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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감정은 21세기의 반동(反動) 지면기사

    얼마 전 지인(知人)으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다. 대구에 맛으로 유명한 음식점이 있는데 최근 들어 거의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는 것이다. 호남 사람이 주인인 이 가게는 15대 대선의 고비는 잘 넘겼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지역내 식자층에선 모두 그 가게의 안위를 걱정했으나 별 탈이 없었다고 한다. '김대중'이니까 95% 안팎의 호남 지지율을 이해했다나. 그런데 노무현 당선자에게 호남에서 또 95%급 지지율이 나오자 이번에는 '뭐 이런게 있노'라는 격한 반응이 터져나왔고, 그래서 이심전심 그 가게에 발길이 끊어졌다는 것이다.말을 전해준 사람도 전해들은 얘기라 한다. 무릇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유언비어는 이런 식이기 마련이다. '그쪽에선 그런 일이 있었다대' 아니면 '저쪽에선 그런 말이 나돌던데…' 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같은 유언(流言)이 흐르고 비어(蜚語)가 난무하면 대중은 알게 모르게 집단적으로 세뇌 당해 특정한 대상에 대해 오도된 신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TK 사람들은 지난 대선에서 호남 만큼 뭉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절치부심, 다음 선거에서의 단결을 도모하고 있는지 모른다. 대구의 한정식집 이야기는 TK 각성의 상징으로 장치된 '특별한 사실'이거나 '고안된 허구' 둘 중 하나인 셈이다.새삼스럽게 호남의 투표성향을 복기(復棋)하고 영남권의 좌절(?)을 얘기하자니 매우 조심스럽다. 말 꺼내는 자체가 부담스럽고 심란하다. 그런데 바닥에 깔려있는 지역감정의 양상이 이렇듯 흉흉하니 문제다. 누가 당선되면 이민을 가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이민은 안가고 여전히 조국의 땅에 감정의 멍울만 키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대체 이번 대선을 통해 지역대결 구도가 퇴조했다는 분석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를 일이다. 충청권의 지지율을 그 근거로 삼기에는 허전하다. 지역감정이 단어를 폐기하고, 수준을 격하시킨다고 해서 없어질 문제도 아닌데 모두 애써 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말 꺼내기를 주저하고 있는 형국이다.더 큰 문제는 지역감정이 매우 세련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호남 정서의 사람들은 새로운

  • 7천만이 베토벤의 '합창'을… 지면기사

    연필 한 다스(dozen)의 무게는 열두 개가 똑같다. 가야금 열두 줄의 무게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1년 열두 달의 무게는 모두 다르다. 시각적으로야 28일뿐인 2월이 가장 가벼울 것 같고 31일 달보다는 30일 달이 가벼울 듯도 싶다. 또 온통 앙상하게 가지마다 헐벗은 나무들하며 모든 열매와 곡식을 거둬들여 텅텅 빈 논밭서껀 12월이 가장 가벼울 것도 같고 반대로 한껏 우거진 숲과 곡식 열매로 무성한 8, 9월이 가장 무겁게 보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심정적, 심증적(心證的)인 열두 달의 무게는 단연 1월이 가장 무거우리라. 왜 그럴까. 그야 12월까지만 해도 없었던 저마다의 새로운 계획과 각오와 다짐이 1월1일 '땡…땡' 시작과 함께 1월 자락에 쌓이고 새삼스런 무게의 꿈이며 희망들이 이 1월 한 폭에 미어져라 포개지고 엎어지고 어빡자빡 산더미처럼 쌓이기 때문이 아닌가.1월의 무게란 벅찬 희망의 무게요 꿈의 무게며 계획과 다짐의 무게인 동시에 사색과 철학의 무게다. 이런 1월의 무게 잡힌 벅찬 희망을 가리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을 뜨고 꾸는 꿈'이라 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1월1일 이 찬란한 아침 햇살에도 크게 눈을 뜬 채 영롱하고도 확연한 꿈을 꾸지 못한다면 이제 그만 희망 없는 삶 부스러기들일랑은 모두 거둬 포개 이고 지고 절망의 피안 저쪽으로 떠날 채비를 갖춰야 할지도 모른다.한데 새해가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시작되는 나라도 있다. 유태인의 달력은 정월 초하루가 9월 중순이다.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 의장은 2001년 9월18일의 신년을 맞는 이스라엘을 배려해 그 전날인 17일 공격 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슬람력(曆)의 새해는 3월15일경이고 태국의 신년은 세 가지나 된다. 양력과 음력 1월1일 말고도 '손그라인'이라 불리는 타이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해는 새해다워야 한다. 새 해 새 다짐과 새 꿈, 새 희망이라면 아무래도 지구촌의 가장 많은 나라가 함께 맞는 양력 1월1일이 제격이다. 싸늘하고도 엄격한 소한 문턱에서 냉엄하기 짝이 없는 온도로 꾸는

  • 신뢰받는 대통령을 바란다 지면기사

    오랜만에 50대 대통령이 등장했다.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과 비방으로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돈 안 쓰는 깨끗한 선거로 치러졌다고 평가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새천년 들어 처음 치러진 선거답게 우리 정치사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사회 문화적 변동을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양상도 많이 나타났다. 특히 30년 이상 이 나라 정치를 지배해왔던 ‘3김 시대’를 사실상 청산했고, 미디어 선거의 시대를 열었고,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시민참여축제로 발전시켰다.당선자가 확정된 순간 대통령 후보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가족 구성원간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어느 아버지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지만 반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자식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20대의 62.1%, 30대의 59.3%가 압도적으로 '노짱'으로까지 지칭되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각각 30%대에 머물렀다. 그동안 정치에 거의 무관심을 보였던 세대들이었지만 이들이 주도한 선거혁명이었고 노무현 당선자는 이같은 시대적 흐름을 탔다. 그동안 월드컵축제에서 보여준 자발적인 단합의 모습과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촛불시위 등을 겪으며 변화를 갈망하는 이 세대들의 욕구가 분출됐다. 기성세대는 솔직히 이 흐름을 진솔하게 읽어내는데 인색했다고 사회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번 선거를 계기로 세대간의 입장차가 지나치게 드러나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로 부각됐다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도 중요하지만 노 당선자의 첫 당선회견에서 '나를 반대했던 사람까지 포용하겠다'고 밝혔듯이 전체 국민들을 함께 아우르는 치유책이 필요한 것이다. 2030세대에 대한 짐을 생각한다거나 95%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일부 지역에 대한 부채(負債)를 의식해서도 안된다.어떻든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대통령은 선출됐다. 노 당선자는 국민들과 약속한 일들을 하나 하나 실천하고 또한 자신에게 보낸 질책들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

  • 한표의 의미를 생각하자 지면기사

    민주사회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인간활동 가운데 최고의 고귀한 활동으로 규정했고 또 아테네 사람들도 정치 현안이 있을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민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고 한다. 이는 정치 참여가 다른 어떤 사회활동보다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그래서 어쩌면 우리도 지금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분수령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어떤 기대나 흥분보다는 떠밀리듯 투표소로 가야 하는 의무에 그저 떨떠름한 것 같다. TV에서 열변을 토하는 후보자들의 연설이나 신문 광고에 나오는 그들의 공약들이 모두 가슴에 와닿지 않고 허공만 맴돌고 있어서가 아닌가 한다.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 공방이나 북핵문제와 이에 따른 색깔론 시비, 듣기에도 섬뜩한 '전쟁이냐, 평화냐' 그리고 '안정이냐 불안이냐'는 이분법적 선거 캠페인도 유권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교묘한 형태의 지역감정, 사이버 공간상의 폭력, 중간지대를 인정하지 않는 선택의 강요 등 이런 것들이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그래도 어쨌든 우리 유권자들은 앞으로 5년 동안 국가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 선거는 국민의 대표, 지도자를 국민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그 선택행위 자체를 바르게 해야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옳게 행사하는 일이 된다. 그 권리를 옳게 행사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민주시민이라 할 수 없다. 선택은 중요하고 그 결과에는 당연히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므로 더욱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한표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이와 함께 이번 대선은 대통령을 뽑는 선거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숨은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건국이래 우리를 괴롭혀

  • TV 선거의 한계와 유권자 자세 지면기사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TV방송연설에 출연한 찬조연설원의 신분을 놓고 도덕성 시비를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 찬조연설원으로 나선 '자갈치 아지매'를 “친민주당 위장서민”이라고 발가벗겼다. 민주당은 한나라 이회창 후보 연설원으로 출연한 '평범한 주부'가 “한나라당 국회의원 보좌관”이라고 까발렸다. 모두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는 모양인데 시비는 저들끼리 가리라고 하자. 다만 양당의 폭로로 영상미디어 정치의 '이미지 조작'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정당과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대중을 선동한다.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다. 지지의 결과는 권력획득으로 이어진다.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그리스-로마시대부터 대의민주주의가 시스템을 갖춘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은 대중의 '지지 함성'이나 '지지 표'를 얻기 위해 그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이성에 호소하는 선동을 반복해왔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3막 2장에 실린 안토니우스의 웅변 대목은 민중선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저의 장례식날 암살자 부르투스는 “시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시저를 죽였다”고 열변을 토해 로마 민중의 환호를 받는다. 암살자에서 로마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어 등장한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유언장을 흔들며 군중들의 시선을 고정시킨 뒤 위대한 시저의 일생을 상기시켜며 “내가 부르투스였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격분케 해 시저의 무수한 상처 하나 하나에 혀를 주어 로마의 돌까지도 일어서서 폭동을 일으킬 만큼 흥분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선동한다. 대중들에게 부르투스가 변설에 능한 배신자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위대한 시저가 난자당해 숨진 현실을 각인시키며 암살자들에 대한 폭동을 유도한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는 안토니우스의 연설은 순전히 셰익스피어의 창작임을 강조했지만, 로마사 전반에서 대중연설 능력은 정치인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대중 선동을 통한 정치는 이제 낡은 유물이 됐다.영상미디어의 은총을 받고 인터넷 세례를 받

  • 知的 수준은 왜 재지 않는가 지면기사

    가슴 답답할 정도로 궁금한 게 있다. 바로 저들 ‘일곱 난쟁이’가 아닌 일곱 대통령 후보들의 교양 수준과 지적(知的) 수준이다. 지적 수준이 1m인지 10m인지, 교양의 함량은 한 말 정도가 모자라는지 한 말 반 정도가 철철 넘치는지를 도무지 알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도 그걸 묻는 질문자가 없었고 어느 사회자도 TV 토론 때 그걸 캐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외교, 통일 포함) 분야를 시작으로 어제 시작된 합동 토론회 일정도 경제, 사회 등 세 차례만 잡혀 있다고 했지 그 어느 토론회도 후보의 교양과 지적 수준을 재겠다는 잣대는 들고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저들의 저서 한 권이 어떻다는 풍문도 들은 바 없다.거부반응과 터부의 지뢰밭 저지선을 요리조리 기묘하게도 살살 잘도 피해가는 가장 적절(?)한 모범 답변만을 신변의 참모들이 적어준 그대로 달달 외기에 능수가 돼버린 후보들의 교양 수준, 지적 수준 측량을 위해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어느 TV의 고교생 퀴즈쇼 프로그램인 ‘도전 골든 벨을 울려라’처럼 일곱 후보를 방송국 스튜디오 바닥에 앉혀 놓고 ‘도전 대권 벨을 울려라’식의 답을 널빤지에 적어 번쩍번쩍 들어 보이게 하는 방식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 수능(修能) 시험이 아닌 수능(遂能) 시험, 수행 능력 시험을 보이는 것이다.그 첫 번째 질문은 한글 철자법과 기초 한자말쯤이 어떨까. 그래서 모국어로 연애 편지 한 장, 연설문 한 장 대필 없이 제대로 쓸 수 있는지부터 가리는 게 어떨까. 그래야만 어느 전직 대통령이 전방 부대인가 어딘가를 방문해 그 방명록에 일필휘지 한 말씀 사인을 남긴다는 게 그만 ‘자신감’의 ‘신(信)’자를 ‘身’자로 썼다는 그런 지적 수준은 아닌지도 가늠할 수 있고 어느 대통령이 어린이 날 TV에 출연해 어린 시절의 ‘도시락’ 대신 ‘벤토’ ‘벤토’를 연발했던 그런 교양 수준은 아닌지도 잴 수 있기 때문이다.선진국이든 꼴찌국이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어느 정도 교양도 갖추고 유식할 필요가 있다. 책 권깨나 읽고 연구깨나 하고 사고깨나, 숙고깨나

  • 국화빵이 생각나는 계절 지면기사

    낙엽이 아스팔트 위를 뒹굴고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요즘 여지 없이 ‘국화빵'이 등장한다. 60년대 초등학교 시절, 퇴근길 아버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때였다. 땅거미 진지는 오랜데도 아버지는 아직 오시지 않아 삐걱거리는 대문 소리에 연방 귀를 쫑긋 세웠다. 급하면 솜을 넣어 누빈 두툼한 옷을 걸쳐 입고는 형과 함께 버스 정거장으로 달려나가 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내 식을까봐 국화빵 봉지를 꼭 껴안고 들어오신 터라 양복 저고리가 아직도 따뜻했다. 국화빵처럼 닮은 아들 넷에게 아버지는 봉지를 터뜨려 벌려 놓으시며 손도 대지 않고 먹는데만 열심인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셨다. 어린 네형제는 그저 '어른들은 국화빵을 싫어하시는구나'하고만 여겼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됐지만.국화빵에 대한 추억은 또 있다. 85년으로 기억되는데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정문에서 국화빵을 팔던 김모씨가 단골 손님인 숙대생과 결혼해 ‘국화빵 장수와 여대생 부부’로 화제가 됐었다. 초등학교 중퇴가 최종학력인 그가 일류 여대생과 결혼한 사실이 당시로서는 장안의 화젯거리로 손색이 없었다. 여대생의 숫자가 많지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더욱 관심 끄는 뉴스였음이 분명했다. 국화빵 인생이 그에게 선사한 최대의 선물을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라고 하는 김씨는 지금도 감자탕집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올초에는 김진곤(66) 할아버지가 전남 여수의 한 시장 입구에서 13년간 붕어빵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 1천500만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내놓아 행자부로부터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11인'에 뽑혀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이렇듯 서민들의 마음 속 향수인 그 옛날 국화빵, 붕어빵의 개념은 서민들의 사랑의 상징처럼 다가와 당시의 문화나 경제 상황을 대변해 주던 것이었다. 지금은 빙과회사에서 복고풍의 마케팅으로 옛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똑같은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내 아이들로부터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종이봉지에 담긴 눈물 자국을 아는 기성 세대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와닿을지

  • 준비된사람들 지면기사

    최근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20대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보험 특히 생명보험이라면 빨라야 30대 이후에나 생각해봄직한데 예상밖의 변화다. 대한생명이 최근에 지난해 6월을 기준으로 자사 종신보험 고객 100여만명을 분석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보험가입 당시의 연령을 보면 지난해 후반기에는 20대이하의 가입비중이 29.9%로 40대(28.9%)보다 많아졌다는 것이다.짐작컨대 보험료를 부모님들이 대신 내주는 경우도 적지 않을 듯한데 어쨌든 이러한 현상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나라가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노령사회로 진입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감안할때 더욱 그렇다. 지금의 20대가 60대가 되는 시기에는 우리 나라도 본격적인 노령사회가 되어 노인층을 부양하는 일이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그런데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겠다고 종신보험에 든 20대의 어른스러운 '준비성'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준비없이 맞은 '노년의 비극'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볼때 어느 부문이든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장기계획 밑에 장래를 생각하고 지금부터 준비를 한다는 것은 미래의 성공을 '예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자기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신뢰를 갖게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대선때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우고 강조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주목과 믿음을 이끌어낸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위대한 '인간승리' 뒤에는 오랜 '준비'가 있게 마련이다.프랑스의 위대한 병리학자였던 루이 파스퇴르는 행운이 발견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행운은 준비된 사람을 따른다”고 대답했다.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행운이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엄청난 발견이나 세계적인 발명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보통 회사원'으로 올해 노벨화학상을 공동수상하여 일본을 감동시키고 단숨에 일본의 영웅이 된 다나카 고이치 역시 오늘이 있기까지 오랜 준비기간이 있었다. 그가 노벨화학상을

  • 조선의 관리, 오늘의 관리 지면기사

    ‘조선시대 관리’라면 으레 당쟁이나 벌이고 가렴주구를 일삼던 모습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들을 뽑던 과정은 뜻밖에도 사뭇 엄격하고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관리 입문부터가 지금의 고시 보다 더 어려웠다던 과거시험을 거쳐야 했다. 드문 예외로 음서라 하여 부친이나 조부가 고위관직을 역임하면 그 자손을 관직에 임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경우 올라갈 수 있는 관품이 한정돼 있어 당상관이 되자면 다시 과거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단 과거에 합격하면 시험 성적순대로 6품에서 9품까지 관직을 받았다. 그런데 제아무리 탁월한 인물도 품계를 건너뛰거나 무시하고 승진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특히 벼슬의 꽃이라던 정승을 뽑던 과정을 보면 얼마나 신중하고 합리적이었나를 거듭 깨닫게 해준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 중 한 자리가 비면 왕은 다른 두 정승에게 복상(卜相)을 명한다. 그러면 두 정승은 세사람의 후보자를 물색, 왕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그 후보에 오르는 일부터가 무척 까다로웠다. 첫째, 정 1품이어야 했다. 아무리 실력 및 가문과 혈통이 좋아도 이 품계를 무시 못한다. 둘째, 반드시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거친 인물이어야 했다. 셋째, 그의 정치력 행정력 학문 인품에 대한 왕과 세간의 평가가 사뭇 중요시된다. 그리고 왕은 이 모든 사항을 종합해서 후보자 셋 중 하나에 낙점을 찍는다. 정승이 아닌 나머지 관리 승진임용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그 시대 관리는 입문부터 어려운데다 학식과 경험 인품 모두를 두루 갖춰야 오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늘상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던 김영삼 전대통령은 인사에서 유난히 보안을 중시했다. 그래서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거의 아무도 모르게 선정작업이 진행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능력이나 도덕성 등이 사전에 철저히 검증되기 어려웠고, 일단 등용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꾸는 식의 인사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단 며칠 아니면 몇달만에 경질되는 인물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탓인지 문민정부 5년 동안 개각만 무려 25회나

  • 虎父에 犬子는 없다? 지면기사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TV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면 김두한의 할머니가 손자 김두한을 몹시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이 놈아! 네 아비는 천하를 호령하는 독립군 사령관이었느니라. 그런데 네놈은 뭐 거리의 건달패가 됐다구? 내 눈 앞에서 썩 없어지지 못할까! 네놈은 호랑이 새끼가 아니니라!” 호랑이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아들답게 호랑이 새끼가 되지 못했음을 꾸짖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김두한의 할머니가 ‘호랑이 아비에 개 아들은 없다’는 뜻의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라는 문자까지 써가며 그렇게 호통을 쳤더라면 그 서릿발 위엄이 얼마나 더 유식해 보였을까.아버지와 아들의 우생학적 관계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그 아비에 그 아들로 훌륭한(虎父虎子) 관계와 둘째, 아비는 훌륭한데 아들은 그렇지 못한(虎父犬子) 관계, 셋째, 아비는 못났는데 아들은 잘난(犬父虎子) 경우, 넷째, 아비도 아들도 지지리 못난(犬父犬子)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김두한의 할머니가 손자를 호통친 김두한 부자 관계는 두번째 유형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조폭 두목 김두한은 나중에 종로 기생들의 투표에 실려 국회의원까지 당선됐고 의사당 오물 살포 사건으로 더더욱 유명해졌으니 ‘호부견자’가 아닌 ‘호부호자’로 승격하면서 역시 ‘호랑이 아비에 개 아들은 없다’는 것을 할머니 영전에 약여(躍如)히 증명해 보였다고나 할까.한데 우리 현대사의 정치 지도자들에겐 뛰어난 ‘호부호자’의 본보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종대왕보다도, 단군이래 어느 군주보다도 위대하다는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부터가 어떤가. 감옥을 뒷간 드나들듯하는 마약 중독자 아들을 그는 지하에서 어찌 차마 눈을 돌려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너만 감옥에 가기냐” 식으로 뒤따랐던 YS의 아들은 어떻고 “너희들만 큰 집에 들어가서야 쓰겠느냐”는 듯 서두른 DJ의 아들들은 또 어떤가. HC(昌)의 대통령 지망 재수에 일조(一助)를 가한 체중 미달의 수수깡 같은 아들은 또 어느 유형의 우생학적 부자 관계에 해당하는 것인가. ‘호부무견자’라는 말을 무색케 하다못해 국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