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유시민과 심재철의 기억
    참성단

    [참성단]유시민과 심재철의 기억 지면기사

    2016년 3월 이천 부악문원에서 작가 이문열을 만났을 때 그는 '변경'의 후속작으로 80년대를 정리하는 작품을 집필 중이었다. 작업의 진척을 묻는 질문에 대뜸 "골치 아프다"고 푸념했다. "뜸을 너무 오래 들였고 나는 늙어버렸다"며 "그러는 동안 역사가 왜곡된 인식으로 굳어지고 주장과 선동이 역사가 되어간다는 느낌"이라 했다. 대가의 푸념이 낯설어 "전 시대를 정리해 현 시대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늘 고민스럽지 않은가"라고 다시 물었다. 답변에서 고민의 핵심이 나왔다."기억에는 개인적 기억과 그것이 공유되는 사회적 기억, 후세에 기록될 역사적 기억이 있다"며 "그런데 기억은 변경되고 조작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작품을 준비하는 10년 동안 내 주변의 사회적 기억을 확인해왔는데 굉장한 왜곡과 조작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경찰과 치고 받은 젊은 취객이 장년이 되자 전두환 욕을 했다가 경찰에게 맞는 민주화 투사로 변신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무수하니 "그 시대의 사회적 기억을 어떻게 복원하고 해석하느냐가 심각한 고민"이라는 얘기였다.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과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소환한 80년 '서울의 봄'은 서로 다른 기억으로 처연하다. 신군부의 권력장악 시도에 학생운동권이 맞섰던 현장에서 유시민과 심재철은 동지였다. 서슬퍼런 합수부 조사실에 끌려간 이후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사회적 기억은 심재철을 변절한 가해자로, 유시민을 피해자로 규정해왔다. 유시민이 당당한 피해자로 그 시절을 방송에서 유쾌하게 회고하자, 심재철은 당시의 진술서를 공개하며 유시민의 기억은 틀렸다고 지적했다.일제 식민시대 이후 100여년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가해의 기억과 피해의 기억으로 분열됐다. 그러나 식민시대, 동란시대, 산업화·민주화 시대의 대혼란을 거치면서 억울하게 가해의 기억에 갇히거나 반대로 피해의 기억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이 무수할 것이다. 그래서 맥락을 살피지 않고 가해와 피해를 일도양단식으로 구분하는 역사인식은 위험하

  • [참성단]일산 신도시의 비애(悲哀)
    참성단

    [참성단]일산 신도시의 비애(悲哀) 지면기사

    1기 신도시 일산은 1991년 가을에 입주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부실공사 파문 등 말이 많았다. 노태우 대통령의 200만 가구 건설공약으로 분당· 평촌 등에서 1기 신도시가 동시에 조성되다 보니 자재가 부족한 게 원인이었다. 불량 철근과 중국산 저질 시멘트, 여기에 바닷모래 사용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골재 부족으로 강모래가 바닥이 나자 바닷모래를 가져다가 사용했는데 염분기를 제대로 씻어내지 않고 사용한 게 문제였다. 일산을 비롯해 1기 신도시 아파트는 '소금 아파트'라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집값 때문에 일산주민은 말도 못하고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지난해 12월 일산 백석역 온수관 파열사고는 일산 주민들에게 '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설움을 주었다. 30년이 넘은 일산 신도시는 사람으로 치면 60세를 넘어선 나이다. 시설물도 세월이 흐르면 사람처럼 늙는다. 도시 이곳저곳에 묻혀있는 파이프라인은 동맥경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량이나 하수관, 도로 등 시설물들이 노후화되기 전에 대대적인 교체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투입될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일산 백석역 사고는 그나마 1기 신도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게 작은 위안이었지만, 일산주민의 속은 검게 타들어갔다.정부가 고양 창릉을 3기 신도시 신규 택지 후보지로 추가 지정해 발표한 후, 일산 신도시 주민들이 크게 뿔났다. 2기 신도시 운정지구에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면서 일산 집값마저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서울 접근성이 뛰어난 신도시가 들어설 경우, 일산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거란 우려 때문이다. 일산 신도시 주민들은 건설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교통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인프라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특히 같은 1기 신도시인 분당을 생각하면 일산신도시 주민들은 여전히 시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지하철 노선의 경쟁력은 여전히 떨어지고 통일로와 자유로는 차를 몰고 나오기엔 끔찍한 '교통지옥'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분당이 벤처 붐을 일으킨 판교를 끼고 승승장구한다는

  • [참성단]회색 코뿔소
    참성단

    [참성단]회색 코뿔소 지면기사

    2013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정책연구소 대표 미셀 부커는 자신의 저서 '회색 코뿔소가 온다'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다보스에 모인 사람들은 그가 강조하는 '회색 코뿔소(Grey rhino)'에 주목했다. 코뿔소는 시력이 약해 멀리 볼 수가 없는 대신 후각이 발달해 이에 의존해 풀을 뜯어 먹고 산다. 초식동물답게 성격은 온순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그쪽을 향해 앞 뒤를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세렝게티에서 코뿔소가 눈에 띄면 일단은 경계해야 한다. 부커는 지속적인 위기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이를 간과하다가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을 '회색 코뿔소'라고 칭했다.'회색 코뿔소'와는 달리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블랙스완(Black swan)'이라고 한다. 18세기 호주에서 발견된 '검은 백조'는 '백조는 하얀색'이라는 통념을 깨뜨렸다. 2007년 미국 서브 프라임 사태로 세계 금융 위기가 닥치자 레바논 출신의 월가 증권분석가 나심 탈레브는 저서 '블랙 스완'을 통해 위기를 경고하며 통계적 예측의 한계를 넘은 극단적 상황이 가져올 파국을 분석했다. '블랙 스완'이나 '회색 코뿔소'같은 말이 끊이질 않고 회자하는 것은 경제라는 것이 논리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 데 반해, '회색 코뿔소'는 지표를 통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위기를 알리는 각종 경제 지표를 무시하다가는 갑자기 우리에게 달려든 코뿔소에 희생되고 만다. 문재인 정부 2년을 맞아 우리 경제에 대해 '회색 코뿔소'를 경계해야 한다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올 1분기 성장률은 -0.3%로 2008년 4분기 이후 최저를 기록하고 여기에 최근의 환율 급등과 미·중 무역전쟁 격화, 중국 부동산 거품 붕괴 위기 등 대내외적으로 잇단 경고음을 내며 '회색 코뿔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소득

  • [참성단]아테네학당의 계약학과
    참성단

    [참성단]아테네학당의 계약학과 지면기사

    인류역사상 가장 학구적인(?) 그림은 '아테네 학당'이 아닐까 싶다. 라파엘로가 1510년 완성한 이 벽화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고대 그리스의 철인, 학자들이 학문과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손으로 지상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에서는 서로 이데아와 현실에 대해 설파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진중권은 저서 '미학 오디세이'에서 이들의 가상대화를 재치 있게 풀어내기도 했다. 아테네 학당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대학에는 '진리의 상아탑', '학문과 지성의 요람' 등 고상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은 아테네 학당의 모습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취업률 때문에 대학의 본질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취업 중심의 학과 개편 속에서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 분야의 학과는 존폐의 기로에 서기 일쑤다. 오죽하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대학가 취업지상주의의 결정판은 '계약학과'다. 계약학과는 산학협력 촉진 차원에서 특정 기업과 대학이 계약을 맺고 관련 업무에 필요한 학과를 개설하는 학위 과정을 말한다. 졸업 후 취업이 100% 보장되며 학과 운영 비용은 기업이 일정 부분 부담한다. 최근에는 연세대가 삼성전자의 계약학과로 '시스템반도체공학과'를 신설키로 하더니, 취업에서 자유로울듯한(?) 서울대마저 계약학과 운영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이러던 차에 인천에도 계약학과가 신설될 전망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천시는 영종도 일대에 들어서고 있는 대규모 복합리조트에 2만여명 규모의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계약학과를 2020년까지 지역 대학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극심한 취업난을 생각하면 일단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역 대학이 지역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남는 것은 대학이 고유의 색감을 잃어가기 때문이리라. 자꾸만 퇴색되는 그림을 매일 보는 느낌이

  • [참성단]5月과 장영희
    참성단

    [참성단]5月과 장영희 지면기사

    5월이 오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장영희(張英姬). 영문학자이자 번역가. 영문학자 장왕록(張旺祿)의 딸. 우리에게는 수필가로 더 기억되고 있다. 생후 1년에 찾아온 소아마비 장애와 세 차례의 암 수술을 받고도 긍정의 사고를 보석 같은 글로 풀어 놓으며 우리에게 희망을 준 '희망전도사'. 생전 자신이 '암 환자 장영희'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그는 "내 삶은 '천형(天刑)'은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말하곤 했다. 2001년 유방암, 2004년 척추암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강단에 서며 "신은 재기(再起)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을 넘어뜨린다"고 말해 감동을 줬던 그다.장 교수하면 떠오르는 건 월간지 '샘터'다. 장 교수는 2000년부터 '새벽 창가에서'란 제목으로 57편의 글을 연재하며, 최인호의 '가족'과 함께 샘터의 지가를 올렸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올해는 장영희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달 말 공교롭게도 장 교수의 대표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100쇄를 돌파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한 책으로,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살을 에는 암 투병 중에도 그림 작가 선정에서부터 제목, 책의 디자인까지 모두 장 교수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1쇄는 10년 전 오늘, 2009년 5월 8일 장 교수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발간됐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9일 그는 56세로 세상을 떠났다.5월은 가정의 달.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가

  • [참성단]청와대의 '비대칭 관용'
    참성단

    [참성단]청와대의 '비대칭 관용' 지면기사

    북한이 지난 4일 원산에서 정체불명의 무기를 하늘로 쏘아올렸다. 합동참모본부는 처음엔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곧 '단거리 발사체'로 정정했다. 정황상 미사일이 분명해 보이는데 6일 현재까지도 정부의 공식입장은 불상(不詳)의 발사체이다. 불상의 발사체가 미사일, 그것도 탄도미사일로 판정되면 유엔 안보리 결의와 지난해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분야 합의를 위반하는 중대한 도발행위가 되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외교가 위기에 봉착한다.정부가 북한의 돌발적인 도발을 '단거리 발사체' 수준에서 관리하는 이유는 대북협상을 위한 관용 때문일 것이다. 미국도 우리 측 입장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비핵화)합의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의 발사체가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이 비핵화하도록 그들과 좋은 해결책을 협상할 모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미·북 협상 의지를 강조했다. 청와대의 관용이 미국을 설득한 모양새다.한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6일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반대한데 대해 페이스북을 통해 "문무일 검찰총장의 우려 역시 경청되어야 한다"고 정중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번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 당시 페이스북에 국회선진화법 처벌조항을 게시하고 외국 록밴드의 노래 '좀비' 영상을 올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패스트트랙 법안 반대는 같지만 상대가 문재인 정부 초대 검찰총장과 자유한국당이라는 점만 다르다.오는 10일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는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보여준 인내심으로 야당과 기업의 주장과 제안에 귀 기울였다면 경제분야의 실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조 수석이 문 총장에게 보여 준 '경청'의 아량을 야당에게도 보였다면 정국이 지금처럼 각박해졌을까 싶다. 문재인 정부의 북한과 내 편을 향한 관용이 우리 내부의 다른 편에게는 심각하게 비대칭적이다. 관용은 누구에게나 대칭적으로 적용되어야

  • [참성단]수도권 순천만
    참성단

    [참성단]수도권 순천만 지면기사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 소설인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의 배경은 '순천만(順天灣)'이다. '무진'은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이지만, 어느 정도 책을 읽었다면 그곳이 작가의 고향 '순천'이란 걸 금방 눈치챈다. '바람이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김승옥은 소설에서 무진(순천만)의 안개를 이렇게 묘사했다. 어느 새벽, 안개가 순천만의 갈대와 부딪히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순천만을 다시 찾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순천만은 그런 곳이다.김승옥의 또 다른 아름다운 소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중 '갈대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온 들에 황혼이 내리고 있었다. 들이 아스라하니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장식처럼 붙어 보였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처음 순천만을 방문했을 때 눈 앞에는 장관이 펼쳐졌다. 새, 갈대, 바다가 모두 장식인 그런 순천만이 부러웠다. 어디서 오는지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고, 여기저기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이런 순천만이 갯벌의 보고인 우리 서해안 어디에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천만은 떼어다가 우리 옆에 놓아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소원대로 수도권에도 순천만이 생길 모양이다. 인천 소래포구 갯벌을 시흥 갯골생태공원과 연계시켜 '수도권의 순천만'으로 조성한다고 인천시가 발표했다. 인천대공원에서 시작해 장수·운연천~소래습지생태공원(350만㎡ )~소래포구~시흥갯골생태공원(150만㎡ )~시흥 물왕저수지를 잇는 약 20㎞ 구간을 아우르는 수도권 최대 습지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이곳에는 순천만보다 더 아름다운 노을도 있다. '수도권 순천만'의 성공은 지자체 간의 굳건하고 유기적인 관계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습지에 조심스럽게 생명을 불어넣어 모든 게 다시 살아

  • [참성단]희망의 랠리
    참성단

    [참성단]희망의 랠리 지면기사

    '50대에 탁구를 시작하면 5부, 40대는 4부, 30대는 3부까지 갈 수 있다'.탁구 동호인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 되는 말이다. 바둑에 급수가 있듯이 탁구에도 '부'라는 실력 분류 시스템이 있다. 보통 1~6부로 나뉘는데 6부가 가장 최하위 레벨(부)이다. 최상위인 1~2부에는 대부분 선수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3~4부 정도의 실력이면 동네에서 고수로 통한다. 이들이 간혹 동네 탁구장에서 플레이를 하면 모두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중국무술영화에서 무림고수가 객잔(客棧)에 홀연히 나타나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50대에 시작하면 5부까지밖에 갈 수 없다'는 말은 늦게 입문할수록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지만, 탁구에서 상위 레벨로 올라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동호회 교류전에서 각각 다른 레벨의 선수들이 맞붙을 경우에는 하위 레벨 선수에게 1~2점을 접어주는 식으로 시합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렇게 핸디캡을 적용한다 해도 하위 선수가 상위 선수를 이기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골프에서 하수가 고수에게 핸디를 듬뿍 받았다고 해서 고수의 돈을 따는 일이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하다.프로세계에서 대표적인 서열 구분법은 세계랭킹이다. 성적을 기반으로 다양한 산정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부 구분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적이고 디테일하다. 프로에서도 하위 랭킹의 선수가 톱클래스의 선수를 이기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그 기적 같은 일을 대한민국의 스무살짜리 탁구선수가 해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탁구 세계선수권 개인전에서 안재현은 세계 14위의 윙춘팅을 시작으로 다니엘 하베손(29위), 하리모토 도모카즈(4위)를 차례로 꺾더니 대표팀 선배인 장우진(10위)까지 이기고 동메달을 따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추어 3~4부 선수가 1부 선수를 핸디 없이 이긴 것에 버금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대 이변의 주인공 안재현이 이틀 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부다페스트로 떠나기 전 그의 세계랭킹은 157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 [참성단]레이와 시대
    참성단

    [참성단]레이와 시대 지면기사

    세월은 막을 수 없는 법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다. 아키히토 (明仁) 시대가 어제 끝났다. 1989년 시작한 '헤이세이(平成)'가 막을 내렸다. 31년의 영욕(榮辱). 아키히토의 헤이세이도 이전 히로히토(裕仁) 쇼와(昭和) 만큼 격동의 시대였다. 장기 경제불황을 겪어야 했고 나고야 대지진과 후쿠오카 원전사고 등 큰 재난이 덮쳤다. 그때마다 아키히토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일본 국민에게 다가갔다. 그의 시대가 끝났다. 오늘부터 일본은 나루히토(德仁)의 레이와(令和) 시대다. 그동안 일본의 연호는 중국 고전에서 빌렸다. 하지만 레이와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만엽집(萬葉集)'의 '매화(梅花)의 노래 32수(首)' 중에서 '初春令月 氣淑風和(초춘영월 기숙풍화·날씨가 맑고 바람이 부드럽게 부는 새 봄)'에서 골랐다. 레이와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서로 모아서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뜻도 있다. 외국 언론도 일본의 새 시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레이와'를 '질서와 조화',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상서로운 평화'를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평화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일본인들도 레이와 시대에 거는 기대가 큰 모양이다.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일본 국민의 58%가 '일본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에 맞춰 5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다. 때를 맞춰 미 해군의 최신형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호와 스텔스 상륙함인 뉴올리언스호가 올 하반기 미 7함대 소속으로 주일미군 기지에 전진 배치된다. 미국과 군사적 밀월 관계에 들어간 것이다. 아베 정권 입장에선 '새 시대'라는 분위기를 빌미로 일본을 더욱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만들려 하는 의도다.문제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인 우리다.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레이와 시대를 맞아 우리가 먼저 손 한번 내미는 것은 어떨까. 정치는 타이밍이다. 외교관계

  • [참성단]'동물국회' 유감
    참성단

    [참성단]'동물국회' 유감 지면기사

    국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지정)을 둘러싼 여야 충돌로 '동물'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국민적 개탄이 자자하다. 선거법,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발의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중심 여야 4당과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사당 폭력대치로 국회가 과거 '동물국회' 시절로 회귀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지금 복원된 '동물국회'의 양상이 과거에 비해 심각한 이유는 '말' 때문이다. 양측의 말 폭탄이 몸싸움보다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29일 하루에만도 거두어들이기 힘든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을 '국회를 못 맡길 도둑놈'이라며 청산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저지투쟁을 '반개혁 정당의 난동'이라고 쏘아붙였다. 한국당의 독설도 만만치 않다. 황교안 대표는 패스트트랙 발의를 "의회 쿠데타"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홍위병을 선사하는 공수처법"이라고 목청을 높였다.과거에도 여야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격돌하고,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정국이 경색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도 협상을 위한 퇴로는 열어놓았다. 협상 주체에 대한 직접적인 도발은 자제했던 것이다. 여야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여당의 주인인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영수회담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한나라당 이회창 대표와 7번이나 만났다.동물국회 시절에도 언어의 금도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야 정치는 동물적 행태보다 패륜적 언행이 더 문제다. '난동을 부리는 도둑놈(자유한국당)'과 '정권의 홍위병을 세우는 의회 쿠데타 세력(더불어민주당)'이 타협을 위한 대화를 모색하기는 힘들다.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이 대표와 홍 원내대표에게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쟁점사안을 해결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발의를 결정하기 전에 대통령의 제안을 실행했으면 '동물국회'는 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말 폭탄과 맞고발 대결로 대화 자체가 당분간 힘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