냐는 아내의 지청구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회현상에 예민한 더듬이를 들이대는 것은 굳이 신문 칼럼을 맡아서가 아니다. 인간과 사회를 공부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훈련받은 결과이기도 하거니와 그래도 명색이 교수라고 일종의 지적 의무감을 느낀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요즈음은 머릿속이 벅찰 정도로 의미심장한 획기적 사건들이 즐비하여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이러다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 하는 예후나 전조를 느낀다는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을 접하니 그런 느낌이 더하다.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이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가장 큰 모순의 하나는 영향력이 작은 일상적 일들은 예측과 대비가 가능한데 정작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사건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아 예측과 대비가 어렵고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나마 부분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인류사를 바꾼 프랑스, 러시아, 중국혁명의 여파부터 시작하여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2011년 일본의 원전사고가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물론 이런 어려움은 대지진이나 쓰나미의 예에서 보듯이 자연과학도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재해보다는 인간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재해의 위험성이 급증한다는 사실이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라는 학자는 이를 위험사회의 도래라는 개념으로 집약하였다. 위험사회의 도래가 진정 걱정되는 소이는 알면서도 당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어떻게 이런 대재앙의 전조를 대략은 인지하면서도 대비하지 못하고 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커다란 연유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나 과학적 지식에 대한 지나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달나라로 보내고 거대한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체세포 복제로 생명체의 창조주가 될 수 있고 거시경제 이론은 금융위기의 파국을 미리 막을 수 있고…. (그 발상이 매우 유치한 수준이기는 해도) 이런

  • 음주문화

    음주문화 지면기사

    [경인일보=]박목월 시인이 '나그네'에서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고 노래 불렀듯이, 술은 멋과 풍류의 상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술 인심은 참 좋은 편이다. 옛날 선비들은 술을 서로 권하면서 풍류를 즐겼고, 서민들은 농터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힘을 북돋았다. 지금도 우리의 희로애락 일상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며, 술에 관한한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정한 정도를 지나치게 되면 건강에 유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잔을 서로 권하는 것을 주도(酒道)처럼 여기는 우리의 독특한 음주문화와 술이 갖고 있는 중독성으로 인해 술 소비량과 그로 인한 폐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세청이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10년 전에 비해 맥주, 탁주, 와인, 위스키 등의 소비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소주와 청주만 약간 감소했다고 한다. 한때 자가용 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음주운전을 피하고 건강도 생각해서 술을 절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다보니 삶이 더 팍팍해져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많아지고, 또 저가 대리운전 업체가 늘어난 것도 술 소비량을 증가시키는 한 요인으로 본다.술을 마시면 대부분의 경우 평상심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즐거운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괴로운 사람에게는 잠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들로 혼자 또는 여럿이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술자리의 분위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과음을 하게 되거나 타의에 의해 억지로 마시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술을 잘 먹어야 호방해 보이고 인간관계가 좋아지며 비즈니스도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술자리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요즘은 폭탄주와 원샷을 비롯한 희한한 형식의 음주방법도 많아져 더욱 그렇

  • '시민금융'의 시대

    '시민금융'의 시대 지면기사

    [경인일보=]지역사회의 금융소외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기업 및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을 '공간'과 '대상'으로 하는 단체의 자금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어렵다. 이는 지역성을 갖는 주체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충분한 대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융소외'가 현저한 우리 지역금융시장의 현실을 의미한다. 이렇듯 금융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된 지역 주체들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에 인재, 기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지역의 고용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이 자금 제약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시민금융'의 등장이러한 우리 지역사회의 양상과 맥을 같이 하는 일본에서는 최근 이와 같은 지역 금융소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이 대지진 이전부터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중 '시민금융'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시민금융'이란,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환경, 복지, 교육, 경제, 개발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기업 및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이러한 단체의 관계자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소규모 비영리 은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목적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각자 출자한 돈으로 소규모 대출을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일반 사적 금융기관과는 달리 '시민금융'은 경기 변동과는 무관한 안정적인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불황 국면에서 그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는 사회사업에 대해 무담보 저리 대출을 시행하여 그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불황으로 인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영리회사의 투자의 경기변동성을 상쇄시키고 있다. 해서 지역사회 전체의 거시경제 안정성이 확보되어 실업과 기업도산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시민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기관이 무려 10개나 되며, 주로 사회적 문제와 관련한 실천을 선호하는 지식인들의 주도에 의해

  • 일본 대재앙과 생각들

    일본 대재앙과 생각들 지면기사

    [경인일보=]나는 일본 언어에 대체로 무지하고, 가깝게 견해를 나누는 일본인 친구도 별로 없고, 일본의 사상가로부터 정신적 세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일본은 평생 고작 네댓 차례 방문이 전부인 한국의 대학교수다. 매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일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느낌은 한 일 년 반 동안 타본 꽤 오래된 일본 중고자동차의 성능과 내구성이 참으로 믿을만하다는 평가로부터 유래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도 대체로 지식인 그룹에 속할 수 있다는 넉넉한 기준치가 적용된다면, 나의 일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아마 한국 지식인 그룹의 중위권을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매긴 후한 점수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 나아가 인종적으로 멀면 멀었지 결코 가까울 수 없는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나의 관심과 어느 정도 지식에 비하면 일본에 대한 이런 대체적 무관심과 무지는 참으로 놀랄만하고 동시에 창피한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 무관심과 어느 정도의 무지가 항상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이번 일본의 대참사와 같이 평소에 잘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 일어나기만 하면 한 사회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격변 상황에서는 기존의 지식이 오히려 문제의 정확한 해석과 해결 방안 찾기에 방해가 되는 수가 많다. 전문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성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로 시장 만능주의 외골수 경제학자들을 비판적으로 칭하는데 사용되는 이른바 '훈련받은 무능력'(trained incapacity) 이라든가 혹은 '합리적인 바보'(rational fool)는 지역 전문가도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일본 대재앙 관련 한국 언론의 보도 중 편견의 진수는 '일본 열도 침몰론'이었다. 주로 섣부른 국수주의적 견해를 반영한 이런 방향 설정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다분히 선정적이다. 아주 나쁘게 해석하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근히 실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하고 아주 좋게 해석해도 동정적 편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본 포기하지마!'라는

  • 달라진 입학식과 졸업식

    달라진 입학식과 졸업식 지면기사

    [경인일보=]새봄을 맞아 새내기들의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캠퍼스에 활력이 넘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인천재능대학교 신입생들의 입학식에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참석하여 축사를 통해 "이제는 학력이 아닌 실력이 필요하다"며 "여러분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주역"이라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교육부 수장인 장관이 전문대학의 입학식에 참석한 경우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2월과 3월은 매우 바쁜 계절이다. 특히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동안 대학들은 2월에는 졸업식을 하고 3월 개강과 더불어 입학식을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대학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풍경이 세태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지고 있다. 판에 빅힌 의례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이색적인 행사로 진행하며 시기와 장소도 바꾸고 있다. 농구장이나 격납고 또는 대형체육관 등 예상을 깨는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의 축하공연은 물론 총장이 청바지를 입고 젊은이들과 함께 댄스 공연을 하는 등 파격적인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저명인사의 특강, 책 선물 등 차분하면서도 뜻 깊은 입학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대학의 입학식과 졸업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앞다투어 개발하거나 동원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양상은 더욱 더 다양하고 경쟁적으로 전개될 것 같다. 이는 대학이 시대적 흐름에 보조를 같이 하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주변환경이나 현실 등을 생각할 때 한 대학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동안 입학식보다 더 성대하고 화려했던 졸업식은 극심한 취업난 속에 그 열기가 계속 식어가고 있다. 과거처럼 온 가족들이 졸업식에 참석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축하해 주던 모습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아예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거나, 식장에는 가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학위증만 챙겨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문보도

  • 한국인의 저력

    한국인의 저력 지면기사

    [경인일보=]가끔 이른 새벽 지방에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들어서다보면 동이 트기 전인데도 고속도로는 이미 많은 차량들로 붐비고 있다. 또 전국을 다니다 보면 지방도 국도 고속국도 할 것 없이 매끈하게 정비된 도로가 사통팔달로 뻗어있다. 최근 착공한 모습을 본 듯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완성된 건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지난해 동남아의 어느 나라를 간 적이 있다. 도로공사 현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공사장비들만 덩그러니 서있고 일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늘 밑에서 누워있거나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다른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저 도로가 완성될까 (쓸데없이) 속으로 걱정도 해 보았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특히 성공한 기업인들은 이른 새벽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호텔들은 각종 조찬모임들로 이른 새벽부터 북적인다. 이런 근면과 성실의 미덕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문화적 풍요의 원인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전 세계에 인구 5천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인 나라가 7개국(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중국은 인구는 많으나 소득이 부족하고, 캐나다는 소득은 높으나 인구가 모자란다)이 있는데 대한민국이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4천60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였는데 이것 또한 세계 7번째 규모이다. 반도체, 자동차, 건설, 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제품들은 전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기업 활동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이미 세계강국이 된지 오래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종합 7위를 달성하였다.그러나 우리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면, 높은 교육열, 하면 된다는 투지와 끈기 등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제반 사회를 이끌어 왔던 미덕들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세계가 경탄할 만한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서 자라고 있던 문제점들(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첨단 IT 부문과 비 IT 부문, 대기업과 중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