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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KBS Ⅱ 지면기사
결국 현 정부의 의도대로 KBS 수신료는 전기료와 분리 징수하게 되었다. 반강제징수에서 자율납부방식으로 전환된 셈이다. 납부자 수 감소가 예상된다. KBS는 위기다. 그러나 KBS의 위기는 KBS 종사자의 위기일 뿐이다. 시청자들은 KBS가 없어도 다른 대안이 얼마든지 있다. 연예인을 비롯한 출연자도 마찬가지다. 다채널 환경에서 방송 출연 기회는 확대되었다. 징수방식 변경은 KBS의 위기지만 우리사회에서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KBS와 관련된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KBS의 경쟁력이다. KBS만의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무엇인가. 수신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송에서는 찾기 어려운 '볼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EBS의 일부 프로그램은 우수하다. EBS에 더 많은 재원이 투입되면 더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이다. KBS 2TV는 SBS, JTBC, tvN과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떨어진다. 참신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혹자는 2TV는 광고를 하기 때문에 1TV와 다르다고 한다.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2TV는 KBS의 브랜드를 내려놓아야 한다. 광고도 하는 KBS에 수신료를 흔쾌히 지불할 시청자는 많지 않다. '수신료 분리' 자발납부 감소 예상차별화된 '볼만한 프로그램' 제작 두 번째는 우리나라의 국격(國格)과 관련한 방송의 역할이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는 우리나라에도 BBC월드, NHK월드와 같은 방송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자녀의 학폭 전력, 야당의 언론장악 비판 등의 논란이 있지만 이 내정자의 방송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료 방송에 가입하면 거실에서 세계 각국의 유수한 방송을 접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면 KBS월드와 아리랑TV 또는 YTN월드 등 국내에서 송출하는 해외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제공하지 않는 숙박업소도 많다). BBC, NHK와 비교하면 그 수준은 매우 처진다. 외국인 타깃으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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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조용필과 인문학 지면기사
지난 6월, 화성문화원에서 조용필(趙容弼) 관련 강의를 세 차례 했다. 2년 전에 펴낸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유성호, 2021)을 주된 내용으로 하여 '조용필과 인문학'이라는 테마를 붙였다. 조용필 노래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고 함께해본 것이다. 강의 내내 조용필이 대중예술의 통속성이나 하향 평준화 가능성을 자신과 철저하게 분리한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점을 거듭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가창력, 무대 매너, 가사 전달력, 장르 수용 혹은 변형 능력, 노랫말 해석력, 연주 실력 등에서 모두 최상급을 이룬 거의 유일무이한 뮤지션이다. 나는 그가 지상에 남긴 노래들을 인문학의 정수인 서정시 양식으로 읽어보려고 했다.조용필의 어떤 노래는 그가 직접 가사를 쓰거나 곡을 입혔고, 어떤 노래는 다른 이들이 지어 건네주었다. 물론 그는 모든 노래의 최종 수행자로서 스스로를 증명하였다. 나는 조용필 노래의 기원으로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 두 곡을 지목하였다. 유년 시절에 대한 선연한 기억으로 구성된 이 곡들은 그가 품어갈 예술적 지향을 일찌감치 암시해주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길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순간적으로 탈환해가는 아득한 꿈의 길이었다. 조용필은 바로 그 꿈의 힘으로 일인칭인 '나'와 '우리', 이인칭인 '너'와 '당신'과 '그대', 그리고 숱한 3인칭을 노래 안으로 불러들였다. 화성문화원서 출신인물 업적 평가6월 조용필 노래 관련 강의 세차례 조용필은 1950년 3월21일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나는 화성이 조용필의 고향이자 차범근의 고향이라고 기억했다. 요즘은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를 열었던 노작 홍사용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들어서 있고 가끔씩 그곳에 가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읊조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게 화성은 조용필 삶의 첫 장(章)으로 애잔하게 다가온다. 강의를 모두 마치고 찾아간 곳은 그의 모교인 송산초등학교였는데, 그는 이 학교를 졸업하고 근처에 있는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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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연대를 통한 유보통합! 경쟁이 아닌 협업의 과정으로! 지면기사
2023년 1월30일 교육부 발표를 통해 정부는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 통합)을 공식화했다. '영유아 중심', '질 높은 교육·돌봄' 등의 표현은 유보통합 추진의 방점이 더 이상 유아교육이 성인에 대한 서비스이기 보다는 주요 발달과정으로 영유아의 성장과 교육에 있음을 명확히 한 발언이었다. 유보통합을 둘러싼 여러 토론회와 칼럼·인터뷰 등의 언론을 통해서도 유보통합의 중심은 영유아가 되어야 한다는 관계자 및 전문가 목소리는 일관됐다. 유아교육에서 영유아 중심이란 단어는 일견 당연한 듯 하지만, 유보통합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앞두고 입장이 다른 여러 주체가 동시에 "영유아 중심"을 선언하는 이유는 그동안의 유보통합 논의에서는 영유아가 중심이 되지 못했고 각 성인 주체의 갈등이 유보통합의 지속적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고백과 다름이 없다.그동안 이원화된 유아교육 체제는 이미 유아교육의 다양한 주체들을 양산했고 통합의 과정에서 각 주체는 기존과 다른 낯선 환경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영유아가 우선되는 유보통합은 성인의 입장에 따라서는 각자의 위치에 따라 유불리의 감각이 다르다. 유리한 방식으로 개선될 것이란 감각은 통합에 대한 안을 어렵지 않게 수용토록 하나, 불리한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란 감각은 수용이 쉽지 않고 이러한 상황이 각 집단에 따라 복잡하게 누적되고 얽혀 주체간의 갈등은 심화되기도 한다. 상황에 대한 '유불리 감각'은 객관적 팩트가 아니라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감각에 기인한다. 통합을 앞두고 다양한 토론회와 성명과 언론에 기고되는 글들은 그러한 감각에 기인하여 쓰여지기도 하고, 확대 재생산되어 더 깊은 감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영유아 중심 아닌 성인 주체 갈등그동안 유보통합 논의 실패 원인 성공적 유보통합을 위해서는 유아교육이 현재 처한 위치를 개선할 수 있는 안을 제안함과 동시에, 현장에서 함께 애 쓰고 고생하는 유아교육자들을 폄하하여 금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지혜 혹은 용기도 필요하다. 아무리 세련된 방식으로 용어를 사용해도 폄하나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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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장미란 차관 임명과 스포츠계 성평등 선진화 촉구 지면기사
지난 6월29일에 정부는 15명 장차관급 개각을 단행하였다. 가장 주목받은 인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임명된 장미란 교수였다. 장미란 교수는 역도선수로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2012 런던 올림픽에서 4위에 그쳤으나 동메달 선수가 약물 복용 문제로 자격이 박탈되어 대신 동메달을 수상하여 연속 3회 올림픽 메달을 수상한 스포츠 영웅이다. 장 선수는 은퇴 후 학업을 지속하여 2016년에 용인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이런 경력을 가진 장 교수의 차관 임명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도 있으나 부정적 평가도 있다. 부정적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선수 출신 차관이 스포츠뿐만 아니라 관광과 국민소통까지 아우르는 업무를 해낼 것인가 우려하는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현 정부가 리더십이나 업무 수행 능력을 따지지 않고 스포츠 영웅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임명의 불공정성'을 주장한다. 문체부 제2차관 장미란 임명 주목용인대 교수·복지사업 운영 10년'역량 의구심' 선수출신 편견일뿐 장 차관 임명에 관한 부정적 평가에 나타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짚고자 한다. 먼저 '운동선수 출신에 대한 편견'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제1차관과 제2차관을 따로 두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부터 현재까지 역대 제2차관 17인은 언론, 스포츠, 관광 분야 전문가이거나 정부 부처에서 경력을 쌓은 행정 전문가이다. 이 중 누구도 스포츠, 관광, 국민소통의 전체 영역을 잘 아는 전문가가 없는데 유독 장 교수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운동선수 출신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체육특기자제도의 부정적 관행으로 인하여 운동선수가 학업을 등한시하기 때문에 운동선수 출신은 지적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편견은 그 뿌리가 깊다. 그러나 장 선수가 15세에 역도를 시작, 21세부터 29세까지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가 된 것은 지덕체(智德體) 중에 '체'만 치중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 선수가 은퇴 후에 공부하여 교수가 되고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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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여름휴가를 앞둔 당신이 알아야 할 노동법 지면기사
직장인들이 가슴 뛰는 여름이다. 수년간의 팬데믹 사태 이후 오랜만에 열린 하늘길에 올여름 휴가만을 기다린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재빠른 사람은 이미 '얼리버드 티켓'을 예약해놨을 테고, 휴가 시기를 놓고 아직 눈치싸움을 벌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직장인에게 휴가와 관련된 노동법은 필수다.먼저, 여름휴가 또는 겨울휴가라고 부르는 계절 휴가는 사실 대부분 법정 연차유급휴가를 붙여서 소진하는 것을 뜻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에게 주어진 연 15일 이상의 휴가를 여름에 연달아 사용하면 그것이 여름휴가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연차휴가를 1~2일씩 소진하는 데 비해 여름·겨울에는 5일 이상 휴가를 붙여 쓸 수 있게 하는 기업이 많아 마치 직장인의 방학처럼 굳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따라서 통상적인 여름휴가는 근로기준법상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법률이 모두 적용된다.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며, 회사는 사업 운영에 지장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만 가진다. 근로자가 휴가를 신청했는데 마땅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처음부터 회사가 마음대로 휴가 시기를 지정해선 안 된다. 다만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쉬는 기간을 정하고 연차휴가를 대체하는 방법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8월 첫째 주를 여름휴가로 정하고, 해당 기간 근로자들의 연차휴가를 소진한다'라고 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해야만 적법하다. 여름·겨울 붙여 쉬는 '직장인 방학'연차유급휴가 사용 관련 법률 적용 어떤 기업은 회사가 재량으로 별도의 여름휴가를 부여하기도 한다. 법정 연차유급휴가 외에 근로자에게 추가로 부여하는 휴가를 '약정 휴가'라고 부르고 계절 휴가, 경조 휴가 등이 포함된다. 약정 휴가는 보통 노사 협의로 정해지므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약정 휴가를 줄지 말지는 회사의 재량이지만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여름휴가를 5일로 정한다'라고 적혀 있다면 회사는 반드시 지킬 의무가 있다. 이 경우 여름휴가를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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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KBS 지면기사
'KBS 9시 뉴스'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일시적으로 허전하겠지만 크게 불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섭섭해 할 시청자는 있을 듯하다. 다른 채널에서는 볼 수 없는 KBS만의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누구보다 KBS 종사자들이 잘 알 것이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KBS는 '생방송 이산가족찾기'와 같은 기념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KBS 문학관', '토지'와 같은 수준 높은 드라마도 방송되었다. 그러나 지금 KBS의 대하드라마는 없다.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KBS수신료와 전기료의 분리 징수를 추진하고 있다. KBS의 정체성, 공영방송의 정책과제를 수신료징수 방식으로 단순화하면 본질이 호도된다. KBS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방송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했다. 효율적인 식민지 통치 수단으로 라디오를 도입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후 경성방송국은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었다. 명칭도 서울중앙방송국으로 바뀌었다. 1961년에는 TV방송도 시작했다. 1973년에 공사화(公社化)되어 공영방송이 되었지만 정치권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땡전 뉴스'라는 오명이 생겼다. 대통령 동정을 가장 먼저 보도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5년 2·12총선에서는 편파방송으로 일관하여 시청자의 반감을 유발하여 '시청료 거부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KBS의 흑역사다. 1990년대에는 민영방송 허가, 케이블TV 도입으로 방송사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위기를 느낀 KBS는 시청료의 명칭을 '수신료'로 변경하고 1994년부터 전기료에 합산하여 징수하기 시작했다. 시청료가 시청의 대가라면 수신료는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영방송의 국민 부담금이라는 논리를 도입한 것이다. 공영방송 명목 전기료에 포함됐던'KBS수신료' 방통위 분리징수 추진 그로부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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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인공지능 시대의 한국문학 지면기사
'AI 챗봇(chatGPT, bing 등)'은 올해 전반기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회 문화적 이슈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이 기술의 발전과 보급이 상당한 영향을 주겠지만, 글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인 만큼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많은 작가와 연구자들이 이 기술의 활용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 기술의 발전 단계는 아직 초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도 글을 쓰고 읽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쨌든 이 기술은 특정한 시사 이슈나 용어, 해외의 학자나 작가 등에 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 정리해주기 때문에 굉장히 편리한 반면,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도 여전히 많기 때문에 잠재적 리스크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AI와의 일정한 협업을 통해 창작한 작품을 발표한 국내 작가 시인의 사례가 아직은 드물고, 해당 작품을 비평적으로 다루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지금 많은 전문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AI의 사고처리 방식에 대해 아직 흔쾌한 합의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는 그들이 창작한 작품을 마치 인간이 쓴 것처럼 받아들이며 의인화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AI와의 협업을 통해 창작된 작품이 더 많이 읽히다 보면, 독자들은 그들이 창작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형태의 장르를 연구하고 비평하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될 것이고 우리 문학의 다양성 또한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 기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창작자와 그렇지 못한 창작자 간의 차이 또한 분명히 발생할 것이다. AI와 협업한 창작작품 탄생 필연관련 장르 연구·비평도 형성될 것"챗GPT, 첨단기술 표절 시스템" 얼마 전 방영된 한 다큐멘터리는 많은 작가가 AI 챗봇을 통해 창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쩌면 창작 영역에서도 이 기술을 잘 활용해 결과를 효과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프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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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회사에 머무르는 이유, 떠나는 이유 지면기사
요즘 걷는 즐거움에 빠졌다. 새로 입사한 직장에 걸어서 출퇴근을 시작하고 나서다. 입사를 결정할 땐 출퇴근 거리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지만, 다녀보니 걸어서 회사에 갈 수 있다는 건 신이 내린 행운임을 깨달았다. 양산 쓰고 가로수 그늘진 천변을 걸어 회사에 도달하면 일상의 만족도는 물론, 업무 의욕까지 상승한다. 지하철 노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던 지난 직장에 다닐 때 매일 아침 익명의 시민과 어깨를 부딪치며 불쾌감을 느끼고 신속히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내달리면서 오매불망 퇴사를 꿈꿨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제야 확신하건대 나의 직장 선택 기준에서 직주근접은 상당히, 아주, 매우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노동자는 왜 일을 하는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노동력을 제공할 회사를 선택하는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모범적인 답변은 자아실현 또는 성취감일 것이고, 조금 더 솔직하고 속물적인 대답은 돈벌이일 것이다. 물론 누구나 적성을 실현함으로써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내가 새 직장에서 가장 만족한 요소가 도보 출근인 것처럼, 세상과 기술이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만큼 노동자가 직장을 선택하고 떠나는 이유도 하나의 답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작년 신입사원 퇴사 가장 큰 이유절반이상 '직무가 적성 안 맞는다'조직문화·직무 적합성 개념 광범위 여러 분야의 기업을 만나 각종 인사·노무 분야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개편의 대상은 보수나 평가, 조직문화 등으로 다양하더라도 결국 한 가지 목표로 귀결되곤 한다. 직원들, 특히 젊은 직원들의 퇴사를 막고 조직을 성장시킬 인재를 유인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신입사원의 이직 중 절반 이상이 2년 내 이뤄지고 있으며, 한 구인·구직 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이 가장 많이 퇴사하는 시기는 6개월 이내라고 한다. 잦은 입·퇴사로 인한 인재 유출과 인사 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업은 퇴사 방지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연봉이나 성과급 등 보상을 추가하면 젊은 직원들은 퇴사 결심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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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과유불급, 운동강박 벗어나 여가생활 균형 찾기 지면기사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응답자 비율이 2013년에 45.5%였는데 2022년에 61.2%로 증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연령대별 운동 참여율이 크게 달라졌다. 2013년에는 50대 이상 중장년의 운동 참여율이 청년보다 더 높았는데, 최근에는 20대부터 40대의 운동 참여율이 중장년보다 더 높아졌다. 청년의 활발한 운동 참여는 '근육질 몸매 사진(바디 프로필, body profile)'이나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의 줄임말)'이라는 유행어를 낳으면서 청년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중장년의 운동 참여는 건강 위험신호를 받고 '건강관리'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면, 최근 청년의 운동 참여는 건강관리 차원을 넘어서 '자기개발'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2021년에 발표한 'MZ세대가 자기개발이라고 생각하는 활동'을 보면 '공부나 학습'(77%), '신체 건강관리'(72%), '취미 배우기'(68%), '스트레스 및 정신 건강관리'(59%), '외모관리'(56%), '인간관계 관리'(49%)의 순으로 나타났는데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취미 같은 여가활동도 자기개발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인 취미활동 자기개발 연계과몰입 '중독' 신체·정신적 폐해 미국 철학자 조안 시울라가 말한 것처럼 20세기 말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경쟁과 시장 우위 논리가 가속화되고 노동 유연화로 안정된 직장이 감소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개발하여 성과를 내야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노동하게 되었다. 더구나 자기개발은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여가시간까지 확장되어 이루어지면서 현대인은 운동이나 취미활동까지 자기개발로 여기고 열심히 한다. 하지만 운동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면 자칫 '운동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국내 스포츠과학자 강신욱은 '운동 중독(exercise addiction)'을 '운동에 과도하게 몰두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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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망설임의 윤리학 지면기사
유아교육과에는 팀 작업이 많다. 팀 작업은 학생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낼 수 있는 시간이 다르고, 각기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대도 다르고, 무엇보다 지향과 의견이 다르다. 갈등은 피할 수가 없다.팀 과제를 안내할 때마다 학생에게 설명하는 팀 활동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지침이 있다. 팀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팀원과의 관계를 통해 교사로서, 혹은 누군가의 동료로서 자신의 경계를 확인하는 일이다. 동료의 어디까지를 견딜 수 있고 어느 지점에서 견딜 수 없는가, 상대에게 필연적으로 책임을 전가하게 될 자기확신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동료와의 협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는가 등 팀 작업은 여러 경험과 감정 속에서 자신을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유보통합 앞두고 유치원·어린이집국공립·사립뿐 아니라 교권 침해 이러한 의미는 구체적 지침과 연결된다. 팀에 참여하는 학생이 서로 처한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할을 분배토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학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태어나기도 했고 누군가는 학업과 돈벌이를 병행해야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평안한 마음으로 과제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관계의 어려움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성실하게 참여하기 어려운 동료의 경우에는 그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과제를 주는 것, 해내지 못해도 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과제를 부여토록 역할을 지속적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세상은 n분의 1로 몫이 정확하게 나뉘지도 않고 내가 늘 그 몫을 제대로 해내는 입장에만 서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러니 n분의 1을 해내지 못해 가장 괴로울 그 이를 애써 금 밖으로 밀어내지 않도록 연습해 보는 것이다.그러나 학생들은 여전히 팀작업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애써 그 시간을 협업의 지향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애써도 갈등으로 끝이 나 힘들고 어려운 감정에 직면하기도 한다.그런데 실은 나도 그렇다. 나와 다른 이들은 도처에 존재하고 이해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