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 선인들의 피서법 지면기사
무더위 앞에는 천하장사도 별 수 없다. "삼복기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보양식을 먹는 복달임 같은 우리만의 독특한 피서법도 생겨났다. 여름나기가 힘들었던 것은 옛날 선인이나 지금의 우리나 매한가지였다. 선인들의 피서법 하면,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署八事)'만한 고품격 피서법을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정약용의 호로 널리 통용되는 다산은 정작 다산 본인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 등을 포함하여 다산의 호는 알려진 것만 해도 6개나 있었고, 귀농(歸農)이란 아명에 미용(美庸)이라는 자가 있었다. 다산이란 호는 현대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널리 퍼트린 명칭이다.다산이 제시한 8가지 피서법은 "솔밭에서 활쏘기(松壇弧矢),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槐陰추韆), 텅 빈 정자나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虛閣投壺),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淸점奕기), 연못에서 연꽃구경하기(西池賞荷),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東林聽蟬), 비오는 날 한시 짓기(雨日射韻), 달밤에 발씻기(月夜濯足)" 등이다. 소리 내서 읽어만 봐도 더위가 물러가는 것 같다.장마가 끝나자마자 폭염의 기세가 대단하다. 2일 새벽 강릉시는 31.4도로 한반도 기상 관측사상 가장 높은 일 최저기온을 갈아치웠다. 4일에는 경기 여주시 점동면 기온이 40도를 넘어서는가 하면 제주 한라산을 제외한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졌다. 폭염의 원인은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겹치는 '이중고기압'이 한반도 전역을 덮으면서 햇볕에 달궈진 공기가 단열상태가 되어 기온을 끌어올리는 단열승온(斷熱昇溫) 현상 때문이라 한다.'염소 뿔도 빠지는 삼복더위'에 선인들은 통풍이 잘 되는 정자나 나무그늘에서 쉬거나 탁족을 나갔다. 또 인적 없는 숲속에서 옷을 다 벗고 볕을 쬐는 풍즐거풍(風櫛擧風)으로 염증도 막고 더위를 쫓는 풍욕도 있었다고 한다. 풍욕은 남의 이목을 조심해야 하는 단점이 있으나 체액을 중화시켜 질병 예방에 큰 효과가 있는 피서법이다. 무더위에는 무엇보다 적절한 휴식과 수분 섭취 그리
-
[참성단] 활·총·칼 나라의 막장 정치 지면기사
'국뽕'에 취한 한여름 밤이 꿈 같다. 대한민국 활·총·칼에 한국인은 열광하고 세계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3일까지 딴 금메달 9개가 양궁, 사격, 펜싱에서 나왔다. '무기의 나라' 대한민국을 향한 국내외 네티즌들의 자부심과 찬사가 온라인을 도배했다.여자 단체전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양궁은 5개 금메달 중 이미 4개를 목에 걸었다. 어젯밤 남자 개인전 금메달로 전 종목을 석권한 양궁에 전국민이 환호한 뒤의 아침이길 바란다. 마감 시간은 신문의 잔인한 숙명이다. 사격에선 여성 스나이퍼 3인방, 오예진·반효진·양지인이 금메달 과녁을 뚫었다. 사브르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한 남자 펜싱 대표팀의 선전도 기대 이상이었다.대한민국 활·총·칼의 올림픽 성적은 기적이 아니다. 양궁은 국가대표 선발전이 곧 국제대회 성적이다. 이우석은 2020년 도쿄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코로나19로 1년 연기된 올림픽 대표를 새로 선발하면서 탈락했다. 한국 양궁 불패 신화의 원동력은 공정한 경쟁이다. 새로운 실력자가 끊임없이 등장해 세대를 이어가는 선순환, 펜싱과 사격도 예외가 아니다. 사격은 실력으로 무장한 신예들이 일을 냈고, 펜싱에선 도경동·박상원이 오상욱·구본길과 어펜저스 시즌2를 열었다.세대교체와 더불어 선수들의 희생과 헌신이 실력 이상의 결과를 빚어낸다. 여자 펜싱 최고참 윤지수는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후배에게 출전을 양보했다. 실력이 노출된 자신보다 베일에 가린 후배가 승리에 보탬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팀코리아를 위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결승 무대를 반납한 것이다.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의 자부심도 금메달감이다. 신유빈(탁구) 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 선수에게 패한 뒤 "나를 이긴 상대들은 나보다 더 오랜 기간 노력했던 선수들"이라며 "그런 점은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메달리스트 보다 멋진 4위의 언어에서 미래의 거인이 보인다.공정과 상식, 희생과 헌신, 결과에 초연한 자부심. 활·총·칼을 비롯한 올림픽 국가대표들이 우리가 정치판에서 보고 싶은 고귀한 가치들을 다 보여준다.
-
[참성단] 섬마을 K드론 지면기사
4차산업 시대 드론(Drone)의 진격은 경이롭다. 비행하면서 변형하는 트랜스포머 드론, 나방의 더듬이를 접목한 냄새 맡는 드론, 우주기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정찰 드론, 2천㎞ 밖에서도 조종 가능한 드론까지. AI(인공지능)·블록체인 등 첨단기능을 장착하고 '하늘을 나는 강자'로 한계 없이 진화 중이다.드론은 올림픽 무대에도 등장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1천218대의 드론이 밤하늘에 오륜기를 수놓아 진보된 기술과 예술의 합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팬데믹으로 개최가 1년 미뤄졌던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드론 1천824대가 엠블럼과 지구를 형상화하며 개막을 알렸다.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드론이 스파이로 돌변했다. 캐나다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22일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두고 뉴질랜드팀 훈련장에 염탐용 드론을 띄운 사실이 발각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승점을 삭감하고 감독·코치·전력분석원에게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캐나다는 부당한 징계라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다가 패소해 "올림픽 정신보다 메달이냐"는 비난을 자초했다. 캐나다팀은 뉴질랜드는 물론 프랑스·콜롬비아를 차례로 격파했다. 승점 6점이나 깎이고도 8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개운치 않다. 2020 도쿄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의 명성에도 지워지지 않을 흠집이 남았다.때론 자폭 무기가 되어 전쟁터에 출몰하고, 작전 염탐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착한 드론도 있다. K드론이 이달부터 전국 32개 섬지역, 17개 공원지역, 1개 항만에서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은 반갑다. 성남·양주·포천 등에 이어 9월부터 인천 섬마을 하늘을 누빈다. 덕적도·문갑도·대이작도·자월도에 이어 11월 이후에는 굴업도·영흥도로 영역을 확장한다. 소야도 선착장 인근에서 출발하는 K드론은 3㎏ 이하의 음식·생필품 등을 실어 나른다. 섬 지역은 병원과 약국이 부족한 의료 사각지대다. 응급환자에게 자동심장충격기(AED)·구급약품 등을 신속하게 보낸다는 국토부의 구상이 실현되면 주민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다.드론은
-
[참성단] 100억에 팔린 동교동 사저 지면기사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가 100억원에 매각됐다. 뉴스를 접한 민주화운동 세대의 심경은 착잡하다. 동교동 사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와 함께 군부독재 시절 야당 정치인들의 아지트이자 반독재 투쟁의 본산이었다. 그 시절을 겪은 세대에겐 동교동과 상도동 사저는 단순한 개인주택이 아니라 민주화 서사를 증거할 역사적 공간이다.매각 당사자가 DJ의 막내 아들 김홍걸 전 의원이라 당혹스럽다. "상속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각을 결정했다"는 변명엔 기가 막힌다. 김 전 의원에게도 각별한 동교동 사저다. 아버지가 유신정권과 5공정권 치하에서 옥고를 치르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청을 피하려 필담을 나눴던 집이다. 아버지가 미국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동교동 집에 들어설 때의 감격도 생생할 것이다.김 전 의원은 민주당 위성정당의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의원이 됐다. 아버지 김대중과 어머니 이희호 여사의 후광 덕분이었다. 자질은 부모의 명성에 한참 부족했다. 다수의 고가주택을 보유하고도 허위 재산등록으로 당선 5개월 만에 당에서 제명됐다. 결정적으로 이 여사 사후에 의붓형 김홍업 전 의원과 동교동 사저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일으켜 가문의 품격을 떨어뜨렸다.이 여사는 분쟁을 예상한 듯 동교동 사저에 '동교동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하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기념관 관리를 맡긴 김대중기념사업회에 DJ의 노벨 평화상 상금 8억원을 기부했다. 지자체가 동교동 사저를 공공기관으로 매입할 경우에 대비해 매각대금 상속 지분까지 정해 놓았다. 김 전 의원은 상금과 동교동 사저를 독차지하려다 법정에서 제동이 걸렸다.상속세 때문에 매각했다지만, 공론화 됐다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역사적 장소였다. DJ 유산으로 호남을 독식해 온 민주당은 물론 권노갑, 한화갑을 비롯한 동교동계 아저씨 삼촌들이 발벗고 나서 문제를 해결했을 테다. 가족도 당도 김대중기념사업회도 모르게 매각할 공간이 아니었고 매각할 처지도 아니었다.동교동계는 올해 김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
[참성단] 사도광산 지면기사
사도(佐渡)광산, 일제의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 사도광산은 17세기부터 금을 생산하다가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구리·철 등 전쟁 물자를 조달했다. 1939년부터 조선인 1천500여명은 어둡고 숨 막히는 깊숙한 갱도 안에서 착암(鑿岩·바위에 구멍을 뚫음)·운반 작업에 혹사당했다.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돌아온 이들도 진폐증 등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일본 정부는 애초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16~19세기 중반으로 시기를 한정했다. 세계문화유산의 결격 사유인 '조선인 강제동원' 흑역사를 제외하려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지난 6월 세계유산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전체 역사를 설명하라고 권고했다. 그래도 우리 정부가 반대하면 위원국 전체 동의 방식으로 결정되는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불가능했다.일본을 경제·안보 협력 파트너로 인정해온 윤석열 정부는 강제노역 역사 전시물 설치와 매해 희생자 추도식 개최를 조건으로 동의했다. 결국 사도광산은 지난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세계유산위원회(WHC) 21개 위원국의 전원동의(consensus) 로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됐다.화장실을 다녀온 일본의 태도가 돌변했다. 2015년 군함도(端島·하시마 탄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에도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을 파기했던 일본이다. 이번엔 전시장 꼼수로 뒤통수를 쳤다. 사도광산에서 2㎞나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에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을 설치했다. 전시물에는 '노동자 모집과 징용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했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에 투입된 비율이 높았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강제노역'이라는 단어는 없다. 국내 반일 여론을 무릅쓰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윤석열 정부만 바보가 됐다.전범 국가의 치부를 지우려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집요하고 치밀하다. 전범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둔갑시키려 국제사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한국 정부와의 약속을 조롱했다.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역사관에 치가 떨린다. 아울
-
[참성단] 한국 여자양궁 올림픽 10연패 지면기사
한국 여자양궁이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 여자양궁 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에서 슛오프 끝에 중국에 5대 4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올림픽 10연패의 대업을 달성했다. 한국양궁의 적수는 이제 한국양궁 자신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양궁은 인간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양궁 사상 최초로 3관왕을 달성한 안산도 국내 선발전의 문턱을 넘지 못할 정도로 한국양궁은 선수층이 두텁고 선수들 간의 실력도 백지장보다 더 얇은 나노미터급 차이에 불과하다. 이로 미루어보면 우리에게는 남다른 활쏘기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다.우리 활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국조오례의', '무예도보통지', '삼국유사', '삼국사기' 정도의 국내 사료와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국외 자료가 전부다. 활에 대한 연구도 1929년에 나온 이중화의 '조선의 궁술'이 최초다. 이는 일제강점의 상황에서 활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고취하고자 한 민족주의적 연구다.우리나라 활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고산리 유적과 서포항유적 1기층, 오산 제1문화층 등에서 석촉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반구대 암각화와 경주 금장대 암각화 그리고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에서 말을 탄 무사가 호랑이와 사슴을 활로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으니 우리 활의 역사는 최소 기원전 1만~7천년 사이부터 본격화했음을 알 수 있다.이처럼 오랜 활의 역사만큼 역대급 명궁들도 많았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부여 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신궁으로 숱한 일화를 남겼고, 조선의 22대왕 정조 또한 명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양궁의 10연패 뒤에는 이런 찬란한 역사가 바탕에 깔려 있다.양궁은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됐고 공교롭게도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가 창설되자마자 한국양궁은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4년 서향순의 LA올림픽 금
-
[참성단] 무너진 국가정보기관 지면기사
독일 통일 후 드러난 구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의 정보전 실체에 구 서독 사회는 경악했다. 2만~3만명에 달하는 동독 정보원들이 서독 정계·재계·학계·종교계·언론계와 학생운동권에서 암약했다. 첩자로 포섭된 서독 연방의원들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했다. 빌리 브란트 수상의 비서 귄터 기욤을 비롯해 서독과 나토의 주요 요인 주변에 수천명의 정보원을 심었다.정보전은 국가의 운명과 사활을 결정한다.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의 손자병법에서 정보전의 기초가 확립된 이유다. 손자병법은 용간(用間)편에서 정보원을 적국의 일반인과 관리와 간첩을 포섭한 향간(鄕間)·내관(內間)·반간(反間)과, 적지에 정착했거나 적지를 오가는 사간(死間)·생간(生間)으로 구분했다. 향관·내관과 이중간첩인 반간은 적지에 심어 놓은 현지 정보원이라면, 사간과 생간은 적지에 거주하거나 오가며 정보를 수집하는 자국 비밀 정보원이다. 모두 신상이 극비인 현대판 '블랙요원'들이다.1992년 KGB 요원 바실리 미트로킨이 KGB공작파일을 들고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87세 영국 할머니 멜리타 노우드가 KGB 고정간첩으로 밝혀졌다. 핵무기 정보를 수집한 공로로 소련 정부의 훈장까지 받고 60세에 은퇴한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당당하게 인정했다. 첩보전의 성패는 기밀 유지에 달렸다. 요원들의 신상 공개는 최악이다. 정보망이 무너지고, 복구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정보 공백은 국가 안위에 치명적이다.국군 대북 정보기관인 정보사령부 소속 해외 요원들의 신상과 개인정보가 북한 등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외교관으로 위장한 화이트 요원은 물론 신분을 위장한 블랙요원의 신상이 다 털렸단다. 우리가 파견한 사간·생간은 물론, 오랜 세월 공들여 구축한 향간·내관·반간 등 휴민트 자원들이 일거에 노출됐다면 대북 정보전의 일선이 붕괴된 셈이다.영화 '아저씨'의 주인공 원빈이 전당포를 운영할 정도로 정보사 요원의 신상은 퇴직 후에도 국가 기밀이다. 정보전에 목숨을 건 무명 용사들을 수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무너졌다. 올해부터 대공수사가 박탈된 국정원은
-
[참성단] 대졸 백수 400만명 지면기사
대졸 백수들이 400만명을 넘는단다. 대졸 백수라는 단어의 어감이 최근 졸업자를 말하는 듯 착시를 불러와 당혹스러운 수치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대학(전문대 포함)을 갓 졸업한 청년부터 60세 이상까지 포함된 통계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올 상반기 월평균 405만7천833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천명 늘어, 1999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상반기 최고점을 찍었다. 전체 비경제활동인구는 올해 상반기 총 1천616만6천명인데 대졸 이상 비율이 처음으로 25%를 넘어섰다. 대학 진학률이 이미 70%를 넘어선 마당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백수 입학'이다.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를 시작해도 그렇다. 재학생들은 백수가 두려워 졸업을 미루니, 휴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올 5월 기준으로 휴학한 적이 있다는 비율은 46.8%, 대학 졸업 소요 기간도 4년 3.8개월로 역대 최장이다.청년들은 첫 직장을 잡기까지 평균 11.5개월을 백수로 지낸다. 지난해보다 1.1개월 또 늘었다. 대졸 이상은 8.3개월, 고졸 이하는 1년 5.6개월이다. 이중 3년 이상 걸린 '취업 삼수생'이 9.7%나 된다니 취업의 벽을 실감하게 된다. 어렵게 취업에 골인해도 10명 중 3명은 1년 이하 계약직이다. 시간제 근로 비율도 23.4%로 최고 수준이다. 60%는 첫 월급이 200만원 미만으로 박봉에 쪼들린다. 월 200만~300만원은 35.2%, 300만원 이상은 5.1%뿐이다. 첫 일터에서 사표를 던지는 이유 중 45.5%가 열정페이·근로조건 불만족이라니 수긍이 간다.대졸 청년들은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느라 백수 생활을 감수한다. 실력과 운으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행복은 잠시뿐이다. 정년을 한참 남겨둔 선배들이 등 떠밀려 은퇴하는 모습에서 불안한 미래를 직감한다. 조기 퇴직자 앞에 열린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악몽이다. 정년퇴직의 행운을 누려도 100세를 누리려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사람이 태반이다. 올해 상반
-
[참성단] '캔돈'(CAN豚) 열풍 지면기사
삼겹살이 포장만으로 MZ들이 열광하는 신상품으로 변신했다. 국내 1위 돈육 브랜드 '도드람한돈'이 이달 초 출시한 '캔돈'이다. 캔에 담은 돼지(豚)고기라니, 상품명 자체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이다. 최초의 자부심이 담겼다. 전 국민이 삼겹살 소믈리에인 삼겹살의 나라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포장 방식에 소비자들이 홀딱 빠졌다.캔 모양의 페트(PET) 용기에 생삼겹살을 담은 '캔돈'의 장점이 대단하다. 기존의 사각형 합성수지 용기는 유통과 소비 과정에서 구겨지거나 포장 랩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형마트에서 대용량으로 포장 판매하는 삼겹살은 소비하지 못해 냉동실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캔에 담으니 모든 불편이 해소됐다. 한 캔에 삼겹살 300g이니 캠핑장과 가정에서 필요한 만큼 구매해 당일 소비하기 쉽고, 이동시 보관도 간편해졌다. 포장만으로 유통과 소비에 혁신을 일으킨 셈이다.각종 SNS 커뮤니티에 MZ들의 캔돈 체험 영상이 즐비하다. 반응은 열광적이다. 1, 2인 가구가 대다수인 MZ세대 주거 형태와 찰떡 궁합인 신상이란다. 나홀로 캠퍼들은 '캔돈'으로 캠핑의 신세계가 열렸다고 호들갑이다. 삼겹살이 가능하니, 모든 육류와 부위가 캔으로 포장될 날이 머지 않았다. 이제 고기 구매 기준이 중량에서 캔 단위로 바뀔 수도 있다.캔돈을 히트 시킨 '도드람한돈'은 이천에서 시작한 경기도 향토 기업이다. 1990년 이천의 13개 양돈 농가가 도드람양돈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사료업체와 유통업체의 횡포에 지친 양돈 농가들이 생산·도축·가공·유통 전 과정을 직영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조합 이름은 이천 도드람산에서 따왔고, 정관 3조에 조합 주 사무소를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1931'로 명기했다. 조합 경영에 이천 축산인의 명예를 걸었다.13개 양돈 농가의 독립 선언 30여년 만에 조합은 3조원을 훌쩍 넘는 연매출을 기록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지역의 명예가 걸린 '도드람' 브랜드의 가치에 걸맞은 품질 유지에 정성을 바친 결과일 테다. MZ세대를 사로잡은 '캔돈
-
[참성단] 시대의 상징, 김민기 지면기사
"…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김민기는 서울미대 2학년 재학 중이던 1971년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의 작곡가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이슬'과 함께 '상록수'는 반독재 집회와 시위 때마다 광장에 울려 퍼졌다. 김민기는 천재적 감수성으로 삶을 은유했건만, 투쟁의 상징이 됐다. 군부 독재정권은 그의 노래에 반정부 딱지를 붙였다. '아침이슬'을 포함해 '친구', '꽃피우는 아이', '저 부는 바람' 등 총 10곡의 자작곡이 수록된 한국 최초 싱어송라이터 음반 1집은 판매금지 1호의 영예(?)를 안았다. 김민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념의 경계에서 추앙과 박해를 동시에 받았다.1973년에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 극음악을 작곡했고, 1977년 군 만기제대 후에는 부평의 한 봉제공장에 취업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담은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발표했다.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해 프로젝트 음반을 내기도 했다. '운동권 노래의 대부'라는 수식을 어느 순간 운명처럼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30대의 김민기는 민통선 소작농으로, 탄광 광부로, 김 양식장 잡역부로 살았다. 세상 낮은 곳에서 '앞것' 뒤에서 일하는 묵묵한 '뒷것'의 책임을 다했다.1991년 40세부터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고 공연 연출가로서 혼을 쏟았다. 전 배역 공개 오디션이라는 파격 시스템은 '학전'을 실력파 배우의 산실로 만들었다. 김윤석·황정민·설경구·조승우·장현성은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기도 했다. 1994년 초연해 15년 동안 4천회 이상 무대에 올린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록됐다. 돈 안되는 아동·청소년극에도 소명을 이어간 '학전'은 재정난으로 33년 만인 올해 3월 폐업했다. 학전에 대한 '책임 있는 미련함'은 김민기 정신으로 영원히 회자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