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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인천초등생 유괴 살인사건과 소년법 개정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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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인천초등생 유괴 살인사건과 소년법 개정 논쟁 지면기사

    "세상을 떠난 우리 아이가 더는 슬퍼하지 않을 만큼 (피고인이) 제대로 된 벌을 받았으니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2017년 7월12일. 수습기자 시절, 인천지법의 한 법정에서 피해자의 어머니가 증인석에 앉아 피고인의 엄벌을 호소하면서 한 말이었다. 자신에게 보물과 같았다는 8살 막내딸을 하루아침에 떠나보낸 어머니의 시선은 줄곧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뒤 유기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사람은 미성년자인 A(17)양이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인천 초등생 유괴살인사건' 재판이었다. 생전 처음 경험한 재판이었기 때문에 그날의 기억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최근 쉬는 날 볼거리를 찾다가 넷플릭스 국내 제작 드라마 '소년심판'을 보게 됐는데 첫 번째 일화가 유독 낯익었다. 피고인 성별, 나이 등 세부적인 부분은 달랐지만 사건의 큰 줄거리가 5년 전을 떠올리게 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드라마에선 만 13세 나이의 촉법소년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촉법소년은 소년법에 따라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이 내려진다. A양은 징역 2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드라마에서의 촉법소년은 장기 소년원 송치인 보호처분 10호를 받게 된다. 물론 A양도 범행 당시 만 18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재판부가 무기징역을 선택하더라도 관련 법에 따라 20년의 유기징역형을 선고해야 하는 점이 반영됐다.5년 전 그때처럼 이번에는 소년범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 소년심판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소년범 처벌 강화 등 소년법 개정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소년범은 미성숙하고, 장래가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게 소년법이다. 소년범 처벌 강화 등 국민 법감정을 고려한 소년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필요하다. 이와 함께 소년법 취지대로 소년범을 교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도 되돌아봐야 할 때다. /김태양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ksun@kyeongin.com김태양

  • [노트북] 비극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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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비극과 책임 지면기사

    10년간 26건.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의 수다. 특히 코로나19로 가족의 돌봄 부담이 커지며 죽음은 더욱 빈번해졌다. 2020년 3월 제주도에서는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장애인과 어머니가 세상을 등졌고, 이듬해 11월 전남 담양에서 발달장애인 아버지가 발달장애 자녀와 노모를 살해했다. 비극은 매년 장소와 날짜를 달리해 비슷한 형태로 반복돼왔다. 지난 2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9살 아이가 엄마의 손에 숨졌다. 강아지를 좋아했고 또래보다 유난히 몸집이 작았던 아이였다. 미혼모인 엄마는 발달장애를 앓던 아이를 홀로 키워왔다. 모자는 매달 160만원가량의 생활비를 지원받아 월세 20만원 반지하에서 함께 지냈다. 20년을 넘게 동네에서 살아온 주민들조차 이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어떤 기관도,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던 아이의 세상은 엄마와 함께였던 반지하가 전부였을 것이다. 같은 날 다른 곳에서는 발달장애 딸을 죽인 엄마가 체포됐다. 말기 암 환자인 엄마는 이혼 후 발달장애 딸을 홀로 키워왔다. 작은 화원을 운영했던 그는 열심히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보려 했지만, 코로나로 장사는 잘되지 않았고 건강 악화로 가게 문을 닫는 날이 잦았다. "아무리 힘들었어도"라는 말로 입을 연 그의 이웃은 곧 "안타깝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을 '비정한 부모'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한 엄마는 "초등입학의 설렘보다는 낭떠러지 끝자락에 서 있는 공포감이 더욱 컸다"고 회상했다. 두 부모가 감당하기에도 벅찼을 돌봄 부담을 홀로 떠안았던 이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그 공포감을 발달장애인의 가족들이라면 느껴봤을 것이다. 이제 가족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책임을 나눌 때다.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서 발달장애인들이 졸업 후 성인이 돼도, 돌봐줄 보호자가 없어도, 가족 없이 홀로 남겨진 노인이 돼도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낭떠러지 끝자락에 서 있는 이들을 외면할 것인가. /이자현 사회교육부

  • [노트북] 피해를 직면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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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피해를 직면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지면기사

    한 장병은 탈출구가 없는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면 불안도가 높아져 아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다른 장병은 업무에서 벗어나 긴장이 풀리면 팔과 다리가 오그라들고 동공이 풀리는 발작 증세를 보인다.2010년 3월26일, 폭침으로 가라앉은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의 이야기다. 보건학자 김승섭은 그들의 트라우마를 듣고 자신의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 이렇게 적었다.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천안함 사건'은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폭침의 원인을 둘러싼 분석과 책임소재 따지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생존 장병 58명의 이야기는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잊혔으므로, 제대로 된 기록조차 있을 리 없다. 살아남은 장병들이 트라우마에 허덕이고 '패잔병'이란 낙인에 고통받는지 알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이야기만 잊힐까. 일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유가족과 동료,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도 많은 경우 우리는 알지 못하고 떠나보낸다.김승섭 작가가 천안함 생존 장병 연구에 들어선 계기는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였다. 정치권이 참사 이후 사안을 진영논리에 가두는 동안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뒷전으로 밀리고, 잊혔다. 천안함에서 남은 자들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10일 새벽,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됐지만 우려가 앞선다. '여가부 폐지' 등의 '한 줄 공약'으로 2030 남성 표심 획득에는 성공한 듯 보이나, 정작 여성들에게 이 메시지는 현실적 위협에 다름 없을 수 있다. 부처의 '쓰임'이 문제라면 대안을 펼쳐놓고 공론장에서 머리를 맞대면 될 사안이다. 대안 없는 '성 평등'은 그저 텅 빈 기표에 불과하다. 피해를 외면하는 지도자가 아닌, 피해를 인정하고 바로 보는 지도자를 원한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 [노트북] 소중한 한 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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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소중한 한 표의 의미 지면기사

    투표 도장 모양은 왜 '점 복(卜)'자일까. 문득 그 이유가 궁금했다.애초 도장 속 모양은 '卜'자가 아닌 원형(○)이었다고 한다. 투표용지를 반으로 접었을 때 반대쪽에 묻어 무효표가 발생해 1992년 원형(○)에 사람 인(人)자를 더한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문양은 좌·우 구분이 명확히 되지 않는 데다, 'ㅅ(시옷)'과 비슷해 일부 후보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1994년부터는 최종적으로 점 복(卜)자가 삽입돼 현재까지 이어졌다.그냥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양이지만 나름 깊은 뜻도 있다. '卜'의 사전적 의미는 '점(占)', '점치다(占--)' 등으로, 투표 도장에는 '새로운 당선자를 점치다'라는 뜻과 더불어 '생각하다', '다시 한 번 되짚는다'는 의미가 담겼다.지난 주말,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이 나올 정도로 많은 유권자가 투표 도장을 찍었다. 각 당은 높은 투표율을 두고 가지각색의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제20대 대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보여주는 수치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준비는 비판받을 만했다. 유권자들의 투표용지를 택배 상자, 소쿠리, 급기야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는 것은 표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선관위의 안일한 대응이었다. 겉으로는 그저 종이 한 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표 한 장에는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한 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나의 한 표가 당락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면 한 표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선관위도 유권자도 모두 이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드디어 다가온 본 투표. 사전투표 열기가 본 투표에서도 이어지길. 선관위도 사전투표 때의 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길 바란다. /유진주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기자 yoopearl@kyeongin.com유진주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기자

  • [노트북] 어라운드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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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어라운드 뷰 지면기사

    친동생이 최근 새 차를 뽑았다.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신식 시스템은 다 갖췄다. 차량 외형도 근사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어라운드 뷰'였다. 어라운드 뷰는 자동차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가 보낸 영상신호를 1개의 화면으로 합성해 보여주는 기술이다. 약 15년 전 나온 이 기술은 당시 고급 자동차 모델에만 탑재됐지만 최근 들어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이 기술로 자동차 운전자는 차 주위 모습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됐다. 자동차에 생기는 사각지대가 없어진 것이다. 어라운드 뷰의 탄생은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만으로 사방을 살피며 주행·주차하던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안전을 향한 갈망이 현대 기술과 어우러져 만들어 낸 멋진 보호 장치인 셈이다.안전과 기술이 만나 사각지대를 없애는 시대에도,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가 빤히 보이는 곳이 존재한다. 최근 인천컨테이너터미널(ICT)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는 ICT에서 일하면서도 ICT의 안전보호조치 테두리 밖에 있었다. 항만 업계의 복잡한 근로계약관계가 안전보호조치 테두리 밖의 사각지대로 밀어낸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항만과 항운 업계는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 급급하다. 올해 8월 시행을 앞둔 '항만안전특별법'에 자신들에게 부담이 조금이라도 덜 가는 방향으로 시행령·시행규칙이 만들어지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ICT에서 비극을 맞은 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누구에게는 소중한 남편이자, 아들이었으며 직장동료이자, 친구였을 게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항만용 어라운드 뷰가 있었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안전 사각지대를 꿰뚫어 볼 어라운드 뷰의 탄생을 위해 항만업에 몸담은 이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할 시점이다./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작심삼일을 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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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작심삼일을 피하는 법 지면기사

    작심삼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첫 번째, 구체적 계획 정하기. ‘운동 꾸준히 하기’ 보다는 일주일에 3번 이상 헬스장 가기처럼 지킬 수 있는 기준을 둔다. 계량화된 기준이 있으면 이행 상태를 체감할 수 있고 설령 3번을 다 못 채우더라도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점검 가능하다.두 번째, 실현 가능한 목표 세우기. 체지방률 20%인 직장인이 1년 안에 복근으로 무장한 몸 상태인 체지방률 10% 미만으로 낮추기는 쉽지 않다. 먼저 6개월 이상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하면 감량 가능한 15% 수준으로 세우고, 달성 여부에 따라 추가적인 목표를 정한다.벌써 2월의 끝에 다가와 있다. 수년간 새해를 시작하며 세워 놓은 각오들이 앞선 간단한 원칙들을 지키지 못해 무너져 왔다. ‘이번엔 기필코 지키리라’ 다짐해 나름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로 빼곡히 채운 올해 계획들은 점검 결과 절반 이상 겨우 지켜나가고 있다. 이처럼 스스로와의 약속도 전략이 없으면 지키기 어렵다.그러나 현재 대선후보들의 경기도 공약들을 살펴보면 작심삼일 정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최근에서야 일부 노선의 사업 승인을 받은 GTX에 대해서는 수익성, 재원마련 방안 등 추진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노선을 신설하고 연장시키는 공약들을 각 후보가 앞다퉈 내놓았다. 경기 북부에 대해서도 균형발전을 위해 개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지역과 발전 방안에 대한 언급 대신 ‘첨단산업단지 구축’, ‘거점도시 육성’과 같은 장밋빛으로 포장한 공약들만 남발했다.대통령 선거가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1천350만 경기도민들과 한 약속들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 위해 구체성과 현실성에 대한 원칙을 후보들은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 [노트북] 재활용 힘든 '선거 현수막', 언제까지 쓸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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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재활용 힘든 '선거 현수막', 언제까지 쓸텐가 지면기사

    선거의 계절이 찾아왔다. 제20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5일 아침. 전날 밤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후보들의 선거 현수막이 사거리마다 걸려 있었다. 선거가 다가왔음을 실감함과 동시에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선거철에 무수히 걸려 있던 선거 현수막은 선거가 지나면 곧바로 버려진다.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후보가 많지만 정작 그들의 공약을 내건 현수막은 친환경의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녹색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대선에는 5만2천545장, 2018년 지방선거에는 무려 13만8천192장, 2020년 총선 때는 3만580장의 현수막이 각각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수막이 가장 적게 쓰인 2020년 총선 당시 현수막들을 모두 이어 붙이면 305.8㎞. 63빌딩 높이의 1천225배에 달한다. 선거 직후 당선인사 혹은 낙선인사에 쓰인 현수막까지 포함하면 더 많았을 것이다.3만580장 중 재활용된 현수막은 25%에 그쳤다. 후보자 사진과 이름, 슬로건 등을 인쇄할 때 쓰인 염료가 묻어나오면 재활용을 할 수 없고 그나마 재활용을 해도 질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고 한다. 결국 4장 중 3장의 현수막이 소각 처리되는 셈인데, 폴리에스테르처럼 플라스틱을 만들 때 쓰는 합성섬유로 제작된 현수막을 불로 태우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현수막을 쓰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끌어 한 표라도 더 얻어야 하는 이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할 틈이 있을까.대선 후보는 많아야 15명 이하지만 6월 지방선거 출마자는 어림잡아 수 천명이다. 올해 선거에서 쓰인 현수막의 길이를 내년 이맘때쯤 다시 헤아려보면 얼마나 많을까. 온택트 시대, 제로웨이스트가 화두가 되는 지금 정치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홍보 전략을 써야 할 때다. /한달수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개발과 상생의 평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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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개발과 상생의 평행선 지면기사

    갈 때마다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는 수원 행궁동. 수원 화성(華城)이 둘러싼 아늑한 동네에 주택을 개조한 개성있는 가게들로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다.활기가 도는 지역의 밝은 면 그 뒤에는 주민들의 남모를 고민도 있었다. 상당수의 주민이 떠난 이곳에 남아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소음문제, 쓰레기문제, 주차문제와 같은 현실과 타협하는 일 말고도 그들에게는 "언젠가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찾는 시절도 끝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존재했다. 이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이미 이 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며 살기 어렵고, 가게 주인들은 와서 돈만 벌어 나간다는 인식이 생겼다. 한번 가게로 개조된 주택들은 다시 주거기능을 하려면 여러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 70대 어르신은 "아마도 내가 떠나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란 이야기를 툭 던졌다. 주민들은 이미 문화적·심리적으로 내몰리고 있는 듯했다.최근 썼던 기사에서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표현이라 생각하는데, 내 집 앞에 빨래도 마음 편히 널지 못하는 상황부터 이 지역에서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포함된다.낙후된 지역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게를 늘리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만이 성공적인 도시재생이자 개발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성공적 도시재생·개발의 조건에는 이미 살고있는 주민들의 안정된 삶과 지역의 문화는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문득 1970~80년대 지역 개발의 바람을 정통으로 마주한 한 어르신의 말이 생각났다. "결국 원주민들이 다 떠나야 그 지역이 개발되더라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개발과 상생의 교집합을 찾는 일은 어렵다. /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 [노트북] 두려운 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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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두려운 개학 지면기사

    "전면등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체 어떻게 수많은 아이들을 관리해야할지… 이대로라면 등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될까 걱정입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한 보건교사는 늘어난 방역 부담에 개학이 두렵다고 말했다. 다음 달 신학기부터 학교의 방역 책임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다음 달부터 각 학교는 위험도를 판단해 학사 운영 방식을 정하고, 자체적으로 밀접접촉자를 분류해 신속항원검사나 PCR검사를 실시한다.1천명이 넘는 학생들을 관리해 온 보건교사들은 이제 동선 파악부터 밀접접촉자 분류까지 홀로 해내야 한다. 보건교사를 도와 온 일반 교사들도 학교업무에 방역업무까지 맡게 돼 부담이 커졌다. 보건교사 A씨는 "제가 매일 밀접접촉자가 돼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함께 격리해야 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한숨을 쉬었다.아이들에겐 학교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친구와의 접촉을 통해 단체생활의 규칙, 관계 맺는 법 등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운다.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그의 책 '포스트 코로나, 아이들 마음부터 챙깁니다'에서 "물리적으로 확보된 공간에서 아이들은 모여서 놀고 공부하고 떠들고 또 혼도 나고 괴롭힘도 살짝 당하면서 경험을 쌓아 간다"고 설명했다. 수학여행, 점심시간, 북적북적한 등하굣길. 코로나19 한복판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당연했던 모든 기회가 사라졌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되찾아줘야 할 책임이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교사들은 말하고 있다. 늘어난 방역 책임에 아이들과 만나 즐거워야 할 개학이 두려워졌다고, 교육활동이 마비되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학교는 방역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다. 교육부라면 '교육기관'으로서 학교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이자현 사회교육부 기자 naturelee@kyeongin.com이자현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토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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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토론의 의미 지면기사

    지난 연휴 내내 대선후보들 간 토론 이야기가 무성했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3일에서야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후보 간 4자 토론이 성사됐으나 깊은 토론이 이뤄지기보다 서로의 패를 확인하는 정도의 ‘감시 전(戰)’에 불과했다는 시각이 많다. 지금처럼 대선후보들 간 토론이 화두였던 적이 10여 년 전에도 있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무소속 이회창 후보 간 3자 토론이 무산됐다.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 인용되면서였다.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토론이 무산됐던 게 떠오른다. 이처럼 매 선거 때면 논쟁의 주제가 되는 게 토론이다.후보들은 토론 자체가 아닌 성사 여부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이들 후보는 토론보다 토론이 갖는 정치적 유·불리에 관심이 많다. 토론장 안이 아닌 토론장 밖에서 싸움을 한다. 최근 어렵사리 성사된 4자 토론에서 일부가 ‘콘텐츠(메시지)’가 아닌 ‘후보(메신저)’ 흠집 내기로 바쁘지 않았나.토론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표심의 유·불리만 따지는 토론이나 정치공학적 도구로서의 토론이 아닌, 어떤 정책이 더 우월한지 따져보고 국민 공감대를 살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토론이 우리 선거에 참 절실하다. 선거법에서는 선거기간 동안 3회 이상 중앙선관위 주관으로 TV토론을 열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오죽하면 법으로 정했겠나.지난 2일 이재명, 김동연 후보의 양자토론이 있었다. 가장 먼저 열린 대선후보 토론이었다. 재미는 없었다는 평이 많았으나 후보 당사자가 아닌 정책의 질을 따져보는 토론이었다. 양자가 좋냐, 다자가 좋냐는 게 아니다. 한 번의 토론은 빙산의 일각으로 그칠지 몰라도 열 번의 토론은 바다를 볼 수 있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