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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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일 경제전쟁 지면기사
"한 번 뛰어서 곧바로 대명국(大明國)에 들어가 우리나라(일본)의 풍속을 4백여주에 바꾸어 놓고…." 임진왜란 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통신사를 통해 선조에게 전달한 국서의 내용이다. 그러면서 선조가 직접 자신을 알현할 것을 요구했다. 명을 칠테니 자발적으로 길을 내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논리는 조명 동맹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고, 조선은 당쟁으로 허송세월했다. 이런 나라 탓에 조선 백성들은 일본에 귀무덤, 코무덤을 남겨야 했다.외침에 이골난 한민족이지만, 일본에 대한 역사적 반감은 특별하다. 임진왜란과 일제식민지배로 두번이나 나라가 절단난 역사를 민족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 임란은 성웅 이순신과 동맹인 명의지원으로 그나마 국권을 지켜냈다. 하지만 이순신도 없고 동맹도 없었던 대한제국은 국권을 강탈당했다.일본이 우리를 향해 사실상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핵심 소재 수출제한으로 삼성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을 정밀 타격했다. 일본이 소재, 부품, 장비 공급을 제한하면 한국 기업들은 공장을 세워야 한다. 일본의 의도는 명백하다.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백지화,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피해보상 결정에 대한 반격이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의 가해역사는 종결됐음을 인정하라는 강요다.한국에서는 반사적으로 반일 감정이 일고 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경기도교육청은 '수학여행'을 일제용어라며 청산하겠다고 한다. 감정적으로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과연 대응의 방식으로 옳은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했다는데, 나라는 어디가고 의병부터 찾는단 말인가. 일본의 경제전쟁 선포에 국력을 모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의 책무가 있다. 무능했던 선조도 일본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니라 정부의 통상전문가가 일본을 갔어야 했다.국제사회에서 국력의 뒷받침 없는 선린우호 관계는 사상누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우리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면 우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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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달 착륙 50주년 지면기사
기억난다. 1969년 7월 20일. 일요일이었다. 동네에 TV가 있는 집은 딱 한 곳이었는데, 그 집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마음씨 좋은 집주인은 싫은 내색 없이 오히려 어른들에게 이날을 기념하자며 막걸리를 한 사발씩 따라 주었다. 우리는 모두 TV 앞에 모였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실황중계를 보기 위해서다. 흑백 TV를 통해 달에서 껑충껑충 뛰던 사람이 닐 암스트롱이고, 그가 달을 밟으며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후에 알았다. 그때는 당장 달에 방아를 찧는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우주 탐사의 역사는 미·소 체제 경쟁의 역사다. 1961년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에서 10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미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달 정복을 선언했다. 아폴로호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미국이 달을 선점했다. 하지만 경쟁자가 없으면 기록은 늘 뒤처지게 마련이다. 경제 악화로 러시아는 우주에 투자할 여력을 잃었고, 미국도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항공우주국(NASA)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우주는 점점 기억에서 사라졌다.우주경쟁에 다시 불을 붙인 건 미국의 사업가 데니스 티토였다. 그는 2001년 러시아에 2천만 달러를 내고 민간인 최초로 소유스 우주선을 탔다. 이후 18년간 총 7명의 민간인이 사비를 털어 우주로 나갔다. 이를 본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저스의 블루 오리진, 버진 에어라인 창업주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우주 항공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는 20일은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NASA는 이를 기념해 지난달 '아르테미스'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 아르테미스 1호를 발사해 달 궤도 무인비행을 하고, 2022년 2호로 우주인을 싣고 달 궤도 비행을 한 뒤, 2024년 아르테미스 3호로 유인 달 착륙을 하며 최종적으로 달에 인간이 머물 기지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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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인물시 지면기사
미당 서정주의 작품 세계는 전 생애를 걸쳐 크게 변화했다.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에서 원시적인 생명력을, 두 번째 시집 '귀촉도(歸蜀途)'는 인간의 슬픔이 주조를 이룬다. '신라초(新羅抄)'에선 동양사상을, '질마재 신화(神話)'에서는 '이야기꾼'으로 변모한다. 그러던 그가 세계 여행의 체험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1992년 세계의 산 이름을 소재로 '산시(山詩)'를 선보였다. 산 만 가지고 풀어쓴 시로 "역시 미당!"이란 탄성이 나온다.미당이 산으로 시를 썼다면 인물로만 시를 쓴 시인도 있다. 시인 고은이다. 1980년 여름,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 특별감방과 대구교도소에 갇혀 있는 동안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유·무명 인물들에 대한 시를 구상해 1986년부터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연재를 시작했다. 2010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시집 30권에 총 4천1수를 수록하여 발간했다. 많은 사람에 대해 적은 기록이란 뜻의 '만인보(萬人譜)'다.한국사의 역사적인 인물들부터 어린시절 친구, 이웃들까지,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5천600여명에 이른다. 시적 완성도에 대해선 여전히 엇갈리지만 자유와 해방, 민주와 민족의식을 불교사상에 근거해 내밀하게 다뤘다는 평가에는 이의가 없다.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 시라는 점에서 노벨상 후보에 오를 때 '만인보'가 거론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역사 속 인물들을 시로 조명해 온 이오장 시인이 월간 '시' 7월호에 발표한 '인물시'가 큰 화제다. 정파를 가리지 않은 3행의 짧은 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시인의 쓴소리에 33인 정치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는 없다. "안개 강 하나 건너와 옷깃 터는가/자연은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오는 것/그대가 받들어야 할 자연은 국민이다." ('문재인' 전문) "이 세상 모든 것은 공주가 갖는 것/공주의 모든 것은 부마가 갖는 것/부마 없는 공주는 국민이 부마." ('박근혜' 전문) 문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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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동창회에서 지면기사
"전두환 아니었으면 우리 같은 촌놈들이 대학에나 갈 수 있었겠냐?"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5년만에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했다. 5년 주기로 동창회가 열리는 만큼, 이번에 빠지면 환갑에나 고교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동창 친구의 말에 이끌린 것 같다. 역시 오랜만에 벗을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수십 년 세월의 더께에 가려진 옛 얼굴의 흔적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출렁거리는 배를 안고 닭싸움을 해도 부끄럽지 않은 시공간의 왜곡 현상까지 경험하고 나니 그동안 인적 네트워크의 후순위에 밀려 있던 동창회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저녁 뒤풀이 시간,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가 자녀교육 문제로 옮겨갔다. 다들 사교육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더니 결국 과거와 현재의 교육정책을 비교평가하는 장이 펼쳐졌다.서두에 쓴 친구의 말처럼 시골에서 부유하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낸 50대 중반 세대들은 전두환 교육정책의 덕을 본 것이 맞다. 이른바 학력고사 세대들이다. 전두환 정부는 사교육을 전면금지하고, 대학별 고사를 폐지하는 대신 국가에서 출제하는 학력고사로 일원화시켰다. 특히 이날 모인 동창들은 고교 전학년 내신성적이 입시에 반영된 첫 수험생 세대다. 이같은 교육정책은 시골 고등학교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학생들이 내신성적을 내기 위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도시의 명문고 대신 가까운 고향 학교를 택했고 이는 시골 학교의 학업 수준과 면학 분위기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질적·양적으로 전보다 월등히 높은 대학진학률을 기록했으니 교육의 형평성 측면에서 전두환 정부의 교육정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전두환 정부의 교육정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는 지금의 수능에 비해 수준이 떨어졌고 '눈치작전'이라는 기형적 입시 관행도 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 민주화 과정을 겪은 터라 전두환 정부에 호감을 갖기 힘든 586세대가 당시의 교육정책을 추억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학창시절에는 최소한 '개천에서 용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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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무인화 시대 지면기사
'아마존 고'는 아마존이 운영하는 세계 최초의 무인 슈퍼마켓이다. 지난 5월 뉴욕에 12호점이 문을 열었다. 아마존 고에는 계산원은 물론 계산대도 없다. 매장 천장에 설치된 수백 개의 센서와 카메라는 누가 무엇을 사는지 지켜볼 뿐이다. 손님이 진열대에서 물건을 집어 들면 센서가 이를 자동으로 인식, 스마트폰에 미리 등록한 신용카드로 결제가 끝난다. 아마존 고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가 없어 주로 현금을 사용하는 저소득층이나 노인, 즉 디지털 소외계층은 아마존 고를 이용할 수 없다는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여론이 들끓자 뉴욕 매장은 현금 사용 고객을 위해 직원을 따로 뒀다. 하지만 그 자리가 오래 유지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아마존은 아마존 고를 2021년까지 최대 3천개로 늘릴 계획이다.우리 역시 '무인(無人) 자동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과 영화관이 무인화 기기 '키오스크'에 점령당한 지 오래고, 주유소도 셀프로 바뀌는 추세다. 대형 마트 계산대도 무인으로 바뀌고 있다. 줄 설 필요도 없이 신용카드를 꽂고 물건을 바코드 인식기에 대면 자동으로 계산이 끝난다. 고용주 입장에서 소비자가 만족하고 무엇보다 비용이 주는데 무인화를 마다할 리가 없다.무인화는 주문이나 결제를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등 소비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지만, 계산원들에게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으려는 공포의 존재나 다름없다. 고속도로 통행권을 뽑을 필요도 없이 통행료가 결제되는 '스마톨링'이라는 요금 자동수납시스템으로 고속도로 요금 수납원이 해고 위기에 몰리는 것이 그런 경우다. 무인화 시대의 도래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가 크다. 소득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무인화를 부채질한 것이다.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다. 하지만 무인화 시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정책적으로 무인화 시대를 늦춘다고 해도 그건 잠시뿐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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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판문점의 변화 지면기사
판문점이 영화의 상상력을 압도하는 현실의 드라마로, 글로벌 뉴스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대한민국 육군 이수혁(이병헌) 병장은 밤마다 군사분계선 넘어 북측 초소를 찾아 조선인민군 오경필(송강호) 중사와 호형호제하며 정을 나눈다. 하지만 절대 넘어선 안되는 선을 넘은 그들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같은 얼굴,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 청년들은 금단의 선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판문점은 그들에게 표정없는 대치를 강요할 뿐이다.그러나 이제 판문점은 남북미 정상들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고무줄 놀이 하듯 넘나들며 월경(越境) 이벤트를 벌이는 리얼리티 정치쇼 무대가 됐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단초가 됐다. 새소리만 들렸던 도보다리 환담은, 어떤 영화도 구현할 수 없는 미장센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또 다시 월경 이벤트를 재현했다.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고, 자신의 트위터 초대에 응해 준 김 위원장에게 정중한 사의를 표했다.레이건, 오바마, 조지W부시 등 판문점을 방문했던 역대 미국 대통령은 군복 상의를 착용했다. 세계 유일의 냉전 현장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동맹을 강조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라고 말했던 판문점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북중러 동맹과 한미일 동맹 대치의 꼭지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번개회동 장소가 됐으니 그렇다. 오히려 언론들이 놀라 역사적 장면을 송출하는 방송화면이 흔들렸다.영화적 상상에 머물러 더 비극적이었던 이수혁 병장의 금지된 월경을,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어 미국 대통령까지 해내는 현실은, 아버지를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이방카의 말처럼 "비현실적"이다.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시작된 널문리 주막에서 비롯된 판문점의 역사가 휴전 66년 만에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 선 듯 싶다. 그 변화가 대한민국과 한민족 전체의 축복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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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독수 독과의 원칙 지면기사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년 작. 감독은 시드니 루멧. 데뷔작이 이렇게 주목을 받기도 힘들다. 미국의 배심원제를 세밀하게 그려낸 법정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TV 드라마로 이미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심만으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정의가 내재한 '법의 정신' 덕을 톡톡히 봤다. 이는 당시 미국의 '시대 정신'이기도 했다. 증거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한 소년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11명의 배심원 사이에서 유일하게 무죄 가능성을 버리지 않은 8번 배심원을 맡아 마침내 전원 무죄 평결로 이끌어 낸 헨리 폰다의 연기가 일품이다. 지난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A 씨 등 6명에 대해 항고심에서 "수사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 저장장치, 서류철까지 전부 압수하여 가져간 다음 장기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하여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들은 물론, 그 증거들에 기초하여 수집된 2차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 기관의 관행이 된 '별건 수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법원이 선언한 셈이다.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칙이란 게 있다. 독이 든 나무에서 열린 열매 역시 독이 있다는 것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법에 이 이론이 도입된 것은 2007년으로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위법수집 증거능력 배제원칙을 명문화 했다. 하지만 우리의 수사기관은 그동안 독이 들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칙은 외면한 채 과실을 따 먹기에만 급급해 왔다. '별건(別件) 수사'가 그것이다. 별건 수사는 본래 수사 대상이 아닌 다른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피의자를 정신적으로 압박해 범죄혐의를 얻어내는 수법이지만,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사건 조사에 자주 이용된다. 취임하는 검찰총장마다 별건 수사 관행 등에 대해 늘 개선 의지를 밝힌다. 하지만 이 '지독한' 수사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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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쿠르디, 소하예트, 발레리아 지면기사
2017년 1월 생후 16개월 된 남자아이가 진흙탕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됐다.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자행하는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가 보트 전복으로 사망한 로힝야족 아이였다. 시인 서해성은 '슬픈 사진' 한 장이 준 충격을 이렇게 시에 담았다. '미얀마 해변에서 로힝야족 소년은 엎드려 죽었다./ 터키 바닷가에 쓰러진 아일란 쿠르디처럼./쫓겨가다 죽지 않았으면 아무도 몰랐을 이름/무함마드 소하예트./이름만으로도 무슬림인/썰물에 드러난 16개월을 산 세상./로힝야 로힝야/무덤이 없다.' ( '로힝야 소년을 위한 무덤'중에서) 사진 한 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간혹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15년 9월 2일. 터키 도안통신의 닐뤼페르 데미르 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절망에 빠뜨렸다. 터키 휴양도시 보드룸의 해변 모래에 얼굴을 박고 숨진 채로 발견된 사진 속 주인공은 시리아 국적의 세 살배기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 그의 가족 4명은 에게 해를 가로질러 그리스로 가려고 고무보트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아버지 압둘라를 제외한 전원이 변을 당했다. 쿠르디의 싸늘한 시신을 담은 사진은 시리아 난민사태의 참혹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사진 한 장'은 유럽의 일부 국가에 난민 수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그제 멕시코 마타모로스의 리오그란데 강 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딸 두 살배기 발레리아의 사진 한 장이 또 전 세계를 울렸다. 지난 4월 고향 엘살바도르를 떠나온 이들 가족은 미국 망명을 위해 강을 건너려다 변을 당했다. 아빠는 딸을 물속에서 놓칠까 봐 자신의 티셔츠 안에 품었고, 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있어 슬픔을 더하고 있다.이들 죽음을 담은 '사진 한 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1천200만 명 난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얀마 실권자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은 로힝야 족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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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백범 암살범의 마지막 인터뷰 지면기사
어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백범은 1949년 6월26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던 자택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그러니까 백범 서거 47주년이 되던 1996년 6월26일, 경인일보 지면에 백범 암살범 안두희의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그는 인천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이 80에 치매까지 겹쳐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누워지내던 터였다.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혀 숨어 살면서 신분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그였다. 더구나 1992년 2월 민족정기구현회 회장인 권중희씨가 벌인 납치 사건 이후엔 아예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 왔다.구차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지만 안두희는 '애국자는 죽고, 반역자는 살아남았다'는 우리 현대사의 역설을 입증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안두희에 대해 인터뷰가 성사됐다는 소식에 편집국이 술렁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앞서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 암살 배후세력과 미국의 사주를 암시하는 내용의 진술을 한 바 있지만 수시로 이를 뒤집기 일쑤였다. 그의 나이나 건강상태로 볼 때 그 인터뷰는 사실상 백범 암살의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였다. 굳게 닫힌 입을 열게 하는 고도의 인터뷰 기술이 필요한 만큼 인터뷰는 연륜 있는 베테랑 선배가 맡았다.그러나 그는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또다시 외면했다. 백범 암살 배후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내가 안죽였다. 미국이 죽였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듯 했다. 하지만 국내 배후세력에 대해선 "나 혼자 죽였다"며 끝내 입을 다물었다. 당시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분노와 함께 역사의 진실을 밝힐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나 안두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정의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몽둥이에 맞아 숨진 것이다. 한 택시기사에 의해 안두희가 생을 마감하면서 결국 경인일보의 인터뷰는 생전 안두희의 마지막 기록이 되고 말았다.이제 암살범을 추궁하는 것도, 그에게서 증언을 기대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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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DMZ와 美 대통령 지면기사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겐 이에 따른 긴장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70여 년간 이어진 좌절과 고통의 공간이 인기 있는 관광지라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반인뿐만이 아니다. 해방 후 9명의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대부분이 DMZ를 찾았다.미 대통령의 최초 방한은 전쟁 중이던 1952년 12월 2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중·동부전선 수도고지를 찾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그의 최전방 시찰은 이승만 대통령도 몰랐다. 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젠하워가 북진 통일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이 대통령을 만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언쟁밖에 없었을 것이다.미군을 철수하려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9년 DMZ내 미군부대에서 1박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11월 판문점 인근 콜리어 초소를 방문, 30분간 머물렀다. 당시 분위기는 소련의 KAL기 격추, 북한의 아웅산 테러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레이건의 방문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논란이 일자 굳건한 한미동맹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1992년 방한 때 DMZ에서 멀지 않은 경기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를 방문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1993년 방문한 클린턴 대통령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시찰 후 "북한이 핵을 개발해 사용한다면 북한 정권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도라산역을 방문했고,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미군 초소에서 가죽 재킷을 입고 쌍안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모습을 연출했다. DMZ 위에 선 미 대통령은 그 자체만으로 굳건한 한·미관계의 상징이었다.미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29, 30일 한국을 찾는다. 2년 전 방한 했을 때 기상 악화로 찾지 못한 DMZ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