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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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게임중독' 논란 지면기사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새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을 확정하면서 게임강국인 한국이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WHO는 게임 통제 능력이 손상되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게임을 12개월 이상 지속하면 게임중독이라고 기준을 세웠다. 이 기준에 포함되는 사람은 이제부터 게임중독이라는 질병에 걸린 중환자라는 얘기다.하지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볼 과학적 근거에 대한 찬·반 진영의 대립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WHO의 결정을 수용한다며 절차를 밟겠다는데, 문화체육관광부는 WHO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자녀들의 게임중독을 우려하는 학부모와 의료계를, 문체부는 게임업계를 대변하니 정부의 입장 조율이 주목거리다.게임중독은 질병이 아니라는 게임업체와 국내외 과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게임은 알코올, 마약, 담배와 같은 금단증상도 없고 영구적이지 않다는 논리다. 영화와 같이 수많은 게임이 출시됐다 퇴출되는 문화 기호품이라는 얘기다. 세계를 주름잡는 프로게이머나, 학교에서 1년내내 게임을 하는 한 특성화고교의 E-스포츠학과 학생들마저 게임중독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항변은 과장이지만 업계가 체감하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게임업계에선 '게임중독' 대신 '게임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쓴다.그런데 끼니를 거른 채 학교 수업을 팽개치고, 아이템을 사기위해 부모지갑에 손을 대면서까지 게임에 열중하는 자녀들의 '게임중독 증세'를 매일 체감하는 학부모들에게 게임업체의 반발은 헛소리일 뿐이다.문제는 정부다. 이미 지난해부터 WHO의 결정이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 보건복지부와 문체부가 딴소리를 내니,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었다는 자백이다. 자녀의 '게임중독' 증상을 체감하는 학부모와 '게임 과몰입'을 게임중독으로 침소봉대하면 게임산업이 망한다는 게임업계 사이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가뜩이나 경직된 노동시장과 주력산업의 퇴조로 경제위기설이 회자되는 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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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봉준호 영화' 지면기사
2001년 말께, 경인일보 편집국에 더벅머리 청년(?) 두 명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은 '플란다스의 개'를 만든 "감독 봉준호"라고 했다. 또 한 명은 훗날 '해무'를 감독한 심성보. 데뷔작이 흥행하지 못했지만, 평단의 찬사 때문이었는지 봉 감독은 자신감에 충만 돼 있었다. 이들이 경인일보를 찾은 건 '화성 연쇄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화성 사건을 다룬 경인일보의 기사가 가장 풍성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당시 기사와 사진 자료 등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역대 한국영화 100편을 뽑을 때 늘 최상위에 올라있는 '살인의 추억'은 그렇게 탄생했다. 525만 명을 동원한 이 영화로 봉준호는 한국영화를 이끌 차세대 감독으로 우뚝 섰다.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수상의 의미는 더 크다. 보통 세계 3대 영화제로는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를 꼽는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7년 만의 쾌거다. 영화제 대상 수상을 올림픽 금메달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의 본고장에서 한국 감독이 해외 거장 감독들의 영화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대상이라 경사가 아닐 수 없다.봉 감독이 추구했던 영화의 세계는 '불합리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대학 시절 만든 단편영화 '지리멸렬'에서부터 봉 감독은 교수 법조인 언론인 등 지도층의 위선과 허위를 들추며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국제적 명성을 얻은 후 만든 '설국열차'의 열차 안 세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은 부조리한 세상이다. 패배자들로 가득한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가 폭동을 일으켜, 고위층들이 모여 있는 가장 위 칸으로 돌진하는 것은 불평등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에 대한 상징과 은유의 표현이다. '기생충' 역시,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빈부격차' 문제를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개성 있게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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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넷플릭스 없는 칸 영화제 지면기사
올해 세계 영화계의 최대 사건은 단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로마'가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이다. 스페인어로 제작됐는데도 아카데미 주요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비영어권의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극장 상영작이 아닌 OTT(유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영화가 최고의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쥔 것은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진즉 변화를 눈치챈 베니스영화제도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 6편을 받아들여 '로마'에게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또 이선·조엘 코언 형제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는 각본상을 받았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7월 22일'도 큰 호평을 받았다. 넷플릭스 덕분에 베니스영화제의 내용은 풍성해졌고, 경쟁자인 칸영화제를 압도했다는 평가를 들었다.반면 칸영화제는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의 출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랑스 극장업계의 반발 탓이 컸다. 칸은 넷플릭스에 초청장을 받으려면 제작 영화의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 전략을 포기하고 극장 개봉을 먼저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출품 거부로 맞서면서 칸영화제 참가가 무산됐다. 칸영화제는 올해도 넷플릭스 영화를 초청하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불참으로 72회를 맞은 칸영화제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다. 넷플릭스 없는 칸영화제는 '불빛 없는 항구' '속없는 찐빵'이 된 것이다.이를 만회하려는 듯 이번 칸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비롯해 짐 자무시, 켄 로치 등 대가들의 신작을 경쟁부문에 초청하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 스타 모시기에 유난히 공을 들였다. 그런데도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의 다양성 확보에 실패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넷플릭스의 부재가 그만큼 컸다. 넷플릭스는 앞으로 영화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이미 세계 영화계는 아마존, 월트디즈니, 애플까지 OTT 사업에 뛰어들면서 스트리밍 영화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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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착한 금연정책 지면기사
휠체어를 비롯 갖가지 의료장비를 끌고 환자들이 하나 둘 건물 밖 흡연구역에 모이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병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비흡연자의 눈에는 볼썽사나운 풍경이리라. 하지만 어찌하랴. 이들에게 흡연구역은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 한 모금 담배 연기에 잠시나마 근심 걱정 날려버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아닌가. 기회비용 측면에서 볼 때 이 순간만큼은 담배가 '건강 회복의 염원'보다 상위가치인 듯싶다. 환자의 흡연은 곧 담배의 수요가 웬만해서는 줄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흡연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과 맞물려 흡연자들 또한 일종의 피해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흡연자들의 피해의식을 부추기는 요인 중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잊을만하면 내놓는 정부의 금연정책이다. 금연정책에서는 흡연자가 '사회악' 취급을 받기 일쑤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정부의 금연정책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까지 모든 건물의 실내흡연실을 폐쇄하고 담뱃값에 부착된 경고그림과 문구의 면적을 현행 50%에서 75%까지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았다.그런데 종전의 금연정책과 다른 부분이 있다. 일단 '담뱃값 인상'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그동안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내 건 모토는 흡연율 저하를 통한 국민 건강 증진이다. 그러나 그간의 담뱃값 인상사례에서 보듯이 담뱃값은 흡연율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병원 흡연구역 사례에서 보듯 담뱃값 인상은 흡연자 자체를 줄이는 데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담배회사 수를 줄이는 것도 아니다. 수요공급곡선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경제학적 원리를 무시하다 보니 정부가 내세운 '국민건강'은 낯간지러운 수식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건강 운운하는 게 담뱃값을 인상하려는 '수작'쯤으로 인식된 게 사실이다. 더 나아가 담뱃값 인상이 아니라 세금 인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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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부시의 노무현 초상화 지면기사
아돌프 히틀러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그림을 꽤 잘 그렸다. 두 번의 미대입시에 떨어지고 좌절 끝에 정치인이 됐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후에 각국의 수많은 미술품을 약탈했다. 그 그림들을 모아 베를린에 세계 최대의 미술관을 짓고 싶어 했다. 전쟁 중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고전주의식 화풍을 고집한 그는 2천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전쟁 중 소실되고 현재 700점이 남아 있다.윈스턴 처칠은 40세가 넘어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것은 '반복성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림이 하나의 치료법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그가 "내가 천국에 가면 처음 100만 년은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에 푹 빠져 500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그림 중에는 정부(情婦)로 알려진 도리스 캐슬로시의 초상화도 포함돼 있다. 피카소가 "처칠이 그림만 그렸다면 정치인 처칠보다 화가 처칠로 더 명성을 날렸을 것"이라며 높이 평가할 만큼 말년에 그의 그림솜씨는 수준급이었다. 우리의 경우 그림 그린 정치인 중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첫째로 꼽힌다. 김 전 총리는 42세 때 그림에 입문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일요 화가회' 회원들과 그림을 그렸다. 그는 생전 그리는 즐거움을 "마치 갓 태어난 아이로 돌아간 듯 순백의 마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정화되는 것이 느껴지고, 온갖 번잡한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정신적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서는 생전 300개의 유화작품을 남긴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정치를 하면서 받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아마추어 화가로 알려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노무현 초상화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토크쇼 제이 레노 쇼에 출연해 "내 안에 렘브란트가 있다"는 조크를 날렸던 부시는 재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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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연평도 등대 지면기사
연평도는 원래 북한 황해도 해주군에 속했던 섬이다. 1945년 미·소 군정이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면서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됐다. 실향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38선과 상관없이 황해도와 연평도 뱃길은 열려 있었고 왕래도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한다. 6·25전쟁 중에는 황해도를 비롯한 북한의 서해안 피난민들이 연평도를 징검다리 삼아 인천 등 남한 서해안으로 퍼져 나갔다. 현재도 주민 70% 이상이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다.연평도는 제 1·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북한은 1999년과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 중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대한민국 해군함정에 발포했다. 1차 해전은 우리 해군이 완승했지만, 북한의 보복을 작정하고 벌인 2차 해전 때는 윤영하 소령 등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척의 함정을 잃었다. 2010년 북한은 선전포고 없이 연평도에 포격 도발을 감행했다. 시커먼 포연에 휩싸인 연평도의 모습에 전국민이 경악했다.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됐고, 주민 1천여명이 피난한 전쟁이었다. 평화로운 꽃게어장 연평도는 세계가 주목하는 화약고가 됐다. 국방부가 우리의 승리로 기록한 세차례의 교전은 남북이 교전 당사자임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지난 17일 저녁, 연평도 등대가 불을 밝혔다. 1960년 설치된 등대다. 조기를 따라 연평어장에 모여든 어선들을 수호하다 1974년 대간첩 작전을 이유로 소등한 지 45년 만이다. 연평도 등대 재가동은 서해5도 어장 확대와 야간 조업시간 확대에 따른 어로활동 보호 차원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연평도 등대가 유사시 적 공격의 표적이 될 것으로 우려하자, 북쪽으로는 등대 불빛을 차단하고 원격 소등도 가능하게 조치했다고 한다.연평도 등대는 앞으로 남북관계 예보기능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가 무탈하면 등대가 켜질 것이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꺼질 테니 그렇다. 아무쪼록 연평도 등대가 서해 밤바다에서 분쟁의 먹구름을 몰아내는 평화의 빛으로 밝게 빛나기를, 결코 꺼질 일이 없기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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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주정도 교양이다 지면기사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인 조지훈 시인은 수필 '주도유단(酒道有段)'에서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도(酒道)를 18단계로 나누었다. 이 분류법은 시대가 바뀐 지금에도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물론 주당들에게 국한된 얘기다.일단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不酒)이 가장 하위 레벨인 9급이다. 이어 외주(畏酒), 민주(憫酒), 은주(隱酒), 상주(商酒), 색주(色酒), 수주(睡酒), 반주(飯酒)를 거쳐 1급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을 뜻하는 학주(學酒)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주졸'(酒卒)이란 별칭을 얻게 된다. 시인에 따르면 2급 이하 그룹은 술의 진경 ·진미를 모르거나 목적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다.다음은 고수의 술세계다. 애주(愛酒), 즉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이 초단이다. 비로소 술꾼으로 인정받는 '주도'(酒徒)라는 칭호가 붙는다. 다음으로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2단),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3단),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4단), '주도 삼매에 든 사람'(5단),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6단),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7단) 순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단이 높을수록 주선(酒仙), 주현(酒賢), 주성(酒聖) 등 고상한(?) 칭호가 주어진다. 8단은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인데 술 때문에 건강을 잃어 한잔도 입에 댈 수 없는 사람을 칭하는듯하다. 애주가에게는 최악의 상황일진데 '주종'(酒宗)이라는 칭호만큼은 남부럽지 않을 듯싶다. 마지막 9단에게 부여된 칭호는 열반주(涅槃酒)다.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이다. 해탈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지는 몰라도 저승에서 술잔을 기울여야 한다. 한때 이 분류법을 외우려 한 적이 있다. 자가진단(?)에 도움이 될듯해 암기를 시도하다가 이게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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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인천 공무원 집단 성매매 지면기사
지난해 초 서지현 검사가 불을 붙인 미투운동의 열기는 대단했다. 미투운동의 열기는 성폭력 사건에 비교적 관대했던 법원의 판결도 확 바꾸어 놓았다. 2018년 4월 대법원은 학생을 성희롱한 대학교수의 해임취소소송 최종심에서 하급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뒤집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때 등장한 용어가 '성(性)인지 감수성'이다. 1995년 베이징 유엔 여성대회에서 사용돼 국제적으로 통용된 '성인지 감수성'은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의미한다.당시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성범죄 관련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수행 여비서의 미투운동에 걸려 재판에 회부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는 성차별, 양성평등 등 '성인지 감수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2심 재판부에 의해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물론 성인지 감수성을 성범죄 판결에 반영하는 법원의 추세에 반발하는 원칙론도 만만치 않다.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을 존중해야 한다'는 감성적 논리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법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거짓 피해자에 의한 무고한 가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반박은 타당하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우리 사회가 성인지 감수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만은 확실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성폭력에 관대했던 의식과 관행이 무너지고,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는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정책과 제안을 쏟아내고 있다.최근 인천 미추홀구 공무원 4명과 인천도시공사 직원 7명이 회식후 집단 성매매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성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성매매는 성인지 감수성 지표 중 최악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정책으로 실현해야 할 공무원, 지방공기업 직원들이 집단 성매매를 했다니 충격적이다. 더군다나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을 비롯해 버닝썬 사태 등 과거와 현재의 성추문 사건으로 시끄럽고 대통령까지 나서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마당에 이런 짓을 벌였으니, 세상과 담 쌓은 공직사회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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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깃대 종(種) 지면기사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뜻이다. 농부에게 씨앗은 그만큼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다. 종자(種子)인 씨앗이 없다면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농부의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배가 고파 죽을지언정 씨앗을 먹지 않는 이유다. '농심'(農心) 중의 농심이다.농사와 분야는 다르지만 '농부아사 침궐종자'란 말을 목숨 걸고 실천한 사람들이 옛 소련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독일군에게 900일 동안 포위된 적이 있다. 이 기간, 도시에 있던 소련 사람 150만명 중 70만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씨앗과 열매 표본 등을 쌓아둔 곡식 창고 같은 곳이 딱 한 곳 있었다. 바로 '바빌로프 연구소'다. 이 연구소에는 바빌로프 박사가 전 세계 150여 개국을 돌며 모은 수십만 종류의 씨앗이 있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단 한 톨의 씨앗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씨앗을 먹었더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연구원들은 자신보다 '씨앗이 사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9명의 연구원이 굶어 죽었다. 이 연구소에는 밀, 콩, 팥, 녹두, 동부, 호박 등 우리나라의 작물 표본도 보존돼 있다. 바빌로프 박사가 1929년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이동하면서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눈여겨봐야 할 점은 바빌로프 연구소에 보관된 지구촌 곳곳의 토종 작물 씨앗 가운데 90% 이상은 원래 그 씨앗이 자라던 나라나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100년 남짓한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인류의 각고의 노력 없이 생물종다양성 유지는 요원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2015년 문을 연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이같은 교훈의 결과물이다.인천시가 국립생물자원관과 함께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깃대종(flagship species)'을 선정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깃대종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시한 개념으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 동·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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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스승의 길 지면기사
아벨 선생님은 말했다. "한 국민이 노예로 전락해도 자기 나라말만 잘 간직하고 있으면 그것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종이 울렸다.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 끝난 것이다. 아벨 선생님은 "여러분! 나는, 나는…하고 말하며 칠판에 온 힘을 다해 이렇게 썼다. '프랑스 만세!'.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해도, 지금 교직에 있는 선생님 중 이 글을 읽은 분이 있다면 아벨처럼 한번쯤 용기 있는 교사, 진실을 가르치는 교사가 돼보리라 다짐한 적이 있을 것이다. 존 키팅 선생님은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라. 그리고 즐겨라. 너희만의 특별한 삶을 살아라." 명문 사립 고등학교 영어 교사 키팅 선생님의 이 말에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로 알았던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선생님을 다룬 영화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를 본 선생님이 있다면, 키팅처럼 입시의 멍에를 훌훌 집어 던지고, 참교육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아오름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두 작품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은 어떻게 보면 불행한 분일 수도 있다. 명성도 권세도 부귀영화도 없는 생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 숙연하고 따듯한 인간의 정과 스승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이러한 스승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스승다운 스승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스승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 지금도 어디에선가 묵묵히 '스승의 길'을 걸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나는 내 법전을 팔아 버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법률보다 한층 더 중요한 일에 투신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미국 공립학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러스 만(Horace Mann)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토막이다.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이던 그는 알량한 정치보다 미래의 동량을 키우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믿은 사람이다. 공자도 그랬다.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꾀하다가 실망하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