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춘추칼럼]절망을 즐기지 않기 위하여
    칼럼

    [춘추칼럼]절망을 즐기지 않기 위하여 지면기사

    영화 '아수라' 폭력·고통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일까?바뀔 가능성 없는 이 사회 적응 위한 체념 연습인지 정직한 절망 소중하지만 반복땐 기묘한 향락 돼버려세상에는 영화보다 중요한 것이 많지만 영화보다 중요한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영화들도 세상에는 있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는 천국의 장인이 건설한 지옥이다. 최상의 연출력임을 알겠으나 결코 두 번은 볼 자신이 없다. 이 영화가 재현하는 폭력을 나는 견뎌내기 어려웠다. 특히 포식자가 피식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의 시청각적 자극을 이 영화는 마치 제의를 치르듯 준엄하게 쏟아 붓는다. (초반부에 경찰 한도경이 자신의 끄나풀에게 퍼붓는 폭력과 중반부에 검찰수사관이 한도경에게 가하는 폭력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린다. 이 영화에서 '때리다'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 같다. '폭력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있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폭력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때 떠올려야 할 말이다. 이 영화의 폭력이 내게는 아름답지 않았고 고통스러웠다. 고통스러운 폭력을 계속 감내하고 있다 보면, 그러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 영화를 보면서 경험한 일 중 하나가 그것이다. 스크린 속에서 행사되는 폭력을 보면서 정작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고 있는 것인가. 어떠한 쾌락도 없이, 스스로 고통을 당하면서. 영화가 관객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그 자체로 옳거나 그르진 않으리라. 문학도 마찬가지다. 피해서는 안 되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안다. 최근 나는 한국사회의 끔찍한 본질을 집요하게 재현하는 한 소설가에게 지지를 표명하면서 이런 문장을 적기도 했다.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유서 깊은 논의에서 '재현'이란 현상의 복사가 아니라 본질의 장악이다. 남길 것과 지울 것을 선택하는 지성이 필요한 일이다. 또 독자에게 고통을 전이시켜

  • [춘추칼럼] 진정 군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칼럼

    [춘추칼럼] 진정 군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지면기사

    김제동씨 발언 국감서 다뤄야 할 정도 비중성 의문잊을만 하면 터지는 '방산비리' 軍신뢰 땅에 떨어져눈앞 得보다 부하·국가 안위 앞세우는게 진정한 군인방송인 김제동씨의 '영창' 발언이 사실인지 솔직히 알기 어렵다. 기왕에도 잘 알려진 김씨는 졸지에 국감스타가 되었다. 새누리당 백승주의원의 국방위 국정감사장 질의 때문이다. 김씨가 과거 방송에서 방위병 복무시절 군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13일간 영창생활을 했다는 말이 사달을 일으킨 것이다. 김씨 본인의 말처럼 기록이 없어서 확인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우스개를 위해 과장한 내용일 수도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김제동씨가 사실은 군기교육대에 간 것 같다"고 한다. 본인이 빨리 해명했으면 좋았을 일이라는 것이다. 현안이 산적한 국방위에서 불필요한 진실 게임처럼 됐다고 한탄한다. 김제동씨의 말마따나 웃자고 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시 '군사령관'의 명예가 걸린 사안일 수도 있다. 김씨의 발언이 허위나 과장이라면 더 그렇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식으로 눙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감장에서 공식 의제로 제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백의원은 군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기 때문에 문제 삼았다고 한다. 김제동씨의 발언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다루어야 할 정도의 비중과 시급성이 있는지 역시 의문이다.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그것보다 더 큰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방산비리' 문제이다.잊을만하면 터지는 방산비리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당장 지난달 26일 동해에서 추락한 링스헬기도 볼트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 군인 3명이 산화한 원인이 방산비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해군이 도입한 해상작전 헬기 '와일드 캣'은 실제 작전 시간이 30분에 불과할 정도로 작전성능에 미달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불량 방탄복 납품 혐의로 기소된 업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 [춘추칼럼]남북관계 정상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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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남북관계 정상화가 시급하다 지면기사

    미·중 갈등에 눈치만 보다간 끌려다닐 수 밖에…北도발 강력대응 했다면 이제는 협상카드 쓸 필요새 분위기로 북핵문제 해결국면 진입시킬 수 있어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러한 국면이 더욱 길어진다면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안보구도의 틀이 바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추후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특히, 최근 상황을 보면 한반도가 전장화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였다. 지난달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미국은 확장억지의 일환으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B-1B 랜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격시켰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수위를 두고도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악화일로의 환경에서 북한은 주변 상황과 정세 변화를 적극 활용하며 핵·미사일 고도화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의 강력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우리는 군사적·안보적 대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역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하여 적절히 자신들의 패권과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미·중 간의 전략적 이해에 따른 경쟁·대립이 정리되기 전까지 한동안 지속될 공산이 크다.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정상화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강조하는 것에 일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 함경북도 북부 지역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해 많은 인명·재산 피해를 입혔음에도 북한의 5차 핵실험 등을 거론하며 대북 수해 복구 지원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그러나 북핵문제는 제재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감안하고 제반상황을 따져 볼 때, 북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가 얼마나 가능한지 의문이다. 지속적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아온 북한을 더욱 강력한 제재로 변화를 갖게 하는데는 한계가

  • [춘추칼럼] 익숙함을 거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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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익숙함을 거부하기 지면기사

    '변화'와 '능숙함' 겪는 세대간 상호이해 쉽지않아새로운 기술·상품 선택해 경험하는 '얼리어답터'신기함·세상변화 실감하며 혁신을 소비하고 지원언제부터 '먹방'이 이렇게 유행한 걸까. 맛집 탐방이 대세고 멋진 셰프는 만인의 로망이다.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의 변화는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우리 곁에 나타난다. 그리움으로 추억하는 나의 유년기는 색다른 장면으로 가득하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먹기도 힘든 쌀로 술을 만드는 건 큰일 날 일이어서 동네에서도 가끔 밀주를 만들다가 적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20세기 전반부의 미국 대공황 때 금주령이 선포된 후에 알카포네 같은 갱단이 밀주 유통으로 부를 축적했던 걸 연상시킨다.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서 아이들은 매일 도시락을 싸갔는데, 학교에서 도시락에 보리가 충분히 섞였는지 '도시락 검사'를 받았다. 보리밥도 못 먹는 사람들이 많은 판에 윤기 나는 쌀밥을 먹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여겼으니까. 창이 있으면 방패가 나오는 법이다. 도시락 상층부에 보리를 얇게 도포하여 검사를 통과하는 기술은 족보가 되어 전수됐다. 요즘 어디 가서 이런 보리 혼식 얘기를 끄집어내면 꼰대소리 듣기 딱 좋다. 진부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공포심에 눌린 아재와 아주매는 그래서 이런 '부족했던' 시절 얘기를 피한다. 가르치려는 고질병이 또 도졌다는 소리까지 들으면 큰일이다. 세상에는 시류니 유행이니 하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신세대에게 이런 예전 얘기는 진부하기만 하려니 생각하던 차라서 영화 '국제시장'의 성공은 사뭇 놀라웠다. 영화평론가들도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주제로 '궁상맞은 얘기는 진부하다'는 주류 프레임에 정면충돌했다. 지금 신세대에게 이런 시절을 살던 청춘의 궁핍함이 소통된다는 게 놀랍다. 그들에게도 예전 것에 대한 이해의 시선이 있는 건가. 그렇다고 신세대에게만 기성세대를 이해하라는 짐을 지울 수는 없다. 이질적 요소를 가진 두 그룹 간의 이해는 쌍방향이어야 한다. 변화의 한가운데서 몸으로 변화를 맞는 세

  • [춘추칼럼] 카르발류가 없다
    칼럼

    [춘추칼럼] 카르발류가 없다 지면기사

    1755년 '리스본 대지진'때 리스본 재건시킨 영웅누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난상처 달라져불법 연루된 권력자들 틈에 국민들은 유기된 느낌지진이 일어난 그 밤에 난생 처음 집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나라 사람 대부분이 그러했겠지만, 이전의 나와는 달라졌다.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다. 예전에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 하나를 다시 꺼내든 것도 그 다음날이었다. '운명의 날'(니콜라스 시라디, 강경이 옮김, 에코의서재, 2009)은 '리스본 대지진'(1755년 11월 1일)의 경과와 결과를 잘 정리해 놓은 책인데, 애초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기분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 책의 후반부, 즉 당대 유럽 지식인들의 다양한 지적 반응과 상호 논쟁을 정리한 대목만 읽었다. 이 세계야말로 신이 설계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책 '신정론(변신론)'(1710)이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볼테르의 '캉디드'(1759)에 의해 어떻게 논박 당했는지를 살피고 이로부터 세계관의 두 유형을 추출해내서 그 논리적 완결성과 인간적 호소력의 차이를 가늠해보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내 협소한 관심사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 지진이 발생한 그 날의 상황, 1차에서 3차까지 계속된 지진의 경과, 그리고 그 막대한 피해와 끔찍한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포르투갈 왕가와 그 측근들의 대처가 눈에 밟혔다. 그날 주제 1세와 그의 가족들은 리스본이 아니라 휴양지 벨렝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무능력한 왕은 망연자실 상태였고 신부들은 신의 심판을 받은 땅을 버려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 구원자처럼 나타난 것은 당시 대다수 권력자들보다는 낮은 계급 출신이었던 신하 카르발류였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 형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 [춘추칼럼] 서독의 대화·교류·지원·인권 병행정책
    칼럼

    [춘추칼럼] 서독의 대화·교류·지원·인권 병행정책 지면기사

    남북간 대화 민간교류로 '대북인권' 접근 중요한반도문제 주변국 아닌 남북이 주도권 확보해야인도적 지원 병행 실질적 개선 되도록 노력 필요지난 4일 북한인권법이 시행됐다. 북한은 대외선전매체를 총동원하여 북한인권법을 비난했다. 향후 남북관계의 고난을 예고한다. 통일전 동독정권에 의해 가해진 인권침해는 주로 동독의 체제유지와 관련됐다. 생명권·재산권·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했다. 형사법은 체제에 반하는 세력을 탄압하고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생명침해 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는 국경 탈출자에 대한 총기 사용이었다. 1949∼1989년 국경수비대의 총격에 의한 사망자 숫자는 200여명에 달한다. 지뢰와 자동발사장치에 의한 사망자도 300여명에 이른다. 일방적 사법절차에 의한 사형수도 4천500여명으로 추정된다. 동독정권은 체제이념의 차이를 내세워 국제사회의 비난에 대응했다.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했다. 북한의 대응·반발과 큰 차이가 없다.동독은 1973년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했다. 1975년에는 유럽안보협력회의 창설을 위한 헬싱키 최종의정서에 서명했다. 헬싱키 최종의정서는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해 주는 대신 가족상봉 및 재결합, 여행 및 자유 왕래, 인권존중, 언론 및 집회의 자유,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 증대를 명시했다. 동독의 체제변화를 이끌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서독은 초기에 국제기구나 국제법의 원칙, 합의 등을 통해 동독에 대한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서독은 차츰 양독간의 합의에 의한 동독의 인권개선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인권문제의 직접 제기보다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인권개선 정책으로 전환했다. 동방정책 비판론자들은 동방정책이 동독정권 유지에 기여했으나 동독 주민들의 인권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동방정책이 양독간 교류의 다리를 놓고, 동독인들이 서독을 동경하고, 동독내에서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싹트게 된 것을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서독의 대동독 인권정책 사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네 가지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당국간의 대화

  • [춘추칼럼] 살바도르 달리의 12면 축구공
    칼럼

    [춘추칼럼] 살바도르 달리의 12면 축구공 지면기사

    플라톤 "신은 별자리 배치 정십이면체 사용" 주장달리, 마지막 만찬 성스러움 '제5원소'로 표현수학, 음악·미술가에게 영감 주는 매개 되기도작년 말에 파리에서 세드릭 빌라니 교수를 만났다. 2010년 필즈상을 수상한 석학이고 앙리 푸앵카레 수학연구소장이다. 항상 나비넥타이 정장차림에 자신만의 거미 브로치를 단다. 깊이 있는 수학 논문과 베스트셀러 대중서를 동시에 써내며 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을 거부하는 이단아다.그를 만난 곳은 실험 음악가 파트리스 물레의 작업실이었다. 영화 매드맥스 세트장 같은 느낌의 커다란 지하 공간에서 물레는 신개념 악기를 설계하고 만들며 연주하는 작업을 한다. 음악에 대한 학습이나 훈련 없이도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 작업실에서의 연주는 좋은 소리를 내는 것 보다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에 가깝다.자폐증이나 신체적 부자유가 있는 아이들이 이런 악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을 하고 치료받는 현상이 관찰되는 바람에 새로운 활력을 띄게 됐다. 작업실에는 정신과 의사인 여성 인지과학자도 방문 중이었다. 음악가와 수학자 그리고 인지과학자가 무슨 공통의 관심이 있을까. 시각적 정보를 음악으로 전환하는 비법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치유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까지 동원된 것이다. 자폐증 아이들이 지하실을 방문하는 것이 민망한 빌라니는 작업실의 지상 이전을 위해 기금을 모으는 중이다. 이럴 때는 필즈상 수상자라는 허명도 도움이 된다나.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의 1955년 대표작인 '최후의 만찬'에 나타나는 여러 직선들의 길이는 황금비를 이루고, 배경에는 큼지막한 정십이면체가 보인다. 똑같은 모양의 펜타곤 12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각진 축구공이 예수님 뒤에 보이다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뜻인가.얘기는 고대 아테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모순과 오류투성이의 현세 너머에 무결한 피안의 세계가 있다고 여겼다. 피안을 들여다보는 열쇠를 기하학에서 찾고는, '기하학은 진리로 가는 영혼을 이끌며, 철학의 정신을 창조한

  • [춘추칼럼] 터널 앞에서
    칼럼

    [춘추칼럼] 터널 앞에서 지면기사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기억 '주체' 아닌 '대상'에 불과그 고통 얼마나 참혹한지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몰라누군가의 터널속 어둠 되지 않으려면 정신 차리자김성훈 감독의 '터널'은 많은 장점을 가진 영화다.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를 더 많은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가장 적합한 화법이 무엇일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보다도 그의 아내 '세현'(배두나)이 나오는 모든 장면이 나에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터널 안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닌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터널 안팎의 고통이 모두 그녀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가장 안타까워 보였다. 터널 밖의 고통과 분노에 떠밀려 그녀가 결국 터널 안의 남편을 포기하기로 결단하는 '마지막 방송' 장면을 나는 지금도 떠올리고 있다.그런데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계속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35일 만에 구출된 정수가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퇴원해서 아내와 자동차로 귀가하는 장면. '이송'에서 '퇴원'까지 실제로는 긴 시간이 흘렀겠지만 관객들은 불과 몇 분 만에 멀끔해진 정수를 보게 된다. 그 사이 건강해진 정수의 너스레는, 조금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했다. 그런데 그가 사고 이후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가는 장면을 보여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물론 정수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결국은 통과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정수가 퇴원하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고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감독의 의도는 트라우마의 집요함을 강조하자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장면이 내게는 오히려 반대의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다시 터널로 들어갈 수 있는가. 나라면 다시는 터널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터널의 시커먼 아가리가 저 멀리 보이는 지점에까지 가는

  • [춘추칼럼] 전기요금과 관료주의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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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전기요금과 관료주의의 벽 지면기사

    가정용 전력수요 많이 써도 전체 사용량중 15.6%대통령 한마디에 "누진제 완화 검토" 180도 돌변관료주의 관점서 볼때 우리나라는 '후진국'에 불과관료주의란 조직의 공정성, 합리성, 효율성을 기할 수 있도록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전문적 관료들의 체계를 말한다. 관료주의는 업무 처리에 있어 공평무사의 원칙에 따라 합리성을 실현한다. 임용과 보수에 있어 능력주의에 따르고, 통제력의 집중과 위계적 질서에 의하여 능률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관료주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독선적 권위주의, 행정적 형식주의, 무사안일, 책임 전가, 규정 만능주의 등을 말한다. 관료주의에 젖은 조직의 구성원들은 상급자에 대하여는 아첨하고 하급자에게는 거만하며, 까다로운 업무는 적당히 넘기고, 자기 업무 이외에는 무관심하며, 독선적이고, 책임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등의 특징을 나타낸다. 온라인에서 찾아본 '행정학 사전' 등은 관료주의를 이처럼 풀이한다.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은 이 같은 부정적 관료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숨 막히는 더위에 시달리는 국민들이지만 에어컨조차 제대로 틀지 못한다. 말 그대로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서다. 최고 11.7배까지 가중되는 징벌적 누진제비판은 매년 여름 되풀이된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국민을 더 열불 나게 만든 것은 누진제를 강변하는 산자부 관료의 권위주의적 태도이다. 에어컨을 하루 서너 시간만 틀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아침부터 시작된 찜통더위가 기록적 폭염으로 이어지는 날이 계속 중이다. 도저히 잠을 이루기 어려운 열대야도 수십 일째 지속 중이다. 하루 종일 에어컨 속에서 긴팔 옷을 입고 근무하는 고위 관료들이니 국민들의 사정을 알 턱이 없다. 거짓 논리로 누진제를 옹호하는 점은 더 어이없다. 가정용 전력 수요는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 지금보다 가정에서 20%를 더 써도 전체 사용량에서는 15.6%에 불과하다. 여름철 전력 대란이 우려되는 피크 타임은 오후 2~3시이다. 가정용 전력소비는 그 시간에 오히려 줄어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정용

  • [춘추칼럼] 시대에 역행하는 한반도의 신냉전구도
    칼럼

    [춘추칼럼] 시대에 역행하는 한반도의 신냉전구도 지면기사

    정부 사드배치 결정에 中 반발 확산 '신냉전구도' 심화북한, 중·러와 관계 복원·진전 시동 '발빠른 대응'예방안보·균형외교 중요… 박대통령 8·15경축사 기대냉전구도는 이념에 토대한 대립구도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립이다. 남한은 미국진영이고 북한은 소련진영이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다. 나의 손실이 적의 이익이라는 제로섬 게임의 국제질서이다. 1980년대 말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와 90년대 초 소련의 해체로 냉전구도는 종말을 고했다. 한반도는 전환의 시대를 맞이했다. 한중·한러 수교가 이루어졌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됐다. 미북 간에는 북핵동결·경제지원·관계 정상화 논의 등을 담은 제네바 합의가 채택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남북한이 화해 협력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했다.신냉전구도는 안보에 토대한 대립구도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우호 국가 간의 대립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론과 중국의 신형대국론이 논리적 토대이다. 북한의 핵무장론과 남한의 동맹강화론이 대립구도의 전면에 서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함께 대중외교를 강화했다. 중국과의 협력강화와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는 중국의 신형대국전략에 긍정적 기여를 했다. 대북압박 공조인 한미일중러 대 북한의 구도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을 잠시 지연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갑작스럽게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중국의 반발은 확산되고 있다. 대북압박 공조는 와해되는 모습이다. 북한의 핵 능력은 고도화되고 한반도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구도가 심화되는 느낌이다.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사드 배치의 결정적 요인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위협의 방어적인 제거이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배치를 적극 반대한다. 한중간의 입장 차이는 간단하다. 사드배치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인식차이이다. 한국은 사드가 대북용이고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의한 대중용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