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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화 과정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

    근대화 과정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 지면기사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된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시련과 갈등을 겪었다. 근대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새로운 체제로 가야할 과제와 침략을 막아야 하는 이중의 막중한 부담을 안고 출발하였다. 1876년 개항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항구를 개방하여 통상수호조약을 맺음으로써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다. 그동안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프랑스, 미국 등의 통상요구를 완강히 거절하면서 서구 열강과의 통상 기회는 물 건너갔다. 결국 후발자본주의국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면서 시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소위 강화도조약이라고 불리는 1876년 체결된 한일수호통상조약은 완전히 불평등한 조건으로 점철되었다. 준비 안 된 미래는 희망과 보장이 없듯이 제1조부터 '조선은 자주국가이며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조문에 우리는 오히려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안심했지만 일본이 초장에 심리적 무장해제를 시키려는 함정이었고 중국의 종주권을 부정하고 일본의 입지를 넓히려는 계략이었다. 그외에 3항구(부산, 후에 원산, 인천 지정)의 개방도 남의 나라 땅에서 일본의 일방적 선정이나, 조선 땅에서 일어나는 일본인 범죄를 일본법으로 처리한다는 치외법권 조항은 후에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특히 통상조약인데 관세율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우리 물품을 보호할 근거조차 없는 심히 불평등한 조약이었는데 우리는 전혀 몰랐다. 6년 후(1882) 미국과 조약을 맺을 때에나 통상조약에 관세율이 설정되어야 함을 뒤늦게 알았지만 많은 것을 일본에 잃은 후였다.한편 거세게 밀려오는 외압을 감당하려면 내부의 결속력이 필수건만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론분열은 국가의 동력을 떨어트리는 데 치명적이었다. 개화세력도 보수세력도 나라의 앞날을 지킨다는 목표는 같았을지 몰라도 방법론에서 평행선을 달리다보니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상대방에게 틈을 벌려 침략의 길을 열어준 모양이 되었다.그럼에도 역사의 한편에서는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고 이 시절의 희망은 교육이었다. 오

  • 안전이 구호로만 남발되는 사회

    안전이 구호로만 남발되는 사회 지면기사

    내가 처음 서울의 지하철을 타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38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서울에 무슨 시험을 보러 올라와 친구들과 또 우리를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동대문에서 시청앞까지 지하철을 타보았다. 철로의 터널은 산을 통과할 때만 뚫는 줄 알았는데, 이 굴 속 위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집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전철요금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에 금액이 적혀 있었을 텐데 혹시 그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 표를 받자마자 꼭 쥐고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또 하나 이렇게 굴속을 달리던 중 중간에 멈춰서면 어떻게 하나, 혹시 이 굴속에서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손안에 땀이 배어들며 몇 정거장 가는 동안 딱지와 같은 승차권이 후줄근하게 젖었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38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 고양 일산이다. 젊은 시절 직장을 그만 두고 오직 글만 쓰고 사는 전업작가가 되면서 신도시로 이사했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저런 일로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간다. 한동안 전철의 안전에 대해 무감하게 지내다가 세월호 침몰사고 후, 또 얼마 전 서울지하철 사고 후 다시 내가 굴속을 지나다니는 것에 대해, 또 그런 동안의 신변안전에 대해 생각한다.실제 우리 주변에 보면 안전만큼 강조되는 구호도 없다. 신축건물 공사현장에도, 길을 새로 내거나 정비하는 토목 공사현장에도 안전띠 내지는 안전 펜스가 둘러져 있고 거기에 어김없이 안전제일 구호가 적혀 있다. 아마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만큼 도처에 말과 구호로 안전을 강조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고가 많은 것일까. 안전이 생활 속의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 아니라 그냥 입으로만 떠드는 구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해가 떠도 안전이고 달이 떠도 안전이고, 안전을 마구 내팽개친 현장에도 어김없이 안전띠와 안전구호가 자리잡고 있다.며칠 전 내가 사는 고양시의 종합터미널에 화재가 발생해 귀한

  • 6·4 지방선거 이런저런 걱정들

    6·4 지방선거 이런저런 걱정들 지면기사

    6·4 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그 한복판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충격, 슬픔,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가 났을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7가지'란 시중에서 지금 유행하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임에 틀림없다.선거는 사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예술이다. 출마 당사자에게는 결과인 당선여부가 더 중요하겠지만, 시민들 입장에서는 선거과정에서 얻어지는 과실(果實)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 각 후보들이 지역사회에 관한 여러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이에 대하여 토론하고 수렴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라는 제도는 그 자체가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데 유효한 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당선자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정에서 다수가 만들어 낸 정책의지, 아이디어, 공감대 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이 정책토론과 수렴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후보를 검증하는 데 필요한 절차와 시간들을 대부분 놓쳐 버렸다. 재론할 필요도 없이 지역을 대표하고, 수많은 국가 예산을 집행하며 인사권까지 거머쥔 선출직 장으로 어떤 사람을 선출할 것인가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춘향전의 변사또와 같은 현대판 단체장이 선출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사실 후보를 검증하는 작업은 선거에서 중요한 핵심 절차 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늦었지만 어떻게든 이루어졌으면 하는 이유다. 사실 후보의 검증은 물리적으로 생업에 바쁜 일반 유권자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론기관이나 시민단체 같은 전문기관이 일정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종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언론과 단체들은 생태적으로 중앙정부의 대권이나,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사실 서민들이 직접 살고 있는 지방현장에 대한 사정들을 잘 모른다. 더욱이 회사운영에 크게

  • 후쿠시마, 과학문명에 대한 경고

    후쿠시마, 과학문명에 대한 경고 지면기사

    "우리는 방사능 오염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가꾼 푸성귀도 먹을 수가 없고, 아무 것도 안심할 수가 없어 절망적입니다." 연전에 만난 일본 농부는 청중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피해 규모를 제대로 공개하지 못한다. 정치적 고려 때문일 것이다. 각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후쿠시마 사태의 사고 뒷수습은 30~40년도 더 걸린다고 한다.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우리 돈으로 최소한 1경 원이 필요하단다.애초 인류가 핵발전에 눈을 돌리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값도 싸고, 안전하며, 전기공급도 안정적이라고 믿어서였다. 핵발전은 하나의 꿈이었던 것이다. 1954년 6월27일, 모스크바 남서쪽 오브닌스크 시에 사상 최초의 핵발전소가 들어섰다. 그 이듬해에는 영국에 그 10배 규모(50메가와트)의 상업용 핵발전소도 문을 열었다. 이로써 인류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핵발전소는 건설비용이 비싸다. 반감기가 긴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문제는 해답이 없다.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폐열이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핵발전소는 불의의 초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1986년 구 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는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다.상당수 나라에서는 핵발전소를 혐오시설로 취급한다. 미국 정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건설보조금을 지급 중단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영국은 핵발전소에 대한 특별세의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이대로 가면 20년 안에 세계 각국의 핵발전소 가운데 30%정도는 저절로 폐쇄될 것이다.이런 판국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또 한 번 대형사고가 터졌다. 유럽의 시민사회에서는 핵발전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독일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25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핵발전 반대시위를 벌였다. 그 달 실시된 독일의 주의회 선거에서는 녹색당이 대승을 거뒀다. 녹색당은 독일 경제의 선두주자인 바덴뷔르

  • 세월호 참사 아픔이 헛되지 않게

    세월호 참사 아픔이 헛되지 않게 지면기사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피지도 못한채 하늘나라로 간 영혼들의 영정 앞에 서니 슬프고 참담한 심정을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이번 사고를 당한 모든 희생자들께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처절한 아픔을 겪는 유족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인들 위안이 될 수 있겠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교육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허망함과 부끄러움이 가슴을 저밀 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총체적 반성과 구석구석 세밀한 점검이 필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지만 다시는 이러한 천재지변도 아닌 어처구니없는 인간에 의한 재난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기본과 원칙이 바로 서는 국가적 안전관리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술적인·제도적인 부분만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 정신과 가치의 문제까지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모두 내 탓이오'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국민 모두가 정신적 재무장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첫째, 생명 존중과 직업윤리 의식의 부재가 더 큰 재난을 몰고 왔음을 인지하고 사회 전반에 걸친 공동체의식·책임의식이 강조되어야 한다. 선장의 자기만 살아야겠다는 파렴치한 생의 탐욕, 선장과 함께 배를 버리고 달아난 항해사들의 직업윤리의 기본적 도의마저 저버린 비겁한 도주는 도저히 상상을 초월하는 이기심의 극치였다. 오히려 우리는 이번 사고를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친구들을 위해 구명조끼를 양보한 우정, 안내방송만 믿고 제자리를 지킨 질서의식, 오히려 선생님을 걱정하고 부모를 걱정했던 순수성들을 이제 어디서 만나보겠는가.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관련자는 철저히 응징하고, 맡은 바 본분을 다하는 사회질서의 회복이 절실한 시절이다.둘째, 위기대처 능력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재난이 처음으로 발생한 일은 아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의 일이 일어났을 때는 모두 관심이 집중되다가

  • 분노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

    분노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 지면기사

    늘 하던 일도 어떤 때는 참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는 칼럼의 주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국가안전시스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국가적 차원의 재난방지시스템에 대해서는 더욱 모르고, 선박의 안전운행이라든가 해상사고 대처방법 등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압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국가안전이니, 재난방지니, 안전보장시스템이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기 이전 우리 사회가, 아니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오랜 기간동안 마치 무르익히기라도 하듯 준비해온 가장 '한국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사고가 있기 얼마 전 이런 농담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직감적으로 테러인가 떠올리고, 일본에서는 지진인가 떠올리며, 한국은 부실공사인가 떠올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오래전 성수대교가 그랬고, 삼풍백화점이 그랬으며, 가깝게는 경주리조트 참사가 그랬습니다.그냥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자조적이고 씁쓰레하기 짝이 없는 이 삼국의 비교를 경주리조트참사 무렵에 들었던 것 같은데, 저 씁쓰레한 농담은 이제 이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떤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미국은 여전히 테러를 떠올리고 일본은 지진을 떠올리는데, 한국은 건물이든 배든 비행기든 도로에서든 장소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고가 나면 한국인가를 떠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이번 세월호 침몰사고 역시 그렇지요. 신문과 텔레비전에 나와서 얘기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정적인 사고원인만도 열 가지가 넘지요. 선장이 어떻게 했으면, 승무원들이 어떻게 했으면, 해운회사가 어떻게 했으면, 화물을 어떻게 했으면, 평소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관리감독기관이 어떻게 했으면, 정부가 인허가를 어떻게 했으면, 그렇게 열 가지도 넘는 사고원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그 중에 단 한 가지만이라도 바로 잡혀 있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그러나 어느 것 하나 바로 잡혀 있는 것이 없었던 거지요. 모든 것이 '늘 해왔던 대로'였습니다. 정부도 국민안전이야 어찌되

  • 21세기 미래 사회, '안전'이 먼저다

    21세기 미래 사회, '안전'이 먼저다 지면기사

    유능한 지도자가 지녀야 할 핵심 능력중의 하나가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이다. 그러나 복합 다원화된 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고려하여 미리 대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엔이 1996년에 창립한 워싱턴 소재 'UN 밀레니엄 프로젝트'이다. 세계적인 2천500여명의 학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미래 연구 싱크탱크이다. 최근에 '15대 도전과제 및 미래 사회 동인(動因)'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주기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시적 흐름인 미래 메가트렌드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 오고 있다. 미국 정보위원회(NIC)의 미래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25', 일본 정부의 '이노베이션 2025', 영국 국방성 산하 발전 구상 독트린센터의 '전략적 글로벌 트렌드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이 보고서들을 정리, 요약해 보면 미래의 거시적 변화를 크게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예견하고 있다. 환경과 자원문제의 심화, 지식기반사회로의 진전 및 글로벌화, 인구구조 변화, 기술의 융합 가속화, 안전과 안보, 지속가능한 성장 등을 변화 방향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세계 보고서들이 제시하는 이 트렌드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 트렌드가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닌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벌써 우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분석하여 지적한 바 있다.이 중에서 오늘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재난에 대응하는 사회의 안전'에 관한 노력이다. 재해·재난의 문제는 이제 세계 모두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안전은 모든 일의 전제조건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비롯하여 대규모 자연재해 및 인재가 전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도 대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지금이 그

  • 예언문화에서 민심을 읽다

    예언문화에서 민심을 읽다 지면기사

    국가와 사회의 흥망을 점친 것이 정치적 예언서이다. 이것이 역사기록에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 말부터였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자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조가 빈번히 나타났다. 한 참 뒤인 후삼국시대에도 왕건과 궁예의 쟁패를 예언한 '고경참(古鏡讖)'이 출현해, 왕건의 승리를 예고했다. 유학자 최치원도 고려가 신라를 흡수하리라고 점쳤다 한다. 풍수도참설의 선구자인 도선(道詵) 대사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왕건의 나라 고려가 탄탄대로를 걸으리라고 예측했다.고려 때에도 세상이 시끄러울 때마다 예언이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은 도선의 예언을 빙자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졌다고 말했다. 고려왕실로서 더욱 듣기 민망했던 것은, 이씨가 남경에 도읍한다는 예언이었다. 왕실에서는 남경에 오얏나무를 심어두고, 가지가 무성해지면 몽땅 베어버리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14세기 말에는 이성계가 일어나서 결국 고려를 멸망시키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왕조교체와 천도(遷都)를 바라는 민심이, 역사의 방향을 틀어버리고 말았다.조선 중기이후 사화와 당쟁이 격화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였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 거듭되자, 예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18~19세기는 사실상 '예언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히 영조와 정조 때는 서북지방에서 출현한 '정감록(鄭鑑錄)'이 전국에 유행했다. 예언서를 구실로 '정감록 역모사건'까지 일어났다. '정감록 열풍'은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가 실시되자 다시 격렬해졌다.예언서에는 민중이 느끼는 '현재의 고통'과 그것의 '미래 해결책'이 담겨있다. 가령 '정감록'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외침의 위협과 국내정치의 부패와 문란, 자연재해와 전염병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예언서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진인(眞人), 즉 구세의 영웅이 나타나, 안정과 평화를 구가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예언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통치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언 때문에 민심이 요동치고, 그것이 결국 반(反) 왕조 활동으로 비화될까봐 전전긍긍하였

  • 통일을 향한 사회·문화 교류의 과제

    통일을 향한 사회·문화 교류의 과제 지면기사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된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분단된 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반도 통일의 출구전략은 막연하기만 하다.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 보유로 인한 불안의 가중, 서로 간의 대립과 불신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남북한 주민들의 민족 동질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오히려 적대감과 거부감의 간격은 커지고 있다. 그로인한 남북한의 이질화는 이념,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및 언어의 이질화, 가치의 이질화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 문화교류의 확대는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이질성을 해소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상호 존중성을 가질 수 있는 기본 척도가 된다.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여는데 한 걸음 나아가는 중대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일은 목적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당위론적 통일의 주장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진지한 공론의 장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제시한 것이다. 더불어 상호신뢰의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남북한 주민들에게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는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됨은 물론이다.앞으로 남북한 사회 문화 이질화의 극복방안으로 다음의 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실행되는 전제 안에서 민간교류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제 1세대가 타계하고 2세대 시대로 들어서면서 서로의 동질감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다. 가족과 친지방문이 상호 확대되어 서로의 동질감을 인식해야 한다. 서신의 왕래, 문화 행사들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갖추어야 한다.둘째, 전통문화의 복원을 통한 동질성의 확보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우리 전통문화가 파괴된 것도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여 조사 및 복원에 착수해야한다. 그동안 남한은 세계화 추진으로 인해 전통문화가 주목받지 못했고, 북한은 혁명화로 인해 전통이 부정되었다. 이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인식아래 남북한이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현대적으로 스토리텔링하여 민족의 자

  • 청운의 푸른 빚을 안고서

    청운의 푸른 빚을 안고서 지면기사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도 모르는 용주형께 씁니다. 내가 용주형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대학에 막 입학해서였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그때 나는 어느 지방 국립대 경영학과 입학생이었고, 용주형은 같은 1학년이어도 예비역 복학생으로 법학과 학생이었습니다.학과가 다르니까 당연히 공부하는 과목도 강의실도 달랐겠지만, 그래도 1주일에 네 시간씩 같이 수업을 받는 군사교육훈련장에서 처음 용주형을 보았습니다. 1학기 때는 학과가 달라 눈에 잘 띄지 않았고, 2학기가 되었을 때 법학과에 다니는 친구가 방학동안 다음학기 등록금을 스스로 벌어서 학교에 다니는 용주형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그것은 좀 숙연한 이야기였는데, 여름방학이든 겨울방학이든 길어야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간동안 다음학기 등록금 마련을 위해 용주형이 노동판에서도 일당이 가장 높은 험한 일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여름엔 시멘트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건축현장에서 어깨에 고름이 흐르도록 질통을 메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공중 철판을 오르내리고, 겨울이면 이 산 저 산 능선으로 고압선 철탑을 세우는 작업현장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짧은 방학동안 당시 사립대학등록금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국립대학 등록금과 최소한의 기본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 얘기를 듣고 나자 용주형이 거인처럼 우러러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으로 따르며 꽤 가깝게 지냈고, 졸업 후엔 서로 다른 길로 가 소식이 끊기게 되었지만 그 시절 고학생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며 청운의 꿈 역시 그런 거였지요. 푸른색의 구름은 어두운 색의 구름보다 더 높이 떠서,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위와 벼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젊은 시절 성취하는 학문과 연구의 비유이기도 하지요.그때 헤어지고 다시 만난 적이 없는 용주형을 오늘 새삼스레 떠올린 건 지금 우리 아들세대의 청년실업과 학자금대출로 비롯된 청춘의 빚 문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300만 명쯤 되는 대학생의 절반이 넘는 160만 명이 이런저런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