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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守를 조롱하며 相生 외치나 지면기사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이 또다시 장안의 화제, 정치권의 논쟁이 되고 있다. 대통령직 복귀 직후 노 대통령은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약속했다. 탄핵 이전의 힘 없는 대통령과 덩치 큰 야당간의 끝없는 언어 전쟁에 식상한 국민들이 통합과 상생을 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힘'이 생겼기 때문에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도 한결 여유가 깃들 것이란 기대가 컸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통치언어는 여전히 피아(彼我) 구분형이니 답답하다. 지난번 연세대 특강의 발언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쓸데없기도 했다. 청와대가 정리한 발언록을 다시 음미해 보자. “진보, 보수가 뭐냐. 보수는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적자생존을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이 우주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냐, 더불어 살자다.(중략) 이렇게 이해하면 간단하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가 옳다고 치자. 그 누가 보수를 자처하며 이 사회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라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동물세계의 법칙을 신념으로 삼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정의한 진보의 이념을 갖추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습다. 대통령은 진보를 '더불어 사는 것'으로 정의했지만, 이는 진보의 개념이라기 보다 민주국가를 떠받치는 사회적, 시민적 덕목이라고 해야 옳다. 보수든 진보든 더불어 살자는 정치이념이고 삶의 가치이다. 다른 것은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과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니 보수, 진보에 대한 대통령의 정의는 분명히 오류인 셈이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많은 국민이,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는 많은 국민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은 먹고 입고 잠잘데만 있다고 살아지질 않는다. 의·식·주 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조건은 각자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태도이다. 삶의 가치를 갖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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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는 국가원수 지면기사
슈뢰더 독일 총리가 따귀를 맞았다. 사민당이 엊그제 주최한 집회에 참석, 신입 당원들 앞에서 사인을 해 주고 있을 때 갑자기 등뒤에서 다가온 52세의 실업자로부터 호되게 얻어맞은 것이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끝없는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대한 응징”이라고 했고 슈뢰더는 기자들에게 “턱이 얼얼했다”고 따귀의 강도(强度)를 실토했다. 영국 총리 블레어도 그 이튿날 의회에서 대정부 질문 답변 중 방청석으로부터 자줏빛 분말로 채워진 콘돔 세례를 받았다. 그 역시 ‘미스터 콘돔’의 접근을 허용했더라면 한쪽 뺨이 벌겋도록 따귀를 맞았을지도 모른다.부시 정권의 부도덕성을 통렬히 비난한 반전(反戰) 다큐멘터리 ‘화씨 911’로 칸 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마이클 무어 감독 일행이 부시를 만난다 해도 부시의 뺨은 온전치 못할지도 모른다. 하긴 그랑프리의 기쁨 끝이라 따귀까지는 몰라도 이렇게 다그칠 게 뻔하다. “봤지? 들었지? 이런 게 영화라는 것이고 예술로 꿰매고 포장한 진실이라고 하는 아주 희귀한 것이야! 당장 배급을 허용하고 백악관 마당에서 시사회나 갖자구!” ‘워싱턴포스트’는 ‘화씨 911’의 수상을 “백악관을 겨냥한 정치적 수류탄이나 다름없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도 약속이나 한 듯이 “무어 감독이 그 곳에서 폭탄을 터뜨렸다”고 논평했다. 그 ‘화씨 911’ 수류탄과 폭탄은 이제 전세계의 흥행 블록버스터로 터져 나갈 것이다.일본 쪽의 고이즈미(小泉)는 어떤가. 적어도 그가 따귀 맞을 확률은 낮아 보인다. 그는 2002년 9월에 이어 두 번째 북한을 방문했다. 그 첫 번째 북·일 정상회담은 세계 정상회담사상 유례가 없는 굳은 표정의 ‘화난 악수’로 시작해 그렇게 마쳤다. 그만큼 북한은 그를 냉대했고 이번 회담 역시 엷은 미소만 거래했을 뿐 냉랭한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항 마중도 차관급을 내보내 홀대했다. 그런데도 그는 간과 쓸개를 생략한 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명목이야 국교정상화지만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이 전부나 다름없는 방북이었다. 어쨌든 5명의 납치 가족을 동행, 귀국하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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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이분법 지면기사
탄핵 이후의 이슈는 파병과 경제다. 먼저, 이라크 파병문제는 주한미군 전환배치라는 돌발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그럭저럭 사회적 의견이 모아지는 듯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내에서도 재검토 의견이 우세해졌다. 포로학대가 폭로되면서 세계의 여론이 확실히 돌아섰고, 국내 여론도 70% 이상이 반대 내지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정부와 일부 보수층은 여전히 '국제 신의'를 내세워 파병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리? 좋은 얘기다. 한 번 한 약속은 해골 두쪽 나도 지키는 게 떳떳하다. 하지만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달랑 '의리론' 하나만을 근거로 약속이행을 고집하는 건 순진하거나, 멍청하거나, 아니면 둘 다 이거나 라는 국제적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평범한 우리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파병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럴싸하다. 예를 들어 갑자기 터져나온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같은 게 그렇다. 그보다 더 심각한 뭐가 있는가? 그러나 파병을 하려면 그 뭔가가 뭔지를 정직하게 털어놓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지금 이 마당에 못 밝힐 게 뭐 있나? 혈맹이자 미래동맹인 미국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쳤을 때 우리가 당할 불이익이 다소 걱정되긴 하지만, 그럴수록 정당한 절차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얼마전 제기됐던 이분법적 질문 하나가 생각난다. 총선 직후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상대로 던져졌던 질문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어느 쪽과의 관계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것이다. 얼핏, 국가의 장래와 관련된 중요한 선택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질문은 그러나 사실 우문(愚問)에 가깝다. 사안 사안에 따라 교류하고 협력해야 할 상대가 다른 게 국제사회다. 당연히 그때그때 우리에게 더 필요한 쪽과 손을 잡아야 한다. 굳이 나는 니네보다 쟤네가 더 좋다고 미리 못박아서 특정국가의 속을 긁어놓는 짓은 어리석다. 이쪽 중시면 보수, 저쪽 선호면 진보 하는 식으로 편가르기를 할 요량이 아니라면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왜 굳이 까발려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극단화시킨 양자택일론은 위험하다. 그런데, 최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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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스승의 길 지면기사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섬겨야 할 윤리적 동일체로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충과 효를 중시했던 유교사상이 지배한 조선시대에 스승을 자신의 군주나 부모와 같이 비유한 말이다. 이 외에도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보여지듯 과거부터 사제간의 예를 중시하였고 그만큼 스승의 위치나 권위는 감히 도전이 불가능한 성역이었음을 알수가 있다. 군림하는 임금이 사라진 현대에도 사부(師父)일체의 윤리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사부일체의 윤리관은 무색해지고 있다. 지난달 8일 평택시 비전동 16층아파트에서 평택 H여중 양호교사 이모(여·39)씨가 50여m 아래 화단으로 떨어져 숨진 사건이 있었다. 숨진 이교사의 수첩에서 '내가 모든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는 글이 발견되었고 남편 이모(45)씨는 경찰에서 '아내가 최근 학부모로부터 여러 차례 항의전화를 받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학부모가 교장을 감금폭행한 사건, 담임교사에게 꾸중을 들은 고교 신입생이 앙심을 품고 수업 중이던 담임교사를 폭행한 사건 등 교권붕괴의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모든 권위의 해체를 요구하는 시대적 추세를 감안한다 해도 감당키 어려울 정도이다. 이제는 이같은 현실을 두고 패륜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라고 지적하는 이도 없다. 그렇다고 교권실추의 원인에서 교사들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교사란 학교라는 사회안에서 학생들에게 제2의 부모로서 삶의 도리를 가르치고 모범이 되어 아직 완숙하지 못한 어린마음들을 올곧고 참되게 인도해야 하는, 세상의 침범이 거부된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추구하는 참된 교사상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수업중인 학생을 불러내 성추행을 하는 교사, 돈이 없어졌다며 남편을 사복경찰관으로 꾸며 교실에서 자기 반 어린 학생들에게 지문을 찍게 한 교사 등 교사로서의 자질조차 의심스런 교사들이 생겨남에 따라 스스로 교권을 깎아내리는 사회가 돼 버렸다. 백년대계라 불리는 교육, 무엇보다 때묻지 않고 순수해야할 그 성역의 수호자인 교사의 역할이 어찌 이리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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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런 지옥을 초래했나 지면기사
저건 ‘용이 잠긴 시내(龍川)’…더 이상 그런 평화로운 땅이 아니다. ‘우리는 행복합니다’라는 절규의 표지판이 곳곳에 걸려 있는 지상낙원 그런 비슷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어제오늘의 북녘 용천 땅 저기가 바로 2004년 4월 현재의 아비규환 지옥 1번지 주변이자 연옥(煉獄)의 실황 그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수백 명의 염마졸(閻魔卒), 두억시니―야차(夜叉) 떼를 지옥으로부터 외출 나오도록 용천 땅에 초대했길래 저토록 지독한 파괴의 심술과 해코지, 행패를 부리며 휩쓸고 지나간 것인가. 헐벗고 굶주린 차가운 땅이 온통 초토의 폐허가 돼버리고 그 뜨거운 초열(焦熱)지옥에서 살아 나온 처참한 몰골들이야말로 그냥 하기 쉬운 말로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이목구비의 형체조차 엉망일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은 채 형편없는 시설의 병원 같지도 않은 곳에 줄줄이 누워 있는 저 어린 천사들에겐 진통제 하나 없고 머리 위엔 그 흔한 링거 병 하나 매달려 있지 않다. 수술을 하려 해도 마취약이 없어 마취를 못하고 수술대도 조명등도 없어 푸줏간 평상 같은 곳에 눕힌 채 손전등을 비춰야 하는데다가 링거주사도 플라스틱 봉지 대신 사이다 병을 매달아야 한다. 저들에겐 무엇보다도 치료약이 화급(火急)하고 의료진과 치료 시설이 다급하다. 저 다급한 상황의 해소를 위해선 우선 가까운 남한 땅과 중국으로부터의 신속한 수송, 조달이 절실하다. 사태가 그런데도 남측의 의약품과 구호물자의 육로 전달을 거절하고 의료진 파견조차 사양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를 넘어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첫 구호 물품이 29일쯤 해양 수송로로 전달될 예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북측이 해양 우회로를 고집하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육상으로 떠벌리고 ‘올라오는’ 동족의 원조 물자 트럭들이 창피하기 때문인가, 보다 많은 육상 ‘인민’들의 눈에 띄는 것이 체제상의 자존심에 저촉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군사상 이유 그런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용천 사고만은 의외로 사고 이틀 뒤에 서둘러 공식 발표했고 “피해가 대단히 크다”는 추상적 표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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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자를 쓸 때인가 지면기사
여기, 여섯 개의 모자가 있다. 색깔이 다 다르다. 각각의 색깔은 고유한 기능을 나타낸다. 진행자가 요청한다. 빨간 모자를 쓰십시오. 참석자들은 모두 현안에 대한 느낌이나 직관에 생각의 초점을 맞춘다. 이번엔 초록 모자를 쓰십시다. 참석자들은 이제 현안을 풀어갈 창의적 상상력에 집중한다. 이런 식으로 노란 모자는 이익을, 검은 모자는 문제점을 검토하는 기능을 맡는다. 하얀색은 정보를 얻는 방법, 파란색은 절차와 진행방식을 환기한다. 참석자들은 여섯 개의 모자를 번갈아 쓰면서 최상의 해법을 찾아간다. 에드워드 드 보노가 창안했다는 '여섯 색깔의 생각 모자 기법'은 일견 유치해 보이지만 효과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증명됐다. IBM, NTT, 듀폰, 프루덴셜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이 기법을 도입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국내에도 이미 꽤 널리 소개돼 있다. 실제로 점잖은 세계적 기업의 중역들이 테이블에 모자를 한무더기씩 쌓아놓고 허둥지둥 갈아 쓰는지, 아니면 말로 대신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루하고 산만해지기 쉬운 회의를 산뜻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찾는 분위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모자 기법'을 한국 정치에 적용해 보자. 총선이 끝난 지금 각 당은 어떤 모자를 쓸 때인가. 모두가 한결같이 다짐하고 있는 '상생의 정치'가 입에 발린 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색깔이 필요한가. 지금까지 그들은 어떤 모자를 고집했기에 이 상황에 이르렀을까. 지난 대선 이후 야당은 주로 '검은 모자'에 집착했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뒷전이고, 스스로 '부적격자'라고 규정한 대통령의 실언 실수 실책만 눈을 뒤집고 찾았다. 때때로 한 건 올리면 뒤돌아서서 '노란 모자'를 걸치고 득실을 셈했다. 특히 민주당은 분당 이후 '빨간 모자'와 '검은 모자'를 번갈아 쓰면서 탄핵 정국을 자초했다. 국민이 보기에 야당들은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초록 모자'를 쓴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여당이 '초록 모자'를 썼던가. 글쎄, 별로 기억이 없다. 역시 '빨간 모자'를 쓰고 직감적으로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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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내일이 투표날이다 지면기사
내일이 그 말많던 17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하는 날이며 모래 새벽이면 이번 총선의 향방이 나타난다. 국민이 생각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무엇을 바라는지 분명해 질 것이다. 각 대학마다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되어 한표 행사하기를 적극 독려했으며 군이 함상에서 또는 부대내에서 행한 참정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뜨거웠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정황으로 봐서는 투표를 안하는 사람은 주변 눈초리에서 구제받기가 어려울듯한 상황과 분위기의 연속이다. 일제가 패망한 8·15 이후 우리나라 국민이 처음으로 치렀던 선거는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된 제헌국회의원 선거다. 5·10 총선거는 이 땅에서 서구식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해 실시된 최초의 선거였으며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민주정치에 관한 아무런 경험과 식견없이도 별다른 말썽 없이 무난하게 치러냈다. 그로부터 이 땅에서는 16번의 총선과 15번의 대선이 잇달아 실시돼 왔고 선거에 관한 본질은 변함 없으되 우리의 인식과 외양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전후무후한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아 너무도 큰 혼란속에 지역일꾼을 뽑는 총선을 치르고 있다. 총선은 대표 선출의 한 과정으로 각 후보자나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의 선택이며 동시에 정당이나 정치가가 해 온 일에 대한 심판의 기회이다. 또한 정치에 대한 민의의 어긋남을 바로잡는 기회임이 분명한 절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도처의 선거풍토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쑥밭이 된 정치판이 갈피를 못잡고 나아가 국민은 크나큰 국가적 이슈에 가려져 지방의 입후보자 자체를 가늠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 기회라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채 여론 쏠림에 따라 민주대 반민주, 탄핵대 반탄핵, 보수대 진보의 극한적 대결로 치닫고 있어 총선의 의미와 무게가 쏙 빠져버린 행태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누가 우리 고장을 대표로 출마하고 있으며 무엇을 관철하기 위해 나왔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한마디로 중앙당 이미지만 존재하고 지역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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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한마당 열려면··· 지면기사
스위스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일컬어 '국민의 양심'이라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하원의원의 약자인 MP(Member of Parliament)가 명함이나 저서에 표기돼 있으면 그 신뢰도가 절대적이다. 의사당에 출근하는 의원의 통행로를 무조건 먼저 열어주는 나라가 영국이다. 나라일을 보는 의원의 길은 아무도 못막는다는 불문율 때문이다. 의사당 앞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의원이라면 시골에서 막 상경한 초선 의원이 틀림없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우리국민도 이런 국회의원을 가져보는 게 소망이다. 소망을 이루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신뢰할 수 있는 대표를 선출해 국회에 보내면 된다. 문제는 이 일이 말 만큼 쉽지않다는 점이다. 쉽지 않은 이유는 신뢰할 수 없는 정당 때문이다. 신선한 인재를 국회에 보내봐도 정당이라는 쓰레기통에 장미를 심은 결과로 나타나니 국민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이다. 더 이상 쓰레기통에 이식되기를 거부하고 불출마를 선언한 인사들은 국민의 절망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가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 서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지난 1년간 국민이 국가권력의 원천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깨달았다. '리무진'과 '티코'의 이전투구를 지켜보며 국민의 정치혐오는 극에 도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대통령으로선 유례없이 저조한 지지도를 기록한 것이나 여야 정당의 지지도를 모두 합해도 40%에 못미쳤던 것이 몇달 전의 일이다. 그러나 국민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국회 두 권력기관에 상생의 정치를 제안했다. 대통령은 사과하고 야당은 탄핵을 시도하지 말라는 여론을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슬기를 발휘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야당도 이를 거부했고, 상대적으로 야당이 거부의 대가를 더욱 잔인하게 치르는 중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국민에 의해 파산을 선고당한 정치권 전체가 신용불량 상태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참에 구제되지 못하면 아예 소멸되는 정당도 나올 것이고 민주노동당과 같이 이념과 정책이 선명한 정당이 국회안에 둥지를 틀게 될 것이다. 정당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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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대통령…대단한 여론 지면기사
잘 하겠지…그래서 실력 검증도 안 하고 학급 반장을 뽑았더니 의외로 또는 예상대로 성적이 평균 20점대까지 내려갔다. 그런 점수로는 반장 자격이 없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자 학급의 주먹 짱이 앞장서 반장 축출을 시도했고 상당수 아이들도 동조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그들 주먹 짱이라고 해서 성적이 좋을 리는 물론 없었다. “알아서 가져와! 아니면 코피 정도가 아니라 엉치뼈까지도 나갈지 몰라!” 해가며 부잣집 애들 돈 뜯어내기에 바빴던 A짱의 성적은 물론 그와 합세했던 B짱의 성적도 그랬고 출반(黜班)을 반대했던 C짱의 성적 역시 '고기서 고기'로 평균 20∼30점에 불과했다. 한데 그런 A짱과 B짱의 주도로 막상 반장 축출을 결의하자 담임 교사가 버럭 화를 냈다. “반장의 함량은 미달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학만은 안 된다. 네깐 놈들이 감히…”가 화난 이유 내용의 95%였다. 그런데 놀라운 건 주먹 짱들에 대한 담임교사의 앞 뒤 안 가린 감정적인 점수였다. 반장 축출을 결의한 A짱 B짱의 점수는 30∼20점에서 10∼5점으로 끌어내린 반면 반장 축출에 반대했던 C짱 점수는 성적에 관계없이 80∼90점대로 다락같이 올려버린 것이다. 그런 상상 밖의 높은 반발 점수를 C짱에게 매긴 담임교사의 처사에 여타 교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늘만 쳐다보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청사(靑史)에 두드러질 대단한 대통령이다. 당장 노무현 대통령 지지도를 조사한다면 어떨까. 그야 엊그제의 20%대가 아니라 90%대까지 수직 상승할 것이다. 대통령 당의 C짱이 받은 반발 점수 90이 그대로 대통령 답안지이자 '반발 지지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사에 유례없는 단시일 내의 '역전 지지도'를 받은 대통령으로 '기네스 북'부터 올라야 할 것이다. 아니, 지난 1년간, 그리고 탄핵 정국인 현재까지 “노무현” “노무현”…전 국민의 열띤 찬반 토론에 주먹다짐 격론 소재로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우리 역사상 그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된 셈이다. 궁금한 건 노 대통령의 현재 표정이다. 대단한 탄핵 반대 여론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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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해고야(You're Fired)' 지면기사
도널드 트럼프는 아이디어와 베팅으로 부의 왕국을 이어가는 미국 부동산 재벌이다. '세상을 뒤통수치는 재미'로 사는 듯한 그가 또 한 건 했다.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구호에 대해 특허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넌 해고야'는 그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NBC의 The Apprentice)에서 히트한 유행어다. 시청률 저조에 고민하던 NBC가 혹시나 하고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인기가 치솟아 벌써 2기 모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연봉 25만달러짜리 트럼프그룹 자회사 CEO 자리를 걸고 대본도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지원자들은 과제수행 능력과 인터뷰를 통해 1주일에 1명씩 잘려 나간다. 이들은 트럼프로부터 'You're Fired'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보따리를 싸야 한다. 명목은 인재선발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짤리나' 엿보고 즐기는 '해고 리얼리티 쇼'인 셈이다. 물 건너 얘기일까. 겹쳐서 떠오르는 장면이 둘 있다. 우선, 오래전에 본 영화 '백 투더 퓨처'의 신 하나. 몇 편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 마티(마이클 제이 폭스)가 늙어서 해고통지를 받는 광경이다. 팩시밀리를 비롯해 집안의 모든 통신기기가 큼지막하게 쓰인 'You're Fired'를 사방에서 토해 낸다. '넌 짤렸어' '넌 짤렸어' '넌 짤렸어'…. 감독은 그 때 이미 트럼프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장면은 지난달말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 노사 분규를 겪고 있던 한 카드사가 농성 중인 노조원들에게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회사로서는 귀하에게 2004년 2월28일자로 정리해고 통보를 하게됨을…'. 우리도 억장 무너지는 통보를 이렇게 간단하게 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이 회사 역시 외국자본이 모회사를 인수하면서 진통을 겪던 뒤끝에 벌어진 일이다. 'You're Fired'. 참 섬뜩한 구호다. 춘분이 지났어도 새삼 오싹 한기가 돈다. 트럼프는 이 구호를 특허 내서 게임 놀이 의류 등에 활용하겠다지만, 우리네 정서로는 발끈 부아부터 치민다. 그게 그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