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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은 약이 아니다

    세월은 약이 아니다 지면기사

    지난 봄날 나는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 자리한 문인집필실에 입주해 있었다. 그곳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술을 마시며 봄날을 건너가던 중이었다. 때늦은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마침내 봄을 알리는 목련이 하나둘 피었다. 어느 날 비가 눈으로 변해 아직 활짝 피어나지도 못한 목련이 얼어버렸고 그 참담한 모습을 목격한 시인·소설가·동화작가들은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 얼마 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태운 한 척의 배가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그렇게 잔인한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도착했다. 그 사이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일부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말복과 입추가 겹친 날 세월호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곧바로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세월호 특별법 무효를 선언했다. 요지는 이렇다. 참극에 대한 1차 책임이 있는 집권세력이 진상조사위와 특검을 꾸리는 주도권을 갖게 됐다는 것.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특별법 합의는 의미가 없다는 것. 게다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가 무슨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득권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동시에 축소·은폐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지난 넉 달 동안 우리는 착잡한 심정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술을 마시다가도 문득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술에 취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이 웃음이 과연 온당한 웃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의 웃음을 황급히 지우기도 했다. 복 더위를 넘기기 위해 삼계탕 집에서 닭 뼈에 붙은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다가도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어 젓가락을 놓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아직도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뜨거운 천막 안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술

  • 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

    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 지면기사

    학창시절, 국사 수업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는 의병에 관한 기록이었다. 임진왜란 의병 기록은 지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소상히 배웠다. 그뿐인가, 크고 작은 시험에 자랑스런 의병의 역사는 꼭 출제되었고 행주치마 유래까지 곁들인 역사 선생님의 자부심이 가득한 수업을 들으며 뿌듯해 했다. 그런데, 커서 어른이 된 뒤 가진 의문은 병자호란 때에는 어찌하여 자랑스러운 의병의 역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의병의 활약사는 배운 기억이 많지 않다. 아니 나의 경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이같은 의문은 책을 읽고 역사학자들과 교류하며 조금씩 풀려 나갔다. 임진왜란은 조선에게 큰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전쟁은 특권만 있고 의무는 없는 사대부 지배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알려진 대로 선조는 전쟁이 발발하자 의주로 도망간다. 조선의 정궁은 왜적이 아니라 이 땅의 백성들에 의해 불타는 치욕을 겪게 된다. 선조의 도망은 곧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도피하면서 사흘 뒤 평양에서 점심을 먹겠다는 허언과 고스란히 일치한다. 당시 선조의 명나라 망명 시도는 걸내부(乞內附) 파동으로 정의된다. 걸내부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속으로 들러붙기를 애걸한다는 의미다. 곧 자신과 비빈들만이 살기 위해 조선을 버리겠다는 것. 그러던 이 저열한 조선왕은 이내 왜적과 싸우기로 맘을 바꾼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명이 선조를 요동의 빈 관아에 유폐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명에 빌붙어 비빈들을 거느리며 제후로 살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선조는 내키지 않은 전쟁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이 시기 류성룡은 노비들이 왜적의 수급을 가져 오면 양민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면천법을 강행한다(선조 26년). 왜적 수급 하나면 양민으로 돌려준다는 데 의병을 마다할 노비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몇몇 개혁입법과 함께 수많은 조선 의병들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노비제 철폐는 궁궐을 불태웠던 백성들이 희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런 개혁이 지속적으로 행해진다면 임란은 조선에 되레 기회가 될 수 있었다

  • 건강한 자연공원과 건강한 삶

    건강한 자연공원과 건강한 삶 지면기사

    요즘 도심 인근의 산과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아마도 건강한 삶, 웰빙(well-being)에 대한 욕구와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캠핑문화의 확산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쾌적한 공기를 마시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최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 도립공원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가서 방문객들에게 태백산이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질병 치유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태백산의 건강증진 가치를 위해서 얼마를 기부할 수 있는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백산을 찾는 것이 건강과 질병 치유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흥미있는 부분은 건강증진을 위해서 태백산을 많이 찾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기부금을 낼 수 있다고 답하였다. 이처럼 전국의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등과 같은 자연공원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장소일 것이다.최근 미국과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Healthy Parks Healthy People(HPHP)'이라는 새로운 국립공원 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HPHP는 인간과 자연을 서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립공원 등의 자연공원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역할, 생물종 다양성 증진, 미기후조절, 수원함양, 공기정화 등의 생태적·환경적 가치를 강조해 왔다면, 이젠 인간의 건강한 삶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우리는 국립공원 등의 우수한 자연자원을 보전할 것인가,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서 개발할 것인가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삶에서 건강의 중요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과 호주 등의 HPHP 정책과 같이 어떠한 모습을 가진 국립공원일 때 과연 인간의 건강증진에 도움을 줄 것인가,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를

  • 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지면기사

    - 장마철 풍경장마철에 접어들어도 마른 장마가 지속되더니 어느새 국지성 호우가 물폭탄을 쏟아 붓는다. 모자라도 걱정, 넘쳐도 걱정이라더니 여름 한 철 강수량이 꼭 그렇다. 예측 가능하다면 퍽이나 좋을까. 장마철엔 비가 오래도록 많이 내려야 제격이다. 산과 들이 충분히 젖고, 저수지가 만수위에 올라 넉넉해져야 안심이다. 농부는 논에 물꼬를 터주고 시청 공무원들은 지난해에 넘쳤던 도심 하수구를 새로 정비한다. 그러는 사이 천산만야의 풀과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절기도 질서가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삶의 축축한 비애를 한 장의 빈대떡으로 달래보는 소시민들의 심사는 제법 풍류에 속한다. 제격이건 풍류건 그런 빗속 풍경이 문득 그립다. 요즘 장맛비는 예측하기 어렵다.- 분단의 해소와 민족의 화해를 위하여윤흥길의 소설 '장마'에 보면 빗속 풍경은 '제격'도 '풍류'도 아닌 하나의 상징이다. 현대사 최고의 비극과 갈등이 압축돼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중 외할머니가 할머니 집으로 피난살이를 온다. 두 할머니의 아들들은 국군과 빨치산이다. 소년 화자인 '나'에게는 외삼촌과 삼촌이 된다. 전사한 외삼촌을 그리워하면서 외할머니는 문득 비내리는 앞산을 바라보며 바위 새에 숨은 '뿔갱이'를 다 쓸어가라고 저주한다. 그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격분한다. 더부살이하고 있는 사돈의 저주는 금기 위반을 넘은 전쟁선포와 다름없다.마을의 소경 점쟁이는 모월 모일에 아들이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그 날 나타난 것은 빨치산 삼촌이 아니라 큰 구렁이다. 동네 아이들은 구렁이를 향해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치며 쫓아버린다. 이를 본 할머니는 기절하고 외할머니가 뒷일을 수습한다. 그녀는 나타난 뱀을 자신이 저주했던 빨치산 사돈의 혼령이라 생각하고 잘 달래서 좋은 곳으로 보낸다. 뒤에 깨어난 할머니가 이를 알고 사돈 간에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는 진술이 소설을 마감한다. 장마의 끝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첨예한 대립도 끝난다.여기서의 장마는 한 집안의 갈등과 비극적 상

  • 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 지면기사

    집에 총을 든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나를 찾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트럭 안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나처럼 끌려온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헌병에게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붙잡아 가는 거냐고 물었다. 헌병은 귀찮은 듯 서류를 뒤적이더니, 군 시절 서류를 위조해 세 달이나 빨리 전역을 한 게 발각이 됐으므로 다시 군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서류란 대학 일·이 학년 때 받는 군사교육 이수증명서를 말하는 것인데 이러저런 이유로 그 수업에 F를 맞으면 3개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즉 30개월을 꼬박 복무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그 서류를 위조해 제출한 뒤 3개월 먼저 전역을 하는 사병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트럭의 짐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해서 일찍 전역을 했다가 들통이 나 잡혀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맙소사! 내가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가만, 저 인간은? 트럭 안쪽에서 나를 주시하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전역하는 날까지 나를 괴롭혔던 Y병장이었다. 내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저 인간과 또 군 생활을 함께 해야 한다니….이것은 내 꿈의 일부다. 오랜만에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놀란 내 가슴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왜 오래전에 사라졌던 꿈이 되살아났을까. 군대란 곳이 과연 무엇이기에 남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떤 계기만 있으면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것일까. 군대에 대한 꿈은 이것 외에도 많았다. 소총을 잃어버리고 전전긍긍하는 꿈. 전역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도무지 제대특명이 내려오지 않는 꿈. 찾아가 항의를 하니 시국이 불안정해 한 달을 더 복무해야 한다는 꿈. 참 종류도 가지가지였고 그 까닭도 그럴 듯해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그 꿈들에서 벗어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나는 군사교육이수증명서를 위조하지도 않았고 현역 시절 총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으며 어처구니없는 제대특명 역시 받지 않았다.

  • 의리없는 시대를 위한 만가

    의리없는 시대를 위한 만가 지면기사

    2차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종업원 여자가 있다. 팜므파탈 형이다. 주인 남자 A가 그녀를 사랑했다.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B도 그녀를 사랑했다. 여자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다. 남자 A는 남자 B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같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다. "놓치기보다는 반만이라고 갖는 것이 낫겠다"는 대사는 한동안 회자된다. 얼마 뒤 또 한 남자 C가 등장한다. 여행 온 독일인이다. 여자에게 구애했으나 거절당하자 검푸른 다뉴브강에 투신한다. 뒤따라간 남자 A가 건져낸다. 전쟁이 일어났다. 남자 C는 점령군 독일군의 고급 장교로 등장한다. 엄청난 권력자다. 피아니스트 남자 B는 권력자로 돌아와 다시 여자를 욕망하는 그를 보고 좌절해 자살한다. 남자 C는 생명의 은인인 남자 A를 가스실로 보낸다. 남자 A를 구해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자 C에게 몸을 허락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훌륭한 사업가로 변신한 남자 C가 추억속에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다. 늘 찾던 비프 롤을 먹던 그는 목을 움켜쥐고 죽는다. 독살이다. 이어 백발의 한 여자가 샴페인을 치켜들며 행복해한다. 수십 년을 기다려 온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이쯤 되면 아! 하고 이마를 탁 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꼰대소리쯤 들어도 될 법하다. 1999년 개봉된 영화 그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줄거리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한다는 설정이 우리 정서에 불편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방학을 틈타 헝가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방문 일정중 어느 하루,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레스토랑은 부다페스트 도심 외곽 동물원 옆에 있었다. 고풍스러운 현관에는 교황·영국여왕·반기문총장 등 세계 저명인사가 다녀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순간 영화속의 한 여자

  • 폭염 취약 계층과 지역 배려하는 녹색 복지도시

    폭염 취약 계층과 지역 배려하는 녹색 복지도시 지면기사

    지난 몇 년 간 이상기온 현상으로 유럽을 비롯한 가까운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블랙아웃(blackout) 사태의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올 해도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작년에 비해 한 달 정도 빠른 5월 말에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졌고, 경남지역에서도 6개 시·군에서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폭염특보는 여름철 무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열적 스트레스를 지수화한 열지수와 최고기온을 사용하여 국민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따라 주의보와 경보로 나누어 발표된다.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기온이 33℃ 이상이고 일 최고열지수가 32℃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는 일 최고기온이 35℃ 이상이고 일 최고열지수가 41℃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각각 발표된다. 이처럼 폭염특보를 발표하는 것은 폭염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며, 실제 국립기상연구소에서 최근 10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기상재해 중 폭염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도 폭염과 같은 극한적 기후현상과 자연재해, 전염병과 온열질환 등을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건강 위험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폭염이라는 극한적인 기후현상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과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폭염에 취약한 65세 이상의 고령인구와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냉방기나 샤워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기 힘든 경제적 취약계층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대책 마련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남지역의 폭염에 따른 건강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는 질병관리본부에서 2011년부터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등의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는데, 2013년도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1천195명이 발생하였고, 이 중 경남지역이 181명으로 가장 많았다. 따라서 폭염에 따른 건강피

  • 우리를 지나가는 시간들

    우리를 지나가는 시간들 지면기사

    세상 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불과 두 달 전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사고가 있었고, 그런 엄청난 사고를 낸 해운사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이미 다른 나라로 밀항했는지 어쨌는지 땅 속으로 꺼지거나 땅 위로 증발하듯 자취를 감추었다. 아직 사고가 다 수습되기 전인 짧은 시간 동안 지방자치행정의 수장과 지방의원들을 뽑는 선거가 있었지만 그 일은 벌써 수년 전의 일처럼 멀어진 느낌이다.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현직 총리가 시한부 사퇴를 하고 그 뒤를 이어받을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이런저런 결격 사유로 낙마했다. 전방 부대에서 한 사병이 동료 사병들에게 총을 쏘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으며, 성적이 부진한 탓도 있겠지만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조차 명함을 내밀 자리가 없이 메가톤급의 사고 사건들이 우리를 흔들고 지난다.그런 중에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요즘 내가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전자책 서점이고, 또 하나는 45년 전에 졸업한 초등학교 동창회 사이트이다.예전엔 독서라면 으레 책으로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종이책으로만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필요한 책을 다운받아 읽는다. 뜻밖에도 예전에 챙겨 읽어야 했는데, 미처 읽지 못하고 흘려버린 작품들이 그 바다속에 있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컴퓨터로 글을 보내고 받고, 또 컴퓨터로 작품을 읽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나 역시 작가 생활을 한 지 30년쯤 되는 세월동안 처음엔 원고지 위에 펜으로 글을 썼으며, 그것보다는 타자기가 능률적이어서 타자기로 바꾸었고, 그다음 컴퓨터와 타자기의 중간 형태쯤 되는 워드프로세서를 쓰다가 지금은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하고 있다. 불과 30년 남짓한 시간동안 펜에서 타자기로, 워드프로세서로, 컴퓨터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그런 변화속에 근래 자주 가고 있는 인터넷 동창회는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 가면 시간이 오히려 멈춘듯한 느낌이다. 한해 졸업생이 쉰 명도 되지않는 강원도 대관령 아래 시골학교 동창회다. 전형적인 농경사회 속에서 유년을 보낸,

  • 통합의 가산효과 감산효과

    통합의 가산효과 감산효과 지면기사

    6·4 지방선거도 끝이 났다. 이어 7·30 재보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정가는 지금 그 결과를 두고 셈이 한창이다. 지역, 세대, 이념 등 여러 각도에서 득표결과를 분석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당내의 계파는 계파별로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행했던 여러 전략 및 선택에 대하여 효과도 분석하고, 공과도 따진다. 아무래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관심을 끌었던 일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과의, 선거를 2달여 앞둔 시점에서의 합당이었을 것이다. 과연 합당효과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득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나름대로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분명치는 않은 것 같다. 합당을 주도했던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주류와 이에 소외돼 전략공천 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비주류의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것을 보면,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어할 뿐, 정확한 진단은 아닌 것 같다. 언론에서도 여야 양당이 무승부라고 두리뭉술하게 짚고 넘어가는 듯한데, 이를 본 시청자들은 '통합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았나 보다'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사실, 우리가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인사가 만사여서 팀워크가 대개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중요도에 비추어 선택 전에 그 효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데 있다. 물론, 잘 아시다시피, 물질들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많은 경우 여러 성분들이 쉼 없이 서로 섞이거나, 나누어지는, 분리와 혼합의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물질의 경우는 사람과 다르게 '혼합에 의해 발생하는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전문 용어여서 다소 생소하지만 '부분 몰 특성치'라는 값을 산출함으로써 계산이 가능하다. 예로, 물과 알코올을 같은 양 혼합하는 경우, 혼합 후의 부피를 사전에 정확히 예측해 낼 수 있다. 이 경우 혼합 후의 부피는 원래보다 대략 3%가량이 작아진다. 이 계산의 핵심원리는 섞이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 분자들이 서로 영향을 받아 자기 고유 에너지인 포텐셜

  • 동학농민운동, 섣부른 '개방정책'이 문제였다

    동학농민운동, 섣부른 '개방정책'이 문제였다 지면기사

    1894년 1월 10일 전봉준은 1천여명의 농민들과 함께 고부 관아로 쳐들어가 군수 조병갑을 쫓아냈다. 갑오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이었다. 농민군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즉 나랏일을 도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기로 다짐하였다. 같은 해 4월 27일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도 농민군에게 함락되었다. 겁에 질린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이것은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 청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 전쟁을 벌였고, 승기를 잡은 일본은 경복궁까지 무력 점령했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력이 강화되자, 농민군은 다시 일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일본군은 관군을 앞세워 농민군을 공격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꺾이고 말았다.1894년, 소위 '토벌작전'에 참가한 일본군은 2만~5만명의 농민군을 처형하였다. 농민군의 10분의 1쯤이 외국 군대에 목숨을 잃자, 농민군은 재기 불능이 되어버렸다.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들도 타격을 받았다. 외세에 의존해 농민군을 탄압하였기 때문이다.그 이듬해 4월 17일, 청일 양국은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강화조약을 맺고 청일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승전국 일본은 전쟁배상금으로 은화 2억 냥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청나라에게서 받아냈다. 당시 일본의 수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이를 군비 확장에 쓸어넣은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에 깊이 빠져들었다.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농업기술이 점차 발달된 결과 농촌사회가 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지가 대지주의 수중에 집중되어 사회가 불안해졌다는 말이다. 둘째, 전정(田政), 군정(軍政) 및 환곡(還穀) 등 수취체제에 모순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셋째, 19세기 이후 본격화된 세도정치로 인해 부패가 만연한 것도 이유라 한다.내가 보기에는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 전라도의 경우, 농민의 처지는 더욱 열악했다. 그들은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야 되었다. 전라도는 양반들까지도 오랫동안 권력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상하계층 모두가 조정에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