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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걷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지면기사

    모든 도시행정 보행환경·보행자 우선 고려주거환경, 활동적인 삶 가능하게 만들 필요도시재생도 반드시 보행중심으로 계획돼야출퇴근 시간이면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차량으로 심각한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교통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횡단보도와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량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모든 골목길은 주차된 차량으로 점령당하고,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하기 불편한 도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통행수단인 보행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도시, 과연 이런 도시가 살기좋은 도시일까?세계에서 살기좋은 도시로 평가되고 있는 도시들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국의 컨설팅 업체인 머서(Mercer)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를 발표하고 있다. 2011년도에 이어 2013~2014년도 연속 1위를 차지한 호주 멜버른은 2030년까지 전체 이동수단의 30%를 보행자 통행이 되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그 외 상위권을 차지한 캐나다의 밴쿠버와 토론토,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 등도 보행이나 자전거·대중교통을 우선으로 하는 도시 및 교통계획을 펼치고 있다. 물론 보행환경을 비롯 다양한 분야를 평가해 살기좋은 도시를 선정한다. 하지만 보행자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도시가 과연 살기좋은 도시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현대문명의 획기적 산물인 자동차는 도시화와 산업화시대에 안성맞춤인 빠른 이동수단이기에 선진 산업국가들은 앞다퉈 보급해 왔고,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이에 맞춰 빠르게 변화돼 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에 따른 난개발과 도시내 도시간 교통량의 급증, 기성시가지의 쇠퇴, 지역 커뮤니티의 파괴, 그리고 신체활동 감소에 따른 비만인구의 증가 등 자동차 중심 도시로 인해 발생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문제인식이 확산되면서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흐름이 많은 도시에서 시작되고 있다.성공이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2020년 보행

  • 그리운 독도 강치

    그리운 독도 강치 지면기사

    日어부들 창칼·몽둥이로 한해 3천200마리 죽여수천년 평화롭게 살다 제국주의 영토침략에 희생'생태계 보호구역 지정' 우리의 새로운 스토리텔링독도에 발을 딛고서지난 주말 독도 땅을 처음 밟아보는 행운을 누렸다. 동국대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가 참여하는 독도연구팀의 학술답사 일정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독도평화호를 타고 가는 동안 가슴은 내내 설렜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일본 수로부의 해도('조선동안', 1893)를 최근에 발굴한 교수와 그 연구팀을 실은 배는 울릉도에서 두시간을 달려 독도에 도착했다. 마침내 내 발이 국토의 최동단에 닿았다. 가슴이 다시 설렜다. 이게 뭘까. 특별한 경험에 대한 희열감일까. 치열한 영토 갈등 현장에 대한 체험감일까. 아니면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뜨거운 애국심일까.우리는 섬의 해안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태풍 북상조짐에 서둘러 배를 타야만 했다. 그 해안.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지표'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나는 내 설렘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리운 강치. 그곳에서 수천년을 행복하게 살아오다 한 세기 전 갑자기 멸종돼 버린 생명체들. 나는 그들의 평화로운 서식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슬픈 강치 이야기학술회의는 치밀한 논증으로 무늬를 짜 나아가고 있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의 발표문에 일본의 영토침략 야욕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 눈에 확 다가왔다. "명치시대 일본이 무주지 선점에 얼마나 전력하고 있는가는 1898년 미나미도리지마(南鳥島)를 일본령으로 편입한 뒤, 1902년 7월 이에 항의하는 로즈힐 원정대를 막기 위해 파견된 이시이 외무서기관의 '남조도출장복명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태평양의 수많은 섬들에 대한 열강의 점령 조치는 실력으로 제압해야 하며 모험적인 일본인들에게 선박과 장려금을 지급해서 섬들을 차지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같은 실력 행사론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가 바로 우리 땅 독도다. 일본 상인 나카이 요자부로가 다케시마 어렵회사를 설립하고 독도의 강치를 마구잡이로 포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지면기사

    스승과 제자 부대끼며 지냈던 아름다운 학창시절지금의 '왕따니… 자살이니' 어디서 나온 말인지선생님도 학생도 어떤 마음으로 학교로 향할까시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올해도 어김없이 휴대전화 화면에 익숙한 문자가 떴다. '부족하지만 정성껏 준비한 ○○초등학교 동문체육잔치를 선후배 동문님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오랜 불경기와 침체된 사회분위기, 또 어떤 이유로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오셔서 고향과 동문의 정을 함께 나누며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하다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다가, 올해는 유난히 붉은 저녁 노을을 훔쳐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문자가 바로 초등학교 동문회에서 온 소식이다. 오래 전에 졸업한 학교로 놀러오라는 소식.학교는 왜 자꾸만 우리를 부르는 것일까. 학교는 대체 무엇일까. 떠나온 학교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스해지는가, 아련해지는가, 얼굴이 화끈거리는가. 당신은 어떤 경우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면 학교 따윈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가. 떠나온 학교를 생각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선생님인가, 친구인가, 좋아했지만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그 누구인가. 학교는 왜 우리들 각자의 기억속에 애증으로 자리 잡은 채 틈이 날 때마다 부르는 것일까. 마치 당시에 마무리하지 못한 오래된 숙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듯이.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인생에서 학교는 많고도 많다. 네 개의 학교를 모두 지나오려면 1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학교는 우리들의 또 다른 고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러하기에 지나온 학교에서 부르면 그때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철수는 왜 거의 매일 지각을 한 것일까. 그 선생님은 풍금도 칠 줄 모르면서 어떻게 매번 음악시간을 진행했을까. 길동이는 나머지수업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선생님은 왜 그렇게 무뚝뚝했을까. 만동이는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때리면서 기분이 좋았을까. 그 어여쁜 처녀선생님은 산골마을에 부임해와 살면서 동네의 시커먼

  • 물레방아 도는데

    물레방아 도는데 지면기사

    70년대 배고픔·가난 싫어 고향 떠난 소년소녀들구로공단생활, 고향에 대한 비애 형상화한 노래'공돌이·공순이'로 불렸지만 진정한 산업화 주역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유행가는 '물레방아 도는데'였다. 물론 유행가에 앞서 웬만한 동요는 취학 전에 이미 끝냈다. 그때 배운 동요가 아직도 선명하다. 과꽃이 어떤 꽃인지도 모르면서 올해도 과꽃이 피었고 과꽃을 좋아한 누나는 꽃이 피면 아예 꽃밭에서 살았다며 목청껏 외쳤던 기억이 새록하다. 그 뿐인가. 과꽃을 보면 누나 얼굴이 떠오르고 시집간 후 영영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난다는 구절에 어린 마음에도 숙연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동요는 딱 그 뿐이다. 초등시절, 당시 폭풍 같은 인기속에 등장한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가 곧 나의 애창곡이 된다. "돌담길 돌아가며 또 한번 보오오고"를 정말 열심히 따라 불렀다. 의미도 모르고 그냥 불렀다. 학교 오가는 길, 길 옆 전파사도 종일 이 노래를 틀었다. 그러나 노래가 그다지 행복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들어서다.나와 같은 386세대들의 고민은 이 땅의 노동운동이었다. 민주화와 함께 어깨를 짓누르던 노동현장의 질곡속에 이 노래가 만만치 않음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1972년 발표된 노래는 창작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농(離農)현상으로 도시로 몰려든 개발연대 한국인들의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비애를 형상화한 노래로 이해된다. 등 떠밀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물레방아 도는데'를 통해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사무침을 달랬다.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 다 가도록 소식이 없는' 떠난 이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너무 가난해서 떠나왔지만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깊은 노스탤지어를 노래를 통해 달랬던 것이다. 꺾기로 불리는 창법도 창법이지만 노래는 너무 슬퍼 결국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그래서 가난했던 그 시절 한국인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설 때 손을 흔들며 떠난 십대 소년소녀들은 '공순이'나 '식

  • 젊은층 고도비만 해결방안

    젊은층 고도비만 해결방안 지면기사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선언할 정도로 개인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비만이 국가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비만 치료와 예방에 힘쓰고 있다. 다행히 OECD 국민의료비 통계(OECD Health Data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체중·비만 인구 비율은 31.8%로 이웃한 일본(23.7%)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다.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2년간(2002~2013년)의 일반건강검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20~30대 젊은층의 고도 또는 초고도 비만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층의 고도비만 증가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관련 전문가들은 1980년대부터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의 소비 증가와 자동차 중심의 비활동적 생활습관에 따른 신체활동량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비만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현 추세대로 20~30대 젊은층의 비만율이 계속 증가한다면 머지않아 국가의 큰 사회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만문제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를 교훈삼아 예방적 차원에서 젊은층의 주요 비만원인이 되고 있는 패스트푸드 등에 의한 불균형적 영양섭취와 자동차 중심의 비활동적 생활습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개선대책이 필요하다.특히 정부차원에서는 모든 정책에서 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이른바 'Health in All Policies(HiAP)'개념을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공공정책은 비만과 같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예방 또는 최소화하고,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해야 된다.비만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도 중요하다. 탄산음료

  •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 지면기사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의 관리였다. 스물여덟 과거에 급제하고 3년뒤 성균관 정6품이 돼 서거정과 함께 민족의 역사서인 '동국통감'을 편찬하는데 힘을 쏟는다. 그 뒤 새로운 직책을 명받아 1487년 9월 제주도로 떠난다. 추쇄경차관. 정확한 인구조사가 임무다. 그러던 중 이듬해 정월 부친상을 당해 거친 바다에 배를 띄워 고향인 나주로 향한다. 일원 42명과 함께 배에 오른 이 항해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풍랑을 만나 정처없이 표류한 끝에 남중국 태주부 임해현 우두산 아래 당도한다.최부 일행은 중국 내륙 운하를 따라 베이징까지 이른 다음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다. 표류한지 넉달 보름만이다. 왕명을 받들어 그간의 일을 소상히 기록해 바쳤는데 이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이 책은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9세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13세기)과 함께 세계3대 중국견문록으로 손꼽힌다. 15세기 중국 저간의 사정을 이토록 정밀하게 서술한 기록은 중국 내부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는 마르코폴로처럼 구술방식을 택해 과장하지 않았으며 일본 승려 엔닌처럼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 험한 여정속에서도 '조선의 관리'로서 기품과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표해록'의 역사적 가치는 크다. 15세기 중국 동부지역에 대한 세밀한 기술은 그가 '동국통감'을 편찬하던 엘리트 문필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만들어낸 나라. 왕명으로도 고칠 수 없는 추상같은 엄정함의 정신. 그 방대하고 정밀한 데이터베이스. 이러한 문화콘텐츠가 최부같은 교양인의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요하다.이 책의 가치는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고난 극복의 스토리텔링 구조에 공익의 리더십이 강해서 오늘의 답답한 현실에도 호소력이 강하다. 최부는 어떠한 난관에 닥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빗물받을 그릇조차 없어 오줌을 받아 식수로 마셔야 했고, 금은을 요구하는 해적이 어깨에 작두를 내리치며 겁박해도 "몸뚱이를 뭉개고 뼈를 부순다고 해서 금은을 얻을 수 있겠는가"며 물

  • 보름달 아래서

    보름달 아래서 지면기사

    추석이 지났다. 다행히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고 날씨도 괜찮았다. 고향집은 여전했으나 부모님의 등은 조금 더 굽어져 있었다. 누렁이는 앞다리를 들어 반겨주었고 살이 오른 흰 토끼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빨간 눈으로 토끼장 밖의 웅성거림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지난 봄 병아리였던 닭들은 어느새 중닭으로 자랐고 수탉은 자기가 거느린 암탉들을 건드릴까봐 부리부리한 눈으로 철망 앞에서 시위를 했다. 고향집에 오면 마치 순례를 하듯 하나하나 돌아보는 습관이 든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예년보다 일찍 추석이 찾아온 탓에 고추는 아직 반밖에 물들지 않았고 수수열매를 찾아왔던 새들은 양파 망이 씌워져 있는 걸 확인하자 치사하다고 지저귀며 다른 밭으로 날아갔다. 품종개량을 한 것은 아닐텐데 들깨줄기는 사람 키보다 컸다. 깨를 베고 옮겨서 털려면 꽤나 품이 들어갈 것 같았다. 나는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쓰다듬고 담장을 따라 뻗어간 머루줄기에 매달린 검은 머루 알을 지그시 눌러본 뒤 겨우 네알밖에 열리지 않은 사과나무에 애틋한 눈길을 주었다. 작년에는 한 집에 한 봉지씩 들고 돌아갔는데 올해는 한 알씩 가져가야할 형편이었다.집 뒤편 개울가에서 자라는 돌배나무는 이미 열매를 모두 떨어트린 채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돌배는 다른 과일과 달리 익기도 전에 열매를 툭툭 떨어트리곤 했다. 어린 시절 돌배를 줍다가 돌처럼 단단한 돌배에 머리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고향에서는 돌배를 맛이 몹시 시다해서 심배라고 불렀다. 잘 익은 돌배라 하더라도 한 입 깨물면 그 신맛에 몸서리를 치는 게 돌배의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산열매보다 인기가 없었는데 최근에 들어와 돌배 술로 일약 주가가 치솟았다. 잘 담근 돌배 술은 외국의 와인보다 그 맛이 깊고 그윽하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리는 길고 깊은 겨울밤, 구들장이 뜨끈뜨끈한 고향집 뒷방에 앉아 문밖의 눈을 내다보며 마시는 돌배 술의 맛을 어디에다 비교하겠는가.뿔뿔이 떨어져 사는 식구들이 먼 길을 달려와 모두 모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성묘 가는 길이 어

  • 한 교포가 울고 있다

    한 교포가 울고 있다 지면기사

    7년간의 미국 유학생활동안 인종차별을 느낀 적은 많지 않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주립대학이 대부분 소도시에 위치한데다 주민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도시라 외국인들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다. 그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중 일어났다. 미시시피 어느 시골에서 자동차에 가솔린을 넣은 뒤 화장실을 찾은 나는 깜짝 놀라게 된다. 화이트(white)라고 쓰인 화장실이 전면에 있고, 컬러(colors)라고 적힌 화장실은 주유소 건물 뒤편에 있었다. 뒤편 화장실은 불결하기 그지 없었다. 잠깐 망설이다 우리 가족은 백인 화장실을 이용했다. 다행히 주유소측에서 시비를 붙지 않아 무사히 빠져 나왔다. 그러면서 나는 여행내내 흑인들의 슬픔을 생각하게 된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지났지만 미국 남부 오지에 가면 아직도 이같은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미국에서 남부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을 넘어서 복잡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예해방, 남북전쟁 패배 등으로 인해 남부는 양키(북부)에 대해 뿌리깊은 증오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남부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하며 우아한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거대한 저택과 화려한 파티 등을 상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종차별과 가난에 찌들은 암울한 지역을 떠올린다.남부에 대한 북부의 경멸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심하다. 북부 백인들은 게으른 남부 백인을 일컬어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 레드 넥(red neck) 이라고 비웃는다. 말 그대로 '쓰레기 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레드 넥'은 '목덜미가 빨갛게 익었다'는 의미로 볕에 탄 무지한 백인 단순 노동자를 뜻한다. 또 남부의 여러 주들을 두고 바이블 벨트라고 비웃는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골수 기독교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로 앨러바마·미시시피 등 남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놀랄때 급히 나오는 "오 마이 갓"조차도 불경스럽다며 문제삼는 이도 있다. 반대로 골수 남부인들의 양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

  • 지속가능 발전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 필요

    지속가능 발전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 필요 지면기사

    최근 정부는 경제활성화 대책으로 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업 진흥을 위한 규제완화 및 지원방침을 발표했다. 한편에서는 서민경제와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대책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국민의 안전과 건강, 환경훼손을 담보로 하는 규제완화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처럼 여론이 나누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이 용어는 1987년 발표된 유엔(UN)보고서 '우리들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다소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자연 또는 환경용량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경제·사회·환경, 나아가 문화부문의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이런 측면에서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는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간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기업의 생산성을 감소시키고 투자를 어렵게 하는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고 복잡한 행정절차는 혁신적으로 간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우수한 자연자원이 훼손될 수 있는 환경규제 완화는 성급하게 실행하기보다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수렴과 규제완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예를 들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내 유해 부대시설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하는 것도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매체를 통해 학교 주변의 각종 유해업소들이 불법으로 영업하다가 적발되거나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뉴스를 접하는 상황에서 안전과 학습환경을 저해할 수 있는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한다는 경제활성화 대책에 대해서 자녀를 둔 부모라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규제완화 이전에 아이들이 교통사고 위험 없이 안전하게 통학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 청소년이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

  • 미래의 엘론들 한국의 희망

    미래의 엘론들 한국의 희망 지면기사

    엘론,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안녕, 엘론?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왔네요.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죠? 동아시아 농경문화권에서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이 무렵을 '처서'라 부릅니다. 처서가 되면 왕성한 여름기운이 수그러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책도 많이 읽곤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부르기도 한답니다.엘론, 당신은 24절기 내내 바쁘죠? 당신 이름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해서 셰익스피어 식으로 말하면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처럼 현란하고 아름답죠. 21세기형 슈퍼 히어로, 혁신의 아이콘, 제2의 스티브잡스, 영화 '아이언 맨' 주인공의 실제 모델…, 당신이 창업한 회사들의 면면 또한 세계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죠. 태양에너지 기업 '솔라시티', 친환경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 인류의 화성시대를 개척하려는 민간 우주선 제작업체 '스페이스X'. 그곳의 CEO가 자산 91억달러의 43세 미남자라니, 많은 이들에게 어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테슬라가 보유한 300여개의 특허권을 모두 개방해 버린 당신의 대담한 결정을 보면 충격 그 자체죠. '기업이 빠른 혁신을 계속하면 기존 특허권이 의미없게 된다'는 당신의 선언은 삼성과 애플에도 귀감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엘론,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엘론 머스크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죠? 우리나라에도 미래의 엘론들이 있지 않겠어요? 풋내기 공학도가 단순한 엔지니어로 기업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 상상력과 도전정신으로 사회의 틀 자체를 바꿔나가는 과정을 당신은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잖습니까. 사람들은 그걸 미국의 힘이라고 진단하는데요, 당신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더군요. …미국은 누구에게나 창업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대학에서도 체계적으로 창업교육을 시키고 국가적인 지원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러니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춘 사람이 벤처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결국 시스템 이야기네요. 대학과 기업과 국가가 미래의 수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