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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게임과 수도권 지면기사
과천시민들이 격앙되어 있다. 앞으로 과천시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되지 않는다. 정부 주요부처들을 대거 충남으로 이전하는 ‘신행정중심 복합도시특별법’이 지난 3월 2일에 국회에서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처럼 과천시는 수도권인구분산계획에 의거, 지난 20여년 전에 새로 건설한 대표적인 행정중심도시로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등 총 11개 부처들이 입주해 있다. 과천시의 경제는 이곳에 근무하는 6천여 공무원들과 과천청사를 찾는 민원인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더구나 쾌적한 주거환경에다 서울 강남을 지척에 두고 있는 관계로 집 값 또한 강남수준에 버금간다. 그런데 이번 특별법의 국회통과로 과천의 젖줄이 일거에 사라짐은 물론 재산상의 손해까지 입어야할 판이니 7만여 과천시민들이 흥분할 밖에. 수도권 주민들도 심기가 편치 못하다. 수도권에 소재해 있는 공공기관 190여 개가 신행정수도 건설을 전후해서 지방으로 이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과천에 비해 덩치가 엄청날 뿐 아니라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꿀단지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과천처럼 불만의 소리는 당장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전이 본격화되면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오리무중이다. 지금은 단지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더욱 수도권 주민들을 씁쓸하게 하는 것은 나머지 지자체들의 행태이다. 각 지자체들은 이참에 어느 공기업을 빼올까 저울질하는 한편 서로간에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죽어 가는 들소의 시신을 뜯어먹으려는 세렝게티평원의 하이에나들처럼 말이다. 또한 현정부의 국정운영을 보면 기득권층을 옥죄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강남의 집 값을 잡겠다고 집권기간 내내 수도권에 융단폭격을 한 터에 서울대 등 명문대를 없애기 위해 대학교 수시 모집을 대폭 늘렸으며 법조계와 의료계를 흔들기 위해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제도를 도입했다. 차제에 수도권주민들에게는 이번 행정수도 이전도 위의 경우처럼 우리나라 부(富)의 중심인 수도권 흔들기로 비쳐져 개운치 못하다. 수도권 과밀억제와 지방균형발전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인구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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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 망가뜨리기 지면기사
문화 인프라가 한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얘기는 이제 상식이다. 부천시는 이런 상식을 상식으로 정착시킨 도시다. 97년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를 개최하기 전만 해도 부천시는 수도권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공장과 사람이 밀집한 공해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도시의 운명이 달라졌다. '사랑과 환상과 모험'이라는 영화제의 테마와 같이 국내외에서 몰려든 영화와 영화인들로 도시 전체에 환상적인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고 그 활력은 전체 시민들에게 전이돼 부천은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로 변신했다. 이제 부천은 대한민국만의 지명이 아니라 세계적 지명으로 성가가 높다. 부천은 부천시민만의 도시가 아니라, 판타스틱 영화장르를 추구하는 세계 영화인들의 메카로 성장했다. 공해에 찌든 회색도시 부천에 영화제가 총천연색 생명의 색깔을 입혀준 것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고 아홉수의 고비는 반드시 겪게 마련인 것인지 올해로 9회를 맞는 부천영화제가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태로우니 큰 걱정이다. 위기의 전말은 세상에 알려진대로다. 부천국제영화제의 오늘을 만들어낸 김홍준 전집행위원장을 부천시가 해촉하면서 부터다. 지난해 영화제 개막행사에서 부천시장을 소개할 때 그 이름을 깜박한 김 위원장에게 불경죄를 물은 것이다. 이에 영화인들은 작품 출품을 거부하고 영화제 불참을 결의했고, 후임 집행위원장은 며칠인가 상황을 지켜보더니 자리를 내던지고 말았다. 부천시의 오기 또한 만만치 않다. 집행위원장 없이 영화제를 열겠다고 뻗대고 있으니 그렇다. 터무니없는 시장님의 신경질과 공무원들의 심기 보좌로 부천 시민과 세계 영화인들의 영화제가 표류하는 사태에 이르렀으니 어이없는 일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부천영화제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솟구친 건 당연하다. 부천시민과 지역 문화계가 부천시를 나무라는 한편 영화계를 달래며 화해를 종용한 것은 영화제의 성공적인 유지를 염원하는 마음에서다. 이런 판국에 부천영화제 전임 프로그래머들이 '반(反)부천영화제'를 제9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기간중에 개최키로 결정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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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중계도 안 하는 나라 지면기사
지난 설날은 그래도 행복했다. 쿠웨이트 골문을 시원스레 2대0으로 뚫어준 월드컵 예선 축구 덕분이었다. 그 시간만은 체불 임금을 주지 못해 몸을 피한 중소기업 사장도 여인숙 TV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열을 올렸고 선물 꾸러미 챙길 돈이 없어 고향의 뿌리로, 피붙이 곁으로 가지 못한 나그네 설움 근로자들도 단칸 방 문고리가 떨어져나갈 듯 고함을 쳤는가 하면 홀로 사는 노인도, 병실의 백혈병 어린 천사들도 핏기 마른 손, 고사리 손이 터지도록 손뼉을 쳐댔다. 서울역, 수원역 노숙자도 굴러가는 공을 쫓아 벌쭉벌쭉 웃음을 굴렸고…. 2대0 그 순간만은 90으로 솟구친 이 땅의 국민 행복지수였다. 같은 시간 북한과 싸운 일본 축구 열기도 대단했다. 시청률이 무려 57.7%였다고 했다. 1억3천의 57.7%라면 자그마치 7천500만 인구가 지하의 지진 신이 놀라도록 발을 구르며 와 와 소리를 질러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고도 놀랍고 이해할 수 없는 건 북한은 중계를 하지 않았다는 외신 보도였다. 중계 비용 때문인가, 아니면 2대1로 질 거라는 점괘를 믿었던 것인가. 이유야 어떻든 말이 안 되는 그 이유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 날 저녁 조선중앙TV는 설날 특집 노래 프로와 영화를 방영했고 축구가 한창인 8시 뉴스 대엔 63회 생일을 앞둔 김정일 총서기에게 보낸 해외 각국의 선물을 소개하는 게 주요 뉴스였을 뿐 축구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김정일화(花) 축제에 마냥 도취해 있었다. 기가 막힐 일이다. ‘위대한 지도자 동지’와 북한 인민은 월드컵 예선 축구에 그토록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것인가. 축구보다는 ‘하늘이 낸(天出) 지도자’께서 받으신 생신 선물이 천 배나 만 배나 더 궁금하고 즐겁다는 것인가! 만약에 한국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을 2대0으로 이긴 축구를 중개하지 않았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그 시간 축구 중계는 하지 않고 북한 인민의 팜파도어(pompadour) 올백 머리형의 노무현 대통령이 보톡스 주사를 맞고 쌍꺼풀 수술을, 의학 용어로는 안검하수(眼瞼下垂)증,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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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르치는 일 지면기사
'고백신 태고내 2·3·4 초중말'. 중학교 때 역사시간에 외워야 했던 '암구호' 가운데 하나다. 내용인즉 이렇다. 고구려·백제·신라의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했던 왕은 각각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마립간)이며, 그 시기는 2세기 초, 3세기 중반, 4세기 후반이라는 의미다. 물론 삼국의 고대국가 확립은 이보다 훨씬 소급된다는 게 지금의 정설이지만, 당시엔 이게 '국정교과서 역사'였고,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사실(史實)이었으므로 달달 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역사선생님의 독창적 아이디어인지, 대대로 전수된 비방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태정태세문단세…', '태혜정광경성목…' 등등과 더불어 수많은 역사 암호를 암기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작은 머리로는 도통 그 의미를 알아낼 수 없었던 지긋지긋한 암호들은 당시 중학생들에게 던져진 통과의례의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그 선생님들도 그런 식으로밖에 역사를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지 않았을까.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70~80년대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가 된 이유 역시 그런 역사교육과 무관치 않을 터이다. 역사는 무미건조한 사실의 집적이 아니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가르침은, 당시 서양 역사학계의 수준으로 보자면 그닥 신선한 것도 심오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백신 2·3·4…' 세대에게는 마치 심봉사 눈뜨듯 역사를 보는 눈을 번쩍 열어주는 '묘약'처럼 받아들여졌다.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해방전후사와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도되기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의 핵심은 바로 이 '대화'와 관련이 있다. 역사와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대화로서의 역사'에 눈뜬 수많은 역사학자·역사교사·역사학도가 70~80대를 통과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졌고, 진지하게 해답을 찾아나섰다.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그런 노력이 맺은 중간 결실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창립한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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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병(老兵)의 인생유전 지면기사
프랭크 시나트라의 수많은 히트곡중 하나인 마이웨이(My Way)는 자신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읊은 불후의 명곡이다. 연배가 지긋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폼나게 불러보고 싶은 곡이지만, 프랭크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온 인생을 독백하듯 되돌이키며 만족한 미소를 짓는 사나이의 기품어린 표정, 그런 표정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고픈 보통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늘 멋있는 인생을 꿈꾼다. 김영삼 처럼 중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의 꿈을 키우고 싶고, 카이사르와 같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며 세상을 호령하다가, 맥아더 처럼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는 근사한 퇴장의 변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이 큰 인물들로만 넘친다면 비극일 것이다. 그들의 빛나는 인생 뒤엔 그들의 욕망 실현에 이바지한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인생사가 고여있다. 보통 사람없이 위인이 탄생할 수 없는 건 시대를 초월한 진리이고, 이제는 보통사람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민주주의의 세상이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 권력과 금력과 명예를 가진 자들의 인생 만큼이나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할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만인의 인생이 평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디까지나 지향해야 할 대상이지 실현 대상은 아니라는 점이 보통 사람들을 절망시키곤 한다.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북한을 탈출했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다시 북송된 한만택씨의 인생유전은, 어떤 정치제도하에서도 희생되는 인생이 있기 마련이라는 비참한 진실을 일깨워 준다. 늙은 노병이 프랭크와 같은 인생 서사를 남기려 조·중 국경을 넘었을리 없다. 반세기 훨씬 전에 포로로 잡힌 그 순간 부터 그의 인생은 멈춰버렸을 것이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이루려 했던 꿈은 단 하나, 고향 땅에 돌아가 늙어버린 가족과 얼굴 모를 후손들과 재회한 뒤 그 땅에 묻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고국 땅을 밟아 가족들에게 하고팠던 가슴속의 한마디는 무엇이었을까. '나 이제야 돌아왔네' '너무 늦게와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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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과 한일협정문서 지면기사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사망했다. 남의 나라 정치지도자의 자연사를, 그것도 지금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던 한 노(老)정객의 죽음을 굳이 떠올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1989년 6월 중국정부는 톈안먼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천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을 장갑차 등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자오쯔양은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로서 참극이 벌어진 직후 스스로 베이징대학을 찾아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하다”며 울먹였다가 실각한 인물이다. 최고 권력자로서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양심을 선택한 점이 그가 돋보이는 이유다. 필자는 거인의 죽음에 대한 중국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톈안먼사태의 주역인 베이징대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톈안먼사태 때 언론매체역할을 했던 베이징대 게시판이나 인터넷에서는 그를 애도하거나 혹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대자보는 물론 글귀하나 찾기 힘들었다. 중국정부의 통제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대학생들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10여년 전의 지도자가 죽었는데…흥분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중국인들의 의식수준이 겨우 이 정도인가 하는 느낌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톈안먼사태나 자오쯔양은 이미 잊혀진 역사의 유물이었을 뿐이다. 우리네 사회는 어떠한가. 며칠 전에 정부는 한일협정 관련 문건 중 극히 일부를 공개했다. 진작에 공개되었어야 했다. 한일협정에 대한 진실규명작업은 우리 사회 바로세우기와 관련한 중대한 과제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첫째, 일제 침략의 직·간접 피해자에 대한 보상작업의 적절성은 물론 구겨진 한국민들의 자존심도 회복하는 것이다. 둘째,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헌정사상 가장 긴 기간동안 독재로 일관했던 박 정권의 치적에 대한 검증작업은 단 한차례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셋째, 한국과 미국, 일본간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참에 독도의 영유권문제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이번에 문건의 일부공개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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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행정이 짓밟은 童心 지면기사
살다보면 크고 작은 시비를 목격하기도 하고 휘말리기도 한다. 그런 시비가 절정에 달하면 '법대로 하자'며 서로를 어르는 지경에 이르기 일쑤고, 실제로 법대로 해결하고픈 심경을 경험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비는 법정에 이르기 전에 인간적으로 해결된다. '법대로 하자'는 으름장이 실제상황으로 벌어졌을 때의 골치 아픈 상황을 잘 알아서다. 법으로 시비를 따지는 일이 대부분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수반해서다. 그리고 일단 송사에 엮이게 되면 주변의 관심이 부담이다. 그것이 '동정'이든 '비난'이든 간에 주변 여론의 중심에 선다는 게 보통사람으로선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서다. 그래서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억울한 사람은 침묵하는 부조리가 수시로 일어난다. 노일레 노이만은 소수의 주도적 여론이 전체 여론으로 확산되는 침묵의 나선이론으로 언론의 효과를 설명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를 설명할 때도 침묵의 나선이론은 적절할 때가 많다. 객소리를 길게 늘인 것은 '건빵 도시락' 파문 때문이다. 지금까지 파문의 전개과정을 보면 초점은 건빵 도시락에만 맞추어져 있지, 정작 그 도시락을 배달받았던 결식아동들의 고통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여론은 상식을 배반한 도시락 메뉴에 경악하고 분노했다. 불같은 여론의 화살은 곧바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비양심적인 도시락 공급업자에게로 향했다. 급식을 제공한 결식아동을 7만에서 40만으로 늘린다면서도 어떻게 전해줄건지, 도시락은 어떻게 꾸릴건지 안중에 없었던 무뇌(無腦)행정을 질타했다. 또 그것도 알량한 사업이라 이문을 남기겠다고, 결식아동들의 반찬 값을 떼먹은 업자들의 상혼이 여론의 노도(怒濤)에 휩쓸렸다. 그래서 복지부장관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고 고개를 떨구었고, 여당은 진상조사단을 꾸린다 난리를 피우고, 검찰은 관련 공무원과 업자들을 수사한다며 법석이다. 그런데 정작 목소리를 내야 할 주인공은 여론의 목청에 짓눌려 침묵한 채 치유하기 힘든 고통을 되새김질 하고 있으니 가슴아픈 일이다. 바로 건빵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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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아시아가 '초토화됐다'고? 지면기사
지난해 12월26일 남아시아 지진→해일이 발생하자 이튿날 아침 7시 TV 뉴스부터 보도 기자와 앵커는 줄곧 “남아시아 일대가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어느 신문도 28일자 지면에 '태국 푸케트 초토화'라는 제목을 달았다. '초토화(焦土化)'가 무슨 뜻인가. '焦'는 '탈 초'자다. 전쟁으로 폭격을 맞거나 화재가 나 모두 타버리고 재만 남은 상태가 '초토'다. 그런데 해일로 물바다가 됐다가 쓸려간 자리를 가리켜 '초토화됐다'니? 이야말로 물인지 불인지,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망발이 아니고 무엇인가. 작년 9월20일 아침 모 방송 워싱턴 특파원도 “허리케인으로 플로리다주 일대가 초토화됐다”고 하는 등 홍수가 날 때마다 TV에선 물을 가리켜 불이라 하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초토화됐다'는 말 자체도 어폐가 있다. '화'는 '될 화(化)'자다. 따라서 '초토화됐다'고 하면 '됐다'는 뜻이 겹친다. '됐다'를 붙이지 말고 '초토화'로 쓰는 게 옳다. 어떻게 이 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인가. 까닭이야 말할 것도 없이 '탈 초(焦)'자가 머리에 입력돼 있지 않아 인지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물과 불을 가리지 못하는 말이 '초토화'라면 밤중인지 새벽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방송 용어가 또한 '새벽 1시'다. 남아시아 의료진, 자원봉사단이 '새벽 1시'에 어디에 도착했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1시, 01시는 자시(子時)인 한밤중이지 새벽이 아니다. 1시가 새벽이면 그럼 2시에 해가 뜨는가. 새벽이란 날이 밝을 녘, 먼동이 틀 무렵, 해가 뜨기 직전의 시간대다. 여름엔 5∼6시, 겨울엔 4∼5시경이 새벽이다. 여명, 서광이 비칠 때가 새벽이다. '새벽 1시'가 아니라 '오전 1시'다. 그런가하면 한자와 순 우리말을 분별치 못해 잘못 말하는 대표적인 방송 용어는 또 '강추위'다. '강추위'란 눈을 동반하지 않은 '맨 추위'를 가리킨다. '강'은 强이나 剛 등 한자가 아니라 순 우리말 접두사다. 눈물도 안나오는데 억지로 우는 울음인 '강울음'이나 '강새암을 부린다' '강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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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답게 살기 지면기사
“하루살이처럼 살겠다.” 새해 덕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어느 동료가 털어놓은 신년계획이다. 하루살이라…. 처음엔 유행 지난 말장난같더니 곱씹어볼수록 의미가 그럴듯하다. 일간신문을 만드는 직업적 특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갈수록 변화무쌍해지는 시대를 사는 지혜로서 그만한 다짐도 없겠다 싶다. 그럼 나도 슬쩍 벤치마킹해 볼까. 하루살이답게 살자!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 곤충이 아니다. 성충은 인간의 척도로 기껏해야 몇시간, 길어야 하루 정도 살지만, 유충으로 지내는 시간은 꽤 길다. 대개 1년이고, 어떤 종류는 3년씩이나 기다린다. 성충이 되어 엄숙한 '혼인비행'을 할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다. 성충 하루살이는 자지도 먹지도 않으면서 후세를남기기 위한 짝짓기 비행에 나선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불살라 사랑을 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작업에 몰두한다. 물론, 하루살이가 주는 어감이 고울리 없다. 무계획적이고 무모하고 허접스런 삶의 상징이 하루살이 아니던가. '하루살이같은 삶'이라는 표현 뒤에도 소시민적 무기력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역사적 허무주의의 악취도 난다. 하지만 그것도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아무리 멋진 계획을 세우고 굳은 의지를 다진들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차라리 하루살이처럼, 하루살이답게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내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생의 첫날처럼, 끝날처럼…. '생마 갈기가 외로 질지, 바로 질지'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어린 말의 갈기가 어느 쪽으로 넘어갈지 예측할 수 없듯이, 어린아이의 장래는 미리 알 수 없다는 게 본뜻이다. 그런데 올 연초에는 이 속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2005년의 갈기가 과연 어느 쪽으로 질 것인가. 한반도를 덮은 먹구름은 우중충하고,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어지럽다. 사방이 가물철 수숫잎 꼬이듯 꼬였다. 대립과 분열의 골 또한 너무 깊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어설픈 화해와 봉합은 물론 정답이 아닐 것이다. 갈등을 극단까지 밀고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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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을 보내며··· 지면기사
어느 신문에선가 신인 여가수가 서울역을 찾아 노숙자들을 위로하고 빵과 음료를 나누며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선사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여러분도 한때는 행복한 가정을 꾸린 가장이었다”며 “당장은 힘겨워도 그때를 기억하며 희망을 잃지 말자”고 격려했다니 그 마음이 얼마나 따사롭던지…. 엄동설한 한겨울 길거리에서 추위와 절망에 시달리는 노숙자에게 그 여가수의 따뜻한 위로는 그야말로 천상의 복음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벌어진다. 그중에서도 자선냄비는 연말 온정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남비 모금액은 우리사회 온정의 지표처럼 여겨져왔다. 골깊은 불황의 터널에도 그 자선냄비 온정이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역시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것은 어려운 때 일수록 민초들 속에서 녹아 나오는 훈훈한 인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비록 연례행사라 해도 바쁜 일상에서 한번쯤 불우이웃을 되돌아보는 연말의 자선 행렬은 우리가 함께 사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올해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전대미문의 연쇄살인 사건이며 경찰관 살해도주 사건, 불량만두소 파동, 한강다리 자살 신드롬, 유명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사건,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입시험의 대규모 부정행위, 그리고 조그만 마을을 송두리째 뒤흔든 미성년자의 집단성폭행사건 등 헤아리기 조차 벅찬 대형 사건들로 불황에 찌든 민심은 더욱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치권에 불어닥친 삭풍은 어느해 보다 감당키 어려웠다. 기존 정치권의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온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 고 김선일씨 참수사건과 이라크 파병결정, 국보법 등 4대법안이 불러온 국회공전과 파행 등 정치적 격변이 이런저런 집회의 촛불속에 출렁거리지 않았던가. 뭐니뭐니해도 우리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삭막한 세상에 희생되는 어린이들의 참변이다. 생활고에 내몰려 한가족 동반 자살에 휩쓸린 어린이나, 어른없는 집을 지키다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