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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터스포츠의 도래 지면기사
나처럼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은 자동차 생산국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이 여전히 모터 스포츠와 거리를 두며 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한국의 자동차 제조산업을 인정하고 심지어 두려움을 갖게 된지는 이미 오래다. 카레이싱의 본고장이 유럽이고 F1 세계자동차경주대회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안다.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르망이나 뉘어브르크 서킷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이같은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생산이나 소비 과정에 있어서 '빨리빨리' 태도가 더해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모터 스포츠에서는 그다지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자동차 생산국들 중에서 한국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는지 그리고 택시와 버스 기사들의 그 엄청난 운전솜씨를 보면 한국은 확실히 모터 스포츠에 충분한 재능이 있고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물론 한 스포츠의 인기를 올리고 싶다면 정체성이나 연대감이 느껴지는 팀이나 선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박세리가 없었다면 그렇게 갑자기 온 나라 전체가 골프에 열광하기 쉽진 않았을 것 같다. 큰 이벤트는 한국인의 '파이팅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있어 왔다. 나는 사실 한국팀이나 한국인 선수가 없지만 F1 국제자동차경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불붙듯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진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방문객의 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낮고 엄청난 규모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의 관심도 크지 않다. 2010년에 있었던 1번째 경주를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카오스였고, 심지어 2011년에 한국에서 F1경주가 계속될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영암에 찾아오는 레이싱팀에게 나는 자신있게 "내년에 다시 봅시다!"라고 인사하고 다음해 경기가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슬슬 앞으로 다가올 매년 F1경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고조되기를 희망하며 어쩌면 대선이 지난 후에는 한국의 행정가를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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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여론조사 공화국 지면기사
필자는 지난 며칠 동안 3통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2번은 집전화로, 한번은 휴대전화를 통해 받았는데, 모두가 조사원의 생목소리가 아닌 사전에 녹음된 ARS조사였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 지가 궁금하여 녹음내용을 끝까지 다 듣고 해당되는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어 황급히 받아보면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박근혜 후보는 1번, 문재인 후보는 2번, 안철수 후보는 3번, 기타 후보는 4번을 눌러주십시오"라는 기계음을 듣고 짜증이 안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향력 크지만 신뢰도는 떨어져 아이러니전문성 낮은 '싸구려 조사기관' 난무감독기구 만들어 공정·정확성 높여야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우리 국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선거여론조사가 우리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선거공해로 변질되고 말았다. 가수 싸이 말고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없는 우리나라가 어느새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거여론조사공화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선거여론조사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넘쳐나는 여론조사 건수만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의 대통령후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 군수마저 뽑고 있다. 심지어 정당간의 단일화 후보도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런 사례들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다간 국민의 직접 투표 대신에 아예 여론조사만 가지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자는 얘기가 나올지 모를 지경이다. 여론조사가 이처럼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이나 정치인들 모두 여론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라 하겠다. 후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과 선택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자 정치 도박이나 다름없다.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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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나(Maecenas) 지면기사
누구나 다 '메세나'가 될 수 있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의 후원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로마제국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설립될 무렵 제국의 첫 황제의 측근자인 마에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프랑스 발음 메세나)의 이름에서 만들어졌다. 메세나는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소유한 귀족층의 가문 후손으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같은 귀족층 출신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황제의 은총을 한 몸에 즐겼다. 황제와 나란히 출전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제 로마제국의 행정과 외교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러나 메세나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그의 재능이 아닌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그의 이름이다. 메세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지만 그 중에서도 젊은 시인들을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의 후원 동기는 명예나 이윤 같은 비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문학에 대한 얄팍한 흥미나 허영심에서 솟아오른 것도 아니었다. 천재적인 문학가들과 지적으로 평등한 대화가 가능했던 그는 주택의 호화스러운 정원에서 젊은 예술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주 즐겼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예술가들의 관심사 밖에 있던 주제인 정사를 수시로 논하면서 예술가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메세나를 시인들은 존경했고 그의 지혜는 고스란히 시인들의 책에 담겼다.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 호라티우스의 '서정시집' 과 '서간시집' 같은 문학의 보석에서 후원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예는 아마도 메세나밖에 없을 것이다. 메세나는 젊은 예술인들의 후원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메세나는 자연스럽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형태에 많은 변화가 없이 지속되어왔다. 플로렌스의 르네상스를 이룬 메디치 가문, 베토벤과 리스트 같은 음악적 천재들을 지원했던 합스부르그 가문 역시 막강한 부와 세력, 그리고 가문 멤버들에게 강조된 광범위한 문학과 예술의 교육을 배경으로 메세나활동을 펼친 예다. 자본주의로 들어서면서 초대기업들도 활발하게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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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의 은퇴 지면기사
얼마 전 우리시대의 사제 함세웅 신부님이 만70세로 성당의 주임신부직에서 은퇴하였다. 은퇴미사가 있다는 소식을 촉박해서 들었던 탓으로 꼭 참석해야 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주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신부님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모여 은퇴기념 만찬을 하자는 통보를 받고도 오래 전에 약속된 긴급한 일 때문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애석함을 느껴야 했다. 이래서 미안하고 저래서 죄송한 신부님의 은퇴 행사, 어떻게 해야 그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그래서 책꽂이에 넣어두고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함신부의 책을 읽기로 하였다. 지난 해 여름 10년을 넘게 써오던 '선포와 봉사'라는 사목지의 서문으로 쓴 글을 묶어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책이다. 함신부는 1999년 연말 여러 사제들과 함께 '기쁨과 희망사목연구원'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시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찰하고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단체의 기관지가 바로 '선포와 봉사'였고, 그 책의 서문을 도맡아 쓰신 분이 함신부였다.그런 함신부께서 주임신부직을 은퇴하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누구인가. 서울에서 태어난 함신부는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로마에 유학을 가 신학석사와 신학박사의 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 이래 성당의 주임신부로, 가톨릭대학의 교수로, 서울대교구의 홍보국장으로 사제직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바로 1974년이었다. 유신독재가 백성들의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에 의해 범죄자로 조작해 투옥시키고 극형에 처하는 등 악랄한 짓을 감행하였다. 이 무렵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가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는 등 극악한 참상에 사제의 신분으로 괴로워하던 함신부는 마침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저항단체를 결성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 말았다.1976년 한국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으로 일하던 함신부는 그해 3·1구국선언에 앞장서다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뒤에도 또 구속되어 함신부는 신자나 비신자를 떠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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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특이한 취향 지면기사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곳곳에 숨이 멎을만한 놀라운 곳이 있다. 우아한 긴 해안가며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겹겹이 쌓인 수많은 산들은 사계절 내내 끝없이 변화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아름다움이 매년 사라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한국의 인구 증가는 정체상태지만 도시나 도로 개발은 여전히 한창이다. 1994년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온 나로서는 예전과 비교해서 가는 곳마다 산천의 모습이 현격히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엄청나게 훼손됐고, 가보기 쉽지 않았던 신비롭고 평화롭기까지 했던 외진 곳에는 이제 6차선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상업적으로 개발됐다.개발이라는 괴물에 삼켜진 '보물같은 한국'자연스러운 하천·산세에 맞는 국도 잃어버려불편 감수한 자연으로의 발걸음 '희망이길…'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개발은 필요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 새 길이 들어선 것을 반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산과 들을 관통하며 보기 싫은 흉터처럼 남은 환경이 무시된 채 건설된 새 도로는 본래 한국의 평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과연 이 많은 새 도로들이 다 필요하기나 한 걸까? 수 년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차가 없었다. 당시엔 오직 내가 갖고 있던 오토바이크나 대중 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다니곤 했다. 그래도 보통의 한국인들보다는 한국의 곳곳을 많이 둘러 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100편이 넘는 사진과 글을 담은 여행기사를 써오며 바이크 투어를 오래 한 덕분에 작은 국도와 비포장도로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내가 좋아했던 국도에는 높은 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그 길을 가로지르며 곳곳에 어마어마한 기둥이 세워진 것을 봤다. 자주 다녀본 적이 있는 그 길만 하더라도 한 번도 교통체증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하천과 그 지역의 산세에 맞게 건설된 국도를 왜 마다하는 것일까?가끔 나는 이 나라에서는 무조건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독특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곳은 차로 쉽게 갈 수 있어야하고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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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대통령 만들기 싸움 그만둬라 지면기사
지난해 추석을 시발점으로 18대 대선 마라톤 레이스가 본격화된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레이스에서 떨어져 나갔고, 이제 선두권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의 선수만이 남아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그런데 대선 마라톤 레이스를 중계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두고서 선수들은 물론이고 관중들의 불만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선수를 칭찬하고 지지하는 반면에 또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는 흠집 내기하는 불공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두패로 나뉘어진 '정당 기관지'로 전락일부신문 특정후보 편들기·흠집내기 도넘어사실에 입각한 철저한 후보검증 역할해야60여년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선거사에서 지금까지 선거의 불공정 시비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70년대까지는 관권과 금권 개입이 불공정 시비의 핵심이었다면 1980년대 이후로는 언론의 불공정성이 시비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엄정중립을 견지하고, 공정보도를 통해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직접 선수로 뛰는 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선거철만 되면 우리 언론은 말로는 공정보도, 객관보도를 외치면서 특정 후보와 정당을 노골적으로 편들곤 하는데, 특히 신문이 심한 편이다. 조중동의 보수신문과 경향과 한겨레의 진보신문들은 똑같은 정치인과 정치 현안을 두고서 보도하는 시각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아예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한국 언론사적으로 길이 남을 최악의 편파보도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지난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있는 날 아침에 배달된 우리나라 최대 신문의 사설 내용이다. 투표일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전격적으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철회하는 돌발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두고서 이 신문은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라고 하였다.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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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의 거짓 지면기사
음악은 언어와 달리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노래나 교향곡에 담긴 선율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만약 심금을 울리는 선율이 매력적인 차이콥스키 6번 교향곡의 제목이 '비창'이 아니라 '행복한 하루' 였다면, 이 곡을 기만하는 것은 음악의 제목일 뿐이지 음악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딸림화음이 으뜸3화음으로 진행하지 않고, 다른 화음으로 진행하는 경우인 '거짓 마침(Deceptive Cadence)'도 거짓말이 아니라 나중에 올 화음적인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하나의 표현법이다. 음악은 기만의 도구가 아니다.반면 언어는 누군가를 기만시키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엉뚱한 정보라도 청중들로 하여금 신념과 확신이 가득 찬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게 꾸며댈 수 있다. 물론 음악에서도 신념과 확신에 찬 연주가 연주자의 기대와는 달리 청중들에게는 다른 의도로 엉뚱하게 전달될 수는 있다. 이것은 고의가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구두를 통한 거짓말은 글을 통해 거짓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안했어'라고 종이에 쓰는 것 보다 말로 거짓말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물론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신체적으로 미세한 반응을 보이는 등 표시가 난다. 거짓을 말할 때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얼굴 근육들의 경련, 빨라지는 맥박, 높아지는 체온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을 받거나, 잘못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다.음악을 지배하는 세 개의 원칙은 리듬, 화음, 멜로디이다. 이 원칙들이 모두 존중되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이 원칙들이 존중되지 않으면 음악이 아름답기는커녕 지루하거나 짜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세개의 원칙을 바탕으로 음악이 완성된다면 감동적인 연주를 청중과 나눌 수 있다. 연주자가 연주를 할 때 성실하게 준비를 안 했거나 해석의 의도가 불명확하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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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율 최하위의 한국인 지면기사
인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격자나 사상가를 성인(聖人)이라고 호칭한다. 일반적으로 오늘의 세계에서는 4대 성인으로 석가·공자·예수·마호메트를 거론한다. 공자를 제외한 세분들은 성인이자 신처럼 받드는 종교의 창시자가 되어 수많은 교도들이 그분들의 정신과 사상을 받들고, 그분들이 행한 행실을 본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공자는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유학(儒學)이라는 학문의 창시자가 되어 인류를 교육하는 교육자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보통의 인간들은 그런 4대 성인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성서(聖書)나 성경(聖經)을 필독서로 여기면서 그분들을 본받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을 고르자면 첫째 예수의 말씀인 '성서'요, 둘째가 공자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논어'며, 그 뒤를 이어 석가의 경(經)인 '불경(佛經)'이요, 마호메트의 '코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성서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인간이 인간의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대로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다.어떤 통계를 보면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한국인들의 독서율이 가장 낮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다. 영국 사람으로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기 나라의 최고 문학가의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 문화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니, 5대 비극이니 하는 그런 책은 문자를 아는 영국인들은 대부분 읽었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영국인은 자신들이 300년이 넘도록 식민지로 여겼던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를 두고, 인도를 버렸으면 버렸지 셰익스피어는 버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우리나라의 지폐에는 우리 국민들의 멘토 격인 네 분의 인물 초상화가 실려 있다. 일천원 권에는 퇴계 이황, 오천원 권에는 율곡 이이, 일만원 권에는 세종대왕, 오만원 권에는 사임당 신씨의 초상화가 인화되어 있건만, 우리 국민들이 과연 이 네 분에 관한 책이나 그분들의 저서를 몇 권이나 읽었겠는가.왜 책을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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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시간'이 다시 한번 지면기사
'독도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몇 년에 한 번씩 거의 아무도 살지않고 있는 바다 한가운데 몇 개의 돌들로 이루어진 이 섬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는 시간이 바로 내가 말하는 '독도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내가 말하는 독도의 시간에 대해 알게 됐다.90년 중반부터 한국에 있어온 나는 이 특별한 시간을 몇 차례 경험했고 이는 보통 이 섬에 대한 일본의 억지 주장에 시민들의 격렬한 분노를 느끼면서 이 시간이 도래되곤 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어떤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걸 좀더 설명하자면 국내 정치 단체인 당간의 내부적 문제들이 많은 시기에 이 독도의 시간이 인터넷상의 팝업창처럼 뜨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완전한 우연일까하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느낌이 드는 시간이다. 대통령의 친족이 감옥에 가고 그의 몇몇 측근 사람들이 뇌물 수수 및 그 밖의 다른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야당도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두고 실제론 끝나지 않는 내부 갈등으로 더좋은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지금 한국의 정치 현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이럴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조커(카드 게임에서 바라는 카드로 대용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옷 소매에서 슬며시 독도 카드를 내밀어 부정과 부패 또는 무능력한 정치가들에 대한 모든 분노를 밖으로 향하게 돌려쓴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독도 카드를 쓰든 그 힘은 언제나 강력하다. 내부 문제들에 집중하지 않고 그 즉시 국민 모두가 뛰어들어 갈 수 있는 분노 집합체를 형성하는 것이다.독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확실히 일본과의 관계는 뚱해지고 지난 나쁜 식민지의 이슈도 함께 불거진다. 과거 잘못에 대한 사죄 요구 등 일본과의 많은 문제들이 수면에 떠오른다. 나의 개인적 믿음은 한국의 대부분의 정치가들의 최대의 두려움은 아마도 일본이 언젠가 제대로 완전히 사과하는 일일 것이다. 일본이 만약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을 철회하고 더이상 교과서를 포함한 어떤 책에도 그들의 전쟁을 영광의 시대로 적지않고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군 위안부에게 저지른 만행을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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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살리기 지면기사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이다. 다수 의견만 큰 소리를 내고, 소수 의견이 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중앙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에서 중앙과 지방의 여론 균형성, 다양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땅에서 지방은 모든 면에서 변방이고 지역민은 영원한 소수자일 뿐이다.지역의 소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역신문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미 많은 지역신문들은 뇌사상태에 빠져있거나 산소 호흡기에 기대어 겨우 목숨만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지역신문이 이렇게 몰락하게 된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앙지의 지나친 독점과 정부의 중앙지에 대한 편파적인 지원 때문이다. 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는 신문시장을 시장의 자율에 맡겨놓으면 조중동이 모든 것을 독과점하게 되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될 수밖에 없다. 중앙지들은 1년만 구독하면 6개월 무료, 자전거, 선풍기, 상품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금까지 지급하는 등 시장 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은 여론의 다양성 명분을 내세워 조중동에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방송사업까지 내주어 이들은 지역의 광고시장까지 침범하게 되었다. 두 번째 원인은 지역신문의 지나친 난립이다. 부산과 대구, 강원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의 일간신문들이 너무 많다. 솥단지의 밥은 한정되어 있는데 숟가락 들고 덤벼드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으니 모두가 배곯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전주지역은 인구가 고작 65만명 정도인데, 지역일간신문은 무려 13개이다. 인구비율로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언론의 자유가 넘쳐나는 도시이다. 발행부수가 1천부 미만이고 오직 관공서에만 배달되는 신문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런 난립현상은 광주-전남, 경기지역 역시 마찬가지다.이렇게 지역신문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지역신문시장의 기능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시장의 경우 적자를 보는 회사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에 의해 자동으로 퇴출된다. 그러나 지역신문시장은 새로운 신문이 시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