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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인력의 위기 지면기사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30~40년 전엔 어딜가나 흔히 듣던 귀에 익은 구호다. 사실 그때만 해도 한 가정에 5~6남매, 심지어 9~10남매씩의 자식을 두던 게 예사였다. 너나없이 지지리도 가난해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지만, 지금처럼 피임이나 임신중절 등은 엄두도 못냈다. 하늘이 점지한 자식을 억지로 피하는 건 순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조상님께 대한 엄청난 불경으로 여겼다. 그래서 가족계획 요원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피임약 등을 주어가며 산아제한 홍보를 해도 좀체 들으려고도 안했다. 십중팔구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심할 경우 동네 어른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그러나 당시 그런데엔 순리를 지키려는 뜻 외에도 나름대로 또 다른 속사정이 있기는 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전 못해 질병에 의한 영·유아 사망률이 높다 보니,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낳아야 그중 몇 자식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훗날 노동력을 불린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한몫을 했다.지금은 그때처럼 몇 남매씩 두고 있는 가정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의식이 많이 깨어있는데다 끈질긴 가족계획 홍보 덕도 있겠지만, 의학이 발전해 질병 사망률 또한 크게 줄어 굳이 많이 낳을 필요성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리라. 특히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육아문제가 큰 장벽으로 작용, 출산율이 떨어졌고 결혼연령이 높아진 것 또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산아제한은 절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역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것. 지금은 되레 출산율 급감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4~5명이던 평균 출산율이 83년 2.1명, 99년 1.42명으로 급격히 낮아지더니 급기야 지난 해엔 1.3명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현재의 인구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 즉 대체출산율 2.1명에 크게 미달함은 물론 이런 추세라면 2020년 이전에 인구 감소가 시작될 전망이라고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노동력 부족이 불가피해지고 덩달아 국가경쟁력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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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환경경영의 시대다 지면기사
'어느해 4월 초, 지난 10여개월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열도의 균열 침몰현상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이미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일본은 동남아 남미등 세계 각지에 국민 대철수령을 내리고 선박과 항공기를 총동원, 수송작업에 돌입한다. 일본열도가 서서히 바닷물에 잠기고 이러한 와중에 전역에서 매그니튜드 8.5의 대지진이 발생한다. 사망자는 약 3천여만명, 해외철수 인원 7천만∼8천만명에 이르고 이들은 해외에서 기나긴 유랑생활을 한다. 피해는 한국에도 있다. 일본의 피난민이 한국에 비상 수송되고 한국의 남해안 일부가 물에 잠기는 대신 서해안은 융기현상이 일어나 새로운 국토가 생긴다'. 이는 일본의 작가 고마쓰 사쿄(小松左京)가 지난 1973년에 쓴 SF소설 '일본침몰'의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고마쓰는 일본침몰의 원인은 판구조론에 의한 지층의 대변동이라 분석하고 이에 관한 그의 지질학에 관한 지식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이 얼마만큼 리얼했는지는 당시 베스트셀러기록 외에도 이 소설 출간후 일본인들이 언젠가는 일본이 정말 바닷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됐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세계는 어쩌면 이러한 불안감이 정확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변해 해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프레온가스 아황산질소등 온실가스 배출과 각종 환경파괴·오염 때문이다. 비단 일본 침몰현상뿐이 아니다. 농산물 감산과 수자원 고갈, 지구의 사막화 등으로 인류는 장차 대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지난 26일부터 10일간 예정으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한 세계 정상회의'(WSSD)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지속적으로 경제는 발전시키되 자연환경을 파괴 또는 훼손하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취지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리우회의에서 합의한 200여개 환경협약이 그동안 잘 지켜졌는지 점검하고 새로 보완할 내용을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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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스타의 회고록 지면기사
인기야 있든 없든 미국 대통령이 퇴임 보따리를 싸 백악관을 나섰다 하면 횡재부터 만난다. 요즘 말로 대박, 왕대박을 노린 출판사들이 자서전을 써 달라, 회고록을 써 달라며 벌떼처럼 달라붙기 때문이다. 재직 때 별 볼 일 없던 카터만 해도 퇴임하자마자 회고록 출판 계약서에 서명, 계약금으로 자그마치 200만달러(약 24억원)를 챙겼다.미국 대통령만 그런가. 흐루시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만년에 구술(口述)을 통해 회고록을 썼고 전 동독 국가평의회 의장 호네커도 '옛날이 훨씬 좋았다'는 회고록을 냈다. 대처 영국 총리가 낸 회고록 제목은 '다우닝가의 세월'이었고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의 회고록은 각각 '두 목소리로 된 회고'와 '권력의 삶'이었다. '대통령적(的) 총리'로 불렸던 나카소네(中曾根)는 '대지유정(大地有情)'을 펴냈고 고르바초프는 “통독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내용 등을 회고록에 썼다. 남아공의 만델라도 27년간의 감옥 생활을 '자유에의 긴 여정'에 담았고 35세에 이슬람 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파키스탄의 부토는 그 이전에 벌써 자서전을 썼다.아돌프 히틀러는 어떤가. 그가 흐루시초프처럼 구술을 통해 썼다는 '나의 투쟁(Mein Kampf)'은 물경 780만라이히스마르크(RM)를 벌었다. 1RM이 5∼8달러였으니까 780만×6만 쳐도 4천680만달러, 약 560억원이다. 이 달 말 독일 국영 ARD 방송 전파를 탈 다큐멘터리 '히틀러의 재산'을 제작한 인고 헬름 감독은 말한다. “그는 자신을 인정받지 못한 천재로 여겼고 그런 자신의 콤플렉스를 달래기 위해 재산 부풀리기에도 집착했다.” 그러니까 히틀러야말로 '거물→회고록→왕대박' 공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니었나 싶다.또 하나의 비슷한 공식은 '인기인→자서전→대박'이다. 미국 여우 캐서린 헵번과 프랑스 여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각각 62세에 자서전을 냈고 소피아 로렌은 55세에, 커크 더글러스는 44세에 내는 등 할리우드 스타 치고 자서전을 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회갑 때인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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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사회통합론’ 지면기사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란 소설은 그 첫 귀절이 매우 이채롭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작자가 무슨 잠언 비슷한 말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개 그 행복한 사정이 엇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이들은 그 불행의 사유가 저마다 다 다르다.” 이렇게 서두를 떼어 놓고나서 비로소 주인공 ‘안나’의 긴 인생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톨스토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닌게아니라 사람들이 감촉하는 불행의 ‘얼굴’모습은 천태만상일 듯싶다. 역시 인간이 감정의 동물인 탓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고 많은 불만의 감정들을 말하자면 중도적(中道的) 입장에서 통합해 조정할 만한 방도란 없을 것인가. 요즘 대통령선거 날짜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도 권력투쟁에 몰두해 있는 정당들의 모습이 이건 꼭 거의 구토를 일으키게 할 지경으로까지 치달아, 문득 이런 사회통합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아직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박정희(朴正熙)정권 전반의 시절에 ‘중도통합론’이란 정치적 기치(旗幟)를 쳐들고 나온 야당 중진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이내 이른바 ‘사쿠라’로 몰렸다. 나이 젊은 독자들에게 풀이한다면 ‘사쿠라’란 금방 만개하였다가 곧 시들어버리는 벚꽃의 일본 말로, 요컨대 사이비적(似而非的) 인간유형에게 들이대는 모욕적 은어였다 할 만하다. 나중 입증되었지만 그 야당 정치인은 딱히 ‘사이비’행각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중도통합론’이란 것 때문에 그의 정치적 운명은 줄곧 조락(凋落)의 길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중도’란 아예 회색지대의 것이고, 또 기회주의적일 뿐이란 말인가. 단언하거니와 그런 건 아니라고 강조해 두고 싶다.되풀이해서 말하자면 ‘중도’의 모색은 인류에게 주어진 숙명이라 할 만하다. 왼 쪽과 오른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만나 보기 위해선 일단 ‘가운데’로 서로 이동해 와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접점에서 각자의 보따리들을 풀어 놓고 통합을 시도해 보는 것이 옳다. 따지고 보면 인류에게 절대적 가치가 있기나 한 건가를 반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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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복-지도자복 지면기사
우리는 주위 사람이 좋은 배우자나 친구·동료들을 잘 만나면 인복(人福)이 있다고 한다.같은 비유로 국민이 훌륭한 사회지도층이나 나라의 지도자를 잘 만나면 ‘지도자 복’이 있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 복’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주에 벌어진 우리사회 일부 지도층의 갖가지 행각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무엇보다 우리의 주목을 끈 것은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탄생이 불발로 끝난 사실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리서리 임명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기까지 20여일 사이에 우리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 얽힌 많은 의혹과 문제들을 듣고 보며 씁쓸하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이러한 결과는 총리지명자 한 사람만의 불행이 아니라 나라의 불행이기도 했다. 여성 총리지명자가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에 무슨 하자가 있었는지 또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참신한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해온 국민의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국민의 존경을 받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정치지도자의 탄생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새삼 ‘지도자 복’을 따지게 된다.이런 가운데 유명한 대학교의 총장을 지낸 분이 공항에서 출국세 1만원을 내길 거부하고 공항 여직원에 폭언을 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데 이 분이 며칠후 입국하면서 엉뚱한 출국납부금 영수증을 보이며 출국세 납부를 주장하며 다시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리고 며칠후 은행 온라인을 통해 1만원을 송금했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어떤 지방 국립대 총장이 해외 가짜 학위취득 브로커 노릇을 했다는 뉴스에 놀란 터에 이 무슨 해프닝인지. 대학교 총장이라면 어느 나라고 사회적 존경과 국민의 신망을 받는 위치에 있는 지도층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그런가 하면 적지않은 지방자치 단체장들과 시·도의회 의원들이 여러차례 교통법규 등을 위반해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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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인 내일의 노인 지면기사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처녀작 ‘이방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양로원의 전보를 받고 장례를 치르러 양로원으로 간다. …어머니를 땅에 묻은 다음에는 “이젠 좀 누워서 실컷 주무실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으로 무척 기뻤다’. 지금의 독자들이야 별다른 감정변화 없이 무심히 읽어 넘길 수도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30~40년 전 한국 독자들이라면 사뭇 당혹스럽지 않았을까 싶다.그때만 해도 산업화 도시화가 채 자리를 잡기 이전이라 우선 ‘핵가족’이라는 개념부터가 무척 낯설었다. 양로원이라는 것도 드물게 있기는 했지만 서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족은 으레 복닥대면서도 함께 모여사는 걸로 알았고, 특히 연로한 부모를 부양한다는 것은 굳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자식된 기본 도리로 알면서 살아왔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하며 늙었으니 이제는 자식들이 이를 효(孝)로 갚아나가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물며 자식이 버젓이 있는데도 연로한 부모를 양로원에 보낸다는 것부터가 언감생심이었다.그런데 이 작품에서 ‘나’로 표현되는 주인공 뫼르소는 비록 하급 샐러리맨이지만, 홀로된 어머니를 공양하지 못할 만큼 그다지 궁핍하지도 않은 젊은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를 양로원에서 돌아가시게 했다. 당시의 상식으로 뫼르소의 행위가 결코 곱게 비칠 리도 없었으려니와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좀처럼 이해되기 어려운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음직하다. 한편으론 뫼르소의 어머니 같은 서구사회 노인들이 한없이 불쌍해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이제 우리사회도 많이 변했다. 어느새 서구 어느 나라 못지않게 산업화 도시화를 이루면서 핵가족 현상이 일반화 되어갔고, 노인부양도 더 이상 전통적인 효사상에만 기댈 수 없는 사회로 바뀌었다. 웬만큼 사는 집안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자진해서 실버타운을 찾는다. 한결 격이 떨어진다는 양로원시설도 곳곳에 들어찼지만,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노인들로 항상 부족하다. 심지어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는 노인들도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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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약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지면기사
미국이 한국정부에 대해 특정 다국적 제약사의 약품이 건강보험 급여시 불이익이 없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정국불안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이태복 전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퇴진이 이들 다국적 제약사의 로비 때문이라고 발언한데 이어 한나라당의 김홍신 의원이 관련자료를 공개함으로써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한국의 자존심과 국가 체면을 망가뜨리는 일이어서 분명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이들 주장에 가려 정작 사안의 핵심적인 문제인 건강 보험재정 적자와 그 요인의 일부인 약가문제가 소홀히 여겨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문제의 핵심은 이태복 전 장관이 보험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다국적 제약사와 일부 대형 제약사의 의약품 가격 인하를 고수한데서 비롯됐다. 약제비는 지난 98년 2조8천여억원에서 지난해 무려 4조1천여억원으로 43%나 급등했다.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 적자요인이 됐고 국민의 부담도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가장 많이 팔린 상위 10개 의약품중 8개가 외국 제약사 제품이었다. 따라서 다국적 제약사 의약품 가격인하 정책은 건보재정 보호를 위해 당연히 취할수 있는 방안이었다.정부는 지난 1999년 11월 의약품 가격 인하를 꾀하고 제약사와 의료기관간의 의약품납품 비리를 근절키 위해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를 실시했었다. 종전에는 제약회사들이 출하가격을 자율적으로 결정, 당국에 신고하면 여기에 적정 마진을 더해 약가를 고시해 왔었다. 따라서 이 제도 아래에서 의료기관이 제약회사와 협의를 통해 가장 낮은가격으로 의약품을 구매하고 고시가격과의 차액인 마진을 극대화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를 실시하고 2000년 들어 의약분업이 실시되자 의료기관과 의사들은 굳이 의약품의 저가 구입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말하자면 의약품 가격결정에 수요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게 된 것이다.둘째는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자 의료기관과 의사들은 가격과 품질 비교에 의한 의약품 구입 또는 처방 보다는 유명제약사나 원천기술을 가진 제약사의 제품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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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制法節'이 아니고 '제헌절'인 까닭은? 지면기사
왜 7월17일 오늘을 '제법절(制法節)'이 아닌 '제헌절(制憲節)'이라 하는가. 그것은 다른 보통 법이 아닌 '헌법'을 만든 날이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가. 민법, 형법, 상법, 기타 법은 모두 '법(法)'자가 하나뿐이지만 '헌법'만은 '법 헌(憲)', '법 법(法)'자로 '법'을 뜻하는 글자가 둘이다. 헌법이야말로 법 중의 법, 법의 법이며 으뜸 법, 기본법, 뿌리 법이기 때문이고 그 나라의 모든 법을 대표하는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이기 때문이다.그런데 필자는 미안하지만 제헌절 아침 문간에, 베란다 창틀에 내걸린 태극기를 향해 '열중(列中) 쉬엇'이 아닌 '독중(獨中) 쉬엇→차렷' 거수경례를 올려붙일 마음이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제헌이래 툭하면 뜯어고치고 주물러 누더기 헌법을 만들어온 섣부른 농단도 농단이지만 무엇보다도 저 법의 여신상 양손에 들려 있는 칼과 저울대 양쪽을 심각하게 모독하고 있다고 사려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법의 형평성 실조(失調)는 물론, 서슬 푸른 법의 칼날도 제대로 정의롭게, 그럴싸한 각도로 비껴 내리치지 못해왔다는 절실한 안타까움 때문이다.언필칭 헌정사(憲政史)였다. 그러나 법이 다스린 '헌정사'라기보다는 사람이 법을 다스린 '인정사(人政史)'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은 숱한 외압에 시달렸고 외풍 눈치보기에 허둥거렸다. 도무지 권세의 시녀용 앞치마를 벗을 날이 없었다. 그런 법의 좌표는 오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순자(荀子)의 말씀에 '유치인무치법(有治人無治法)'이라 했다. '다스리는 사람은 있어도 다스리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법도 결국은 사람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짐이 명하노라”는 제왕적 권도(權度) 시절의 법이나 오늘의 법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대 그리스의 정치가며 입법자인 솔론(Solon)은 법망을 거미줄에 비유했다. 법이란 벌레 따위 미물이나 잡는 거미줄, 약자에게만 가혹한 악명 높은 그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법이 끗발 센 귀족들도 뚫고 나가지 못할 이른바 '쇠 그물 법'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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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지면기사
6월 월드컵 대회에서 우리 축구대표팀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 국민들은 월드컵을 통해 국제사회를 감동시켰다. 우리 역시 우리 국민들의 엄청난 에너지 분출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 모든 세계 언론들이 한국과 한국 국민들의 단결과 질서의식, 공정한 태도를 격찬하고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한일월드컵 대회의 “진짜 챔피언은 한국 국민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우리는 월드컵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이때 해외의 '칭찬 홍수'속에서 우리 자신을 새삼스럽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몇가지 대표적 사례들을 짚어 보며 생각해 보자.중미(中美) 에콰도르 기자의 월드컵 기간중 '한국 체류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한 어린이가 축구 경기가 끝난 후 먹고 있던 과자 봉지를 관중석 바닥에 던지고 일어섰다. 앞서 나가려던 엄마가 돌아섰다. 그리곤 아이에게 봉지를 줍게 하더니 쓰레기통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무언가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너무나 교육적인 경험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터지는 멋진 골만큼이나 산뜻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미국인 제프 제라드씨는 “한국인들은 광화문 거리응원에서 열광하다가도 승부가 갈린 뒤에는 침착하게 주변을 치웠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에 대해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수백만명이 참가했던 거리응원이 끝난후 쓰레기를 치우고 뒤를 정리하는 응원단들의 모습에 해외언론과 외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인의 수준높은 시민의식을 칭찬했다.그러나 우리는 월드컵 대회 개막 전까지만 해도 많은 국내 경기장이 관중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뒤덮인 부끄러운 모습을 흔히 보아왔다. 이를 청소하는데 많은 환경미화원들이 밤을 새워야 했다. 여름 휴가철 유명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음식물 찌꺼기와 쓰레기로 뒤덮였고 텐트촌 주변은 밤새 젊은이들의 고성방가와 취중난동으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또한 젊은 엄마들은 “애들 기죽인다”고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제지하는 경우가 드물었다.이번 월드컵 대회 기간중 우리 국민이 보여준 질서의식과 공중도덕심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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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산다는것의 의미 지면기사
축구영웅들이 '월드컵 4강 오디세이'의 신화를 써내려갔던 6월이 꿈결속에 지나갔다. 한국인은 '황홀한 6월의 기억'에서 깨어나기 싫어 7월의 첫머리를 영웅들을 위한 축제일로 바치고 있다.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하루를 쉬었고 어제는 수도 서울이 온통 개선 영웅들을 맞는 환희로 넘쳤다. '대~한민국이여 이대로만 영원하라'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외치고 있었다.축제는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영웅들이 그들의 모험에 마침내 웅장한 마침표를 찍으려던 그날 신은 우리에게 값진 희생을 요구했다. 우리의 '주적(主敵)'이 겨눈 정조준 포화에 꽃보다 아름다운 젊은 영혼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7월의 첫머리에 우리는 찬물을 뒤집어 쓴 채 냉정한 현실이 우리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하는 잔인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같은 시간, 같은 장소인데도 우리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고, 비극에 분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월드컵 찬가(讚歌)에 환호하면서 냉전(冷戰)의 장송곡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우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인류와의 공존을 희망하는 발신부호이지만 '대한민국'은 적과 대치중인 긴장된 공간의 상징이기도 하다. 태극기는 월드컵 패션이면서도, 전사 장병의 관을 휘덮고 있을 때는 여전히 수호해야 할 절대(絶對)의 표상이다.지금 국민들은 축구영웅들의 4강신화 대장정으로 시작해 서해상의 작은 전쟁으로 매듭된 6월을 보내고, 그 축제와 전쟁이 남긴 희비의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난감한 심리상태에서 7월을 시작하고 있다. 성취감과 낭패감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감정 과부하 상태에 걸린 셈이다. 자연히 한국인으로서 21세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삶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의 기호와 상징에 대한 해석이 극(極)을 달리하고, 같은 공간에서 축제와 전쟁을 같이 치러야 하는 우리는 삶의 좌표를 어디에 맞추어야 할 것인가. 글쎄, 어차피 현실을 인정하는데서 삶의 좌표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공간과 시간을, 그리고 우리의 기호와 상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