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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인(殘忍)한 달' 4월을 보내며 지면기사

    온 천하가 통곡하고 있는 4월의 마지막 날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중략)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장편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다. 제1·2차 세계대전 후 주검들과 뒤덮여 있는 땅에서 새싹과 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고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엇이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도 진도 앞바다 한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을 못다 핀 어린 주검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온다. 그토록 잔인했던 4월에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내던져진 이 고귀한 목숨들이 너무 가엾다. 할 말이 없다.4월 16일 오전 9시 29분 필자의 휴대전화에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 침수중'이라는 문자가 떴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모 통신사가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뉴스다. 이어 9시 58분에는 '경비정, 헬기 동원 120여명 구조', 10시 18분 '여객선 좌초, 190명 구조', 11시 22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11시 27분 '여객선 완전 침몰… 승객은 전원 탈출한 듯'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들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41분 '107명 실종, 생사불명'으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공식발표는 구조에서 실종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실종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같은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언론의 확인 없는 발표와 보도로 국민들의 혼란은 더해갔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가 28일 밝힌 실종 학생의 '기다리래'라는 마지막 카톡 시간은 세월호가 물속에 가라앉은 오전 10시 17분이었다. 선장이 탈출한 뒤 31분이나 지난 뒤였다. 조금만 더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을 구조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퇴선명령을 내렸다던 선장의 새빨간 거짓말이 드러났고, 선장이 속옷 차림으로 배에서 빠져나오는 생생한 모습의 동영상도 공개됐다. 이로써 11시 이후의 '전원구조, 탈출' 등은 모두 허위발표와 보도로 드러난 셈이다. 얼마만큼 초동대처를 하지 못한 채 허둥댔는지를 알 수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세월호 탑승인원 발표만 공식적으로 6번이나 바뀐 것

  • 20년 전 베이징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20년 전 베이징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지면기사

    20년 전. 그러니까 1995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권ㆍ정부ㆍ기업이 모두 잘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를 들어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대한민국 최대 그룹 총수가 겁없이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한 이 말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2년전 대선에서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권을 다투었던 김영삼 대통령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이 회장의 말을 정치에 도전하는 거대한 경제권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 한번 잘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국민과는 달리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정곡을 찔린 청와대와 정치권은 발끈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는 당시 끊임없이 터지는 대형사고로 인해 깊은 상심에 빠져 있었다.1993년 3월 78명이 사망한 '구포역 무궁화호 전복사고', 그해 7월 68명이 사망한 '아시아나 733편 목포 추락사고', 10월 292명이 사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94년 10월 32명이 사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이 회장 발언이 있던 95년 4월에도 101명이 사망한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두달 후 6월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문민정권은 치명적인 결정타를 맞았다. 그리고 97년 8월 228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이 회장 발언 이후 삼성은 발언 배경과 진의를 해명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 회장의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그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명언'이 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 앞에서 할 말을 잃은 국민은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하지만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20년 전 이 회장이 '3류 정부 4류 정치'라고 일갈했던 그때와 지금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 안철수의 '현실정치'와 '새정치'

    안철수의 '현실정치'와 '새정치' 지면기사

    현실정치와 권력정치는 종종 동의어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권력정치가 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시하는 것임에 반해, 현실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정치라는 평범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현실정치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에 대한 진지한 설득과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자파세력을 포진시키는 것, 세력간의 다툼이 현실정치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불가피한 쟁투의 모습이 권력정치로 치환되지 않으려면 현실정치가 새정치로 보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정치와 새정치는 반드시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안철수 대표는 현실정치와 새정치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정의하고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던 기초선거 무공천은 좌절됐다. 그리고 기초무공천과 새정치를 과도하게 등치시킨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는 빛이 바랬다. 그러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새정치의 내용이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명분이었던 기초무공천은 애당초 새정치를 담보할 수 없었다. 또한 통합의 고리로도 미약했다. 안철수 의원이 부딪쳐야 했던 현실정치의 벽과 김한길 대표가 직면했던 당내 리더십의 위기가 만난 지점이 합당이라는 주장이 정파적 혐의가 짙어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기초공천을 둘러싼 논란으로 안철수 입지의 약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문제다. 기초무공천 철회 이후 보여준 안 대표의 정치행태다. 개혁공천을 들고 나왔다. 그 자체가 문제될 건 없으나 개혁공천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안철수 대표 측과 구 민주당, 특히 친노진영의 공천 다툼으로 비치고 있고, 광주지역 의원들의 윤장현 후보 지지 선언은 그 자체로 개혁공천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안철수 대표가 대표직을 걸었던 기초무공천의 명분은 기초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의 후보 줄세우기를 혁파하고 지방자치의 본래 뜻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야권의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광주에서 안철수 측 인사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선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개혁공천은 불가피하게 현역 단

  • 도전 받는 한국 기업문화

    도전 받는 한국 기업문화 지면기사

    금년 1월 2일 캄보디아에서 개발독재시절의 YH여공 폭력진압과 흡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수부대가 파업현장을 무력으로 제압해서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한 것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의류업체들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저임금 시정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에 군대를 동원한 혐의를 받은 것이다. 권위주의와 황금만능의 천민적 경영도 도마에 올랐다. 진실이야 어떻든 한국기업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 같아 개운치 못했다. 경우는 다르나 국내 간판기업들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세계최대의 직장평가 사이트인 '글라스도어'에는 세계IT업계 5위 삼성전자와 61위 LG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에 대한 현지인들의 리뷰 글들이 상당한데 부정적인 평가가 유달리 많아 보인다. 푸른 눈의 리뷰어들은 해당 기업의 전현직 근로자들이어서 영향력이 큰데 주목되는 사례로는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 큰소리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사가 매우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출근이 1분이라도 늦으면 직장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으며 일을 다 끝내도 퇴근 못하고 윗사람 눈치를 본다", "경영자들은 늘 회사위기만 강조하면서 정신 차리라는데 너무 식상하다", "회의에선 참석자 중 직급이 가장 높은 대장 혼자만 떠든다"는 등 날을 세운 것이다. "한국기업에 근무한 탓에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고백은 가히 충격적이다. 호주 출신의 방송인 샘 해밍턴은 고참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는 한국적 정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스타 운운이 민망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기업가정신으로 무모할 정도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캔두(can do)정신, 톱다운(top down), 캐치업(catch up) 등을 지적했는데 군사문화적 색깔이 특히 강하다. "한번 해보기는 해봤어?"하며 부하직원을 다그치던 정주영 왕회장과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죽자'며 포항제철소 건설을 독려하던 기업가 박태준이 연상된다. 군인정신이야말로 산업화기의 한국경제를 견인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

  • 영종도 카지노 사업 성공 하려면

    영종도 카지노 사업 성공 하려면 지면기사

    드디어 시작된다. 말도 많고 염려도 많았던 영종도 카지노 사업의 문이 열렸다. 한국관광의 새 시대를 여는 이 사업은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여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만 봐도, 2018년까지 약 8천명 이상의 직간접 고용효과, 1조3천억원의 경제생산 효과, 600억원의 세수 기여효과를 낼 것으로 알려진다. 인천경제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규모이다. 영종도가 '한국판 라스베이거스'로 변모되는 꿈도 가져볼 만하다.카지노와 같은 관광리조트 사업이 성공하려면 정확한 예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섣부른 가정을 했다간 큰 실패를 낳을 수 있다. 테마파크와 관광리조트 사업으로 유명한 미국 디즈니랜드 회사도 큰 시련을 맞은 적이 있다. 그들은 미국의 LA와 올랜도, 일본 도쿄에 이어 4번째로 추진한 파리 인근의 테마파크 조성사업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정성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디즈니랜드는 파리 프로젝트에 최고의 분석팀을 투입했다. 그들은 예상 방문객 숫자, 방문객이 머무는 시간, 주위 동심원 내 인구밀도, 날씨 패턴, 소득 수준 등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고려하여 예측 모델을 도출했다. 물론 앞서 성공했던 기존 3개 테마파크의 경험수치도 반영시켰다. 분석팀은 1천100만 명의 방문객 숫자와 평균 체류 3일이라는 예측 값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예측은 빗나갔으며 그에 기초했던 파리 프로젝트는 장기간 고전하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착오는 방문객이 평균 하루만 체류하는 오류였다. 이로 인해 테마파크뿐만 아니라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 한동안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이렇게 디즈니 파리 프로젝트가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잘못된 가정에서 초래된 것이다. 다른 테마파크는 45가지 놀이기구가 있었지만 파리는 불과 15가지 놀이기구만 설치한 채 개장했었다. 방문객으로서도 하루면 충분했다. 분석팀의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테마파크와 동일할 것으로 가정했던 것이다. 영종도의 카지노 사업에서는 이런 섣부른 가정이 절대 없어야 한다. 초기

  • 이야기로 소통하는 도시

    이야기로 소통하는 도시 지면기사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고령화하고 있어 이에 대비한 주택정책과 사회문화정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인천시의 경우 2022년 65세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8년에는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강화군과 옹진군은 2001년 이전에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도심의 고령화는 원도심 지역의 재생의 제약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도시 정책의 전반적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도시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원도심 지역의 슬럼화로 이어져 전반적인 쇠퇴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원도심 지역의 노령화는 제조업을 비롯한 전통 산업의 쇠퇴와 부동산 하락의 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로 인한 해당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의 도시재생투자 소홀을 낳게 되어 도시 경쟁력은 더욱 취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 현상은 비단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문제이다. '젊은 수도권, 늙은 지방'이라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수도권 주요 도시들의 고령화 속도가 오히려 비수도권보다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고령화에 대비한 도시 인프라와 주택 수요 변화를 예측하고 변화에 부합하는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고령화에 대비하여 원도심 지역 도시계획의 고령친화적 개발이 당면한 과제이다. 병원, 공원 등을 주거시설과 가까운 거리에 배치하는 고밀도 복합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또 1인가구와 고령가구의 급격한 증가에 대비하여 상권 형성이 활발하지 않은 역세권을 중심으로 노인전용 임대주택부지를 공급하는 방안, 무장애 주택과 노인친화형 디자인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그런데 노령화에 대비한 도시계획과 주택 대책과 별도로 사회· 문화적 정책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고령친화적 도시계획이 의도와 달리 원도심 지역을 고령화 지구로 기정사실화하고 도심 실버타운으로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공간이 생애주기별로 구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원도심 지역에는 청

  • 3월의 교정 그리고 새내기들 지면기사

    몇 달만에 캠퍼스가 북적거린다. 이제 갓 대학생활을 시작한 14학번 새내기들의 발걸음이 사뭇 가벼워보인다. 넓은 대학 교정이 어디가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눈동자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학생들을 실은 학교버스는 정문과 후문 언덕을 연신 오르내린다. 교내 곳곳에는 선배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한 명의 새내기들이라도 자신들의 동아리로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새학기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 정겹다. 낯선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새내기들의 모습도 풋풋하다. 파릇파릇하다 못해 싱그런 새내기 대학 1학년을 프레시맨(freshman)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성중립적이지 않은 표현이라 하여 'first-year student(퍼스트이어 스튜던트)로 부르는 주도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프레시맨이 문자 그대로 신선해 보인다.들뜬 분위기를 나타내는 3월의 교정에서 주인공은 단연 신입생이다. 일부 대학의 특정 학과에서 선배들이 신입생 군기잡기에 나서 말썽을 빚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그래도 3월 한 달만큼은 누구에게서나 환영과 사랑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과는 환경이 사뭇 달라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실 앞에 크게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같은 시간에, 같은 선생에게 배웠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밥을 먹었다. 1년내내 어울리는 사람들도 한정돼 있었다. 맘대로 반을 바꿀 수도 없다. 선택권이 하나도 없으니 차라리 부담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런데 대학에 입학하니 새내기들은 나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강 신청을 하느라, 수업시간표를 짜느라 곤혹을 치러보기도 했다. 게다가 뭘 입을지, 뭘 먹을지, 뭐를 해야할지 완전히 내 책임인 동시에 내 자유다. 한꺼번에 주어진 자유가 오히려 새내기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늘어난 자유와 선택권이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리는 자유만큼 책임이 뒤따른다. 12년간 보통교육을 받는 동안 부모와

  • 깊은강이 멀리 흐른다

    깊은강이 멀리 흐른다 지면기사

    드라마 '정도전'의 열풍이 뜨겁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에 푹 빠진 아내와 딸에게 TV리모컨을 빼앗긴 남편들이 모처럼 주말저녁 리모컨을 빼앗아 와 정도전 삼매경에 빠져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지난 9일 정도전은 시청률 16.5%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도 '개그 콘서트'도 따돌린 놀라운 기세다. 이성계와 이인임, 정도전과 이방원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마침내 조선건국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당분간 아내들이 남편으로부터 리모컨을 빼앗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왜 남자들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혁명가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했던' 한 사나이에게 열광하고 있는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 타락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조선을 설계한 '고려가 버린 아웃사이더'에게 왜 중장년들은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걸까. 불황으로 숨도 못 쉬던 서점가 서가에도 정도전 일색이다. '소설 정도전'에서부터 '정도전 연구'에 이르기까지 정도전과 관련된 서적만 50권이 넘는다. 방송계나 출판계 모두 정도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훌륭한 학자 정도전이 역심을 품는 개혁가가 된 것은 이인임과의 불화로 나주로 유배를 떠나면서부터다. 9년이라는 길고 길었던,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웠던 긴 유배생활이 없었다면 조선정신의 바탕이 되었던 위민의식은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이 무려 519년 동안 망하지 않고, 도도한 강물처럼 멀리 멀리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이 초석을 다진 조선의 건국이념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선이 500년만에 '망했다'고 하지만 조선은 500년동안 '망하지 않은' 보기드문 왕조국가였다. 조선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왕이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인 나라가 조선이었다. 왕의 독단을 거부하는 신하가 있었고, 왕의 행차를 백성이 꽹과리를 치면서 막고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왕에게 호소하는 이른바 '격쟁(擊錚)'이 가능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을 겪고도 무려 280년이나 더

  • 통합과 분열, 어느 쪽이든 야권 몫이다

    통합과 분열, 어느 쪽이든 야권 몫이다 지면기사

    정치 현실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정당간의 합당이나 정책연합, 선거연합 등 연합정치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추동하는 주요 기제들이다. 1990년의 3당 합당, 1997년의 DJP연합, 2002년의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시도 등이 광의의 연합정치의 일환들이다. 그러나 3당합당은 밀실야합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DJP연합은 이념지향이 전혀 다른 정치세력간의 지역연합이라는 부정적 평가에 노출됐다. 2002년의 후보 단일화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정치가 연합정치의 긍정적 면보다는 부정적 면이 부각되는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권력획득만을 위한 정치공학적 연대라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3당 합당은 여소야대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여권의 계산과 제2야당이었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내각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김종필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것으로서 정계개편을 가져왔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정치세력간의 합종연횡은 정계개편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이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지 아직은 예단하기 힘들지만 집권당과 야권의 대립각을 선명하게 하면서 경사진 운동장을 정지작업하는 효과는 있다. 이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초래하고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개편을 가져올 수 있는 폭발력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 등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거대정당의 독점 구조를 비판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또 하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시 안철수 교수가 정치혁신이나 정치개혁 등 새로운 정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문재인 후보와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의 민주당이 새정치를 담보할 만큼 혁신했는가 의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면 통합신당의 미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신당이 야합이나 기존의 구태 정치처럼 선거를 목전에 두고 정치적 이해에만 기반한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인지, 야권 통합의 지평을 여는 훌륭한 연합정치인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4년전 5회 지

  • [경인칼럼]힘 실릴 영어공용화

    [경인칼럼]힘 실릴 영어공용화 지면기사

    예능학원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전국적으로 1만6천여개이던 피아노학원이 10% 이상 사라졌는데 미술학원 폐업은 이를 훨씬 능가한다. 대신 영어나 수학, 논술 등 주요 과목학원엔 아이들이 넘쳐나는데 영어 사교육 확대가 압권이다. 2009년에 7천700개이던 영어학원수가 지난해에는 1만 곳을 초과한 것이다. 입시경쟁이 초등학교로 확대된 때문이나 청년실업난과 조기영어바람까지 가세해 매년 10조원 이상이 영어사교육을 위해 소진된다. 또한 한국인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2만 시간 이상을 영어습득에 할애하고 있으나 투자대비 성과는 별로이다. 스위스의 교육기업인 에듀케이션 퍼스트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영어능력은 전세계 비영어권 60개국 중 24위에 랭크된 것이다.비영어권 국민들의 영어 열공(熱工) 배후에는 세계화가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의 외연적 확대는 냉전시대를 청산했다.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경제적 자원의 국제적 이동성을 높인 때문에 지구촌의 요소생산성이 제고된 결과 세계인들이 물질적 풍요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의 그늘(=장기불황)은 더욱 짙어졌는데 분배문제가 결정적이다. 특히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외적으로 빈부격차는 훨씬 심해졌다.최근 미국에는 민간소비 훈풍이 감지되고 있으나 정부의 고민도 깊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산업지형에 반갑지 않은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중산층 산업이 쇠퇴하고 럭셔리 및 대체재 산업이 점점 비대해지니 말이다. 지난 3일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이 발표한 "2012년 미국 전체 소비의 38%를 소득 상위 5%인구가 담당했다"는 내용이 상징적이다. 유럽과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 민간소비의 핵인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저성장체제가 장기화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상위 0.1% 사람들이 모이는 다보스포럼의 금년 주제가 양극화문제인 지경이다.국내적으로 성장문제, 주거문제, 사교육문제, 수출경쟁력문제 등이 산적했으나 부(富)의 편재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소득분포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353으로 위험수준(0.4)에 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