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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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알랭 들롱' 지면기사
누벨바그(Nouvelle Vague·새로운 물결)는 1960년대 전후 프랑스에서 등장한 영화 사조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감독 등이 이끈 누벨바그는 혁신과 동의어였다. 스튜디오 조명보다 자연광, 즉흥적인 연출의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 비선형적인 스토리 전개는 당시 젊은 세대에게 자유와 반항으로 각인됐다. 누벨바그 황금기의 중심에는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이 존재했다. 들롱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를 연기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요즘 MZ스타일로 표현하자면 '세계 최고의 얼굴천재'다.영화 속 리플리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방탕한 부잣집 외아들 필립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사인·유서 위조에 목소리까지 흉내낸다. 우수에 찬 푸른 눈동자는 들롱의 실제 불우했던 시절과 교차되며 위험하고 불안한 캐릭터임에도 관객들을 동화시켰다. 동경과 경멸을 오가는 내면 연기에 리플리가 알랭 들롱이었고, 알랭 들롱이 리플리였다. 작열하는 태양과 요트 하면 연상되는 명장면, 키를 잡고 지중해 파도를 가르는 모습에 많은 청춘들이 빙의했다.알랭 들롱은 1957년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해 2019년 마지막 작품 '우리 모두 사랑한 여인'까지 60여 년간 90편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1995년 베를린 영화제 명예 황금곰상에 이어 2019년 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알랭 들롱은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현실에서도 때때로 악역을 자처했다. 끊임없는 스캔들 메이커로, 경호원 살인사건 용의자로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 노선을 비판하고 사형제 폐지와 동성 결혼 허용을 반대했다. 2019년 뇌졸중으로 고통받으며 안락사를 희망하는 등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하지만 넌 결코 알랭 들롱이 될 수 없지(But you'll never be Alain Delon)." 마돈나는 노래 'Beautiful Killer'(2012)의 마지막 가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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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소나기 지면기사
우리에게는 두 개의 소나기가 있다. 하나는 여름날 예고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세차게 내리는 자연현상으로서의 비가 있고, 다른 하나는 가슴 속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국민소설 황순원의 '소나기'(1952)다. '소나기'는 어린 소년과 소녀의 맑고 순수한 첫사랑을 그린 단편소설로 여러 면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1866)과 대비되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이 국민소설이 된 까닭은 막 이성에 눈을 뜬 풋내기 청춘들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서정적 이야기이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들 작품은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시기 우리들의 문학적 경험의 원체험으로 작동하고 있다.두 작품 모두 흠잡을 데 없는 맑고 고운 순수서정으로 빛나는 작품임에 틀림없으나, 막 이성에 눈을 뜬 청춘들에게 남녀 간의 사랑은 성적 결합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맑고 순정한 감정에 있다는 점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교육부 당국의 훈도와 교육의 목적으로 국정교과서에 수록된 것이다. 그러나 '별'이나 '소나기'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야말로 여름날 느닷없이 쏟아지는 세찬 소나기처럼 인생을 살면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짧고 강렬한 경험이자 사태임을 보여준다. 마음의 근육이 채 형성되기도 전인 질풍노도의 청춘 시기 아무런 준비도 없는데 갑자기 찾아와 아픈 기억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잔인한 축복이기에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번뇌라 할 수 있다.이 같은 이중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소나기'와 '별'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1992)로 유명한 레오 카락스의 데뷔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라든지 수원 출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이 그렇다. '클래식'은 명백히 '소나기'의 변주이자 오마주다.서울과 수도권의 열대야가 19일 현재 28일째 이어지고 있어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열대야 일수로만 보면 2013년 서귀포의 57일과 1994년 서울의 36일이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런 폭염에는 잠시라도 더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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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국경일 분단 정치 지면기사
제79회 광복절은 결국 두 개의 기념식으로 쪼개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경축식에서 '3·1운동, 상해임시정부 수립, 독립운동, 광복, 정부수립'을 건국과정으로 통합한 뒤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이라며 통일 독트린을 공표했다. 같은 시각 별도의 기념식에서 광복회의 김갑년 교수는 윤 대통령을 향해 "친일 편향의 국정기조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청중은 "타도 윤석열"을 외쳤다.78년 동안 국민통합의 시공간이던 광복절의 기운이 단 한 해의 분열로 빛이 바랜 채 공허하게 흩어졌다. 광복회의 분노에 편승한 야당의 정권 규탄은 서슬이 퍼렇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사실상 정신적 내선 일체 단계에 접어든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친일 매국 정권"이라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을 "일제 밀정 같은 자들을 요직에 임명한 왕초 밀정"이라며 "조선총독부 10대 총독이냐"고 반문했다.대통령은 야당의 공세를 예상한 듯 경축사로 답했다. "국민을 현혹하여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전략"인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을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 규정했다. 정부 경축식을 파투낸 진영과 세력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는 '불특정 사이비'로 표출됐다.보수와 진보 정권이 교차할 때마다 진영 간의 역사 인식과 해석이 반동적으로 충돌했다. 응축된 충돌 에너지가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솟구쳐 광복절을 두동강 냈다. 현실 정치가 역사를 규정하는 일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 처럼 가소로운 일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질 코미디다. 독립운동사를 통째로 김일성 신화로 둔갑시킨 북한이 그렇다.반동은 반동을 부른다. 대통령 부부를 "살인자"라 한 전현희 의원의 발언에 김종혁 최고위원이 "그럼 그분은 연쇄살인자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고 받는 식이다. 국민의힘은 조선총독부 총독 운운한 조국 대표에게 "만주나 평양에 가라"고 했다. 반동의 무한 반복에 갇힌 역사는 실체를 잃는다. 국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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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하이엔드 커피 지면기사
영화 '밀정(2016)'에는 '카카듀' 간판이 내걸린 경성 거리가 등장한다. 카카듀는 1928년 서울 종로 관훈동에 한국인이 처음 차린 서양식 다방이다. 나운규의 스승인 영화감독 이경손과 오촌 조카 현앨리스가 함께 운영했다. 카카듀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라밖 세상의 정보를 공유하고, 시대적 각성과 계몽을 논했던 당대 독립운동가·예술인·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6·25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커피는 1955년 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1970년 당시 다방 커피 한잔 값은 노동자 일당과 맞먹는 50원이었지만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뜨거웠다. 동서식품은 1970년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한데 이어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까지 개발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최적화된 커피 자판기도 일상을 파고들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오픈했고, 2000년대 들어 무수한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바야흐로 커피전문점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최근 원두 100g당 140만원짜리 커피가 한국에 상륙해 떠들썩하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싱가포르 '바샤 커피' 국내 1호점이 서울 청담동에 오픈했다. 2개 층 약 380㎡(115평) 규모의 매장은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오리지널 커피룸을 오마주해 화려한 궁전을 연상케 한다. 가장 비싼 메뉴는 커피의 본고장 브라질 '파라이소 골드 커피'라는데, 원두 100g당 140만원의 주인공이다.커피룸에서 마시면 한 잔에 48만원(350㎖ 기준), 테이크아웃하면 20만원이다. 슈퍼리치들이 사고파는 아파트 값이 100억원 천장을 뚫었다지만 커피값치곤 초현실적이다. 발빠른 한 유튜버가 솔직한 커피 시음기를 공개했다. "커피 원두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로 머릿속에서 표현할 수 없었다"며 "커피향은 아주 은~은한 페브리즈향(?), 맛은 메가커피 조금 옅은 맛이다"라고 직설해 웃음을 자아낸다.소비 트렌드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한 번뿐인 인생 폼나게 지르고 사는 욜로족과, 필요한 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요노족이 동거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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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밥심, 쌀심 지면기사
1960년대까지 보릿고개에 시달린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도 만성적인 쌀 부족국가였다. 1972년 생산량이 높은 '통일벼'가 수확되면서, 1980년에는 재고량이 100만t을 넘어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됐다. 설상가상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량이 뚝 떨어졌으니, 농민들은 풍년에도 창고에 쌓이는 재고 쌀 걱정이 먼저다. 2023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4㎏으로 역대 최저치, 1993년 110.2㎏을 소비했던 것과 비교하면 30년 만에 반토막 났다. 산지 쌀값은 올해도 직격탄을 맞았다. 80㎏ 한 가마에 17만8천476원, 20㎏에 4만4천619원이다. 지난해 보다 6~7% 또 떨어졌다. 정부는 쌀을 일부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고 쌀 소비를 촉진해 쌀값을 방어하지만 역부족이다. 지난해 시장격리에 9천916억원을 쏟아붓고, 보관비용 1천억원과 폐기비용 수백억원까지 말 그대로 '밑빠진 독'이다.쌀은 식량의 의미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삼국시대에 금·은과 함께 쌀이 화폐를 대신했고, 조선시대에는 쌀로 녹봉을 받고 쌀로 세금을 납부했다. 쌀밥을 마음껏 먹는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였다. 1970~1980년대까지도 쌀을 사러 갈 때 "쌀 팔아오겠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 '사다'와 '팔다'를 거꾸로 말한 이유는 쌀이 돈이고, 돈이 쌀이라는 인식, 그 때문일 것이다.선조들의 식생활 모습을 담은 사료를 보면 소반(小盤) 위에 소복이 눌러 담은 고봉밥이 놓여있다. 요즘 일반적인 공깃밥 210g의 2~3배는 족히 되는데, 대식가의 면모에 압도된다.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도 보통 사람들은 한 끼에 5홉(900㎖), 성인 남성은 7홉(1천260㎖), 아이는 3홉(540㎖)을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평민들은 대체로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고, 점심은 간식 정도로 해결했단다. 밥 외에 다른 먹거리가 부족했으니 밥이 주요 영양 공급원이었다. 흰쌀밥은 양반들 차지였을 테고, 백성들은 잡곡밥을 먹었다지만 양곡 의존도가 높았음은 분명하다.시대는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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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냉면 '사리' 지면기사
유래는 어떤 일이나 사물이 생겨나게 된 까닭이나 기원을 뜻한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의 유래를 따져 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아양 떨다'는 말은 귀여운 말이나 행동으로 관심을 끈다는 뜻으로 '아얌을 떨다'에서 나온 말이다. 아얌은 겨울철에 여성들이 나들이할 때 귀를 내놓고 이마와 머리 윗부분을 가리던 방한용품으로 주로 조선시대 상류층의 젊은 여성들이 쓰던 장신구다. 아얌은 방한 용도보다는 장식용으로 착용했기에 나중에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요즘에는 제한적으로만 사용하는 성냥은 마찰제를 통해 불을 일으키거나 붙이는 발화용품으로 석류황(石硫黃)에서 나온 말이다. 17세기 문헌 기록에는 '셕뉴황'으로 등장하다 19세기 무렵에는 '셕뉴왕'으로, 20세기에는 '셕냥'으로 표기하다가 1920년대부터 성냥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호주머니·호빵·호두 등처럼 '호'자가 붙는 말들은 청나라에서 유래한 말들이다. 우리 한복은 본래 주머니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옷에 주머니가 달리게 되는 것은 청나라 풍습이며, 청국장도 청나라 만주족의 음식이다. 또 예전에 지사제 구급약으로 사용하던 정로환(正露丸)은 '세이로간'이라고 해서 일본에서 러일전쟁 무렵 지사제로 개발한 약품이었다. 정로환은 러시아를 정벌하다라는 뜻을 담은 정로환(征露丸)이었으며, 건빵도 이때 야전에서 식사 대용으로 개발된 군용식품이었다.냉면 등 각종 요리에 들어가는 '사리'는 얼핏 일본말처럼 보이지만, 삶은 국수를 동그랗게 감은 뭉치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7~8월 두 달간 육류 소비가 9만t으로 1~4월 넉 달 동안 소비된 8만t을 상회한다고 한다. 여름철 휴가기간에는 특히 고기를 많이 먹고, 덩달아 국수나 냉면 '사리'도 소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냉면이 제격이다. 냉면 하면 평양냉면·함흥냉면·진주냉면인데 평양냉면 사리는 '메밀'을, 함흥냉면 사리는 '감자 전분'을 사용하며, 전주냉면 사리에는 '녹두'가 가미된다.폭염의 기세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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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파리올림픽의 K-신인류 지면기사
오늘 새벽 폐막식으로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체육회의 앓는 소리가 무색해진 역대급 선전에 국민의 환호가 끊일 날 없던 축제였다. 선수단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한국은 파리 올림픽에서 국내외에 신세대 한국인, K-신인류의 등장을 알렸다. 금·은·동메달 숫자와 국가순위보다 값진 문화적 성취다.파리 올림픽의 국가대표들은 쿨한 자부심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주종목인 25m 공기권총에서 격발 시간을 초과해 탈락한 김예지는 "빅이벤트(0점)를 선사해 여러분(국민)의 실망이 컸을 것"이라 했다. 예전 같으면 실수로 금메달을 날리고 국가순위를 깎아먹었으니 죄책감에 눈물로 속죄했을 테다. 김예지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니 하루에 있던 좋은 기억 하나로 잠드시라"고 국가대표의 문법을 새로 썼다.막내 도경동은 펜싱팀 최고참인 구본길에게 "형! 정신 차려"라고 다그쳤다. 남자양궁 최초의 3관왕 김우진은 "메달 땄다고 젖어있지 말아라. 해뜨면 마른다"며 올림픽 금메달 5개에도 배고픈 1인자의 도전을 선언했다. 엄마 길영아의 금메달에 못미친 은메달을 딴 김원호는 "엄마가 김원호의 엄마로 살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모두 기성세대의 문법으로는 해독이 불가하다. K-신인류의 언어다.2011년 귀화 동기 전지희, 이은혜는 토종 삐약이 신유빈의 든든한 뒷배였다. 스무살 신유빈을 한국 탁구의 미래로 귀하게 여기고, 신유빈은 동메달 2개의 영광을 선배들에게 돌렸다. 여자 펜싱 최고참 윤지수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자신의 무대를 후배에게 양보했다. 시대와 세대를 거역하지 않고 공존하는 K-신인류의 지혜다.안세영의 작심발언은 K-신인류를 가둔 낡고 부조리한 구시대와 구체제를 향한 당당한 저항이다. 일일이 해명하는 체육단체의 대응은 변죽이다. 새로운 세대에 문맹인 시대와 체제는 역사에서 강퇴당한다. 안세영의 요구에 담긴 시대적 요청을 읽어내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세대와 시대 교체의 물결은 도도하고 그 정점에 K-신인류가 출현했다. 음악, 영화·드라마, 음식에 이어 스포츠까지 새시대의 훈민정음으로 K-컬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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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발달장애 부모 '화요집회' 지면기사
"아이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게 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을 품고 사는 이들은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이다. 자신의 삶은 뒤로한 채 언제나 강한 엄마, 강한 아빠가 되어야 한다. 평생 돌봄이라는 굴레에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기어이 살아내는 일이 그저 최선이다.2023년 말 기준 전국 등록 장애인은 264만1천896명으로 전체 인구의 5.1%다. 이 중에서 발달장애인은 27만2천524명으로, 지적장애 22만9천780명과 자폐성장애 4만2천744명 등 모두 심한 장애에 해당된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대인관계나 의사소통이 어렵고 자해 및 폭력적 행동으로 활동 지원 기관과 인력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일이 태반이다.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 된다.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비극이 끊이질 않는다. 발달장애인·가족 사망사고는 2022년 10건, 2023년 11건,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발생했다.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 명백한 사회적 참사다.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송파 세 모녀 사건'이 10년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가동했지만, 발달장애인은 여전히 소외됐다. 2022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진행된 8차례의 복지사각지대 발굴 조사 대상자만 봐도 포함된 발달장애인은 총 1만2천87명(4.4%)에 불과하다.발달장애인 부모들의 '화요집회'가 어느덧 2주년을 맞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 2022년 8월부터 매주 화요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권리 확보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형식은 집회지만 내용은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일상 속 사연을 털어놓으며 서로 위안받고 용기 주는 시간이다. 90세 노모와 함께 요양원에 입원한 환갑 맞은 발달장애 아들, 자녀의 자폐 행동문제를 케어하기 위해 심리행동치료학을 연구하는 엄마, IT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해 당당히 인정받고 싶다는 청년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는 간절하고 절절하다.때론 오체투지로, 때론 삭발투쟁으로 화요집회 86회차 동안 멈추지 않고 외쳐온 '발달장애인 국가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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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안세영 사태 지면기사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최연소 탁구 국가대표로 출전한 17세 신유빈은 진기한 경험을 한다. 단식에선 58세 탁구 최고령 선수인 룩셈부르크의 니샤렌과, 단체전 복식에선 폴란드의 한 팔 선수인 나탈리아 파르티카에게 한 세트 차로 겨우 이겼다. 파리 올림픽에서 '탁구 도사' 니샤렌은 최고령 출전 기록을 경신했고, 브라질 한 팔 선수 브루나 알렉산드르가 경기장을 감동으로 수놓았다.우리나라면 60대와 한 팔 탁구 국가대표가 가능할까. '안세영 사태'에 정답의 실마리가 있다. 안세영은 28년 만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을 차지한 뒤 코트에서 포효했고, 전 국민이 열광했다. 하지만 안세영의 포효가 환희가 아니라 분노였음이 밝혀지자 열광의 도가니는 싸늘하게 식었다. '분노가 올림픽 금메달의 원동력'이라며 배드민턴협회의 무능을 비판했다. 메달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혹사하는 협회를 향한 누적된 불만을, 22세 안세영은 국가대표 반납으로 표시했다.체육단체와 선수들 간의 갈등은 한국 스포츠의 고질이다. 동계올림픽 메달밭인 쇼트트랙은 빙상연맹의 파벌 싸움에 선수들까지 휘말리며 악명을 떨쳤다. 토리노 올림픽 3관왕 안현수가 26세에 러시아에 귀화해 소치 올림픽 3관왕 빅토르 안이 된 배경이다. 국대 여성 선수를 성폭행한 대표팀 코치가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박태환도 김연아도 종목 단체와 불화를 겪으며 마음고생이 심했다.스포츠의 주인공은 선수다. 정부, 체육단체는 선수 육성과 지원을 위한 행정기구일 뿐이다. 선수가 '갑'이고 행정이 '을'이어야 맞다. 현실에선 본말이 전도됐다. 국가대표 선발권을 지닌 체육단체가 갑질로 선수들을 지배한다. 배드민턴협회 임원이 비즈니스석에 앉고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에 처박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여자 배구대표팀이 김치찌개 회식을 한 이유다. 신세대 K-스포츠 스타들을 감당할 수 없는 586 스포츠 행정이다. 양궁의 성취가 특별한 건 한국 스포츠의 짙은 그늘 때문이다. 60대 국가대표와 장애인 국가대표? 요원하다.안세영 사태에 대통령이 나서고, 정부가 진상조사를 약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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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정치 궁합 지면기사
우리나라에 결혼정보회사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80년대 중반이다. 속칭 중매쟁이가 하던 일을 기업이 시스템화해서 최적의 반쪽을 찾아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다. 업체에 회원 등록을 하려면 상세한 신상정보와 증빙서류를 제공하고 법무팀의 확인 절차까지 거치게 된다. 시뮬레이션을 작동해 외모, 성격, 학력, 직업, 자산, 가정환경 등 6가지 조건에서 골고루 높은 밸런스를 보이면 '육각형 남자', '육각형 여자'가 된다. 매칭 시장에서 성혼 가능성이 높은 A급 배우자 감의 별칭이다.하지만 이제 육각형이 아닌 칠각형을 찾아야 할 모양이다. '정치 궁합'이라는 특별 조건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국민 5명 중 3명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나 결혼은 사절"이라고 답했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6~8월 19~75세 남녀 3천950명 면접조사를 바탕으로 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공정성과 갈등 인식' 보고서 내용이다. 응답자의 58.2%가 정치 성향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남성(53.9%)보다 여성(60.9%)이 더 높다는 점은 흥미롭다. 세대별로는 노년층(68.6%)이 청년층(51.8%)과 중장년층(56.6%)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이러한 결과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에서 기인한다. 92.3%가 진보-보수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는데, 이는 5년 전인 2018년 87.0%보다 5.3%p나 상승한 수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82.2%), 노사 갈등(79.1%), 빈부 갈등(78.0%),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71.8%), 지역 갈등(71.5%) 등 다른 숱한 마찰보다도 정서적 피로도가 높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명절 때 정치 얘기는 말라는 불문율이 생겼을까.청년세대(만 19~34세) 혼인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더니, 2020년 기준 10명 중 8명(81.5%·784만명)이 미혼이다. 남성 86.1%, 여성 76.8%가 자의든 타의든 솔로의 삶을 살고 있다. 정쟁으로 지고 새는 국회는 마치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 같다. 국민은 지치고 괴롭고 신물이 난다. 정치 걱정에서 자유로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