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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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지면기사
고려인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살아있는 역사’태권도 시범단 공연 ‘한국인 저력’에 눈시울강인하고 성실한 그들은 ‘우리의 핏줄’ 이었다‘카레이스키’.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는 단어일 수도 있다. 카레이스키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말한다. 즉, 일제강점기 러시아 사할린(Sakhalin)에 끌려간 부모 때문에 평생 무국적으로 살아야 했던 고려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할린 강제 징용 피해자의 후손들이었던 그들은 풀뿌리처럼 흩어져 평생 이국땅에서 살아왔다. 조국은 고려인들의 아픔까지 잊어버린 채 하루 살기에 바쁘다. 하지만 고려인은 잊혀진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가 지켜가야 할 살아있는 역사다.이런 시점에서 지난 4일 러시아 사할린주 사할린스크시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광복 70주년, 경인일보 창간 70주년, 러시아 전승 70주년’ 등 ‘트리플 70’을 기념해 경기도에서 태권도 시범단과 경제인들이 사할린주를 방문한 것이다. 그들을 잊고 살았던 우리였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사할린주에는 50여만 명이 살고 있다. 이 중 고려인들은 2만5천여 명으로 적지 않은 수치다.이번 행사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기도 태권도와 경제인들이 동포들을 찾은 깊은 의미가 있다. 행사명도 ‘한국-러시아 스포츠 페스티벌 겸 경제교류’로 정했다. 경기도 경제인들은 사할린 상공회의소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며 러시아 판로 개척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할린 시민들은 한국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경기도 상품을 살펴보며 ‘원더풀’을 외쳤다.행사 개막일에 열린 경기도 태권도시범단의 공연은 한 맺힌 우리 동포들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를 위해 방문한 관계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30분간 진행된 태권도 시범은 그저 태권도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절도있는 동작과 격파시범은 물론 K-POP과 어우러진 율동, 거기에다 화려한 퍼포먼스까지 종주국 태권도의 기개를 사할린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함께한 우리 동포들은 한국의 저력을 느끼며 자부심을 갖게 됐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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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년, 묘지명(墓誌銘)을 쓰듯이 지면기사
시민 대부분 ‘시장·구청장이 누구’인지 몰라주민 잃어가는 지방자치 공허한 외침일 뿐단체장들 ‘묘지명’ 쓴다는 각오로 1년 반성해야시인 정호승의 작품 중에 ‘새들을 위한 묘비명’이란 게 있다. ‘여기//가장 높이 나는 새가 되고 싶었던//밥 먹는 시간보다//기도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새들의 노숙자 한 마리 잠들어 있다’. 다섯 줄짜리 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읽을수록 긴 여운을 준다. 생각해 보자. 나는 영락없는 이 묘비명의 주인공 새 신세가 아닌가. 늘 남들보다 더 얻기 위해 애썼다. 학생 때는 더 나은 성적을, 졸업하고는 대우가 더 좋은 직장을, 더 잘난 배우자를, 더 뛰어난 자식을 갖고자 몸부림쳐 온 일생이다. 시인은 우리네 인생을 새에 빗대 깊은 반성에 잠기게 한다. 이름만 ‘새’라고 붙였지 실상은 ‘인간의 묘비명’인 셈이다.묘비명은 보통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인생을 정리해 기록하게 마련이지만,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죽음을 상정하고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는 글을 짓기도 했다.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나 ‘자만시(自挽詩)’ 등이 그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냉정히 돌아보기에는 죽음을 전제한 것 이상이 없을 듯하다. 이런 점에서 정호승의 시는 ‘죽음’으로, ‘새’로 하여 내 삶을 두 번이나 객관화하면서 자화자찬이나 변명이 끼어들 여지를 미리 차단했다. 삶을 반추하고 더 나은 생을 위하자는 데 변명이나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면 그게 제대로 되겠는가. 내 인생을 남의 것 바라보듯 하는 게 잘된 ‘자찬묘지명’의 최대 강점이리라.7월 1일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일제히 2년차 일정을 시작했다. 광역이건 기초건 가리지 않고 단체장들의 취임 1주년 인터뷰가 쏟아지고 있다. 단체장들은 대개가 지난 1년의 성과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저 ‘자기 자랑’ 일색이다. 단체장들은 늘 관내 주민 수를 입에 달고 다닌다. 몇 십만 명이니 몇 백만 명이니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뒤에는 그 많은 주민이 버티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그러면 주민들에게 단체장은 어떠한 존재일까.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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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일깨운 공공의료 지면기사
규모·숫자 OECD 3분의 1 수준 ‘위기대처 한계’민간 ‘수익 급급’ 환자위한 시스템 만들지 못해“이젠 국가안보 차원에서 지원” 커지는 목소리국회에서 지난 26일 열린 ‘메르스 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보건의료 발전 방안 긴급 심포지엄’에서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김진용 과장은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확진 환자를 보고 있는 서울의료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 감염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는데, 삼성서울병원에서 의료진 감염이 계속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던졌다. 1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감염병을 대비하려고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는 민간병원이 과연 있겠느냐는 거다. 그 역할을 공공의료기관인 국립의료원과 지역 의료원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김 과장은 “환자 1명만 보더라도 간호사는 최소 2명이 있어야 하고, 레벨D 보호구(전신 보호복과 고글(안경), 의료용 마스크, 장갑, 덧신 등이 포함된 보호장비)는 20세트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천의 한 종합병원장이 레벨D 보호구 세트가 5세트나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걸 들었다. 이 병원은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립중앙의료원은 돈은 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훈련을 하고있다”며 “전 직원이 감염병 보호장구를 입고 벗는 훈련을 하고 경진대회까지 연다”고 소개했다. 훈련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 이런 점이 민간병원과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김 과장은 이날 “지방의료기관을 복지부 산하기관으로 해 국가적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승연 인천의료원장도 최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조 원장은 메르스를 겪으면서 국내 의료시스템의 모든 문제를 드러냈다고 했다. 이른바 ‘빅 파이브’ 병원에 전국의 환자가 집중돼 입원을 위해 3일에서 5일까지 응급실에 대기해야 하는 문제, 수익을 내기 위해 다인실 위주로 병실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문제 등 민간 병원의 한계가 그대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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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 발본색원 유비무환 지면기사
호흡기질환으로 국제적 망신 당하는 현실 ‘씁쓸’메르스 종식돼도 제2·3 전염병 또 엄습할 수 있어경제 마비되는 홍역 또 치른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사스)유비무환(有備無患)·(신종플루)발본색원(拔本塞源)·(메르스)속수무책(束手無策)’.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자성어가 항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 속내를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자식 키우는 앵그리맘들이 많다. 중동산 독감 일종인 메르스가 국내에 들어와 지난달 20일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꼬박 한달이 지났다. 신규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 확산세는 확연히 꺾였지만, 정부 당국조차 종식선언을 운운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병원공개를 미뤄 초기대응에 실패한 정부가 또다시 양치기 소년 불신을 자초할 까 우려하는 심정일 게다.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마비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메르스가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생활의 패턴까지 바꿔놓았다.특히 메르스 1차 진원지인 평택을 비롯한 수원, 화성 등 경기도 지역경제는 굳이 구체적 손실을 헤아리지 않더라도 대인 기피증 현상까지 불러올 정도로 소비를 위축시켰다. 심지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들르는 동네 슈퍼는 물론 미용실, 목욕탕, 칼국수 가게 등 골목상권들이 처참하게 당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메르스 추가 확진자와 격리자,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났는지에 대한 실시간 생중계 보도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뿐, 폐업위기로 치닫는 소상공인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는 정부나 자치단체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고 있다.세계무역기구(OECD) 가입국인 대한민국이 이토록 전염병에 속수무책이었던가? 반도체, 조선 등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외 신뢰도가 이까짓 호흡기질환 하나 정도 잡지 못해 국제적 망신을 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무기력해진다고 씁쓰레하는 사람들이 많다. 홍콩과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매년 방학 때면 오고 가던 교환학생 파견을 저지할 정도로 창피를 당하고 있다.돌이켜보면 지난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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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흔들리는 건강하지 못한 대한민국 지면기사
근거없는 루머 퍼트려 불안과 공포심 조장차후엔 ‘아니면 말고’식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이젠 국민들 표현방법도 합리적으로 변할때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쇼크로 온 나라가 난리다. 보건당국의 미숙한 대처로 확산된 메르스는 국민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확인되지 않은 괴담까지 퍼지면서 대한민국은 멘붕 상태다. SNS와 트위터 등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진 괴담으로 국민들은 불안괴 공포에 떨고있다. 더 큰 문제는 정체없이 떠도는 괴담으로 대한민국의 위상 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10만여명의 관광객이 한국방문을 취소하고 한국인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처음부터 국민들이 메르스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감염되지 않도록 대처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감염자가 발생하고 확진 판정을 받는데도 정부만 심각성을 모르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그러는 사이 SNS 등 인터넷에는 괴담이 퍼졌고 이것이 사실인것처럼 입으로 전파돼 메르스보다 빠르게 확산됐다. 경기 남부 7개지역 학교가 휴업을 하게 된 것도 괴담이 쓰나미처럼 확산됐기 때문이다. 화성 동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메르스에 감염, 자가격리됐고 학생들도 전염됐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시작됐다. 근거도 없는 괴담은 학부모들의 입과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 동탄지역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사였다. 결국 루머의 발단이 됐던 초등학교는 학부모들의 항의에 휴업을 결정했고 휴업사태는 경기도내 절반이 넘는 학교로 번졌다. 불안감이 커진 학부모들은 또다른 괴담을 양산하면서 경기도내 절반이 넘는 학교가 휴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괴담으로 대한민국이 큰 혼란을 겪은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8년 한미 FTA 협상 당시 ‘광우병’파동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미국의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만 수입해 우리가 그것을 먹고 광우병에 걸린다는 괴담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같은 괴담으로 한국사회는 FTA를 반대하는 여론으로 들끓었고 6살 난 아이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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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학의 도로 지면기사
WHO, 지난해 메르스 검역강화 ‘황색등 권고’정부, 우왕좌왕 ‘장롱면허’ 수준의 미온적 대처에러 발생때 순발력 있게 상황정리 능력 필요운전 중 교차로를 앞두고 신호등에서 황색등이 켜진다. ‘주의’를 하라는 교통신호다. 운전자는 곧바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현재 속도와 정지선까지의 거리, 뒤차와의 차간거리 등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것인지, 아니면 빨리 교차로를 벗어나기 위해 액셀을 밟을 것인지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에는 두세번 브레이크를 밟는 등의 행위로 뒤차에 자신의 의도를 알린다. 교차로를 그냥 지나칠 때에는 비상등을 켜거나 상향등을 깜박이는 것으로 다른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들춰보게 된 책이 있다. 일본 심리학자가 쓴 ‘실패학’ 관련 서적으로, 책이 나온 지 15년이 지났다. 책이 발간될 즈음 일본에서는 실패나 사고의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사회가 공유하고 실패학을 새로운 학문분야로 발전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이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실패를 교훈으로 삼기 위한 여러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책 또한 그중 하나다.앞서 운전사례는 인간을 정보처리 장치에 비유해 인재, 즉 휴먼에러(human error) 발생 가능부분을 입력(신호등 인지)·매개(판단·의사결정)·출력(동작의 계획·수정)과정 등으로 단계별로 나눠 소개한 대목이다.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운전대를 잡은 정부는 어떤가? 우선 입력과정에서부터 에러를 범한 것은 분명한 듯 하다.세계보건기구(WHO)가 메르스의 국가간 전염의 가능성이 급증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회원국들에게 메르스 감염예방과 검역을 강화할 것을 권고한 게 지난해 5월이다. 그러나 정부는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운전 중 코앞에 황색등이 켜졌는데 눈을 감아버린 형국이다.적색등이 들어온 교차로에선 우왕좌왕하면서 ‘장롱면허’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WHO 합동 평가단의 지적처럼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가 제일 중요한데도 ‘괴담’에만 집착한 나머지 위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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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소년체전 제도 개선 시급하다 지면기사
1위밖에 모르는 ‘성적 지상주의’ 꿈나무 좌절선의의 경쟁보다 ‘승리위한 전쟁’으로 혹사‘1~17위 차등 점수’로 소속·자신감 심어줘야‘꿈나무들의 스포츠 축제’ 제4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이하 소년체전)가 지난 2일 제주도 일원에서 막을 내렸다. 경기도는 비공식 메달집계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개운하지 않다. 이 대회를 주최한 대한체육회의 공식적인 메달 집계 방식 종합순위가 아니라 비공식 메달집계 방식의 우승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년체전에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2만 여명의 선수 및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물론 각 경기장에는 학부모와 지도자, 학교, 교육청, 체육회 관계자 등이 어린 선수들과 팀을 격려하는 등 무척 분주했다.하지만 각 시·도교육청간의 이해득실에 따라 성적 지상주의로 변질한 소년체전은 꿈나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대신 좌절감만 안겨줬다. 경기장마다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꿈나무들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눈물을 흘리기에 바빴고, 일부 지도자들은 성적 지상주의로 얼룩진 이런 소년체전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한숨만 내쉬었다. 이 같은 일은 수년간 반복되어 온 소년체전의 현주소다.소년체전은 미래 한국 스포츠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점검하기 위해 만든 꿈나무들의 종합스포츠 축제다. 미래 엘리트 선수들을 배출해내고 나아가 국가대표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소년체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소년체전이 지도자들과 어린 선수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이유는 바로 1위 밖에 모르는 성적 지상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동안 대한체육회는 어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종합채점제 또는 메달채점제를 번갈아가면서 시·도 종합순위를 가렸다. 시·도간 과열 양상이 높아지자 대한체육회는 지난 1992년 제21회 대회 때부터 종합순위를 폐지하는 대신 개인시상만 실시했다. 이후 1997년 26회 대회 때부터 아예 메달 집계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도교육청간 음성적으로 메달 집계 또는 종합채점제로 순위를 정하는 상황에 이르자 대한체육회는 지난 2001년 30회 대회 때부터 홈페이지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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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합 의 성소 ‘독도’ 지면기사
광복 70주년 맞이 경기도 리더들 2박3일 일정 탐방경제이득 혈안 日 우익세력… 독도침탈 야욕 가시화청소년 영토 수호·민족의 소중함 체험장 만들어야메르스 사태에 휩싸인 뭍과 달리 독도는 말간 얼굴로 의연했다. 햇살은 독도 사면에 부딪혀 찬란하게 흩어지고, 동해는 검은 돌섬 독도로 인해 더욱 짙푸른 색으로 우리 영해를 표시했다.지난 2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경기도민과 함께하는 울릉도-독도 탐방 및 독도포럼에 다녀왔다. 경기문화재단과 사단법인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가 주최·주관하고 경기도, 경기도의회, 경인일보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두번째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70명으로 꾸린 탐방단에는 도의원과 고양시의원, 유공자단체 간부, 문화계인사 등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독도 입도일인 3일 오전, 엄청난 강풍으로 울릉도 전체가 들썩였다. 강풍재난경보가 발령되고 모든 배의 입출항이 금지됐다. 허나 독도를 친견하려 울릉도에 머문 뭍 사람들의 염원을 가납한 것인가. 다음날 하늘은 독도로 향하는 바닷길을 열어주었고, 우리는 푸른 비단을 미끄러지듯 독도로 향했다. 울릉도에서 90분 남짓의 뱃길이 끝나자 동도 선착장에 도열한 독도경비대원들의 거수경례로 독도 순례자들을 맞아주었다. 의식의 엄숙함은 우리 영해의 끝에서 영토수호의 상징으로 곧추 서있는 독도의 위용에 어울릴만 했고, 영토 순례자들의 가슴을 벅찬 기운으로 가득채웠다.해방 70년. 우리는 해방의 순간 영토의 절반을 다른 체제에 내주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독도 침탈야욕에 긴장하고 있다. 폭력적으로 우리에게 식민지배를 강제한 일본은, 이제 우익세력의 정치적 이득과 배타적경제수역의 확대를 노려 독도를 겨냥한 만행을 자행중이다. 내년부터 독도를 자국 영토로 기술한 중학교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베정권의 사주와 비호 아래 우익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날이 갈수록 기승이다.한일 양국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나, 실효적 지배의 세월로 보나 독도는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이다. 지난 10년간 독도를 찾은 국민이 140여만명에 이른다. 일본이 아무리 자국영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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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자의 심정으로 밥먹자 지면기사
4월말 경인지역 쌀재고량 17만4천톤 ‘5년새 최고’애국·애향심 마케팅과 아침밥 급식등 생각해 봐야정부도 가공용 쌀로 소비자 선호 먹거리 연구 필요쌀이 남아돈다. ‘이밥에 소고깃국’이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때가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5대양 6대 주에 걸쳐 전 세계인들이 즐겨먹는 주식 중 하나인 쌀이 대한민국에서 남아돈다는 얘기는 그 자체만으로 잘사는 나라를 의미한다. 옥수수에 이어 밀과 함께 인류의 3대 주식인 쌀의 역사는 무려 1만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가 지구의 기후변화를 거치면서 야생벼를 발견하고 재배벼 기술을 습득해 풍토에 따라 입맛에 맞는 쌀 품종을 개발해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생산되는 길고 가느다랗고 푸석거리는 ‘안남미’(인디카·indica)와 우리 국민들이 즐겨 먹는 둥글고 짧은 모양의 차진 자포니카(japonica)가 대표적인 품종이다. 세계공통의 벼 학명(學名)은 오리자(Oryza)다.이런 쌀이 전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재고량이 넘쳐나고 있지만 북한이나 아프리카 등 상당수 나라는 쌀이 없어 굶어 죽는 기근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특히 지난 1994년 UR(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20년간 유예가 종료돼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밥쌀용’ 쌀 수입에 대한 정책의 배경과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저율관세할당(TRQ)으로 1만t 수입을 위한 전자입찰을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실시해 농민단체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농림부는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가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출한 양허표 수정안(관세율 513% 등)을 원안대로 확정하기 위해서는 WTO에 맞게 저율관세할당제 운영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관세화 후 현행 의무수입물량(MMA·40만9천t) 이외의 수입량은 미미해,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려면 WTO 협정에 따라 의무수입물량을 늘려야하는 등 대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수입하더라도 쌀 수급조절과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소득 보전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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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재상과 초단명 총리 지면기사
황교안 총리후보 청문회 순탄치만은 않아 보여황희, 구설속 태평성대·이원익, 믿음속 난세극복나라와 국민위한 재상모습 한번쯤 보고 싶을뿐조선시대 명 재상을 말할 때 사람들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아무래도 황희일듯 하다. 태종 때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아들인 세종 역시 자신의 세자 책봉에 반대해 유배 중이던 그를 복직시켜 중용했으니, 당대를 대표하는 명망가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장수한 재상답게 황희는 어느 소가 더 일을 잘하느냐는 질문에 조심스레 답하는 농부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았다거나, 다투는 여종들의 하소연에 모두 ‘네 말이 옳다’고 말했다는 등의 숱한 일화를 남겼다. 그러나 청빈과 멸사봉공의 표상으로 알려진 명성 못지않게 그를 둘러싼 추문도 적지 않았으니, 실제 황희가 아전을 때려 죽인 사위의 살인사건을 은폐하고 권세를 이용해 친인척들의 부패를 덮으려 했다는 사실은 기록으로도 남아있다. 매관매직을 서슴지 않았다거나 죄지은 여자를 집에 숨겨주며 간통했다는 얘기에까지 이르면, 과연 이 사람이 곧은 인품과 청렴의 대명사로 불리는 게 가당한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생긴다.대중적 인지도에선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오리 정승’ 이원익은 여러모로 황희와 견줘지는 인물이다. 정유재란 이후 영의정에 오른 그는 거친 세파 속에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할 때도 각각 첫 재상으로 선택됐다. 황희의 앞뒤 맞지 않는 청빈이 ‘작위성’ 논란을 빚고 있는 데 비해, 그는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집에 떨어진 갓을 쓰고 지내 아무도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는 얘기가 실록에 기술돼있을 만큼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겸양과 자기 검열에도 누구보다 철저해 무려 18회나 사퇴 상소를 올렸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황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미화된 청백리였다면, 이원익은 죽기 전 ‘절대 후하게 장사 지내지 말라’고 유서를 남길 만큼 능력과 청빈을 함께 갖춘 명재상이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대체적 평가다.관점에 따라 평가는 제각각이겠으되, 이 두 재상 모두 흔치 않은 장기 재임 정승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