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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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해양 도시' 주도권 확보 나선 인천과 부산 지면기사
"프랑스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분관, 극지연구소 제2쇄빙연구선 모항(정박부두), 해사법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인천시, 부산시가 치열하게 유치전을 벌이는 안건이다. 이 중에서도 제2쇄빙연구선 모항, 해사법원은 인천, 부산이 해양도시라는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데서 그 의의가 크다.정부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한 제2쇄빙연구선 건조 계획을 담은 '제1차 극지활동 진흥기본계획'을 의결했다. 2009년 인천을 모항으로 하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운영한 지 10여 년 만의 두 번째 쇄빙연구선 건조 계획이다. 인천, 부산 등 전국에서 제2쇄빙연구선 모항이 어디에 들어설지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부산시는 제2쇄빙연구선 모항 유치를 위해 일찌감치 후보지 도출, 관련 인프라 조성 등 계획안을 내놓았다. 인천시는 정부 계획이 나오자 급하게 모항 유치 방안을 마련하는 데 나섰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민선 6기 재임 시절인 2016년 제2쇄빙연구선 모항을 인천에 지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인천시는 타당성 검토도 했지만 제2쇄빙연구선 건조 계획이 불투명해지고 시정부가 바뀌면서 관련 정책도 동력을 잃었다.해사법원 유치 또한 비슷한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인천시는 2017년 해사법원 범시민 추진 기구를 만들고 정책 설명회, 토론회를 여는 등 활발하게 의제에 불을 붙였지만 잠시뿐이었다. 반면 부산시는 지자체, 해운·항만업계, 법조계, 정치권이 지속해서 해사법원 설립 필요성을 강조하며 담론을 이어나가고 있다.이 두 안건에 대한 인천시의 정책적 관심이 떨어진 것은 행정 연속성을 잃은 게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사업이 방향을 잃지 않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인천시를 주축으로 정치권,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이 함께할 기회도 뒷받침돼야 한다. 인천이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원팀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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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27번째 멤버' 오현규 지면기사
수원 삼성의 공격수 오현규가 벤투호의 '27번째 멤버'로 카타르 월드컵 여정을 마무리했다. 월드컵을 보름 여 앞두고 '캡틴' 손흥민이 안와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만에 하나 대체될 상황을 대비해 최종명단 26명 밖 예비명단으로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전 공격수 황희찬의 햄스트링 부상까지 겹쳐 엔트리 교체를 열어둔 국제축구연맹의 규정에 따라 오현규의 대체 합류 가능성이 있었으나 결국 무산됐다. 벤투호는 기존 엔트리를 유지한 채 월드컵을 치렀다.오현규의 엔트리 합류 여부를 끝까지 지켜본 건 카타르로 떠난 선수 중 유일하게 그가 경인지역 프로구단 소속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 K리그1에서 13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린 데다, FC안양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며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던 그였기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비록 월드컵 무대를 직접 밟진 못했지만, 오현규에게 이번 동행은 분명히 뜻깊은 시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는 대표팀 경기마다 벤치에 앉아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현지 훈련도 빠짐없이 수행하며 동료들이 출전 의지를 불태우는 것을 보고 다음 월드컵에 대한 내적 동기부여도 확실히 다졌을 것이다. 마침내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의 드라마를 썼을 때 잔디 위에서 선수들과 얼싸안고 극적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눈 것도 향후 그의 경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임이 분명하다.오현규는 카타르로 떠나기 전 "월드컵이라는 영광스런 무대에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수원 이병근 감독과 동료들, 수원 팬분들께도 감사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강등 문턱에서 '소년 가장'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무게를 견뎌냈던 오현규다. 이제 당당히 팀의 '간판' 공격수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선수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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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대불안의 시대 지면기사
'패닉(Panic)'.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개인의 심리상태나 행동을 뜻하는 말로, 고대 그리스 신화의 '판(Pan)'이란 존재에서 유래한 단어다. 목축의 신인 판이 위기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믿음을 가진 아테네인들은 공물과 제물 등을 제사장을 통해 판에 받쳤다. 실제 그리스에 평화와 호황을 가져올 때마다 그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지만, 흉작을 맞거나 전염병, 전쟁 등이 벌어지면 아테네인들은 큰 좌절과 공황을 겪게 됐고 훗날 패닉은 사회적 불안을 뜻하는 대표적 단어로 발전하게 됐다.우크라이나 전쟁과 3고 현상(고물가·고환율·고금리), 북한의 군사 도발과 가상화폐의 몰락 징조 등 우린 모든 생활이 불안한 패닉에 빠져있다. 일명 '대불안의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 올 초부터 시작된 경제불안은 고용불안으로, 여기에 안보불안까지 이어지며 경제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코로나19만 끝나면 '호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믿음은 사라졌고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울한 소식만 들린다.와중에 겪은 '이태원(10·29) 참사'는 대불안의 시대에 안전불안까지 겹치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8년만에 반복된 참사. 잠시 잊고 있던 일상 속 죽음의 요소가 언제든지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우리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한 것이다.불안의 증폭은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결혼하면 배우자란 불안요소가 늘어나는 거고 자식이 늘어나는 출산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불안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출산을 선택할 이유는 줄어든다.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책임 회피'와 경제위기에도 '펀더멘탈'은 문제없다는 정부, 판에 의지한 그리스인들과 달리 현재 국민들이 겪는 패닉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 가져야 할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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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미술관에서 마주한 질문 지면기사
지난주 취재차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을 개장시간 전에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시민들이 아직 입장할 수 없는 아침이었지만, 한 무리의 프랑스 어린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작품을 관람하는 모습을 마주했다. 아이들은 흥미 가득한 눈으로 선생님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한 작품을 잠깐 보고 지나치지 않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충분히 느낄 시간을 가지는 게 인상 깊었다.현지 큐레이터는 "아이들은 개장시간과 상관없이 미술관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일반 시민과 달리 미취학 아동에게는 언제나 무료로 개방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문화적 소양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프랑스 교육의 철학이라고 한다.같은 날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올해 시험 난이도는 작년보다 어려울지, 정시와 수시 비중은 어떻게 되는지, 수능 당일 아침 기온은 몇 도인지 등을 전하는 내용이 주요 뉴스로 전해지고 있었다. 영어와 수학의 중요성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피아노와 태권도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학교 실기평가를 위해 했던 유년기가 떠올랐다.아동 학대 사건이 터지면 온 국민이 공분하고, 아이의 인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도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동 인권의 영역을 넘어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어떤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수능이 도입된 지 어느덧 30년째이나 여전히 정시와 수시를 놓고 어디에 무게를 둘지만 천착하는 교육 정책이 바람직한가 의문스러웠다.미술관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프랑스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교육의 철학은 무엇일까 자문했지만 결론을 맺지 못했다. 작품 하나 제대로 감상할 여유 없이 입시를 향해 뛰어가는 한국 아이들의 모습만 머리에 맴돌았다. 한국 교육 철학은 '이것'이라고 누가 시원하게 답해줬으면 한다. 단, '대학'은 빼고 말이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기자한달수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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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축적된 시간'이 주는 힘 지면기사
"나라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옆에서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큰 어르신들이 잘 안 보여." 최근 점심을 먹으면서 한 선배에게 들었던 말인데 공감이 갔다. 삶의 경험치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함께 나누며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은 사회에서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가 보지 못했던 길을 먼저 걸어갔던 사람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도 행운이라 생각한다.롱런(long-run) 또는 그 이상의 무대들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은 시대와 세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타당한 이야기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고전의 경우 시간이 흐르며 동시대의 모습이 투영될 수는 있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기에, 그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우리 모습과 대입해서 보게 된다. 사회현상, 인간을 꿰뚫는 시각, 위로와 희망 같은 감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과거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빛을 발한다.당연한 말이지만, 무엇이든 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축적된 시간'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꾸준히 노력해야 하고, 어떤 노하우나 경험을 쌓기 위해서도 반드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객과 호흡한 시간이 쌓여야 명작이 되고,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반면 현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과 성과, 이익에 매몰돼 있다. 이 때문에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투자하며, 토대를 마련해 나가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누군가는 지지해줘야 할 일이다. 경기도의 문화예술 산하기관장 인선이 진행되고 있다. 그들에게 문화예술이란 '쌓아가고 축적해 가는 것'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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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안타까운 죽음 지면기사
지난 9월30일 화일약품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숨졌다. 4개월 뒤면 정규직 전환을 앞둔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의 가족은 일상을 포기해야 했다. 부모와 형은 약 두달간 빈소를 지키고 있다.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와 사고 원인 규명 전까지는 아들을 떠나보낼 수 없다"던 유족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아버지는 일당 25만원씩 받던 공사 현장을 떠나야 했고 어머니도 다니던 회사를 쉬고 있다. 형은 장례식장에서 쪽잠을 자며 부모 곁을 지키고 있다. 때로 몸져누워 병원을 전전하기도 했다.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안전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약 8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정작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유족은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총 18건. 사고 발생 약 두 달 전 화일약품이 지적받은 현장 안전조치 미흡 건수다. 비상조치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비상사태가 있었고 비상구 설치 기준이 미흡했다. 한국안전문화진흥원이 실시한 화일약품 PSM진단 보고서 내용이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공정안전관리(PSM) 평가에서는 화재, 폭발, 위험물 누출 등 잠재적인 위험을 도출하기 위한 위험성 평가 일부 공정이 진행되지 않은 데 대한 지적도 있었다. 안전문제를 대하는 사측의 안이한 태도가 이번 사태를 키운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간다. 정부는 이런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했다. 약 10개월이 지났다. 그간 전국 고용노동부에 중처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례 156건 중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은 23건(9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 비율로는 14.7%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 10명 중 9명에 대해선 책임자 처벌이 더디다는 뜻이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다가 갑작스레 발생한 사고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유족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 /이시은 사회교육부 기자 see@kyeongin.com이시은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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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상상 지면기사
웃긴 상상을 했다. 짬뽕집에서 짬뽕을 먹고 있다. 대뜸 파리가 짬뽕에 앉았다. 다행히 양파 표면 그 어디쯤이다. 국물에서의 헤엄이 아닌 채소 위에 앉아 참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박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파리 한 놈이 국물에 빠졌다고 새 음식으로 바꿔줄 리 만무하다. 식당은 나와 같은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다. '짬뽕 한 그릇 단돈 20,000원'. 식당 앞에 내 걸린 현수막 글귀를 보고 다들 찾아왔을 테다. 동네에선 그나마 이 집이 점심 때우기 가장 좋은 곳이다. 임금은 바닥을 향했지만 물가는 천정을 향했다. 인간의 품삯은 끝을 모르게 추락했다. 봉급의 절반 이상이 식대로 나가니 노동자들 사이에선 '밥 먹으러 일터에 왔다'는 말이 더는 우스갯소리로 통하지 않았다. 그런 세상이었다. 배에 뭐라도 채우려 일터로 나섰고 다달이 새는 계좌를 메우려 땀을 흘렸다. 돈을 벌러 온 것인지, 쓰러 온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을 즈음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조선(朝鮮)이 되살아났구나. 끼니를 챙기려 양반집 몸종으로 살던, 기구한 역사 속 한 장면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했다. 역시 진리는 시대를 관통한다고 했던가.'짠 테크', '하우스 푸어', '카 푸어'…. 짠테크는 구두쇠처럼 재물을 아껴 모으는 행위를 말하고 하우스푸어는 집을, 카푸어는 차를 얻느라 기꺼이 가난을 택한 사람들이다. 경제의 먹구름은 그동안 우리 입에 오르내렸던 신조어란 비를 내려줬다. 변화에 들어맞지 않는 단어는 멸종한다. 수년 전 유행하던 'X발 비용'도 죽었다. 열 받을 때마다 마구잡이로 소비하다간 도태될 것 같으니 사람들은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같은 맥락에서 '소확행'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차라리 '대(大)확행'이 남았다. 물가와 환율, 이자가 모두 올라 3고(高) 시대다. 대다수가 더 힘들어졌다. 경제난에 탄생한 신조어들은 각자의 생존 방식을 반영한다. 잘 살고 싶단 인간 개인의 원초적 본능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정부라고 책임이 없을까. 제도권 내 비극은 정부의 무능이나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명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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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죽음이 잊히지 않도록 지면기사
지난 9월30일 화성시 향남읍의 화일약품 공장에서 폭발을 동반한 불이 났다. 이 사고로 입사 2개월 차 신입 직원 김신영(29)씨가 사망하는 등 모두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가족은 사고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김씨의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사고 6일째, 빈소를 찾아 그 이유를 물었다. 김씨의 친형은 "동생이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가족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진상 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동생의 장례를 치르지 않으려고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김씨의 장례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기사로 작성하고, 한동안 화일약품 사고를 잊고 살았다. 죽음이 다른 죽음으로 잊혀 갔다. 지난 10월15일, SPC계열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숨졌다. 지난 10월21일, 안성시 원곡면의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3명이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다시 화일약품 사고와 관련한 소식을 접한 건 20일이 지난 후였다. 경기지역 산재사고 기자회견을 취재하던 후배 기자가 "화일약품 사고 유가족이 지금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해 줬다.경인일보 취재진은 다시 빈소를 찾았다. 김씨의 가족이 생업까지 포기하고, 이 싸움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를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책임자 처벌과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란 김씨의 어머니는 "아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차디찬 냉장고에 둬야 하는 사실이 원통하고 비참하다"며 "회사 관계자들은 신영이에게 와서 사과하고, 다시는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42일째, 고인의 시신은 여전히 냉장고에 안치돼 있다. 김씨의 부모는 회사로, 길거리로 나가 아들의 죽음을 알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의 장례가 무사히 치러질 때까지 고인의 가족과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일하다 숨진 자의 죽음이 쉽게 잊히길 바라지 않는다.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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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죽음의 경중 지면기사
"아빠, 내일 고기 많이 잡아오면 친구들 데리고 와도 돼?"일흔이 넘은 이재원씨는 23년 전 아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태안으로 낚시하러 간다니 아들이 했던 말이다. 이씨가 아들에게 "너희 먹일 고기 가득 낚아오겠다"고 약속한 뒤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니 TV에는 동인천에서 큰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희생자 명단 속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그의 아들 이현민군은 1999년 10월30일 청소년 57명이 숨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이씨는 병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부평의 한 병원 안치실에서 아들을 확인했다. 인현동 참사 유족은 아들과 딸의 죽음 앞에 세상이 무너졌다. 이들의 가슴을 더 세게 후벼 판 것은 아이들에게 쏟아진 비난이었다. 사람들은 미성년자였던 희생자들이 호프집에서 숨졌다며 비행 청소년이라고 매도했다. 유족들은 자식을 잘 키우지 못한 부모로 손가락질 받았다."학생들이 비행을 저지르면 다 그런 사고에 엮이는 거야. 그러니 학교 지도사항을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인현동 참사를 다룬 김금희 작가 소설 '경애의 마음'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사회는 죄 없이 죽어간 아이들을 비난했다. "돈 내고 가라"며 학생들이 대피할 출입문을 닫아버린 업주의 잘못과 불법 영업을 눈감아줬던 공무원들의 비리는 뒷전이었다.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 수일이 지났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들이다. 이번 사고를 "놀러 가서 죽은 것"이라고 치부한 혐오와 낙인은 23년 전 인현동 참사와 똑같다고 할 정도로 닮았다. 축제를 즐기러 갔다는 이유로 이들의 죽음은 슬퍼할 가치가 없는 걸까. 우리는 인현동 참사 당시 죽음의 경중을 재면서 정작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구조적인 논의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엔 부디 이 같은 전철을 답습하지 않길 바란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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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계속 취재하겠습니다 지면기사
나른한 금요일 오후 그곳, SPC 계열 제빵공장을 처음 찾았다. 대형마트 몇 개를 붙여놓은 듯한 거대한 규모로 주변 중·소규모 공장을 압도하는 그곳. 어느 쪽이든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식사와 휴식 모두 내부에서 해결한다는 그곳에는 주변을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화물차량만 출입구를 드나들 뿐이었다. 고요함과 숨 막힘 사이, 수백 대는 족히 모여 있는 주차장과 그마저도 부족해 주변 도로를 빼곡히 채운 차들만이 이 안의 사람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난공불락'. 허탈한 귀갓길에서 느낀 그곳의 첫 인상이다.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 그곳으로부터 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토록 고요했던 외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었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전날 못 만난 노동자를 현장에서 만났다. 어제와 달리 어수선한 공장 주변, 그보다 놀라운 것은 어제도 오늘도 일주일 전도 내부는 항상 같았다는 노동자의 증언이었다. 언제 시끄러워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곳의 사정은 그때부터 온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됐다. 분향소가 차려지면서 굳게 닫혔던 문도 비로소 열리게 됐다.평택 SPC 계열 제빵공장을 다니던 청년 노동자의 희생은 예고된 '인재'였다. 일련의 사건은 고요한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20대 여성으로서 홀로 감당하기 힘든 밤샘 격무에 시달렸지만 도와줄 동료도, 구해줄 안전장치도 없었다. 고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음날도 사고현장은 생산을 멈추지 않았고 일부는 대구까지 파견돼 기계를 가동했다. 씩씩한 성격으로 책임감이 투철했다는 고인의 사연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대통령의 입을 두 번 열게 했다. 숱한 논란에도 '난공불락' 같던 SPC그룹도 결국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그날도 어느덧 2주가 넘어간다. 31일이면 사고 현장의 작업자들도 다시 일선으로 나선다. 아직 변한 것은 없다. 지금도 똑같은 주·야간 12시간 맞교대 체제로, 똑같은 작업대 앞에서 똑같은 빵들이 생산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의 바깥은 더 이상 고요하지만은 않다. '골든타임'은 이제 시작이다. 한때 뜨거웠던 기억으로만 남지 않도록 계