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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여름밤의 영웅론

    한 여름밤의 영웅론 지면기사

    가끔 밤하늘에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유성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 또 지도자 한 사람이 세상을 뜨는구나." 나는 혼잣말로 탄식한다. 그런 상상력은 물론 역사소설을 읽어 얻은 것도, 무협지를 통해 학습한 것도 아니다. 유년시절 어른들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그런 상상력을 갖게 했다. 여름이 되면 별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식구들은 멍석이나 마루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는 곧잘 옛 얘기를 해주셨다. 우리는 영웅들의 얘기를 들으며 꿈을 꾸었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시대의 아이들이었지만 그런 얘기들이 우리들에게 꿈을 갖게 했다. 삭막한 세상을 건너면서 허방에 쉽게 빠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면 그런 영웅을 닮고 싶었던 소박한 소망 때문인지도 모른다.영웅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탄생될 수 있지만 대체로 수난의 시대에 나타난다. 주권을 상실한 나라, 민권을 탈취당한 독재정권, 전쟁과 기아상태에 있거나 민족이 곳곳에 흩어진 불행한 나라, 이런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그 어둠을 헤치고 일어서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여 존경을 받게 되는 사람이 영웅이다.그러나 오늘날은 영웅의 탄생이 어려워졌다. 대체로 많은 나라들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고 있고 쉽게 명분 없는 전쟁을 할 수가 없고 매스컴의 발달은 한 개인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용인하지 않고 그 내면을 낱낱이 밝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정상적인 나라의 국민들은 영웅이 출현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또 아무나 영웅이라 말할 수도 없다. 토머스 카알라일은 영웅의 조건으로 성실성과 통찰력을 들었다. 그래서 평생 갖지 않겠다는 소신을 실천한 걸인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영웅으로 인정하면서도 통찰력이 부족한 나폴레옹은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견해와 관계없이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의 입장을 취할 것이다.동서양이 인정하는 현존하는 영웅이 있다면 누가 그 호칭에 가장 적당한 인물일까? 그 답변으로 만델라를 든다면 나는 기꺼이 찬성할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실시한 최초의 평등선거

  • 도산서원 대통령 기념식수는 가짜

    도산서원 대통령 기념식수는 가짜 지면기사

    학창 시절 도산서원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거짓을 행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올곧은 선비정신에 대해서 들었다. 그리고 천원짜리 지폐의 뒷면에 그려졌던 나무 '금송'을 기억한다. 금송의 표지석에는 "이 나무는 박정희 대통령각하께서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어 아끼시던 금송으로서 도산서원의 경내를 더욱 빛내기 위해 1970년 12월 8일 손수 옮겨 심으신 것입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거기서 나는 친구들과 유명한 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남아 있다.2011년 나는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도산서원 관련 파일을 읽다가 도산서원의 금송이 혹시 가짜가 아닌가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결국 나는 문화재청과 안동시에 도산서원에 심어진 금송이 박정희 대통령이 심은 나무인지의 여부를 묻는 사실조회를 신청했고, 두 기관은 고심 끝에 '현 금송은 1973년 4월 22일 새로 구입한 것을 원위치에 재식수한 것'이라고 답변했다.국기기록보존소에 보관된 문서에 따르면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금송은 2년만인 1972년 고사했고, 현 금송은 안동군이 당시 예산 50만원을 들여 한국원예건설을 통해 1973년 심은 나무로 판명되었다. 대통령 기념식수가 관리소홀로 고사하자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몰래 새 금송을 심은뒤, 지금까지도 사실을 은폐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도산서원의 금송은 우리나라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일본 특산종이란 이유로 여러차례 구설에 올랐었다. 금송은 금강송 등 소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낙우송과로 일본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이며 고유종으로, 한반도에는 자생하지 않는 식물이다. 일제시기 현 청와대 자리에 조선총독관저를 건립할 때, 총독부 관료들과 일본 군인들이 일본에서 옮겨다가 심은 수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금송은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이자 일본 왕실과 사무라이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화폐도안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게다가 금송이 40년간 지나치게 성장해서 도산서원의 경관을 가리는 등의 문제가 드러나자 안동시는 2003년 금송을

  • 백범 김구 선생의 꿈을 생각하며

    백범 김구 선생의 꿈을 생각하며 지면기사

    국가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꿈을 꾼다. 1776년 대서양 연안에서 출발했던 신생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까지 도달하는 꿈을 꾸었고, 그로부터 70년 후 멕시코와 전쟁 끝에 지금의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5개주를 매입함으로써 20세기 팩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 우리에게도 꿈이 실현되었던 위대한 역사의 장이 많다. 멀리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대정복과 신라의 삼국통일 위업도 꿈의 결실이고, 가까이는 1960년대 잘 살아보세 꿈과 80년대 민주화의 꿈은 오늘의 발전된 한국의 모습으로 실현되었다.중국도 꿈을 꾸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작년 11월 당 총서기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한 '중국의 꿈'(中國夢)을 천명하였다. '중국의 꿈'이 아메리칸 드림과 같이 13억 모두가 잘살고 행복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해석도 있고, 중국 전래의 유교문화와 공자사상의 회복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이 '중국의 꿈'을 발표한 장소가 국립박물관이라는 사실이 내용보다 더 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국립박물관은 아편전쟁(1840) 이래 중국이 서방 열강에 의해 당했던 '굴욕의 세기'를 공산당이 영광스럽게 만회했음을 가르치는 선전의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꿈'이 어떤 함의를 갖든 그 것이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거인의 귀환과 같이 불안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한편 일본의 아베 총리가 꾸는 꿈에는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다. 작년 말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아베 총리가 보인 대외침략 부인 발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허용 등 우경화 행보는 그의 역사 인식이 퇴행적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더욱이 지난달 참의원 선거 압승으로 상하원을 다 장악한 아베의 자민당이 이른바 보통국가로 가기위한 평화헌법 개정과 같은 국수주의 기치를 더욱 노골적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걱정된다. 만에 하나 중국의 정책에서 패권주의

  • 환갑 즈음에

    환갑 즈음에 지면기사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벌써 환갑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 60갑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지만 자꾸 이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다들 건강하고 오래 사니 환갑이라 하여 어디에다 명함도 못 내놓는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음은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늙어감이다. 어느덧 눈도 침침해지고 다리에 힘도 없고 인지능력도 많이 떨어져 간다. 제자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자꾸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다.공자님은 '논어'에서 나이 예순에 이르자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하여 이순(耳順)이라 하였는데 아무리 보통사람이라고 하여도 난 도무지 그렇지 않다. 명색이 교수이고 이제 손자까지 보았는데 오히려 화를 더 자주 내고 잘 토라지고 갈수록 어린 애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여자에 비하여 남자가 나이 들면 원래 그렇다 한다. 그래서 조금은 위로가 되지만 몸은 쇠잔해 가고 마음은 쫌생이처럼 좁아진다.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젠 욕심을 버리고 적당한 위치로 물러나 자족하고 은둔하듯 지내야 할 터인데 아직도 꼭 이름 석자를 어딘가에 올리려 하고 가지고 갈 수도 없는 재산을 모으려 한다. 이런 나의 모습이 마치 떨어지려는 밧줄이라도 잡고 바둥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불편하다.나보다 생일이 빨라 이미 환갑을 지낸 아내는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인인 아들 내외는 일생 아들만을 위하여 평생을 살아온 엄마 환갑엔 전혀 관심도 없었다. 엎드려 절 받는 것처럼 내가 며칠 후면 엄마 환갑이야! 라는 정보를 미리 주어 겨우 몇 푼 용돈을 받아내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예전엔 거의 아들과 동지적 입장에서 공감하였던 내가 이젠 아내의 편이 되었다. 아니 더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몇 달 후면 환갑이 되어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에 아들 편이 되지 않고 아내와 동지가 된 것이다.사실 난 몇 년 전부터 노후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있다. 건강관리, 정년 이후 일거리 찾기, 악기연주와 합창단 활

  • 철없는 철새들

    철없는 철새들 지면기사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으로 노래해서 화제가 되었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새로 펴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에는 '한국의 정치인'이란 작품이 있다.대학은 그들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하고/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병원은 그들에게 입원실을 제공하고/비서들이 약속을 잡아주고/운전수가 문을 열어주고/보좌관들이 연설문을 써주고/말하기 곤란하면 대변인이 대신 말해주고/미용사가 머리를 만져주고/집안 청소나 설거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도대체 이 인간들은 혼자 하는 일이 뭐지?)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조차 없다. 여기 그려진 현실은 당연히 이 시 속의 가상(假想)현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 속의 가상(假想)현실을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실제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시에 공감하는 독자가 많다. 공감하는 독자가 많다는 것은 이 시가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깨어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런 일상으로 부터 탈출을' 꿈꾸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성과가 별로 없다. 또 이 풍경이 중앙정치의 한 단면일 뿐이라고 우기는 사람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주기가 어렵다. 학식도 인품도 의심스러운 사람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예사로 주는 지역 대학들이 있고 무소불위의 파워로 제왕적 지자체장을 지낸 뒤 사법 처리되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지금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역 정가의 미풍은 태풍을 예고하는 신호다. 텃새들은 텃새들대로 새로운 일전을 준비하고 있고 철새들은 철새들대로 성공을 꿈꾸며 조심조심 끼어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텃새라고 무조건 믿을 수도 없고 철새라고 굳이 내칠 필요도 없다. 여러 지역, 여러 기관에서 경험을 쌓은 눈 밝은 철새들이 있다면 근시안적이고 비전 없는 텃새들보다 훨씬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선거 때만 고개 숙이고 찾아오

  • LA 주립박물관 조선왕실어보는 도난품

    LA 주립박물관 조선왕실어보는 도난품 지면기사

    2010년 이후부터 나는 미국 LA로 건너간 조선왕실 어보(御寶)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현재 LA의 주립 박물관(LACMA)에 전시중인 이 어보는 높이 6.45㎝, 가로·세로 각 10.1㎝로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가 있으며,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1547년 아들인 명종(재위 1545~1567)이 "경복궁 근정전 섬돌 위에 나가 '성렬인명대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리고 덕을 칭송하는 옥책문과 악장을 올렸다"는 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울 종묘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던 조선왕실의 어보가 어떤 이유로 LA까지 흘러가게 된 것일까?이 어보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2010년 여름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미국지역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LA 주립박물관이 문정왕후 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정부는 6·25를 전후한 시점에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확실한 입장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그즈음 나는 직접 미국 메릴랜드의 국가기록원을 방문, '아델리아 홀 레코드'라고 불리는 문서 전문을 입수하게 되었다. 미국 국무부 관련 '아델리아 홀'여사가 작성한 이 문서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불법 문화재를 조사하고, 원산국으로 문화재를 반환한 경위를 작성한 문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문화재를 약탈한 미군범죄에 대한 조사 보고서와 반환 경위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었다.아델리아 홀 레코드의 마이크로필름 4 :774에는 '한국의 도장(Korean official seals)'이란 파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열어 보니 1956년 5월 21일 아델리아 홀이 당시 양유찬 주미 한국 대사와 전화로 나눈 통화내용이 있었다. 47개의 조선왕실 어보가 미군에 도난당했다고, 미국 정부에 분실사실을 신고하는 내용이었다.더불어 '한국의 보물이 사라졌

  • 한민족 디아스포라, 국력의 외연

    한민족 디아스포라, 국력의 외연 지면기사

    민족분산 또는 집단이주를 뜻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BC 6세기 유다왕국이 망하면서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였던 유태인들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역사에서 패전국민이 승전국의 노예로 전락한 예가 수없이 많을 테지만 유독 2천600년 전 바빌론에서 포로로 지냈던 유태인을 지칭했던 디아스포라의 의미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로 집단이주하여 사는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진화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빌론의 유태인들은 현지에서 동화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오히려 번성했고, 훗날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유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유엔 인구국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3%에 해당하는 2억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75개 국가에 720만의 해외동포가 있다. 물론 이 통계에는 이주 1세대의 후손들이 대부분이긴 하나 국내인구(남북한 전체)의 10%에 달하는 우리 동포가 전 세계 5대양6대주에 퍼져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한민족은 중국인, 유태인 못지않은 세계적인 디아스포라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각지로 이주한 역사적 배경이 시대별로 다르고 현지 문화와 사정도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재외동포사회를 하나로 묶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같은 핏줄의 한민족이기에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첫째가 재외동포들은 어는 곳에서든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현지 다른 이민사회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둘째로 한민족 특유의 교육열과 우수함으로 다음세대의 현지 주류사회 진출률이 다른 소수민족보다 높다. 셋째로 강한 뿌리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헌팅턴(S. Huntington)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념의 대립이 끝나면서 문화, 민족의 개념이 중요시되는 시대조류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199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은 현지에서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현지화정책에 초점이 두어졌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재외동포의 가치와 잠

  • 불쌍한 작가들

    불쌍한 작가들 지면기사

    한국사회에서 작가들은 이렇게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도 좋은 존재들일까?수년 전 작가들의 수입을 조사한 결과 한국 작가들은 월 평균 20만원의 수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악화돼있는 만큼 한국 작가들은 한 마디로 수입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다른 직업이 없이 순수하게 창작에만 매달려있는 전업 작가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극빈계층에 속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도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우리 사회의 한쪽 구석에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방치되어있다.작가는 한 국가의 문화를 창조해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소외되어있고, 버림받은 처지나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문학은 한 국가와 민족의 혼과 얼이 배어있는 것이고, 작가는 자기 나라의 언어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읽힌다. 문학이 없으면 언어가 없어지고, 언어가 없는 국가와 민족은 망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 언어를 이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고 세련되게 다듬은 사람들은 정치가도 아니고 기업가도 아니다. 작가들이야말로 주린 배를 달래면서 우리 언어를 살려온 주역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쓰레기처럼 방치되어있다.아파트가 안 팔리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정부는 법을 뜯어고치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작가들의 작품이 진열되어있는 책방들이 연달아 문을 닫고 출판사들이 줄줄이 폐업을 하는데 대해서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수립되고 지금까지 역대 정부에서 작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군사정권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민주화 투쟁으로 정권을 잡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문학에 대해서 문외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한국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안 나오는가 하고 두리번거린다. 정부나 국민들이나 염치가 없기는 막상막하이다.한국에서는 작가라는 존재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저 그렇고 그런 존재일지 모르지만 외국에 나가보면 작가 한

  • 한국의 대학에 대한 불편한 진실

    한국의 대학에 대한 불편한 진실 지면기사

    대학이 없는 한국을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은 모두 한국의 대학에서 젊은 인재를 양성한 결과이다. 자연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노동력과 창의성이며 이에 의지하여 오늘의 국가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미래를 구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대학은 어떠한가.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로할 용기가 있는 것인가. 아마도 이는 쉽지 않은 결단이 요구되는 일이다. 여기서 필자가 경험한 한국대학의 진실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고백해 두고자 한다.우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반값 등록금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반값 등록금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 처음 공론화시킨 다음 그들의 생색내기 용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 전략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유권자를 유혹하는데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실제 대학 현실에서 반값 등록금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수업 시간을 단축한다든가 강의 단위를 대형으로 조정한다든가 아니면 전임 교원에게 수업시수를 더 많이 요구한다든가 하는 일이 여러 대학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반값 이야기로 인해 대학에서는 등록금 인상은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이고 이에 역행하면 여러 제재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교육 당국자의 위협이 무섭기도 하다.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한국의 대학 경쟁력을 논하는 상반된 요구가 있다. 국내 순위가 정해지고, 아시아 순위가 발표되고, 세계 순위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대학 경쟁력이 아주 부진하다고 질타한다. 한국의 대학이 새로운 세기를 선도하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계 수준의 성과물을 산출하게 만드는 확실한 지원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미래창조의 현장이 대학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대학이 미래 창조의 생산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정부의 발표가 현실화될 것이다.

  • 게으름의 등장

    게으름의 등장 지면기사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인에 대해 받은 첫 인상은 매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삼사십년 전에 전쟁과 가난에 힘들어하던 나라에서 아시아 강국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눈부신 급성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특히 천연자원이 펑펑 쏟아져 나와 부국이 된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경우이다. 한국의 성공은 힘든 노동이 불가피하다면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강인함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러한가?그동안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한국을 일으켜 세웠던 이전 세대와 달리 앞으로 이끌어갈 세대는 전과 같지 않다. 젊은이들에게 전에 없던 게으름을 목격하면서 앞으로 한국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특히, 늙은 용이 깊은 잠에서 다시 깨어난 듯 과거의 위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중국의 급부상을 본다면 이런 노파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물론,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해가 진 후에도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고층 빌딩가의 사무실에선 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로 불이 꺼지지 않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감히 게으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국에서 '오래 일하는 것'은 종종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고 싶은 내용은 왜 한국인들이 그렇게 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과거 한국은 성공에 굶주려 있었다. 그러나 한 이십년 전부터 등장한 신세대들은 빈곤에서 오는 어려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 않는 듯하다. 부모들은 아이의 안녕을 추구하며 결국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는 셈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을 때 종종 볼 수 있었던 어처구니 없던 광경 중의 하나가 3층 밖에 안되던 건물 안 승강기 앞에서 학생들이 겹겹이 줄 서 있던 모습이다. 서둘러 계단으로 가면 그나마 지각은 면할 수 있을텐데도 지각을 하더라도 덜 걷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함께 등산을 하기로 하고 약속 장소에 나가보면 학과 학생 대부분이 참석하지 않았다.심지어 그 전에 점심을 사겠다고 학생들에게 제안을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